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시간(3)
일탈의 시간 (3)
모텔방까지 입성하는데 성공한 나와 A양.
나는 최대한 어색함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다행인건, 내 외모가 워낙 선한 인상에다가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굉장히 오랜친구같은 편안한 대화였다는 것이었다.
나의 노력과 이미지의 결과물이 바로 A양의 태도였다.
A양은 침대하나와 컴퓨터 하나 텔레비전 하나 있는 조그만 모텔방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순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군복안의 물건이 꿈틀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었다.
나는 군인이고. A양은 여고생.
행여나 내가 잘못하면 이건 바로 인터넷뉴스감이고, 군법의 강한 응징이 돌아올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어디가서나 군인은 약자니까...
그래서 나는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며 냉장고에 내가 마시려고 사둔 콜라를 컵에 따라 A양에게 건넸다.
"목마르지? 손님이 오셨는데 음료수라도 내와야지."
사실 이미 A양이 탄산음료에 정말 약하다는 것은 아까 입증을 한 상태였다.
아깐 정말 홀짝홀짝 손에 들려있는 사이다를 자기도 모르게 다 마신 A양의 얼굴이 점차 발그레해지면서 아주 미묘하게 발음이 새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탄산에도 취한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구나하는 생각에 방에 있던 콜라를 꺼내든 것이었다.
당연히 A양은 콜라를 받자마자 사양을 했다.
"에이. 나 콜라 못마신다니까요~"
"에이. 아까 그런말 해놓고 사이다 한캔 다 마셨자나. 그냥 마셔마셔~ 아니면 맥주마실래?"
나는 내가 혼자 마시려고 사다둔 맥주병을 한 꺼내들면서 둘중에 하나 고르라고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미성년자인 A양은 어쩔 수 없이 술보단 콜라를 고르고 말았다.
사실 난 술을 고르기를 바랬지만...
생각보다 더 순진한 것 같았다. 요즘 고딩중에 사석에서 미성년자라고 술 안마시는 애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촌구석에서 살면 좀 덜 까지는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며, 컵에 따라준 콜라를 일부러 건배도 해보고 별의별 수를 다쓰면서 한컵을 다 먹이고 말았다.
그러자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아까보다 좀더 빨리 마셔서 그런걸까? 아니면 누적되서 그런걸까?
살짝 풀린 A양의 눈매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어쩌면 밤이 늦어서 졸려서 그런걸수도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조금이라도 경계심이 더 누그러졌을테니
나는 군복을 뚫고 나오려는 나의 물건을 최대한 진정을 시키면서 분위기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전까지 한번도 여자를 사겨본적이 없기에 그런 므흣한 분위기로 진도를 빼는 방법따위는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대화가 헛돌고, 의미없는 대화만 가끔씩 하다가 결국 A양이 시계를 보더니 일어나고 말았다.
"이제 갈래요. 너무 늦었어."
"어? 그냥 자다가? 밤늦게 위험하자나?"
"이동네 하나도 안위험해요. 군인아저씨들 많이 있는데 뭐."
차마... 그 군인이 더 무서운거라고 말하기엔, 내가 정작 군인이라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집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일이 무산되는 것을 느낀 나는 결국 또다시 아침에 했던 가벼운 절망을 느끼고 말았다.
길을 바래다 준다고 하며 같이 나오긴했지만, 이미 집에 가는 방향이다.
나는 이제 다 포기한 마음으로 아무런 의도도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고, 어느새 주변은 상가지역이 끝나고 주거지로 이동하느 길목에 있는 어두운 굴다리 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결국 아까 혹시나하고 장난삼아 준비해놓은 마지막 무기를 꺼낼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게 마지막이다.
사실 나는 아까 책방에 가기전에 빵을 사먹으면서 케익옆에서 팔고 있던 불꽃놀이 스틱을 사두었었다.
옛날에 가지고 놀던 생각도 나고 할거없으면 가벼운 이벤트성 아이템으로 써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사두었던 것이다. (콘돔도 준비해놨었다.)
이미 마음을 비운 나는, 이미 돈주고 산 물건이니 그냥 다 써버리고 욕심을 버리자는 생각에 어두운 굴다리 밑에서 그것을 꺼내고 A양에게 불을 붙인 불꽃놀이 스틱을 쥐어주었다.
파바바박! 하고 불꽃을 내며 타들어가는 소모성 아이템이다. 하나에 천원짜리라 네개정도밖에 안샀던 건데....
"우와아... 나 이런거 처음해봐요! 이쁘다아..."
"어? 진짜?"
의외로 이것이 A양에게 잘 먹힐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갑자기 꺼낸 천원짜리 불꽃놀이 스틱이 분위기를 낭만적인 커플의 데이트 분위기로 변화시켜버린 것이다.
아... 스틱을 좀더 많이 사둘걸....하는 후회가 뒤늦게 따라왔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겠다. 하는 생각에 나는 적당히 분위기 있는 화두를 꺼내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갑자기 고백을 한다던가 하는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눈치없지 않았다.
좀더 진지한 얘기. 살짝 무거운 얘기. 힘든 얘기.
안힘든 집이 어디있겠냐만은, A양도 아무래도 집에서 힘든 사정이 있나보다.
살짝 울먹거리며 자신의 힘든 얘기를 꺼내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게 보였다.
스틱 4개가 다 타들어가고 주위가 다시 어둑어둑해질때쯤에 A양의 어깨에는 다정하게 내 팔이 둘러져있었다.
명분은 슬퍼하는 여자애를 달래주는 것이었고.
나는 처음 여자를 안아봤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격해하고있었다.
속으로는 이대로 키스까지 하는거다! 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우울하게도 나는 대체 어떻게 포옹에서 키스까지 연결시켜야할지 감을 못잡고 있었다.
한참동안이나 A양을 보듬어 안으며 대화를 나누던 나는 결국 또다시 이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다.
잠시 후, A양은 내 품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이제 갈께요. 아... 오늘 이상하다. 콜라 너무 마셔서 그래."
확실히 콜라의 덕을 본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난 실패했지...
그렇게 우린 헤어지고말았다.
모텔방으로 허탈하게 돌아온 나는 무진장 내 자신을 욕하고 있었다.
멍청이! 머저리! 병신아! 줘도 못먹냐?!
나는 승질이 나서 이불 덥고 자버렸다.
하지만 아침이 되었다.
".....으음...."
"일어났어요?"
"....어?"
갑자기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나는 잠이 확 깨버렸다.
"어? 벌써 왔어?"
"일찍 온다고 약속했자나요. 나 약속 원래 잘 지킨다니까요?"
시계를 봤다.
아침 7시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는 A양을 쳐다봤다.
정말이다.
약속 잘지킨다.
새벽1시에 집에 들어갔는데, 7시에 돌아왔다.
못해도 6시에는 일어나야 되니까...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자고 나와서 내가 묵고있는 모텔방을 찾아서 문열고 들어온 것이다.
나는 잠이 덜깨서 이게 꿈인지 뭔지 헷갈리는 기분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표정으로 A양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헐.... 너 대단하다..."
"그쵸?"
"응.... 진짜..."
나는 급히 잠을 깨기 위해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대충 입고 있던 바지를 추스렀다.
상의는 국방색 런닝만 입고 있었지만 이정도는 괜찮겠지...
잠이 덜깨서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지만, 그정도쯤이야.
눈떴는데 옆에 귀여운 여자애가 있는 상황에 군인정신이 발휘되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이것저것 잠은 잤냐 밥은 먹었냐 배안고프냐 이런저런 말을 하며 A양에게 말을 걸었다.
A양은 어제 내 품에 안겨서 눈물을 글썽였던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밝은 표정으로 나랑 얘기를 했다.
하지만 역시 날이 너무 일찍이었을까...
아무리 옆에 귀여운애가 있어도 한계라는 것이 있나보다.
나는 너무 졸렸고, 어떻게든 잠을 깨려고 켜져있던 컴퓨터에 시선을 돌려서 싸이월드창을 키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곧 할말이 떨어질 것 같아서 재밌는 사진이라도 찾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묵혀뒀던 유머사진들 엽기사진들을 게시물중에서 찾다가, 이제 A양에게 보여주려고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자 봐봐. 이거...."
"........."
어느샌가 그녀는 침대위에 나를 향해 누운채로 잠이 들어있었다.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조용히 그녀의 모습을 쳐다봤다.
나의 시선이 곤하게 잠들어있는 그녀의 앳된 얼굴에서.... 그녀의 볼륨있는 가슴으로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었다.
잠이 결국 완벽하게 깨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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