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1_1편
공지 : 공황 5부의 부제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이 소설에서의 연대는 4.0판의 그것을 차용하겠지만, 그 룰적인 설정 대부분은 차용하지 않습니다(캐릭터 시트도 3.5 룰대로 갑니다). 이것은 영어를 못하는 작가의 개인사정 때문에 D&D4판에 대한 자료가 [거의]없어서 그런 것이니...(돌을 피한다)
공식 설정상, D&D 3.5에서 4판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역사는 [암흑기]입니다. 그리고 스펠 플레이그(주문역병)는 거의 백년 정도를 끕니다. 그동안 포렐의 강력한 마법사들은 대부분 죽거나 은둔하며, 세계는 칼과 피의 야만으로 돌아갔습니다.
신들의 전쟁 편에서의 포렐 세계는 신계의 대사건들과 함께 스펠 플레이그가 공식보다 훨씬 빨리 끝날 것입니다. (DR 1410년대 초가 될 예정)다만 공식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들었다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들 대부분은 이 시대의 시작을 전후해 죽음을 맞습니다.
또한 아비어와의 융합에 의해 4.0판의 새 종족으로 등장한 많은 종족들은 신들의 전쟁 편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거나(기계 종족이나 임모탈) 이름만 언급되거나(페이 등). 그렇지 않다면 기존 3.5판의 종족들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또한 시원자들의 등장에 대해서도, 그것이 (원래 설정보다는)포렐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프롤로그-
푸른 기가 도는 반투명한 액체의 벽 너머, 슈발츠의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 놈이 있다. 광기에 물든 붉은 눈이 이쪽을 향해 웃는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고통 뿐.
뼈가 녹고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뒤따른다. 비명을 질러 보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붉은 눈은 말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무엇 때문에? 왜 강해 져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내려다본 손의 검은 피부에 은색의 비늘이 뒤덮여 가고, 푸르게 물든 시야에 위브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 안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들어와 날뛴다.
다시 고통.
드로우 자매들과의 멘조베란잔에서의 환락의 나날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안다.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그리고 슈발츠는 깨어났다.
용을 포함해 모든 비늘족들은, 엄연히 따지라면 파충류이다. 때문에 땀을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슈발츠는 지금 등골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 아응... 앙... 냠... "
바로 옆에서 두르나가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윤기가 흐르는 어두운 피부는 별빛을 반사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흑요석 조각 같은 알몸을 내려다보며, 비로소 슈발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래 전의 기억이다. 그리고 분명 아주 오랜 후 까지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일 것이다.
위브의 파동과 드웨머 하트의 폭발에 직접 노출된 탓인지, 그의 내부의 [기운들]은 전례 없이 불안정해져 있었다. 악몽도 그 탓일지도 모른다. 슈발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르나의 침전의 기둥 사이로 시선을 돌렸다.
[슈발츠의 세계]에 달은 없다. 하지만 어둠 자체가 그리 깊지 않고, 어두운 보라색 하늘을 채운 별들의 빛은 페이룬 세계보다 훨씬 더 밝다. 그 환한 별빛 아래 내려다보이는 밤의 숲과 그 너머의 바다는 비할 바 없이 보기 좋은 밤 경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평선 끝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것이며, 이곳은 그의 성이다. 그 누구도 그의 허락이 없이는 들어올 수 없으며, 이곳에서 그는 낮과 밤이나 지형이나 기후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귄력이 있다. 한낱 마법사의 실험용 모르모트였던 그가 이제는 한 세계의 주인인 것이다.
다시는 방심하지 않으며, 다시는 그런 식으로 내 쟈유를 빼앗기지 않으리라. 설령 그 상대가 신들이라도.
" 주인님. "
" 말하라. "
침전으로 소리없이 들어온 와우킨이 슈발츠의 등 뒤에서 공손히 엎드려 고개를 조아린다. 신적인 후광을 끄고도 여신으로부터 은근히 배어 나오는 신성한 에너지가 그의 피부를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여신조차 지금은 그의 노예인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서 자부심이 한층 굳건해졌다.
" 시어릭에 대한 재판이 끝났습니다. "
그 다음은 텔레파시를 통한 보고가 이어졌다. 재판정에서 보고 들은 장면을 그대로 슈발츠에게 전한 것이다.(다른 노예들과 달리, 와우킨 만은 신이기 때문에 그에게 텔레파시를 [걸]때 허락을 받지 않아도 가능했다. 물론 주인의 심기를 거르를 생각이 없는 그녀는 그 특권을 남용하지는 않는다)
시어릭은 처벌받았다. 베인, 차운티아, 켈렘보르, 라센더, 실바누스, 모라딘, 코렐론 로다리안, 욘달라 이 8명의 대신격들이 그를 붙잡고 그의 광기에 가득 찬 황폐한 차원(The Supreme Throne)으로 데려가 그 차원 한가운데에 위치한 옥좌에 강제로 앉힌 후, 8명의 신들이 함께 시전한 위대한 주문을 통한 봉인을 베풀었다. 시어릭의 신체(神體)와 그 목소리 모두 그의 옥좌에 갇히었으며, 더이상 그는 그 자신이나 아바타를 지상으로 보낼 수도, 그 자신의 신자에게 신탁을 내릴 수도 없게 되었다. 오직 신격으로써 주문을 내려주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시어릭과 공모해 드웨머 하트를 파괴한 공범인 두 신격 중 신령술의 신인 벨샤룬은 도망쳤다. 그의 부재 재판에서 벨샤룬은 만신전으로부터 쫒겨났으며, 어떤 신격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를 원조하는 것은 만신전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는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로서 벨샤룬은 혼자가 되었다.
또 하나의 공모자인 샤르는 재판에 참석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는 처벌받지 않았는데, 가장 오랜 시원의 신격이라는 긍지를 가진 그녀가 필멸자에 불과한 슈발츠와 [정면 대결]을 해서 완패하고, 그 신체(神體)마저 파괴당해 흐릿한 그림자 형상으로 법정에 서는 개망신을 당한 덕분이었다. 그녀가 받은 피해는 그냥 필멸자의 무기에 의해 파괴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극심한 것이었으며, 그녀의 신체가 완전히 재생하기까지는 앞으로 족히 수백년은 걸려야 할것이다. 게다가 신들의 법정은 그녀에게 [슈발츠에게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그 망신을 확고하게 했다(슈발츠를 이뻐해서가 아니라, 샤르의 복장을 긁어놓기 위한 판결이다).
슈발츠는, 그 이름이 여러 번 재판 과정에서 신들의 법정에서 오르내린 덕에, 이제 신들 사이에서도 가장 유명한 필멸자가 되어 있었다. 와우킨은 그를 공식적으로 자신의 챔피언이라 공언하고 다닌 것으로 신들 사이에서 크게 체면을 세웠으며(그것은 슈발츠가 시킨 일이기도 하다), 드웨머 하트의 파멸을 막지는 못하였지만, 최소한 시도를 했던 영웅으로 이름이 알려져 많은 신들이 슈발츠를 높이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제 신들 사이에서 세상의 힘의 판도를 결정지을 요인 중의 하나로 그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의 거물이 된 것이다.
시어릭은 갇혔고 벨샤룬은 추방되었으며 샤르는 개망신을 당했지만, 이 재판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끝나기는 커녕 그 이후 200년간 이어진 장대한 사투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일 뿐이었다.
시어릭의 [재판]이 있은지 며칠 후, 슈발츠는 발 아래로 구름이 바다처럼 펼쳐진 한 거대하고 까마득한 산봉우리가 서 있는 세상에 와 있었다. 주변이 모두 만년설로 뒤덮여 있지만 결코 춥거나 호홉이 곤란하지 않은 이곳은 상위 외계(外界: Outer Plane)중 하나인 마운트 셀레스티아(Celestia)로, 선신들과 선한 아웃사이더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그가 마운트 셀레스티아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물론 그냥 관광차 방문한 것은 아니고, 볼일이 있었다. 이번엔 티르 신이 아닌 다른 신의 호출을 받았던 것이다. 잠시 주변의 장엄한 설경을 감상하고 있는 동안, 맞은편 절벽 위에서부터 거대한 진동(분명하게도 차원적인)이 감지되었다. 시선을 돌리자, 공기 밖에 없던 허공에서 부터 희끄무레한 환영같이 거대한 한 용의 그림자가 나타났고, 이윽고 그것은 분명한 실체가 되었다. 주변의 공기가 명백한 힘의 파동을 전달하면서 진동하여, 슈발츠의 신경을 긴장시켰다.
슈슈슛...
마침내 등장한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아주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마운트 셀레스티아에 가득 찬 영광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비늘은 찬란한 백금색으로 빛나고, 슈발츠를 내려다보는 고양이 같은 눈은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영롱한 빛을 띄고 있었다. 슈발츠는 그를 안다.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모든 드래곤들 중 최고의 연장자이며 또한 최고의 지혜자인 동시에, 사악한 드래곤들조차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존경을 담는 존재인 바하무트(Bahaumt)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거대한 덩치의 골드 드래곤 하나가 더 텔레포트 해 왔다.
" 오래 기다리게 했군. [다섯 머리]의 추종자들이 작은 분탕질을 쳐서 말이지. "
다섯 머리라는 것은 바하무트의 오랜 적인 티어매트를 부르는 말이었다. 신의 면전에서, 슈발츠는 인간들이 하는 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의 인사엔 숨길 수 없는 경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쨌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드래곤의 시조이며, 그의 혈관에 흐르는 용의 피 역시 굳이 따지자면 그로부터 연원한 것이다. 눈을 저으기 가늘게 뜬 채로 슈발츠를 내려다보며, 백금의 드래곤은 인사를 받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 칼라디나의 일은 안되었네. 쩝, 모처럼 그럴듯한 신전을 하나 가지나 했건만... "
머릿속으로부터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바하무트의 억양엔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칼라디나는 지진이 덮치고 바다가 물러나면서 무역항으로써의 입지가 상실되어 도시의 기능을 잃었다. 많은 건축물이 무너졌고, 그 중에는 [랠름 유일의 대규모 바하무트의 신전]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미 벌어진 일에 미련을 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요. "/슈발츠
" 아아, 좋은 정신이야. 요즘에 와서는 뭐가 중요한지 잊어버리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역시 자네는 다르군. "/바하무트
바하무트의 백금의 비늘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잠시 스스로 빛을 발했다. 그 눈부신 빛의 파도는 슈발츠에게조차 신비적인 광경으로 보일 정도였다.
" 신들의 재판에서 벌어진 일은 상인의 보호자(와우킨을 말한다)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리라 믿네만,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한가지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싶어서일세. 물론 공짜는 아니야. "/바하무트
" 말씀하시지요. "/슈발츠
" 먼저 한가지 물어보지, 요즘 몸이 허하다거나, 혹은 악몽을 꾸지 않는가? "/바하무트
" 그렇습니다. "/슈발츠
대수롭지 않게 즉답했지만, 사실 슈발츠는 속으로는 뜨끔했다. 바하무트라는 신격은 한번 보고도 그 자신조차 확실하게는 모르는 그의 [이상]을 알아 차리는 것이다. 시원자의 힘을 얻어 신격을 (일시적이나마)파괴하는 업적까지 세운 그였지만, 역시 신의 위의와는 엄연한 격차가 있는 것을 재삼 실감하게 되었다.
" 왜 그런지 자세히는 나도 모르겠네만, 자네 주변에 위브의 일그러짐이 심해지고 있어. 그의 요동이 그 영혼과 육체에까지 영향을 줘서 그런 게지. 이건 일종의 누설이네만, 굳이 따지자면 자네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야. "/바하무트
" 필멸자라는 것이 원래 완전치 않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슈발츠
" 아아, 그것과는 달라. 자네에겐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네. 자네도 시도해봤을지 모르지만, 예전부터 자네에겐 예지가 듣지 않아. 나를 포함한 모든 신들조차 자네의 운명은 알 수가 없는 것이지. 모든 필멸자들의 운명을 기록해 두고 있다는 [만물의 끝의 군주]의 운명의 책에도 자네의 이름은 없을게야. "/바하무트
만물의 끝의 군주란 저굴(Jergal)을 말한다. 포학, 살해, 죽음의 세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던 시원의 존재인 저굴은 선악을 초월해 모든 신격들의 존중을 받았던 존재로, 비록 지금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포트폴리오 대부분을(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 세가지를) 다른 신들에게 나누어 준 상태로(포학은 베인에게, 살해는 바알에게, 죽음은 미르큘에게) 현재는 죽음의 신격인 켈램보르의 조언자 역할로 만족하고 있지만, 만물의 끝을 관장하는 [서기]로써 저굴만큼이나 확실하게 모든 운명(의 종착역인 죽음)을 아는 자는 없다.
슈발츠가 잠시 가만히 있는 동안 바하무트는 하고 싶던 말을 끝맺을 수 있었다.
" 그리고 운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오르지 않은 자는 딱 두가지 부류 뿐이지. 태어날 때 부터 불멸자(즉 신)이거나, 혹은... "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거나.
바하무트는 말끝을 흐렸지만, 슈발츠는 그가 말하고 싶은 나머지를 알아서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문장의 나머지를 채워 넣으면서, 그는 악몽을 떠올렸다. 언제나 같은 꿈 속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드로우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것은 거짓이다]라고 느꼈다. 그 의미를 이제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하무트의 말을 들은 후 분명하게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슈발츠의 개입으로 인해 불발로 끝났지만, 시어릭은 샤르와 합작해서 미스트라 스폰들의 클론에 쉐도우 위브로 만든 [가짜 영혼]을 씌워 여신을 속이려 했던 적이 있다. 슈발츠는 그 시어릭을 모시는 마법사의 실험실에서 탈출했으며, 그 이전의 기억은 단지 흐릿한 잔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꿈]은 그 기억을 가짜라 말하고 있다.
내 기억이 조작된 것이라면, 내 영혼도 인공의 것인가.... 그것도 위브로 만들어진 가짜?
그렇게 생각하면 이치에 맞다. 위브의 요동은 슈발츠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가 그 육신도 영혼도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그의 [형제]라 자처하던 쉐도우 드래곤 나일즈도 죽은 후에 한낱 영기로 흩어지지 않았던가. 그것은 명백하게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와 같은 것이다. 슈발츠는 등골을 통해 서늘한 한기가 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아 잠깐,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돼네, 어쨌든 지금 자네는 여기 존재하고 있고, 지금까지 쭉 그 검은 태양을 엿먹이고 있으니까. "
점잖지 못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본 골드드래곤이 [체통을 지키시라]는 의미로 눈치를 주는 것을 바하무트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며 먼산바라기로 외면했다. 그리고 고민에 빠져 있던 슈발츠는 그 점잖지 못한 표현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가 만들어진 존재든 어쨌든, 지금까지 싸워 왔고 또 싸울 것이다. 힘이 모자라서 쓰러질지언정 확실하지 않은 망상을 통한 자기혐오에 빠져서 자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그 말씀 대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슈발츠
" 아아, 역시 좋은 정신이야. 이곳에도 좀 참신한 젊은이들이... "/바하무트
거대한 골드 드래곤 하나가 더 텔레포트해 날아와서 바하무트에게 예를 표하며 눈을 살짝 흘겻다. 좌우로부터의 무언의 압박에, 바하무트는 시선을 돌릴 곳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한숨을 쉬며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는 슈발츠를 내려다보았다.
" 그래서 자네를 부른건 다름이 아니라... "
그리고 몆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산의 정상 어림에서, 슈발츠는 눈속에 반쯤 파묻힌 채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 인내하게. 워더(Worder: 지킴이, 진언자)에게 있어서 평정심이란 모든 것이야. "
바하무트는 슈발츠를 내려다보며 입가에 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백금의 용의 찬란한 거구는 심지어 눈발이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찬란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슈발츠가 한때 다지고 있던 은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지고의 색]이라 불리울만한 것이었다.
눈 사이로 드러난 슈발츠의 상반신의 흑요석 빛 비늘 위에는 붉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사어(死語)인 고대의 용언으로 이뤄진 진언(眞言)이었다. 그것은 바하무트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아오(AO)가 처음 드래곤을 창조했을 당시의 시원의 용을 칭송하는 내용의 신적인 서사시로, 그 자체로 주문이었다.
여담이지만, 티어매트와 바하무트는 신이라기보다는 시원자에 가까운 그 존재에게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한참을 슈발츠가 정좌하고 있는 동안, 그의 주변으로부터 은은한 광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내적 평정심을 달성한 증거였다. 바하무트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눈꼬리를 길게 만들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하 한결 더 영롱하게 빛났다.
" 원래 셋이었으나, 이제 둘이로다. 스스로 완전하지 못하니 서로를 구하나, 또한 서로에 반대하는도다. "/바하무트
" 잔혹함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이나, 자비로움도 해결할 수 없도다. 사세는 이처럼 분명하나 결국 의(義)를 지킴에 미치지 못하니, 그것으로 여기 표지(Ward)로 삼는다. "/슈발츠
" 둘로 갈라진 하늘, 그 중의 하나의 이름으로 축수하나니, 시원의 때부터 종말의 때 까지 올곧음으로 의를 관철하길. "/바하무트
선문답을 주고받은 후, 슈발츠는 눈을 털고 일어났다. 몸에 그려져 있던 붉은 글씨는 진언을 주고받는 동안 빛나다가 사라져 있었고, 그는 지금껏 자신의 내부에서 [진동]해 오던 무언가가 차츰 안정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수은 덩어리 같은 이글거리는 눈동자에도 한가닥 지혜로운 기운이 깃들었다.
" 별로 어렵진 않군요. "/슈발츠
" 자네는 그저[자격]을 얻었을 뿐이야, 진짜가 되려면 아직 수백년은 멀었지. "/바하무트
목을 좌우로 꺾으며 기지개를 켜는 슈발츠를 내려다보며, 바하무트는 껄껄 웃었다.
" 그나저나, 시키고 싶으신 일이란건 무엇입니까? "
슈발츠의 질문에, 바하무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만들었다. [이 꼬맹이 성질한번 급하네]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도 슈발츠가 지지않고 꼬나보자, 바하무트는 졋다는 듯이 고개를 털었다.
" 자네는 어떤 것이 [진정한 힘]이라고 보는가? "
또 선문답인가 싶어 이번엔 슈발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글쎄요... 보는이의 기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그것은... "/슈발츠
" 이를테면, [권력]말이야. 역사를 움직이고 국가를 이끌며, 대항하는 적을 분쇄하는 힘. 그중에 제일은 무어라고 생각하나? "/바하무트
슈발츠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 모르겠습니다. "/슈발츠
" 음, 그럼 힌트를 주지. "/바하무트
바하무트가 손짓을 하자, 갑자기 저 멀리 아무것도 없는 하늘 한가운데 산봉우리가 생겼다. 슈발츠도 비슷한 짓을 자신의 차원에서 할 수 있지만, 바하무트의 그것과는 규모에서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다. 그 굉장한 광경에 슈발츠가 놀라는 동안, 바하무트는 다시 손톱을 퉁겼다.
슈웅... 번쩍!....
뭔가 보이지도 않는 것이 바하무트의 손 끝에서 날아간 후, 새로 생긴 산봉우리로부터 찬란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슈발츠가 눈부심에서 회복했을 때, 막 사라지는 버섯구름 너머로 눈앞의 새로 생겼던 산봉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산 하나가 송두리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슈발츠는 잠시 동안 산봉우리가 증발한 흔적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 자네와 혈연이 있는 드로우들이 발명한 마법이지. 왕관 전쟁에서 이걸로 재미를 좀 봤다더군. 물론 이건 서툰 흉내일 뿐이야. "
슈발츠가 돌아보자 이번엔 바하무트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으쓱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 용신은 위브가 아니라 신격 고유의 신성한 힘을 써서 드로우 고위 마법의 흉내를 낸 것이다. 그런 재주는 슈발츠로도 금시초문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등골이 서늘한 점은, 산봉우리 하나를 흔적도 없이 증발시키는 마법을 필멸자에 불과한 드로우가 [발명]했다는 사실이었다.
" 이런 마법 앞에서, 군대는 무의미하겠지요. 시범만 보여줘도 어지간한 국가는 질려서 항복하겠습니다. "
진정한 힘이란, 결국 그것을 사용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창조자이자 지배자인 아오는 신들 위에 군림하지만, 직접 손을 쓰는 법은 거의 없다. 신들은 필멸자 위에 군림하지만, 금도를 아는 신들은 필멸의 세상에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신들은 신들끼리, 필멸자들은 필멸자들 끼리. 수준과 격이 맞는 상대와 놀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보여준 마법은 필멸자적인 마법의 한계를 넘고 있었다. 수준이 다른 것이다. 이런 마법을 어떤 필멸자가 사용할 수 있다면, 그의 존재만으로 세계와 맞서며, 한 나라가 일어서고 사라질 것이다.
" 아아, 그래서 원래라면 이 마법은 필멸자에겐 금지지. 그런데 미스트라 여신이 죽은 후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졌어. "/바하무트
" 위브의 [관리자]가 없으니까... "/슈발츠
바하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아직은 위브가 요동치고 있으니 마법사들이 잠잠하지만, 이제 이 앞에 네서릴의 비전과 엘프 고위 마법, 그리고 고대 용들의 비전까지도 개방되었다고 봐야지. "/바하무트
" ...새로 마법의 신을 세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슈발츠
바하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당장은 적임자가 없어, 그리고 위에 앉은 [그 양반(AO)]은 잠자코 계시고... 우리보고 자력구제하라는 말씀 같아. 그리고 나는 [앞잡이]로 자네를 점찍었지. "/바하무트
" ...조금 과한 기대인성 싶습니다만... "/슈발츠
바하무트는 음흉하게(?) 웃으며 슈발츠를 곁눈질로 내려다 보았다.
" 아무튼, 내가 참견하는 것은 여기 까지, 다름아닌 마왕을 둘이나 물리친 용사의 [방법]까지, 내가 일일이 간섭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지 않나? "
말을 마친 바하무트는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 백금 비늘의 반사광이 한낮의 물결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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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스케일 워더]는 일부 용들에게만 개방되는 상위직으로, 하우스룰 상에 존재하는 직업입니다. 이 직업에 대한 데이터는 추후 5부 버전의 슈발츠의 캐릭터 시트에 포함될 예정이므로 여기서는 공개를 미루고, 몆가지 특징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워더 상위직의 공격 보너스는 [높음]이며, 성직자 주문을 주지 않지만 [턴 언데드]능력을 부여합니다. 그외에 자연 방어도 보너스와 내성굴림 보너스를 받는 이외에 이득은 없습니다. 얼핏 보아 먼치킨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걸 부여받은 슈발츠가 이미 괴물이라, 턴 언데드 능력까지 갖춤으로써 정진정명의 만능캐가 됩니다. -_-; 사실 턴 언데드 능력이 선결하는 에픽 재주와 디바인 재주 중에 군침도는게 많아서 그거 주려고 지어낸 직업이에요, 네. 제가 나쁜놈이죠.
바하무트는 인심좋고 느긋한 성격입니다만, 엘민스터가 가지는 [너무-재촉하지-마]병은 없습니다. 대신 그는 후원할 상대를 고를때 무척 까다롭지요. 그리고 주는 임무의 난이도도 엘민스터랑은 비교가 좀 안되고(신이니까). 슈발츠에게 맏긴 임무만 봐도 이양반의 요구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요.
알아서 세계를 구하래요. 어헣헣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