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영웅-(부제: 로얄 블러드) - #21 작전회의
로드리아의 구 귀족들, 왕족 그리고 장수들로 이루어진 무리들이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왠지 적들의 함정이 느껴져요."
로드리아의 왕녀, 로자리아가 말을 꺼내었다.
"...."
로자리아의 말에 회의실의 모든 이들이 침묵을 지켰다.
그들 역시 함정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 전 이시스국으로부터 더이상의 원조는 힘들 것 같다는 것을 통보받았었다.
그것은 이제 막 다시 활동을 재개하려는 저항군에게 있어 매우 치명적인 소식이었다.
원조 없이는 뚜렷한 보급로 확보가 힘든 로드리아 저항군에게 그 소식은 정말이지 앞이 깜깜해지는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곧 들려오는 제국군들의 대규모 물자 운송 작전.
당장의 식량이 걱정이던 로드리아 저항군에게 있어 가뭄 끝의 단비처럼 들리는 희소식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함정이라 할지라도, 적들의 물자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확실해보이니 어쩔 수 없군요."
첩자를 통해 알게된 바로는 뭔가 의심이 가긴 하지만, 제국들이 물자를 운송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보였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로자리아는 이번이 큰 고비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만약 이 대대적인 운송작전을 막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저항군에게 있어 큰 악영향이 될 게 분명해.)
로자리아는 만약 이 운송작전을 막지 못한다면 그만큼 적들의 보급을 끊기 힘들어고 그것은 결국 저항군의 패배로 이어질 것임을 확신했다.
때문에 이번의 습격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물자의 이동경로입니다. 전하."
참석을 하고 있던 늙은 귀족 한 명이 일어나서 말을 하였다.
그의 말처럼 문제는 적들의 물자의 이동경로였다.
저항군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함인지 대규모 호위병력을 대동한 물자 운송 부대는, 두 개로 나뉘어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저희에겐 이 두 개의 운송부대를 동시에 습격할만한 병력이 없습니다."
그랬다. 난감하게도 두개로 나뉘어서 이동을 하는 적들의 운송부대를 저항군은 전부 습격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하나만을 골라서 공략해야만 한다는 뜻인데...)
둘 중 어느 쪽에 진짜 보급물자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둘 중 하나는 함정이 분명해. 아니면 둘 다 함정일 수도 있고.)
로자리아의 머리는 매우 복잡해졌다.
적들의 보급물자는 분명히 존재를 했지만 어느 쪽에 있는지 확실치 않았으며, 둘 중 어느 쪽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함부로 군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제법인 걸? 제국놈들. 꽤나 해주잖아?)
로자리아 왕녀는 이를 꽈득 악물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 안전해 보이는 보급부대를 습격해야 합니다."
"아니, 내 생각에는 그곳은 함정인 게 분명하오. 이 다른 부대를 공격해야만 하오."
군 수뇌부들의 의견이 엇갈려갔다.
"..."
가장 저항군 최고 수뇌인 로자리아 왕녀와 드골 장군은 아무 의견도 결정도 내리지를 못하고 일단 그런 그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 속단했다가는 저항군 전체의 존망이 뒤흔들릴지도 몰랐다.
"훗~!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차리리 동시에 공격을 해보는 건 어떻겠소?"
그동안 작전회의에서 침묵을 지켰던 란셀롯이 처음으로 의견을 제시하였다.
"!!!"
"아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전하? 그게 도대체 무슨?!"
그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가타부타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 의견을 제시한 당사자이자 천재 전술가로 이름높은 란셀롯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런? 저희들에겐 적들의 보급부대 2개를 동시에 습격할 대인원이 없습니다."
중신들 중 한 명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의 말처럼 현재 저항군들이 최대로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인원은 고작 4천 정도.
그 정도를 이용해서는 운송부대 한 곳만을 습격하기도 벅찬 인원이었다.
"글쎄요. 병사는 만들면 되는거 아니겠소."
란셀롯은 병력이 뭐가 그리 대수냐는 듯 가볍게 웃으며 답하였다.
"뭐라고요?"
"어디서 그런 망발을...!"
대다수의 신료들이 그런 가벼운 란셀롯의 태도에 발끈하였다.
그동안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란셀롯을, 은연 중에 깔보게 된 신료들은 란셀롯이 그저 튀어보려고 그런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럼 우리 내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
란셀롯은 가벼운 듯한 태도를 버리고는 신료들에게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말하였다.
그의 그런 진지한 태도에 압도가 된 신료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의 입을 바라만 보았다.
"내게 적기마병단 500기를 지원해 주시오. 그럼 적의 운송부대 하나를 확실히 접수해주겠소."
물론 그의 말대로 된다면 둘 중 어느 곳에 함정이 있고, 또 어느 쪽에 물자가 숨겨 있을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고작 기마병단 500기로 비록 대부분이 비전투요원이지만 5천 정도나 되는 운송부대 하나를 습격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고작 500명 가지고 그 열배나 되는 병력을 공격하겠다고?"
"아니, 그렇게 되면 오히려 각개격파될 가능성이...!"
"저희 군에서 가장 최정예인 적기마병단을 달라는 것은 언어도단이오. 란셀롯 왕자!"
"무모해. 아무리 젊다지만 너무 무모해..."
그걸 잘 알기에 대부분의 노(老)신료들이 다시금 반발을 하기 시작했다.
"....그걸로 충분하겠습니까?"
그동안 조용히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있던 로자리아가 궁금한 듯 란셀롯에게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의혹이 아닌 결정을 내린다음 더 필요하지는 않는지 묻는 듯한 뉘앙스가 풍겨왔다.
"물론! 오히려 너무 많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참이오."
공적인 자리였고, 현 군의 최고지휘관은 로자리아였기에 란셀롯은 존대를 해주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적기마병단 500기는 전부 란셀롯님에게 맡기기로 하죠."
로자리아 역시 그런 란셀롯을 제3자의 입장으로 대하며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란셀롯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놀랍게도 쉽게 수긍을 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그, 그런! 왕녀 전하! 그건 너무 무모한 결정이십니다!"
"중요한 기마병력인 적기마병단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안됩니다. 전하!"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를 하면서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조용!"
그런 늙은 신료들의 말을 로자리아는 한 손을 들어 조용히 시킨 뒤 자신의 결단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적기마병단은 이전에 붉은 매 군단 소속이었어요. 그 원(元)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녀는 거기서 잠시 말을 끊은 다음, 주위를 둘러본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송 부대 중 한 곳은 산악지대를 통해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은 매복을 해서 습격을 해야만 하는데 기마병력을 이용할 수는 없어요."
그녀의 말에 군부의 인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두 운송부대 전부 보급물품을 반반씩 나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느 쪽도 적들의 수중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해요."
차근 차근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는 로자리아의 말에 노 신료들의 입이 서서히 다물어졌다.
"그,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군요..."
"과연 왕녀님...! 그런 깊은 혜안이...!"
그들이 다 납득을 한 것 같자 로자리아 왕녀는 회의실 안의 일동에게 확고한 어조로 선언을 하였다.
"그럼 이견은 없는 걸로 보고 우리는 두 곳을 동시에 치기로 합니다. 세부적인 사안들은 군 지휘부들이 차후 결정내리기로 하고 이만 해산하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작전회의는 종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