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환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14
“우선 저쪽으로 가지.”
“왜 그쪽이지? 그쪽은 안전한 겐가?”
“아니, 저쪽에 우리의 탐험가 루이 씨께서 자네처럼 어쩔 줄 몰라 허둥대고 있는 게 보이거든. 자 가세나.”
세자르는 일행을 이끌고 루이와 다른 용병들이 고립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구조물 쪽으로 움직였다. 세자르는 매번 새로이 구조물과 구조물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이나 벽, 통로가 나올 때마다 미리 작은 주머니 속에 담아온 돌멩이들을 하나씩 꺼내 방향을 확인하곤 했다. 그럴 때면 세자르가 돌멩이들을 던질 때마다 돌멩이들은 어김없이 다른 면이나 방향으로 튀면서 일행들을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세자르와 용병들은 생명줄 같은 돌멩이들의 인도에 따라 계단 중간에서 뒤집어진 옆 계단의 다른 면으로 발을 옮기거나 건너편의 절단된 바닥면으로 뛰어넘고, 심지어는 천정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는(그들 입장에선 바닥에서 천정 방향이었지만) 등의 험난한 여정을 지나 간신히 루이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작디작은 바닥 공간 안에 허용인원을 가뿐히 넘기는 꽤 많은 병사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그곳에서 떨어질지 몰라 그들 모두가 서로에게 꼭 밀착한 상태로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 모습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건너편에서 추락사한 병사들의 시신 사이를 유유히 지나쳐 다가오고 있는 세자르 일행의 모습이 보이자,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지면서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덩그러니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곳에 도착한 세자르는 곧장 병사들 사이에 파묻혀 버둥대고 있던 루이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아직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아직 물어볼게 많은데 벌써 죽으면 섭섭하거든.”
“참 말씀 한 번 다정하시군요.”
“근데 이게 네가 예상한 ‘마법의 돌’의 효과냐?”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살아생전 이런 엄청난 구경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지. 근데 구경하자마자 바로 저 세상 구경도 덤으로 할 작정이었냐? 여기 박혀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보시면 알잖아요.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고요. 병사들이 언제 제 말 들은 적이나 있나요.”
“나 참. 자칭 탐험가란 놈이 이정도 인원도 통솔 못해 어쩔래? 그러니까 네가 아직 풋내기란 소리를 듣는 거다. 철 좀 들어.”
“그렇게 충고할 시간 있으면,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는 게 더 낳지 않겠어요?”
“그래 말 잘했다. 너 같으면 여기서 어떻게 탈출하겠냐?”
“방금 오신 것처럼 저기 끝까지 올라가면 길이 나올 것 같은데요.”
루이는 머리 위 거대 수정의 끝이 뻗쳐있는 천정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곳에선 마치 수정에게 후광을 비추듯이 밝은 하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세자르가 눈을 가리곤 좀 더 자세히 쳐다보니 그 빛이 들어오는 곳에는 뭔가 통로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기까지 도달하면 이 상황도 끝이라는 건가?”
“그렇다고 봐야죠. 이 공간 어디에도 저기 말고 빛이 들어오는 곳이 없으니까요.”
“좋아. 그럼 가봐야지. 다들 이동 준비! 그리고 주변에서 들고 다닐 만큼의 돌멩이들을 챙겨라. 그게 우리들의 목숨 줄이라 생각하고.”
“세자르, 그래도 좀 쉬엄쉬엄 가는 게 어떤가. 갈 길도 멀고 다들 계속해서 뛰어다니느라 고생이 말도 아닌데.......”
“노만, 피해!”
세자르는 그 말과 함께 앞에 있던 노만을 밀쳤다. 그와 동시에 둘 사이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몇몇 구조물 너머에서 오크 몇 마리가 화살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망할 자식들 같으니. 감히 기습을 해?”
노만은 바짝 약이 올랐는지 화살을 꺼내 오크들이 있는 쪽으로 한 발을 날렸다. 하지만 화살은 전과 마찬가지로 공중에서 이쪽저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지그재그로 날아가더니 결국 그곳에 닿기도 전에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노만, 여기선 그런 공격은 안 먹혀요.”
“뭐야? 그럼 어떻게 하라고?”
“여기가 달리 마법 공간이겠어요. 사원에선 사원법을 따라야죠.”
루이는 그 말과 함께 두 손을 모아 주문을 외웠다.
“파이어 애로우!”
루이가 두 손바닥 사이에서 만든 불화살은 루이가 활 쏘는 시늉을 하자 곧장 직선을 그리며 오크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오크들은 불화살이 날아오는 모습에 혼비백산하면서 급하게 뒤쪽으로 물러났다.
“모두 빨리 여기서 벗어나죠. 제가 언제까지 마법을 날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말에 일행들은 세자르의 지시에 따라 재빨리 그곳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간간이 날아오는 오크들의 화살공격은 방패를 들어 방어하는 걸로 충분한 정도였다. 게다가 세자르의 길 찾기 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해서 나중에는 짐작만으로도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알아챌 정도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오크들의 화살 공격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곤 했다. 때때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놈들은 사수들이 화살을 날려 정리할 수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길을 나아갈 때마다 오크들의 공격은 점점 더 사나워질 뿐이었다.
노만은 그 와중에도 틈틈이 오크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면서 말했다.
“저놈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이건 잡고 잡아도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 같구먼.”
“저건 기어 나온다는 것보단 어디서부터 소환된다는 게 더 맞는 듯 하군요. 저길 보세요.”
루이는 방금 전에 노만의 활에 오크들이 널브러진 곳을 가리켰다. 과연 그곳에는 쓰러진 오크들이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곧 환한 파란빛과 함께 소환된 새로운 오크들이 그 자리를 매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방향 앞쪽에서도 동시에 여러 구조물들 위로 줄을 지어 오크들이 소환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불어나는 오크들의 숫자에 병사들은 당황해했지만, 세자르는 그런 병사들을 독려했다.
“괜히 저런 것들에게 신경 쓰지 마라. 저것들은 단지 우리 발을 묶어두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일일이 상대하느라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마라.”
세자르의 말에 병사들은 방패로 자신의 몸을 가리면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애물 달리기하듯이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오크들의 공격을 피하고, 구조물 사이를 건너 뛰어가면서 고립된 병사들을 구해 거대 수정의 중간정도 올라 왔을 때쯤, 일행은 맞은편에서 다른 일행들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그룹을 이끌고 오는 사람들은 세자르의 예상대로 아이린과 도미노 그리고 이자벨라였다.
“다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당신들도 괜찮아 보이는데. 예상 외로 피해도 적은 것 같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대마법관님. 그쪽은 어떻습니까?”
“여기도 아이린님과 클로에님 덕분에 별 탈 없이 이곳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도미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절대방어능력을 지닌 클로에의 ‘드래곤의 축복’이나 아이린의 마법과 지식이라면, 여기까지 무사하게 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그쪽 탐험가는 출구를 찾긴 한 건가?”
“저기 머리 위에 보이는 수정 끝자락까지 가야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절반만 더 가면 되겠군. 서두르지.”
이자벨라의 명령은 언제나처럼 짧고 명쾌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그만큼 병사들에게 확신을 주고 사기를 올리는 데 효과적인 말은 없어보였다. 그녀의 말에 잔뜩 기합을 넌 병사들은 서둘러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노만이 세자르에게 다가왔다.
“근데 말이야, 세자르. 여태까지의 일로 짐작해보면, 이렇게 일이 순순히 진행되게 좀 불안하지 않나. 이쯤 되면 얼마 안 있어 또 뭔가 무시무시한 게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말게. 말이 씨가 된다지 않았나.”
그 말과 함께 세자르는 고개를 돌려 루이에게 물었다.
“루이! 아까 여긴 대규모 마법을 실험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하지 않았냐?”
“근데요?”
“근데라니? 지금까지 여기서 벌어진 일들은 그런 큰 마법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럼 정말 이게 다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 말은 달리 뭔가가 더 있다는 거냐?”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여태까지 수순을 봐선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게다가 아직 절반이나 남았잖아요.”
그 순간, ‘쿠궁’하는 큰 소리와 함께 짧지만 강한 진동이 일행을 덮쳤다. 병사들은 다들 놀라면서도 얼른 균형을 잡으며 무슨 일인가 싶어 재빨리 주변을 돌아다보았다. 동시에 그들이 있는 원통형 공간의 벽에서 부터 뭔가가 팍하고 튀어 올라왔다.
그것은 화염이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치솟아 오른 화염은 곧 일행들이 서있는 곳의 아래쪽 벽면을 순식간에 뒤덮으면서 사방을 지옥같이 뜨거운 열기와 모든 걸 집어삼킬 듯이 넘실거리는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이 있는 곳과 각각 다른 쪽 벽면에는 구조물 밑으로 엄청난 속도로 불어난 물이 얼면서 생긴 얼음위로 눈보라가 치거나, 강한 바람과 함께 회오리바람이 날아다니고, 순식간에 밀림을 연상시키듯이 식물들이 들어차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원통형 공간이 눈 깜짝할 사이 마법으로 가득 채워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경외감과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이런, 아무리 마법공간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아무래도 자네 말이 진짜로 씨가 된 것 같군.”
“예끼, 이 사람아. 여기서 그런 농담이 나오나?”
“그럼 이 상황에서 달리 할 거라도 있나?”
“와우! 이건 4대 원소의 화려한 향연이군요. 알베르토가 준비를 많이 해놨는데요. 마법사들 입장에선 진짜 행복하겠어요.”
“루이, 넌 이런 순간에도 한가하게 그런 감상이나 하고 있냐?”
“글쎄요. 지금 대장 말처럼 이 장관을 감상하는 거 외에 뭘 할 수 있겠어요? 이건 우리가 감당하기엔 규모가 너무 크잖아요.”
“그렇지만 난 이런 곳에서 개죽음 당하고 싶진 않다구.”
그렇게 말하는 노만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병사들의 반응에 비하면 약과였다. 여기저기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신께 기도를 올리거나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은 자들이 속출했다. 심지어 눈물을 질질 짜는 자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그런 병사들의 얼굴을 백지장마냥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