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영웅-(부제: 로얄 블러드) - #19 연애동맹
둘이 나누었던 격렬한 사랑의 흔적이 침대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시녀들 사이로 퍼져버렸기 때문이다.
"..."
그것을 전속메이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장 먼저 확인한 메이리는 기분이 매우 우울했다.
그녀는 이제 친구인 로제타에게 자세히 전해들어서 침대보나 수건에 남아있는 얼룩과 냄새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아~."
전날 란셀롯과 키스를 햇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싶었는데, 이제는 세상이 멸망을 하는 듯 어둡기만 하였다.
왠지 사랑하던 그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 들어 억장이 무너지는 듯 아파왔다.
"괜찮아, 메이리?"
친구인 메이드 로제타가 물어보았다.
"으응..."
메이리는 애써 웃는 얼굴로 그런 로제타에게 답해주었다.
"에휴~. 정말 바보같이...! 울고 싶을 때는 울어. 그렇게 억지웃음 짓지 말고."
딱하다는 듯 로제타가 혀를 쯧쯧 차면서 말을 하였다.
"우리같은 시녀들 주제에 왕자님같은 분과 사귄다는 게 기적적이긴 했지."
그녀의 말에 메이리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건 메이리 자신도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부질없는 희망이자 기적같은 사랑.
그 헛된 욕망이 깨지자 깨닫게 되는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다.
"하지만 란셀롯님 참 너무하네. 아무리 접근해오는 여자를 남자는 거부하기 힘들다지만 그렇게 지조도 없이 바로 같이 잠을 자버릴 수 있냐.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야."
자신의 말에 화가 난 듯한 메이리의 표정을 보자 로제타는 금세 말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아, 아니. 딱히 란셀롯님을 욕하는 건 아냐."
아무리 배신을 당했다지만 그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깊어 맹목적이 되어버린 메이리에겐 그에 대한 욕은 금기 같았다.
그래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 로제타는 다른 이의 흉을 보았다.
"그리고 카렌님도 그래. 아무리 예전 애인이라지만 엄연히 새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을 다시 건들다니. 어쩜 그럴수가 있니?"
달래준다고 꺼낸 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엔 그 대상과 시간이 나빴다.
"왜? 예전 애인은 다시 건들면 안되는거였나?"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엑?! 카렌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자신이 꺼내는 이야기의 당사자인 카렌을 보자 로제타는 심장이 멎을 듯이 놀랐다.
"아으으~~ 죄송! 죄송합니다. 카렌님~, 용서해주세요~~!"
황급히 사죄의 말을 꺼낸 로제타는 두 손을 모아 용서를 빌었다.
그녀는 당장 귀족 모욕죄로 몰려 목이 달아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흥! 지금 난 이 쪽의 메이리와 대화를 하고 싶으니 자리를 좀 비켜주지 않을래?"
"네? 넷!"
자리를 비워달라는 카렌의 강압적인 부탁을 들은 로제타는 금세 고개를 끄덕인 뒤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녀는 절대 죽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분노한 진홍의 사신에게는 말이다.
"저기, 메이리...?"
"예?"
로제타가 자리를 피해주자 카렌이 메이리를 불러보았다.
"..."
"...?"
그녀의 이름을 부른 뒤 잠시 할 말을 잃은 카렌이었지만,
아무래도 돌려말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메이리는 란셀롯, 왕자님을 좋아하지?"
-화끈~!
(....역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움찔 놀라는 모습과 붉어진 얼굴을 통해 카렌은 메이리의 속마음을 잘 알 수가 있었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 한 확인사살이기에 더욱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귀여워.)
그녀는 메이리의 마음을 알게 되자 미안한 듯 사과를 하였다.
"둘이 서로 잘되는 것을 보고는 옛날 애인으로써 질투가 나서 그를 건들이고 말았어. 미안."
카렌은 로제타가 했던 말을 전부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을 하며 말했다.
로제타의 발언은 약간 도가 지나친 감도 없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그렇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걸 부정을 하는 것은 꼴불견이었다.
"아니...그런...!"
상급 기사인 카렌이 한낱 메이드인 자신에게 사죄를 하자 몸둘 바를 몰라 지는 메이리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허둥거림은 이어진 카렌의 말에 굳어지고 말았다.
"분하긴 하지만....너만은 허락해줄께."
"...?!"
카렌의 말에 메이리의 두 눈이 커졌다.
"너만은 나와 대등하게 왕자님과 사랑을 나눌 자격이 있어. 그러니 허락해줄께."
자신을 인정하는 듯한 카렌의 말은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왕자를 그녀의 것인 것 마냥 대하는 그녀의 말투는 매우 화가 났다.
"왕자님을 물건 주고 받듯 말하지 말아요."
"응. 알아."
메이리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알고 있는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분노는 당연했다. 카렌 자신도 누군가 란셀롯을 그리 대한다면 똑같이 화를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메이리는 카렌의 얼굴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분은 아직도 란셀롯님을 사랑하는구나...)
그녀는 카렌 역시 란셀롯 왕자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같은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써 바로 깨달을 수가 있었다.
"넌 좋은 아이야. 너라면 왕자님을 같이 공유해도 좋아."
카렌은 최대한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을 하였다.
"서로 깊이 사랑을 하도록 해. 그 분이 없으면 죽을 것 처럼 사랑을 하도록 해. 너의 기분을 참지 말고 사랑하도록 해. 옛날의 난 실패했던 그런 순수하고 애뜻한 사랑을 이루도록 해."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다 잠시 주저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리고...그 분의 아이를...."
그 말을 하는 카렌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붉어졌다.
그리고 잠시 슬픈 기색 역시 스치고 지나갔다.
워낙 그 기색이 금세 나타났다 사라졌기에 눈치가 빠르기로 유명한 메이리도 미쳐 깨닫을 수가 없었다.
"아냐. 방금 이 말은... 나도 참, 처녀에게 못 하는 말이 없네."
메이리는 카렌이 그 분의 아이라는 말을 하자 자연스레 란셀롯과의 핑크빛 미래가 망상되어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그런 망상을 남몰래 꿈꿔오지 않았는가?
란셀롯과 결혼을 해 관계를 맺고 그의 아이를 갖아 행복해지는 꿈 말이다.
"포기하지마. "
카렌은 확고한 목소리로 메이리에게 말했다.
"네."
그런 카렌의 말에 용기를 얻은 메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도 질 생각은 없어."
"네."
메이리 역시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훗~! 그럼 됐어."
카렌은 눈을 빛내며 자신을 마주보는 메이리를 보자 짧게 훗하고 웃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서로를 인정하자 가볍게 웃음을 주고받은 뒤 헤어졌다.
"이..이건 대박이야~~!"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던가.
두 여인 간의 있었던 그런 연애동맹은 몰래 숨어서 듣고 있던, 입 가벼운 누군가(로제타)에 의해 1시간도 안되어서 온 요새 안에 퍼지게 되었다.
"휴우~."
그리고 그걸 전해들은 한 여인이 남몰래 한숨을 쉬며 부러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