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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鬼椿 오니츠바키 3-6


제6화


류지와 만나기 위해 아침부터 허겁지겁 외출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아이라인은 선명하게, 긴 속눈썹은 한층 더 강조하고, 눈썹은 가늘고 약간 날카롭게 정돈하고, 입술에는 요염한 짙은 주홍색 루즈를 발랐다. 류지의 기호에 맞춘 화려하고 약간 진한 메이크업이었다. 손가락으로 립글로스를 입술에 덧씌운다. 옅게 반짝이는 입술 빛이 한층 더 화려한 인상을 주었다. 조금씩 거울안의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나간다. 또다른 나로... 카즈야가 모르는 또 한 사람의 나...
"잘 어울려. 딱 내 취향인데. 지금의 유카 그 자체야. 이제부터는 그 얼굴로 날 즐겁게 해달라구"
시작은 류지의 명령이었다. 류지군과 만날 때는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음란하기 짝이 없고, 수치라고는 모르는, 혐오스러운 누군가... ,그런 여자가 된다... 출구가 안 보이는 괴로운 현실로부터 도피하듯, 지금은 능숙하게 이런 메이크업을 하게 되었다. 청초한 분위기의 내츄럴 메이크업 이외에는 취미가 없었던 유카가 어느새 자신을 화려하게 꾸밀 수 있게 되어갔다.
준비를 끝내고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은 없었다. 벌써 오전 9시를 지나고 있었다. 류지와 약속한 날, 이 시간까지 호출이 없는 건 처음이었다. 보통은 아직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부터 불려가 류지의 아파트에서, 러브호텔에서, 골목 안이나 맨션 비상계단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범해지곤 했다. 만나자마자부터 능욕의 손은 잠시도 쉬지않고, 쾌락을 계속해서 주입당해 한밤중이 될때까지도 놓아주는 법이 없었다. 그것이 당연한 하루 일과라고 어느덧 생각하게 되었다.
안도하는 마음 한편으로 뭔지 모를 텅 빈 기분이 들었다.
어제.. 카즈야를 만났다...
연인의 얼굴이 떠오르자 마음 속이 안타까움으로 꾹꾹 아려왔다.
류지와 만나는 날이면, 류지가 바라는 색깔로 물들어 자신이 변해간다. 조금씩 확실히 변해간다. 이대로는 분명... 마음과는 정반대로, 류지의 격렬한 능욕에 순응하는 육체를 따라 머지않아 마음마저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었다. 혼자서는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카즈야를 만나고 싶었다. 그이의 따스한 품 안에서 이런 불안을 모두 잊고 싶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없어서, 적어도 잠깐만이라도... 며칠전처럼 잠자는 얼굴만이라도.. 그저 멀리서 뒷모습만이라도... 그런 생각으로, 마음의 버팀목을 가지고 싶어서, 연말을 맞아 사람이 거의 없는 캠퍼스로 향했다. 그런데 캠퍼스 한 구석에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카즈야와 마주쳐 버렸다.
"어째서 그런거야, 나..."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머리를 움켜쥔 유카가 긴 탄식을 쏟았다. 얼굴을 본 순간 그만 머리속이 하얘져 버렸다. 그이의 시선을 받는 순간,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크게 뛰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고 몸이 떨려왔다. 마음속 깊이 자신을 신뢰해 주었던 연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배신하고.. 누구보다 소중한 연인을 잊고 육욕에 빠져버렸다. 이런 내가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자신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 도망쳐 버렸다. 뭔가 말하려고 하던 카즈야를 피해 도망쳐 버렸다. 카즈야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꼭 껴안고 싶어... ,그런 마음하고 반대로, 그이에게서 등을 돌려 달아나 버렸다. 또, 잔인한 짓을 해버렸다... 정말이지 최악이야, 나... 이젠 그만 사라져 버리고 싶어... 나 같은 여자는.. 이따위 인간은... 차라리 그냥 이대로...



정오가 지났는데도 류지에게서 전혀 연락이 없었다.
혹시 류지군에게 무슨 사고라도...?
그저 막연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마노의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뭔가 하고싶단 생각도 들지 않고, 뭘 해도 침착하지 못하고,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오후의 조용한 실내에서 벽걸이 시계의 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다. 주방 테이블에 엎드려 울리지 않는 휴대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 류지군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어?... 바라고 있는거야?!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시계 바늘이 정확히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그럴리가... 없잖아... 그러나 머리속엔 류지의 강인한 육체가, 글자 그대로 쾌락의 포로가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라고 있긴 뭘... 더 이상 카즈야를 배신할 수는... 한편으로, 몸 깊숙한 곳으로부터 저항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솟구친다. 류지에게 안겼으면 하고 애타게 바라는 자신이 있었다. 살을 어루만지는 류지의 단단한 손가락이, 유방을 짓눌러 뭉개는 두꺼운 가슴팍이, 몸 속 깊숙히 가차없이 파고 들어오는 뜨거운 살덩어리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을 애써 지우려는듯 읽다 만 원서를 펼쳤다. 마음을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류지를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깨닫는다.
-내가 선배한테 접근한 건, 그녀석을, 선배의 그이를 괴롭히기 위해서야...-
류지군이 나를 안는 이유는 "복수의 게임"이니까야... 날 호출하는 것도 카즈야를 상처입히려고 그러는 거고... 단지 그것뿐.. 그런 걸거야... 그런데... 그날 밤, 공원에서의 사건을 잊을 수 없었다.
-잘도 내 유카를... 용서못해... 감히 내 여자를... 죽여버리겠어!-
류지군, 그렇게 말했었지? 날 지켜줬어? 도와준거야?
-잘도.. 감히..-
-나.. 나의..-
-소중한..-
... 그 말 뒤에 무슨 말이 이어지는 거야? 류지군은 뭐라고 말하려고 그랬지? 중년남자를 흠씬 두들겨 패고 쫒아버린 뒤에 류지는 유카의 몸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 유카가 옷을 걸치자마자 아무말도 없이 껴안았다. 아직도 떨고 있던 유카를 아플 정도로 세게 껴안아 주었다. 그 모습에서, 한계를 모르고 능욕을 거듭해 오는 평소 류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유카는 혼란스러웠다. 같은 곳에서 사고가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실내로 불어들어와 연인과 둘이서 함께 골랐던 커튼이 흔들거렸다. 새어들어오는 햇빛이 황혼이 가까워진 것을 알렸다.
"아아.. 하윽..."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으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맨살 위에 입은 스웨터가 가슴의 부푼 곳하고 스쳐 달콤한 아픔이 온 몸으로 퍼져갔다.
"하아앙... 시,싫어... 이런거"
스스로도 분명히 느낄 정도로 유두가 딱딱하게 응어리지고 있었다. 만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자신의 몸이 누구 것인지, 유카의 몸은 류지 소유라고, 그걸 잊지 않도록 류지가 만들어준 "주의사항"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쾌락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처음엔 약간의 아픔과 위화감 정도로 무시할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것이 달콤한 욱씬거림으로 변해 조금씩 쌓여가 이제는 크게 넘실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거.. 이런 짓... 변태같애... 유카는 자신의 몸을 꼭 껴안고 다시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입력 미스인가..."
아마노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대형 디스플레이에 몇 개의 3D 모형과 에러메시지가 스크롤되고 있었다. 프로젝트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잠깐 짬을 내어 연구실로 돌아와 예정보다 늦어지는 유전자 해석 시뮬레이션의 공정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저지를 리 없는 단순한 실수였다. 다시 처음부터... 스스로도 집중력이 떨어진게 느껴졌다. 그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곧 프로젝트의 개시가 코 앞인데...
조그맣게 한숨을 쉬며 아마노는 "잠깐 밖에 나가... 커피 좀 마시고 올께요". 꼭 누구에게 알리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돌아 보지도 않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름투성이의 백의차림 그대로 연구실을 나섰다.
"카즈야 녀석, 꽤 지쳐보이네"
"아무리 녀석이 없으면 진행이 안되는 연구라곤 해도... 줄곧 일에만 파묻혀있으니까. 게다가... 너도 혹시, 그 소문 들었어?"
"아아... 들었어 들었어. 늘 자랑하던 애인 얘기말이지? 다들 쑥덕거리던데"
"너무 하지 않냐, 그 여자... 카즈야를 바보취급하고..."
"진짜? 디게 사이 좋아 보였는데..."
"뭐 그런 모양이야. 카즈야 요새 기운도 없어 보이고"
"그런 여자, 용서가 안 된다, 난"
연구실의 대학원생 몇몇이 목소리를 낮춰 소근소근댄다. 복사기에 종이가 걸려 한바탕 난리를 피우던 마리에가 "잠깐, 당신, 이거 좀 고쳐놔줄래?", 마침 옆을 지나던 학부 1학년생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아마노의 뒤를 쫓아 나갔다.
"어? 자,잠깐만요 선생님! 저, 다음 시간 수업인데요!"



이학부 연구동 옆에 있는 조그만 휴게실에서 아마노는 벤치에 걸터앉아 정문으로 이어지는 가로수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판기만 하나 덜렁 놓여있는, 사람의 왕래도 적고 일단 지붕도 있어서 비바람은 대충 막아주는 쉼터였다. 완전 금연시설인 연구동 밖에 있어서 언젠가부터 흡연자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장소였다. 아마노도 요새 이 곳을 자주 찾았다.
앞으로 1주일만 있으면 12월도 끝이다. 해가 바뀐다. 자켓도 걸치지 않고 밖에 나왔기 때문에 얼어붙는 듯한 북풍이 살을 에이는 듯 했다. 잔뜩 찌푸린 하늘위로 어두운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날씨면 밤엔 비든 눈이든 내릴 것 같았다.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백의 포켓에서 캐스터 마일드(*주, キャスターマイルド, 일본산 담배의 하나. 타르 5mg 니코틴 0.4mg 세금포함 410円. 뱀발이지만 소득수준을 따져볼때 한국 담배가격 결코 싼게 아니라는-.-)를 꺼내 물고 더듬거리는 손으로 불을 붙였다.
"콜록 콜록..."
몇 번을 피워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콜록거리는 아마노의 손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담배를 빼앗아갔다.
"기가 막혀서.. 이런거나 피우고. 다신 이러지 마요"
"아... 선생님"
"아마노군, 대체 갑자기 담배는 왜"
재털이에 담배를 비벼끄면서 물었다.
"아뇨, 별로... 이유같은거 없어요...". 쉰 목소리였다. 마리에가 자판기에서 커피 두 개를 뽑아왔다.
"그런거면 더더욱 그만둬요. 그러니까,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가끔씩은 숨도 돌리고 좀 쉬어요. 그렇게 초조해하기만 해선 쉽게 풀릴 일도 자꾸 꼬이기만 한다니까". 상냥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아마노에게 커피를 건냈다.
아무말 없이 두 사람은 커피를 홀짝였다. 더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리에의 다정한 염려가 느껴졌다. 프로젝트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기일처럼 걱정해주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유카 이야기는 꺼낼 수가 없었다. 가족을 잃고난 뒤로 유카이외의 사람에게는 마음을 허락해본 적이 없었다. 유카도 자신에게만은 거짓없는 본모습을 보여주었다. 힘들 때에도, 괴로울 때에도 유카의 웃는 얼굴과 상냥함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아마노에게는 오직 유카만이 특별한 존재였다.
그래서 지금 아마노는 마리에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어도 유카이외의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을 몰랐다.
어제 이 장소에서 유카와 마주쳤었다... 우연이었다. 남에게 평소의 자신을 연기하는게, 평정을 가장하는 게 힘들어서, 혼자 있고 싶어서 여기 나와 있었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 눈 앞에 유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먼저 "유카!"라고 목소리가 나왔다. 유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당황해서 등을 돌리더니 잰 걸음으로 달려가 버렸다. 유카... 왜 그러는거야?... 뒤쫓아 갈 수가 없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고, 가슴이 아프게 조여왔다.
유카가 날 피했어!?... 유카가 날 거절한거야!?... 하지만 어째서, 나를?... 빌어먹을,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등 뒤로 류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연인이 능욕당하고, 그녀를 빼앗기고, 그렇게 궁지에 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녀석이 한껏 조롱한다. 이대로는, 유카는... 어떻게든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잇따른 출장으로 호텔 숙박이 계속되고, 연구실에 줄곧 묶여있는 바람에 유카와 만나는 시간을 만들기는 커녕 집에도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바쁜데도, 잠시라도 유카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걱정되고 걱정되서 견딜 수가 없는데, 류지에게는 빚도 있고, 그저 팔짱만 낀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건지, 무사히 잘 있는건지... 유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휴대폰을 꺼내고서는, 뭐라고 말하지?... 류지로부터 구해낼 수도 없는 내가,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하지?... 시종일관 시선도 맞추려 하지 않고, 아무 이야기도 하려고 하지 않던 유카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도저히 통화버튼을 누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면 세탁물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고, 청소도 항상 깨끗이 되어있고, 옷장의 옷도 전부 겨울 옷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전부 다 유카가 해 주고 있었다. 그건 알고 있었다. 며칠전 새벽녘에 귀가했을 때에는 유카가 자신의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나가고 없었지만 아침식사가 정성껏 차려져 있었다. 만날 수 없는데도,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는데도, 아직까지 두 사람의 정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만큼 유카가 자신을 피해 도망치듯 떠난 것이 쇼크였다.
아냐, 포기하면 안돼! 그럴 리 없어, 분명 그녀석이 "카즈야와 만나지 마"라고 명령했다던지 한게 틀림없어. 그때 결심했잖아, 유카를 믿는다고. 무슨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바로 옆에 마리에가 있다는 사실도 잊고 아마노는 의심에 짓눌려 무너지지 않으려 애써 노력하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옆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리에가 침묵을 깼다. "무슨 생각해? 아마노군...",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아마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지난 번 이야기, 생각해 봤어요?"
지난번에 사츠키를 구슬려, 마리에는 아마노의 고민에 대해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일전에 연구실에서 유카와 아마노의 섹스장면을 훔쳐보고 있었던 사카키사와라는 이름의 학생이 사츠키와 공모해서 함정을 파 아마노로부터 유카를 빼앗아 갔다는 것. 그리고는 유카를 마음대로 희롱하고 있는 것. 그것때문에 아마노가 심하게 괴로워하고 있는 것... 그러나 마리에에게는 아직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여기보다 연구장비도 더 잘 갖추어져 있고, 당신처럼 열심히 연구에 노력하는 젊은이도 많아요. 앞으로 연구해 나가는데 있어서 좋은 자극이 될텐데"
"하아..."
마음이 딴데 가버린 듯한 아마노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리에는 "내년 봄부터 나, 이과연구소 요코하마 브랜치에서도 연구실을 하나 또 맡게되요. 저쪽도 그렇고 여기까지 나 혼자선 도저히 감당 못해. 그래서 T공대 쪽은 나중에 아마노군에게 맡길까 하는데"라고 계속했다.
"그런.. 나같은게... 게다가 아직..."
"학위라면 곧 따잖아. 적만 여기 W대에 남겨두고 졸업연구도 저쪽에서 정리하는 편이 나아요. 어느 쪽이든 어차피 심사하는 건 나니까. 아마노군이라면 최우수논문 확정이고". 일단은 이걸로 이야기를 일단락짓고, 마리에는 한 호흡 쉬었다가 목소리 톤을 조금 낮춰 말을 이었다.
"여기를 떠나는 편이... 아마노군이 조금이나마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차가워진 커피캔을 한꺼번에 비우며, 신음하듯, 아마노는 그렇게 대답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간신히 핸드폰이 울렸다. 류지의 전화였다.
"유카, 기다렸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아르바이트니 연초 시험이니 하는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다. 무슨 일이지?... 다른 때 같았으면 곧바로 "나와"라고 할텐데... 류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마치 조건반사처럼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혹시 나, "나와"라고 류지가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류지에게 불려 나가길 갈망하는 자신을 깨달았다.
갑자기 대화가 뚝 끊겼다.
"유카, 나 만나고 싶어?"
"으..."
냉정하기 짝이 없는 단호한 말투였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분했다. 그러면서도 그 말을 애타게 기다렸던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왜 대답이 없어? 날 만나고 싶은 거냐고 묻잖아"
"...네"
저절로 침이 삼켜진다. 스스로도 느껴질만큼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안기고 싶어?"
그래... 류지군은 날 초조하게 만드는거야... 날 시험하고 있어... 그 속셈을 빤히 알면서도, 자신이 너무나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네"
쾌락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사로 류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 제대로 "안기고 싶어요"라고 말해봐"
류지의 목소리가 유카를 조롱하는 경박한 음색으로 바뀌었다.
"안기고 싶... 습니다"
저항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너무나 감미로와서 참을 수가 없는 쾌락이 몸에 새겨져 있었다.
"좀더 감정을 담아서 말해봐. 내 장난감이잖아, 장난감답게 부탁해봐. 어차피 하루종일 질질 싸고있었을 거 아냐.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오나니라도 했나? 대낮부터 바이브를 쑤셔넣고 즐겼어?"
"그,그런 짓... 안했어요"
"그럼, 해. 지금 당장 네 야한 소리 들려줘"
"네... 알았어요..."
주저하지 않고 빈 왼손이 스웨터 위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흑.. 아아아.."
움켜잡은 유방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민감해져 가볍게 만지기만 했는데도 찌릿, 저리는 듯한 전류가 일어났다. 난... 장난감인거야... 역시 류지군 소유의 장난감에 불과해...
"아아앙.. 하아아.. 하으윽.."
손이 곧장 스웨터 안으로 기어들어가 풍만하고 보드라운 젖가슴을 쥐고 흔들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민감한 유두를 섬세한 터치로 이리저리 굴린다. 비단처럼 매끄러운 살결은 뜨겁게 달아올라 안타깝다는듯이 허리를 이리저리 뒤틀면서 허벅지를 꼭 붙이고 비벼대기 시작했다. 하반신이 녹아내릴 것같은 달콤한 욱씬거림이 전신으로 퍼져갔다.
"아무래도 "그거" 마음에 들었나봐. 과연, 음란한 유카는 반응도 참 빨라요. 그거 앞으로 항상 하는걸로 결정했어. 알았어? 결정했다구. 야, 뭐해? 말 좀 해봐. 하하핫, 실황중계 해보라구"
"지,지금 왼쪽 가슴.. 주무르고.. 그래서.. 기분 좋.. 기분 좋아요... 내 손이 아닌거 같아요.. 아아아아... 더, 좀더 거칠게.. 아아.. 격렬하게 해줘요..."
스스로의 말에 수치심이 자극되어 더욱 더 흥분한다.
"오른쪽은 어때?"
"젖꼭지가 아플 정도로... 유두가... 스웨터에 스치는 것만으로... 느껴버려요"
"아래는 어때? 아래쪽도 만지고 싶어?"
"네, 하고 싶어요, 만지고 싶어요"
"그럼, 자, 이런 식으로 말해봐"
망설임없이 "유카의 음란한 거기, 스스로 찔꺽찔꺽 쑤시게 해주세요"라고 복창했다.
"그렇지, 잘했어"
"가,감사... 합니다"
유카는 통화중인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의자를 당겨 양손을 비운 채로도 통화할 수 있게 테이블 위로 엎드렸다.
"하윽.. 조,조금만 움직여도.. 스쳐서... 이,이렇게..."
연인의 집 주방에서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허겁지겁 지퍼를 내리고 허리를 들어 바지를 무릎까지 끌어내렸다.
"아아앙!"
애타게 기다리던 쾌락의 원천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흘러넘친 애액을 살짝 훔쳐내는 것만으로 눈꺼풀 안쪽에서 불꽃이 튀었다. 엄청나... 벌써 이렇게 되버렸어... 이렇게나 젖어있어...
"어때? 벌써 흠뻑 젖어버린거야?"
"엄청 젖었어요... 굉장히.. 굉장히..."
"정말이지, 음란한 여자라니까, 유카는"
류지의 목소리도 이제 희미하게 들린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질컥질컥 습기찬 소리를 울리는 오른손 손가락을 깊게 찔러넣을 때마다 날카로운 교성이 터져나오고 등이 위로 튀었다. 왼손은 변함없이 손가락 사이로 넘치는 커다란 젖가슴을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강하게 유두를 찝어 비벼대고 있었다. 총명해 보이는 커다란 눈에 이미 빛은 사라졌고, 살짝 열린 입술에서는 뜨거운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혀가 애타게 입술을 핥고 있었다. 입가로 흘러넘친 타액이 뺨을 타고 테이블 위로 늘어져내렸다. 더, 좀더 격렬하게... 쾌락의 거센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아아.. 하앙.. 하아앙.. 하으윽.. 아아아아... 아흡... 아아.. 좋아..."
바닥 위에서 안으로 꼭 오무려진 발가락이 춤추고 있었다.
"아.. 안돼.. 아아앙.. 이제.. 하아.. 안돼.. 하윽.. 안됏.."
"뭐야, 벌써 갈거같애? 꽤나 쌓였구나. 안되겠어, 내가 좋다고 할때까지 참아. "기다려"(*주, おあずけ,御預け-기르는 개 따위 앞에 먹이를 놓아 두고, 허락을 할 때까지 먹이지 않는 일. ...이거슨 진정한 조교용어!?...)!"
"아,안돼.. 와, 와요... 제,제발.. 가게 해줘요"
""기다려"랬잖아! 그래 맞아, 유카 너도 알고 있었어? 네가 언제나 노브라인거 다들 눈치채고 있다구. 그렇게 빨통을 출렁출렁 흔들고 다니고, 스웨터 위로 젖꼭지 꼿꼿이 세우고 다니면 누구라도 눈치채지.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일부러 그런 얇은 스웨터만 입고 다닌거잖아, 안 그래? 너 남자들한테 시간당해서 느끼는거지? 이 노출광같으니라고"
"아아.. 그,그런... 부끄러워... 아.. 아냐... 하윽.. 아아아.. 하앙"
달콤한 한숨이 섞인 신음소리를 유카는 억제할 수 없었다. 참아질 리도 없었다. 류지의 억지스런 매도를 들으면서도 격렬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온몸이 뒤틀릴 정도로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아아.. 제,제발... 가,가요... 이,이젠... 하으읍..."
"그래 좋아, 그럼 일전에 내 정액을 얼굴로 받아냈을 때를 생각해 내면서 가는거야"
"하읍.. 네.."
간신히 "허락"을 받고, 유카의 손가락이 류지에게 배운 질벽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정확하게 문지르며 다른 손가락으로는 한계까지 충혈된 음핵을 표피 위로 짓눌러 뭉갤듯이 비벼대기 시작했다.
"아흐윽!"
흐트러진 목소리가 울렸다. 늘씬하게 뻗은 긴 다리가 테이블 밑에서 팽팽하게 긴장한다.
"하으으응..."
아아, 뜨거운 액체가 잔뜩... 코를 찌르는 듯한 비릿한 정액 냄새가 뇌리에 되살아난다. 유카는 뜨거운 정액을 정말로 지금 얼굴에 사정받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부웅,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기분 좋게 흔들거리는 감각에 감싸여갔다.
"하아아아아..."
뻣뻣이 긴장되었던 몸으로부터 천천히 힘이 빠져나간다.
"충분히 간 거야? 뭐, 이걸로 만족한건가?"
"안돼... 아냐... 안돼..."
그대로 푹 엎드린 자세로 휴대폰 저쪽 편에 있는 류지에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어? 잘 안 들린다구"
"하고 싶어요... 류,류지군.. 류지군하고.. 하고 싶어!"
"헤헤헤... 완전히 음란녀가 되버렸구만. 자~알 알았어. 네 몸은 내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다는거지? 넌 이제 나없인 살아갈 수 없다는 거잖아?"
"제발.. 부탁할께요.. 제발..."
썰물이 빠져나가듯, 자위행위가 가져다 준 쾌락이 식고 나자 열락의 잔열만 남아있었다. 류지에 의해 개발된 탐욕스런 육체는 새로운 열락의 지옥불로 타오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절정에 올랐던 바로 직후였는데도 욱씬욱씬, 몸 깊숙한 곳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절정이 거꾸로,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의 쾌락을 알고 있는 유카의 정욕에 불을 붙여버렸다.
"좋아 좋아.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와"
애타게 기다렸던 말이었다.
"단, 오늘 밤은 돌려보내지 않을거야. 내 지시가 아니라, 네가 결정해. 네가 원하고, 네가 결정해서, 나에게 안기러 오는거야"
유카가 대답하기 전에 류지가 말을 계속했다.
"맞다, 집에 안 돌아가면 그 바보가 또 쓸데없이 걱정할테니까, 유카가 제대로 말하고 와. 나하고 자고 온다고. 나에게 안기러 다녀오겠다고. 하하하핫. 제대로 말하고 오면 그 상으로 아침까지 잔뜩 귀여워 해주지. 언제나처럼 미칠때까지 느끼게 해줄께"
유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는 끊어졌다. 그런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흐트러진 옷을 바로했다.
이대로 나가면, 또 카즈야를 상처입힐거야... 안돼, 그러면... 알고 있잖아... 하지만...
천천히 핸드백을 손에 들고 뭔가에 조종당하듯 현관으로 향했다.
지금이라면 아직... 멈춰야 돼... 그렇지만...
자물쇠를 끄르고 손잡이를 돌리려고 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아마노가 서 있었다. 눈 앞에 연인이 있었다.
"카,카즈야..."



"유카... 집에 있어주었구나. 언제나 청소도 다 해주고, 고마워"
아마노는 애써 평정을 가장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갔던 일, 몇 번이나 잔인하게 상처를 주었던 일, 그런 걸 전혀 내색도 하지 않는 연인의 애써 지어보이는 미소가 너무 눈부셔서 유카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유카, 그런데서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앉아. 지금, 커피 내릴께"
"...네"
예전의 유카라면 "응"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동의가 아니라 "네"라고, 명령에 복종하는 대답을 하는 유카의 모습을 보자 류지에 의해 삐뚤어져버린 두 사람의 관계가 절실히 느껴져 아마노의 얼굴이 잠시 찌푸려졌다.
"이렇게 유카와 둘이서 이야기 나눈게 언제였지? 참 오랜만인거 같애..."
"...그러네"
식탁의 평소 지정석에, 바로 조금 전까지 명령받은 대로 자위행위에 빠져있었던 바로 그 의자에 앉은 유카는 시선조차 맞추지 못한다. 깊고 깊은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댈 뿐. 아마노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짧게 대답할 뿐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고민하지 마... 고민만 하고 있어선 안돼...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내 마음을 확실히 전해서, 유카를...
"...유카, 저기말야"
"...뭐?"
유카의 시선은 여전히 테이블 아래로 떨구어져 있었다.
"오늘은, 집에서 자고가지 않을래?..."
유카의 몸이 흠칫, 떨렸다. 작게 고개를 저어, "...류.. 그의 집에... 오늘은, 저..저기... 그와 있는 날.. 이라서... 내일.. 올께... 미안해요..."
"그랬.. 크윽.. 그래... 유카..."
다시 찾아온 침묵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유카가 일어섰다.
"...그럼, ...내일, ...미안해요"
핸드백을 들고 현관으로 향하는 유카의 붉은 리본 포니테일이 흔들리고 있었다. 연인의 시선을 피하듯 힘들게 몸을 구부려 펌프스(*주, パンプス pumps-여성용 구두의 한 가지. 끈이나 벨트, 고리 등이 없는 구두의 총칭. 본래 댄스용이었으며, 굽의 높이는 여러 가지가 있음)를 신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 뒷모습에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유카를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대로 그냥 보내면 이제 다시는... 오직 그 생각만 들었다.
"못 가! 그런 자식한테 못 보내!"
아마노가 의자에서 뛰쳐나가 유카를 껴안으려고 양팔을 뻗었다.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싫어, 안돼! 하지마! 손대지 마!"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아마노의 손을 뿌리치고는 유카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왜.. 왜 그러는거야!? 유카!?"
또다시 거절당한 것에 망연자실해져 내려다 보는 아마노에게, "미안, 미안해.. 미안해요...". 유카는 그렇게 슬픈듯이 반복해서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녀석이 시킨거야? 혹시.. 그녀석이... 좋아진거야?..."
"아냐... 그런거 아냐..."
이번엔 크게 고개를 젓는다. 몇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째서..."
몸을 웅크린 채로 입을 다무는 유카의 몸을 아마노가 살며시 껴안았다. 이번에는 유카도 저항하지 않았다.
"유카!?"
아마노가 유카의 옷 아래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떼었다. 유카가 스르르 일어나더니 뭔가 결심한 듯 아무말없이 천천히 하얀색의 하이넥 스웨터를 벗기 시작했다.
"...무슨"
아마노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유카는 바지도 벗어 던지고 아마노 앞에서 맨몸을 드러냈다. 류지가 만들어놓은 "주의사항"을 보여주었다. 투명하리만큼 아름답고 새하얀 부드러운 살결과 대비되는 새빨간 줄로 온몸이 결박당해 있었다. 이른바 귀갑속박(*주, 亀甲縛り, 닥치고 향학열에 불타시는 변퇴분들을 위해 속박법 링크합니다. http://www.waremedeton.com/~wareme/special/kikou/kikkou.html)이었다. 겹겹이 묶여진 빨간 줄이 유방을 짜내듯 압박하고, 다리사이에 두꺼운 매듭이 보지 안으로 파고들어가 있었다. 여체의 굴곡을 한계까지 강조하기 위해 요염하게 조이고 또 조인 음란한 속박이었다.
"뭐야.. 이거.."
유카의 가녀린 목에는 검은 윤기가 흐르는 가죽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류지에게 종속되었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스스로는 떼어낼 수 없도록 자물쇠까지 달려 있었다. 하이넥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던 것도 이 목걸이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너무해... 어떻게... 이런..."
한 술 더떠, 온몸에 매직으로 한가득 낙서가 써져있었다. 유방에는 "음란", "변태", 옆구리쪽에는 "자지라면 사죽을 못쓰는 년", "똥구멍 최고", 하복부의 옅은 음모가 자라나있던 자리는 깨끗이 제모되어 "내 ↓ 전용"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에는 날짜가 잔뜩 쓰여있고, 왼쪽 허벅지에는 "正"자가 줄지어 써져 있었다. 전부 27회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등에는 커다랗게 "바보에게.. 유카는 내 여자다.. 바보는 건드리지 마라"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 이런 몸, 카즈야에게 보여주기 싫었어... 이런저런 일... 부끄러운 일... 잔뜩 당해서, 이젠 예전의 내 몸이 아니야... 나, 더러워졌어... 이렇게 더러워져 버렸어...". 이 날, 처음으로 유카의 시선이 아마노를 정면으로 마주봤다. 진한 메이크업에 어울리지 않게 스러져버릴 것같은 연약한 눈빛으로 아마노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사실, 그에게 안기러 가는 길이었어... 그에게 안기기 위해 나가려고... 했어... 이렇게 요란하게 화장하고... 안기기 위해서..."
가냘픈 목소리로 거기까지 말하고, 유카가 그 자리에 무너졌다.
"이제 더이상 카즈야가 알고 있던 내가 아니야... 이젠, 나... 나... 이런 나, 싫지? 카즈야, 싫어져 버렸지? 그러는게.. 당연해... 미안해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내가 나빠... 카즈야에게 신뢰를 주지도 못했고... 카즈야 마음도 잡지 못했어... 미안해, 카즈야를 괴롭히기만 하고..."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땅에 엎드려 조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싫어졌어도 괜찮아... 나... 당연히 싫어졌을거야... 그래, 그러면 카즈야도 더이상 괴로워 할 필요 없을테니까... 더이상 상처받을 것도 없고... 내가 싫어지면..."
"유카는 조금도 더러워지지 않았어..."
아마노가 와락 유카를 껴안았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온 힘을 다해 세게 껴안았다.
"내가 제일 괴로운 게 있다면, 그건 유카를... 잃는 거야"
유카는 그렇게 심한 짓을 당하면서까지도,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나를 더 걱정해 주고 있다... 난 말이지..., 육체의 정보다, 마음의 정을 더 믿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카..카즈야...? 이런 날 안아주는거야!?"
""이런"같은 말 하지 마. 유카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내 소중한 사람이야. 내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아"
유카를 지키고 싶다... 더이상 괴롭게 놔두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꽉 끌어안은 채로 아마노는 단단히 묶인 줄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카즈야... 카즈야..."
"더이상 녀석에게 가지 마... 내가 유카 옆에 있어줄께"
한번 더 꼭 끌어안았다.



목걸이는 끌러내지 못하고 아직 그대로였지만, 몸에 가득했던 낙서는 목욕탕에 들어가 아마노가 조심스럽게 닦아내 이젠 거의 희미해졌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침대 안에서 꼭 달라붙어 서로의 기분좋은 따스함을 나누고 있었다. 아마노의 팔 안에서 유카는 아기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진작에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마노는 찰랑거리는 흑발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카즈야... 많이 야위었네"
아마노의 품 안.. 포근해... 너무나 기분이 좋아... 유카의 손이 까끌까끌한 아마노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나, 전혀 몰랐구나. 미안.. 미안해요..."
아마노는 "괜찮아, 유카"라고 대답하고 껴안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유카가 "아파요"라고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스물거리던 충동은 이미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수도 없이 류지에게 희롱당하며 몇번이나 몇번이나 연인을 배신하고 상처를 입혀서 차라리 그만 아마노와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그런 생각까지 들만큼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정하게 껴안고 있으면, 변치 않는 애정을 느끼면, 얼음이 녹는 것처럼 비관적인 생각도 사라져간다. 마음 속에 따뜻한 빛이 비춰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역시 카즈야와 함께 있고 싶어... 이런, 이런 나를 카즈야는 받아 들여 줬어... 아무리 심한 짓을 당해도, 카즈야는 나를 받아 들여 줘... 난... 카즈야를 잃고 싶지 않아!



그러나, 계속 엇갈려왔던 두 사람이 간신히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약간의 평화롭던 시간은 보잘것 없는 잠깐의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



깊은 밤,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에 편안한 표정으로 이제 막 잠들려던 유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카!? 왜,왜 그래?"
유카가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아 휴대폰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석 전화야?"
벨소리는 몇분이 지나도 끊기지 않았다. 끝없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유카는 아마노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새파란 얼굴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떻게 해... 어쩌면 좋아..."
본래 오기가 강하고 다부졌던 유카를 겨우 전화 한 통화로 이렇게까지 공포에 떨게 하다니...
"앗! 카즈야!?"
"...여보세요"
유카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아 아마노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
"헤~에, 그렇게 나오시겠다...? 바보카즈야, 오랜만이야, 아직 살아있었네"
여유만만이라는 느낌으로 깔보는 듯한 말투.
"...류지, 너 이제부터 다시는 유카에게 접근하지 마"
"에에~!? 뭔 잠꼬대야?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니셔? 어이, 유카는 내 여자야, 네놈이야말로 멋대로 유카 건드리지 말라고"
"웃기지 마!"
아마노의 노성을 무시하고 류지는 태연하게 "나의 유카, 거기 있지? 전화 바꿔. 할 얘기가 있으니까"라고 지껄였다.
"안돼. 유카는 너같은 녀석하고 할 말 없어"
"...어라!? 그럼, 바보카즈야가 도중에 게임진행을 훼방놓은 벌로다가 유카의 부끄러운 사진을 말이지, 예를 들어 가랭이를 쫙 벌리고 정액 질질 흘리는 사진 같은거, 학교 게시판에 붙여줄까? 녹음해 두었던 신음소리도 전부 인터넷에 뿌려버리고"
"무,무슨 짓을!? 너 어디까지... 어디까지 그렇게 비겁한..."
"미스 W대의 셀카(*주, ハメ撮り-성행위장면을 제3자가 아닌 당사자가 찍는 것) 사진이야. 엄청난 화제가 될걸?"
"그런.. 그런 짓 하면... 류지, 널 죽여버릴꺼야!"
"아이구 무셔라~". 조롱하는 어조가 갑자기 싹 바뀌어, 서슬퍼런 낮은 목소리로, "뭐야~, 바보카즈야(*주, バ一也- ばか바보+かずや카즈야. 겹치는 か를 이어붙인 말장난인데, 번역하기가 애매해서 그냥 밋밋하게 썼습니다. "카즈얌마"도 생각했었는데 어째 별로여서.), 괜찮잖아? 너, 지금까지 혼자만 행복하게 살아왔으니까, 그 여자 하나쯤은 나한테 양보해줘도. 그 여자, 나한테 줘. 나도 조금쯤은 좋은 시간 보내게 해주라". 아마노에게는 치명타, 강렬한 보디블로우였다.
"크윽..."
"...나 바꿔줘, 내가 얘기할께..."
말문이 막힌 아마노를 보고 유카가 휴대폰을 다시 가져갔다.
"여보세요... 유카에요..."
순식간에 유카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그런... 그건... 아니... 아니에요... 틀려.. 틀려요... 그런.. 그런거 아니에요... 미안.. 미안합니다... 다신.. 두번다시는... 정말로... 그런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그런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알았습니다..."
후배에게 하는 말투가 결코 아니었다. 점점 말에서 억양이 옅어지더니, 마침내 어조에서 감정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유카는 끊임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카는...맞습니다... 네... 류지군 말대로... 네.. 네..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풀이 죽어 어깨를 푹 움츠리고 넋이 나간채로 유카가 아마노에게 다시 핸드폰을 건내주었다.
"류지, 이 자식, 유카에게 무슨, 뭘..."
"진짜 시끄럽네, 바보카즈야, 내일부터 1박 2일로 셋이서 여행가기로 했어. 유카하고는 얘기 끝났어. 거기가서, 네 눈앞에서, 그녀석이 내 여자라는 증거를, 나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여자라는 증거를 보여줄께. 기대되지? ...아 그렇지, 너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다는 거, 말 안해도 잘 알고 있지?"



류지는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침대에다 내던져버렸다.
"카즈야, 너만은 절대 용서못해. 절대 용서못해.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마. 너에게도,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복수심에 사로잡힌 눈동자에 비치는 건 오직 원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남자의 모습. 증오로 가득찬 매서운 눈초리로 혼잣말을 토해낸다.
카즈야, 기대해라... 크크크... 깜깜한 방 한 구석에서 나즈막한 웃음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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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카는 몸 따로 마음 따로... 그래도 아마노하고 어째저째 해피엔딩 분기로 가는 거 같더니만... 또 유턴이네요ㅋ
과연 육체의 정과 마음의 정, 어떤 쪽이 더 강할까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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