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2-1편
주문의 군주의 [복귀]는 대격변이 불러온 마법적인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마법사들에겐 구원이었다. 압델은 랠름의 옛 미스트라 클레릭들의 머릿속에 자신의 새 상징-비밀의 불꽃으로 빛나는 눈 장식이 된 떡갈나무 지팡이-를 보내어 위브의 흐름이 정상을 되찾았음을 알리고, 자신이 위브 여신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공표했다. 이에 많은 미스트라와 그 하급신의 사원들이 앞 다투어 압델의 사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압델은 마법의 여군주이던 미스트라의 [교리]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기에, 기도문의 이름만 바꾸면 되는 수준의 변화만 필요해서 개종은 더욱 쉬웠다.
슈발츠가 자신의 돈을 에어리를 통해 압델의 지상 교단의 건설과 재조직에 상당히 많이 [투자]한 탓도 있어서, 그는 일단 자리가 잡히자마자 슈발츠를 자신의 손님으로 새로 지어지는 자신의 차원(신 드웨머하트)에 초대했다.
" 어서 오시지요. 새로운 주문의 군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붉은 머리의 어딘가 낯익은 솔라가 유쾌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하는 환영에 목례로 답례를 하고난 후, 다른 천사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아바리엘 풍의 유리강으로 지어진 저택이었다. 온통 신성한 광휘로 둘러싸인 새로운 차원의 한가운데 일종의 유리 온실처럼 되어 있는 저택의 뒤뜰엔 그로써도 난생 처음 보는 기화요초들이 즐비했는데, 그 한편에 마련된 티 테이블에 압델이 앉아 있었다. 이제 온 몸에 신적인 광휘가 넘실대는 그의 모습은 완연한 마법의 군주 그 자체였다. 원래라면 슈발츠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지만, 상대가 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가 정중히 군례를 올리자, 압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고 티 테이블로 안내했다. 마주앉은 후 압델은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 앞으로도 많은 일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슈발츠 당신에게 진 신세를 갚는 것이겠지요. "/압델
" 이제 신이 되셨으니 하대를 하셔도 됩니다. 변변한 축하 선물도 못 드렸는데 이러시면 제가 다 무안하지요. "/슈발츠
" 그럴 수는 없소, 누가 뭐라던 우리는 친구요. "/압델
" 남편이 신님이시니까 저도 좋네요. 저절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도 많이 받게 되고. "/에어리
대화 도중 에어리가 웃으며 차를 내왔다. 그녀는 [신의 대리인]으로써 압델의 지상 교단을 돌볼 때 이외에는 새로이 건설되는 드웨머 하트에 거주를 정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서, 전례 없이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참고로 마샤의 교육과 시온의 기저귀 가는 일까지 천사들이 도맡아서 하는 통에 홀가분한 상태기도 했다. 하지만 에어리는 주부로써의 나머지 역할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압델의 지상 대리인이 된 후로도 숙련된 주부라는 것이 그녀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남편과 남편을 찾아온 손님에게 다과를 제공하는 것은 주부의 일인 것이다.
" 울면서 날 보내주니 어쩌니 하시던 부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구려. "/압델
" 아이, 정말 그때는 영원히 이별인줄 알았단 말이에요! "/에어리
압델과 에어리가 또 부부 금슬을 자랑하는 동안 잠자코 있던 슈발츠는, 두 명의 깨가 쏟아지는 행각이 멈추자 말을 꺼냈다.
" 그보다 어쩐 일로 저를 찾으신 것인지요? "/슈발츠
" 아아, 잠시만 부인... "/압델
"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 "/에어리
눈치를 챈 에어리가 자리를 비워준 후, 압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배워 가는 도중이오, 해서 확실치는 않지만, 슈발츠 당신의 영혼의 [불안정성]에 관한 해결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 말이지요. "
이제 신이 된 압델의 눈에도 슈발츠의 주변에서 일그러진 위브가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카서스의 지식을 거의 고스란히 물려받아 위브의 이해에 있어서는 그 어떤 신보다 뛰어난 존재였다.
" 나도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슈발츠 당신은 다른 존재보다 훨씬 더 위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소. 그래서 시어릭의 패악질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고, 이제 그 상처를 봉합해 가려 하는 위브에 다시 재차 가해진 웬도나이의 농간질로 인해 생긴 [위브의 무너짐]이 당신의 영혼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거지. 지금은 괜찮아 보이지만 바하무트님의 가르침도 임시변통일 뿐이고... 그대로 있다간 그것이 신체의 밸런스에도 영향을 줄 거요.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하는데, 신도 직접적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더군. "/압델
" 그런데 해결책이라 하심은?... "/슈발츠
압델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그러자 아주 오래된 파피루스 두루마리 하나가 그의 손바닥 위에서 나타났다. 그것을 건네받은 슈발츠가 두루마리를 펼치자, 처음 보는 언어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 사루크들의 언어요. 적어도 몆만 년 전에 페아림(Phaerim)들과의 싸움으로 거의 멸종한 양서류 종족이지. 그들이 네서릴 인들에게 마법을 가르친 자들이오. "/압델
" 일반적으로는 일르판의 엘프들이 네서릴의 위저드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슈발츠
" 나도 카서스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복구한 마법의 여신의 도서관에서 찾은 문헌들은 그게 아니더군. "/압델
압델은 무척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사루크는 [간단한]문제가 아니다.
사루크들은 도마뱀족, 나가, 유안-티들의 창조자이며 지금 인간이 차지하고 있던 지위 이상의 번영을 초고대(적어도 35,000년 이전)에 이룩했던 존재이다. 또한 고대의 마법을 집대성하여 페이룬의 모든 아케인 마법 이론의 근본인 네서 두루마리들을 [기록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질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번영의 극한을 달리던 그들의 제국은 내전, 기후 변화, 그리고 강력한 도전자들(특히나 페아림들)에 의해 몰락했다. 그 전성기에도 사루크 종족 자체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었고, 제국이 몰락한 지금에 있어서는 살아남아 있는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거의 대부분 동면 상태로 연명중이다.
비록 몰락했다고는 하나 페이룬 최초의 문명을 일구고 마법을 집대성했던 종족으로, 또한 갖가지 비늘족을 창조했던 종족으로써 사루크 개인의 힘과 기술은 막강하기 그지없다. 그런 종족의 비밀 전승이라면 분명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슈발츠가 마법서 해독을 위해 주문을 사용하자, 비로소 기록의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전설과 그 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찍이 사루크들의 신이던 세계 뱀(World Serpent)은 사루크들의 풍요로운 제국들이 내전에 처했을 때 산산이 찢어져 여러 다른 신이 되었다. 그중 하나가 추종자들의 간절한 탄원에 응해 사루크 제국의 적들(당시에는 페아림)에게 사용하기 위한 강력한 마법 아티팩트를 내려 보냈고, 그것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페아림들의 악마적인 마법을 간단하게 차단해 버렸다.
아티팩트의 보호로 한숨 돌린 사루크들은 강력한 마법으로 바다의 흐름을 바꾸는 기적을 일으켜 보이며 페아림들을 언더다크 깊숙이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자연의 밸런스가 한 번에 붕괴해 사루크 제국은 페아림의 내습보다 더 처참한 상황에 몰렸고, 최종적으로는 제국이 자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방어선이라 할 만한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 그만 못한 다른 침입자들(특히 드래곤들)에 의한 공격과 아티팩트의 강탈을 두려워했던 사루크들은 그 아티팩트를 3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아홉의 사루크들의 손에 들려 도시 밖으로 내보냈다. 아홉의 사루크들은 셋씩 나뉘어 페이룬의 각지로 흩어져 갔고, 그곳에서 각자 강력한 은신처를 짓고 아티팩트의 조각을 지키며 잠들었다.
" 광범위한 영역에서 선택적으로 마법의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아티팩트라... "/슈발츠
" 아직 [마법]이라할만한 것이 없었던 시대부터 번성해왔고, 최초로 마법을 집대성한 사루크들이 그들의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아티팩트요. 강력한 원시 위브적인 기예의 정화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것이라면, 내 거의 확신컨대 슈발츠 당신의 영혼에 대한 위브의 간섭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보오. "/압델
다만 아티팩트 조각의 소재에 대해서는 압델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예지로도 한때 페이룬에 있다가 지금은 광활한 아스트랄계 어딘가로 사라진 것 같다는 이상의 분명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스트랄계라면, 기스양키 종족의 본거지이자 신들의 공동묘지다.
" 정보 감사합니다. "/슈발츠
" 우리 사이에 별말씀을. 문제가 속히 해결되고, 다시 웃으며 차 한 잔 나눌 수 있기를 바라겠소이다. "/압델
압델이 내민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눈 후, 슈발츠는 에어리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차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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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리시드들의 기술로 아이올라움 최후의 정신 공격에 의해 망가져버린 헬베티아와 타브라 두 명의 정신 상태를 되돌리는 연구는 젤로나 등이 마법을 되찾으면서 느리게나마 진전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주문을 되찾은 사피아가 자신의 마법을 이용해 [얼린]상태인 두 명은 플로라의 거처에 임시로 마련한 병상에 [장치]되었다.
" 정신 공격이란 게 무섭군요... "
와우킨 조차 고칠 수 없다는 데 놀란 다른 노예들이 새삼 일리시드들과 엘더 브레인들의 정신능력에 대해 놀라고 걱정하는 동안, 슈발츠는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없을지를 알루스트리엘과 상의했다. 칼라드네이나 젤로나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인 그녀는 보호 주문에 있어서는 노예들 중 제일의 스페셜리스트였기 때문이다.
" 언제나 항시 착용할 수 있는 장신구에 [평정심] 주문을 부여하면 어떨까요? 그것이라면 마법사용을 할 수 없는 언니 동생들도 안심이겠죠. "
어떤 장신구로 할지, 노예들 모두에게 요망을 받은 후, 슈발츠는 [노예 목테]를 의무적으로 착용시키기로 했다. 노예 목테라고 해도 젤로나가 개발한 일리시움제 목테(마치 개목걸이처럼 보이는)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탈부착이 간편한, 엘프의 룬 문자를 상감한 은제의 얇은 [초커]를 노예들 모두가 착용하게 한 것이다. 거기에 평정심 주문을 기본으로 그밖에 필요한 각종의 보호주문을 걸어 두기로 하고, 제작 작업 자체는 사피아와 알루스트리엘에게 맡겼다.
그동안 다른 마법사 노예들도 마치 그동안 억눌린 것을 폭발시키듯 활동을 개시했다. 아무리 취미생활로 소일했다지만 역시 마법사의 주업은 마법 사용인 것이다. 심불은 아글라론드의 생존자들과 예전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대표적으로, 엘민스터가 있다)의 생사 여부를 알아보고 생존자들을 돌봐주기 위해 지상을 바쁘게 오가기 시작했다, 젤라노라는 하얀 귀부인 소동에서 한숨 돌린 플로라를 대신해 테티르 왕실을 은밀히 배후지원 하기 위해 움직였고, 마법을 되찾은 칼라드네이 역시 코르미르에서 보다 왕성하게 활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그때쯤 한창 국가 꼴을 갖춰 가는 도중의 펀칼라에 대해서는 거의 아노라가 전담했다. 그녀도 이제 사피아와 젤라노라의 가르침을 받은 유능한 위저드가 되어서 전력에 보탬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발츠는 지상을 출입하는 노예들은 모두 2인 1조 이상의 팀으로 움직이도록 했는데, 무엇보다 그녀들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슈발츠의 몸은 하나라도 노예들이 활동하는 장소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궁성에 모아 두고 번호표를 끊어 하나씩만 슈발츠와 대동하게 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있을 수 있지만, 슈발츠의 노예들은 보통 여자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 [보통이 아닌]능력에 걸맞은 활동을 하고 싶은 만큼 하게 두는 것이야 말로 노예들 스스로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게다가 슈발츠도 나름 자기 일로 바빴다.
한편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스트랄계 탐험을 위해서, 슈발츠는 아스트랄계의 사정을 잘 아는 길잡이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원주민을 매수할 것이다. 하지만 기쓰양키와, 그들과 대적하려는 기쓰저라이 첩자들은 물질적 부로는 너무나 회유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슈발츠는 조금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기스양키나 기스저라이들과 직접 저촉하는 대신 언제나 어디서나 구린 일에는 전혀 거리낌 없이 끼어드는 악마들을 통해 정보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스저라이는 거의 그러지 않지만, 기스양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더러운 일도 거리낌 없이 해치우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무척 당연하지만, 그[더러운 일] 중에는 악마들과 엮이는 분야가 포함된다. 그렇게 기스양키들과 엮였던 악마들의 증언은 상당히 유용한 정보인 것이다. 타나리도 바테주도, 가격만 맞으면 얼마든지 그런 정보를 판다.
다만 악마들과 악귀들 사이에서 쓸데없는 헛소문(?)이 도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슈발츠는 이번만은 와우킨이 아스트랄계 내부의 사정을 정탐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신들 사이에서도 이미 너무 지나칠 정도로 이름이 함께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적 근엄한(달리 말하자면 체면치례에 밝은) 신들과는 달리, 악마들은 정보를 자기 유리한 대로 2차 가공과 재생산(지옥의 동인지 시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을 반복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엉뚱한 소문이 퍼지면 귀찮은 일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소문이 퍼지지 않게 만들려면 처음부터 소문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그리고 그럭저럭 하는 동안, 슈발츠는 코렐란 로다리안의 초대를 받았다. 그의 차원이 있는 아보리아(Avorea)로 통하는 차원문을 열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전령으로 요정을 보낸 점이 그답다면 그다울 것이지만, 네버윈터 아카데미 도서관에서 아스트랄계의 정황에 대한 탐험 기록을 펼쳐 들자마자 튀어나온 손가락만한 요정의 출현에는 슈발츠도 적잖이 놀랐다.
아보리아는 모두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위층은 아르반도르(Arvandor)라 불리며 그지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운(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완벽한) 숲과 들판, 샘과 시냇물의 차원이다. 두 번째 층위는 아쿠알라(Aquallor)라 불리며, 끊없이 펼쳐진 대양의 차원이고, 세 번째 층위는 미싸디르(Mithardir)는 하얀 먼지 사막으로 이뤄진 차원이다.
그중에서도 아르반도르야말로 많은 페이(엘프들의 셀레스티얼판 종족)와 다른 여러 셀레스티얼 엘프 아종, 그리고 아나킥 크리처들의 고향이고 거주지이며, 엘프 신들의 모임인 엘븐 코트(Elven Court), 다른 말로 셀다린(Seldarine)이라 불리는 신격들의 고향이며 집이고, 신전이다.
아르반도르의 녹음이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그중에서도 셀다린의 신들에게 바쳐진 영역들은 각기 고유의 엘프적인 아름다움과 이상의 진수를 담고 있다. 코렐란 로다리안의 [궁전]은 하얀 백색의 대리석과 각양각색의 찬란한 수정들로 이뤄진 첨탑과 낮은 건물들이 돌과 나무처럼 배치된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보였다.
궁전 입구에서 솔라에게 무장을 맡기고 나서, 안내역으로 두 명의 셀레스티얼 엘프가 붙여진 슈발츠는 셀다린의 총애를 받는 종족들조차 아주 드물게만 허락받은 방문을 하게 되었다. 궁전 안에도 셀레스티얼 엘프들 천지였다. 그에게는 미로와 같은 그 아름다운 통로 사이를 안내하는 셀레스티얼들은 이 차원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생김새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노골적으로 살피고, 지나가는 다른 동료들과도 서슴없이 수작질을 교환했다. 과연 신의 사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그 경박스러운 작은 엘프들이 검과 활을 들면, 슈발츠조차 방심하기 어려운 상대로 변하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수십 개의 탑과 궁전 건물 사이로 난 복잡한 통로는 한결같이 투명한 유리강으로 되어 있고, 어떤 곳은 노골적으로 길 옆의 바닥이 뻥 뚫려 있어서 통로가 마치 현수교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로는 궁전 아래 펼쳐진 숲이 보였다. 대리석 아래, 이렇게 거대한 대리석 건물조차 떠받치는 아르반도르의 거목들이 서 있었다. 아무리 장엄한 취향이라고 해도, 코렐란 로다리안도 역시 엘프식의 주거(나무 위에 지어진)에 사는 것이다.
" 다 왔습니다. "
앞장서서 나가던 셀레스티얼 엘프가 춤을 추는 듯한 경쾌한 걸음으로 옆으로 비키고 나자, 슈발츠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 ... "
그때까지 슈발츠에게 있어서, 에버미트의 태양엘프 궁전이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거대한 나무들 위에 대리석과 은은한 황금빛의 유리강을 재료로 삼아 지어진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건물은 그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엘프식의 아름다움의 절정이라 불릴 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코렐란의 궁전 앞 광장에 비하면 개집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엠라루릴 여왕이나 젤로나가 들었다면 빈정상했을 정도의 심한 비유이지만, 그 이상 적절한 비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태양엘프들의 [웅장한] 취향은 엘프 신들의 조악한 모사품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원형의 대리석 광장을 사이에 두고, 계단을 제법 올라가야만 그 불투명한 은색 유리강 문에 닿을 수 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하얀 신전이 보였다. 올려다본 뒤로 유선형의 첨탑들이 금으로 상감된 카라-터 제 백자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그 앞에 남녀 엘프 모습의 신들 여섯이 서 있었다.
유리강과 은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찬란할 수 있군. 하는 생각을 하며, 슈발츠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 셀다린의 이름으로 환영하노라. 어두운 자여. "
같은 신이라지만 바하무트와도, 와우킨과도, 신성한 힘을 갓 얻은 압델과도 격이 달랐다. 단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지만, 코렐란의 말소리는 범종 옆에 서 있는 것 마냥 슈발츠의 머릿속을 온통 울려왔다.
와우킨을 지배하고 있고 시어릭의 한쪽 눈과 손을 잘랐으며, 또한 위세 등등한 대신격 중 한명인 샤르의 육신을 파괴해 개망신을 준 전적이 있기 때문에, 슈발츠는 신들을 얕보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울려오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힘만으로도(그것도 아마도 힘조절을 한것인듯 했다)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으며,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엘프 신들에게 예를 취해 보였다.
" 부르심을 받자와, 대령했사옵니다. "
슈발츠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코렐란은 다시 한 번 더 깊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슈발츠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엘프 신들과 함께 궁전 안에 와 있었다. 상석에 앉은 코렐란과 옹가라스의 좌우로 네 명의 엘프 신들이 서 있고, 슈발츠는 한단 아래 선 모양새였다. 아마도 알현실이리라 하는 짐작을 하면서, 그는 눈치껏 주변을 둘러보았다.
코렐란을 비롯한 엘프 신들에게서 방금 전까지의 압도적으로 신성한 위광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신성한 위광을 끈 와우킨이 다른 노예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듯이, 신적인 위광이 사라졌다고 신들이 만만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 그대가 웬도나이를 물리친 일은 실로 셀다린에 커다란 기쁨을 주었노라. 지난날의 작은 문제를 기꺼이 덮고 그대를 이 셀다린 사이에 불러들일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
[작은 문제]라 함은 젤로나 등의 일일 것이다. 에버미트는 셀다린 신들의 직접적인 [보살핌]속에 있고, 엘프 왕족들은 그들이 혼혈이건 아니건 셀다린의 신들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받는다. 그러니 아무리 슈발츠가 숨기려 해도, 셀다린 신들의 눈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슈발츠는 등골을 달리는 한기를 느꼈다.
" 웬도나이가 셀다린에 준 치욕을 아는가? "/코렐란
" 네, 알고 있습니다. "/슈발츠
[치욕]이란 건 다름 아닌 드로우 여신인 에일리스트레이의 죽음을 말한다. 바스타드 소드를 든 채로 달 아래서 춤추는 검은 피부를 가진 엘프 여신. 그녀는 롤스의 딸이지만, 또한 코렐란의 딸이기도 하다. 그리고 검은 피부의 엘프들 중에서 선과 희망을(그리고 속죄를) 찾아내려 애쓰던 여신이었다. 코렐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일 것이다.
그런 에일리스트레이가 그녀의 초즌(선택받은 자)이던 퀼루와 함께 크레센트 블레이드에 목이 잘려 죽었다. 미스트라가 죽기 얼마 전, 롤스의 침묵이 끝날 무렵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을 저지른 것은 [참회의 숙녀]라 알려진 배신자이지만, 그 칼에 빙의되어 있던 웬도나이의 유혹과 계략이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총애하는 딸을 잃은 코렐란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신이라도 가족간의 사랑은 어슷비슷한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웬도나이에게 엿을 먹였다는 이유만으로 엘프들을 종류별로 수집해 즐기는 불한당 같은 슈발츠를 아르반도르로 불러내고 셀다린의 신들이 단체로 몰려나와 환대를 하겠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슈발츠는 이 환대의 숨겨진 의도도 어느 정도까지는 간파하고 있었다.
웬도나이는 롤스의 챔피언이지만, 신들에 비해서는 한참 그 격이 떨어지는 일개 발러일 뿐이다(발러 중에서는 유난히 강하고 교활하지만). 그런 발러를 상대로 신격들이 직접 나서면 속된 말로 [체면]이 서지도 않고, 코렐란를 내려다보고 있을 [절대적인 그분]의 정책에도 어긋나 경을 치를 수도 있다. 휘하의 천사를 보내는 것도 상대와 장소가 불리하니 그렇게까지 미덥지 못하고, 역시 자칫하면 신의 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상에서 그 일을 대신 해 줄 대리자(일명 영웅. 속된 말로는 청소부 겸 해결사)가 필요한데, 당장 대격변을 거친 후의 엘프 사회는(다른 종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하긴 하지만)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저 웬도나이와 맞서 싸울 만한 여분의 인재와 역량은 부족했다.
그 와중에 슈발츠가 웬도나이에게 한번 결정적인 타격을 먹인 것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코렐란의 아내 되는 여신인 옹가라스의 한 어스팩트(에어드리 펜야)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보살피는 종족인 아바리엘의 위기에도 깊숙이 개입해 그 종족의 위기를 모면케 했다. 그 사건이 코렐란에게 그동안 부정적으로 보고 있던 슈발츠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던 것이고, 그래서 그는 아내를 포함한 다른 엘프 신들과의 상의를 거친 끝에 다름 아닌 아르반도르로 슈발츠를 직접 불러들인 것이다.
별로 공식적인 초대는 아닌 증거로, 셀다린의 신들 대부분은 자리에 없었다. 셀다린의 지도자가 와우킨의 챔피언에게 알바를 시키는 것은 훌륭한 스캔들이기 때문이다(참고로, 바하무트는 와우킨에게 슈발츠를 [빌리는]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이곳이라면 셀다린의 신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영역이라 슈발츠만 입 다물면 그럴 일이 없다.
" 웬도나이가 끼친 셀다린에 대한 수치를 되갚아 준다면... "/코렐란
" 셀다린의 모든 신들은 그대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옹가라스
코렐란의 옆에 서 있던 굉장한 기품과 아름다움을 지닌 엘프 여신, 옹가라스가 코렐란이 한 말을 받아 끝마쳤다. 그녀는 코렐란의 배우자이기도 했는데, 그 목소리는 마치 서로 다른 톤을 가진 세 여인의 목소리가 섞인 채 한 번에 들려오는 듯한(그러나 굉장히 듣기 좋은) 것이었다.
" 아니 그것보다... 먼저 아바리엘들에 베푼 그대의 은혜를 갚는 차원에서, 작은 선물을 하나 드려야겠군요. "
옹가라스는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펴고 그 사이로 한번 숨을 내쉬어 보였다. 그러자 허공에서 빛무리가 모이더니, 한데 모여 슈발츠의 등으로 날아와 붙었다.
" 내 작은 선물입니다. [은의 날개]는 그대가 원한다면 저 하늘의 어디까지든 그대를 데려다 줄 것입니다. "
곧바로 빛나는 날개가 슈발츠의 등에[자라]났다. 슈발츠는 그것이 실제 날개가 아니라 일종의 마법 물품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깃털까지 모두 은으로 만들어진 그 정교한 아티팩트는 슈발츠의 날개가 있던 자리에 자연스럽게 붙어서 마치 원래의 날개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비행이 가능한 크기에서부터 비늘 아래 감출 수 있을 정도의 크기까지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한 굉장한 물건이었다. 그가 날개를 시험하듯 한번 펄럭여 본 후 비늘 아래 숨기자, 다시 코렐란이 말을 계속했다.
" 드래곤 현자께서 그러하셨듯이, 나 역시도 그대의 지금까지의 노고와, 앞으로의 노고에 대한 성의를 보임으로써 셀다린의 신들이 [명예]를 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자 하노라. "
코랠란이 시선을 돌린 곳에는 엘프 모습을 한 솔라가 아보리아에 도착했을 때 [회수]한 슈발츠의 장비들을 들고 있었다. 그중에서 황금으로 된 활대를 가진 활을 집어 든 코렐란은 잠시 감회에 젖는 듯 혼잣말을 했다.
" 실로 아름다운 도구가 아닌가... 이것은 한때 숲의 종족과 산의 종족간의 굳건한 화합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활대에는 모른디사만(Morndisamman; 드워프 만신전)의 축복이, 활시위엔 셀다린의 축복이 깃들었지. 하지만 그 유대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
부우웅...
코렐란이 그것을 한번 쓰다듬자, 활의 시위가 금색으로 빛나며 낮은 울림을 시작했다.
" 다시 한 번 숲의 아이들이 산의 백성들과 손을 잡고 예전의 위대한 영광을 재현하기를 바라마지 않노라. 이제 내가 다시 이것을 직접 축수하노니, 그 주인의 손에서 악을 멸하는 빛이 될지어다. "
코렐란의 목소리는 마치 차원 전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에버라스카의 아크의 활시위는 진동은 잠시 후 멎었지만 그 형태는 금색으로 빛나는 하나의 선으로 남았다.
" 그대가 가는 길 위에 셀다린의 축복이 있을지니. 영원한 녹음과 달의 광명이 그대의 앞길을 밝혀 줄 것이다. "
코렐란은 다시 한 번 인자하게 미소를 지어 보여 주었다.
-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역시 병중에 야설은 무리라고 생각합니...(각혈)
아무튼 뿌려놓은 떡밥들을 회수하느라 5부를 쓰긴 쓰는데 완전 대하소설이 되어버려서 곤란합니다. 처음엔 간결하게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왜이리 분량이 늘어나는지... 이대로 끝내버릴수도 없고 흙흙흙... 그리고 울펜도 쓰고 있지요. 생업에도 매달려 있습지요,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