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4부 <신들의 황혼> Part 5_26편
" 애시당초, 난 이런 일엔 끼어들기 싫었어. "/슈발츠
슈발츠는 투덜거리면서도 에버라스카의 결계를 나서고 있었다. 결계의 경계를 통과하고 나자, 그는 은색 반룡의 모습에서 엘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어께에 떠메고 있던 밀가루 푸대를 내려놓은 후, 그때까지 온몸을 뒤덮고 있던 시커먼 재들을 털어 내기 시작했다.
" 하지만 주인님께서 나서지 않으신다면 감히 누가 나설 수 있겠어요? "/두르나
막 결계를 빠져나온 두르나도 온 몸에 묻은 검댕들을 털어내면서 슈발츠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뒤로 치타 형태의 알루데시아가 그녀를 따라와 막 검댕을 떨어내는 그녀의 바로 옆에서 세차게 몸을 털어냈다.
" 콜록, 콜록... 내 다시는 노움들의 마법화약을 그대로 쓰나 봐라. "/젤로나
" 켈룩, 켈룩!... 정말 끔찍했어요 언니. "/젤라노라
두르나 뒤로 결계를 통과한 젤로나와 젤라노라는 드로우로 보일 정도로 온 몸에 새까맣게 검댕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번 모험에서 기술직(?)을 담당했던 그녀들은 폭발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덕분에 터져나온 검댕을 가장 많이 뒤집어썼다.
마지막으로 결계를 통과한 것은 길 안내역을 맏았던 스톰이었다. 그녀 역시 검댕을 잔뜩 뒤집어 썼지만, 그녀의 눈은 초롱초롱하니 기쁨에 부풀어 있었다.
" 그래도 재미있었잖아요! 신나게 싸웠고, 엄청나게 털었고, 대폭발에, 게다가 새 동생까지~ "/스톰
" 너한텐 동생이 아니지, 스톰. "/두르나
" 음? 왜요 언니? "/스톰
스톰이 기억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던 두르나는 이마를 쳤다. 그녀가 뭐라고 설명해야될지 막막해 하는 동안, 슈발츠는 싱긋이 웃으면서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 그러고보니 두르나 말처럼 촌수(?)가 꼬이겠구나. "/슈발츠
슈발츠의 말에 스톰을 제외한 모두가 웃었다.
시간을 잠시 앞으로 감아 돌리자면, 슈발츠가 두르나, 알루데시아, 젤로나, 젤라노라, 그리고 스톰까지 대동한 채 에버라스카에 방문해 대 소동을 벌인 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심불이었다.
" 언니도 저와 같은 처지에 빠져 있을 거에요! 그녀를 구해야 해요! "/심불
슈발츠의 품에 안겨서 기분좋게 자던 심불이 악몽을 꾼 것은 그녀가 슈발츠의 정식 노예가 된 바로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알루스트리엘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좌불안석이었는데, 그것이 결국은 폭발하고 만 것이다.
자기가 직접 실버마치로 가보겠다는 심불을 말리느라 진땀을 뺀 슈발츠는 알루스트리엘의 문제를 다시 한번 더 잘 알아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샤이라가 아니라 스톰을 보냈다. 조금 위험은 있지만, 샤이라보다는 스톰의 눈썰미나 잠입 능력이 좀 더 능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샤이라가 당장은 발을 뺄 수 없는 펀칼라의 항구 관리 업무에 투입되어 있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게 DR 1374년 11월 중순의 일이었다.
스톰을 실버마치로 파견한지 그럭저럭 삼개월 정도 되던 날의 저녁, 슈발츠는 대목욕장의 욕조 안에서 왼손에 두르나, 오른손에 젤로나를 낀 채, 발레리아와 알루데시아의 오럴 봉사를 받는 중이었다. 갑자기 스톰으로부터 보내어진 정신 경보가 울려왔다.
[심불 동생의 예감이 맞았어요. 여기도 녹석궁의 그것과 같은 결계가 쳐져 있어요, 주인님.]
아니, 실제로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스톰의 추가적인 조사에 따르면, 가짜 알루스트리엘 여왕은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기쁨의 숙녀]같이 행동하고 다니면서 오직 그녀만 말 수 있는 실버 마치 동맹들의 정보를 그 적들에게 퍼트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 실버 마치의 동맹들 대부분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실버 마치의 방어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펠버 요새(Citadel Felbarr)를 지키던 에메루스 왕(Emerus Warcrown; 질서 선 방패 드워프 남성 파이터 16)이 지난 겨울 동안 소수의 수행원들과 함께 행방불명 되었고, 지도자가 부재한 동안 [많은 화살]이라는 별명을 가진 오크 두목 오볼드(Obould; 무질서 악 오크 남성 바바리언 5/ 파이터 4)가 이끄는 대규모의 오크 떼에 의해 공격받는 중이었다.
실버 마치 동맹들은 이 요새를 시급히 우려 하고 있지만 가짜 알루스트리엘의 교묘한 방해와 정보 누설로 인해 이미 한차례의 구원이 실패한 상태고, 다음 구원을 위한 전력 수급이 지체되고 있었다. 만약 구원이 제때 닿지 않는다면, 실버 마치의 강력한 동맹 중 하나인 펠버 요새는 다시 오크들이 들끓는 약탈 거점이 될 것이 뻔했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되면 실버 마치는 약화될 것이다.
실버 마치가 약화되면 주변, 특히 지금 한창 기세가 오르고 있는 아나우로크의 쉐이드 제국은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고, 로드 얼라이언스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로드 얼라이언스의 고위직 중 상당수가 미스트라 쵸즌들이거나 그와 연관이 있다. 실버 마치를 파멸시키는 것은 미스트라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샤르와 그녀의 동맹자인 시어릭에게는 지대한 이익이 있었던 것이다.
" 흠, 실버리문에 한번 가봐야겠군. "
실버 마치를 둘러 싸고 있는 결계는 순간이동과 변장, 죽음이나 불 주문 등의 발동을 막는다. 이는 엘프들의 대결계인 미쌀을 [현대화]한 버전으로 물론 고명한 마법사로 유명한 알루스트리엘 여왕이 다른 고위 주문 시전자들과 함께 구축했다.
" 직접 가시게요? "/두르나
"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 "/슈발츠
침대 수발 차례를 맞아 신나게 한판 즐기고 나서, 슈발츠의 품에 안겨서 지복을 만끽하고 있던 젤로나는 그가 실버리문에 가겟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의 부드럽고 풍만한 유방 끝에 달린 귀여운 분홍색의 유두가 푸르르 하고 떠는 것이 슈발츠의 눈을 즐겁개 해 주었다.
" 하지만 거기는 노골적으로 변화술을 막는 미쌀이 깔린 지역이에요! 게다가 에버미트의 궁성에서처럼 공식적으로 초대될 수도 없을 것이고... 저나 사피아가 미쌀을 분석해서 통과용 워드 스톤을 만들려면 족히 두달은 걸릴 걸요, 어쩔 심산이세요? "/젤로나
" 뭐 아무도 못보면 괜찮지 않겟느냐... 요즘엔 직접 몸을 푸는 일이 적으니까 말이다. 한번 솜씨를 발휘해 봐야지. "/슈발츠
전설적인 마법인 미쌀의 비전은 슈발츠조차 그 영향력을 무시할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할려면 할 수 있지만, 상당한 준비와 수고가 필요하다.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슈발츠는 이번엔 강행돌파 하기로 했다.
" 그럼 슬슬, 여행을 준비해야겠구나. 젤로나야, 이번엔 너도 간다. "/슈발츠
" 에, 저도요? "/젤로나
" 그래, 네가 해 줄 일이 있다. 아주 중요한 임무지... "/슈발츠
그리고 이튿날, 슈발츠 일행은 실버리문의 대결계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와 있었다.
실버리문은 멀리서 보면 강을 끼고 자라난 거대한 숲과 같으며, 그 숲 안에 인간, 엘프 드워프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 지표면의 나무 뿌리 부근에 인간들이 나무들이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박한 집을 짓고 거주하고 있고, 그 위로는 엘프들이 나무 위에 그 특유의 솜씨로 나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가법게 만든 거주지를 만들어 오고 있다. 그리고 지하엔 드워프들이 자신들의 방식 대로 땅을 파서 단단하게 요새화한 주거지를 만들어 거기 거주한다.
실버리문은 점유하고 있는 면적만으로 친다면 칼라디나보다 훨씬 큰 도시이지만 그 특유의 거주 방식 덕분에 인구 밀도는 낮은편이었다. 지상에 나 있는 길은 적으며, 그보다는 나무 위로 통하는 길이 일반적이다. 건물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데, 심지어 드워프들 조차 나무 뿌리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특기인 굴착 작업을 하기 전에 엘프들을 불러 나무 뿌리는 다치지 않도록 배려할 정도다.
또한 플로라가 명예 교수이자 학생으로 있는 포클루칸 대학을 포함한, 마법사 양성 과정으로 더 유명한 실버리문 종합 대학이 이 도시에 그 본적을 두고 있으며, 워터딥을 제외한 북부 도시중 가장 다수, 양질의 마법사 전력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했다. 교육, 예술, 안전보장 등 그 주민들의 삶의 질에 있어서 실버리문은 페이룬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수위에 서 있는 도시다.
" 굉장하네요... 과연 인간들 중 손에 꼽히는 마법사라더니. 알루스트리엘이 주인님의 노예가 되면 큰 도움이 될거에요. "/젤로나
일반인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대결계지만, 마법 탐지가 가능한 눈으로 보면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마법적인 오라가 은은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버리문의 대결계는 에버미트의 위대한 미쌀을 보며 자라온 젤로나에게도 인상깊었던 모양이었다.
" 자 그럼 이제 작전 설명을 하지. "
아무리 마법으로 지켜진다 해도 그건 마법일 뿐이다. 초인적인 기술은 분명 마법같은 일들을 이뤄 내지만, 어디까지나[기술]의 영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를테면 투명체 탐지 주문은 성공적으로 은신해 있는 도적의 소재를 밝혀 주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버리문의 경계를 넘어 갈 때 슈발츠가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 가더라도, 그를 아무도 보지 못하기만 하면 잠입 자체는 어려운편이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실버리문의 이목이 다른곳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더. 경비의 눈을 피해 성벽 아래의 그늘에 은신해 있다가, 마찬가지로 비 마법적인 장비(구체적으로는, 평범한 갈고리와 밧줄)를 동원해 성벽을 타넘어 침투하는 것은 그와 두르나, 스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젤로나와 젤라노라, 그리고 알루데시아는 공식적인 경로로 [침입]했다. 알루스트리엘은 슈발츠에게 대출을 받은 [고객]이다. 그 아내가 우호적인 차원에서 방문하는 것이니 가짜 알루스트리엘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일종의 [외교관 면책]을 가지고 있어, 성벽을 통과할 때 짐에 대한 검사를 받지 않는다. 그 점에 있어서도 이런 공작에 유리했다. 자신의 수행원의 짐이라며 대량의 노움 화약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 실버리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존귀하신 분. "/가짜 알루스트리엘
"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실버리문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군요. "/젤로나
가짜 알루스트리엘은 일부러 성문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젤로나 일행의 꿍꿍이를 알아볼 겸 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마법 탐지에 능하다 해도 물리적으로 가려진 짐 안의 마법 화약에 대한 것은 알아낼수가 없었다. 노움 마법 화약은 제작될 때만 마력이 필요하지, 제작된 이후로는 완벽하게 비마법적인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젤로나와 함께 침투한 알루데시아는 젤로나의 벙어리 호위로 가장했다. 뿔, 날개, 꼬리 등 악마의 표시는 흔히들 쉽게 드러나지만, 다행히 알루데시아는 뿔이 없었다. 그리고 서큐버스 특유의 그리 굵지 않은 꼬리 정도는 간단히 가려 주는 전신 갑주를 걸친 데다, 날개도 없는 그녀는 굳이 변신하지 않아도 인간 여성으로 가장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다만 그 초월적인 미모는 아무래도 주의를 끌 것이기 때문에, 젤로나는 그녀에게 면갑을 씌우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알루데시아는 갑갑해 했지만, 슈발츠가 벗으라고 말해 주기 전까지 꾹 참는 대범함도 보였다.
젤로나의 숙소는 알루스트리엘의 거처에서 그리 머지 않은 한 부유한 엘프 상인의 별장을 빌려서 쓰게 되었다. 실버 마치에서도 에버미트의 평판은 대단히 높아서, 그 엘프 상인은 에버미트의 공주가 자신의 별장에 묵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즉시 별장을 청소하고 완벽한 편의를 봐 주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이미 그녀의 방문을 환영하는 파티가 열렸다.
인간들의 파티와는 달리, 엘프들의 파티는 조금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또한 충분히 떠들썩하기도 하다. 주로 엘프들의 파티는 음악과 춤 뿐 아니라 옷, 장신구, 헤어 스타일, 그리고 마법에 대한 센스를 서로 경연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엘프들의 마지막 남은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에버미트는 이런 [유행]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곳의 공주인 만큼, 젤라노라는 [최신 트랜드]에도 민감했다.
젤로나가 젤라노라와 함께 실버 마치의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해 가짜 알루스트리엘의 주의를 끄는 동안, 슈발츠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착실히 수행하기 시작했다. 가짜 알루스트리엘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실버 마치의 [매국노]들을 암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의외로 쉬운 일이었는데, 실버리문의 대결계는 수정구 주문 등의 예지술을 막지는 않았기 때문에 속칭 [검색]이 통했기 때문이었다.
사피아는 슈발츠의 차원에서 수정구 주문과 예지 주문 등을 통해서 그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했고, 거기에 와우킨은 신적인 권능으로 실버마치에서 이뤄진 모든 상업 계약의 정보를 분석해 슈발츠에게 제공했다. 이 두가지 정보만 조합해서 분석하는 것 만으로, 슈발츠는 실버 마치에서 누가 가짜 알루스트리엘의 수족이며, 누가 매국노인지를 쉽게 가려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짜 알루스트리엘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하룻밤에만 서른이 넘는 암살이 발생했다. 대부분은 [행방 불명]이 되었고, 일부는 사고사, 일부는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들어 죽임을 당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실버마치 외곽의 주점인 [페가수스 말총 갓]의 주인인 후르프는 이웃 사이에선 사람 좋기로 유명한 인물이고, 특히 그의 에일 빚는 솜씨는 일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 그의 정체는 전직 젠타림의 스파이로, 지금은 쉐이드 제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 첩자. 그는 자신의 여관에 다른 쉐이드 제국의 첩자들을 숨겨 주고, 그들이 수집한 정보를 종합해 에일 배달 통에 숨겨 실버 마치 외부로 반출하는 등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슈발츠는 그가 에일 창고를 방문했을 때 술독에 그를 빠트려 익사시켰고, 지하의 비밀 공간에 숨어 있던 쉐이드 제국의 첩자들은 살인구름에 의해 모조리 몰살당했다.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은 결코 드러나지 않았기에, 후르프의 죽음은 불행한 사고사로 치부되었다.
또 한명은 귀족 중의 한명인 차일드레 젤라신 남작. 그는 실버리문의 종족을 불문한 개방 정책에 반대하던 에버라스카 출신의 태양 엘프 귀족으로, 실버리문을 에버라스카 같은 엘프 도시로 만들기 위해 알루스트리엘과 그녀의 후임자인 하이 메이지 테런(Taern " Thunderspell" Hornblade; 질서 선 인간 남성 위18)의 정책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지만, 최근엔 시어릭 사원의 은밀한 중재로 거액을 받고 가짜 알루스트리엘에게 협조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에버라스카 출신 귀족 몆몆과 함께 여우 사냥을 나갔다가 평범한(?)낙마 사고를 당해 목이 부러졌다. 여우를 쫒아가던 중에 그의 말이 갑자기 발광하며 날뛰었던 탓이다. 물론 두르나가 사냥터에 은신해 있다가, 말의 귀에만 들리는 강력한 음파를 내는 피리를 사용해 그의 말을 미치게 만든 것이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저마다의 사건은 연관성이 없는 것 처럼 치부되었고 정보에 어두운 서민들은 그런 사건이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누구보다 이 사건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가짜 알루스트리엘 자신이었다. 죽은 자들은 모두 그녀와 혐조 중이던 쉐이드 제국의 첩자들이거나, 혹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기꺼이 실버 마치를 팔아넘긴 매국노들이었기 때문이다. 젤로나가 매일 벌어진 환영 파티에서 [에버미트의 화려한 밤문화]를 뽐내던 일주일 동안, 실버리문 안팎에서는 백단위의 암살이 발생했다.
또한 슈발츠는 포위당해 있는 펠버 요새에 대해서도 손을 쓰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샤이라를 파견했던 것이다. 본래 목적은 오르크 왕을 자처하는 우볼드를 쳐죽이는 것이었지만 샤이라의 암습에 깊은 부상을 입은 우볼드가 꽁지가 빠져라 도망침으로써 그 임무는 실패했다. 하지만 지휘관을 잃은 오크들이 우왕좌왕 하는 동안 봄 날씨 답지 않은 혹독한 눈보라가 그들을 덮쳤고, 결국 오크들은 한달 넘게 요새를 공격하며 입었던 피해 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내며 후퇴했던 것이다.
성을 방어하고 있던 드워프와 그들의 인간 동맹자들은 이 일을 [기적]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즈음 행방불명 되었던 이메루스 왕의 유체가 성공적으로 우볼드의 아지트를 털고 귀환한 모험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요새로 돌아왔고, 아직 세상에 못다한 일들이 많이 남아 있던 그 드워프 영웅은 고위 성직자에 의해 성공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우볼드의 오크들에 의해 매복당한 것을 기억해 냈지만, 그 습격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그 동안 스톰은 진짜 알루스트리엘의 소재 파악에 주력하고 있었다. 실버리문 안에 펼쳐진 시어릭의 대 결계를 하나 하나 찾아내서 파괴하다 보면 언젠가 마법으로든 실제로든 그녀의 소재를 찾을 수 있게 될것이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슈발츠가 진짜 알루스트리엘의 소재를 찾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짜 알루스트리엘 덕분이었다.
가짜 알루스트리엘은 삽시간에 자신의 계획이 허물어져 내린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건 젤로나였는데, 그녀가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엇다. 하지만 아무리 감시를 강화해도 젤로나 일행에게서는 수상한 움직임의 낌새조차 없었다.
" 그녀도 [죽어야 할]필요가 있지. "
젤로나의 숙소에서 쉬다가 문득 내뱉은 슈발츠의 말 뜻을 깨달은 젤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톰도 심불도, 결국 죽음으로써 여신의 시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스트라의 눈을 피해서 그녀의 딸을 소유하려면, 죽이거나 죽은 것 처럼 보이게 할 필요가 있었다. 심불의 경우 전자였지만, 스톰의 경우는 후자다. 이번에도 알루스트리엘의 [대역]이 죽는 것이 제일 나은 결말일 것이다.
하지만 벤프린탈라에서 심불을 데려 올 때와 같은 방법은 쓸 수 없다. 권좌에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알루스트리엘은 여전히 실버 마치의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왕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마법의 여신 자신도 진지하게 맞붙지 않으면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는 복제체다. 따라서 어떻게 꾀어 내든 그 죽음은 불운한 사고로 위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 정도 되는 존재를 사고사로 위장할 정도의 레벨의 사고는 대재앙에 가까워야 할 것이다.
한편, 이대로 지나면 벤프린탈라의 가짜 심불 꼴이 날것이라고 생각한 가짜 알루스트리엘은 진짜 알루스트리엘을 미끼로 공격자들을 낚기로 결정했다. 일부러 시어릭의 결계 일부를 열어서 진짜 알루스트리엘의 흔적을 [조금]흘린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일반적인 필멸자 모험가였다면 이 미끼에 덥썩 달려들었을 것이지만, 가짜 알루스트리엘의 불행은 그녀의 수족을 끊은 상대가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 본, 노련하기 짝이 없는 슈발츠라는데 있었다.
알루스트리엘이 감금된 장소는 그녀의 저택이 아니라, 그녀가 평소에 모험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쓰기 위해 비워 두는 북쪽 성벽에 면한 안전가옥의 지하였다. 그곳은 원래부터 잘 요새화되어 있었지만, 감옥으로 변한 후부터는 더더욱 철저하게 함정과 비밀문으로 도배된 용담호혈이 되어 있었다. 그런 곳에 직접 쳐들어가는건 바보나 할 짓이다. 그리고 마침, 세상에 바보는 많다.
특히 알루스트리엘 같은 존재는 그 존재 자체로 바보들의 적의를 사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을 원하는 자들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중 누구를 직접 무대로 끌어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슈발츠는 쉐이드 제국의 첩자들이 연관되어 있음을 간파했을 때 부터 샤르 여신이 이 음모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따라서 [암살자]의 인선은 더 어려워진다. 알루스트리엘의 적 중에서 그녀가 가짜인 것을 모르는 상대를 골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버리문 한가운데까지 세력을 투사할 수 있는 집단이라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