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드의 모험 18
교단의 45대 법왕 아렌티아는 지난 수십년간 사상 유래없는 디엘교단의 번성을 가져온 능력있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교단 내에서 받는 존경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라서, 그녀를 숭배하다시피 하는 젊은 교단의 인물들이 거의 반수 이상은 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교단의 젊은 여신관 카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녀는 어렸을때부터 찬란한 미모와 고고한 품격을 지닌 법왕에 매료되어 있었다. 자라면서 그 마음은 더욱 깊어졌고 자신도 언젠가는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젠..
"사실 신관이라는 직업은 그리 재미있는 직업이 아니다. 나도 살아오며 많은 직업을 가져봤지만 이것만큼 힘들고 딱딱한게 없었어."
카나가 동경하는 그 법왕 아렌티아가 그녀로 하여금 신관직을 때려 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것도 명령에 가까운 어투로, 반드시 교단에서 몰아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카나는 대체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흑 법왕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물론 제 방에 남자를 끌어들인 죄는 크다는걸 알아요. 하지만, 이건 너무한 처사에요."
"으음. 그건 그렇지만, 교단의 율법이 워낙 철저해서.. 너에게만 예외를 둘 수 없단다."
"율법이라뇨! 그런건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외간남자를 들인 죄는 외출금지 1000일 아닌가요? 파문이라뇨!!"
"아 그건 단순 교제에 한해서고, 너처럼 그.. 순결을 잃게 되면 어쩔수 없이 파문이란다."
"순결을 잃다니 그게 무슨말이에요?"
아렌티아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돌았다.
"쉽게말해, 남자의 생식기를 자신의 생식기에 받아들이면 순결이 없어지는 거란다. 미안하구나. 처녀가 아닌 신관은 교단에 있을수가 없어. 나도 700년 넘게 살며 레즈짓도 하고 별별 일을 다 겪어봤지만 여자로서는 아직 처녀잖니."
"거짓말 하지 마세요. 700년 넘게 사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난 종족 특성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단다. 아니면 혹시 너는 내 말을 의심하는 거니?"
"흑.. 흑"
물론 법왕이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는건 안다. 단지 그녀는 너무 큰 충격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아렌티아에게 대들었던 것이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후우 생각해 보렴. 신관같은 재미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제국의 황비가 되는게 더 즐거운 일이 아니겠니? 네 맘대로 하고 살 수 있단다. 여기선 채식밖에 못하지만 황궁에서는 대륙 전역에서 나는 진미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네 남편될 펜드라는 새끼가 좀 질이 나쁘기는 하지만, 뭐 쌩까고 살면 되는거고.. 그러니 제발 내 말대로 하자꾸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란다."
"저 전. 결혼같은거 싫어요. 황비같은 화려한 것도 싫구요. 흑. 그냥 신전에 있게 해주세요. 신관직을 박탈당해도 좋아요. 하다못해 허드레 일이라도.."
"안된다고 했잖니!!"
결국 아렌티아는 무섭게 소리치며 카나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넌 이제 여기 있을 수 없어! 그러게 몸가짐을 단정히 했어야지 그딴 양아치 같은놈에게 치마나 흘리고 다니고 다 자업 자득이야. 알겠니? 내 말대로 해! 넌 그 펜드라는 새끼랑 결혼해야 한다구. 그나마 한번먹고 버려지는 처량한 신세가 아니게 된걸 감사하게 여겨야지 어디서 떼를 쓰고 있어?"
"으흐으윽"
아렌티아의 다그침에 카나는 서럽게 눈물을 떨구었다. 이게 다 그 더러운 황자저하 때문이다. 치료를 빙자해서 자신을 능멸한 그 죽일놈! 카나는 도저히 그 자식을 용서할 수 없었다. 더 나쁜건 동경해 마지않는 법왕님이 그 망나니같은놈과 자신을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오늘부로 너는 신전에서 퇴출이야. 따라와. 당장 황궁으로 가자. 앞으로 넌 거기서 살아야 한다."
"..."
카나는 체념한 듯 쓸쓸한 기색으로 법왕의 집무실을 나가려 했다.
"어디가는 거니? 내 말 못들었어?"
"제 짐요. 여기서 이제 살 수 없다면 이삿짐을 챙겨야죠."
"걱정말고 그냥 몸만 가렴. 여기서 쓰던 물건은 단 하나도 다시 쓸일이 없을거야."
"하지만.."
"닥치고 따라와!"
아렌티아는 매섭게 소리치며 먼저 방을 나가버렸다. 카나는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
.
.
갑작스런 법왕의 방문은 펜드로 하여금 으쓱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년이 이제서야 자신이 황제가 되리라는걸 알아보고 연을 대러 온 것이다. 펜드는 거만한 모습으로 상석에 앉아 아렌티아와 카나를 맞아들였다.
"허허 이게 누구신가. 고귀하신 법왕성하가 아니신가. 뭐 더 고귀한 황제폐하가 여기 있긴 하지만.. 어쨌든 환영하오."
[말 한번 재수없게 하는군]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안드는 놈이다. 세피아와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저런놈의 면상은 보지도 않는 건데..
"아직 황제가 되지 못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반갑습니다 황태자전하."
"..."
아렌티아는 그래도 터져나오는 욕지기를 애써 억누르고 그에게 예를 표했지만 그녀에게 끌려온 여신관 카나는 무언가 밸이 난 기색으로 입술을 꾹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교단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 펜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래야 가질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된거나 다름 없지요. 그것보다 여기 오신 이유가 뭐죠? 후후 비싼 몸이 예까지 행사하신 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 네. 그렇죠. 바로 제가 데려온 이 아이를 황태자비로 맞아줬으면 해서 말입니다."
[뭐 황태자비?]
펜드는 고까운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카나를 힐끗 바라봤다. 저 여자는 며칠 전 한번 맛있게 먹고 버린 년이 아닌가. 한번 쯤 더 먹어야 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황비로 맞을 생각은 전혀 해본적이 없다.
"흠 흠. 그건 좀 힘들겠습니다만. 일단 신분도 좀 낮은 듯 하고, 일국의 황비가 되기에는 너무 머리가 나빠서요. 큭큭. 2세를 생각해서라도 좀.."
"네. 이 아이가 머리가 나쁜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좆대가리를 휘두른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좆대가리를 휘두른건 저이지만.. 컥"
펜드는 이죽거리며 아렌티아의 말에 답하다가 순간 깜짝 놀랐다. 좆대가리라니.. 그런 천박한 단어가 법왕의 입에서 나오다니?!
[아 맞다. 이년 미친년이었지?]
펜드는 처음 그녀를 찾아갔을때 황금 10톤을 거절하며 보인 미친 증상을 기억해 내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년이니 그런 말도 스스럼 없이 할 수 있겠지.
"어쨌든 저 멍청한 년을 황비로 맞을수는 없습니다. 뭐 법왕성하께서 애원하신다면 첩 정도로는 들일 수 있지만서도.."
"첩은 안돼. 정실로 맞아라. 네가 남자라면 네가 한 일에대해 책임을 지거라."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언가 불만에 찬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카나가 결국 참지못하고 와락 화를 냈다.
"아 나도 너같은 짐승같은 놈 싫거든? 누가 누구더러 멍청한 년이래?"
"무례한 것 감히 황제가 될 나에게 그딴 망발을 하느냐!"
"흥. 네가 무슨 황제야! 너때문에 나는 이제 교단에서 쫓겨나게 됬어. 어떻게 할꺼야 이 짐승같은 놈아?"
"그거야 네 사정이다. 천한것. 법왕의 비호를 믿고 못하는 말이 없구나."
"...."
아렌티아는 그들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참을 인자를 무려 삼십번이나 더 새겨야 했다. 참자.. 참아야 한다. 괜히 화를 내봐야 자신만 손해인 것이다. 빨리 펜드에게 카나를 넘겨주고 나중에 세피아와의 약속만 이행하면 된다. 이딴놈하고 더 얽매일 필요 없다.
"그만 하거라. 아무리 마음에 안든다고 하더라도 일국의 군주이자 네 남편이 될 사람이다."
"흑 법왕성하. 전 이런 사람한테 시집가기 싫어요. 교단에서 쫓겨나는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시골로 내려가 의원이나 차려서 먹고 살래요. 아직 신성력은 남아 있으니까.."
"그거 참 좋군. 저 여자의 의사가 그러하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군요. 의원을 차리는 비용은 제가 부담하도록 하죠. 한 100골드 정도면 되겠죠?"
아렌티아는 참을인자를 서른 한번째 새기며 다시한번 펜드를 설득했다.
"당신은 정말로 어리석군요. 이 아이는 제가 각별히 생각하는 제자입니다. 그녀를 아내로 맞으면 저의 힘도 어느정도 빌릴 수 있을 텐데, 이런식으로 거절할 게 아닙니다."
"오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뭐 인심 쓰죠. 제 첩.. 아니 한 다섯째 부인정도의 자리를 미리 내어줄 수는 있습니다."
"첫째가 아니면 안됩니다. 카나의 인생을 망친 책임을 지셔야죠. 전하께서는 딱히 혼약을 예정해놓은 처자도 없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짜증나게..]
펜드는 아렌티아가 계속 말도안되는 이유를 들어 카나를 황비로 들이려고 하자 기분이 팍 상했다. 생각같아서는 크게 역정을 내서 둘 다 보내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전 대륙에 넓은 세력을 가진 교단의 총수 아렌티아의 존재감은 그리 쉽게 대할게 아니었다.
"없긴 왜 없습니까. 아주 고귀한 신분을 지닌 혼약자가 저에게는 있습니다."
"호오. 정말요? 그럼 여기 한번 데려와 보시죠."
"큭.."
펜드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대충 있다고 둘러댄 건데 데려오라고 할 줄이야. 그는 무언가 다른 변명을 하려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하 얼마든지요. 그녀는 몸이 불편해 밖에 잘 나다니지는 않지만, 법왕성하의 의심을 해소해 드리기 위해 특별히 이 앞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어이 부관."
"네 전하."
"지금 당장 파르세스를 데려 오라고 전해라."
"네 네?"
부관은 펜드의 말에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파르세스는 얼마전 들어온 펜드의 노리개가 아니던가? 그녀를 설마 자신의 혼약자로 소개할 셈인가?
"뭐하고 있어. 빨리!"
"알겠습니다 전하."
부관이 떠나고 펜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면 파르세스는 나름 자신의 황비가 될 만한 높은 신분을 갖고 있었다. 쉐밀은 전 황제의 동생이자 동쪽식민지의 왕이었으므로 그의 딸이자 펜드의 육노예 파르세스도 공주라고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파르세스가 공주라.. 큭큭 안어울리는데?]
어차피 쉐밀은 자신의 손에 반역죄로 죽게 될 것이므로 아마 파르세스가 자신의 지위를 회복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육노예 위치가 딱이다. 그리고 그건 아렌티아가 데려온 저 카나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감히 황비 자리를 노려?
잠시 후 파르세스가 시녀의 손에 이끌려 비틀비틀 끌려나왔다. 그녀는 갑작스레 불려나온게 무척 불안한 듯 시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펜드오빠. 저 저를 왜 부르신 거죠?"
"아 인사하거라. 여기 법왕 아렌티아님께서 친히 오셨단다. 흐흐."
"에? 어느 쪽에요?"
눈이 보이지 않는 파르세스는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며 아렌티아의 기척을 찾으려 했다. 보다못한 시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아렌티아의 방향으로 돌려주었다.
"아 그쪽이군요. 안녕하세요. 법왕성하. 저는.."
일순 파르세스는 말을 망설였다. 그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되는 것인가? 그녀가 망설이고 있자 펜드가 대신 말을 받았다.
"파르세스 테어카나. 황가의 고귀한 피를 이은 소녀죠. 이 정도는 되어야 황비에 걸맞은 신분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아렌티아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파르세스를 지그시 응시했다. 저 아이의 눈은..
"안타깝지만 몸이 좀 불편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머리가 멍청한건 아니죠. 나름 눈치가 있어 제 기분에 맞춰주려고 한답니다. 후후 카나라는 여자와는 여러모로 비교가 많이 되죠."
펜드는 이쯤 되면 아렌티아도 포기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렌티아는 웬일인지 파르세스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게 아닌가
"네 이름이 파르세스냐?"
"아 네.."
"정말 펜드의 말대로 네가 그의 1황비가 될 여자냐?"
"네에? 화 황비요? 제가 황비가 되는 건가요?"
아렌티아의 말에 파르세스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자신은 펜드의 말마따나 단지 그의 성노리개에 불과할 뿐인데, 황비라니! 설마 펜드는 자신을 아내로 맞을 생각을 갖고 있었단 말인가?
[크윽]
펜드는 아렌티아가 자꾸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하자 짜증이 솟구쳤지만 꾹 참고
"하하 파르세스야. 새삼스럽게 뭘 그러느냐. 파르세스는 몸이 좋지 않아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나중에 이야기 하자 파르세스. 어이 이 아이를 그만 데리고 돌아가라."
펜드의 명에 따라 시녀가 파르세스를 안으로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렌티아가 냉랭한 목소리로 그녀를 제지했다.
"멈춰라.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 파르세스양?"
"네 네?"
"그대는 처녀가 아닌 것 같군. 하루에 펜드와 몇번정도 관계를 가지는 거지?"
"자 잠깐."
펜드는 기가막혔다. 그런 질문은 해선는 안되는게 아닌가?
"왜 그런걸 물어보시는 거죠?"
"묻는 말에 답하거라."
"이봐요! 당장 그만두지 못하겟소?!"
아렌티아는 펜드의 말 따위는 무시하고 상냥하게 파르세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단다. 나는 너를 지켜줄 수 있다. 사실대로 말하거라."
"에.. 하루 다섯번정도? 너무 힘들고 싫지만 오빠가 그걸 좋아해서 어쩔 수 없어요. 에헤헷 거기다 절 황비로 맞아 주신다는데 이정도는 참아야죠!"
펜드가 뭐라고 그녀를 제지하기도 전에 파르세스는 이미 답변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데다 아렌티아의 따뜻한 태도에 마음이 풀어져 버린 것이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아렌티아는 써늘하게 웃으며 펜드를 노려봤다.
"이 애는 제국군 총사령관 쉐밀 테어카나의 숨겨진 자식이라 알고 있는데.. 어째서 너의 노리개가 되어 있는 거지?"
"아 그.."
"뭐... 네가 쓰레기같은 놈인건 잘 알고 있으니 내 상관할 바는 아니지. 하지만 저 아이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이걸로 혼약자가 있느니 뭐느니 하는 거짓말은 탄로가 난 것 같군."
"뭐 뭐요? 내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요? 법왕께선 저를 지독히 모욕하시는 구려."
아렌티아는 펜드를 찢어죽이고 싶었다. 대충 짐작이 간다. 황비로 삼아준다니 좋아하는 파르세스의 반응으로 보아 그녀가 펜드를 아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비열한 방법으로 그에게 속아있을 것이다. 카나를 범한것도 모자라 그보다 다섯살은 어려보이는 눈 먼 소녀까지.. 이런놈이 황제가 된다고?
콰아앙
순간 아렌티아 주위에 엄청난 살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주변을 압도해갔다. 펜드는 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콰직
"흐 흐엑?"
머리가 아프다. 왜 아픈가 했더니 검은 사제복을 입은 한 미모의 여성이 그의 머리를 꽉 움켜쥐고 벽에 밀어 붙이고 있었다. 저 여자는 대체..
"어이 쓰레기. 나도 예전에 왕노릇 좀 해봐서 아는데, 너따위 녀석은 결코 한 일국의 군주가 될 자격이 없어."
"뭐 뭣이? 이 미친년!!"
"내가 너같은 쓰레기한테 카나를 시집보내려는 이유가 뭔지 아냐? 그렇게 라도 해 놓지 않으면 너따위를 도저히 도와줄 마음이 생기지 않거든? 카나가 네 아내가 되어 있으면 카나때문에라도 좀 몸을 움직일 마음이 생길테니까.."
"제길 뭐하는 거냐! 이 미친년을 떨어내라. 루카! 어디있어?!"
그의 근위병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바닥에 엎드려 있다. 대신 펜드의 목소리가 대전 널리 울려퍼지자 어디선가 청발의 미녀가 조용히 검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아렌티아를 노려보더니 곧 섬광처럼 그녀에게 짓쳐들어 갔다.
우우웅
"엣?"
아렌티아는 예속인형 루카의 돌격을 너무도 간단하게 무위로 돌려냈다. 자유로운 한쪽 손을 들어 루카를 살짝 가르치자 그녀의 몸이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못박혀 버린 것이다. 루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아렌티아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 인간세의 일에 깊이 관여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네 꼬락서니가 너무 한심해서 한마디 한다. 인생 그렇게 살지 말거라. 그 근거없는 오만한 자신감을 버리고 스스로를 숙이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몰락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올 것이다."
"으 으.."
펜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겁에 질려 덜덜 떨고만 있었다. 이 미친년의 정체는 대체 뭐지? 그 누가 루카의 공격을 장난이라도 하듯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뭐 그래도 네놈이 뿌리까지 썩지는 않았다면 내 말에 뭔가 느끼는게 있겠지. 흥."
이 말을 끝으로 아렌티아는 펜드의 몸을 내려 주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난 후에도 펜드는 좀처럼 겁에 질린 모습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후우.. 그럼 계속하지. 카나야!"
"네 네?!"
마찬가지로 아렌티아의 살기에 눌려 잔뜩 겁에 질려있던 카나가 불에라도 데인 듯 급히 대답했다.
"이 남자 싫지? 알아. 하지만 그래도 시집 가거라. 그게 서로를 위해 좋다. 뭐 정 싫으면 바람이라도 피던가 하던지.."
"그 그런.."
카나가 뭐라 할 말을 못찾고 머뭇거리자 아렌티아는 이번엔 펜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펜드."
"에.."
펜드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무섭다.. 이 여자가 무서워서 견딜수가 없다.
"카나를 아내로 맡거라. 저 애가 맹해 보이지만 나름 똑똑한 구석도 있다. 교단내 평가시험 수위자리를 도맡아 하던 우수한 애가 바로 카나다. 너처럼 덜떨어진 놈의 보조 정도는 충분히 해 줄수 있을 것이다."
"으 으.."
"알겠느냐!"
"아 네! 법왕성하."
펜드는 이제 자존심도 뭣도 잊고 아렌티아에게 굽실거렸다. 그에게서 좀전의 오만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후우 그럼 결정 났군. 카나를 잘 부탁한다."
"옙."
이제 이 곳에 볼일은 없다. 아렌티아는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아참.."
막 밖으로 나가려던 아렌티아가 문득 생각난 듯 다시 펜드를 바라봤다.
"파르세스는 어디있지?"
"모 모르겠는데요."
아마 경황중에 시녀가 다시 그녀를 안으로 데려간 듯 했다. 아렌티아는 파르세스를 데려오라고 하려다가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지는걸 느꼈다. 어차피 인간들의 일인데 이렇게까지 힘을 쓸 필요가 있을까?
대신 그녀는 펜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파르세스가 예지안을 가진건 알고 있겠지?"
"네엣?"
처음듣는 소리다. 예지안은 대체 뭐지? 그의 뚱한 반응을 보고 아렌티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모르면 됬다. 그것보다.. 난 파르세스의 눈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녀를 정상시력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이지."
"정상시력이요?"
펜드는 깜짝놀라 되물었다. 아렌티아는 그가 놀라건 말건 담담히 자신이 할 말을 계속했다.
"뭐 여기까지 온 김에 그 애의 시력을 되찾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예지안의 능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지."
그러니까 예지안이 뭐냔 말이지.. 혹 파르세스가 미래예지 능력이라도 가졌다는 건가? 펜드는 아렌티아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 애의 눈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네 뜻에 맡기마. 파르세스에게 빛을 되찾아 줄까?"
1. 눈을 고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 설령 예지안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라 할지라도 파르세스의 인생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그 애의 눈을 고쳐달라고 하자.
2. 여기선 신중해야 한다. 예지안이라는게 생각외로 중요한 것일수도 있으니.. 그 애에게는 미안하지만 거절하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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