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화 티렉스 5
<강희의 비밀>
"까아아악!! 까하하하!!"
여자애는 웃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매우 간지럼을 잘 타는 여자였고, 누군가에 의해 간지럼 태워지고 있었다. 그것도, 일체의 저항도 불가능한, 온몸이 무방비 그 자체로 놓인 상황 하에서.
꼼짝 못하게 해놓고 간지럽혀대니, 도망갈수도 없겠다. 피할 길도 없겠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남은 선택권 아닌 선택권은 <신나게 웃기> 라는 스킬밖에 사용할수 없는것이다.
물론 절대 <진심으로>신나서 웃는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웃는 정도만 놓고 보자면, 실내가 떠나가라 웃어대니, 사정모르는 누군가가 지나가다 혹여라도 들으면(물론 절대 새나갈수 없을테지만) "되게 신나는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하고 멋대로 단정지어버린다 해도 대꾸할 말 없는 처지였다. 뭣보다도 지금 그녀는 확실히, 대꾸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가해지는 매서운 자극.
빠각 빠각!
그 예쁜 발바닥에 낀 때가 아름답고 길다랗게 자라나 있는 손톱 사이로 끼는게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그녀, 여왕의 손길질은 매섭다. 그녀의 그 가차없는 행위는 강희로 하여금, 또다시 별수없게 웃음소릴 토해내게 만든다. 아무 어려움 없이..
"까하하!! 까아아하하~~!!!"
또다시 웃게 되는 그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결정되는 피할 길 없는 웃음소리이다. 입에 걸린 제약이 없었다면, "푸하하~" 하고 웃거나 "꺄하하~" 하고 웃는, 좀더 다양하고도 얼굴에 걸맞는 호기 있는 웃음도 터뜨려줄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그녀가 가장 자신있게 낼수 있는, 그리고 낼수밖에 없는 소리는 쌍기역 소리인 "ㄲ"자인 듯했다.
그녀는 좀전부터 정말 연신 꺽꺽대면서 숨넘어가는거 아닐까 싶을정도로 그소리밖에 내댈수 없는 처지이다.
상가집에서 상을 당한 친족들이 꺼이 꺼이 울음소리를 내가며 원성을 상소 내에 가득 퍼뜨린다 해도 지금 그녀보단 꺽소리를 내대지 못할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인위적인 손길로 인해 <짜내어지는>걸로 생성되는 마당이었으니까.
"까학!! 까학!! 하!!"
아주 잠시동안의 틈을 타 강희가 세차례 헉헉대면서(지금은 저소리가 헉헉대는 소리와 동일할수밖에 없었다) 호흡을 고르려는 듯하자, 이쯤이 적기다 싶었는지 여왕이 한번 살풋 웃어주곤 강희의 맨들거리는 발바닥에서 손길을 일단 떼었다. 언제 그것이 다시 저 발바닥들을 피아노 건반 삼아 재차 새로운 음율을 만들어내려 들지는 그녀, 여왕만이 알 일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일단 이때까지(강희가 깨고 난 직후) 이어져왔던 정신없는 융단폭격과 같은 상황은 잠시만이라도 일단락 되었다.
"하아!! 하아! 하..."
그 짧은 시간동안일지언정 최대한 호흡을 대략이나마 골라낸 강희는 그제야 좀 사람다운 숨소리 고르는듯한 호흡을 내쉴수 있었다.
그녀가 그리할수 있도록 여왕이 잠시동안 시간을 준것이 분명했다. 강희가 왠만치 가쁜 호흡을 진정시켰다 싶자, 여왕은 입술을 열었다.
"서 있는 너의 등뒤를 바라보는것도 황홀했지만, 지금의 이 자세는 역시...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계속 보고 또 봐도, 정말이지 질리지가 않더구나. 가히 이건 절경이랄수 있겠어. 후후후.."
여왕이 지금 <절경>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자세는 강희가 乙자와 유사하게 엎드린 상태에서 그녀의 뒷태, 정확히는 풍만하고도 통통해 두개의 찹쌀같고 보름달같은 알궁둥이가 한껏 위로 치켜세워져 쳐들린채 무릎을 꿇고 있는 있는 자세를 뒤에서 앉아 보며, 시선은 정확히 강희의 조개속살이 내면에 존재하고 있을 부위를 빤히 바라보면서 이르는 말이었다.
강희는 지금 속옷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착용하고 있지 못한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원래 입던 속옷이 아닌 듯했다.
본능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뭣보다 위는, 즉 브래지어는 모르겠지만 하체에 입혀진 팬티는 확실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딱 달라 붙어 있었다. 강희는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팬티가 얇디얇은 T자 팬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아닌 이상에야, 자신의 항문과 보지살이 이렇게 팬티에 꼭 낄정도로 밀착되어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1자로 갈리는 계곡길에 그것은 근접율 100퍼센트를 자랑하면서 바짝 다가붙어 있었다.
강희는 지금 자신의 하체쪽 상태를 속으로 간단히 읊었다.
"똥꼬에 먹혔네..."
팬티를 엉덩이가 먹을대로 먹어버린 상태. 남 구경하기 좋은 자세다. 강희는 또 속으로 중얼댔다.
"내뒤에 앉아계신 분 작품이겠지.. 좋다고 웃고 계시겠네. 그나저나 이거...."
그녀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은근한 경악성을 맘속으로 내질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체에 흐르는 그녀의 뛰어나기 그지없는 감각기관이 아직까지도 100퍼센트의 가동률을 내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딱 꼬집어 말할수는 없지만 부분 부분 뭔가가 <차단>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통제가 가해져 있다는걸까?
게다가 살아 있는 부분도 영 밍기적거리는 듯, 제 구실들을 못하고 있는 듯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 이를테면 여왕이 좀전에 괴롭혀던 발바닥에 가해진 간지럼 자극이라던지에 대해선 즉각적인 반응도 오긴 하는데, 여왕이 손대고 있지 않은 지금은...
"뭐야 이거...왠지...자발적으로 움직일 마음은 별로...안 나는걸?..."
지금 해댈수 있는거 거의 속으로 생각할수 있는게 전체 중 9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나머지 1할은 숨쉬기와 움찔거리기) 그나마 머리를 굴려보고 있는 판이었지, 아마 팔다리가 자유로웠다면 그냥 아무데나 누워 자빠져 자려 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기만 하다면야 이런 꼴 자체를 더 이상 당하고 있을리도 없겠지만..
어쨌건 지금 생각은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할수 있는건 뭐지?
여왕은 왠지 잠잠했다. 보이진 않지만, 아마 내 뒤통수와 엉덩이를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을것만 같다. 아무 말도 안걸고, 손도 안 대고 있는거 보면, 내게 생각할 시간을 잠시동안 주고 싶거나, 내가 어떻게 하려 들까 관찰하면서 즐기고 싶은 마음인 거겠지..
뭐 어쨌든 여왕이 가만히 있어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로선 이익이다. 이렇게 철저히 제압당한채 간지럼 당하는건 사양이다. 그런 상황은 그녀가 원할때나 환영이지, 지금은 아니올시다란 말씀이다.
"좋아 그럼...지금은 오감을 좀더 살려봐야 해. 집중하자 집중..정신 집중..."
이런저런 잡생각은 잠시 저편으로 치워두기로 하고, 일단 의식을 최대한 일깨워보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심란한 상황이지만, 해보자..노력을 해보자...노력...을....
오싹!!
"..........."
움찔
제압당해 있기에 벌려져 있을 입. 그녀의 입술 끝이 미미하게 달싹이기 시작한다.
두렵다. 지각을 일깨울수록, 현 상황에 점차 더 깨달아 갈수록 알려져 오는 사실이, 자신의 몸에 전해져 오는 사실 일체가 모두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이...이럴수가...!!"
강희는 속으로 크게 부르짖었다.
"내....몸...내 온 몸이.....전부!!"
남아있는 신경들을 일터로 보내 정보를 입수해 흔들리는 사고력으로 계산 담당을 끝낸 그녀는 경악성을 토하고 말았다.
그녀의 신체... 그곳에선 그 어떠한 <자유>도 찾아볼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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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 <통제> <제압>...... <불능> <불가> <부용>...
억제당함에 있어서의 제 와 불가능하다는 부 자가 들어가는 이 두 어음과 연관지어 생각할수 있는 온갖 말들이 연관되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친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바닥을 알 길 없는 절망을 순간이나마 맛보았을 정도로 지금의 상태는 그녀에게 철저한 무기력감을 가져다주었다.
온갖 것이 제지받고 있었고, 죄다가 속박하고 있었다. 이 난관의 벽은 한없이 멀고 높아 보였다.
그녀의 몸뚱아리는...모두 다 잡혀 있었다.
이마에 어느샌가 느껴진 패드, 그것은 결코 딱딱하진 않지만 징그럽도록 질기게 느껴졌다. 오한이 들 정도로. 한없이 징그럽게 여겨질 정도로 자신의 이마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두 관자놀이께를 중심으로도 바짝 달라붙어 양 옆가에도 몸을 흘려내려놓은채 자리해 있었다. 그렇게 그것은 자신의 얼굴을 중심으로 ┌┐자 모양을 형성했다.
그리고 녀석과 대조되게 느껴지는 섬칫한 기운. 이런 재질이라면 그녀의 감이 잘못 포착하지 않았다면 필시 철이다. 그것도 매우 좋게 느껴져 보이는 소재이다. 자신과 안면 튼지 오래 되었다는 듯 녀석은 자신을 그녀가 사랑해주기를 바라는지 아래턱에 딱 붙어 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놈은 그녀에게 온기를 나누어 받아 자신도 따뜻함이 있다는 듯한 존재감을 피력하려 하는 듯하지만, 그녀에게는 그저 차가운 철덩어리가 자신의 온기를 연신 빼앗으려 드는 거머리 정도로밖에 안 여겨질 따름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이놈은 자신의 얼굴 양옆가를 두르고 있는 띠 모양의 밴드놈과 결탁해서 그놈의 표면을 또한번 감고 올라가 최종적으로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 앉아 있었다. 즉 이놈은 그녀의 두개골을 완전히 원형으로 두르고 있었다.
더구나 녀석에겐 같은 편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넷이나 되는 든든한 괴물들이..
자신의 두개골을 중심으로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철편들은 누운 그녀의 목 좌우에 진영을 차리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었고, 앞에 놈들은 좀더 전방의 고지를 점하고 있을 테지. 그녀의 예쁜 머리통 전체를 점령지로 정해놓고 말이다. 지들 멋대로.
아마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그녀의 머리통은 네 축의 발사대가 지지해주고 있는 동그랑땡 모양의 우주왕복선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의 목적은..."
그것의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왜냐하면 녀석들은 강희의 헤어밴드와 턱밴드(?) 역할을 자처하고 있던 놈들과 결탁하고 있음이 분명했으니까.
강희는 지금, 그 어디로도 고개를 이동시킬수가 없었다. 녀석들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아직까지도 모든 감이 전해져 오진 않지만, 자신이 현재 파악한 것 이상으로 그녀의 사령탑(머리니까)을 제지하고 있는 이놈들에겐, 더더욱 많은 조력자가 붙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많은 녀석들이 합심해서 제압해두기로 한건, 자신의 <고개이동 불능> 정도 선만이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뭔가 아주 얇은, 아주 가는 무언가가, 필시 그녀가 입을 벌려야만 하는 상태를 강제적으로 해놓고 있는 그것 역시 이것들과 연결선상에 있는 듯했다.
이렇게 해놓으면 그녀로선,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는대로 쩌억 벌린채, 포효하는 사자동상(?)처럼 있을수밖에 없는데 그녀가 진짜 동상이 아닌 바에야, 생리적인 현상 중 하나로, 그녀도 자연히 희디 희고 맑디 맑은 침을 뚝뚝 흘려댈 도리밖에 없었다.
어쨌든 고개를 어떻게도 이동시킬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녀가 어제까지 보내왔던 일상과는 수법이 판이하게 차이남을 그녀는 알았다.
이건 여태껏 가해져 왔던 결속의 정도와는 근본적부터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눈이 가려져 있는 자신이 지금 스스로의 결박 상태를 자세 외에는 알아낼 길이 없지만, 피부에 와 닿는 감으로 볼때, 머리통에 해놓은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수많은 뭔가가 다닥 다닥 저마다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다가 왔다.
싸우전드는 기껏해야 크게 놓고 보자면 그녀의 팔목과 발목을 제지하는 정도의 선에서 그쳤을 따름이다. 좀더 집요하게 말하자면, 손가락과 발가락도 묶었다는 점 정도이지만, 지금 자신에게 가해져 있는 구속력의 정도를 볼때 그 침대는 애교라고 봐도 무색할 지경이었다.
강희는 기가 막히다 못해 황당해졌다.
"진짜, 손가락이랑 발가락도 묶어놨던 건 애교라는 생각밖에 안드네...도대체...얼마나 이것저것 붙어있는거야? 동원된 재료들 좀 봐보고 싶다 진짜..화아..."
그건 진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것들이 얼마나 주렁주렁 점철되어 있는지 꼭 좀 봐보고 싶을 정도였다. 결코 반갑지 않을 광경이라 생각됨에도 그런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정도로 지독한 구속력이 몸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숨쉬는거 빼곤 아무것도 못하겠네..또 할수 있는건....보자...후...숨쉬기..."아!아!"거리기 "까아!까아! 거리기...비참하다...또....침 흘리기? 젠장... 또... 눈동자 방향전환. 덤으로 천지사방 암흑 보기 스킬 터득.. 이게 단가? 아. 똥구멍 오므렸다 폈다 하기. 하지만 지금 별로 괄약근 운동 하고 싶은 맘도 안생기고...장운동을 위한 방귀 끼기? 아 참..난 방귀를 못 끼지. 내겐 해당이 없고..."
스스로의 현 상황에 별의별 감이 교차한 강희가 그 심정으로 인해 별의별 상상을 다 할때쯤, 또다시 여왕이 입을 열었다. 사실 그녀가 기다린 시간은 설명은 길었지만 현실적으론 꽤 짧다고 할수 있었으니까. 실제론 3분 정도 기다렸을 뿐이다.
"조용한걸 보니 지금 자기가 처한 상태를 느껴보고 있나 보구나? 호호~~! 그래...뭐 대충 느꼈겠지만, 금일부턴 레슨 과정에 있어 여러 부분을 수정하기로 했어. 이제부터 설명해줄테니 잘 듣거라.
여긴 던전이야. 그리고 이 저택의 중심부가 될 곳이지. 사우전드는 해체되었어. 어찌 보면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것의 신체 일부는 새로이 창조되어 다시 너를 붙드는데 쓰일테니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지금 너와 내가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바깥에선 저택 내부공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단다. 그 모든 건 너를 위한 준비작업이랄수 있지.
좀 더, 아니, 슬슬 제대로 너를 교육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겠더구나. 아무래도 너는 니가 처한 현재의 입장을 좀 더 절실히 느낄 필요가 있어.
넌 지금 몸소 느끼고 있겠지만, 그건 네 힘으로도 푸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정밀하게 고안된 장치 중 하나야. 아쉬워 말거라. 점차 여러 물건들이 차례차례 이곳으로 배달되어 올테니까. 근시일 내에, 빠르면 어쩜 내일 네가 일어나봤을때 너의 자세는 또 바뀌어 있을 수도 있지.
너에 대한 대접을 전폭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거기까지 말한 후, 여왕은 잠시 말을 끊었다. 강희도 숨죽인채 여왕의 말을 듣고 있었다. 듣기 싫어도 어쩔수 없었다. 듣기 싫다 해서 듣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권은 그녀에게 전혀 없었으니까.
여왕의 눈빛이 싸늘하도록 차가워지면서 입가엔 희번뜩한 웃음이 한가득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싸늘하고도 엄중하게 말했다. 여왕의 권위가 넘쳐 보이는, 도미네이션 우먼다운 태도였다.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 서서는 방문가로 가 문을 잠깐 여는 듯했다.
"들어오거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들려오는 또다른 힐 소리들. 실내인데 왜 이런 소리가 들리는지 강희는 여전히 의아했지만 일단 계속 침묵했다. 어차피 그녀가 입을 달싹인다 해서 말을 할순 없었다.
"가연, 선민!!"
그녀들의 이름을 듣고 강희는 들어온 하이힐 소리의 주인들이 누군지 알수 있었다.
"네..넷!!"
쭈뼛거리면서 부름을 화들짝 놀라다시피 한 후 얼떨결에 대답하는 듯한 음성을 내며 두사람은 반응했다.
아마, 그녀들로서도, 지금의 방엔 처음 들어와본 모양이다. 아마 강희의 지금 상태를 보고 놀라 있는 것이리라. 그녀들은 강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똑똑히 보일 테니까. 꽤나 충격적이었음인지 얼떨결에 여왕에게 대답하는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얼이 빠져 있는지 알수 있었다.
"너희들! 또다시 그런 태도를 내 앞에서 이후에 보인다면, 그에 따른 처벌이 있을 줄 알거라. 아무리 너희들이라 해도 용서는 없다. 정신들 똑바로 차려!!"
평소의 여왕이 아니었다. 그녀는 근엄 가득한 표정으로 권위를 가득 드리운채 일갈하다시피 목소리를 날카롭게 하여 내뱉었고, 두 시종은 분연히 몸을 사리며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두 사람은 주저앉다시피 하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죄..죄송합니다. 여왕님. 용서를..."
"됐다. 일어서.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깐. 가연과 선민은 잘 들어라. 그리고 강희, 네가 가장 잘 들어야 할 것이다."
꿀꺽
두 메이드는 강희에게 흘낏 시선을 주며 침을 꼴깍 삼켰지만, 그 와중에도 강희는 미동도 없었다. 어지간한 협박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그녀였다. 여왕은 강희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최강희. 너에 대한 프린세스의 칭호를 일시적으로 박탈한다. 오늘 이 시간 부로, 너는 편히 잠들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근래 해왔던 것과 같이 그저 그런, 맹물에 맹탕 같은 일과는 추후 다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지금 이 저택에서 나 다음 가는 지위를 박탈당했다. 당분간 너를 일개 노예와 동일한 신분으로 놓고 대할 것이야.
그전까지 정해져 있던 기존의 스케쥴 하루 일과는 파기한다. 이후엔 매 하루하루마다 네가 예측할수 없는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게 될거야. 네가 당황하던 말던, 두려움에 떨던 말던, 심지어 울던 말던 난 개의치 않기로 했다. 네가 나의 충실한 딸이자 진정한 프린세스로 거듭나게 되어질 그날까지, 난 지금의 결정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단다.
노예 신분이 된 이상, 너는 내게 공주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지. 지금의 넌 내게 있어 그저 데리고 있는, 저택 안에 갇힌 귀여우면서도 말 안듣는 못된 고양이일 뿐이야. 혹은 주인의 말을 영 못 알아 듣는 멍청한 암캐라던지 말이야.
난 저택에 데려온 이후 너에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었고, 충분히 회유를 했다고 생각하며, 다른 애들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방법을 널 대해 왔음을 넌 잊어선 안될 것이야. 허나 아무래도 내 노력은 괜한 헛수고였던 모양이구나. 그럼 지금이라도, 내가 기울여 왔던 헛된 노력들에 대한 보상을 응당 받아내야만 하겠지?
여태껏 나는 네가 완치 않는 이상, 너의 순결에 함부로 손대는 짓은 하지 않았다. 속옷을 탈의시킨 일도 없었지. 네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확실히, 여왕은 강희가 의식을 차리고 있는 동안엔, 여태껏 단 한번도, 그녀의 브래지어나 팬티를 벗긴다던지, 맨정신일때 몸의 세세한 부분을 씻기거나 애무한다던지 따위의 행위는 일체 한적이 없었다. 시녀들을 시켜서라거나, 자신이 직접 한다거나, 그 어느 쪽으로도 그런 일은 여태 없었다.
물론 강희에게 최음제 따위의 약을 먹여 제정신이 아닐때라거나, 아예 약물마취 되어 강제수면의 상태에 놓여 있다거나 할 때엔, 시종들을 시켜 구석구석 씻긴다던지, 딜도 등을 이용해 탐한 적은 있었지만, 그 사실을 강희가 기억할순 없었다. 그리고 여왕으로서도 그점까지 굳이 말해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고, 또 말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자신이 몰래 행한 여흥거리 중에 하나였을 따름이니까.
어쨌건, 강희가 정신이 말짱할 때에만큼은 여태 그런 류의 문제만큼의 그녀의 자존심을 봐서 여왕이 꽤나 양보해 준 면이 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막말로 사지 육신 붙잡아놓고 있는 마당에, 맘만 먹으면 하루만에 얼마든지 더 다채로운 능욕을 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여왕은 그렇게 하지 않고 강희의 겨드랑이와 발바닥만을 통한 심플한(?) 자극만을 가했는데, 이젠 더이상 그렇게 가볍게 봐주진 않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강희도 그 말을 알아듣고는 옅게 몸을 분연히 떨었다. 그 떨린 몸이 분해서 그런건지 어떤 이유에서 떤건진 모르겠지만...
여왕은 또다시 말을 이었다.
"네게 재갈을 물린 이유는 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지. 변명할 자격조차 없다. 내뱉는 말마다 모두 나를 실망시키는 소리들뿐이니, 그 입은 쓸모없는 입이나 마찬가지. 바른소리를 내뱉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앞으로 너는 하루 중의 대부분을 그렇게 된채 지내야만 할 것이다. 차후 꾸준히 지켜보면서 올바른 말을 맣이 내뱉을수록, 재갈을 무는 시간을 줄여주마. 물론, 그건 너 하기에 달렸다는걸 잘 알겠지?
그리고!! 사람의 말을 지금 할수 없는 넌, 그냥 그저 그런 우둔한 암캐나 마찬가지!! 암캐는 암캐의 신분에 맞는 대접을 해주도록 하마.
너의 발정욕을 시험해보도록 할것이야. 네가 단순히 내숭만 떨고, 속은 음탕하기 그지없는 생각으로 꽉 찬 발정난 암캐인지, 진짜로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부동의 마음을 유지할수 있는 현녀(어질고 현명한 여인) 인지는 이후 두고보면 알 일일테지만, 만약!! 네가 앞으로 네게 가해지는 온갖 일들을 모두 거치고 나서 그때도 지금처럼 확고부동한 신색과 태도를 유지할수 있다면...나 진설영은 두말하지 않고, 너를 그냥 돌려보내주마. 이후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겠다. 설령 길에서 만난다 해도, 눈에 안 보이는 공기 대하듯 할것이다"
"...저런 소리까지 하는걸 보니...정말 막막한걸...."
믿는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여왕이 저토록 호언장담을 할리가 만무하다. 자신의 등급(?)이 떨어졌다는 소리에서부터 여태껏 들려왔던 다른 어떤 소리보다 좀전에 막 들려온 저 말이 자신의 귓전을 유난히도 때리는 듯했다.
"...나를 타락시키겠단 걸까? 흥...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될까요? 여왕님?"
자신이 이빨을 따닥거릴수 있다면, 아마 큰소리로 우렁차게 한번 "뽀드득!" 거리면서 야무진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줄수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강희는 자신의 사나운 양 눈썹을 살풋 꿈틀거렸다. 그녀의 눈썹은 이마에 부착된 패드로 인해 일부가 살짝 보이는 정도였는데, 강희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관찰하길 즐기던 여왕으로서는, 소녀의 저 씰룩거리는 눈썹만을 보고도 그녀가 대충 어떤 맘을 속으로나마 품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할 정도였다.
진설영은 속으로 웃었다.
"호호...자신있다는거니? 하지만....과연 네가 견딜 수 있을까? 강희야, 강희야.. 나의 사랑스럽고도 괘씸한 아이야.. 내게 계속 불복하면, 얼마나 괴로운지 이제부터, 그 온 몸으로 <체득>해 보거라. 그러면...넌 필시...변하게 될 터이니..."
그녀는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며 또다시 말했다.
"또한!! 사람 말도 못하고 낑낑거리는 네겐, 기본적인 인간의 대접조차 사치다! 동일한 대접과 표현은 필요 없어. 가연과 선민은 지금부터 내가 한 말을 특히 주의해 들어라.
앞으로 강희에 대한 일체의 온갖 명칭은 내가 지금 정해준 표현들을 기준으로 선택해서 그 외의 것들로 사용하도록 해라."
"예. 여왕님"
두 소녀는 고개를 깊게 숙인 후에 보다 더 열심히 주인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주인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들의 얼굴은 어두워져 갔다.
"강희의 항문은 똥구멍. 성기는 보지나 개보지라도 불러도 관여치 않으마. 겨드랑이나 발에서 나는 냄새도 이렇게 표현해. 이 발정난 암컷의 몸에서 지금 내가 말한 부위로부터 악취가 새나오기라도 하면 이렇게 말하란 말야. <암내가 심하게 나고 있습니다> 라던지 또는 <꼬랑내가 장난이 아닙니다> 라는 식으로. 구취도 그냥 입냄새라고 해버리고. 그 외에도 지저분해 보이는 게 뭐라도 있으면 다 내게 보고하고 또 그걸 가지고 저 암캐를 놀려대거라. 알아들었겠지?"
말하는것은 여왕이고 듣는 것은 시녀들인데,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그녀들이 오히려 더 낯부끄러워했다.
언급하는 부위도 부위이며, 명칭하라고 하는 방법 자체를 들어보니 뭘 말하더라도 최대한 비인격적인 언행을 일부러 사용해, 인격적 모멸감을 형성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그것 외에는 굳이 저런 단어법을 채택 해야 할 이유는 도무지 찾을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뭣보다, 그녀들이 많이 당황해 몸을 파르르 떨어댔던 이유는, 평소의 여왕이라면 절대 저런 식의 단어라던지 표현을 입에 담을 리가 없음을 그녀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주인은 지극히 우아한 어조, 격식 있는 인사법,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한 기품 있는 언행을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저런 표현을 <굳이> <일부러> 선택해 사용할 사람은 결단코 아니었다.
특히나 강희가 걸린 문제라면, 여왕은 언제나 상냥한 표현을 잊지 않았고, 최대한 품격이 느껴지는 단어로, 어떻게든 강희의 여체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반해 티렉스란 존재를 격상시켜주기 위한 궁리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저런 각오를 한걸 보면,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제 강희가 받게 될 조교 내용은 순탄하거나 만만한 것들이 하나라도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여왕은 이제 정말 가차없이, 사정없이 냉철한, 철의 여인이 되기로 작정한 듯했다. 아니, 작정을 했다.
속으로 강희가 불쌍하기 그지없었지만, 여기서 자신들이 뭐라고 입 한마디라도 잘못 뻥긋 댔다간,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감도 안 잡혔기에, 두 사람은 얌전히 고개를 내리깐채 "예 여왕님" 하고 묵묵히 고개를 까딱 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여왕에게 반항할수 없는 몸 아닌가.
"불쌍한 공주님...아니, 강희 언니..."
두 사람은 안대로 가려지고 강제로 입을 벌리고 있게 된채의 강희의 얼굴을 봤는데, 좀전보단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띌 정도로 발갛게 달아 올라 있는게 한눈에도 확연히 보였다.
강희 역시 여자인 이상, 저런 표현이 자신으로 인해 차후 비롯되게 되면 창피하게 될 것이 미리 염려되서인지 반응이 없을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크으...냄새가 나면 나는거지...꼬랑내는 뭐야? 물론 내 귀차니즘으로 그런 비스무리한게 나는것 같고 좀 심한 편이긴 한것 같지만...확실히 그게...꼬랑내라는 소릴 들을 만한 수준이였나? 휴, 그게 아니겠군.. 게다가...개보지? 아까부터 나보고 암캐 암캐 해대더니 정말 개로 치부해버리시려는건가? 똥구멍은 또 뭐야..하긴..똥꼬보단 낫네..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인데....저러다 애들 시켜 씻기지 말라는 소리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하면 정말 <발냄새라 할만한 것>을 넘어서서...진짜 <꼬랑내>라는게 나버릴 거 아냐?"
듣기만 해도 닭살이 돋을 정도로 쪽팔리는 말이다. 남자한테 들으면 수치스러울 말들이겠지만, 같은 여자가 저리 말하고, 또 앞으로 그렇게 불릴 생각을 하니, 느낌이 또 색달랐다. 확실한건, 기분이 더럽다는건 매한가지라는거였다.
그나저나 한국 속담 중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 앞으로 목욕은 함부로 시키지마. 내 허락 없이는 씻기는 것을 금한다. 밥먹고 나서 양치질은 허락하마. 단, 겨드랑이나 발바닥 같은 곳은 아무리 땀이 많이 차도 씻겨주지 말도록. 똥구멍도 닦지 말고!"
"예. 여왕님"
"입냄새는 나면 안되고....암내나 꼬랑내, 똥내는 나도 상관없다는건가? 참나...이건 뭔 경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희는 또 별스런 것을 하나 추가로 생각했다.
"...뭐..겨땀(겨드랑이 땀)이나 발은 어쩔수 없다 쳐도... 그나마 그건 안 나지만...이걸 근데 웃어야 해 말아야 해?"
그녀가 아리송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쯤 여왕은 또 말했다.
"아무튼 최대한 인간 이하로 대접 받을 각오를 하거라. 너의 조개속살도 이제부턴 무사하진 못할것이야. 어디가 어떻게 민감한지 철저히 조사하고 파헤쳐주지. 확실히 말하지만, 너는 이후부터 눈물을 쏙 뽑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아예 발바닥이 성감대가 되버릴 지경으로 만들어주마. 흥!! 또한, 겨드랑이에 누군가의 손이 닿기만 해도 절정을 하게 해줄테고. 아니면 번개같이 오줌발을 갈기게 해준다던가 말이야.."
"..........."
무시무시한 소리들이 쉴새없이 여왕의 입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황상 성고문을 받을 각오까지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강희는 여전히 할 말을 못 찾고 있었고, 말할수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여왕은 또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이 6시간동안 당장 가능한 준비들은 박사님께서 상당수 갖추어주셨다. 그리고 사실, 지금 너를 결속해놓고 있는 도구들은 네가 온전한 신체상태였다면, 그것만으론 제대로 된 구속을 가하기가 힘든 것들이지. 하지만, 그래봤자 넌 움직일수 없어. 점차 너를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 많은 방법이 검토되고 있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너의 구속 문제도 술술 풀려가는 중이니까. 강희야. 넌 지금 국부 마취가 되어 신체 부분 부분마다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곳들이 모두 힘을 쓸수 없는 상태야.
너의 감각을 임의로 차단시켜 놓은거지. 예를 들어, 너의 양 무릎도 지금은 약효빨이 잘 들고 있는 중이고. 어깨 관절 역시 마찬가지야. 중요한 요소들은 모조리 주사가 놓아져 있지. 구속물이 좀 허접하더라도 그를 보완할수 있는 약물처치만 되어 있으면 널 붙잡아두는 건 생각보다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는 걸 우리들은 알게 되었지."
맨 처음에 강희를 붙잡을 때는, 워낙에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그녀를 보고 지레 겁부터 나서, 무조건적으로 <전신마취> 를 시켜야만 한다고 설영은 생각했었다. 당연했다. 그땐 사우전드 외에는 사실상 마취제니 수면제니 하는것 외에 의지할게 아무것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엔 소지하고 있던 아라미드 섬유도 거의 다 불량이 되버린 마당이었으니까. 강희가 깨어난 후에 탈출하겠다고 날뛸것이란 생각에 잔뜩 겁먹은 진설영이 닥터에게 초기에는 그런 쪽의 전신 마취작업만을 부탁했지만, 강희가 이 저택에 잡혀 온지도 제법 시일이 흐른 지금에 와선, 호들갑 떠는 진설영때문에 처음에 덩달아 잔뜩 긴장의 바람에 휩싸였던 닥터 솔도, 점차 냉철한 이성으로 머리를 굴려, <국부마취>를 통한 작업으로 강희를 구워삶는다는 대안을 마련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된 거였군...이제야 이해가 가네.."
강희는 고개를 아주 미미하게 끄덕였다. 크게 끄덕일 수는 없는 처지였으니까. 사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아직 완전히 신체 모두가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걸 영 이상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어디는 문제가 있고, 어디는 아닌, 삐걱거리는 부실 공사 상태의 건물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좀 골이 띵한 머리와 메스꺼운 속사정의 이유는, 국부 마취가 몸에 미치는 미량의 부작용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지금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로 양 팔은 대각선으로 놓아져 아마도 이 방 안의 각 모서리 방향으로 짐작되는 쪽으로 팔목이 뭔가에 팽팽히 잡아 당겨져 있었는데, 그녀의 손목을 붙들고 있는 무언가가 질기다는 감각은 어렴풋이 와닿긴 했지만, 완전한 상태였다면 그녀가 못 끊어낼 정도는 아니라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괜히 신나 있는건지 좀 고양되어 있는 기분 상태인건지, 정신이 말짱한 듯하면서도 또 그렇지가 않든 밍숭맹숭한 상태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여왕이 말해주는것도 내용 중 듣다 보면 <어머 깜짝이야~> 라거나 <새됐네..> 라는 감정의 편린들이 일부 작용하면서 그와 연상된 작용으로 잡생각까지 플러스 되어 이것저것 떠올려 보고 있는 중이지, 아무래도 현실감이 팍 와닿지가 않았다. 지금의 그녀는 흡사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한 적잖은 왔다리 갔다리 심정에서 일시적인 반응만 잠깐 잠깐 내보일 뿐이었다. 물론 아예 넋이 나간것도 아니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썩 좋은 상태는 못되었다.
하지만, 이런 약물처치를 겸한 구속법은 여왕에게 있어서 매우 유용했고, 실제로도 절대적이다 싶을정도로 잘 작용하고 있었다.
가령, 강희는 지금 엎드린 차림으로 발바닥을 여왕에게 무방비로 드러내고 있는데, 여길 간지럽혀주면 그 간지러운 기분을 강희가 뇌로 느끼긴 해도, 적절한 대응을 통 할수가 없었다. 다리힘에 절대적이다 싶을정도로 영향을 가할수 있는 부위 중 한곳인 무릎의 신경을 잠재시켜놓았으니 그게 되나.
발바닥을 간지럽혀봐야 반응할수 있는건 발바닥과 그 외 일등안 복사뼈 근처나, 발가락 끝까지 정도 뿐이다. 무릎에 힘이 실리지 않으니, 밍숭맹숭한 저항을 내보일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묶여 있으니, 저항하는 힘은 거의 한없이 0에 가까운 수치로 나타났다 금새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강희는 발가락이 묶여 있어서 발바닥이 간지럼 당해도 못 오므리는 거라고 여겼지만 그건 그녀의 두부에서 일으킨 판단 미스일 뿐, 사실은 힘 자체가 실리지 않아, 꼼지락 거린것도 아니고 그냥 미미하게 떤 정도에 그친 것일 뿐이었다. 그녀의 발가락이 묶여 있지 않았다 해도, 간지럼 당하고 나서 보이는 반응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머리와 꼬리만 멀쩡하고 몸통의 감각이 죽어 있는 물고기가 제대로 된 유영을 펼칠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아마 자신을 그렇게 약물 처리 해놓은 게 누굴지를 짐작하곤 강희가 여왕의 말을 듣기 시작한 뒤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다타? (닥터?)"
입을 제대로 못 놀린다 해도 그렇게 발음을 해보자, 들은 상대는 강희의 질문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후후~ 그래. 맞았어. 니가 잠든 동안 손좀 대셨지. 그리고 앞으로도 손댈 일이 많아질 거야. 너..검사라던지 실험이라던지 등의 이유로, 연구 받을 사항이 많아질것 같거든. 좀전에도 말했지만, 철저히 파헤쳐주도록 하지. 체계적인 자극에 관해서도 과연 네게 내성이 있을지가 기대되는구나. 깔깔깔~"
어찌나 기대되는지, 평소와 달리 여왕은 입도 안 가리고 깔깔거리며 크게 웃어제꼈다. 그리곤 또다시 말했다.
"약물처치에 의존하는 면이 아직까진 많지만, 점차 줄여나가도록 할 생각이지. 물론 써먹어보고 싶은것들은 아직 여전히 많이 남아 있지만... 후훗. 어쨌든 난 <제대로>힘 쓸수 있는 상황에서 조차도 너를 붙잡아놓을수 있는걸 이것저것 많이 떠올려보며 준비하고 있는 중이거든. 그 중에선 시간을 꽤 투자해야만 준비 가능한 것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꽤 근시일이라도 충분히 너를 잡아놓기에 아주 좋은걸 가지고 올수 있다는걸 깨달았단다."
거기까지 말한 후에 여왕은 약간 허리를 굽혀 강희의 머리칼을 와락 매만진채 고개를 점차 들이댔다.
강희는 여왕이 자신의 귓가에 소근거리는 말투를 흘리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
여왕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넌 앞으로.. 니가 원하는 시간에 할수 있는게 그 어떠한 것도 없음을 알게 될거야.....니가 잠들고 싶을 때 잠들수 있는게 아냐. 니가 먹고 싶을때 먹을 수 있는게 아니고...또한 니가 싸고 싶을때 쌀수 있는것도 아니란걸 깨닫게 해줄거야. 넌 지금부터~ 내가 허락했을 때만 <먹고>, <자고>, <쌀 수> 있단다. 알겠니? 이 못된 강아지야?"
".........."
여왕이 뭐라 말하던, 아무래도 여자애는 벙어리가 되기로 작정한 듯했다.(실제로도 벙어리와 마찬가지의 상태였다).
여왕은 강희의 머리칼을 꽈악 움켜쥔 채 독설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똑바로 알아들었어? 똥싸고 오줌싸는 문제도 이젠 내 허락 없인 맘대로 못한다 이거야!!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넌 이제 그런 용변 처리 문제까지 내게 허락을 구해야 해!! 내가 허락해주기 전까지 절.대.로!! 못 싸!! 알겠어?! 싸기만 했단 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산지로 보내줄테니까!! 알아들어!!"
원산지로 보내준단 말은 도로 뱃속에 넣어준단 소리였다.
물론 여왕이 아~무리 마음을 독하고 먹고 강희를 철저히 조교하기로 결심했어도, 차마 강희가 덩그라니 싼 똥을(그게 굵을지 얇을지, 짧을지 길지는 싼걸 봐봐야 알 일이지만..) 도로, 예쁘게 벌어져 있는 저 새하얀 치아와 목구멍 속을 이용해 다시 쏙 밀어넣어주는 짓거리는 할수 없었다.
하지만, 위로는 못 넣어줘도, 아래로는 넣어줄 의향정도는, 아무래도 충분히 각오한 듯싶었다. 물론 뒤로 넣어준다 함은, 강희의 항문을 이용해 도로 뱃속에 담아준단 소리이다.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확장기와 애널 확장용 벌룬 등을 이용해서라도 강희의 똥구멍을 찢어져라 벌여놓은 뒤 그리로 다시 예쁜(?) 똥을 쑤셔박아 처넣을 생각이었다.
진설영은 진짜 이번엔 독하게 결심하고 있었다. 성고문까지 마다 않기로 한 이상에야 이젠 정말 어지간한거 빼곤 다 서슴없이 할 자신이 있었다. 할 의지도 충분했다.
아무튼 진설영이 그렇게 열변을 토하면서(이것이 열변을 토하면서 이야기해주어야 하는 무제인지는 심히 의심스럽지만) 세차게 부르짖었을때..
여태껏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던 강희에게서 뜻밖에도 반응이 있었다.
"...하하...하하하...!!"
....웃어?
"..웃었..어?"
설영은 꽉 움켜쥐고 있던 강희의 흑단같은 머릿결에 저도 모르게 슬쩍 힘을 풀었다.
그녀도, 시녀들도, 난데없는 강희의 웃음에 잠시동안 넋을 놓고 있을 도리밖에 없었다. 이 왠 갑자기 흘리는 웃음이란 말인가? 그녀가 웃음이 나올 이유가 지금 무어 하나라도 있는 상황인가? 지금 상황이?
"하하!! 하하하~!!"
기뻐서 웃는건지, 뭔지, 도무지 짐작할길 없는..의문부호가 가득 떠오를수밖에 없는 웃음은 잠시동안 더 계속 되고 있었다. 설영은 약간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왜...웃는..거지?"
그 말을 듣고서, 강희는 웃음을 거짓말처럼 뚝 그치더니, 벌려져 있는 입을 놀렸다. 어렵사리 꺼떡여지는 붉은 혀. 그 새빨간 혀놀림으로 인해, 방 바닥엔 좀전보다는 더 많은, 맑은 침이 흘러내렸다.
"해해해허"
"..? "
설영은 강희의 말을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재갈이 물려놓은 상태에서, 온전한 대답을 바라는건 무리였다. 설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일시적이지만, 재갈을 풀어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대답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휘릭
가느다란 뭔가가 몇가닥 정도 풀리는 것을 느끼며, 강희는 자신의 입가를 여태 멋대로 붙잡아놓고 있던 무언가가 뭔지, 정체에 대한 확신을 내릴수 있었다.
"..아라미드 섬유였군..어쩐지 가늘다 했어..."
저 가느다란 섬유가 그녀의 치아와 치아 사이의 틈을 교묘히 휘젓고 들어와 가닥 가닥 몸체를 돌린채 자신의 입을 최대한 벌려놨던 것이다.
확실히 저것이라면, 일정 수량의 가닥을 동원할시, 그녀의 잇몸을 무리 없이 통제하는게 가능할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그딴 짓거리를 해놨다가는 이빨이 몽창 나가 볼썽사나운 모습이 되버린다던지, 치아와 치아 사이로 파고든 실이 잇몸을 내리누르거나 깊게 박혀 구강 내에 크나큰 상처를 내버리고 말테지만,
여왕은 여태껏 지켜본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강희의 신체를 믿었다. 결정적으로 강희의 온몸이 신비 그 자체라는걸 알수 있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머리카락"이었다.
진설영은 일전에, 강희가 자는 틈을 타 머리카락을 살짝 잘라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가위질에는 분명히 잘려나가긴 했지만 놀랄 만큼의 탄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욕탕에서 강희를 붙잡았을 당시, 아라미드 섬유조차도 강희의 손발가락을 붙잡아는 둘수 있을지언정 조금의 위해도 끼치지 못하는 걸 보고, 혹시 다른 것에도 뭐 특별할 정도로 신기하거나 주목할 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 취해본 일종의 호기심이었는데 놀랍게도, 강희의 머리카락 역시도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좌우로 아무리 당겨 보아도, 끊어지지 않았다. 힘껏 각 방향으로 당겨봐도 일체 끊어질 생각을 안 하자, 그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 이상 힘을 가하면 필시 손가락이 베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영은 몇가지 실험을 해본 뒤 강희의 머리카락이 가위질이나 칼질에는 여지없이 잘리고, 또 라이터로 지져보면 역시나 끊어져버리는, 언뜻 보기엔 평범한 머리카락과 같이 보이지만, 탄력성에 있어서만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강희의 몸에는 아직도 신기한 여러한 신체적 특징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더불어 정말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강희의 몸 자체가 상처 입는 일이 없고, 인위적으로 그녀의 몸에 상해를 가하려 해도 그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된 후론, 자신이 <결박>에 한해서 타인에겐 행할 수 없는 위험한 행동도, 강희에게 있어서만큼은 아무 문제없이 적용시킬수 있다는 장점을 십분 발휘해, 설영은 강희의 입에 물릴 재갈로 시험 삼아 아라미드 섬유를 한번 사용해봤던 것이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강희가 아직 잠에서 못 깨어나고 있던 때에, 구강 속을 세심히 살펴봤지만, 섬유끈에 의해 그녀의 입 안이 상처날 일은 아예 없어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덤으로 아라미드 섬유는 주목적인 <재갈>역할을 훌륭하게 잘 해줬다는건 강희가 깨어나고 나서 톡톡히 보여줬다.
아무튼 강희는 다시 깨어나고 난 후엔 오랜만에 입을 놀리게 되자 잠시 입을 딱! 딱! 거려보면서 위 아래로 올렸다 닫았다를 해봤다.
역시나 그녀의 몸답게 턱관절이든 뭐든 아무 문제도 없었다. 강희가 그러고 있는 동안 설영은 강희의 아래턱을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이자 턱을 쉬이 이동하기가 힘들게 만드는 턱 받침대를 아래부분만 풀어주었다. 턱 받침대라 해도 윗부분은 강희의 정수리까지 띠처럼 둘러져 있어 연결된 형태이기에 제약은 절반만 풀린 셈이었다.
"하아...앞은 안 보이지만...현재는 말할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네요 이거.."
한숨부터 한숨 쉬고 난 후에 강희는 그리 말했다. 누가 보면 직면해 있는 상황에 비해 너무 낙관적인 태도 아니냐 하고 물을지도 모를 문제지만, 강희가 기운빠진 한숨을 흘린 것만으로 얼마나 지금 기운이 빠져 있는지 그녀를 계속 수발들던 가연과 선민은 금새 알수 있었다.
여왕은 다시 말했다.
"입을 자유롭게 해줬으니 이젠 제대로 떠들어보지 그러니? 물론 일시적인 자유지만 말이야. 좀전에..뭐라고 했지? 그리고..왜 웃은것이지?"
강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기니까..웃음이 나오니까 웃을 수밖에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거에요."
"말꼬리 돌리지 말고 얼른 말하지 못해?! 어서 말해!! 다시 재갈을 물리기 전에!!"
여왕은 위협했지만 강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번 흥! 하고 새침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어차피 내가 뭐라 말하든 대답 듣고 나서 다시 물릴 생각이시잖아요? 대답 해도 물릴거고, 안 해줘도 물릴거라는건 바보 천치 아닌 다음에야 뻔한거 아닐까요?"
"이...익..!"
여왕은 이를 갈았지만 강희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기에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까 여왕이 공언했던 대로 강희는 이제 공주 자격 일시적인 박탈, 그리고 노예니 강아지니 해대는 소리를 듣는 판에 늦던 빠르던, 재갈은 필시 다시 채워질 거라는건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강희는 결과야 어차피 정해져 있던, 입은 일단 잠시 뚫렸겠다. 대답을 해줘야겠다 싶었다.
"아까의 대답이 듣고 싶으시다는거죠?"
"...그래"
여왕은 입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해보세요. 라고 말한 거였어요"
강희의 툭 터진 재빠른 대답에 여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해보세요? 그거 말하는데 왜 그렇게 웃었던 거지? 넌 지금 이 상황이 웃기니? 넌 이제부터 끔찍한 시간들을 연이어 겪게 될텐데도?"
강희는 또다시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니죠. 앞으로 저를 얼마나 모진 고초를 겪게 하실 생각인지는 당해보고 나서야 알겠지만...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지극히 잘못된 부분이 있어 그것때문에 웃음이 나왔을 따름이에요"
"..지극히...잘못된..부분?"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단 건가? 들으면 들을수록 아리송한 대답뿐이었다. 강희는 점점 의아스럽다는 듯한 반응의 여왕에게 다시 말해줬다.
"아까 그러셨잖아요? 제가 마음대로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게 될거고, 또, 먹고, 자고, 싸는 문제도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할거다! 라구요"
"..그랬지. 근데 그게 왜?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단 거지?"
"아아. 먹고 자는 건 몰라도 싸는 문제만큼은 굳이 허락을 안받아도 상관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뭐어?"
여왕의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그니깐...지금 강희의 말은 무슨 뜻인가?
"니 말은...니가 싸고 싶을때 싸고...싸고 싶지 않을때...안 쌀거란 소리야?"
그놈의 싸니 안 싸니, 향기로운 문제도, 청결한 문제도 아닌것을 놓고 두 미인은 연신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듣는 가연과 선민의 얼굴이 완전 홍씨가 되어버린걸 눈 가려진 강희는 물론이고 강희의 말에만 집중하고 있는 설영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강희는 마침내 여왕이 가장 황당해 할만한 대답을 해줬다. 그리고 그 황당함은 그녀를 제외한 실 내의 다른 여인 세명의 얼굴을 제대로 멍때리게 만드는데 충분할 만큼의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다.
"전 똥 안 싸요!! 똥 싸고 살아본지 오래 됐어요. 이제 대답이 됐죠?!"
"............"
"............"
"............"
여왕과 가연, 선민은 너나 누구 할 것 없이 셋 다 멍~청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뭐...가..뭐라..고?"
고개를 한번 도리질 친 다음에 여왕은 재차 물었다. 자신이 아무래도 좀전 기가 허해서 소녀의 귀여운 헛소리를 들었나보다. 그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또 대답해드려요? 말했잖아요. 전 똥 안싼다니까요? 전 똥이 일.체 안. 나.오.는 체.질. 이라서요. 아! 오줌도 안 싼답니다. 깜박하고 좀전엔 말씀 안드렸네"
"............."
이번도 환청이라 치부해야 하는가? 자신은 귀머거리가 아니다. 두번이나 잘못 들을리가 없지 않은가?
설영은 떠듬거리면서 재차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그니깐 니 말은 지금....넌...네겐 가장...인간적인 생리적인 욕구 중..하나가 없다는..거니? 배설욕이라던지...대변 혹은...소변 문제가...없다고 말하는거니 지금?"
강희는 뭘 그렇게 떠듬거리면서 묻느냐는 듯이 다시 매몰차게 대답해줬다. 대답은 질문과 달리 가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 몇번을 말씀드려야 돼요?번거롭게... 전 똥 안 싼다니까요? 저 똥 안나와요. 오줌도 안나오고. 똥오줌? 그런거 없어요 전. 이리 생겨먹은 몸뚱아리거든요!! 참고로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안 싸는게 아니라, 못 싸는 거긴 하지만요. 아시겠어요?"
"마...말도 안돼..."
여왕은 어이가 뺨을 때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갑자기 혼자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호..호호~ 마..말도 안돼. 그게 말이 되니? 너 너무 농담이..아니, 뻥이 심한 것 아냐? 세상에 볼일 안 보고 사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 생물인 이상 들어간게 있으면 나오는게 있는게 당연한거지..어..어디서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을..."
강희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아 제길...창피해 죽겠네. 도대체 얼마나 더 거론해야 하는 문제에요 이거? 못 믿으시겠으면 멋대로 입혀놓으신 T팬티 벗기고 확인해보시던가요!! 제 똥고에서, 아니지. 똥구멍이라 부르신댔죠? 뭐 좋아요. 그럼 제 똥구멍에 코 박고 킁킁거려 보세요. 약간이라도 똥냄샌지 뭔지가 나나. 지금 제 피부상태를 느껴보니, 마침 목욕도 안시키신 모양인데 확인하기 좋겠네요. 아무리 깨끗히 씻어도 보통 사람은 똥구멍에서 똥냄새 나게 돼있죠. 걸으면서 생기는 마찰열로 발생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게선 그런것을 찾으실 생각은 않는게 좋을거에요. 존.재.하.지 않.으.니.까! 요"
마치 그 부분에서만큼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듯 강희는 자신있게 말했다. 어찌보면 상당히 당당해질만한 부분이긴 했다. 똥냄새니 항문 냄새니 하는건 여체가 신체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 중 가장 심한 악취 중의 악취이자 불결한 것이라 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아예 없다니,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놀리려야 놀릴수가 없지 않겠는가? 진설영으로선 이쯤 되고 보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마침내 여왕의 목소리가 뾰족하게 솟아나기 시작했다.
"거..거짓말 맛!! 이 깜찍한 것이!! 어디서 감히 앞뒤가 안맞는 헛소리를!! 그런다고 내가 믿을 줄 알아?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알아들어?!"
벽력같은 여왕의 노발대발에도 강희는 새침함을 넘어서 태연한 표정이었다.(속으론 스스로 내뱉는 엄청 낯뜨거운 단어의 반복에 대해 충분히 창피해 하고있는 상황이었지만 겉으론 티나지 않기 위해 무지 노력하는 판이었지만..)
"그니깐 제 똥구멍 검사 해보시래두요? 뭣하면 좌우로 벌린 뒤에 손가락 넣어보셔도 돼요. 아! 아프진 않게 해주세요. 아셨죠?"
"..이..이것이..."
여왕이 몸을 부르르 떨려는 찰나, 화나 있는 그녀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다가 기회를 봐 가연이가 말했다.
"저..여왕님.."
"뭐야?"
잔뜩 언짢은 감에 가득차 있는 여왕에게 말 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가연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에 선민과 눈을 잠시 일별하곤 쭈뼛거리면서 말했다.
"저도 잘 믿기진 않는데요...어쩌면...맞을수도....있습니다...."
여왕은 쭈뼛거리면서도 뭔가 말해보려는 가연의 행동에 잠시 분을 가라앉히곤 한마디 툭 했다.
"공주"
"..네?"
"생각해보니 내게 자격박탈을 당하긴 했지만, 나야 내키는데로 아무렇게나 불러도 상관이 없는데, 너희보고 강희 언니라고 불려지는건 왠지 사양이구나. 그렇다고 공주님이라고 그냥 그전처럼 부르게 하긴 그렇고. 존칭이 담긴 "님"자를 떼버리고 강희를 부를때 공주라고 부르거라 앞으로는. 선민이 너도. 너희 입장에선 강희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명칭을 아까 안 정해줬더구나. 생각해보니까"
"네..네..알겠습니다...그럼...말씀드리겠습니다. ...선민아?"
가연이가 선민에게 눈짓을 주었고 선민이가 고개를 한번 크게 끄덕인 후에 그녀 역시 조심스레 여왕님을 바라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공주께선...아..아니...공주는.... 본 저택에 온 이후...볼 일을 본 적이...없습니다.."
"...그렇다면?..."
여왕의 동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선민과 가연이 돌아가면서 한차례씩 말했다.
"..똥을..싼 적이 없습니다"
"...오줌도 마찬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