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네 멋대로 해라!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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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때를 대비해 온실처럼 유리로 막혀있는 이 통로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족히 100여명이 2, 3명씩 길게 줄을 서있었다.
삼삼오오 같은 반 친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기다리고 있는 그들 옆으로는 교사들이 가는 빈공간이 있었다.
그 때, 질이 나빠보이는 남학생 대 여섯명이 시시덕거리며 줄을 무시하고 유유자적하게 걸어나갔다.
그런 그들이 고깝게 보였는지 줄을 서고 같은 반으로 보이는 남학생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덩치가 있는 남학생이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외쳤다.
"야! 니들 뭐하냐?"
그 말에 그들은 순간 멍때리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를 쳐다본다. 그리고 그 중 인상이 험상굳게 생긴 남학생이 나서며 말했다.
"뭐? 씨발, 지금 우리한테 그런거냐?"
"하, 귓구멍이 막혔나. 지금 줄서있는거 안보이냐? 늦게 온 주제에 어디서 꼽사리야."
"놀구있네. 우리 반이 저 앞에 기다리고 있거든?"
"까고있네. 그게 니네 반이 선거지, 니들이 줄서있었냐? 미친놈, 그럼 니네 반 놈이 뒈으며 니도 따라 뒈질꺼지? 맞지?"
"아, 씨발. 이 새끼가 아까부터 오냐오냐 하니까. 씹새야, 말 곱게써라! 응?"
"좆이나 까고 말하지? 병신들"
"이 개새끼가!"
하지만 곧 그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저것들은?"
뒤에서 험악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그 남학생을 노려보던 그들은 수십명의, 특히 여학생들의 거침없는 비난과 야유에 난처한 표정으로 나서 친구를 말렸다.
난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동료가 말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도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그냥 물러서는게 창피했는지 위협적인 한 마디를 남겼다.
"아나, 씨발. 너 얼굴 기억했어. 오늘 죽을 준비하고 기다려라."
그렇게 질서를 어지럽히던 무리가 사라지고 평화를 되찾은 통로.
학생들은 사라진 그들을 비웃으며 뒷담화를 시작했다. 일진이든 세계 챔피언이든 다구리에는 장사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소위 말하는 일진그룹이 쫓겨났음에도 새로운 인영이 입구에서 나타나 통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 벌어졌던 수십명의 학생들의 비난과 욕설 세례를 받은 이들을 보았음에도 그는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게 줄서있는 그들을 보며 천천히.
그 남자는 이 학교의 교사도, 학생도 아니었다. 편한 사복을 입고있는 남자, 아니 성인이라고 보기에는 얼굴이 아직 어린티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점은 방금 전까지 누군가 나타나기만 해도 예민하게 알아채고 따가운 눈총을 보내던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학교에 침입한 자신들보다 어려보이는 소년이 빈 통로로 걸어가는데도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이 단 한사람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어제 보았던 TV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나,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그들을 비웃으며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1.
학교에 다니는 수백명의 학생들의 등교길의 풍경이다. 그런데 같은 교복을 입은 남녀 사이에 조금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그는 등교하는 학생들 틈바구니에 융합되지 못하고 뭔가 위축되면서 신기한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걸아가는 방향에 맞춰 나아가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있지 않아 학교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가는줄 알았던 그는 학생들과 함께 교문 앞까지 왔다.
각 반에서 터져나오는 소음과 말소리로 시끄럽던 복도는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담당 교사가 안으로 들어가자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그런 복도에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인 관계로 이 학교의 교복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아니 더이상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의무도, 지켜야할 제약도 없다.
이런 자유를 얻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바로 어제, 시간으로 따지면 이제 막 24시간쯤 지났을까?
내 짧은 인생 중에서 가장 길고 버라이어티한 하루를 보냈다.
그게 무슨말인가 하면, 나는 이제 뭐든지 내 마음이 내키는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하면.
아직 나도 전부 아는건 아니지만 어제의 경험과 정보를 토대로 말하자면..
누구도 나를 보지 못한다. 그래 투명인간, 투명인간이라고 보면 되는데. 거기에 투명인간처럼 투명해지기만 하는게 아니라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대놓고 앞에있는 사람을 만져도 그 사람은 내가 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길을 가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밀어서 넘어뜨려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위험한 전쟁지역이나 차도 한복판에 서있지 않는다면 죽을 위험도 없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이 세계의 인간들은 나를 인지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이 세계에서 하지 못할게 없는 신(神)이나 다름없는 유일무히한 존재일 것이다. 아! 딱 하나,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만 빼고.
..그런데 그런 무소불위한 능력이 있으면서 왜 이러고 있냐하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적응이 되지 않은 탓일 것이다.
지금 여기는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아닌, 남녀공학 고등학교라는 사실이 내게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두근거리고 떨렸다.
힘을 얻고 나서 나름대로 버라이어티하고 놀라운 일들을 겪었다고 하지만 어떤 것이든 첫경험은 떨리고 무서운 법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에 울려퍼지는 선생들의 목소리와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느낌은 아주 친숙했다.
어제만 해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시 상황에 맞춰 행동했다. 어떤 상황에서 충동에 몸을 맡겨 행동하고 즐겼지만 문제는 밤에 일어났다.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몸을 움직였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하나 대화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 자연히 상념(想念)이 많아졌다.
어제 일들을 기억하며 살금 살금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살금 살금 도둑걸음을 옮기던 내 발걸음은 조금씩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미친듯이 두근대던 심장이 가라앉고 부들부들 떨리던 팔다리가 진정되기 시작하자, 용기를 내어 나는 살짝 머리를 내밀어 교실 안의 정경을 창문을 통해 살펴보았다.
예상과는 다른 교실의 모습에 교실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역시 치마를 입은 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그 층의 다른 반들을 모두 보았지만.. 남자지옥.
알게된 충격적인 진실에 나는 절망했다.
"..결국 여기서도 남자들에게 둘러쌓인채 학창시절을 보내야 되는거냐!? 그런거냐!? 오~ 쒯!"
단숨에 올라와 위층의 복도를 보면 2학년 6반부터 10반까지가 보인다. 그리고 아래층과는 다르게 반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굵지 않았다.
살짝 긴장한 얼굴로 살금, 살금 걸어가 6반의 창문을 보면 교실 안의 정경이 보인다.
교실 안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긴장으로 굳어있던 얼굴이 눈녹듯이 스르르 풀렸다.
창문으로 단절되 있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꽃내음이 코끝을 간질거리는거 같다.
이렇게 여자들이 앉아있는 교실을 본건 TV에서 본걸 제외하면 난생 처음이다.
특별한 것 하나 없는 교실인데,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성별이 뒤바뀐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가 없었다.
감격스러운 눈으로 교실을 구경하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이것과 똑같은 교실들이 쭉 늘어져 있다.
이 교실과 똑같은 교실이 이렇게 많다.. 1학년, 3학년도 있어.
머리 속에 망상이 폭발했다. 내게 손을 흔들며 웃고있는 수백명의 여고생들. 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다.
네 멋대로 해라!
3화. 학교에서
0.
시끌시끌, 웅성웅성.
수십, 수백명이 말하는 것 같은 웅성거림이 울리는 이 장소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비가 올때를 대비해 온실처럼 유리로 막혀있는 이 통로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족히 100여명이 2, 3명씩 길게 줄을 서있었다.
삼삼오오 같은 반 친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기다리고 있는 그들 옆으로는 교사들이 가는 빈공간이 있었다.
그 때, 질이 나빠보이는 남학생 대 여섯명이 시시덕거리며 줄을 무시하고 유유자적하게 걸어나갔다.
그런 그들이 고깝게 보였는지 줄을 서고 같은 반으로 보이는 남학생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덩치가 있는 남학생이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외쳤다.
"야! 니들 뭐하냐?"
그 말에 그들은 순간 멍때리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를 쳐다본다. 그리고 그 중 인상이 험상굳게 생긴 남학생이 나서며 말했다.
제 딴에는 강하게 나가면 물러설줄 알았는지 육두문자를 내뱉었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뭐? 씨발, 지금 우리한테 그런거냐?"
"하, 귓구멍이 막혔나. 지금 줄서있는거 안보이냐? 늦게 온 주제에 어디서 꼽사리야."
"놀구있네. 우리 반이 저 앞에 기다리고 있거든?"
"까고있네. 그게 니네 반이 선거지, 니들이 줄서있었냐? 미친놈, 그럼 니네 반 놈이 뒈으며 니도 따라 뒈질꺼지? 맞지?"
"아, 씨발. 이 새끼가 아까부터 오냐오냐 하니까. 씹새야, 말 곱게써라! 응?"
"좆이나 까고 말하지? 병신들"
"이 개새끼가!"
욕설을 주고받으며 두 그룹 사이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험악해진다. 같은 반을 핑계삼아 앞으로 가려던 남학생들 중 다혈질로 보이는 한 명이 앞으로 나서 동료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 또한 금방 흥분한 얼굴로 삐딱하게 나오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곧 그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저것들은?"
"몰라, 새치기 하려고 하다가 걸리니까, 저러네. 지들이 뭐라고 되는줄 아나봐, 킥킥!"
"우우, 새치기 하지말고 뒤로 가라!"
"뒤로 꺼져! 병신들~"
"완전 개념없다. 그치?"
"당근, 졸라 재수없네. 지네가 뭔데 줄도 안서고 저런데?"
줄을 서있던 학생들이 그 모습에 야유와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 여학생들은 그들을 인간 쓰레기로 매도했다.
뒤에서 험악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그 남학생을 노려보던 그들은 수십명의, 특히 여학생들의 거침없는 비난과 야유에 난처한 표정으로 나서 친구를 말렸다.
"야, 야. 니가 그냥 참아."
난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동료가 말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도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그냥 물러서는게 창피했는지 위협적인 한 마디를 남겼다.
"아나, 씨발. 너 얼굴 기억했어. 오늘 죽을 준비하고 기다려라."
"뭐? 풉! 푸하하하! 미친놈, 아주 영화를 찍고있다. 병신아, 지랄하지 말고 빨리 뒤로 꺼져."
변함없는 그 삐딱한 태도에 순간 욱했는지 뭐라 소리치려던 남학생은 친구들의 만류에 못이기는척 통로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질서를 어지럽히던 무리가 사라지고 평화를 되찾은 통로.
학생들은 사라진 그들을 비웃으며 뒷담화를 시작했다. 일진이든 세계 챔피언이든 다구리에는 장사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소위 말하는 일진그룹이 쫓겨났음에도 새로운 인영이 입구에서 나타나 통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 벌어졌던 수십명의 학생들의 비난과 욕설 세례를 받은 이들을 보았음에도 그는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게 줄서있는 그들을 보며 천천히.
그 남자는 이 학교의 교사도, 학생도 아니었다. 편한 사복을 입고있는 남자, 아니 성인이라고 보기에는 얼굴이 아직 어린티가 남아있었다.
그는 길을 가다 한번쯤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점은 방금 전까지 누군가 나타나기만 해도 예민하게 알아채고 따가운 눈총을 보내던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학교에 침입한 자신들보다 어려보이는 소년이 빈 통로로 걸어가는데도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이 단 한사람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어제 보았던 TV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나,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그들을 비웃으며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1.
Am. 0 8 : 2 5
이른 아침부터 아주 인파가 많은 길이 있었다. 그 길에는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끝없이 학교로 밀려오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수백명의 학생들의 등교길의 풍경이다. 그런데 같은 교복을 입은 남녀 사이에 조금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그는 등교하는 학생들 틈바구니에 융합되지 못하고 뭔가 위축되면서 신기한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걸아가는 방향에 맞춰 나아가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있지 않아 학교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가는줄 알았던 그는 학생들과 함께 교문 앞까지 왔다.
교문 앞에는 학생들의 복장에 대해 지도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선도부와 교사를 보았는지 그 얼굴은 살짝 상기되며 긴장한듯 굳어졌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교문지도를 하고있는 이들은 지나쳐가는 남자를 막지 않고 통과시켰다.
"휴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학생들을 따라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각 반에서 터져나오는 소음과 말소리로 시끄럽던 복도는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담당 교사가 안으로 들어가자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그런 복도에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진다.
"..후우, 이거 은근히 떨리는데..?"
내 이름은 한세, 세계 최고로 운이 좋은 남자다. 지금 어째서 교복을 입지도 않고 여기에 있는거냐고?
나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인 관계로 이 학교의 교복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아니 더이상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의무도, 지켜야할 제약도 없다.
이런 자유를 얻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바로 어제, 시간으로 따지면 이제 막 24시간쯤 지났을까?
내 짧은 인생 중에서 가장 길고 버라이어티한 하루를 보냈다.
그게 무슨말인가 하면, 나는 이제 뭐든지 내 마음이 내키는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여어, 잠들 잘잤나? 그래, 수업 시작하기 전에 숙제 안한 놈들. 일나라. 얼른 맞자."
살금, 살금. 발걸음 소리도 조심하며 복도를 걸어가는 내 귀로 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하면.
아직 나도 전부 아는건 아니지만 어제의 경험과 정보를 토대로 말하자면..
누구도 나를 보지 못한다. 그래 투명인간, 투명인간이라고 보면 되는데. 거기에 투명인간처럼 투명해지기만 하는게 아니라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대놓고 앞에있는 사람을 만져도 그 사람은 내가 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길을 가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밀어서 넘어뜨려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위험한 전쟁지역이나 차도 한복판에 서있지 않는다면 죽을 위험도 없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이 세계의 인간들은 나를 인지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이 세계에서 하지 못할게 없는 신(神)이나 다름없는 유일무히한 존재일 것이다. 아! 딱 하나,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만 빼고.
..그런데 그런 무소불위한 능력이 있으면서 왜 이러고 있냐하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적응이 되지 않은 탓일 것이다.
지금 여기는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아닌, 남녀공학 고등학교라는 사실이 내게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두근거리고 떨렸다.
힘을 얻고 나서 나름대로 버라이어티하고 놀라운 일들을 겪었다고 하지만 어떤 것이든 첫경험은 떨리고 무서운 법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에 울려퍼지는 선생들의 목소리와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느낌은 아주 친숙했다.
마치 수업 시간에 교실을 몰래 빠져나온 학생처럼, 남의 집에 물건을 훔치러 침입한 도둑처럼 간이 쪼그라 들어있다.
"후우, 후우.. 진정하자. 진정해. 아까 교문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했잖아. 아직 힘이 사라진게 아니야. 나는 신이다.
신! 지금 당장 누구를 만나더라도! 절대 나한테 뭐라 할 수 없어! 우오오오! 그래! 기억해라, 떠올려라! 나는 무적이다!"
오만방자한 그 말내용과는 다르게 그 목소리는 도둑놈처럼 작은 볼륨이었다.
"....쒯!"
그런 자신들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게 된다. 내 간덩이가 이렇게 조그맣던가. 배를 열어 보고 싶을 따름이다.
어제만 해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시 상황에 맞춰 행동했다. 어떤 상황에서 충동에 몸을 맡겨 행동하고 즐겼지만 문제는 밤에 일어났다.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몸을 움직였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하나 대화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 자연히 상념(想念)이 많아졌다.
어제 일들을 기억하며 살금 살금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살금 살금 도둑걸음을 옮기던 내 발걸음은 조금씩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미친듯이 두근대던 심장이 가라앉고 부들부들 떨리던 팔다리가 진정되기 시작하자, 용기를 내어 나는 살짝 머리를 내밀어 교실 안의 정경을 창문을 통해 살펴보았다.
"..어? 뭐야."
내 눈에 들어온건 내심 기대하던 교복을 입은 성숙한 여고생 누나들이 아닌 아주 익숙한 정경, 칙칙한 남정네들의 모습이었다.
예상과는 다른 교실의 모습에 교실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역시 치마를 입은 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뭐야, 분명히 오는길에 여학생들이 있었는데. 왜 아무도 없지? ..설마! 반이 따로따로 있는거야?!"
바삐 다리를 놀려 옆반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남자지옥. 내 기대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그 층의 다른 반들을 모두 보았지만.. 남자지옥.
알게된 충격적인 진실에 나는 절망했다.
"..이게 뭐야..! 젠장! 고등학생이 되면 여자랑 같은 반이 되서 얘기도 하고 같이 놀 수 있는건지 알고 있었는데! 말도안돼! 전부 거짓말이야!"
산산히 깨져버린 꿈에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이건 내 힘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여기서도 남자들에게 둘러쌓인채 학창시절을 보내야 되는거냐!? 그런거냐!? 오~ 쒯!"
고3이 아리따운 대학교 캠퍼스 생활을 꿈꾸듯 3년간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이제 일년만 지나면 동갑내기 여자친구들과 한 공간에서 공부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소박한 꿈은 그렇게 교육부와 학교 방침에 산산히 부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시간동안 지금까지 쌓아왔던 욕망을, 욕구를! 최대한 뽑아내겠어!! 더러운 남녀분반!"
나는 사막을 횡단하며 오아시스를 찾는 사람처럼 여자들을 찾아 반대편에 있는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단숨에 올라와 위층의 복도를 보면 2학년 6반부터 10반까지가 보인다. 그리고 아래층과는 다르게 반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굵지 않았다.
"아래 층엔 1반에서 5반까지가 남자반이었으니까..."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기대가 로켓처럼 위로 솟아오른다.
살짝 긴장한 얼굴로 살금, 살금 걸어가 6반의 창문을 보면 교실 안의 정경이 보인다.
"꿀꺽.. 오, 오오오.."
내 입에선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곳은 방금 보았던 지옥과 정반대인, 천국, 천국이었다.
교실 안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긴장으로 굳어있던 얼굴이 눈녹듯이 스르르 풀렸다.
창문으로 단절되 있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꽃내음이 코끝을 간질거리는거 같다.
이렇게 여자들이 앉아있는 교실을 본건 TV에서 본걸 제외하면 난생 처음이다.
특별한 것 하나 없는 교실인데,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성별이 뒤바뀐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가 없었다.
감격스러운 눈으로 교실을 구경하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이것과 똑같은 교실들이 쭉 늘어져 있다.
이 교실과 똑같은 교실이 이렇게 많다.. 1학년, 3학년도 있어.
머리 속에 망상이 폭발했다. 내게 손을 흔들며 웃고있는 수백명의 여고생들. 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다.
"여기가 바로 천국.... 아니.. 아니지. 나의.. 하렘.. 이라고 해야 되나?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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