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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리, 천사의 입술 프롤로그&1

프롤로그



방과 후.

수업이 끝나는 걸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교실을 뛰쳐 나왔다.

학교 현관 입구에서 바쁘게 신발을 갈아신고 있는 나를 보고,

"아카리, 너 오늘도 써클 빠지는 거야? 선생님 화나신 거 같던데"

신체조부 동료인 마유미가 말을 걸어왔다.

"미안. 당분간은 무리일 거 같아. 여유가 좀 생겨야 나갈 수 있을 거 같애"

톡톡 바닥을 차 신발을 신으며 마유미에게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껜 잘 좀 말씀드려줘"

"정 그렇다면야 말씀은 드려보겠는데 이러다가는 너 이제 레귤러는 힘들게 돼"

"으응.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진짜 무리야. 암튼 부탁해. 오늘도 벌써 늦었거든. 미안"

신발을 신자마자 마유미를 뒤로 하고 자전거 보관대로 줄달음질쳤다.

"나도 이젠 몰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마유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대로는 써클활동도 보나마나 쫑.

지금같은 일이 계속되면 확실히 레귤러는 커녕 써클에 남아있을 수 있을지조차도 의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 청춘 그 자체도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나도 보통 여중생처럼 써클활동에 매진하고 연애도 해보고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한낱 꿈에 불과했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이 마을에서 유일한 유흥가로 향했다. 유흥가라고 해봤자 내가 사는 이 마을은 말 그대로 깡촌 시골 지방도시. 가장 높은 건물이 5층짜리 건물일 정도로 대부분 단층이거나 기껏해야 2층짜리 상가가 고작이었다.

스낵, 바 몇 개를 지나 좁은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골목 끝에 있는 한 채의 가게 앞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핑크살롱 "앤젤 립"





센스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상호명에 역시나 센스제로의 유치뽕빨 디자인을 뽐내는 간판을 올려다보며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 옆 건물 사이에 자전거를 밀어넣고 나는 오늘도 우울한 기분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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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아직 개점 전의 점내를 향해 인사를 하자,

"늦었잖아! 뭘 그렇게 꾸물대는거야"

로비 왼쪽 편의 객석 플로어에서 매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언니인 유카리였다. 고등학교 교복 차림에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부치고 양손에 봉걸레와 물통을 들은 채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난 언니하곤 달리 자전거 통학이라구. 얼마나 서둘러서 달려왔는데"

"변명은 됐으니까, 냉큼 청소나 해!!"

내게 봉걸레를 던져주고는 언니는 커다란 업무용의 진공청소기를 질질 끌고 성큼성큼 객석으로 사라졌다.

언니는 학교에서 엄청난 인기녀였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당시에는 언니한테 고백하려는 남학생들로 방과후 교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분명 언니는 내가 봐도 굉장한 미소녀였다. 늘씬한 장신에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의 청순가련하기 짝이 없는 얌전한 미소녀 그 자체.

하지만 그 실상은 난폭하고 제멋대로인데다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진심으로 믿고있는 전형적인 여왕님 타입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자신의 본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법은 없었다. 이 여자의 본모습을 언니에게 고백한 남자애들이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튼 타인의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언니를 둔 여동생의 불행은 굳이 신데렐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다들 십분 공감할 것이다.





"아카리, 어서 오렴"

가게 접수처 안쪽에서 지배인 고로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야~ 언니 정말 너무하죠 그쵸"

"하하하. 뭐 개점까진 아직 여유 있으니까 너무 서두를 필욘 없어"

고로씨가 허허허 웃는다.

"아빠는?"

내가 묻자,

"사장님은 웨이터 구인광고 문제로 대리점에 가셨어"

그렇다. 이 가게는 우리 아빠가 경영하는 가게다. 고로씨는 개점 초기부터 줄곧 지배인 일을 해 오고 있었다. 늘 태평스러운데다 내가 봐도 철부지인 아빠가 이 가게를 이나마 일궈올 수 있었던 건 전부 다 이 아저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도 신입 못 구했어?"

"으응, 요새 젊은 친구들은 좀처럼 이런 일 하려고 들질 않아서. 거참 곤란하지 뭐야"

그렇다. 정말로 곤란하다. 왠지 연달아 웨이터들이 일을 그만둬 일손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언니랑 내가 가게 일에 끌려나온 것이었다. 그 덕분에 요 몇개월 내내, 학교 땡하면 곧장 가게로 직행하는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아아~ 내 청춘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요오오~~!!

"진짜로 곤란해. 나 진짜로 써클 짤릴 거 같다니까"

"그럼 안 돼지. 사장님껜 가능한 빨리 직원 구하라고 닥달해 둘께"

고로씨가 미안해 어쩔줄 몰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따르릉 따르릉...

"어 전화왔네"

가게 전화기가 울렸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라. 불길한 예감이 든다.

"매번 감사합니다. 앤젤 립입니다"

고로씨가 수화기를 들었다.

"아아, 카렌쨩? 고생 많지? 응? 또 감기야? 이런 이런"

역시. 아가씨 결근 전화였다. 우리 가게는 벌금이 없다. 다른 가게는 결근은 무조건 벌금이지만 우리 가게는 아빠의 방침으로 아가씨들에게 벌금을 매기지 않고 있었다. 그 덕에 좋은 아가씨가 모인다고 아빠는 말하지만, 그 탓에 우리 가게 아가씨들은 툭하면 결근이었다. 방금 전화한 카렌도 이 달 들어 벌써 두 번째 결근이었다. 하여튼 요새 젊은 아가씨들은...

"그래, 감기 걸렸으니 별 수 없지. 그럼 몸조심하고"

통화를 끝낸 고로씨가 한숨을 내쉰다.

"카렌 또 안 나와?"

내가 묻자,

"응. 감기라네"

"카렌은 지난 주에도 쉬었잖아"

"그러게. 하지만 본인이 감기라고 하니까"

"뭐야. 아빠도 고로씨도 너무 만만히 보이는 거 아냐?"

"흐음. 하지만 엄하게 굴면 요새 아이들은 금새 그만둬버리니까..."

고로씨가 미안한 듯 말했다.

"그래서말인데 아카리..."

고로씨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뭐?"

"미안한데 오늘도 좀 부탁할 수 있을까?"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구요.

"그래요. 내가 나가면 차암 좋을거에요. 중.학.생.인 내가"

고로씨 잘못도 아닌데 괜히 빈정거리듯 내뱉고 말았다.

"미안. 가능하면 아카리한테는 손님 붙이지 않게끔 할께"

"됐네요. 빈말이 어디 한 두번이래라야 말이지"





그렇다. 나는 가게 청소만 하는게 아니라, 핑크살롱 아가씨로도 가게에 나가고 있었다. 매일까진 아니고 이렇게 아가씨가 부족할 때만이긴 하지만. 내가 가게에 처음 나오고 벌써 1년이 지났다. 아직 처녀인데다가 아직 남자애하고 사귀어 본 적도 없는데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남자들의 자지를 빨았다. 처음엔 약간 저항이 있었지만, 아빠와 고로씨에게 부탁받아 어쩔 수 없이 가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긴 태어났을 때부터 핑크살롱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아 참, 말하는 걸 잊었는데, 우리 집은 이 가게 2층에 있다. 가게에서 뭘 하는지는 아기 때부터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나도 가게에 나가게 될 거라고 어렴풋이 각오하고 있었다. 언니는 고교 입학 직후부터 매일 가게에 나오고 있었다. 이미 훌륭한 베테랑 아가씨였다.





엄마도 핑크살롱 아가씨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돌아가셨지만. 암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돌아가시고 말았다.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가게 아가씨에게 손대는 건 접객업계에선 최고의 금기였지만, 아빠는 가게에 엄마가 면접왔을 때 이미 저 여자와 결혼하고 말겠노라 결심했다고 한다. 엄마는 데뷔하자마자 최고의 인기인이 되어 순식간에 가게 No.1을 차지했다. 엄마가 기록한 우리 가게 역대 지명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을 정도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언니를 임신해 두 사람은 결혼했지만, 엄마는 언니와 나를 낳고 잠시 출산휴가를 가졌을 때를 제외하곤 쭉 현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엄마는 결혼 후에도 인기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아 병으로 가게에 나올 수 없게 될 때까지 매일같이 손님들이 선물을 들고 몰려들었다. 가게 입구까지 남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언니하고 둘이서 가게 2층에 서서 구경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무렵이 우리 가게의 전성기였다.

엄마...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제1화 내가 핑크살롱 아가씨?



내가 처음으로 가게에 나온 것은 1년전, 중학교 1학년 봄방학 직전이었다.

그 날도 나는 여느때처럼 가게 대기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게의 아가씨 대부분은 현역 여대생 아르바이트로 다들 확실히 머리가 좋았다. 덕분에 이렇게 대기실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아가씨들이 이것저것 가르쳐 주니까 아무래도 공부하기가 수월했다. 물론 아가씨들의 직업상, 공부 말고도 많은 걸 배웠지만. 언니는 가게 아가씨들에게 과외(?)받은 덕택에 학원도 다니지 않고 현내 최고의 고등학교에 합격해 버렸다. 나는 언니처럼 머리가 좋지는 않기 때문에 그저 적당히 근처 고등학교나 무사히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당시엔 인플루엔자의 유행으로 아가씨들의 결근이 잇따르고 있었다.

"곤란한걸"

"그러게요"

아빠와 고로씨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대기실로 들어왔다.

"왜?"

재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수학 교과서에서 고개를 들며 내가 물었다.

"아가씨들이 너무 많이 안 나와서. 이대로 가다가는 가게 문 닫아야겠어"

"그렇게나 많이 안 나와?"

"애초부터 평상시 인원수도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서너명만 빠져도 아주 죽을 맛이라구"

"헤에--, 그렇구나"

가게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무리해서 문을 열어봐도 손님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그건 그거대로 손님들께 폐가 되니까"

아빠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딱 한 명만 더 있으면 어떻게든 될텐데 말이죠"

고로씨의 표정도 어두워진다.

"어?"

순간 나는 두 사람의 눈이 내게 뭔가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부탁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게말이지, 실은"

아빠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어쩐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카리도 말야, 이제 슬슬 가게에 나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

호오~ 빙고. 역시 그 이야기일줄 알았지. 대체 뭐가 슬슬 괜찮다는거야. 난 아직 중학생 꼬마라구.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 아직 꼬맹이야. 중학생이라구"

내가 기가 막혀 대꾸하자,

"아니 아니, 그렇다고 벌써 실전까지 하라는 건 아니구, 기본 서비스만 해도 괜찮으니까"

아직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우리 가게는 말만 핑크살롱이지 추가요금만 지불하면 실전까지도 OK인 소위 말하는 "풀 살롱"이랍니다. 아니, 암만 그렇다고 해도 실전만 하지 않으면 중학생이 핑크살롱에 나가도 괜찮다는 건... 아니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하긴 언니는 벌써부터 고교입학과 동시에 가게 일을 돕고 있었다. 사실 표면적으로는 가게에서 실전은 금지니까 뭐 연령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어찌됐든 딸이 가업을 돕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라고 하는 희한한 이론을 내세우는 아빠였다.

"아카리도 언젠가는 가게에 나올 생각이었잖니?"

"그건 그렇지만..."

분명 나도 언젠가는 그럴거라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아직 남자애랑 사귀어 본 적도 없고 게다가 첫 키스도 아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풍속 데뷔라니,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

"유카리는 이미 고등학생이었고 게다가 처녀도 아니었으니까 처음부터 실전까지 해줬지만, 아카리는 중학생인데다 아직 처녀니까, 남자친구하고 첫경험 할 때까지는 입으로만 서비스해줘도 괜찮아. 게다가 매일도 아니고 오늘처럼 아주 곤란한 날 만이라도 좋으니까"

어? 언니, 처녀 아니었어? 아니 아니,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이게 어떻게 진짜 부모가 하는 대사냐구요. 하긴 이 냥반은 자기 아내가 풍속 넘버 원인 것에 정말로 기뻐한 남자니까 그 독특한 사고라면 아주 당연한 발상일지도.

"아카리쨩은 착실한 아이인데다 뭐라 해도 그 카오리씨 딸이니까 분명 아주 잘 해낼거야"

고로씨마저 의미불명의 괴상한 논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참고로 카오리씨는 바로 우리 엄마.

암튼 어차피 언젠가는 할 수 밖에 없는 일이고, 실제 경험은 없지만 가게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주워들은 지식도 있으니까.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깊게 생각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해 볼께. 하지만 잘 할 수 있을지는 몰라"

"괜찮아. 괜찮아. 아무리 서툴어도 아카리처럼 어린 여자애가 서비스해준다고 하면 미쳐 날뛸 손님은 잔뜩 있으니까"

아빠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이런. 사실 잘 생각해보면, 싱글벙글하면서 진짜 자기 딸을 로리콘 상대로 던져주는 친아빠라니, 이거 문제가 좀 심각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빠의 꿈은 이 가게를 일본 제일의 핑크살롱으로 만드는 것. 그게 엄마와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아빠 머리 속엔 오직 그것뿐이었다. 근데... 대체 일본 제일이라는 것의 기준이 뭐야?





"그럼 고로씨, 의상하고 신발 좀 준비해 줘. 아카리는 아이같으니까 청순미를 세일즈포인트로 삼는 게 좋겠어. 그럼 흰 색이 아무래도 낫겠지? 우선 개점 전까지 연수 좀 부탁해. 난 가게 오픈할 준비할께"

아빠는 혹시라도 내가 마음을 바꿔먹을까봐 서둘러 결정하고는 대기실을 나섰다. "아이같다고? ...실제로 아이 맞잖아"

내가 궁시렁거리자,

"아냐 아냐, 유카리는 제대로 일 하고 있으니까 이미 훌륭한 어른이야"

고로씨가 또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럼 의상을 골라볼까나"

그렇게 말하고 고로씨는 안쪽 창고로 들어갔다. 우리 가게도 나름 유니폼이 있다. 유니폼이래봤자 베이비 돌(*주, 주로 시스루의 얇은 여성용 속옷의 일종.)하고 팬티뿐이었지만. 그래도 아가씨마다 정해진 컬러가 있어서 각기 다른 색상의 의상 세트 재고가 창고에 상비되어 있었다.

"사이즈는 프리니까 괜찮겠지만, 신발이 230밖에 안 남았네"

고로씨가 신발 상자와 비닐 봉투를 가지고 돌아왔다.

"230이면 괜찮을 거 같은데? 돌아다닐 것도 아니구"

"하하하. 그럼 샤워하고 이걸로 갈아입고 플로어로 나와. 물수건 챙기는 건 알지?"

"응, 알아. 그럼 갈아입고 나갈께"

고로씨한테서 옷을 받아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우리 가게엔 아가씨 전용의 샤워실이 있다. 핑크살롱 치고는 드문 일이었다. 다른 가게에서는 손님을 상대하고 난 뒤에 아가씨는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낼 뿐이다. 좀 지저분하겠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핑크살롱은 풍속업 중에서도 회전이 가장 빠른 축에 속하는데 서비스 사이사이마다 일일히 아가씨가 샤워를 하고 있으면 가게의 회전률이 뚝 떨어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게에서는 개점 전과 접객 후에 반드시 샤워를 해야 했다. 이건 엄마가 결정한 것. 손님이 아가씨의 몸을 혀로 핥는 건 늘상 있는 일인데 제대로 씻어내지 않으면 당연히 냄새도 냄새지만 불결하기 짝이 없게 된다. 그래서 다소 회전이 나빠져도 꼭 샤워를 하게 한 것이다. 손님 입장에서도 좀 대기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앞 사람의 침이 그대로 묻어있는 아가씨를 핥는 것보다는 깨끗한 게 더 낫다고 이해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촉촉한 몸에서 나는 보디 소프의 향이 남자를 흥분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과연 전설의 넘버 원 핑크살롱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매번 샤워를 하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피부염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보디 소프로 샤워를 해대면 피부에 아무래도 무리가 간다. 그 때문에 아빠는 온 일본을 이잡듯 뒤져 피부염을 방지하는 보디 소프를 만드는 업자를 찾아냈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피부를 지키기 위해 전국을 찾아 헤맬 정도의 정열을 가진 남자는 좀처럼 없지 않을까. 좀 울적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샤워실에 들어선 나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츄리닝과 치마를 벗어 속옷차림이 되자 갑자기 망설임이 들었다. 이걸 벗는 순간 이제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보통 여자애로는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순간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자랑스럽게 핑크살롱 아가씨 일을 했다. 평범한 여성은 분명 아니었지만 늘 아름다웠고 언제나 행복해 보였다. 평범한 게 뭐 대순가. 엄마가 얼마나 멋졌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결심이 섰다. 브라와 팬티를 벗고 알몸이 되었다. 벗은 옷을 락커에 집어넣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알몸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자랑하는 보디 소프를 스펀지에 충분히 묻혀 몸을 깨끗이 닦아내었다. 언니에 비하면 난 꼬맹이에 불과했다. 가슴도 그저 약간 부푼 정도. 허리의 굴곡도 좀 애매한 것이 아무리 봐도 유아 체형. 이 몸으로 정말 손님이 기뻐해 줄까. 순식간에 불안해졌지만 지금 암만 고민해봐도 소용없다.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손님에게 봉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엄마는 물론 예뻤지만 그렇다고 그저 미모로만 넘버 원이 된 게 아니었다. 엄마는 손님을 기쁘게 해주려고 진심으로 노력했다. 지금까지 엄마보다 더 예쁘고 늘씬한 아가씨는 몇 명이나 가게에 있었다. 하지만 결코 엄마처럼 넘버 원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중요한 건 아름다운 몸 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이다. 나도 할 수 있다. 난 전설의 핑크살롱 아가씨 카오리의 딸이니까.





그렇다곤 해도 난 아직 한창 성장기의 중학생. 지금은 이런 유아 체형이지만 좀 더 자라면 달라질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언니 혼자만 엄마의 나이스바디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리 없잖아, 그런 불합리한 경우가 어딨어. 나도 분명 엄마나 언니처럼 늘씬한 몸매로... 아마도.





샤워를 마치고 나와 타올로 물기를 닦아내고는 양 사이드를 끈으로 묶는 타입의 유니폼 팬티를 입는다. 천 조각이 손바닥 크기도 채 안 되고 무지 얇다. 보지 털이 고스란히 죄다 비쳐 보였다. 엉덩이는 절반도 채 가리지 못한다. 가게 아가씨들이 입고 다니는 걸 매일 봐도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정작 내가 이렇게 입고 있으니까 꽤나 부끄러웠다. 뭐 곧 익숙해지겠지만.

그리고 앞으로 여미는 베이비 돌을 걸쳐 입었다. 가슴 아래하고 목덜미를 리본으로 묶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면 가슴은 천으로 가려지지만 가슴 아래부터 배꼽, 팬티까지 훤히 드러나 버린다. 게다가 가슴을 가리는 천도 너무 얇아 유두가 빤히 비쳐 보였다. 거울을 보자 정말이지 너무나 음란한 모습을 한 내 자신이 거기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까 나도 꽤 핑크살롱 아가씨같아 보이잖아. 좋았어. 자신있어. 나도 할 수 있다구.





그런데 고로씨가 가져다 준 신발 상자에서 하이 힐을 꺼내 신어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난 여태까지 하이 힐을 신어 본 적이 없었다. 제 아무리 풍속점 딸내미라곤 해도 어차피 시골 중학교 1학년일 뿐이었으니까. 게다가 사이즈가 큰 탓도 있어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걸 신고 걸어다니다니 말도 안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도 발끝이 장난아니게 아프잖아. 차라리 맨발이 나아. 벗을거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이 힐 못 신겠다고 말했을 때의 언니 반응이 너무나도 뻔했다. 더는 언니한테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분명 조금만 있으면 이것도 익숙해질거야, 라고 결심하고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엉거주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 하이 힐을 신었는데 세련돼 보이긴 커녕 거꾸로 바보같잖아. 어떻게 다들 이런 걸 신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을 수 있는거지.





플로어 입구 옆에 놓여있는 휴대용 바구니에 물수건 케이스로부터 흰색과 노란색 물수건을 두 개씩 꺼내 집어 넣는다. 흰색이 보통의 물수건이고, 노란색은 자지를 닦을 때 쓴다. 노란색 수건엔 위스키가 뿌려져 있어 은은한 향이 났다. 나는 바구니를 들고 마치 줄타기라도 하는 것처럼 위태위태한 발걸음으로 고로씨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간신히 도착했다.





고로씨가 나를 올려다 보며,

"오오, 이거 너무 귀엽잖아. 옷 정말 잘 어울리는데... 근데, 왜 그래?"

고로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저기, 신발 사이즈가 좀"

난처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아아, 그럼 곤란하지.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까 좀 참아볼래? 내일 바로 사 올께"

"괜찮아. 금방 익숙해질거야"

"그래? 하긴, 그리 오래 서 있을 일은 없으니까 괜찮겠지. 그럼 연수 시작할까?"

고로씨가 다정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마침내 내 첫 접객 연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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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으로 핑크살롱 아가씨 일을 하는 딸내미 이야기입니다.

핑크살롱이 뭔지는 다들 아시죠? 입으로 좆물 빼내주는 풍속업계의 패스트푸드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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