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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血神劫 - 9

 

血神劫




第 三 章  歐陽宣




-3-




주위에서 들려오는 북적거리는 소음에 양세현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 눈부셔.”




눈을 찌르는 초여름의 강렬한 아침햇살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는 가운데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를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 지금 연무장 한 가운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연무장 주위에는 여러 하인, 하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맘소사, 이게 무슨…….’




그녀는 재빨리 평상 아래로 내려가 최대한 몸을 웅크려 다른 사람들의 이목으로부터 최대한 자신의 알몸을 가리고자 했다. 평상 아래로 내려가 몸을 웅크리는 순간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호호, 이제 정신이 좀 드나보네.”


“대법을 받은 다음날 아침 반응은 다들 이런가?”


“곤륜파 장문 부인께서는 확실히 비슷하셨어.”


“남해검문의 예쁜 문주님도 이것 비슷하셨지.”




양세현은 자신의 주위에 여덟 명의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순식간에 어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과 자신이 벌였던 추태가 생각났다. 양세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소녀들이 말하는 대법에 대한 일도 떠올랐다.




‘세상에, 내가 앞으로 사람들 앞에서 항상 발가벗은 알몸으로 있어야 한다고…….’




양세현은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신주제일협 사도천의 아내요 신주제일장의 안주인인 자신이 어떻게 사람들 앞에 알몸으로 나설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저대로 두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확실히 그렇긴 해. 홀딱 벗고 있으니 부끄러워 죽을 거 같은데 옷은 입을 수 없고,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는 것도 재미있긴 하겠어.”


“어때 우리 저 계집애 어떻게 하나 내기나 할까?”


“망할 것들 문주님 기다리시게 할 거야. 빨리해야 한다고.”




녹아가 소리치고는 양세현을 향해 말했다.




“네가 어제랑 달리 좀 창피한 모양이지만 널 봐 줄 시간이 없어. 지금 문주님이 부르신단 말이야. 빨리 이리 와.”




열대여섯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 평소라면 양세현이 신경도 쓰지 않을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지금 그 어린아이의 명령이 거역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로 다가왔다. 양세현 자신으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양세현의 머리 속 이성은 자신이 발가벗은 채 저 소녀들 앞에 나서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있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저 소녀들의 명령을 절대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명령을 내리는 소녀가 엄청난 고수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고수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십이혈마가 전부 몰려와도 자신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발가벗겨서 사람들 앞에 내세우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 어린 계집애의 명령을 거역할 힘이 없었다.




양세현이 평상 뒤에 숨은 채 어쩔 줄을 모르자 녹아가 차갑게 소리쳤다.




“이 암퇘지 빨랑 나오지 못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깊은 울림이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양세현은 두 손으로 음부와 젖무덤을 가리고 최대한 몸을 웅크린 자세로 녹아에게 다가갔다.




녹아가 음부를 가리고 있는 양세현의 손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이 암퇘지 분명히 허락 없이 보지에 절대 손대지 말랬지. 지금부터 진짜 벌이 어떤 건지 알려주지.”




녹아가 손짓을 하자 진아가 깔깔 웃으며 허리춤에 걸어뒀던 긴 채찍을 건네줬다. 가죽을 꼬아 만든 가늘고 긴 채찍이지만 점점이 반짝이는 금속조각 같은 것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소녀들이 모두 시끄럽게 재잘거렸다.




“어때 몇 대만에 울고불고 애원하는지 내기라도 할까?”


“뻔한 건데 내기가 되겠어.”


“곤륜파 장문 부인과 남해검문 문주님께서는 몇 대를 버텼지?”


“곤륜파 장문 부인은 세 대.”


“남해검문 문주님도 세 대.”


“요 예쁜이는 네 대를 버틸 수 있을까.”


“말도 안 돼. 무리! 절대 무리!”




녹아가 채찍을 들고 말했다.




“좋아 딱 다섯 대만 때려주지. 네가 만약 다섯 대를 참고 견디면 앞으로 네 맘대로 보지를 가려도 좋아. 두 손을 치켜 올려. 아니 안 올려도 상관없겠군. 어차피 마찬가지니까.”




녹아가 채찍을 휘두르자 채찍은 영활한 뱀처럼 양세현의 벗은 몸뚱이에 감겼다. 양세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렸다.




세상이 그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아니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채찍에 박혀있는 금속조각이 닿은 곳마다 불에 덴 듯 뜨거움이 밀려 왔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금속조각이 닿은 살에서 시작된 고통이 살갗에서 부터 머리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등줄기를 타고 엉덩이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발가락과 손가락 끝까지 밀려왔다.




양세현은 입을 벌렸지만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입을 벌리는 것을 끝으로 온 몸이 굳어버려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꼿꼿하게 굳어버린 양세현을 향해 두 번째 채찍이 날아왔다. 눈으로 보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돼, 제발, 제발 그만둬요.’




두 번째 채찍이 몸에 휘감기고 그 엄청난 고통이 다시 밀려왔다. 두 번째의 채찍질에 오히려 경직이 풀렸는지 양세현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은 죽어가는 짐승의 입에서 나오는 것 같은 처참한 소리였다.




 녹아가 다시 채찍을 휘두르기 위해서 팔을 들어 올렸다.




‘안 돼’




양세현은 모든 힘을 다해 그녀에게 기어가서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제발, 제발 그만 때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이제 절대 보지를 손으로 가리지 않을게요. 선자님, 선자님 제발, 제발 좀 살려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시키시는 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때리지 마세요.”




 주위에서 다시 소녀들이 재잘거렸다.




“뭐야 겨우 두 대만에 항복이야.”


“다른 애들은 세 대는 버텼다고.”


“신주제일장의 안주인이 겨우 두 대라니 너무 실망인데.”


“신주제일화가 저 암캐들보다 참을성이 없는 거야. 너무 하잖아.”




주위에서 떠들어대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들리는지 마는지 아랑곳 않고 양세현은 녹아에게 연신 절을 해대고 머리 위로 올린 두 손을 비벼대며 애원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녹아가 들어 올렸던 채찍을 내리며 차갑게 말했다.




“좋아 말을 잘 들으면 이번 건 뒤로 미뤄주지 대신 다시 또 말을 어기면 이번에 미룬 세 대까지 더 합쳐서 맞을 줄 알아.”




양세현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녹아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옆에 서 있던 아죽과 아옥을 불러 말했다.




“이 암퇘지를 데려가서 깨끗이 씻겨서 데려와.”




연무장 주위에는 일찍부터 새로 혈신문의 전노(戰奴)가 된 배가리개 한 장만 몸에 걸친 소녀들과 성무장의 하인, 하녀들이 여럿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아죽, 아옥과 어젯밤 양세현을 매질했던 다른 네 명의 하인도 옆에 서 있었다. 연무장 주위에 있던 전노들과 하인, 하녀들도 조금 전 녹아가 양세현을 매질하던 광경을 보고는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양세현 같은 여인이 저렇게 괴로워할 정도라면 자신들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들 모두 고개를 돌려 양세현을 외면하며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아죽과 아옥이 양세현을 씻기려 데려가자 용아가 웃으며 말했다.




“방금 그게 대법을 받은 여자에게만 통하는 거라는 건 말해줄 필요 없겠지.”




유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겁을 줘 놓는 것도 괜찮을 거야.”




잠시 뒤 아옥과 아죽이 양세현을 씻겨서 데려왔다. 양세현은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내려와 몸을 가리는 게 두려운 듯 두 손을 머리 뒤로 돌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칼을 모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녹아가 킥킥 웃으며 양세현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마른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고는 다시 올려서 묶어주며 말했다.




“좋아 앞으로 그렇게 착하게 굴면 때리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




녹아가 손가락으로 양세현의 젖꼭지를 살짝 비틀고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음부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




“넌 우리 혈신문의 전리품이야. 네 젖꼭지나 보지 모두 우리 혈신문 승리의 증거물이지. 그러니까 아무리 부끄럽고 창피해도 그걸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리는 게 네 임무란 말이야.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양세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전 혈신문의 전리품이예요. 그걸 세상에 보이는 게 제 임무예요.”




“좋아 이제 문주님이 산책을 하실 거니까 빨리 가자고.”




양세현은 구양선의 산책에 자신이 왜 가야하는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녹아가 가리키는 대로 성무장의 대문을 향해 걸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하인, 하녀들과 전노들이 힐끔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이제는 어떤 저항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런 고통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대문 좌우에는 양세현이 처음 보는 두 개의 큰 개집이 있었고 그 납작하고 둥그런 지붕 위에 유월련과 한교운이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두 여인 모두 음부를 통로 쪽을 향해 쑥 내밀고 있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자세였다. 두 여인 모두 혈신문의 소녀들을 보자 소리쳤다.




“선자님, 이제 내려가게 해주세요.”


“선자님, 제발요.”




홍아가 말했다.




“좋아 이제 내려와도 좋아, 하지만 곧 문주님이 오실 거니까 여기 무릎 꿇고 있어.”




두 여인이 개집에서 내려오는 사이 녹아가 양세현에게 명령했다.




“넌 대문 밖에 나가서 기다려. 문주님이 대문 밖으로 나오시면 따라서 달리는 거야. 알겠어.”




양세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알몸으로 장원 대문을 나오는 것은 어제에 이어 두 번째였다. 어제는 다행히 장원 바깥에 아무도 없었지만 오늘은 있을지도 몰라 걱정되었다. 작인들에게는 사흘 정도 잔치를 벌이라고 돈과 곡식을 내줬지만 할일이 많은 계절이라 잔치는 어제로 마치고 바로 농사를 지으러 나온 작인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작인들 앞에 알몸으로 나선다는 건 어제 하인들 앞에 알몸으로 나섰던 것만큼이나 부끄럽고 수치스런 일이었다. 양세현은 조금 전의 채찍을 다시 맞는 것보다는 백 배 나은 일이라고 마음속으로 위안하며 밖으로 나섰다.




대문 밖으로 나서자 저 멀리서 농사를 짓고 있는 작인 몇이 보였다. 잔치가 계속되고 있는 중에도 뭔가 해둘 일이 있어 나온 모양이었다. 다행히 너무 멀어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 아닌 농민으로서는 양세현이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알아보기 어려운 거리였다. 양세현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중에 구양선을 따라서 저들 사이를 달려야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저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양세현은 당연히 그 작인들보다 훨씬 멀리 볼 수 있었고 때문에 그 작인들의 얼굴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때문에 비록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그들 앞에 알몸으로 있는 것이 대단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상황이 양세현에게 뭔가 흥분되는 야릇한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음부에서 뭔가 찌릿한 감각이 몸으로 퍼져나갔다. 양세현은 감히 다시 음부에 손을 대지는 못하고 다리를 비비꼬았다. 음부의 찌릿한 감각은 더 강해졌다.




다리를 비비꼬던 중 양세현은 문득 작인 한 명이 이쪽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작인은 이쪽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햇볕을 가리고 이쪽을 보기 위해 애썼다.




‘헉! 저기서 여기가 보이는 걸까?’




작인은 양세현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이고 몇 번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주변에서 일하던 다른 작인들에게 뭔가 말을 걸었다. 작인들은 한참이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모두 일을 멈추고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와중인데도 아침부터 일하러 나온 것을 보면 꽤나 급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는데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고 이쪽으로 다가오다니 별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저 정도 걸음이면 일각만 지나면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반각이면 성무장 대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발가벗은 여자라는 걸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세현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젠 오히려 구양선이 한시라도 빨리 나와 주기만 바라고 있었다.




작인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양세현의 가슴도 두근두근 점점 빨리 뛰고 있었다. 양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고 허벅지를 비비꼬고 있었다. 음부에서 시작된 찌릿한 감각이 온 몸으로 퍼져갔다. 양세현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다가오던 작인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서서히 발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장원 앞에 서 있는 것이 알몸의 여인이라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제발 더 이상 오지 마.’




양세현이 초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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