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13.2
현지는 갑자기 머리속이 핑 돌아버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처음 치우를 만난 날.. 그 날 이 기숙사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기숙사사건이 일어난 시각과 치우를 이곳에서 처음 만난 그 시각... 어떤 시각이 먼저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우연하게도 그 사건이 일어난 날과 치우를 만난 날과 시각은 엇비슷했다.
그리고.. 은경이 느꼈다던 그 이상한 기분.. 그것과 치우에게서 느껴지는 기분이 같다고 은경이는 이야기하고 있다.
"설마....?"
금방이라도 몸이 휘청거리며 쓰러져버릴듯한 느낌을 애써 참으며 현지는 마음속으로 치우에게 물었다.
『치...치우야... 어...어떻게 된거야.... 』
치우의 말에 현지는 치우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치우의 존재가 그 무엇이 되었던간에 지금까지 치우는 현지에게 딱히 해를 끼친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치우가 옆에 있음으로 인해서 편안함을 많이 느껴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비록 실제가 아닌 영혼이라고는 하지만 봉인을 위해서 치우와 보낸 첫번째 경험.. 그 경험에서 불타올라 터져버릴것같은 그 무엇인가를 감싸주듯 잠재워줬던 치우의 느낌.. 그것이 너무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치우가 그렇게 나쁘게 느껴진적은 없었고 방금전에 그렇게 치우를 의심하듯이 말해놓고 금방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왠지 미안했지만... 이 일에 관해서 지금 현지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치우밖에 없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
치우는 은경이가 기숙사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지가 치우와 이야기하고 있는동안 현지를 바라보고 있던 은경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현지에게 물었다.
『현지야.. 너 괜찮아? 』
『응.. 문으로도 창문으로도 나가보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 벽같은게 가로막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야... 밖으로 나가려고 할때마다 튕겨져나와... 』
『잠깐.. 튕겨져 나온다고?? 』
은경이의 말을 듣던 치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은경의 말에서 무엇인가 힌트를 얻기라도 한듯이 치우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지야.. 확실한건 아니지만.. 그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쪽으로 튕겨져 나온다면 어쩌면 결계같은 것일 수도 있어... 들어올때부터 느꼈던 이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느낌도 그렇고 저 아이의 말도 그렇고.. 상황으로보면 결계에 갖혀있는 상황이 분명한것 같은데... 』
『어차피 결계같은 거라면 그 결계의 형태를 알지 못하면 파해하기 어려워.. 더구나 안쪽에서는 더 힘들고... 저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싶다면 일단 이 현상의 원인부터 파악해야해.. 』
치우의 말대로 해야할것 같기는 하지만 현지는 은경이가 그 날이후 혼란과 두려움속에 떨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차마 은경이를 다시 이대로 두고 나가기가 망설여지고 있었다. 치우라 이야기하는동안 현지를 바라보고 있던 은경은 멍한듯한 현지의 모습이 걱정되기라도 하는듯 걱정스러운 얼굴로 현지를 바라보고 있었고 현지 역시 잠시라고해도 이대로 은경을 두고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안타까운 눈으로 은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현지를 바라보고 있던 은경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은경아.. 너 왜그래..?? 』
현지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현지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 현지의 뒤쪽에는 한 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무릎위를 살짝 덮는 슬립을 입고있는 여자의 모습은 참혹했다. 여러명에게 난자당한듯 여기저기에는 칼에 찔리고 베인 흔적이 보이고 입고있는 슬립 역시 베어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참혹한 몸을 하고서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는 기쁜듯이 웃어보이고 있었고 그 웃는 얼굴은 현지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영희 언니...?? 』
현지의 뒤쪽 문앞에 서있는 여자는 바로 은경이에게 죽은 이영희였다. 영희 역시 은경이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비록 은경이와 영희의 관계가 살인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되긴 했어도 오랫만에 보는 반가움에 영희쪽으로 다가가려는 순간 이번엔 뒤쪽에 있는 은경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지야 가지마.... 』
은경의 목소리에 현지가 다시 뒤돌아보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영희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조금 전 영희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두려운 얼굴을 하고있던 은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지는 아마도 이유야 어쨌든 은경이 영희를 죽인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은경이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현지는 자신의 입장은 약간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느 누구의 편에 서기도 애매한 입장이 되어버린 현지에게 은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언니가.. 아..아니야.. 우..우리가 알던 영희언니가.. 아... 아니야... 』
은경이의 말과 동시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바로 현지의 귀옆에서 차가운 한기와 함께 속삭이는듯한 영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친한 사이잖아~~ 그렇지?? 』
뒤쪽에서 기척도 없이 섬득하리만치 차갑게 느껴지는 한기를 토해내며 말하는 영희의 말에 현지가 깜짝 놀라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모두 다 죽었는데... 너만 살아있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영희의 입꼬리는 살짝 들어올려져 웃고 있었지만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영희의 눈매는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언니..?? 』
『히히히히~ 우리랑 같이 있자~ 우리랑 같이 있자 현지야~ 그러려면.. 먼저.. 』
수저로 철판을 긁는듯한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웃음을 지어보이던 영희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졌다. 영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 영희의 입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우리와 같은 모습이어야겠지?? 죽엇!!!! 』
『안돼!!! 』
은경이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영희가 순식간에 현지의 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현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치 가벼운 야구공을 집어던지기라도 하듯이 가볍게 현지를 반대방향으로 그대로 날려버렸다.
영희의 힘에의해 방 밖으로 날아가 문의 맞은편 복도벽에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져내린 현지가 고통스러움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전체가 그대로 구멍이 나버릴것만 같이 엄청난 힘이었지만 치우가 봉인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전해져오는 고통이 덜했다.
『히히히히... 아직 안죽었네?? 』
방 안쪽에서 영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려던 현지가 고개를 들고 방 안쪽을 바라보았다. 현지게 벽에 부딪쳐 죽지 않은게 아쉽다는듯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밌다는듯한 표정과 웃음을 지어보이며 현지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째서... 언니는 나를 잡을 수 있는거지..? 귀들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 』
『그래.. 그것밖에 없어.. 하지만.. 이건 뭔가 이상해... 사기를 이정도의 힘을 낼만큼 흡수하는 건 힘든 일이야... 그래서 보통은 죽거나 죽어가는 인간들의 몸을 사용하는데.. 더구나 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귀가 어떻게 이런... 』
현지가 치우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영희는 방문을 나오려하고 있었다.
『그만해!! 현지를 내버려둬!!! 』
방문을 나서려는 영희의 뒤에서 은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영희가 현지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으려는듯이 영희의 허리부분을 감싸안는 은경의 손이 현지의 눈에 들어왔다.
『너는 꺼져있어!!! 』
『싫어!! 현지에게 손대지마!!! 』
은경이 영희의 날카로운 소리에 대꾸하며 절대 놓치지 않을것처럼 영희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은경...아.. 』
현지가 아는 은경이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누군가 큰 소리만 질러도 깜짝깜짝 놀라고 흔히 무섭다고 소문이 난 선배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정도로 주눅이 들어있을만큼 겁이 많은 아이였음에도 현지를 위해서 영희에게 달려들고 있는 은경의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현지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멍청한 년.... 』
소리치듯 외치던 조금 전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낮고 싸늘한 목소리가 영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영희의 목이 꺾여져버린듯 그대로 은경이 있는 뒤쪽을 향해 180도 돌아가버렸다. 그와함께 팔도 비틀려꺾이며 뒤쪽으로 그 방향이 바뀌고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은경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어잡았다. 은경이 영희의 손에잡혀 영희의 몸에서 떨어지자 영희는 잡고있던 은경의 머리를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아악...!! 』
은경의 비명소리가 한차례 들리고 영희는 은경의 머리를 몇번이고 바닥에 찧어대기 시작했다.
『현지야... 지금이야!! 빨리 봉인을 풀어!! 』
『아.. 보..봉인... 』
목과 팔이 뒤쪽으로 돌아가버린 영희의 몸을 보고 겁에 질리고 은경이 바닥에 짖이겨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굳어버린 현지에게 치우가 봉인을 풀라고 말을 하자 넋을 놓고있는듯하던 현지가 정신을 차리고 치우가 알려전 봉인해제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나의 의지로.. 보..봉인된 네게 자유를 허락하노라.. 네.... 거대한.... 힘을... 네.. 거대한..... 』
당황한 현지가 제대로 주문을 말하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버벅거리자 현지의 주문소리를 들었는지 영희가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은경이쪽을 향해 돌아가버렸던 목이 까드득거리며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를 내며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뭐하고 있어!!! 그런데 시선 뺏기지말고 집중해서 주문을 말해!! 』
『이런...!!! 』
영희가 또다시 현지를 향해 손을 뻗쳐왔다. 현지는 오쪽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으나 무엇인가 현지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방해하는듯이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영희의 손을 피한다기보다 살짝 오른쪽으로 기우뚱해지는듯한 현지의 목이 영희의 손에의해 잡혔다.
숨통이 막혀버린 고통속에 현지가 목을 조여대고있는 영희의 손을 잡았지만 현지의 힘으로 그 손을 떼어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현지의 몸이 영희의 손에의해 일으켜지고나서도 영희는 현지를 계속해서 위쪽으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현지의 키보다 더 높은 위치로 들어올려지면서 현지의 발이 바닥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을 버둥거리며 영희의 팔에 매달려있다시피한 현지의 얼굴 바로 앞으로 영희의 얼굴이 다가왔다. 분명 키만으로 보면 현지가 영희보다 조금 더 큰 편이었지만 영희의 몸도 현지의 몸과같이 공중에 떠오르면서 영희의 얼굴은 코가 맞닿을정도로 현지의 얼굴로 바짝 다가왔다.
『히히히히히히.... 나랑 같이 있자.. 현지야~~ 』
쇠를 긁는 소리와도 같은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현지의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영희는 웃고 있었다. 살아있을때에 비해서 하얗게 질려버린듯 창백한 얼굴이긴 했지만 순수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을 모두 지워버린채 순수한 악의만 남은듯이 사악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지금 이 순간 눈 앞에 있는 현지의 고통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듯이...
현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이 그녀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듯이..
영희는 현지의 바로 코앞에서 웃음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 웃음에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분만으로도 현지는 정신을 잃어버릴만큼 오싹하고 소름이 돋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 1초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영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순수한 사악함에 동화되어 가는듯이 현지는 영희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렇게 영희를 바라보고 있을수록 영희의 그 사악함에 빨려들어가 버릴것만 같이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버리는 느낌이었다.
『히히히히... 그래.. 그렇게..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 이제부터는 너도 우리와 같이 되는거야... 』
영희의 말에 대답하면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릴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오고 있었다. 대답하면 안된다는 저항해야한다는 생각은 들어오지만 의지력마저 영희에게 모두 빼앗겨 가버리는듯이 어지러움이 느껴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져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을것만 같은 그 상황속에서 현지의 입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듯이 달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지에게 두려운 생각이 들어오고 있었다. 자신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라도 저항하려는 현지의 생각과는 달리 현지의 입은 자기멋대로 영희의 말에 긍정해버릴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때문이었다.
"아..안돼.. 대답하면 안돼... "
필사적으로 말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현지의 노력과는 달리 현지의 입이 조그맣게 열렸다.
『뭐하는거야!!!! 정신차려 이 바보야!!! 』
『넌 지금 두려움때문에 내 기운까지 거부하고 있잖아..!! 두려워하지마!! 무서워하지도 마..!!! 』
모든것이 흐릿해져버리는것 같은 그 때 치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치... 치우... 치우야......."
『네 몸속에 내가 있다는걸 잊지마!! 네안에 내 기운의 흐름에 몸을 맡겨..!! 』
『한번 해본적 있잖아!! 그때처럼... 날 믿어...!! 』
자신을 믿으라는 말....
봉인을 위해 치우가 현지에 몸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던 그 날....
그날도 치우는 현지에게 지금과 같은 말을 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때도 거대한 용같은 그것에게 온 몸이 타들어가버릴것만 같은 그 때.. 현지는 치우가 잡아준 손에서 느껴지는 치우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고 치우에게 안기면서 살짝 건드리기만해도 엄청난 열화와함께 터져버릴것만 같던 그 무엇도 치우가 치유해주듯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었다.
기운이니 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치우의 존재는 느낄 수 있을것도 같았다. 그 날 현지의 몸속에서 현지의 손을 잡아준 치우의 그 느낌을 따라 치우와 만났을 때... 그 때의 치우는 현지로서는 처음보는 조금은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현지는 그것이 치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현지는 그 때의 느낌을 더듬어 찿아가기 시작했다.
포근하게 감싸주는듯한...
무엇인가에서부터 보호하려고 해주려고 하는듯한...
그런 느낌....
치우의 품에 안겨있을 때의 느낌...
단단하고 거칠어 보이면서도 부드러웠던 치우의 가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싫지않은 야릇한 설레이는듯한 흥분감...
치우의 것이 현지의 몸안으로 들어올때 느껴지던 비어있는 곳을 가득 채워주는듯한 충만한....
그 때 느꼈던 그것들이 조금씩 현지의 몸안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손에서...
발에서.....
현지의 몸 전체에서 치우의 느낌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치우의 기운에 특별한 힘이 있는걸까?
아니면.. 누구와 같이 있다는 생각때문일까?
정신을 잃고 그대로 영희에게 빨려들어가버릴것만 같던 현지는 조금씩 안정되며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안정이 되면서 치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지자 몸속에서 치우가 직접 움직이기라도 하듯이 치우의 기운이 움직이려하는듯한 기분이 들어왔다.
『거부하지말고.. 내게 몸을 맡겨봐... 내가 움직이는대로 따라와봐... 』
현지는 몸안에서 치우가 이끄는대로 몸을 맡겼다. 치우의 기운이 현지의 왼 팔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들어올려진 현지의 왼 팔이 현지의 목을 조여대고 있는 영희의 손에 닿았다.
『아아악!!!! 』
치우가 문신처럼 봉인이 되어있는 현지의 왼 손이 영희의 손에 닿는 순간..
영희가 비명을 지르며 현지를 복도의 한쪽으로 집어던지듯이 팽개쳐버렸다. 복도의 한쪽으로 팽겨쳐지듯이 길게 밀려난 현지가 목을 잡고 잠시동안 부족했던 산소를 들이마셨다.
『콜록.. 콜록... 』
현지가 고개를 들어 영희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손에 고통이 남아있는지 영희는 치우가 닿았던 손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고 무서운 눈초리로 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말했잖아.. 저런 것들 없애는게 내 일이라고...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조금 더 내 기운에 집중해봐... 』
영희를 바라보고 있던 현지가 눈을 감았다. 보고 있는것만으로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그 무서운 눈빛을 계속 보고있을 자신도 없었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눈앞으로 달려들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왔지만 현지는 치우를 믿고 눈을 감아버린채 치우의 느낌에만 집중해나갔다.
눈을 감고 치우의 기운에 집중하던 현지의 눈에 희뿌연 안개들이 끼기 시작했다. 안개는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울정도로 짙어졌다가는 이내 다시 흐려지며 옅어졌다. 그리고 옅어진 안개속에서 현지는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뭐가 보여?? 』
『전쟁터.. 같은.. 칼이랑.. 무기들이... 』
치우의 질문에 현지가 대답했다. 안개가 다시 흩어지면서 현지의 눈앞에 나타난 광경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광경이었다. 싸우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들같은 모습은 없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아 폐허처럼 황폐해진 땅처럼 칼이나 창과 같은 수많은 병기들이 땅에 꽂혀진채 나타났다. 과연 사용할 수나 있을까 싶을정도로 녹슬은 병기들도 있었고 금방 누군가 꽂아놓고 간 것처럼 반짝이는 것들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잡아... 』
『마음에... 드는것?? 』
현지는 치우의 말처럼 선듯 병기들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나 책같은 곳이외에서 실제로 이런 것들을 본 경험이 없어 이런 무기를 집어든다는게 상당히 생소한데다가 왜그런지 각각의 무기들이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느껴져 가까이 다가가면 그 자리에서 날을 세우고 현지를 베어버릴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 없어.. 빨리 서둘러..!! 』
『아..알았어.. 』
그렇게 현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넓게 퍼져 꽂혀있던 무기 하나가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 그것도 상당히 거대한 도였다. 찌르기보다 베는것에 중점을 두는 거대한 도가 땅에서 뽑혀져 나올듯이 그 자리에서 잠시 흔들리더니 갑자기 거대한 자석에라도 이끌리는듯이 빠른 속도로 현지를 향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현지가 깜짝 놀라 날아오는 검을 막으려는듯 두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악!!!! 』
금방이라도 현지의 몸을 두동강내버릴듯이 현지를 향해 날아오는 도의 기세에 놀란 현지가 눈을 뜨자 황량하게만 느껴지던 안개가 끼인 곳이 아닌 현지에게 익숙한 기숙사의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왜그래? 무슨일이야?? 』
현지의 비명소리에 놀란듯 치우가 현지에게 물었다.
『카... 칼이.... 』
현지는 칼을 막으려고 무의식적으로 들어올렸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이게 어떻게...? 』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현지의 눈에 조금 전 현지를 향해 덮치듯이 날라오던 칼이 쥐어져 있었다. 꿈에서 보았던 것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나기라도 한듯이 현지의 생각속에서 보였던 그 거대한 도가 지금 실제로 현지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이런걸.... 』
치우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조금은 절망적인 목소리였다.
현지의 손에 들려있는 거대한 도.. 그것은 현지에게 달려들때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그 길이만해도 세워놓으면 현지의 키만큼은 되어보일만큼 길었고 그 넓이도 상당해서 옆으로 서면 칼에 현지의 몸을 숨길수도 있을것만 같은 크기였다.
생각속에 존재했던 칼이 실제로 현실에 나타난 것은 아마도 치우가 급한대로 현지에게 귀에 대항 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기위함이었겠지만 지금 현지의 손에 쥐어진 무기는 휘두르기는 커녕 들어올리기도 벅차보일 지경이었다.
『무슨 짓을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지금까지 노려보듯이 현지를 바라보기만하던 영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지에게서 전해져온 기운의 원인을 알지못해 현지를 노려보기만 할뿐 선듯 다가서지 못하는듯 보이던 영희가 더이상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같아 보였다.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이제부터 넌... 』
영희의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영희의 몸이 빠르게 현지를 덮쳐왔다. 조금 전까지 현지가 조금 더 현지가 두려워하는 것을 즐기려는듯이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스피드였다.
현지는 눈을 감았다. 바보같이 치우가 알려준 봉인을 푸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치우가 또다시 도와주려고 했지만 현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치우의 뜻대로 되지 않은것 같았다.
"정말... 이렇게 죽는걸까... 그럼 치우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죽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현지에게 봉인되어 있는 치우가 걱정이 되었다. 괜히 자신을 도와주려다가 치우까지 소멸되어버리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줘서 고맙긴 한데... 난 그렇게 간단히 소멸되지 않아... 뭐 이상태로 네게 문제가 생기면 나도 한동안은 활동하지 못하겠지만 길어봐야 1~2백년이야.. 』
거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현지의 심정과는 전혀 다른 태연한듯한 치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다.. 무슨 일이 났어도 한참전에 났어야하는데 현지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나저나 놀랐는걸? 퇴마사의 피가 흐르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 정도면 거의 최고수준... 아니 그 이상이야... 』
이어지는 치우의 말에 현지가 눈을 떴다. 눈을 뜬 현지의 시야에 영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영희의 모습 대신 현지가 눈을 감기전 복도바닥에 놓여져있던 그 거대한 도가 영희가 있던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는것이 보였다. 그리고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있는 그 거대한도의 손잡이를 현지의 손이 꼭 움켜쥐고 있었다. 두 손으로 들어도 들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드는 그 거대하고 무거워보이는 도를 현지가 한 손으로 들어올려 그것도 길게 수평으로 내뻗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런 커다란 것을 한 손으로 들고 있는것만으로도 놀랄만한 일인데 신기하게도 도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현지가 눈을 감으면서 손을 내뻗은 기억도 없었고 그렇다고 손이 들어올려지는 느낌도 없었다.
『아.. 아니야.. 난 퇴마사 같은 그런게.... 부모님도... 우리 집안이 퇴마나 무당같은 것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어... 』
말도 안된다는듯이 이야기하던 치우가 갑자기 말을 끊고는 현지에게 주의를 주었다.
『봉인이 된 상태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근처에 있는것 같아.. 』
주위를 경계하듯 여전히 아까의 그모습 그대로 영희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고 있던 현지의 거대한 도가 경계에 이상이 있음을 현지에게 알려주듯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거대한 도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말을 하고 있는듯이 느껴졌다.
바닥과 수평으로 길게 뻗어있던 거대한 도가 이번에는 바닥과 수직이 되도록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고개를 치켜든 도가 천천히 춤을추듯 현지가 잡고있는 손잡이 부분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칼을 쥐고 있는 것은 현지였으나 칼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현지가 아니었다. 현지의 몸속에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칼을 들고 있는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치우가 아닌 또다른 느낌.. 그것이 마치 현지의 오른손과 도를 하나로 만들어 움직이고 있는듯이 도가 움직이고 있었다. 레이더가 적을 탐지하듯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던 거대한 도가 일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또다시 바닥과 수평방향을 이루고 있는 도....
하지만 이번에 그 방향은 조금 전까지 영희가 서 있던 그 자리가 아닌 현지가 서있는 복도의 오른편 벽이었다.
마치 노려보기라도하는듯이 그 끝을 벽쪽으로 향하고 있는 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현지는 도에서부터 느껴지는 긴장감에 숨이 막힐것만 같았다.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그때문인지 치우에게서도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현지 스스로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현지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거대한 도가 바라보고 있던 오른쪽 벽면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
거대한 도가 만들어낸 날카로운 파공음에 응답하듯이 갑자기 벽에서 날카롭고 기괴한 소리가 울려펴졌다.
벽 자체에 생명이라도 깃들어 있는듯이 들려오는 비명소리...
그 비명소리와 함께 홀쭉하고 길게 늘어져 괴로워하는 영희의 얼굴이 벽면에서 튀어나왔다. 벽을 뚫고 들어간 거대한 도에 적중이 된듯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이 느껴질만큼 기괴하고도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영희의 얼굴이 벽밖으로 모습을 드러나며 몸부림쳐대고 있었다.
잠시동안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영희의 모습이 가루처럼 흩어지는듯 하면서 다시 벽속으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와함께 영희가 괴로워할때까지만해도 웅웅거리며 진동을 하고있던 도의 떨림이 멈추었다.
칼의 진동은 멈추었지만 현지의 심장은 그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있었고 칼의 진동과 심장의 세찬 박동이 현지의 몸을 달구고 있는듯 몸이 더워지는듯한 느낌이 들어왔다.
『하아... 하아.... 』
아주 낮은 현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결승점에 도착한 마라토너가 숨을 고르듯 현지는 낮게 숨을 고르고 있었지만 숨이 차거나 힘이 들어서라는 느낌보다는 더워지는 몸을 공기로 냉각시키려는듯이 현지는 낮게 공기를 들이마시며 한편으로는 달구어진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