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환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16
“앞에 뭔가가 온다!”
“모두 방어태세로! 진영을 갖춰라!”
그러나 그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방에 있던 병사 한 명이 뭔가에 크게 한 방을 맞은 듯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곧장 본대 쪽으로 날아와 떨어졌다. 그 병사의 방패와 흉갑은 엄청 단단한 것으로 맞은 듯이 움푹 들어가 있었고, 그 충격으로 병사는 이미 날아오르기 전에 절명한 듯이 얼굴이 고통과 충격에 휩싸인 채 굳어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안개 때문에 앞에 아무 것도 안보입니다!”
“에이 귀찮아. 다들 비켜있어! 윈드 링(Wind Ring)!”
아이린이 그 자리에서 마법을 시전하자, 그녀를 중심으로 일어난 회오리바람이 순식간에 외곽으로 퍼져나가면서 주변의 안개를 모조리 걷어내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온몸이 얼음으로 이뤄진 괴물들 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병사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의 괴물들은 온몸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얼음조각으로 뒤덮여 있었고, 푸른빛 투명한 몸통 위에 있는 눈과 입에서는 계속해서 하얀 기운을 내품으면서 음침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괴물들은 각자 굵고 기다란 팔로 통나무만한 크기의 얼음 몽둥이를 병사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흔들어 대고 있었다.
얼음 괴물들은 이전의 키메라들과는 달리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이미 안개를 틈타 일행의 코앞까지 접근한 괴물들은 병사들이 채 대응도 하기 전에 얼음 몽둥이를 휘두르며, 병사들 사이를 휘졌고 다녔다. 괴물들이 얼음 몸둥이를 휘두를 때마다 그 주위에선 커다란 타격음과 함께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몇 명의 병사들이 사방으로 나가 떨어졌을 때, 이자벨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군, 뒤로 물러서라! 진영을 재정비해서 상대한다! 아이린, 시간 좀 벌어줘.”
“그거야 일도 아니지. 아예 싹 다 쓸어버릴 테니까 모두 비키라 그래!”
병사들이 뒤로 후퇴하는 사이, 아이린은 다시 한 번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괴물들도 동작이 빨랐다. 아이린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선두의 괴물들이 바로 아이린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투캉!
순간, 날카로운 금속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터져 나온 그 소리에 병사들이나 괴물들이나 영문을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모두가 아이린을 향해 얼음괴물들이 기세좋게 날리던 몽둥이와 그들의 팔들이 그 자리에서 자잘한 얼음 조각이 되어 반짝이며 흩어지는 것을 발견했을 때, 병사들에게선 놀라움의 함성이, 괴물들로부턴 고통의 절규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린의 앞을 막아선 건 다음 아닌 이자벨라였다. 단칼에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낸 이자벨라는 아이린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는 시간 좀 벌라고 했더니, 오히려 저 놈들한테 공격시간이나 내주고 있어?”
“이번 건 발동하는데 시간 좀 걸려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좋아. 기대해보지. 하지만 그 때까지 보호가 필요할 것 같군. 클로에, 아이린이 주문을 외울 동안 방어해 좀 주지 않겠어?”
“아이, 좀 귀찮은데.”
클로에는 이자벨라의 부탁에 마지못해 도와준다는 태도로 아이린 뒤로 다가섰다. 그러는 사이 괴물들은 번갈아가며 그들 앞에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 여자들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지만, 클로에의 ‘드래곤의 축복’ 덕에 아이린은 완벽하게 보호를 받고 있었고, 오히려 공격하는 동작에서 허점을 노출하는 괴물들에게 이자벨라의 매서운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자벨라의 움직임은 마치 우아한 발레동작 같았다. 중장갑을 입었음에도 가볍게 스텝을 밟으면서 뛰어다니는 이자벨라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청아한 나비가 꽃을 찾아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엔 병사들은 떡 벌려진 입을 도저히 다물 수가 없었다. 이자벨라가 춤을 끝내고 땅에 착지하면서 칼을 칼집에 집어넣는 순간, 그 위에 서있던 대여섯 마리의 괴물들이 조각조각 쪼개지며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아이린이 주문을 끝내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이제 끝났어. 그래 이놈들, 이걸 버티나 보자. 서브제로(Sub Zeo)!"
아이린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반원을 그리듯이 양 옆으로 벌렸다. 그러자 아이린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새하얀 기운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괴물들이 있는 쪽으로 뻗어 나갔다.
한바탕 그 기운이 쓸고 지나간 뒤, 일행이 볼 수 있었던 건, 여전히 그 자리에 멀쩡하게 서있는 괴물들이었다. 괴물들은 온 몸에 새하얀 성에를 뒤집어 쓴 채로 화가 단단히 났는지 연신 입에서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 장면에 황당해진 클로에는 아이린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면서 외쳤다.
“아니, 이게 뭐야? 한방에 끝낸다며? 게다가 얼음덩어리들에게 얼음마법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야?”
“야! 이것아! 목 좀 놓고 얘기해! 두고 보면 될 거 아니야!”
그렇게 두 여자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더 이상 그 꼴은 못 봐주겠다는 듯, 얼음괴물들은 병사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꽁꽁 언 발이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는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 중 몇 마리가 억지로 힘을 주자 움직이던 다리가 아예 부셔지면서 중심을 잃은 괴물들은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다른 괴물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쓰러진 괴물들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려던 괴물들은 그들의 꽁꽁 언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할 때마다 힘을 주는 부분들이 조각조각 부셔지며 바닥에 넘어지곤 했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 치는 괴물들의 모습은 마치 끈끈이 덫에 걸린 쥐와 같은 모습이었다.
괴물들의 몸은 바닥에 닿은 부분조차 이젠 거기에 얼어붙어선, 그들이 몸부림칠 때마다 바닥에서 떨어지긴 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몸을 더욱 잘게 부셔놓고 있었다.
잠시 후, 괴물들이 서있던 자리엔 그들의 몸이 잘게 부셔진 얼음조각들만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지들 스스로 박살이 나다니?”
“거봐, 내가 뭐랬어. 머리 좀 쓰라고. 저런 덩치들을 열로 녹이는 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 알아? 오히려 이렇게 얼려 부수는 게 더 빠르다니까. 덩어리가 작아지면 녹이기도 더 쉽고 말이야.”
그러면서 아이린은 괴물들의 잔해를 향해 화염마법을 날렸다. 머리 위로부터 떨어지는 뜨거운 열기에 괴물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도 잠시, 괴물들의 몸은 빠르게 그 자리에서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이린은 자신의 일에 만족을 했는지 두 손을 털곤 웃는 얼굴로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출발해 볼까?”
그렇게 얼음구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생존자를 구하면서 전진을 계속하던 일행은 또다시 경계구역을 지나 이젠 아예 숲이 된 밀림구간 위에 떠있는 구조물들 위를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달리는 구조물 저 아래로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히 펼쳐져 있는 모습은 꽤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늘 올려다만 보던 아름드리나무들을 내려다보면서 마치 하늘을 거니는 듯한 그 느낌은 병사들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게다가 다행히도 그런 상황 덕에 그 구간에 고립되어 있던 병사들은 다른 구간들과는 달리 뭔가의 습격을 받거나 외상을 입은 자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또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일행들은 그런 병사들을 하나하나 구조해가며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젠 그들의 머리 위로 목적지인 거대 수정의 꼭대기 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다.
“그나저나 아까 백작의 칼놀림은 대단하지 않았나?”
“대단했죠. 괴물들을 앞에 두고 혼자 나서기에 무슨 배짱인가 했는데, 백작의 칼솜씨가 그 정도일 줄이야. 나라면 창도끼를 꺼내기도 전에 당했을 거요.”
“참,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데, 세자르, 자네 예전에도 백작하고 같이 전쟁에 참여한 적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때도 지금 같았나?”
“맞아. 정말이지 예전하고 변한 게 하나도 없더군. 그 첼로시니 전투에서도 혼자서 저렇게 상대방 기사들을 조각조각 냈었지. 덕분에 백작의 친위대가 최전방에서 돌격부대 역할 하느라 백작 뒤를 꽁무니 빠지게 뛰어다니는 진기한 광경도 구경할 수 있었지.”
“우와, 대장이 첼로시니 전투에도 참가했었어? 그럼 도대체 나이가 얼마기에......”
“설레발치지 마, 안톤. 나도 그 전투에 참가했을 땐, 백작마냥 아직 팔팔한 20대 청춘이었다고.”
“그래도 대장, 정말 이 직업이 맘에 들었나 보네. 지금까지 이직 한번 안하는 걸 보면..
.....”
“그게 다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아,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런 동정어린 눈빛 좀 거두지 그래. 그렇게 노닥일 시간 있으면, 노만, 안톤 둘 다 주변 경계나 열심히 하라고.”
“뭐, 아직까진 아무 일 없지 않나. 이렇게 사방이 뻥 뚫린 곳에서 키메라들이 기습하는 건 아에 무리고, 설마 자네, 아래에서 나무들이 우리를 공격하려 여기까지 방방 점프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노만의 농담에 주변에서 폭소가 터졌다. 박장대소하지 않는 병사들도 그 말 한마디 덕에 오랜만에 입가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덕분에 잔뜩 긴장해 있던 병사들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거기 뭐 하는 건가? 지금 웃음이나 실실 날리고 있을 때야? 정신 안 차릴래?”
도미노와 부장들의 질책에 병사들은 다시 경계대세를 갖췄지만, 한 번 터진 웃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부장들 몰래 실실 웃던 병사들 중 한명이 뒤를 돌아보다가 순간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저, 저기 나무가 공격해 온다!!!”
그 말이 또 다른 농담인 줄로 생각한 일행들은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병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병사들의 입에선 곧 웃음기가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인가 일행들이 지나온 구조물들이 차례차례 아래 밀림에서 뻗어 올라온 넝쿨들에게 휘감기고 있었다. 계속해서 수많은 넝쿨들이 그 구조물들을 뒤덮자, 구조물들은 하나하나 금이 가면서 조금씩 부셔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일행이 지나온 길을 따라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아악!!! 여기 아래에도 올라오고 있다!!”
누군가의 비명에 자신이 서있는 구조물 아래쪽을 내려 본 병사들은 그들 아래쪽에서도 수많은 덩굴들이 벽을 타고 그들이 서있는 위쪽으로 꾸물꾸물 올라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전, 전군, 전속력으로 이동! 서둘러 이곳을 벗어난다!!!”
도미노의 다급한 명령에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붕괴되기 시작한 구조물들의 행렬은 비록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로 그런 병사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문제는 미로처럼 비비 꼬여있는 구조물들 중에서 올바른 길을 찾느라 일행들이 어쩔 수 없이 군데군데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행들이 짬짬이 발걸음을 멈추는 사이 나무덩굴들의 행렬은 일행들을 바짝 접근해 오고 있었다. 세자르는 루이와 함께 최대한 빠른 속도로 길을 찾고 있었지만, 등 뒤에서 자신들이 지나온 길이 부셔지는 소리가 점점 커져오는 것에 점점 마음이 초조지고 있었다.
“아악! 아이린! 여기 화염마법 좀 날려 줘! 이것들 좀 치우라고!”
갑자기 들려오는 클로에의 목소리에 세자르는 뒤쪽을 돌아다보았다. 어느새 일행들이 있는 곳까지 접근한 덩굴들은 일행이 서있는 바닥까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주변의 병사들은 더 이상 덩굴들이 그들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칼을 뽑아 덩굴들을 잘라내고 있었지만, 본래 전투용 칼인 탓에 벌목작업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안톤이 창도끼를 큰 낫처럼 휘두를 때마다 넝쿨들이 가을 추수하듯이 착착 베어나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이린이 클로에의 말을 따라 주변에서 포위해 오던 덩굴들에게 화염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들의 예상과는 달리 덩굴들은 물러나긴 커녕 오히려 불이 붙은 가지들을 병사들을 향해 흔들어대면서 위협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여한 없이 불구경을 하게 된 병사들이 그 공격을 피해 대거 앞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세자르가 재빠르게 길을 찾아주는 덕에 일행들은 덩굴들이 그곳을 뒤덮기 전에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병사들과 덩굴들과의 기묘한 경주는 계속 되었다. 덩굴들은 차례차례 그들이 휘감는 구조물들을 박살내며 전진하고 있었고, 그 바로 앞에서 병사들은 그런 덩굴들에게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던 고립된 병사들은, 그러나, 일행이 자신들에게 다가올수록 자신들이 서있는 장소 아래에서도 덩굴이 기어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하면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덩굴에 휘감겨 죽거나 추락사하는 보단 일행에 합류하는 것이 더 생존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발을 잘못 디뎌서 혹은 동작이 한발 늦어 부셔진 구조물들과 함께 아래로 떨어지는 병사들도 나왔지만, 대다수는 세자르가 길을 찾는 방법대로 무사히 그 장소를 탈출해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달려 밀림구간을 거의 벗어날 무렵, 앞서 가던 세자르의 눈에 뭔가가 띄었다. 그건 용병 몇 명과 고립된 채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있는 구조물아래에서도 한 무리의 덩굴들이 그들이 서있는 곳을 향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루이! 넌 이대로 일행을 이끌고 탈출해라! 난 잠깐 저기 좀 다녀올 테니까!”
“세자르, 자네 미쳤나? 저들을 구할 시간이 없어! 자네도 저기 갔다간 개죽음 당할 뿐이라고!”
“노만, 걱정 말게! 시간 맞춰 돌아올 테니까 먼저 가 있으라고!”
세자르는 그 말과 함께 일행에게서 벗어나 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주변의 병사들이 그를 만류하려고 했지만, 세자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저 자식, 살아올 수 있을까? 이렇게 죽긴 아까운 남잔데.”
“글쎄. 부하들을 구하겠다는 용기는 가상한데, 솔직히 무모한 짓이지.”
“그래도 저렇게 갈 정도면 뭔가 생각이 있겠지. 운도 찾는 자에게 다가온다고 하잖아”
그렇게 자신들은 아이린이 제공한 공중부유 가마에 편하게 앉아 용병들을 향해 달려가는 세자르의 모습을 보며 세 여자가 수다를 떨고 있을 동안, 세자르는 어느새 고립된 병사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아래쪽에서 뻗어 올라온 나무덩굴들은 그들 주변의 구조물들 또한 휘감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 중 일부가 세자르와 병사들 사이 다리 위까지 치고 올라온 덕에 병사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세자르는 그 너머에 뭉쳐있던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멍청히 서있지 말고, 살고 싶으면 움직여! 이쪽으로 뛰어! 그 다음은 내가 온 방향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어서!”
세자르의 호통에 얼이 빠져있던 용병들은 제정신을 차렸는지 세자르가 건넨 손을 잡고 하나하나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그러나 다른 병사들이 모두 그곳을 벗어날 동안 어린 장은 겁에 질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떨고만 있었다.
장은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그들 주위를 포위하며 올라오고 있는 덩굴더미와 세자르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장, 네가 마지막이다. 이쪽으로 건너오렴.”
“하, 하지만, 세자르씨.......”
“겁내지 마라. 넌 할 수 있어. 내가 잡아 줄 테니 넌 뛰기만 하면 된다.”
“하, 하지만, 세자르씨, 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요!”
실제로 장의 다리는 너무 긴장한 탓에 쥐가 난 것처럼 꿈쩍을 하지 않았다. 세자르는 그런 장의 모습에 숨을 고르더니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장이 있는 곳으로 이미 바닥을 덮은 덩굴 위를 뛰어 넘었다.
“세자르씨, 미쳤어요? 여기 오면 다 같이 죽는다고요!”
“흥, 다리까지 언 주제에 입은 아직 살아있구나. 그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살려고 발버둥이라도 쳐야하는 거야. 영웅이 되고 싶은 놈이 이런 곳에서 시시하게 죽고 싶은 거냐?”
세자르는 장을 들어 올려 등에 업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도 덩굴들은 그들 주위를 착실히 휘감고서 그 일대의 구조물들을 쥐어짜며 박살내고 있었다. 그들이 서있는 바닥까지 금이 가고 있는 상황에 장은 비명을 질렀다.
“우리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에요?”
“거참, 그런 얘기는 살고 나서나 해! 자, 간다!!!”
세자르는 앞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서있던 바닥이 조각나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미 모든 바닥을 나무덩굴들이 뒤덮은 상황은 세자르가 속력을 내기엔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세자르가 밟고 지날 때마다 덩굴들은 꿈틀거리면서 동시에 세자르의 다리를 잡기위해 위쪽으로 가지를 뻗어 올렸다. 거기에 더해 그들 뒤쪽으론 덩굴들에 의해 구조물들이 하나하나 박살나면서 그들이 설자리를 점점 없애오고 있었다.
그런 악조건들 속에서 세자르와 장은 계속 달리고 달려 덩굴들의 추격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거대수정의 꼭대기 높이까지 도달한 본대가 루이가 찾은 출구 너머로 차례차례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학학...... 우리도 저기까지 올라가면 살 수 있어! 자, 힘을 내자, 장!”
이젠 다리가 풀린 장을 내려놓은 세자르는 다시 장을 다독이며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사방의 구조물들이 덩굴에 휩싸인 채로 부셔져 내려가고 있었다. 게다가 동시에 여러 곳에서 진행되는 균열은 전체 구조물의 붕괴를 더욱 가속시키고 있었다.
“자, 이쪽으로!”
“세자르씨! 거긴 출구 방향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저기 올라갈 때까지 출구가 계속 저기 멈춰서 있을 것 같아? 우린 이 공간의 회전 속도를 앞질러야 해!”
그렇게 두 사람은 세자르의 지시대로 그나마 덜 부셔진 바닥 위로 길을 찾아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바로 뒤까지 붕괴속도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시간차 달리기 속에서 두 사람은 간신히 출구가 있는 높이까지 올라올 수가 있었다.
“맙소사! 길을 잘못 찾아 왔잖아요! 출구는 아직 저쪽에 있다고요!”
“나도 알아! 하지만 저기까지 가는 길은 없어! 출구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해!”
“그러기 전에 다 떨어져 죽을 거예요! 우리 더 이상 갈 곳도 없다고요!”
장은 그들이 올라온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의 말대로 이미 그들이 지나온 길은 덩굴들로 인해 부셔지고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서있는 계단조차 계속해서 덩굴들이 타고 올라오면서 한 칸씩 갉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세자르의 말에 장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세, 세자르 아직 멀었어요? 이젠 더 이상 움직일 때도 없어요!”
“이제 거의 다 왔어! 뛸 준비나 해!”
세자르는 자기 다리에 찰싹 붙어있던 장을 떼어내며 말했다. 이미 덩굴들은 그들이 서있는 계단 마지막 한 칸만 빼고는 모든 것을 앗아간 상태였다. 그리고 그 계단마저 덩굴에 서서히 감겨가고 있었다.
“아악, 제발 살려줘요! 이대로 죽긴 싫어요!”
“엄살 그만 좀 피우고 준비해! 저기 온다!”
이젠 세자르의 머리 위에 올라올 기세인 장을 다그치며, 세자르는 뛸 준비를 갖췄다.
“출구가 여기 앞까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고요!”
“누가 그 때까지 기다린대? 중심이나 잘 잡으라고!”
“서, 설마? 안돼요! 악! 아아악!”
세자르는 장의 가벼운 몸을 번쩍 들어 올려선 잠시 간격을 재더니, 그들 근처까지 다가온 하얗게 빛나는 출구 쪽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긴 비명과 함께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꼴사납게 날아가던 장은 다행히 출구 안쪽 벽에 부딪히고는 바닥으로 안전하게 안착했다.
장의 안전을 확인한 세자르는 계단 옆으로 잠시 움직이며 도움 닿을 거리를 만들면서 다가오는 출구 쪽과의 거리와 각도를 재고 있었다. 이미 세자르가 서있던 계단 바닥은 덩굴로 뒤덮인 채로 금이 가고 있었다. 망설일 시간도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세자르는 속으로 행운을 빌며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가 힘차게 발을 내딛을 때마다 그의 발이 닿은 곳이 바삭하며 부셔져 내렸다. 하지만 세자르는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이미 피할 곳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무너져 내리는 계단 끝에서 그는 힘차게 발을 구르면서 출구를 향해 온몸을 날렸다.
그런 세자르의 눈 안에 출구의 하얀 빛이 점점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