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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문 사조색마전(射 色魔傳) 1 (영웅문 사조영웅전 패러디)




사조색마전(射 色魔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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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사조영웅전 패러디입니다. 패러디라기 보다는


김용의 소설을 야설로 수정할려고 합니다.




쉬울줄 알았는데 앞부분부터 막히더라구요.


아직은 주인공이 나오기도 전이라 수정하기가 애매해서 그대로 놔두자니


그냥 원래 영웅문이랑 너무 차이가 없게 되는것같아서


구처기를 여자로 바꿔버렸네요. 나중에 감당이 안되면 어쩌지 하면서도


그냥 바꿨습니다.




곽정이 등장하면 조금씩 바뀌겠죠.




근데 이소설이 원래 설명도 많고, 굉장히 긴 소설이기 때문에


다른 야설처럼 바로바로 야하게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야설로 수정을 해도 수정할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어서


많이 못고치는점 이해바랍니다. 이렇게 앞부분부터 조금씩 고치다보면




뒤로 갈수록 영향을 받아서 많이 바뀌고 스토리가 달라질꺼라 생각합니다.


첨부터 변태등장 해서 막 하는것만 나오면 재미가 없을것도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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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 색마문 프롤로그--






소설 색마문 연재 전에....




소설 색마문은 김용(金庸)의 영웅문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전세계에 알려질 유명한 작품입니다.


야설무협의 초보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원제는


사조색마전(射 色魔傳)이라고 합니다. 일명 대막영웅전(大漠英雄傳)이라고도


합니다. 이 작품은 전에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이부분도 패러디입니다)








사조 색마전 <소설 색마문 1부>








第 一 章. 한밤의 추적자들






8백여 년 전, 당시 송(宋)나라의 휘·흠(徽·欽) 두 황제는 금(金)나라의 포로가 되었고,

그의 왕비와 첩실들은 금(金)나라 황제의 정액받이가 되었다.



강왕(康王)은 남쪽으로 내려와 임안(臨安, 지금의 杭州)에서

황제의 위를
계승, 고종(高宗)이라 칭하고 소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강한 적들은 국경을 공략하여 국토의 반 이상이 그들의 수중에 있었다.

고종은 금나라를 호랑이 무서워하듯 하고, 또 휘·흠 두 황제가 돌아오면 자기가

 

황제 노릇을 못할까 두려워하여, 간신 진회(秦檜)의 말만 듣고 금나라와 대항하여

 

싸우던 악비(岳飛)장군을 처형하고 악비장군의 부인을 범하고 그의 딸을 금나라

 

황제에게 바치며 화의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때 금나라 군사들은 악비에 의해 연전연패하여 사기가 크게 저하된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북쪽의 중국 의병들이 도처에서 일어나 반항하는 바람에

속수
무책으로 있던 참에 화의를 요청 받고 크게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소흥(紹興)
12년 정월, 화의에 성공, 송·금 두 나라는 회수(淮水)의 중류를 경계로 삼게 되고,

고종인 조구(趙構)는 신하임을 자인하여 세공과 송나라 여자를 바칠 것을 약속했다.

송나라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회수 이북의 백성들은

 

강토의 수복이 희망 없음을 알자 더욱 상심하였다.

그런데도 고종은 오히려 진회의
큰 공로라고 생각했으니 어이없는 일이다.



원래 진회는 소보좌복사(少保左僕射)로 임명되었다가 추밀사(樞密使)로 특진함과

 

동시 노국공(魯國公)으로 봉함을 받았고 이때 다시 태사(太師)로 봉함을 받아

 

황제의 총애가 비할 수 없이 컸다.




이때부터 금나라 군사들은 회수 이북의 중국 영토에 주둔하게 되었으며 소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강남(江南)의 조정은 오히려 날이 가면 갈수록 부패 일로였다.

황제와 백관들은 매일 가무 음주와 주지 육림 속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강토의 수복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그 동안 비록 몇 명의 우윤문(虞允文)과 같은 명장과 어진 재상이 있기는 했지만

 

기둥 하나가 큰 집을 지탱할 수 없듯이, 마침내 아무 업적도 이루지 못하고

 

우울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고종은 효종(孝宗)에게, 효종은 광종(光宗)에게, 광종은

 

다시 영종(寧宗)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영종 경원(寧宗 慶元) 5년 동짓달.

 

이틀이나 계속해서 큰 눈이 내렸는데 조정의 군신들은 따뜻한 화로에 둘러앉아
구경을 하면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항주(杭州)성 밖에 동쪽에 자리잡은 우가촌(牛家村)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의 호걸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곽소천(廓嘯天)이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양철심(楊鐵心)이라고 했다.

이 곽소천으로 말하자면 수박 양산(水泊 梁山)의 108호한 가운데

 

지우성(地佑星) 색마귀(色魔鬼) 곽성(廓盛)의 후예로서, 그의 집안에는 대대로
 

미혼환희극락대법이 전해 내려오다가 그만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유실되어

 

미혼대법으로 여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정도에 그치게 되었지만, 가문 대대로 내려온


비법이었다. 

곽소천의 아비인 색마귀(色魔鬼) 곽성(廓盛)은 그별호부터 알수 있듯이 희대의 색마로서

수많은 여인들을 농락하였으며, 수많은 자식을 남겼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중 색마귀의 적통을 이은것이 곽소천으로 색마귀 곽성이 무림공적으로 몰려

무림군웅들에게 처단당했을때는 곽소천은 5살에 불과했기때문에, 미혼극락환희대법을

 

전수받지 못하고, 남겨진 앞부분 미혼법만을 익혀 그를 활용할수 있는 무공을 찾다가

쌍창을 주무기로 삼게됐다.

허나 본래 여성의 음심을 자극하여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비법이기에 상대방과

 

생사를 논하며 겨루는데 환술로 사용하기에는 미약한감이 있었다.




양철심은 명장 양재흥(楊再興)의 후손으로 당시 양재홍이 악비 악소보(岳少保)의

 

휘하에 있을 때 주선진(朱仙鎭)의 일전에서 금나라 군사의 간담을 서늘하도록

 

섬멸시킨 바 있는데 뒤에 길을 잘못 들어 소상하(小商河)에 갔다가 타고 있던 말이

 

진흙 속에 빠지는 바람에 금나라 군사들이 쏘아 대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양철심이 배운 것도 역시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양가창법(揚家槍法)이었다.

 

두 사람이 강호에서 서로 알게 된 후 무예를 논하다가 서로 존경하게 되어 결의

 

형제를 맺게 되었고 뒤에는 우가촌으로 이사까지 하여 이 집에 살게 되었는데 매일

 

창 쓰는 법이나 몽둥이 쓰는 법을 연습하면서 고금의 얘기들을 나누며 지내는데,

 

친형제보다 더 친밀했다.








이날 두 사람이 양씨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소복소복 쌓이는 창 밖의 눈을

 

바라다보다가 문득 북국이 오랑캐의 말발굽 아래 짓밟힌 일에 생각이 미치자 화가
 

치밀어 올라 양철심이 주먹으로 식탁을 꽝하고 내려치는 순간 홀연 문의 주렴이

 

걷히며 안으로부터 절세의 미인이 하나 걸어 나왔다.

이 여인은 손에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접시 위에는 쇠고기와 통닭 한 마리가 담겨 있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두 분이 화가 나 계셔요?]

[우린 지금 조정에 있는 우둔한 녀석들의 미련한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는 중인데,


자! 아주머니 한 잔 하시지요!]




곽소천이 술을 권했다.

이 여자는 양철심의 처 포(包)씨로서, 그녀는 임안(臨安) 일대에서는 이름난 미인이며,

성격이 온순하여 누구든지 한 번 보기만 해도 속으로 혀를 내두르는

 

그런 미인이었다. 이 여인은 양철심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부가

 

곽소천과 함께 허물없이 술도 마시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 왔다.

 

곽소천은 양철심의 처를 볼때마다 음심이 동해왔지만, 양철심이 쉬이 상대할수 있는자가

아니기에 그 부부가 취했을때 몸을 주물러본것이 전부였다,

곽소천은 그의 아비
색마귀 곽성만큼 색마의 기질을 가진자가 아니었다.

 

 

실은 그의 어미는 색마귀에 당해 16살이라는 나이에 곽소천을 임신하였고

생명을 중요시 했던 곽소천의 어미는 색마의 피를 이은 곽소천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색마가 생겨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의 아들 또한 아비처럼 색마로

 

만들 수 없어 금제를 가했다. 당대에 유명한 의원에게 머리에 금침을 시술받아

그 색에 미친 욕정이 자라는것을 막는 금제를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강한 음심과 음흉함을 가졌으니,

금제가 없었다면, 색마귀를 뛰어넘었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그 여자는 쇠고기와 통닭을 식탁에 내려놓고 자기 스스로 술잔을 집어 술을 따라

한 모퉁이에 단정히 앉아 마시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중안교(衆安橋)에 있는 동남다루(東南茶樓)에 앉아 있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한탁주(韓托鑄)라는 도둑놈 같은 재상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어떤 관원이든지 상서를 올릴 때 그 공문 위에 아울러 이러이러한

 

예물을 올립니다 라는 말이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나요.]




양철심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못난 황제 밑에 못난 재상이 있기 마련이오. 또 이 따위 재상이 있으니까

 

백관들도 다 마찬가지지. 한탁주가 백관을 거느리고 야유회를 할 때 여기 대나무

 

울타리에 초가집들이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기는 하나 유감스럽게 닭이나

 

개 짖는 소리가 없단 말야 하고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풀 속에서 왕왕 개 짖는

 

소리가 들렸는데 한참만에 기어 나온 개가 우리 임안부윤인 조대인(趙大人) 바로

 

그 사람이 알몸으로 개처럼 묶어 끌고 온 자신의 부인이었답니다.

그 부인을 한탁주가 범하게 하고, 백관들도 다같이 맛봤다고 하더란 말입니다.]




 

포씨는 부인을 다른이들이 범했다는 말에 얼굴이 쌔빨개져 꽃나무가지가 흔들리듯

 

허리를 못 펴고 웃었다. 세 사람이 술을 마시다 보니 밖에는 점점 더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제가 가서 아주머니도 오시라고 해야겠어요.]




포씨가 말을 꺼내자,




[불러오지 마세요. 요 며칠 동안 몸이 좀 불편한 모양입니다.]




곽소천이 만류했다.

포씨는 미소를 담뿍 머금은 채 술을 따라 남편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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