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13.5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후 치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지를 살리기위해 치우는 현지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일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고 그 작업이 지금에서야 끝이 난 것이었다.
물론, 워낙 엄청난 생기를 소모해버린데다 치우의 기운까지 끌어들여버린탓에 시간도 조금 오래걸렸고 회복한 생기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죽어버릴 정도는 아니도록 생기는 복구해 놓을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을 한번 다시 찿아가봐야겠어... 』
현지는 다른 보통의 사람과 조금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쩌면 지금 현지의 상황은 그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치우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치우가 인적을 피해 현지가 태어난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을 때 성황당을 지키는 수호령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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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와 치우가 처음 통성명을 한 날...
치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현지에게 내일도 올것이냐고 물었고 현지는 그럴것이라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아 이외에 처음으로 자신에게 이름을 물어봐준 사람이어서 일까?
아니면.. 조금 있으면 죽을거라는 자신의 생명보다 그런 자신을 보고 슬퍼할 부모를위해 기도하는 그 고운 마음씨 때문일까?
그 당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인간을 싫어했던 치우였지만 현지만은 그리 싫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보통 성황당 나무 안에서 밖으로 잘 나오지 않던 치우가 그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성황당앞에 나와 있었다.
오전이 지나고 해가 거의 질 무렵이 되어서도 현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고 이미 치우는 성황당에서 꽤 떨어진 거리에까지 나와 작은 발로 종종거리며 현지가 뛰어갔던 그 길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 날 결국 현지는 성황당에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또 그 다음날도...
치우는 계속해서 성황당에서 꽤 먼 거리까지 나와서 현지를 기다렸지만 끝내 현지는 그 날이후 성황당을 찿아오지 않았다.
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치우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토록 혐오하는 인간이었는데... 또.. 그 인간에게 속아버렸다. 어차피 인간이란 어린 놈이든 늙은 놈이든 할 것없이 하나같이 똑같은 놈들 뿐이었는데 감쪽같이 그 어리고 순수해보이는 모습에 또 속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인간에게 속아 이렇게 자신을 속인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치우는 성황당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역시.. 인간은 믿을 것이 못되는 것들이구나... 이 세상에서 지아 이외의 인간은 모두 없애버리고 싶었다... 지아를 만난이후 수천년동안 생각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그러면.. 지아가 비록 세상에는 없지만.. 지아가 슬퍼할테니까...
자신을 죽여가는 인간들 앞에서조차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부탁했던 지아였으니까...
지아를 위해서.. 몇 번이나 인간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인간의 잔인함이.. 그 탐욕스러움이... 아닌듯 보여도 결국 위급할때는 나타나는 그 이기적이고 드러운 본성은 치우에게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짙게만들기만 했을뿐이었다.
그렇게 치우가 배신감속에서 현지를 지워갈때 즈음이었다.
미친듯이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그날도 역시 성황당안에 틀어박혀있던 치우에게 갸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우야... 』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치우가 밖으로 나와보았다.
그곳에는 비를 흠뻑 맞은 현지가 갸냘픈 목소리로 치우를 부르며 서있었다.
현지의 모습을 보자 치우는 또다시 배신감이 불끈 솟아오르며 현지를 비롯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혐오감이 불붙기 시작했다.
털썩...!!
그대로 다시 나무 안으로 들어가려는 치우의 귀에 무엇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나무안으로 들어가려던 치우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과 전혀 다를바 없는 풍경...
단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조금전까지 서서 작은 목소리로 치우를 부르던 현지가 쓰러져 있다는 것이 조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쓰러진 현지의 모습을 본 치우에게 작은 갈등이 생겼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혐오스럽다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막상 현지가 쓰러지자 걱정이 되는 마음과 동시에 인간따위가 어떻게 되든 내 알바 아니라는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지가 쓰러지고 얼마되지않아 이상한 일이 생기고 있었다.
잡귀들이 현지의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보통 지금 치우가 머물고 있는 성황당에는 귀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편이었다. 성황당을 지키는 수호령이 있는데다가 도깨비인 치우까지 같이 있는 바람에 귀들은 성황당에 가까이 다가가는것 자체를 상당히 꺼려하고 있었기에 이 주변에서 귀의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쓰러진 현지의 주위로 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현지가 죽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자의 품에 있는 먹잇감을 한입이라도 빼앗아먹고 싶은 하이에나때처럼 그렇게 잡귀들이 현지의 주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치우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꺼져!!! 』
잡귀들을 바라보고 강하게 한마디하는 치우에게 놀랐는지 잡귀들이 잠시 뒤쪽으로 물러났지만 조금 더 멀리서 어슬렁거릴뿐 쉽게 물러나려 하지는 않는 모습에 치우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모두 소멸시켜주지!!!! 』
기분이 상한 치우가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며 잡귀들을 노려보고나서야 잡귀들은 흩어지며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며 달아나기 시작했고 잡귀들을 몰아내버린 치우는 쓰러져있는 현지에게 다가가 현지를 부축해 안아들고 그나마 빗방울이 덜 떨어지고 있는 성황당안쪽에 가지가 무성한 곳으로 데리고 왔다.
『다행이다...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
비에 흠뻑 젖어서 그런지 현지의 몸은 차가웠다.
그리고 현지의 생명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경우 어린 아이가 성인에 비해 훨씬 약하긴 하지만 비를 좀 맞았다고해서 이렇게 금방 생명이 꺼져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때 이 아이가 말한대로 이 아이는 얼마 살지 못할것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아무래도 그 시기가 거의 임박해 온것같아 보였다.
『약속... 못지켜서.. 미안해.. 』
『오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아파서... 그래서... 』
치우는 이제서야 왜 그 날 이후 이 아이가 이곳에 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에 이런 몸을하고 여기까지 왔다면.. 분명 거짓말따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약속을 지키려고 이런 몸을하고 여기까지 온 아이를 그동안 그렇게 생각했었던 사실에 치우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오고 있었다.
『또 아파지면 정말 약속지키지 못할것 같아서.. 엄마가 다른데 있는동안 몰래... 』
현지의 말이 조금씩 느려지고 끊어지기 시작하면서 현지의 눈이 계속해서 감기려하고 있는듯이 보였다.
『야!! 정신차려!! 눈 좀 떠보라구!! 』
현지는 그렇게 눈을 꼭 감고 치우의 품안에서 죽은듯이 잠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치우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듯이 힘들어하는 아이가...
치우 자신이 외로워할것 같아서..
그 약속때문에 매일같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다죽어가는 몸을 하고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아무리 어린 아이라지만.. 세상에 이런 인간도 있었다는 말인가??
『참... 불쌍한 아이지요... 』
치우의 뒤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우는 그것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성황당을 지키는 수호령... 그녀밖에 없었다.
『이 아이에 대해서 알아?? 』
『왜 그런아이가 태어나는지...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저같은 수호령따위가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 수는 없는것이지요.. 』
수호령의 말을 들은 치우는 자신의 품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현지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동안 현지를 바라보고 있던 치우가 현지의 얼굴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현지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현지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치우의 손에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치우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그 흔적처럼 치우의 붉은 기운이 현지의 얼굴을 덮고 있었고 그것들은 이내 현지의 피부에 흡수되어가듯이 현지에게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치우의 손길이 현지의 얼굴을 지나 가슴으로 복부로 그리고 사타구니쪽까지 현지의 몸 전체를 쓰다듬고 지나가기 시작했고 치우의 손에있던 붉은 기운은 어느새 현지의 몸 전체를 감싸고 돌고 있었다. 치우가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현지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건네준 힘으로 이 아이의 몸을 보호할 것이며... 어떤 귀들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할것이며.. 아울러 이 아이의 기운이 훼손되는 상황이 발생할시 그로부터 이 아이를 보호할 것을 명한다.. 』
치우의 말이 끝나자 현지의 몸 전체를 뒤덮고있는 붉은 기운이 웅웅거리며 그 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며 붉은 빛을 발하던 기운들이 갑자기 한곳으로 모여들며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마치 치우가 현지에게 봉인될때 현지의 팔에 새겨진 문신과도 같은 모습이었고 치우의 본 모습과도 흡사하였으며 불에 타오르고 있는듯이 강렬하고도 무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무서운 형상의 붉은 기운들이 그 자리에서 흩어지는듯 싶더니 순식간에 현지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하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현지에게 모두 흡수되어버린듯 그 붉은 기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실수.. 하고 계신걸지도 모릅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호령이 치우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수라니?? 』
수호령의 말에 치우는 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수하고도 선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자신을 생각해서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온 아이...
현지를 보고 있는 치우의 머리속에 순간 지아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현지의 모습을 보면서 치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
수호령의 말에 대답한 치우가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동안의 침묵이 끝나면서 치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럴지도... 』
『어째서지? 』
『제가 직접 그것도 어렵게 부탁해서 세상에 나온 아이니까요... 』
수호령은 치우에게 살짝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
『대단하지요... 엄청나기도 하구요.. 하지만 어쩌면 아주 소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주 재밌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 날지도 모르겠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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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현지가 왜 이런 현상을 보이는지 알고 있을지도 몰라... 』
치우가 그 때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현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현지야.. 이제 좀 움직일 수 있겠어?? 』
치우의 말에 현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또다시 아까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치우는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현지야! 대답해봐!! 너 현지 맞지?? 내가 아는 현지 맞지??? 』
『하아... 하아... 하아.... 』
불안한 마음에 소리치듯 현지에게 말하는 치우의 말에 현지는 끝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채 조금 전처럼 숨을 몰아내쉬고만 있었다. 그 이상한 기술을 쓰기전보다는 숨의 고르기나 가쁨이 훨씬 덜했지만 현지의 몸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어보였다.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현지는 천천히 3층 복도의 계단쪽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기랄..!! 원래대로 돌아온게 아니었어!!! 』
『어떻게... 어떻게 해야 원래의 현지로 되돌릴 수 있는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