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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련사 로크란 05 (환관 카이만)

환관(宦官) 카이만


#02-05 : 개조련사 로크란


로크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쥔체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이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밤 마셨던 술기운이 남아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것 때문인지, 머리속에 온통 뿌옇게 안개가 낀것같아서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자 일어서!"


노란 사자가 그려진 붉은 망토를 두른 황도경비군이 위압적으로 말했지만, 로크란은 손목에 채워진 강철수갑을 내려다보며 살짝 혀 꼬부라진 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 아니. 나. 나리, 제. 제가 그런... 것이. 아니... 라니까..."


"그런것인지 아닌지는 가보면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주둥이 닥치고 일어나!"


하지만 황도경비군이 얼굴을 굳힌체 험악하게 말하며 로크란의 목덜미를 붙들고 자리에서 그를 일으켜 세우자, 비틀거리며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로크란이 정신을 차린 곳은 유흥가의 변두리에 위치한 어떤 중급유곽이었는데, 눈을 뜨자 마자 그가 지불했던 금화중 한 개가 위조된 것이라며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경비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자의 그림이 세겨진 제국 "라이온 금화"는 동방의 끝에서 서방 끝까지 곧 세상 어느곳에서나 통용되며, 현재 세계에서 유통되는 금화의 7할을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통화였다.


라이온 금화는 오직 제국의 황도 그레이트 레오니아에 있는 제국 재무부에서만 찍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통화의 통일은 초기에는 큰 혼란을 불러 일으키며 많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었지만, 패황 가레온의 치세 중기에 이르러 안정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믿을 수 있는 통화로서 인정받아 제국의 경제 발전에 크나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제국은 이러한 라이온 금화의 신용유지를 위하여 건국이후로 쭈욱 가짜금화를 찍어내거나, 금화의 무게나 형태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는 행위를 황제에 대한 반란행위에 준하는 것으로서 혹독하리만큼 엄격하게 처벌해왔고, 실제로 패황 가레온의 치세동안엔 이일로 몇 개의 왕국이 멸망당했을 정도였다.


즉 로크란은 굉장히 위험한 문제에 말려든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치 아직도 꿈을꾸고 있는 것처렴 착각할 정도로 몽롱한 상황에서는 제대로된 항변은 커녕, 걷는 것 조차도 힘들었다.


"제기럴, 이런 거지같은 자식을 봤나. 얼마나 처먹었으면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이지랄이야."


로크란을 질질끌고가던 경비군 둘 중 한 사람이 짜증난다는듯이 궁시렁거렸지만, 다른 사람은 혼잣말이라도 하듯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가짜 금화라니, 이거참 어제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그 말에 궁시렁거리던 다른 한 경비군의 입이 다물어졌다. 가짜 금화가 황도내에서 발견된 것은 분명히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놈 어서 본부로 끌고가야할테니 마차에 태워놔."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불량스럽게 생긴 포주와 이야기를 하던 중인 경비군 장교가 둘에게 이야기 했다. 탁자 위에는 예의 라이온 금화가 놓여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그들이 몰고온 경비군의 호송용 마차가 있었다. 마차에 비틀거리는 로크란을 밀어넣고 나서 마차 밖에 선 남자는 마차 안의 남자에게 말했다.


"증거품은 내가 가져오지."


그가 위층에 로크란이 누워있던 방에 모아놓은 증거품 주머니를 가지러 올라가는 것을 보며 마차안의 남자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로크란에게 말했다.


"흥. 잘하면 인생 종치겠구나..."


말을 마친 사내는 갈증을 느끼곤 마차의 앞좌석쪽에 있는 물통을 꺼내려 앞좌석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때 갑자기 로크란에게 엄청난 위기감이 몰려왔다. 머리속은 아직도 흐릿해서 사실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긴 했지만, 마치 단검같이 날카롭고 위험한 무언가가, 그의 가슴을 천천히 파고 들어오는 것같은 느낌만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너는 죽을꺼야."


"어두운 지하감옥속에 갇혀 푸줏간의 개 돼지처럼 처참하게 죽어가고 말꺼야."


"너에겐 죄가 없잖아, 너에겐 잘못한게 없다고, 그러니까 빨리..."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오른쪽 허벅지의 바짓단 사이에서 이질적인 감촉이 느껴졌다. 바짓단 사이에는 한뼘이 못되는 작은 비수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었다.


"도.망.쳐."


"흐억?"


물통에 손을 뻗던 경비군 사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비틀거리기만 하던 남자가 마치 번개처럼 움직이며 그의 목에 비수를 꽂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끄으으윽..."


"털썩"하며 마차바닥에 쓰러진 경비군 사내의 몸을 뒤져서 찾아낸 열쇄로 강철 수갑을 풀고난, 로크란은 촛점이 맞지 않는 기괴한 눈을 한체로 마차의 반대쪽문을 열며 말했다.


"도망쳐야..."


피거품을 입에 문체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던 경비군 사내의 몸에선 천천히 떨림이 잦아들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마지막으로 맺힌 것은 사창가의 골목 사이로 유유히 사라지는 로크란의 모습이었다.


* * *


로크란이 제정신을 차린곳은 황도의 지하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하수도의 어딘가였다. 그는 도무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분명 그의 기억속에도 그리고 손아귀에 남아있는 감촉으로도, 자신이 경비군을 살해해버렸다는 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어쩌자고 그런 미친짓을 한거지?"


몇 시간째 끊임 없이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어 담을 수 없는 일이었고, 지금은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수 있느냐를 생각해야만 했다.


"어째서?"


하지만 이 쓸모없는 의문은 결코 머리속을 떠나지 않으며 맴돌고 있었다.


"안돼 안돼. 지금은 도망치는데 집중 하는 수밖에 없어."


경비군은 형법부(刑法府)와 더불어 황도의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과 같은 것으로 그들에 대한 공격은 중죄에 해당했다. 로크란은 무려 경비군을 살해해버렸으니, 도망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입장이라 할 수 있었다.


로크란은 차라리 황도를 떠나지 않고 일단 황도 안에 숨어있을까 생각도 했다. 물론 황도는 1000만에 가까운 인구와 매시간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샐수 없는 숫자의 상인과 여행자들로 붐비는 도시였기에, 언뜻 생각해보면 이 거대한 도시에서 탈출하는 것보다는 숨어있는 쪽이 안전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도시에는 너무나도 우수하고 잘짜여진 치안조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하수도로 도망쳤던 것도, 결국 하수도를 통해서 탈출하는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로크란은 자신의 머리속을 어지럽히는 갖가지 의문들을 애써 억누르며, 어두컴컴한 하수도길을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내딛어 갔다.


천장에서 드문 드문 비추어지는 희미한 빛줄기들처럼 마치 생각날듯 말듯하며 머리속을 괴롭히는 것, 로크란은 왠지 그 것에 이 모든 사건의 열쇄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게 누구요?"


앞에서 갑자기 들려온 컬컬한 목소리에 로크란은 깜짝놀랄 수밖에 없었다. 흐릿한 불빛과 함께 나타난것은 반쯤 부서진 등불을 든 걸인 두 사람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로크란은 살짝 안심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아래,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결코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으응? "멕켈"인가? 어라? 아닌데?"


등불을 들이대며 한 걸인이 말하자, 옆에선 걸인이 살짝 뒷걸음질을 치며 로크란에게 말했다.


"헤에? 당신 누구요? 신입?"


이들은 아마도 하수도에 거주하는 걸인들일것이다. 로크란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물론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고 입막음을 해버리는 것이 제일 나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의 지치고 허기진 그에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응? 난 여기있는대? 왜 불러?"


...라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리며 하수도의 벽에 뚤린 구멍에서 서너명의 걸인들이 더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어두워서였는지 아니면 너무 골똘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죽은듯이 누워있던 그들을 미쳐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흐으음? 이런 곳에 행차하신걸 보면, 위대한 제국시민님은 아니시겠고..."


등불로 살짝 로크란의 얼굴을 비추며 한 걸인이 말했고, 그 옆에 선 걸인도 맞장구를 치듯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로크란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들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모두 일곱, 앞에서 둘 뒤에서 다섯, 총 일곱 명의 걸인들이 있었다. 입막음은 커녕 자칫하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걸 깨닫자 등에서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흐으음? 멕켈! 자네 고기 먹어본지 얼마나 됬지?"


등불을 든 걸인이 컬컬한 목소리로 말하자, 로크란의 등뒤에 선 걸인중 한명이 걸죽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낄낄낄. 왜? 자네가 대줄려고?"


"이런 쌍거지놈의 새끼가 말을 해도!"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고기맛을 본지도 꽤 됐지 아마?"


"응 그렇지 그렇지. 큭큭큭."


물론 식인종이었을리는 없었고, 결국 이들이 말하는 고기란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크악!"


로크란이 두 손으로 등불을 든 걸인을 거칠게 밀어붙이곤 하수도로 뛰어들었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물이 허벅지까지 와닿았지만 그런것에 신경쓸 여유따윈 없었다.


너덜너덜하던 등불이 하수도 길바닥에 부딪히며 박살나 버렸지만, 등불을 들고 있던 걸인은 넘어지지 않은체 컬컬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새끼 잡아!"


"크흐흐 실룩 실룩 엉덩이가 귀엽기도 하구만."


"어딜가시나 맛좀 보자고!"


걸인들은 연신 음탕한 소리를 내뱉으며 로크란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지쳐 있었고, 또한 결정적으로 이 하수도의 길을 몰랐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자아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자니까."


"어디 고기맛좀 보실까."


"흐흐흐. 그렇지 그렇지."


일곱명의 걸인들은 막다른길에 선 로크란을 둘러싼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며 한 마디씩 지껄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애크 애니쉬 카트..."


갑작스럽게 걸인들의 뒤에서 감미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은 공용어가 아닌걸로 보아 외국인인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는 왠지 처음듣는것 같지가 않았다.


"하여간... 인간이란 것들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두 눈은 기이한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오렌지빛의 눈,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까맣고 아름다운 얼굴, 이것은 분명 낯익은 것이었다.


"응? 뭐야 이년은?"


걸인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자의 모습에 놀라 우물쭈물거리고 있었지만, 곧 한 명의 걸인이 살짝 앞으로 나서며 컬컬한 목소리로 말했다.


"쟈르움... 더이상 내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으니 썩어라. 루브드마라 세카르 에르바 오움."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끝나자, 어두컴컴한 하수도의 사방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리며 흘러나와 걸인들을 감싸안았다. 그리고 마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듯한 걸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비명이었다.


"흐우우아아..."


"우허어어으..."


"스르르르"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일곱명의 걸인들의 몸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독한 시체썩는 냄새를 풍기며 차례 차례 산체로 썩어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따라와."


이제는 처참한 꼴로 일곱개의 썩은 고기더미가 돼 버린 걸인들의 저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움찔하며 그녀의 오렌지빛 눈동자를 처다본 순간 로크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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