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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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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 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1話 반역



  105-1.
  결혼식이 끝나고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질시어린 시선, 그리고 축하 속에서 나와 나탈리는 따로 마련된 별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끈따끈한 일상을 보내기 시작, 다대한 노력으로 행복으로 신혼 초기부터 결혼에 성공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새신부들이 그러하듯 행복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나탈리에게 잘 대해주었다. 필시 나탈리에게는 꿈과 같은 며칠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그렇게 노력했으니까.
  그런 잠깐동안의 밀월시기가 지난 후 우리는 별궁에서 나왔다.


  “훗, 로리콘 녀석.”
  “8살에게 플래그 꽂은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닌데요.”
  “그때는 몰랐다고?”


  그리고 아버지의 놀림에 직면했다. 하지만 0.1초 내에 시작된 나의 반격에 아버지도 자신이 나를 놀릴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듯 곧 놀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은 절망하는 듯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고개만 휘저었다.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건 아니므로 필시 어머님들에게 응징을 받던 것을 떠올린 것이겠지. 대체 얼마나 저러고 있을지를 기대하면서 지켜보고 있는데 아버지는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의 품으로 다이빙했다.


  “어머나!”
  “좋아해!”


  죽어도 사랑한다는 말씀은 해주지 않으시는군요. 그 때문에 아가씨들이 더 불타오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러시면…….”
  “반항하는 새끼 고양이에게는 징벌이 있어야겠지? 우훗.”


  어이, 뭐 하려는 거냐. 아버지. 어쨌든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아름다운 여인 두 사람이서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많이 본 것이라두근거리지 않아도 좋음에도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람에 내 마음이 조금은 두근거린 것은 비밀이다. 남자들이 백합에 열광하기도 한다는 이유를 왠지 모르게 알 것 같다. 여전히 남자와 남자의 사랑에 열광하는 무리들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전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그 분이 있는 곳은 언제나 즐거운 것 같아요.”


  저녁시간, 나탈리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즐겁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지 않을까. 그 사람은 언제나 사고를 쳐두고서는 뒤에서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는 스타일이니까 말야.
  그런 것치고는 꽤나 뒷수습은 잘하고 있지만.


  “아니, 그보다 화는 나지 않아? 며칠 전까지는 그래도 아래에 두고 부렸던 시녀들인데 시아버지의 여자들이 되는 거라고. 상하관계가 바뀌는 거잖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들을 끄집어내었다. 하지만 나탈리는 그런 내 말에 풋 웃더니.


  “그대로두면 오라버니께서 혹하실 지도 모르니까요. 미시어스 제국으로 보내는 것이 최고에요. 말하자면 일석이조랄까요? 아버님에게 잘 보이는 방법도 되고 위험한 아이들을 치우는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요. 어때요?”


  라고 말했다. 여기에 책략가 하나가 탄생! 무서워!


  “뭐, 무섭구먼.”
  “흐응. 부인에게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는 건가요?”


  본심을 말한 죄로 옆구리를 꼬집혔다. 이걸 어찌 변명하나, 생각하다가 좋은 건수를 찾아 이야기한다. 뭐, 쉽게 말해 변명이다.


  “무섭다는 건, 어디까지나 아직 십대초반인 나탈리를 임신시킨 것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떠올려보고는 절망한 거랄까, 그러니까…….”
  “타클란 제국의 황제는 일흔이라는 나이로 12살이었던 황비를 임신시켰는걸요. 괜찮아요. 오라버니는 그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그 변명은 반만 성공했다. 이게 다 타클란 제국의 황제, 헤빌 맥베르데 케스토론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탈리가 이런 선례가 있었으니 상관없다고 제시한 예는 타클란 제국의 47황비 릴리아나. 2살이 된 아들을 두고 있는 유부녀, 14살이다. 물론 그 몸이 성숙한 여인의 몸이라는 것은 그 나이를 무색케하는 요소가 되기는 하나 14살과 일흔이 넘은 황제의 결합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히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오라버니는 올해로 17살, 저는 14살. 고작 해봐야 3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요. 음, 물론 지금 나이를 19살이라고 속이고 계시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5살 차이라는 건 무난한 수준에 속하는 거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아마.”
  “아니, 그 14세라는 나이가 문제인데 말이야.”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할까하는 자조어린 미소를 짓는다. 뭐 애초에 이 문제는 내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끝난 일이니 그냥 인정하는 것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누나들도 24살에서 17살 정도 되는 나이들인 주제에 14살짜리 꼬마 신랑을 맞이했으니까. 어딘지 모르게 들어맞지 않는 사례인 것 같지만 대범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에헤헤. 오라버니랑 함께 있으면 제가 여왕이라는 걸 확실히 잊을 수 있다니까요.”


  어쨌든 이 소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내 사명일 것이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있나요?”
  “음, 오늘은 말이다. 나르키소스라는 드래곤이 있었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식음을 전폐하고 그것만을 들여다보느라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어느 드래곤의 이야기를 나탈리에게 전해준다. 그 뒤의 이야기가 파천황적으로 막장으로 흘러가는 것은 둘째 치고, 뭔가 비슷한 이야기가 지구에도 있기는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이계. 그리고 엄연히 존재했던 이야기이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름만 바꾸어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한다!


  “인터넷 실명제? 그게 뭔가요?”
  “다른 사람을 모욕하지 못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이지만 별 효과도 없고 기득권층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문화시키지도 않는 그런 악독한 법률이 있어.”
  “그런가요오.”


  어쨌든 그 뒤의 전개를 말하자면 더더욱 막장인데 자신에게 반해서 자신의 아이를 가진 이 드래곤은 그 후 얌전히 지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또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드래곤들이 조사해본 결과 결국은 자신의 아이를 덮쳐버렸다고 한다. 분명히 자신의 아이를 가진 일로 경고를 했건만 그것을 무시하고 두 번째로 금기를 깨어버린 셈이었다. 이 드래곤의 아이는 자신의 이름도 받지 못한 채 그 충격으로 자살해버렸고 다른 드래곤들은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이 드래곤을 쫓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은 드래곤들의 추적을 피하다 못해 자신을 물가에 선 수선화로 바꾸어버렸단다. 나중에서야 드래곤들은 수선화가 나르키소스라는 드래곤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전 세계에 수선화가 퍼져버린 상황이었지. 게다가 인간들은 수선화가 각종 질병에 빼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는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었지. 그래서 드래곤들은 그를 추격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단다. 대신에 인간들에게 채집되어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 걸 막기 위해 그 약효를 줄여버렸지. 그래서 가난한 자들 외에는 찾지 않는 약초이자 연인들이 호수를 거닐 때 머리를 장식하는 꽃이 된 거란다.”


  이야기를 마친다.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나탈리는 눈에서 눈물을 왈칵 쏟아내었다.


  “슬픈 이야기네요. 훌쩍. 오라버니는 그러지 않으실 거죠?”
  “당연하지. 내가 왜 그러겠어?”


  이런 막장을 슬픈 이야기라고 인식하는 이 소녀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절망한다. 이 세계의 미래가! 나는 오늘도 막장 드라마와 박빙의 승부를 벌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이야기해준다. 나탈리는 그런 막장 이야기에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또 이야기해주세요.”
  “그래, 그래, 어디보자…….“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이춘풍전이었다. 그것을 적당히 잘 각색해서는 나탈리에게 들려준다. 일단 춘풍의 아내를 좋아하는 남자를 평양감사로 설정하고……‘얼마면 돼!’라는 명대사도 집어넣어보고…….


  “나도 그렇게 오라버니가 정신차리게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개들을 모두 투입해본 결과 너무 효과가 강했다. 이야기 속의 캐릭터에 자신의 심정과 처지를 대입, 투영하여 마치 자신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인 것처럼 발끈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오오 무서워.


  “아내들에게는 네가 평양의 추월인데?”
  “웃, 그런 건가요? 다음화는요? 다음화는!”


  역시 막장드라마.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군. 눈빛이 무서워 나탈리.


  ‘이래서 막장드라마니 막장이니 하면서도 방송사들이 막장 드라마를 만드는 거지.’


  마음속으로 투덜거려봐야 어쩌겠는가. 나탈리가 즐거워하는데.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절망한다. 무, 문학은 쾌락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니……오오 교훈적인 부, 부분도 들어가야. 쿨럭.


  이렇게 나탈리가 막장 드라마(?)에 빠져드는 동안 나와 나탈리의 결혼으로 들썩였던 프리그 왕국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축제분위기는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아마 몇 달만 더 있으면 다시 한 번 축제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이곳에 없어도 프리그 왕국이 다른 국가의 침공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까지 안배를 해두기로 결심했다.


  “그러니까 왕국을 수호할 드래곤을 파견해달라고?”
  “네. 무사히 이곳에서 사시고 싶다면 말이죠. 제가 나서지 않더라도 아마 드래곤로드님께 엉겨 붙어서 아양을 떨면 되겠지만 로드님께서 나서시면 꽤나 귀찮아지는 건 잘 아시죠?”


  그 첫 번째, 왕국의 수호룡을 정하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옐레스 대산맥에 웅거하고 있는 드래곤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탈리와 나의 주례를 봐준 프리아그네라는 그린드래곤과 단독으로 면담을 하게 되었다.


  “알겠다. 그럼 젊은 놈들 중에서 하나 골라서 보내주마. 대신에 그 놈의 레어가 위치할 부지는 네가 정해주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이왕이면 블루드래곤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알았다. 테이트강 하구를 제공할 셈이로구나. 국경선이기도 하니 딱이로구만.”
  “역시 척하면 딱하니 알아들으시니 과연 이 세계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드래곤일족의 원로분이시군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만 알아채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아부해봐야 떡 줄 생각은 없으니 더 볼 일 없으면 나가거라. 대충 그 계약내용은 프리그 왕국을 수호한다는 것 정도면 충분하겠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적절한 으름장으로 드래곤 하나를 분양(?)받는데 성공한 나는 다음 작업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은 ‘잊혀진 숲’이었다.


  “이모님!”
  “이모가 아니라니까요!”
  “어머니랑 같은 가지에 나셨으니 이모님이죠. 뭐.”
  “히잉. 너무해.”


  잊혀진 숲을 통치하고 있는 엘프의 여왕에게 간 것이다. 그 이름은 에리아나. 어머니와 같은 세계수에서 태어난 존재로 이제 나이가 2000살이라던가 하는 어린 하이엘프였다. 말하자면 아직 수천 년은 더 여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어야 했지만 아버지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어머니가 엘프들의 여왕의 자리를 때려치우고 나온 덕분에 강제로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이력을 가진 하이엘프이다. 그래서 아직은 어린 티가 팍팍 난다고 할까.


  “프리그 왕국에 엘프들의 거주지를 만드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만들고는 싶지만 그 사이에는 엘프들이 나타나기만 해도 기겁하는 나라들이 있잖아요.”
  “배를 타고 이동하면 되죠.”
  “나무를 베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정 안되면 제가 이동시키면 되고요.”
  “하아……몇 명이 필요하신가요?”
  “다다익선입니다.”


  방긋 웃는 내 모습에 질렸다는 듯 한숨을 쉬는 하이엘프, 에리아나에게 애교란 애교는 다 부려서 10만 명의 엘프들을 이주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엘프들이 유사시에는 잊혀진 숲으로 다시 이주할 수 있도록 ‘잊혀진 숲’에 항구를 만드는 작업도 시작해야 했다. 단출하게 자신의 몸만 가지고 오면 되는 드래곤과는 달리 먹을 것이라거나 정착해야 하는 곳에 심을 나무라거나 하는 것이 필요한 엘프들이다. 훗날에 위급사태가 터졌을 때에 다시 잊혀진 숲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곤란한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잊혀진 숲의 동해안에 있는 적절한 부지를 찾아내어 항구를 만들고 배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나무들이 제법 학살되기는 했지만 신경은 쓰지 말자.


  “애정으로 키운 나무들이!”


  항구를 만들고 도시를 만드는 와중에 학살된 몇몇 나무들의 모습에 엘프들의 여왕, 에리아나가 울부짖으며 그 엘프들의 식물모에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었지만 신경은 쓰지 않는다. 뭐, 나무야 다시 키우면 되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단기간에 산 하나를 평지로 만들어버리면서 항구를 건설하고 나자 엘프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총원 10만 명.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그들이 도주해야 할 경로도 확보해야 했으므로 프리그 왕국의 서쪽 국경선 부근을 이들이 거주할 곳으로 정했다. 그 근처에 커다란 항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엘프들이 사용할 항구는 따로 건설해야 했으므로 이번에도 엘프들의 절규를 뒤로 하고 산 하나를 깎고 나무를 학살하고야 말았다. 이거 왠지 악당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아, 아라니엔님의 아드님인데 왜 이리 나무에 대한 애정이 없으신 건가요.”
  “사용할 때는 사용해야 하니까요.”
  “아직 나무들이 살아있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나무를 베어다 쓰는 법이 없는 엘프들이라 이해시키는 데에는 조금 애를 먹었지만 약간의 언변을 통해 엘프들의 여왕에게 전적인 신뢰를 이끌어낸 나는 이들이 조용히 있을 수 있게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뭐, 어머니에게 배운 방법으로 속성으로 나무가 자라게 해버린 덕분에 그들이 나를 우러러보게 했다는 이유도 있긴 했지만.


  “아라니엔님이 세인님을 따라간 이유가 있었군요.”


  물론 그 부작용으로 가끔 엘프들의 여왕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말자. 엘프들의 여왕의 후계자가 나타나려면 아직 수백 년은 더 기다려야 하므로 이 여왕은 터치하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설득에는 성공. 이렇게 대여해간 10만명의 엘프들이 무사히 정착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옐레스 대산맥의 최고령 그린드래곤 프리아그네를 찾아가 엘프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그린드래곤 하나를 다시 한 번 분양(?)받았다. 엘프들을 좋아하는 그린드래곤들이라 너도나도 지원해주었다.
  이것으로 일은 끝났다.


  “보람찬~하루 일을~끝마치고서~”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은 걸린 작업이었지만 나탈리와 그 백성들을 위해 무엇인가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왕궁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잊혀진 숲에 항구가 생기자 미시어스 제국에서는 당장 상인들에게 이를 공표하고 엘프들과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생하는 이익은 제국의 힘이 될 것이다. 나탈리에게만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굴었다고 뭐라고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어디에 갔다가 이제야 오신 거예요!”


  그런데 이 반응은 무엇일까.


  “한 달이나 자리를 비우시다니!”


  나탈리. 이게 다 너를 위해서한 건데. 훌쩍.
  어딘지 모르게 독이 오른 말과 시선으로 나를 질책하는 나탈리에게 전전긍긍하면서 나는 그 한달의 기간동안 내가 한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리고 규모의 스펙터클함에 잠시 놀라며 믿어야할지 의심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나탈리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내가 벌인 일이니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을 것이고 그에 따르면 외부의 침입은 제법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안심한 듯 하였으나,


  “외국의 침입을 경계하면 뭐하나요. 반란이 일어났는데요. 남 좋은 일만 하게 생겼어요.”


  그것은 나의 착각. 반란이 일어났다고 뚱한 표정으로 나탈리가 고한다. 뭐시라?


  106.
  갓 결혼하였으니 세상의 여론이 어떻든 즐거운 마음으로 신혼을 즐겨야 할 부군이라는 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평상시처럼 가끔 헛구역질을 하는 여왕이 정무를 보고 있다. 혹시 이것은 여왕을 속이고 몸까지 빼앗은 사기꾼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런 사기꾼에게 속아 몸을 버린 여왕에게는 왕위를 유지해야 할 명분이 있는 것일까.
  이것이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대의명분이라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핑계인데.


  “이걸 사람들이 믿는데?”
  “아뇨. 하지만 영지에 있는 사람들은 긴가민가하고 있다네요. 부지런히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해요.”


  이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하려면 꽤나 고생해야 할 것 같다. 그 막막함에 한숨을 쉬면서 녀석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생각해본다. 아니, 그보다 녀석들의 명단이 궁금해졌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이 때는 다른 말을 써야 하나.


  “어떤 녀석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야?”
  “여기에 성명서가 있으니 보시면 알 거에요.”


  나탈리가 건네준 성명서를 훑어본다.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나라의 선량한 백성들에게 고한다.


  우리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감히 우리들의 순결해야 할 여왕전하를 농락하고 귀족들을 속였으며 국민을 기만한 저 세진 알카로이드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는 하늘을 말이다. 이 나라가 세워진지 몇 년이나 지났는가. 그 동안 면면이 계승되어온 이 나라의 정신이, 법도가, 윤리가 모두 무너져 내렸다. 고작해야 저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 작자에게 말이다. 내세울 것은 고작 해봐야 얼굴밖에 없는 그런 사기꾼에게 말이다.
  이 나라는 썩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영민한 여왕전하를 속이고 결국 요부로 전락시킨 저 파렴치한을 저지하지 못한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여왕전하를 지켜주지 못한 이 나라는 썩어빠진 존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바보이다. 저 사악한 세진 알카로이드에게 속은 우리는 모두 바보 같은 존재이다……(중략)……이 나라를 세운 시조 분들에게, 우리의 조상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통탄을 금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한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비록 여왕전하는 저 파렴치하고도 사악한 세진 알카로이드에게 빠져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렸다고 하더라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중략)……물론 그 정통성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삼대전의 국왕전하의 사랑받던 공주님이 시집을 오셨고 아직도 그 피가 이어지고 있는 집안이 남아있다. 비록 왕실의 피가 흐려지긴 하였어도 더러워지고 탁해진 피에 비하면 순결하기 그지없는 피이다. 모여라! 우리의 깃발 아래 모여라. 그리하여 더러워진 피를 닦아내자.
  혹자는 말한다. 이것이 반란이 아니냐고. 이 자리에 선 우리는 감히 말한다. 이것은 반란이 아니라고. 더러워진 피를 우리가 계속해서 숭상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다시, 우리는 말한다. 저 악독하고도 사악한 세진 알카로이드와 그의 독사의 이빨에 물려 천박하고도 음란한 암캐가 되어버린 여왕을 죽이자. 그리고 자격이 갖추어진 자를 내세워 국왕의 자리를 대리하게 하자. 그리하여 우리의 빛나는 이름을 천세 만세까지 이어지게 하자.


  프리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양심과 빛나는 전통을 위하여!」


  내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이해가 쉬운 욕설들이었다. 덕분에 단숨에 훑어 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욕설에 가까운 글솜씨가 기가 막혔다. 절로 이런 소리가 나왔다.


  “어허, 대중선동에 일가견이 있는 자일세. 자신을 적절하게 높일 줄 알고 상대를 적절하게 띄우는 척하다가 격추시켜 버렸어. 거기에 마지막에는 자신들에게 협력할 경우에 주어질 특혜에 대해서 포장까지 잘 해두었어. 알맹이는 쓸모없는 돌맹이겠지만……. 멋져. 명문이야. 흥미진진해. 하하하하. 이 녀석 만나고 싶은데? 장도리로 이빨을 하나하나 따 줄까, 그 앞에서 문어를 날로 먹어줄까. 이 녀석, 죽여버릴까.”
  “지금이 그런 말을 할 때인가요? 어쨌거나 그 아래에 서명한 자들의 명단이나 보세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감탄만 하고 있으려니 나탈리가 입을 뾰족하게 내밀고는 한 소리를 해준다. 으음, 이렇게 감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지, 화만 내면 태교에 좋지 않을 것이니 말을 잘 들어야 애가 잘 태어날 것이니까 그저 그녀가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애처가이니까. 그저 애정으로 아내를 보살피는 것이다.
  ……누구냐, 퍽이나 잘도 그러겠다고 말하는 녀석은.


  “어디보자……어라, 공신들이 제법 많아? 호오. 말종 백작도 있네?”


  어쨌거나 나탈리가 지적한 대로 명단을 보자 의외의 이름난 자들의 서명이 제법 들어가 있었다. 물론 암만 재수가 없더라고 가담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자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말종 백작이었다. 아니, 중요한 일을 자주 맡기고 거기에 대한 보상도 짭짤하게 주고 있는데 이 녀석은 왜 배반을 때렸데?


  “말종 백작이 그 이름 모를 공주의 후손이래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공주였어요.”
  “오호, 재미있는 놈일세. 그럼 그건 뻥이라는 거네?
  “네. 아마도 이 봉기를 배후에서 부채질한 건 바로 그였을 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예요.”
  “귀족들은 알면서도 달려든 거네?”
  “한자리 꿰찰 줄 알았던 모양이죠. 대부분이 결혼식 때 웃으면서 우리에게 아부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너무 이른 게 아니냐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도성 근처의 요새로 들어가서 방어준비를 하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거 참, 결혼식 때 나서서 아부하려던 녀석들이 안면몰수하고 참가라. 이 나라가 썩은 것은 맞네. 귀족들이 그냥 팍 썩어버렸어.


  “나탈리는 어떻게 하고 싶어?”
  “일단 이 편에서도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가족들은 모두 잡아가두었으니 함부로 움직이려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걸 믿고 일단 협상을 해보려고요.”


  일단 대화인가. 뭐, 그것도 시간을 끄는데는 필요한 방법 중의 하나이겠지. 나탈리와의 대화로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어느 정도 감도 잡았고……슬슬 한 번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나. 웰렉 산맥의 웰렉 대운하였던가. 으음, 이번에도 거기에서 진군을 막아야 하려나.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공신들이 제법 끼어있으니 당시 내가 세웠던 방어전략도 대충은 파악하고 있을 것이니 똑같은 방법을 쓸 수는 없다.


  “저 편이 끌어들이고 있는 병력은?”
  “5만 정도로 보입니다.”
  “이편의 병력은?”
  “중앙군 2만에 1만의 예비병력이 더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수준을 따져본다. 정예병력에 지휘체계가 확실한 2만에 지휘체계가 확실해질 수는 있지만 정예는 아닌 5만의 싸움이라.


  “전대 폐왕이 있을 때의 영주 놈들보다 무능하네. 반란을 일으키려면 제대로 일으키던가. 한심하기 그지없네. 적어도 그 놈들은 승패를 따져보고 움직였는데 말야.”


  한심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통일된 지휘체계를 갖추지 못한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할 뿐이다.


  “2년 전의 그 일을 아직 잊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음, 그렇다는 이야기군. 하긴 내가 그 때 좀 잔혹하게 굴기는 했지. 기사들도 우르르 나가 떨어졌고 말이지. 덕분에 ‘까마귀 카드’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어서 웰렉 대운하를 보강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정비하지 않더라도 수백 년은 거뜬히 버텨줄 것이다만.


  “아버님께서 나서서 때려잡겠다고 펄펄 뛰시는 것을 겨우 말렸어요. 지금 서부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된 상태거든요. 그런 곳으로 아버님을 홀로 보낼 수도 없고…….”


  어쨌든 이런 상황이 되자 아버지가 조금 감정적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더불어 체리와 수지가 펄쩍 뛰면서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네 머리통을 까부수러 갈 테니 기다려!’라고 외쳤다나 뭐라나. 그래서 아버지를 못믿는 것이 아니라 체리와 수지까지 보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말렸다고 한다. 나탈리, 적어도 자기 수하에 있던 체리나 수지의 능력 정도는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렇게 어려보이고 소악마같은 장난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 아이들은 무척이나 강하다. 1만 대군이 덤빈다고 하더라도 앉은 자리에서 손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단박에 전멸시킬 수 있는 전력이니까. 그 당시에 나탈리가 그 세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면 단숨에 반란은 끝이 났을 텐데.


  “에에, 거짓말.”
  “아니, 정말.”
  “소드마스터도 사실상 정말로 1만 대군이 달려들면 못 버틴다고 했단 말이에요.”
  “응, 그러니까 체리랑 수지는 소드마스터보다 강하다니까.”
  “거짓말이네. 뭐. 그 애들이 그 정도까지 강할리는 없잖아요.”


  못 믿는군.


  “정 못 믿겠다면 드래곤 불러줄까?”
  “왕궁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아요.”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나탈리는 일단 왕궁이 무너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야 말았다. 하긴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이렇게 내 제안을 반대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드래곤은 당연하게도 자존심이 강하고 체리도 은근히 마왕이라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왕궁이 날아갈 정도로 맞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높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믿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나탈리의 모습을 보면 조금 서글퍼진다. 난 믿음을 주지 못하는 남편인가.


  “뭐, 못 믿겠다면 할 수 없지. 일단 이 나라를 위해서 달콤한 신혼도 반납하고 움직인 부군의 미덕을 슬쩍 드러내주는 것으로 반격을 시작해보도록 할까나.”


  좌절하면서도 나의 공적으로 지금의 사건을 유발시킨 실책을 막아볼 생각을 한다. 일단 내전은 간단하게 진압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지.
.
.
  일단 내란의 발발에 어수선한 민심부터 달래도록 하자. 어수선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즉시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리고 동쪽과 동북쪽은 드래곤이 방어해줄 것이며 서쪽은 엘프들과 함께 방어하면 될 것이라는 사실도 첨부했다.


  “뻥 아냐?”
  “암만 그래도 그렇지 드래곤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물론 그 발표의 내용을 들은 사람들에게서는 의혹이 마구 쏟아졌다. 그러나 무시, 꿋꿋하게 발표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드래곤 둘과 엘프 하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기겁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표를 이어나갔다. 음, 덩치가 좀 크긴 하구만.
  이어진 발표는 서북쪽과 정북쪽은 순수한 군사력으로 방어하여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스스로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스스로 쟁취하지 않은 평화는 결국에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으니까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내 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보증, 드래곤 둘과 엘프 하나가 이 발표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해주고 나서야 사람들은 믿었다.


  “내부의 적은 어쩌실 겁니까!”
  “내가 때려잡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란을 어찌 처리할 것인지를 묻자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또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나는 그 반응에 오래간만에 좀 바쁘게 움직여볼 생각을 굳혔다. 생각해보면 내가 첫 번째 살인이나 다름없는 짓을 한게 이곳 프리그 왕국이었던가? 두 번째 살인은 어비스 안쪽이었고 세 번째 살인은 다시 이곳, 프리그 왕국이 되는 셈이니 안 좋은 인연으로 묶인 곳이 바로 이곳인 셈이다.


  “다른 병력은 필요없고 기동력이 빼어난 부대 3천 정도면 충분할 거야.”


  어쨌든, 싸움은 시작되었다. 동쪽의 영주들이 들고 일어날 수 없도록 아버지가 눈을 빛내면서 감시를 하고 있을 동안 서쪽을 칠 생각이었다. 주어진 병력은 3천. 모두 기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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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그 왕국의 귀족들이 너무 무른게 아닌가 하셨지만, 그냥 교활했다고 해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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