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삼총사 #14 삼총사와의 만남, 그리고 트러블
시골에서만 자랐던 달타냥에게 화려한 모습의 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곳곳마다 멋진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옷차림 역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일단 숙소를 정한 다음에 빨리 트레빌 총사대장님을 만나뵈어야겠다.)
무앙에서 떠나기 전, 부러진 칼을 고친 탓에 기분이 한껏 고조된 달타냥은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천생 무사인 그녀는 검을 들게 되자 무서울 것이 없어진 것이다.
(빨리 나의 실력을 트레빌 대장님께 보여드리고 싶어.)
로슈포르를 비롯해 미네르바 같은 강자를 만났음에도 검을 들게 되자 없던 기운까지 용솟음쳤다.
하지만 달타냥이 가진 돈으로는 파리에서 허름한 방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물려주신 늙은 말을 팔아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말을 산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값을 많이 쳐 주었기에 달타냥은 파리 뒤골목에 있는 잡화 가게의 작은 다락방 한 칸을 빌릴 수 있었다.
(우우...파리는 무앙보다 훨씬 물가가 비싸구나. 장기 하숙을 하는 것이 이렇게 비쌀 줄이야...)
용감한 무사라고는 하나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곁을 떠나 홀로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기에 달타냥은 숙소에 도착하자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특히 아버지의 편지를 잃어버린 후 늘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었는데 그것마저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허름하고 좁은 방에 널빤지를 깔아놓은 것처럼 딱딱한 침대였지만 달타냥은 오랜만에 깊게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달타냥은 트레빌 총사대장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은 붕대로 강하게 압박을 해서 묶어두었다. 검술 시험을 볼 때, 가슴이 흔들려 방해가 될지도 몰라서 말이다.
(그 주점에서 싸워본 결과, 가슴때문에 어깨가 흔들리고 팔을 휘두르기 불편했으니 단단히 봉해두자. 숨쉬기 불편하더라도 그 편이 오늘 시험에서 더 나은 결과을 얻을 수 있을거야.)
트레빌의 저택은 달타냥이 얻은 작은 다락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달타냥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저택의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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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의 안뜰은 마치 전장과 같이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아침 바람을 타고 힘찬 기합소리가 들려 왔으며, 발을 맞춰 걸어가는 총사들이 구두소리가 저벅저벅 울렸다.
정면의 넓은 계단에서는 네 명의 총사들이 열 명의 총사가 공격해 오는 것을 막아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압! 하앗!"
"이얏! 하아!!"
아무리 대담하고 용감한 사람이라도 그 모습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총사들은 연습용 칼이 아니라 날이 시퍼렇게 선 진짜 칼을 가지고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걱!
"크윽!"
마침, 한 명의 총사가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만 팔에 칼을 맞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팔에서는 시뻘건 피가 솟구쳐 나왔다. 달타냥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굉장하구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놀라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트레빌 총사대장을 만나기 위해 저택 안으로 들어선 달타냥은 대기실에 모여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 모두 달타냥처럼 총사가 되기 위해서 프랑스 전국에서 모여든 청년들이었다. 하나같이 크고 우람한 몸집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었기에 달타냥은 은근히 기가 죽었다.
개중에는 여검사로 보이는 이들도 보였는데, 하나같이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물론 허리에 찬 검을 보아선 실력도 상당한 것 같았다.
(다들 굉장한 실력을 가진 것 같은데? 이거 쉽지 않겠는걸?)
아버지가 보내준 소개장머저 잃어버렸기 때문에 달타냥은 만만치 않아 보이는 검객들을 이기고 총사가 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히었다. 달타냥에게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고 총사가 되기 위해서 도전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는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옆 자리에 앉은 사나이들이 시끌벅적에게 떠드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근위호위대 녀석들과 총사대가 어제도 한바탕 했다며?"
"그렇다고 하더구만. 삼총사 중의 아토스는 어깨에 칼을 맞아서 중태라던데?"
"그 아토스가? 그럼 나머지 두 사람, 포르토스와 아라미스는 어떻게 되었나?"
"둘은 무사한 모양이야. 두 사람이 호위대 녀석드을 꽤 많이 쓰러뜨렸다던걸."
"그렇겠지, 총사들 중 에서도 삼총사는 그야말로 검술의 귀신들이니까."
총사 지망자들의 이야기처럼, 리슐리외 추기경의 호위대와 트레빌 총사대장의 총사대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당시 리슐리외 추기경은 프랑스의 국왕 루이 13세보다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은 항상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루이 13세가 왕자 시절부터 총애하던 트레빌을 국왕의 호위대인 총사대의 대장으로 임명하게 되었고, 검의 명수인 트레빌의 명성때문에 솜씨가 뛰어난 검사들이 차례로 그이 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리슐리외 추기경은 국왕의 세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자신도 호위대를 만들어 총사대와 견줄 만한 세력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 달랐기 때문에 두 집단은 항상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고 자주 부딪쳤다.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예사였고, 때로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과격한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아...그렇구나.)
달타냥은 시골에서 갓 올라온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지망생들의 틈에 끼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연습이 끝난 총사들이 땀을 닦으면서 우르르 대기실로 몰려 들어왔다.
달타냥은 많은 총사들 중에서 유독 멋있는 복장에 훌륭한 칼을 차고 있는 총사를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물너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나이는 총사들이 입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초록색 윗도리 위에 걸쳐진 새빨간 벨벳망토가 펄럭였으며, 그 사이로 화려하게 장식된 검이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포르토스, 그렇게 일부러 망토를 펄럭거리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
달타냥은 포르토스라는 이름을 듣게 되자 깜짝 놀라 그 사나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삼총사의 한 사람이구나....)
달타냥은 삼총사의 한 사람을 직접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포르토스는 대단히 핸섬한 청년으로, 건장한 체격과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꾸미기를 좋아하는지 온몸엔 고급스런 장식으로 치장이 되어있었다.
"내가 언제 그랬나? 자네는 농담이 너무 지나쳐, 아라미스."
아라미스라고 불린 총사는 여자처럼 아름답고 하얀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얼핏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가졌지만 두 눈에서는 날카로운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멋있구나. 나도 저런 총사가 될 수 있었으면....)
달타냥은 부러운 눈초리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대기실에 달타냥을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르브 마을의 달타냥 씨, 지금 트레빌 대장니께서 부르십니다."
달타냥은 벌떡 일어나 안내하는 총사의 뒤를 허겁지겁 쫒아갔다. 그는 언제나 트레빌 총사대장과의 만남을 꿈꿔 왔지만 막상 이런 기회가 찾아오자 몸과 마음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꿀꺽~!"
달타냥은 떨리는 몸과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넓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가 그토록 만나고싶어했던 총사대의 대장 트레빌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달타냥은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 트레빌에게 공손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타르브 마을에서 온 달타냥이라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대장님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오! 그래? 과연 아버지를 쏙 빼닮아 잘 생긴 아들...이 아니라..흠, 흠. 어머니를 닮아 정말 아름다운 청년이로구만."
트레빌은 달타냥을 보다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자신의 친구는 잘 생긴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근데 아무리봐도 상대는 여성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가슴을 숨긴 탓에 트레빌은 달타냥이 그저 아직 어려서 성별이 구별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미소년인 줄로 이해했다.
"그래..아버님께서는 안녕하신가?"
트레빌은 달타냥의 모습에 대한 의문을 일단 접고,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다해도 달타냥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우의 자식이라 반가웠기 때문이다.
"예, 요즘도 날마다 승마와 검술 연습을 하십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구만. 그 사람 여전하구만. 나와는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친하게 지냈었지. 큰 부상만 아니었다면 크게 되었을 사람인데, 무척 안타까운 일이야. 그런데 설마 안부를 전하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닐테고, 자네는 무슨 볼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예, 총사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대장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달타냥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총사? 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구만. 잠시 앉아서 기다리게. 잠시 야단을 쳐야 할 일이 좀 생겨서 말이야."
트레빌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활짝 열고는 큰 소리를 질렀다.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 당장 이리로 들어오너라!"
대장의 부름에 대기실에서 아까 보았더 두 사람이 급한 걸음으로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트레빌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큰 소리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늦은 밤까지 술집에서 떠들어 대다가 호위대와 싸움을 해? 그러고도 너희들이 국왕 폐하를 호위하는 총사라고 할 수 있나?"
두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런데 왜 아토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거지?"
"저..., 아토스는 지금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습니다."
아라미스가 트레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
"뭐? 감기? 내가 그런 말에 속을거라고 생각했나? 어제 상처를 좀 입은 모양이로군. 총사들 중에서도 제일 뛰어나다고 삼총사라고 불리는 녀석들이 이 모양이니 도대체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ㅇ니가?"
트레빌은 화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발을 쾅쾅 굴렀다.
"이제부터 술집에도 가지 말고, 다시는 싸움도 하지 말거라!"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창백한 얼굴의 총사 한 명이 절뚝거리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트레빌 대장님."
포르토스와 아라미스는 그 총사를 바라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토스? 괜찮은가?"
아토스라 불린 사내는 서른이 넘어보이는, 콧수염이 무척이나 멋있게 난 어른스런 남성이었다.
댄디한 모습이 차분해보였으며 사려깊은 눈동자를 하고 있어서 삼총사들의 첫째다웠다.
"후우...후우..."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힘겨운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달타냥은 그읟 무서운 정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장님께서 부르신다고 해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흠...많이 다친 모양이군. 아토스. 자네들의 검은 국왕 폐하의 안전을 지키는데 사용하라고 있는 것을 명심하게. 국왕 폐하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목숨을 함부로 여기면 안되는거야."
트레빌은 그런 아토스의 모습에 찡그리고 있던 표정을 풀고 아토스의 손을 꽉 잡아주며 말했다.
아토스와 포르토스, 아라미스는 모두 그에 크게 감격하여 깊이 고개를 숙였다.
(와아...멋지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달타냥의 마음속에서도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굳세고 용감한 총사들의 모습을 보게 되자 그녀는 더더욱 총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아토스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그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심각한 중상을 입고 무리하게 몸을 움직인 탓에 정신을 잃고 만 것이었다.
"포르토스! 아라미스! 아토스를 빨리 의무실로 데리가거라!"
트레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총사는 아토스를 안고 의무실로 달려갔다. 트레빌은 자리로 되돌아와서 의자에 깊이 몸을 파묻었다.
"실례를 했구만. 그래, 총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올해 나이가 몇인가?"
"열여섯 살입니다."
"그래? 아무래도 너무 어린데? 총사대가 되기 위한 시험은 열여덟살부터라네."
달타냥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방금 전 보았던 총사들의 모습에 마음을 뺴앗긴 후라 간곡한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편견때문에 아버지의 보증이 있는 편지가 필요했던 것인데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검술은 다섯 살 때부터 아버님에게 엄하게 훈련을 받아 왓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 누구에게도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허허, 큰소리를 치는 것도 아버지를 쏙 닮았구만. 그렇다면 총사 예비학교에서 한 2년이나 3년 간 공부를 더 하고 찾아오게. 내가 직접 소개장을 써 주겠네."
달타냥은 트레빌이 자신을 어리게만 생각하자, 분한 마음에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는 도저히 이대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저의 실력을 시험해보시고나서 총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허락해주신 겁니다. 사실 아버지의 소개장을 가져왔지만 중간에 도둑맞아 버렸습니다. 그 소개장을 보셨다면 틀림없이 생각이 달라지셨을 겁니다."
달타냥은 무앙의 여관에서 있었던 일을 트레빌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칼자국이 난 사나이라고? 키가 크고 검은 콧수염에 백작이라고 불렸다면 그 녀석이 틀림없구만. 혹시 그 귀부인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 있느냐?"
"예, 버킹검 공작이 런던을 출발했는지 알아보고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귀부인의 이름은 밀레디였던 것 같습니다."
"역시 로슈포르, 그 녀석이 확실하군. 파리에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새 무앙까지 가 있었을 줄이야."
"대장님, 그 자를 알고 계십니까? 전 그 녀석으로부터 모욕을 당했습니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합니다."
"자네의 마음을 알겠지만, 복수는 그만 단념하도록 하게. 그 자는 자네가 덤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건 그렇고, 자네가 정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 집무실을 찾아오도록 하게.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자네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르지 않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공을 세워서 대장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달타냥은 트레빌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방을 나서는 순간, 그의 눈에는 창 밖에 칼자국이 난 사나이가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앗, 그 놈이다!"
"달타냥 군? 왜 그러나?"
트레빌은 의아한 표정으로 달타냥을 바라보았다.
"칼자국이 난 녀석이 바로 저놈이에요!"
"뭐라고?!"
트레빌은 창 밖을 보며 소리치는 달타냥을 보며 의아해했다.
"으드득! 이번에야말로 절대 놓치지 않겠다!"
달타냥은 문을 박차고 방에서 뛰어나갔다.
"이보게, 달타냥!"
트레빌 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으나, 달타냥은 눈에 불을 켜고 서둘러 달려나갔다.
-탁탁탁!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달타냥은 그만 한 총사와 부딪히고 말았다.
"앗!"
-퍼억!
그는 방급 보았던 삼총사 중의 한 사람인 아토스였다.
"크윽~!"
"아, 미안합니다. 지금 제게 급한 일이 있어서, 전 이만."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달타냥은 예의를 차릴 겨를이 없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 사과를 남긴 채 뛰어가려는 순간, 아토스가 달타냥의 팔을 잡았다.
"이봐!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그렇게 성의없게 사과를 하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하나?"
아토스는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데, 상대의 성의없는 태도를 보자 화가 치밀어오르는 듯 화가 잔뜩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호오, 그러고 보니 아까 대장님에게 꾸중을 듣고 있을 때 자리에 함께 있었던 녀석이로군. 네가 대장님께 우리의 일을 일러바친 것이냐?"
"그런 게 아닙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그만 놔 주십시오."
달타냥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아토스의 팔을 뿌리쳤다.
그녀는 정말 마음이 다급했다.
이러다가 또 눈 앞에서 로슈포르를 놓치게 될까봐 초조했다.
"정말이지 예의를 모르는 시골뜨기로군."
달타냥은 시골뜨기라는 아토스의 말에 발끈했다.
"뭐라고요? 시골뜨기? 내가 별볼 일 없는 시골뜨기라고해도 당신같은 고집스런 사람에게 설교를 듣고 싶지는 않군요."
"꼬마녀석이 입버릇이 무척이나 거칠구나. 아무래도 억지로라도 예의라는 것이 뭔지 가르쳐줘야겠군. 오늘 정오에 칼름 데쇼의 수도원 뒤뜰로 오너라. 네 녀석에게 예의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좋습니다! 이따 정오에 봅시다."
달타냥은 또다시 정신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토스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한참이 지난 뒤였기 때문에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듯이 광장을 향해 달렸다.
-탁탁탁!
이윽고 정문을 달려 지나려 하는 순간, 문 앞에서 문지기와 이야기하고 있던 포르토스를 만나고 말았다.
달타냥은 그들을 지나쳐서 서둘러 지나가려 하였다.
-휘릭~!
"아앗?!"
바로 그때, 포르토스의 벨뱃 망토가 바람에 날려 나부끼면서 그만 달타냥을 감싸고 말았다.
포르토스는 바람에 날려 올라간 망토 자락을 두 손으로 잡아당겼기 때문에, 달타냥은 온 몸이 망토에 둘러싸여 포르토스의 등에 찰싹 달라붙게 되고 말았다.
"누구냐? 남의 망토 속에서 숨어들어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다니! 어서 나오지 못해?"
포르토스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달타냥도 당황스러운 마음에 망토 바깥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온통 어두컴컴해 나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망토의 갈라진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고, 달타냥은 그 쪽으로 재빨리 어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달타냥의 얼굴이 포르토스의 가슴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
갑작스레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을 보게 된 포르토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가슴이 밋밋한 걸 보니 소녀인가.
그가 긴가민가하는 순간, 달타냥이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망토를 빠져나온 달타냥은 포르토스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네놈은 길을 다닐 때 눈을 감고 다니는거냐?"
포르토스는 목청을 높여 달타냥에게 소리를 질렀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아직도 둘은 서로 밀착한 채로 붙어있었다.
"눈을 뜨고 있으니 당신 망토 속으로 들어갔지, 아니었으면 당신과 부딪쳤을거요."
달타냥은 상대방의 모욕적인 언사에 화가 나기 똑같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칼자국이 난 사나이을 붙잡기 위해서는 빨리 이 자리를 지나쳐야 했다.
"삼총사 중의 한 사람이라면서 예의를 모르는군요. 난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만나서 결판을 내도록 합시다."
"좋다. 그럼 오늘 1시에 룩상부르 성 뒤에서 보자. 혼쭐을 내 주겠다."
달타냥은 다시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보았던 곳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토스와 포르토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버린 탓에 사나이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달타냥은 간신히 발견한 적을 놓치게 되자 안타까운 마음과 분한 마음이 들었다.
(제길, 그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오늘 중으로 검술의 귀신이라는 삼총사 중 두 명과 결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큰일이군.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는데...)
만약 상대가 로슈포르만큼의 강자들이라면 손도 제대로 못 써보고 질지도 몰랐다.
(하아...어머니께 성미가 급해서 항상 침착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들었는데도 또다시 일을 저지르다니...)
열두시가 가까워오자 달타냥은 결투를 약속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결투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숨을 잃더라도 정정당당하게 결투에 임하겠다고 결심하며 달타냥은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그는 길가에서 삼총사 중의 한 명인 아라미스가 친구인 듯한 사나이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아라미스는 품위있는 모습으로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복을 입고 서 있는 아라미스의 모습은 더없이 훌륭하고 의젓한 총사의 모습이었다. 달타냥은 부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음을 지으며 그의 옆을 지나쳐갔다.
그 순간, 아라미스의 호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이 떨어졌다. 달타냥은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 그것을 주우려고 했으나 , 아라미스가 손수건을 구둣발로 밟아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달타냥은 화들짝 놀라 아라미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라미스는 불쾌한 표정으로 달타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봐,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거야?"
"떨어졌길래 주워 드리려고 한 것뿐입니다."
달타냥은 도둑 취급을 받게 되자 화가 나서 손에 힘을 주어 손수건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손수건은 찌지직하며 반으로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흥!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말하면 될 것이지, 왜 거지처럼 남의 물건을 줍는거야?"
"뭐라고요? 거지라고? 당신이 바보처럼 손수건을 떨어뜨리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바보? 애송이 녀석이 건방지기 짝이 없군. 그래서 덤벼볼테냐?"
"겸손하게 대하니까 우쭐대는군. 당신이 삼총사의 아라미스라는 것을 알고 있자만 그렇다고 내가 겁먹을 것 같습니까? 흥! 대결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좋습니다. 다만 12시와 1시에는 선약이 있으니 피해주시길."
"그래, 좋다. 그럼 2시에 트레빌 대장님의 저택에서 보자."
화가 난 달타냥은 반쪽 난 손수건을 던져주고는 수도원의 뒤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한 마음에 결투를 받아들였지만 또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우...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삼총사 전부와 결투라니...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질러 버린 것 같구나.)
달타냥은 성급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슈포르와 다시 맞붙으려 한 것 뿐인데, 괜히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붙고 말았구나...)
최악이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다.
"하아...."
달타냥은 너무나 암담하고 불안했지만, 약속을 어길 비겁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터덜 터덜 약속장소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