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13.3
『응.. 괜찮아.. 그런데... 조금.. 더운것 같아... 』
파삭...!!
현지가 은경이 있을 306호실로 다가가려는 순간 벽에 꽂혀있던 거대한 도가 부셔지는듯 산산히 흩어지며 그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현지는 오른팔에서 극심한 고통이 전해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윽..!! 』
현지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오른 팔의 강렬한 고통에 왼손으로 오른 팔을 잡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현지야!! 무슨일이야??!! 』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경험도 없는 네가 너무 거대한 귀기를 움직였기 때문일거야.. 』
귀병은 자긍심과 투혼자체로 똘똘뭉쳐진 귀의 덩어리들이었다. 가끔씩 싸우고 싶을 때 또는 싸우고 싶은 상대를 만났을 때 미친듯이 울어대기는 하지만 특히나 지금 현지가 불러낸 이 귀도는 왠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녀석이었다. 더구나 현재 치우에게 속해있기는 하나 그 자긍심이 오만할 정도로 높아서 막상 꺼내들려고해도 치우의 생각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현지가 그것을 불러내었을 때 조금은 절망적인 생각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현지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그 오만한 녀석을 너무도 쉽게 다뤄버리고 말았다.
인간은 특히나 요즘같이 화력무기나 대량살상 무기에만 의존하는 나약한 인간의 영혼으로는 절대 이런 귀병을 다룰 수 없다.. 지금까지 직접 귀병을 불러내 다룬 인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그 귀병은 귀병이 아닌 귀를 공격할 수 있는 단순한 무기정도에 불과할 뿐이었고 그나마도 치우가 봉인이 아닌 결합의 형태로 인간의 내부에서 서포트해줘야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것을 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말았다. 더구나 치우와 함께가 아닌 현지의 몸에 봉인이 되어 제대로 그 힘이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것도 함께가 아닌 마치 종을 부리듯이 너무도 손쉽게 사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럴 수 있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흔히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명검이라 불리는 것들.. 이런 것들이 이런 경우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상당한 정성과 노력 그리고 투혼이 담긴 칼에는 치우가 가진 귀병과 같은 존재들이 그 안에 존재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이 인간이 아닌 검에 안착하는 이유는 두가지였다. 병기라는 것의 존재자체가 싸움을 위해 만들어진것이다보니 그 안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전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첫번재 이유였고 두번째 이유는 무생물인 검에 안착할수 있을 정도의 존재들이라면 일반적으로 그 귀기가 대단한 녀석들이라고 봐야하는데 그런 귀기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는데다 감당할 수 있다고 쳐도 하찮은 인간따위가 자신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그들의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기때문이었다.
가끔씩.. 그런 귀기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부리고자 하는 자가 있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끓어오르는 투기를 가지고있는 귀들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귀병이 인간의 수족처럼 인간의 뜻을 따르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단.. 인간이 귀병이 가진 귀기를 능가할정도의 기운이나 투기를 가지고 있거나 귀 또는 전투에 관해 그들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주는 인간일 경우 귀병이 스스로 그들에게 종속되기를 원하는 경우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치우의 경험으로도 100년을 채 살기 어려운 인간의 특성으로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치우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역대 최고의 퇴마사는 지아였다. 물론.. 치우가 지아의 안에서 봉인의 형태로 생명력을 불어넣어줘야만 그 생명력을 유지할수 있을정도로 선천적으로 워낙 약했던탓에 원래 가지고 있던 잠재능력을 모두 활용하지는 못하긴 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치우가 지금까지 보아온 퇴마사들 중 단연 최고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지아조차도 귀병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힘들어 했었다.
분명.. 현지는 자신이 알지못하는 그리고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않은 엄청난 가문의 피를 이어받고 있을것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설명을 하기는 어려웠기에 지금 현지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도 능력이상의 큰 귀기를 다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외에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어떤 인간도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까....
『이제 조금 괜찮아 진것 같아.. 그것보다.. 은경이가.. 』
현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한순간 느꼈던 고통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아니면 괜찮다고는 말하고있지만 아직도 그 고통이 있는건지 현지는 여전히 오른 손으로 왼 팔을 잡은채로 은경이 있는 306호실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306호실 방문의 안쪽 바로 앞에 은경이 쓰러진 채로 있었다.
쓰러져있는 은경의 모습을 본 현지가 황급히 은경에게로 다가가며 은경을 불렀다.
『은경아..!! 괜찮아?? 어떡해... 』
일단은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되도록 상처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은채 병원으로 옮기거나 해야하겠지만 그건 사람의 경우였고 귀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그 방법을 알 수도 없었고 더구나 지금의 현지로서는 귀의 상태인 은경과 접촉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가 자신을 보호해주기위해 영희에게 공격을 당한 은경의 쓰러진 모습을 보며 어쩔줄 몰라하고 있을 때 은경이 아주 천천히 땅에 팔을 디디고 상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은경아!! 괜찮은거야?? 』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은경을 부축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현지는 답답한 마음에 은경을 바라보면서 치우에게 은경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고 있었다.
『귀의 경우에는 치료라기보다 원기를 회복하는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의 우리로서는 특별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
치우는 조금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현지의 눈에 지금 은경의 모습은 땅을 디디고 있는 팔을 살짝이라도 툭 건들기만 하면 그대로 다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것만 같이 힘들고 괴로워하는듯한 모습이었다.
고통이 심한듯 은경은 몸까지 떨려오고 있었다. 손에 봉인이 되어있는 치우의 기운때문에 섣불리 은경에게 손을 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두 팔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듯 보이던 은경이 힘들게 한 손을 들어 은경의 앞에 앉아있는 현지의 어깨를 잡았다.
『은경아!! 정말 괜찮은..... 』
그저 바라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현지의 어깨를 은경의 손이 부여잡자 현지는 안타까운 마음에 은경에게 아까부터 몇 번이나 물어봤던 질문을 또 해대고 있었으나 문득 들어오는 한가지 생각에 의해 현지의 말끝이 흐려지고 있었다.
조금 전.. 영희가 방에 나타나기전 현지도 은경이도 서로를 만져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사람과 귀로서 그들은 피부로 서로를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은경의 손이 지금 현지의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었다.
『나...... 가....... 』
한 팔로 땅을 디디고 다른 팔로 현지의 어깨를 잡고 있는 은경의 입에서 들릴듯 말듯 거의 알아듣기 어려운 아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희에게 받은 충격때문에 고통스러운지 은경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고 은경의 머리카락이 옆으로 흘러내려 고통스러워할 은경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현지의 어깨를 잡고 있는 은경의 손에 조금씩 힘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몸을 떨고 있는 은경의 떨림이 현지의 어깨를 잡고있는 은경의 손에의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 손은 고통에 몸을 떨고있는 사람답지않게 현지의 어깨가 아파올정도로 힘이들어가 있었다.
『아.... 아파.. 은경아... 』
현지는 갑자기 나가라고 말하고 있는 은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비록 치우의 말대로 이곳에서 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은경이 역시 지금 당장은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힘들어하고 있는 은경이를 이대로 내버려둔채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은경아..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는게.... 』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은경이 갑자기 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들어 현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은경의 목소리에 현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현지를 놀라게 한 것은 고함을 치는듯한 은경의 목소리뿐만은 아니었다.
은경이 빠르게 고개를 치켜드는 바람에 은경의 긴 머리카락이 산발되듯이 공중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살랑거리며 흘러내리면서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은경의 얼굴이 현지에게 드러났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은경의 얼굴은 현지가 조금 전에 보았던 은경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은경의 얼굴임이 분명했지만 고통을 참고있는듯이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은경의 눈이 아까와는 달리 시뻘겋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얀 천에 붉은 물이 들듯이...
은경의 눈의 하얀 부분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 붉은 빛은 점점 진하게 그 농도를 더해가고 있는듯이 보이고 있었다.
『으..은..경..아?? 』
마치 현지에게 잔뜩 화가나 있는 사람처럼 소리치는 은경의 목소리에 현지가 그대로 뒤쪽으로 주저앉아버렸다.
은경이를 이상하게 만든다던 그 기분나쁜 느낌이라는 것...
그것이 또다시 은경이에게 찿아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참기..가.. 너..너무... 히..힘들.. 아아악!!! 』
은경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또다시 고개를 숙이고 거의 경련과도 같이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현지야.. 아무래도 지금 당장 나가는게 좋을것 같아... 아무래도.. 사기에 동화되어 가고 있는것 같아.. 』
『너.. 아니면 저 아이.. 둘중에 하나는 죽거나.. 소멸되야 할거야... 최소한 둘이 서로 죽이려드는 상황은 피해야할거아냐.. 일단 나가자.. 나가서 이곳에 대해 조금 더 조사해보자.. 저 아이를 구할 방법도 찿아보고.. 』
현지는 치우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힘들어하고 있는 은경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현지의 생각에도 치우의 말이 백번 옳은것 같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시간없어... 더구나 귀병까지 돌아가버린 지금 저 아이가 널 죽이려고 들기 시작하면 어쩔 방법도 없어... 』
은경을 바라보던 현지가 주저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미... 미안...해... 은경아.. 꼭.. 꼭..!! 다시 올게.... 』
현지는 그대로 몸을 돌려 중앙의 계단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음에 올때는 은경이 두려워하는 이곳에서 은경이를 나가게 해주겠다는 다짐과 함께 현지는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 것을 꾹 참고 달렸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에 다달은 현지가 복도에서 계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현지는 그 계단을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멍하니 계단 아랫쪽을 바라보고만 있어야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엄청난 수의 귀들이 계단쪽에서부터 몰려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현지가 이곳으로 올라올때까지 이 많은 수의 귀들중 단 하나의 귀와도 만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필이면 밖으로 나가려는 이때에 귀들이 단체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었다.
『도망쳐!!! 아까 그 아이들을 보면 이놈들도 분명 사기를 가진 놈들일거야!!! 』
치우의 말에 현지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3층 복도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앙이외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없었기에 현지가 달리는 복도의 끝에는 막다른 벽과 그 벅에 나있는 창문하나가 고작이었다.
『뛰어내려!!! 어차피 내가 있으니까 크게 다치지는 않을거야!! 』
치우가 현지에게 다급하게 말하고 있었다. 현지로서도 그 방법 이외에 이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특별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설사 뛰어내려 큰 부상을 당한다고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현지가 뛰어내리는 것이 먼저일지....
아니면 그들에게 잡히는 것이 먼저일지....
그것이 문제였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현지와 마주친 귀들은 현지가 돌아서자마자 괴상한 소리를 질러대며 현지를 쫓아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현지는 오직 마지막 희망인 작은 창문 하나만 바라보고 뛰어가고 있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있는듯 보였지만 닫혀있는 창문을 열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뛰어들어서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린다.... 그 이후는 치우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몇 발 정도만 더 뛰어가면 창문으로 몸을 날릴 수 있는 거리까지 왔을때....
불행하게도... 현지는 뒤에서 쫓아오는 귀들에게 등을 내어주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귀에게 떠밀리듯 넘어지며 현지는 거의 막다른 벽의 끝까지 앞으로 굴러갔다.
현지가 고개를 들었을 때...
어느새 그들은 포위하듯 현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넘어져있는 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쫓던 먹잇감을 바라보고 있는 맹수와도 같은 표정으로 그들은 현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 영희와 대면했을때 느꼈던 그 사악하고도 잔인해보이는 미소가 그들의 얼굴에 어려져 있었다.
『미..미안해.. 현지야... 』
치우의 말이었다.
오로지 기대할 것이라고는 치우밖에 없는 지금 이 상황에서 들려오는 치우의 말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치우와 은경이를 비롯해 부모님들 그리고 지금까지 현지가 알던 사람들의 모습이 삽시간에 현지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정말 죽는거구나.... 미안해.. 은경아... 약속.. 못지키겠다..."
『미안해... 치우야... 』
현지가 마음속으로 치우를 향해 조그맣게 말했다.
하지만 치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은경이의 일때문에 우울해하는 현지를 도와주려고 봉인까지 당한채로 여기까지 왔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비록 1~2백년의 시간은 걸리겠지만 치우도 같이 죽는것은 아니라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마웠어... 』
치우를 향한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상과 이별할 시간을 주듯이 잠시동안 현지를 바라보고 있던 귀들이 일제히 현지를 향해 덮쳐왔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않는 현지에게 그들은 멋잇감을 놓고 다투는 맹수들처럼 앞다투어 달려들었고 곧이어 현지는 팔이 찢겨져나가는듯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