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번역/MC) 마약(魔藥) - 2부 (1)
사실 이거, 각 부를 둘씩 나눠서 번역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이번 2부는 둘로 나눌 포인트가 좀 애매하더군요.
덕분에 이번에 올리는 양은 평소보다 약간 많고, 다음에 올리는 것은 양이 약간 적게 되겠습니다. ......사실 업로드 용량 제한(특히 하한선(...))같은 거에 걸리지 않을까 싶긴 한데, 올리는 분량이 적절한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좀 곤란하다는 기분이군요(...)
댓글로 게임에 대해서 질문주신 분이 계셨는데, 게임 제목도 마약(魔藥)입니다. 한자는 일본 한자라서 조금 다르겠습니다만.
일본이라고 해서 게임 나올 때마다 꼭 소설이 같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패러다임 노벨이라든가, 2차원 게임 노벨즈같이 18금 게임의 노벨라이즈를 전문으로 하는 소설 메이커가 있어서, 발매된 게임들을 소설화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연관된 사업은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하고 있지요(...)
제 2장 협박(脅迫)
멀리서 소리가 나고 있다...
독특한 멜로디를 지닌 그 소리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의식하자마자 머리 속에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였다.
"오빠!"
이번에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다시 잠에 빠져들던 나의 의식은 그 목소리로 갑자기 각성했다.
멍하니 눈을 뜨자, 거기에는 눈에 익은 방과... 입가를 살짝 일그러뜨린 여자 아이의 모습. 반쯤 조는 상태로 나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겨우, 일어났어?"
"뭐야... 미쿠냐..."
"도대체 언제까지 자는거야... 벌써 8시야."
미쿠는 질렸다는듯이 한숨을 쉬었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여동생 미쿠는 학교 교복 위에 드물게도 에이프런을 걸치고 있다. 내 여동생이라고 띄워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귀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동생이지만, 그 건방진 눈동자는 사정없이 늦게 일어난 나를 향해 시선을 내리꽂고 있다.
"그거 전혀 효과 없는 모양이네..."
침대 옆에서 아직 계속 울리고 있는 양 모양의 자명종을 끄고, 미쿠는 시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크한 색조와 가구로 통일된 내 방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이 시계는 아침에 약한 나에게 미쿠가 선물해준 것이다.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양을 모델로 한 시계로, 벨소리 대신 [메리씨의 양]이 흘러나온다.
"아니... 어제는 늦게 잠 들어서 말야..."
내가 변명을 하자, 미쿠는 갑자기 표정을 흐렸다.
"......또 ...어려운 연구라도 시작한거야?"
"뭐, 그런거지."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은 어젯밤 연구따위는 하지 않았다. [마약]을 맡은 아키를 밤 늦게까지 러브호텔에서 안았던 것이다.
[마약]의 효과가 대단한건지, 아키의 정욕이 바닥이 없었던건지... 아마도 후자겠지만, 그녀는 한번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몇번이고 나를 갈구했다.
하지만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연구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내가 만든 [마약]의 효과를 알아낸다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연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행위다.
그래... 연구인 것이다. 크크크큭...
나는 밀려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직 잠 덜 깼어?"
미쿠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이상해... 히죽거리고, 기분 나빠."
미쿠는 그렇게 말하고, 정말로 불안하다는듯이 나를 본다.
아차... 미쿠가 있는데 서툰 망상을 하는 건 위험하다. 꽤나 감이 좋은 구석이 있으니까, [마약]에 대해서 들키진 않겠지만 의심을 품게 할만한 언행은 삼가해야겠다.
"조금, 재미있는 게 생각나서 웃었을 뿐이야. 그럼... 일어나볼까."
"앗... 그럼... 나는 이제 학교 갈테니까."
미쿠는 당황하며 돌아섰다.
하하아... 일단, 남자의 생리는 알고 있는 것 같군. 건강한 젊은 남자의 사타구니가 아침을 맞이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직 8시잖아? 학교에 가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아?"
"우리 학교는 멀다구. 오빠네 학교처럼 차로 5분 걸리는 거리가 아냐."
"아아... 그랬지."
미쿠는 근처 역에서 전철로 역 네 군데를 건너가야 나오는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코우신 학원이라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역시 교사인 오빠와 같은 학교에 있어서는 뭔가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배려에서 일부러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그럼 갈께. ...아침밥은 식탁 위에 준비해뒀어."
"부모님은?"
"두분 다 벌써 나갔어."
"둘이서 외출한거야?"
"말했잖아. 엄마랑 아빠, 다섯번째 결혼기념일로 1주일간 여행 간다고...."
"아아..."
그러고보면 그런 이야기는 들은것 같다...
요즘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깔끔하게 잊어버렸다.
그래... 오늘부터였나.
"그러니까 당분간 오빠를 돌보는 건 내가 맡게 되었어."
미쿠는 귀찮다는듯이 말했지만, 표정은 그렇지도 않다. 말하는 것에 비해서 제법 남을 돌봐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오늘은 평소 보기 힘든 에이프런 차림이었나.
날 챙겨주는 역할을 곧바로 실행한 모양이다.
"하지만 부모님도 언제까지 신혼 기분이실려나. 아버지는 1주일이나 일을 빼먹어도 괜찮은거야?"
"사이가 좋은 건 좋은거지."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아버지와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두번째의 모친이 결혼하고 5년이 흘렀다.
진짜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후 아버지는 남자 혼자서 나를 길러오신 것이다.
하지만 5년 전, 아버지는 주위의 권유로 재혼을 결심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대학생이 된 시점에서 어느 정도 의무를 끝냈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심경을 이해했기에 굳이 재혼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놀라운 것은, 상대쪽에서도 데리고 온 아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미쿠이다.
"그럼, 빨리 일어나."
그 말을 남기고 미쿠는 방을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우리 학교와는 달리 미쿠가 입고 있는 교복은 세일러복 타입이다. 그 주름이 많은 스커트에 감싸인 하반신을 보자니 어느새 제법 여성스러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 벌써 5년이나 지났군...
처음 미쿠를 만났을 때의 일은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동생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아버지와 재혼한 지금의 모친이 데려온 미쿠의 모습을 봤을 때, 마음 속에 어떠한 충격을 느낀 것이다.
찌릿...
"웃..."
내 가슴 속에서 뭔가가 걸렸다.
그것은 고통과도 비슷한 기묘한 감각이다. 마치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가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고 있는듯한...
"좀... 지쳤나?"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요 며칠동안은 연구도 제대로 못했는데도 제법 체력을 써버렸다. [마약]을 만들어낸 이후, 그 이전까지는 생각도 못했을 정도의 단기간에 여러 여자를 안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크 크 큭... 좋 잖 아...
마음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래, 망설일 필요 없다. 여자들은 전부 자기가 원해서 나에게 안겨온 것이잖나. 설령 그것이 [마약]에 의한 결과라고 해도, 그것은 그녀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소망을 표면에 끌어낸 것일 뿐이다.
"그래, 그... 그런거다."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수긍하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찌릿...
또, 가슴 속이 욱씬거렸다.
그 날 방과 후...
수업을 끝내고 연구실에 돌아온 나는 하네바라가 의뢰한 샘플 약의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만들던 것이 실패해서 [마약]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연구릴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작업은 20분 정도만에 중단되었다.
도저히 의욕이 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아침부터 나는 뭘 해도 냉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수업을 하고 있을 때도, 시야에 들어온 여학생에게 마약을 쓰면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런 것만이 머리 속에 떠올라 버리는 것이다.
그건 안 돼...
나는 연이어 떠오르는 망상을 잘라내듯이 고개를 저었다.
[마약]은 여자를 포로로 만드는 약이다. 나 자신이 이 약의 포로가 되어버려서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안 돼... 오늘은 돌아가자."
나는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말하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런 상태로 연구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돌아갈 준비를 하려고 통근용 가방을 들어올렸을 때...
"응...?"
가방에서 하얀 것이 튀어 나와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끄집어내고 보니, 그것은 하얀 봉투였다.
뭐지... 이건?
이런 것을 가방 속에 넣은 기억은 없다. 혹시나하고 봉투 뒷면을 보았지만, 거기에는 당연하다는듯이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봉투를 열었다. 보낸 사람이 누구든, 이것이 나에게 온 물건이라는 것은 틀림 없다.
안에는 종이같은 것이 한장 들어있을 뿐이었다. 펼쳐보자, B5 사이즈의 편지지에 짧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당장 지금 하는 짓을 그만 둬라.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다.]
이, 이것은...
나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섬뜩한 충격이 등뼈에서 뇌수를 향해 달린다.
다시 편지지에 쓰인 짧은 문장을 읽는다. 묘하게 각이 잡힌 문자는, 필적을 알아보기 힘들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 미스테리물에 나오는 협박장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다.
협박장...?
이것은 협박장인건가?
내용을 보면 경고의 의미가 큰 것 같지만, 이 편지의 목적이 나를 협박하는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당장 지금 하는 짓을 그만 둬라]라는 문장은 완전히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나는 무의식 중에 편지지를 힘껏 쥐어 구겼다.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지만, 이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뿐...
그래, [마약]이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마약]을 알고 있는 인물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
나는 [마약]의 존재를 아는 인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미나... 아이... 그리고, 아키...
[마약]의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녀들 세 사람 뿐이다.
이 중에서 이런 편지를 보낼 법한 사람은 누구지?
평범하게 생각하면 미나나 아이는 제외된다. 성격적으로 나에게 협박을 한다는 발상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마약]을 썼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내게 안겨온 것은 그녀들 쪽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의 두 사람보다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만, 그녀 역시 자기가 섹스를 원한 것이다. 제정신이 돌아온 후라도 그것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부랴부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상상을 고정해버려서는 안 된다. 아직, 이 편지가 내 앞으로 왔다는 것도, 이 내용이 [마약]을 가리킨다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째서 이게 내 가방에 들어있는거야?"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어느쪽이건 불안한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다.
찢어서 버려버릴까... 하고 편지지를 든 손에 힘을 주었지만, 생각을 고치고 다시 봉투에 넣었다. 아무튼, 당분간 상황을 보자.
나를 협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후로도 뭔가의 리액션이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이 편지가 송신자를 찾아내는데 무언가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봉투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열쇠를 잠그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움찔, 하고 나는 경쾌한 소리를 울리는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설마... 편지를 보낸 사람이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호출음이 세 번 울리는 동안 망설였지만, 나는 체념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여보세요...?"
"오우, 나다."
들려온 것은 하네바라의 목소리였다.
나는 전신에서 한꺼번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뭐... 뭐야, 하네바라냐..."
"너 말야... 전화받을 때마다 뭐야, 는 아니잖아?"
하네바라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이번에는 조금...."
"조금 뭐? 항상 누군가의 전화라도 기다리고 있는거냐?"
"상관하지 마... 그보다, 일 이야기야?"
끈질긴 추궁을 피해서 나는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하긴 오늘은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었으니까 일 이야기를 꺼내도 대답하기에는 곤란하지만...
"아니, 오늘은 일 이야기가 아냐."
"...에?"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둘러댈까 생각하고 있던 만큼, 하네바라의 말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실은 말야... 너에게 데이트 대역을 부탁하고 싶어."
"하아?"
나는 하네바라의 예상 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오늘 저녁, 애인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말야,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일이 생겨서..."
"그럼 거절하면 되잖아."
"그게 모에코 녀석... 벌써 나와버렸는지, 연락이 안 돼."
"......"
하네바라의 말에, 나는 이전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시미즈 모에코의 모습을 떠올렸다.
확실히 우리들과 동년배로, 숏컷의 활발한 느낌을 주는 여성이었다. 꽤 미인이라서, 어쩌다가 이런 아이가 하네바라와 사귀게 된거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부탁한다. 나랑 네 사이잖아."
"하지만 괜찮은거냐? 대리 데이트같은 걸 시켰다가 그녀가 나에게 진심으로 반해버리면 어쩔 생각이야?"
"아아, 그럴 일은 없어. 모에코 녀석, 나한테 푹 빠져있으니까."
멋대로 해라...
나는 뭔가 바보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대로 수화기를 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 기미를 느낀 것인지 하네바라는 서둘러서 말을 이었다.
"아아... 모에코는 여섯시에 역 앞의 [에틀랑세]라는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잘 부탁한다."
"앙? 야, 잠깐..."
당황해서 매달리는 나를 무시하고 이번에는 하네바라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정말이지, 이 무슨 억지스러운 녀석이냐. 아무리 나라도 대리 데이트라니...
"잠깐..."
뭔가, 묘한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서 떠올랐다.
하네바라가 억지스러운 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전화는 조금 도가 지나친 부분이 있다.
애초에 대리 데이트따위, "저" 하네바라가 생각할만한 일인가?
"......"
뭐, 됐어.
오늘은 그 협박장 때문에 조금 신경질적으로 생각하게 된 거겠지...
"...시미즈 모에코... 인가."
또 다시, 이전 만났을 때의 모에코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나의 시야에 책상 위에 놓아둔 [마약]의 병이 들어온다. 무의식 중에 나는 그 병을 손에 들었다.
그 여자에게 이걸 쓰면...
또, 급속도로 부풀어오르는 위험한 욕망.
그 순간, 나는 협박장따위는 깨끗하게 잊었다.
카페 [에틀랑세]는 2층석도 준비되어있는, 역전에서도 제법 큰 가게다.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느라, 가게에 도착한 것은 하네바라가 지정한 여섯시를 5분 정도 넘긴 후였다.
그녀는 아직 있는걸까?
"어서오세요, 혼자이십니까?"
가게에 들어가자 웨이트리스가 영업용 스마일을 띄우며 다가왔다.
"아뇨... 잠깐 만날 약속이 있어서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한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인 그녀를 제대로 찾아낼 자신은 없지만, 뭐... 보면 알겠지. 하지만 1층석에는 그녀라고 생각되는 여성의 모습은 없었다.
"2층 쪽에 계실지도 모르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웨이트리스에게 권유받아,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앗!"
하는 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여기야, 우루시마루."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숏컷의 여성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기억 속의 모에코와 손을 흔드는 여성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과 간만에 재회할 때의 그 감각이다.
이전에는 좀 더 아이같은 인상이 있었지만, 이 나이의 여성이라는 것은 단기간에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시미즈... 였지?"
만약을 위해 물어보자, 그녀는 풋, 하고 실소했다.
"너~무해. 벌써 잊었어?"
"아니아니. 잊지 않았어. 너무 미인이 되어서 놀랐을 뿐이야."
"어머, 내가 아는 우루시마루는 그렇게 여자 상대로 빈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하핫, 거짓말은 하지 않아."
난 대답하면서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아아... 그렇군. 하지만 어떻게 나라는 걸 바로 알아본거야?"
"에...?"
"내가 2층에 올라왔을 때 말야."
"이상했어?"
모에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지금 느낌으로는, 왠지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으니까."
"알고 있었어. 난 우루시마루를 기다리고 있었는걸."
자못 당연하다는 얼굴로 모에코는 빙긋 웃었다.
"에... 그렇지만..."
"실은 아까 그이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줬어. 자기 대리로 우루시마루를 보낸다고..."
"뭐야... 그런거야..."
나는 웃으면서 끄떡였지만, 문득 기묘한 모순을 눈치챘다.
그거... 이상하잖아!
하네바라는 연락이 되지 않는 모에코를 걱정해서 나를 여기에 보낸 게 아니었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다면, 급한 용무가 생긴 것을 전하고 데이트를 중지하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석은 내게 일부러 전화를 건거지?
"......왜 그래?"
모에코가 이상하다는듯이 갑자기 입을 다문 내 얼굴을 훔쳐본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역시, 대리로 날 상대하는 건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어서 말끝을 흐렸다.
이 기묘한 모순에 대해서 모에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하네바라에게서 어떤 연락을 받은건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걸까?
아니면 이건 내가 생각이 지나칠 뿐이고, 곧장 밖에 나가버린 모에코가 심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하네바라의 배려인가?
"저기... 우루시마루는 타케시의 회사에서 연구를 의뢰받고 있지?"
"어... 아아, 그래."
현기증을 느끼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모에코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떤 걸 만드는거야?"
"그야... 여러가지지. 하네바라에게 물으면 나보다 자세히 가르쳐줄거야."
"그게 안 돼... 그 사람, 일 이야기는 전혀 안 하거든."
모에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과연... 그녀석답다면 그녀석답다. 공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녀석이니까, 설령 애인이라고 해도 일 이야기는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저기, 가르쳐줘."
"하지만..."
하네바라가 말하지 않은 것을 내가 멋대로 말해버려도 되는걸까.
하긴 그 이전에 화학지식이 없는 모에코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제대로 내용이 전달될지 의문이라는 문제도 있다.
"아, 자세한 해설은 됐으니까, 어떤 건지 간단하게 설명해주면 돼. 요점만 설명하는 건 학교 선생님이니까 간단하겠지?"
내 망설임의 원인을 눈치챘는지 모에코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
어쩔 수 없군... 어차피 오랫만에 만난지라 이야기할 화제가 부족해서 곤란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하네바라니까, 연구 내용을 간단하게 들려주는 정도는 그녀석도 할 말 없겠지.
"그럼... 시미즈는 해충을 유인해서 구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나는 현재 연구의 내용을 중학생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모에코는 흥미 깊게 듣고 있었지만,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전문적이 되면 [좀 더 간단하게]를 연발했다. 이과 분야식의 사고는 전혀 못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뭐, 이런 거야."
"흐음... 꽤나 성가신 걸 하고 있네."
"연구라는 건 성가신 거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문외한이 보기에는 어지간히 성가신 작업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저기... 좀 더, 대발명을 했다거나 하는 건 없어?"
"대발명?"
"왜, 그런 이야기 많잖아. 뭔가 다른 것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엄청난 것을 만들어버렸다거나."
"에..."
나는 뜨끔했다.
우연히 만들어진 엄청난 것... 그건 [마약]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 간단한 게... 아냐."
"하지만... 우루시마루군은 그런 거 만들 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잖아?"
"설마..."
나는 동료를 숨기듯이,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에 입을 댔다.
그 모습이 오히려 모에코의 호기심을 자극해버린 모양이다.
"아아~, 뭔가 수상해. 우루시마루...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지?"
"숨기는 건 아무것도 없어."
"거짓말... 타케시도 뭔가 얼버무릴 때는 지금의 우루시마루같은 얼굴을 하는걸."
"그, 그건..."
"저기, 가르쳐줘."
모에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순진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에코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싫은 예감을 떠올렸다.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있지만, 눈만은 웃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설마... 모에코는 단순히 이야깃거리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게서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오랫만에 만났는데 연구 이야기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도 기묘한 일이다. 게다가, 너무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다.
속을 한번 떠 볼까...
"실은... 있어. 대발명이 말야..."
나는 주위가 신경쓰인다는듯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에... 어떤?"
모에코는 한층 더 활기를 띄었다.
그 눈동자에는 단순히 흥미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뭔가 다른... 그래, 이걸로 겨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의 색이 떠올라 있었다.
...틀림없다.
모에코의 목적은 나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후에 있는 것은... 하네바라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과연... 이걸로, 나를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녀석은 모에코를 이용해서 탐색을 걸어온 것이다.
아마도 전화로 이야기했을 때, 그녀석은 내 상태에서 뭔가 느낀 것이겠지.
옛날부터 그런 쪽으로는 감이 좋은 녀석이니까 말야...
"저기... 그래서 대발명이라는 게 뭐야?"
모에코는 애가 타는듯 이야기를 재촉했다.
이 여자는 하네바라로부터 사정을 듣고, 전부 승낙한 것이겠지. 미인계라도 써서 내 입을 열게 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모에코를 쓰지 않고 하네바라가 직접 이야기를 하러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에코가 그녀석의 애인이라고 해도 사양할 필요는 없다.
그 미인계에 걸려들어 주도록 하자.
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써서...
멀리서 소리가 나고 있다...
독특한 멜로디를 지닌 그 소리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의식하자마자 머리 속에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였다.
"오빠!"
이번에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다시 잠에 빠져들던 나의 의식은 그 목소리로 갑자기 각성했다.
멍하니 눈을 뜨자, 거기에는 눈에 익은 방과... 입가를 살짝 일그러뜨린 여자 아이의 모습. 반쯤 조는 상태로 나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겨우, 일어났어?"
"뭐야... 미쿠냐..."
"도대체 언제까지 자는거야... 벌써 8시야."
미쿠는 질렸다는듯이 한숨을 쉬었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여동생 미쿠는 학교 교복 위에 드물게도 에이프런을 걸치고 있다. 내 여동생이라고 띄워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귀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동생이지만, 그 건방진 눈동자는 사정없이 늦게 일어난 나를 향해 시선을 내리꽂고 있다.
"그거 전혀 효과 없는 모양이네..."
침대 옆에서 아직 계속 울리고 있는 양 모양의 자명종을 끄고, 미쿠는 시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크한 색조와 가구로 통일된 내 방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이 시계는 아침에 약한 나에게 미쿠가 선물해준 것이다.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양을 모델로 한 시계로, 벨소리 대신 [메리씨의 양]이 흘러나온다.
"아니... 어제는 늦게 잠 들어서 말야..."
내가 변명을 하자, 미쿠는 갑자기 표정을 흐렸다.
"......또 ...어려운 연구라도 시작한거야?"
"뭐, 그런거지."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은 어젯밤 연구따위는 하지 않았다. [마약]을 맡은 아키를 밤 늦게까지 러브호텔에서 안았던 것이다.
[마약]의 효과가 대단한건지, 아키의 정욕이 바닥이 없었던건지... 아마도 후자겠지만, 그녀는 한번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몇번이고 나를 갈구했다.
하지만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연구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내가 만든 [마약]의 효과를 알아낸다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연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행위다.
그래... 연구인 것이다. 크크크큭...
나는 밀려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직 잠 덜 깼어?"
미쿠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이상해... 히죽거리고, 기분 나빠."
미쿠는 그렇게 말하고, 정말로 불안하다는듯이 나를 본다.
아차... 미쿠가 있는데 서툰 망상을 하는 건 위험하다. 꽤나 감이 좋은 구석이 있으니까, [마약]에 대해서 들키진 않겠지만 의심을 품게 할만한 언행은 삼가해야겠다.
"조금, 재미있는 게 생각나서 웃었을 뿐이야. 그럼... 일어나볼까."
"앗... 그럼... 나는 이제 학교 갈테니까."
미쿠는 당황하며 돌아섰다.
하하아... 일단, 남자의 생리는 알고 있는 것 같군. 건강한 젊은 남자의 사타구니가 아침을 맞이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직 8시잖아? 학교에 가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아?"
"우리 학교는 멀다구. 오빠네 학교처럼 차로 5분 걸리는 거리가 아냐."
"아아... 그랬지."
미쿠는 근처 역에서 전철로 역 네 군데를 건너가야 나오는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코우신 학원이라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역시 교사인 오빠와 같은 학교에 있어서는 뭔가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배려에서 일부러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그럼 갈께. ...아침밥은 식탁 위에 준비해뒀어."
"부모님은?"
"두분 다 벌써 나갔어."
"둘이서 외출한거야?"
"말했잖아. 엄마랑 아빠, 다섯번째 결혼기념일로 1주일간 여행 간다고...."
"아아..."
그러고보면 그런 이야기는 들은것 같다...
요즘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깔끔하게 잊어버렸다.
그래... 오늘부터였나.
"그러니까 당분간 오빠를 돌보는 건 내가 맡게 되었어."
미쿠는 귀찮다는듯이 말했지만, 표정은 그렇지도 않다. 말하는 것에 비해서 제법 남을 돌봐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오늘은 평소 보기 힘든 에이프런 차림이었나.
날 챙겨주는 역할을 곧바로 실행한 모양이다.
"하지만 부모님도 언제까지 신혼 기분이실려나. 아버지는 1주일이나 일을 빼먹어도 괜찮은거야?"
"사이가 좋은 건 좋은거지."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아버지와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두번째의 모친이 결혼하고 5년이 흘렀다.
진짜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후 아버지는 남자 혼자서 나를 길러오신 것이다.
하지만 5년 전, 아버지는 주위의 권유로 재혼을 결심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대학생이 된 시점에서 어느 정도 의무를 끝냈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심경을 이해했기에 굳이 재혼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놀라운 것은, 상대쪽에서도 데리고 온 아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미쿠이다.
"그럼, 빨리 일어나."
그 말을 남기고 미쿠는 방을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우리 학교와는 달리 미쿠가 입고 있는 교복은 세일러복 타입이다. 그 주름이 많은 스커트에 감싸인 하반신을 보자니 어느새 제법 여성스러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 벌써 5년이나 지났군...
처음 미쿠를 만났을 때의 일은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동생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아버지와 재혼한 지금의 모친이 데려온 미쿠의 모습을 봤을 때, 마음 속에 어떠한 충격을 느낀 것이다.
찌릿...
"웃..."
내 가슴 속에서 뭔가가 걸렸다.
그것은 고통과도 비슷한 기묘한 감각이다. 마치 마음 속에 있는 무언가가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고 있는듯한...
"좀... 지쳤나?"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요 며칠동안은 연구도 제대로 못했는데도 제법 체력을 써버렸다. [마약]을 만들어낸 이후, 그 이전까지는 생각도 못했을 정도의 단기간에 여러 여자를 안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크 크 큭... 좋 잖 아...
마음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래, 망설일 필요 없다. 여자들은 전부 자기가 원해서 나에게 안겨온 것이잖나. 설령 그것이 [마약]에 의한 결과라고 해도, 그것은 그녀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소망을 표면에 끌어낸 것일 뿐이다.
"그래, 그... 그런거다."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수긍하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찌릿...
또, 가슴 속이 욱씬거렸다.
그 날 방과 후...
수업을 끝내고 연구실에 돌아온 나는 하네바라가 의뢰한 샘플 약의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만들던 것이 실패해서 [마약]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연구릴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작업은 20분 정도만에 중단되었다.
도저히 의욕이 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아침부터 나는 뭘 해도 냉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수업을 하고 있을 때도, 시야에 들어온 여학생에게 마약을 쓰면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런 것만이 머리 속에 떠올라 버리는 것이다.
그건 안 돼...
나는 연이어 떠오르는 망상을 잘라내듯이 고개를 저었다.
[마약]은 여자를 포로로 만드는 약이다. 나 자신이 이 약의 포로가 되어버려서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안 돼... 오늘은 돌아가자."
나는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말하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런 상태로 연구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돌아갈 준비를 하려고 통근용 가방을 들어올렸을 때...
"응...?"
가방에서 하얀 것이 튀어 나와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끄집어내고 보니, 그것은 하얀 봉투였다.
뭐지... 이건?
이런 것을 가방 속에 넣은 기억은 없다. 혹시나하고 봉투 뒷면을 보았지만, 거기에는 당연하다는듯이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봉투를 열었다. 보낸 사람이 누구든, 이것이 나에게 온 물건이라는 것은 틀림 없다.
안에는 종이같은 것이 한장 들어있을 뿐이었다. 펼쳐보자, B5 사이즈의 편지지에 짧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당장 지금 하는 짓을 그만 둬라.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다.]
이, 이것은...
나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섬뜩한 충격이 등뼈에서 뇌수를 향해 달린다.
다시 편지지에 쓰인 짧은 문장을 읽는다. 묘하게 각이 잡힌 문자는, 필적을 알아보기 힘들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 미스테리물에 나오는 협박장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다.
협박장...?
이것은 협박장인건가?
내용을 보면 경고의 의미가 큰 것 같지만, 이 편지의 목적이 나를 협박하는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당장 지금 하는 짓을 그만 둬라]라는 문장은 완전히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나는 무의식 중에 편지지를 힘껏 쥐어 구겼다.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지만, 이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뿐...
그래, [마약]이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마약]을 알고 있는 인물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
나는 [마약]의 존재를 아는 인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미나... 아이... 그리고, 아키...
[마약]의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녀들 세 사람 뿐이다.
이 중에서 이런 편지를 보낼 법한 사람은 누구지?
평범하게 생각하면 미나나 아이는 제외된다. 성격적으로 나에게 협박을 한다는 발상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마약]을 썼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내게 안겨온 것은 그녀들 쪽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의 두 사람보다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만, 그녀 역시 자기가 섹스를 원한 것이다. 제정신이 돌아온 후라도 그것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부랴부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상상을 고정해버려서는 안 된다. 아직, 이 편지가 내 앞으로 왔다는 것도, 이 내용이 [마약]을 가리킨다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째서 이게 내 가방에 들어있는거야?"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어느쪽이건 불안한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다.
찢어서 버려버릴까... 하고 편지지를 든 손에 힘을 주었지만, 생각을 고치고 다시 봉투에 넣었다. 아무튼, 당분간 상황을 보자.
나를 협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후로도 뭔가의 리액션이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이 편지가 송신자를 찾아내는데 무언가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봉투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열쇠를 잠그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움찔, 하고 나는 경쾌한 소리를 울리는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설마... 편지를 보낸 사람이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호출음이 세 번 울리는 동안 망설였지만, 나는 체념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여보세요...?"
"오우, 나다."
들려온 것은 하네바라의 목소리였다.
나는 전신에서 한꺼번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뭐... 뭐야, 하네바라냐..."
"너 말야... 전화받을 때마다 뭐야, 는 아니잖아?"
하네바라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이번에는 조금...."
"조금 뭐? 항상 누군가의 전화라도 기다리고 있는거냐?"
"상관하지 마... 그보다, 일 이야기야?"
끈질긴 추궁을 피해서 나는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하긴 오늘은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었으니까 일 이야기를 꺼내도 대답하기에는 곤란하지만...
"아니, 오늘은 일 이야기가 아냐."
"...에?"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둘러댈까 생각하고 있던 만큼, 하네바라의 말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실은 말야... 너에게 데이트 대역을 부탁하고 싶어."
"하아?"
나는 하네바라의 예상 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오늘 저녁, 애인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말야, 도저히 발을 뺄 수 없는 일이 생겨서..."
"그럼 거절하면 되잖아."
"그게 모에코 녀석... 벌써 나와버렸는지, 연락이 안 돼."
"......"
하네바라의 말에, 나는 이전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시미즈 모에코의 모습을 떠올렸다.
확실히 우리들과 동년배로, 숏컷의 활발한 느낌을 주는 여성이었다. 꽤 미인이라서, 어쩌다가 이런 아이가 하네바라와 사귀게 된거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부탁한다. 나랑 네 사이잖아."
"하지만 괜찮은거냐? 대리 데이트같은 걸 시켰다가 그녀가 나에게 진심으로 반해버리면 어쩔 생각이야?"
"아아, 그럴 일은 없어. 모에코 녀석, 나한테 푹 빠져있으니까."
멋대로 해라...
나는 뭔가 바보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대로 수화기를 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 기미를 느낀 것인지 하네바라는 서둘러서 말을 이었다.
"아아... 모에코는 여섯시에 역 앞의 [에틀랑세]라는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잘 부탁한다."
"앙? 야, 잠깐..."
당황해서 매달리는 나를 무시하고 이번에는 하네바라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정말이지, 이 무슨 억지스러운 녀석이냐. 아무리 나라도 대리 데이트라니...
"잠깐..."
뭔가, 묘한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서 떠올랐다.
하네바라가 억지스러운 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전화는 조금 도가 지나친 부분이 있다.
애초에 대리 데이트따위, "저" 하네바라가 생각할만한 일인가?
"......"
뭐, 됐어.
오늘은 그 협박장 때문에 조금 신경질적으로 생각하게 된 거겠지...
"...시미즈 모에코... 인가."
또 다시, 이전 만났을 때의 모에코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나의 시야에 책상 위에 놓아둔 [마약]의 병이 들어온다. 무의식 중에 나는 그 병을 손에 들었다.
그 여자에게 이걸 쓰면...
또, 급속도로 부풀어오르는 위험한 욕망.
그 순간, 나는 협박장따위는 깨끗하게 잊었다.
카페 [에틀랑세]는 2층석도 준비되어있는, 역전에서도 제법 큰 가게다.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느라, 가게에 도착한 것은 하네바라가 지정한 여섯시를 5분 정도 넘긴 후였다.
그녀는 아직 있는걸까?
"어서오세요, 혼자이십니까?"
가게에 들어가자 웨이트리스가 영업용 스마일을 띄우며 다가왔다.
"아뇨... 잠깐 만날 약속이 있어서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한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인 그녀를 제대로 찾아낼 자신은 없지만, 뭐... 보면 알겠지. 하지만 1층석에는 그녀라고 생각되는 여성의 모습은 없었다.
"2층 쪽에 계실지도 모르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웨이트리스에게 권유받아,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앗!"
하는 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여기야, 우루시마루."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숏컷의 여성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기억 속의 모에코와 손을 흔드는 여성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과 간만에 재회할 때의 그 감각이다.
이전에는 좀 더 아이같은 인상이 있었지만, 이 나이의 여성이라는 것은 단기간에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시미즈... 였지?"
만약을 위해 물어보자, 그녀는 풋, 하고 실소했다.
"너~무해. 벌써 잊었어?"
"아니아니. 잊지 않았어. 너무 미인이 되어서 놀랐을 뿐이야."
"어머, 내가 아는 우루시마루는 그렇게 여자 상대로 빈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하핫, 거짓말은 하지 않아."
난 대답하면서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아아... 그렇군. 하지만 어떻게 나라는 걸 바로 알아본거야?"
"에...?"
"내가 2층에 올라왔을 때 말야."
"이상했어?"
모에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지금 느낌으로는, 왠지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으니까."
"알고 있었어. 난 우루시마루를 기다리고 있었는걸."
자못 당연하다는 얼굴로 모에코는 빙긋 웃었다.
"에... 그렇지만..."
"실은 아까 그이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줬어. 자기 대리로 우루시마루를 보낸다고..."
"뭐야... 그런거야..."
나는 웃으면서 끄떡였지만, 문득 기묘한 모순을 눈치챘다.
그거... 이상하잖아!
하네바라는 연락이 되지 않는 모에코를 걱정해서 나를 여기에 보낸 게 아니었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다면, 급한 용무가 생긴 것을 전하고 데이트를 중지하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석은 내게 일부러 전화를 건거지?
"......왜 그래?"
모에코가 이상하다는듯이 갑자기 입을 다문 내 얼굴을 훔쳐본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역시, 대리로 날 상대하는 건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어서 말끝을 흐렸다.
이 기묘한 모순에 대해서 모에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까.
하네바라에게서 어떤 연락을 받은건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걸까?
아니면 이건 내가 생각이 지나칠 뿐이고, 곧장 밖에 나가버린 모에코가 심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하네바라의 배려인가?
"저기... 우루시마루는 타케시의 회사에서 연구를 의뢰받고 있지?"
"어... 아아, 그래."
현기증을 느끼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모에코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떤 걸 만드는거야?"
"그야... 여러가지지. 하네바라에게 물으면 나보다 자세히 가르쳐줄거야."
"그게 안 돼... 그 사람, 일 이야기는 전혀 안 하거든."
모에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과연... 그녀석답다면 그녀석답다. 공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녀석이니까, 설령 애인이라고 해도 일 이야기는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저기, 가르쳐줘."
"하지만..."
하네바라가 말하지 않은 것을 내가 멋대로 말해버려도 되는걸까.
하긴 그 이전에 화학지식이 없는 모에코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제대로 내용이 전달될지 의문이라는 문제도 있다.
"아, 자세한 해설은 됐으니까, 어떤 건지 간단하게 설명해주면 돼. 요점만 설명하는 건 학교 선생님이니까 간단하겠지?"
내 망설임의 원인을 눈치챘는지 모에코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
어쩔 수 없군... 어차피 오랫만에 만난지라 이야기할 화제가 부족해서 곤란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하네바라니까, 연구 내용을 간단하게 들려주는 정도는 그녀석도 할 말 없겠지.
"그럼... 시미즈는 해충을 유인해서 구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나는 현재 연구의 내용을 중학생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모에코는 흥미 깊게 듣고 있었지만,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전문적이 되면 [좀 더 간단하게]를 연발했다. 이과 분야식의 사고는 전혀 못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뭐, 이런 거야."
"흐음... 꽤나 성가신 걸 하고 있네."
"연구라는 건 성가신 거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문외한이 보기에는 어지간히 성가신 작업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저기... 좀 더, 대발명을 했다거나 하는 건 없어?"
"대발명?"
"왜, 그런 이야기 많잖아. 뭔가 다른 것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엄청난 것을 만들어버렸다거나."
"에..."
나는 뜨끔했다.
우연히 만들어진 엄청난 것... 그건 [마약]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 간단한 게... 아냐."
"하지만... 우루시마루군은 그런 거 만들 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잖아?"
"설마..."
나는 동료를 숨기듯이,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에 입을 댔다.
그 모습이 오히려 모에코의 호기심을 자극해버린 모양이다.
"아아~, 뭔가 수상해. 우루시마루...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지?"
"숨기는 건 아무것도 없어."
"거짓말... 타케시도 뭔가 얼버무릴 때는 지금의 우루시마루같은 얼굴을 하는걸."
"그, 그건..."
"저기, 가르쳐줘."
모에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순진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에코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싫은 예감을 떠올렸다.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있지만, 눈만은 웃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설마... 모에코는 단순히 이야깃거리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게서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오랫만에 만났는데 연구 이야기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도 기묘한 일이다. 게다가, 너무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다.
속을 한번 떠 볼까...
"실은... 있어. 대발명이 말야..."
나는 주위가 신경쓰인다는듯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에... 어떤?"
모에코는 한층 더 활기를 띄었다.
그 눈동자에는 단순히 흥미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뭔가 다른... 그래, 이걸로 겨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의 색이 떠올라 있었다.
...틀림없다.
모에코의 목적은 나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후에 있는 것은... 하네바라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과연... 이걸로, 나를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녀석은 모에코를 이용해서 탐색을 걸어온 것이다.
아마도 전화로 이야기했을 때, 그녀석은 내 상태에서 뭔가 느낀 것이겠지.
옛날부터 그런 쪽으로는 감이 좋은 녀석이니까 말야...
"저기... 그래서 대발명이라는 게 뭐야?"
모에코는 애가 타는듯 이야기를 재촉했다.
이 여자는 하네바라로부터 사정을 듣고, 전부 승낙한 것이겠지. 미인계라도 써서 내 입을 열게 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모에코를 쓰지 않고 하네바라가 직접 이야기를 하러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에코가 그녀석의 애인이라고 해도 사양할 필요는 없다.
그 미인계에 걸려들어 주도록 하자.
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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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에서 계속됩니다... 이번 장은 아마 제가 올린 글에서 유일하게 에로장면이 없는 부분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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