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13.1
헤드라이트를 반짝이며 도로위를 달리는 자동차..
늦은 퇴근길을 재촉해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술에 취해 흔들거리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
여느날의 밤거리와 별반 다를바 없는 도시의 밤의 풍경이었지만 그 거리를 걷고 있는 현지는 평상시의 모습보다는 조금 더 어색하고 경직된 모습이었다. 치우가 알려준대로 왼팔에 치우를 봉인한 현지의 눈에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우를 봉인하고 밖으로 나온 현지는 적잖이 당황했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않고 방치되어있는 폐가나 공동묘지 그런곳에만 있을줄 알았던 귀신들이 너무도 많이 현지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큰 사고를 당한듯 신체의 일부가 없어진채로 도로위를 돌아다니는 귀들도 있었고 한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는 귀들도 있는가하면 살아있는 일반 사람들과 전혀 다를바 없는 모습을 한 귀들도 있었다.
『원래 이렇게 귀들이 많은거야....? 』
대담한 편에 속하는 현지로서도 실제로 귀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많은 귀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의 눈에 보이는 귀들의 특징이라면 살아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귀들 주위에 하얀 오오라같은 것이 둘러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얀 오오라에 둘러싸인 귀의 옆에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만약 저 여자가 자신의 옆에 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싶은 생각과 함께 평소의 자신 역시 치우가 봉인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저 여자와 마찬가지로 귀가 옆에있어도 알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혹여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억지로 그들을 외면하며 현지는 빠르게 거리를 지나 학교안으로 들어왔다. 학교안이라고는해도 여자기숙사는 남자기숙사와는 달리 외진곳에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여자 기숙사만 그렇게 외진 곳에 따로 지어놨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여자 기숙사의 위치적인 조건이 은경이 사건이후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이 기숙사를 떠나게 하는데 크게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보통 여자들의 경우 평소에 혼자서 여자 기숙사길을 올라가는 것도 싫어할만큼 외진곳이었으나 다행이도 현지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거의 귀들의 모습을 찿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곳에 귀신들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
도착한 기숙사에는 출입금지 푯말이 달린 가느다란 테이프가 입구를 막고 있었다.
현지는 폴리스라인처럼 쳐져있는 테이프 앞에서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는 허리를 숙이고 테이프 안쪽으로 들어갔다.
산속에 지어진듯이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온 여자기숙사의 건물은 온통 불이 꺼져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현관쪽으로 다가간 현지가 두꺼운 유리로 되어있는 커다란 현관문을 살짝 밀었다. 의외로 굳게 잠겨있을 줄 알았던 현관문이 쉽게 현지에게 길을 내어주자 현지는 천천히 안쪽 로비로 걸어들어갔다. 어두운 밤에 불까지 꺼져있었지만 치우가 현지의 몸에 봉인이 되어있어서인지 의외로 그렇게 어둡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로비의 한쪽 벽면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거울...
기숙사에서 나갈때 잠깐씩 서서 방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옷 매무새나 머리를 다듬곤 하던 거울이었지만 거울에 관한 괴담이 많아서인지 오늘은 보고싶지 않은 것들을 잔뜩 비춰보일것만 같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현지는 사감실을 비롯해 독서실이나 샤워실같은 편의시설이 많은 1층의 로비를 지나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1년여이상을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계단이었지만 오늘 계단을 오르고 있는 현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뭔가 이상한데? 』
치우가 말을 꺼냈다.
『이상하다니? 』
계단을 통해 3층에 도착한 현지가 3층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어두움과 황량함이 가져다주는 음산함때문인지 운동화를 신고 있음에도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현지가 복도 한쪽벽쪽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길게 나있는 방문들중 하나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섰다.
306호...
그 사건만 없었다면 지금쯤 은경이와 함께 현지가 잠들어 있을 방이었다.
방문앞에 잠시동안 서있던 현지가 길게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주변의 음산함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목재나무문의 비명소리와 함께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벌써 한 달이 훌쩍넘어 두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은경이는 저승으로 가는 길에 올랐을지도 모르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하더라도 치우의 말대로라면 은경이는 이곳에 없을 확율이 훨씬 높을것이었다. 하지만 잊어버리려해도 더이상 신경쓰지않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왜그런지 은경이의 일에대한 찜찜함이 현지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지후선배나 은경이의 관계라든지 가장 친한친구였던 은경이의 전혀 예상외의 행동과 죽음이 석연치 않는다던지 하는 문제도 문제였지만 그런 문제를 제외하고도 그 사건.. 아니 그 사건의 무엇인가가 현지를 부르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 사건당시 현지가 그곳에 있었다면.. 그 치한을 만나지 않았다면.. 치우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그 날 기숙사로 바로 들어갔다면 깨끗하게 끝날일이었는데 현지가 그 자리에 있지않았기때문에 끝나지 않은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현지를 기다리고 있는것처럼.. 그렇게 현지를 부르고 있는것처럼 그 사건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지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미안해.. 은경아.. 오늘로서 너도.. 그 일도.. 그만 잊을게... 이해..해줘.. "
천천히 문이 열리는동안 현지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치우에게는 은경이를 위해서라는 보기좋은 변명을 댔지만 현지 자신을 위해서 그만 깨끗하게 잊고 싶은 생각이 더 클지도 몰랐다. 은경이의 사건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있다고해도 더이상의 증거가 필요없이 종결된 사건을 현지 혼자서 그것도 귀의 이야기라며 다시 조사를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건을 잊고 싶었다. 다시 떠오르지않을 현지의 기억속 한 구석에 접어놓고 싶었다.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방내부의 모습이 현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2층침대가 보이고 그 뒤쪽으로 책상이 그 맞은편에 작은 옷장이.....
그리고....
그리고....
방끝쪽에 위치한 창문... 지연언니가 뛰어내렸다던 그 창문...
그 창문아래....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방문이 열리면서 드러나는 방안의 모습을 따라 움직이던 현지의 시선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누군가에게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 시선을 의식한듯 웅크리고 앉아있던 한 인영이 고개를 들어 현지를 바라보았다. 현지의 눈과 인영의 눈이 마주쳤다. 공기조차 얼어붙게만들듯한 잠시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현지의 눈에서 하나의 물줄기가 현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은경아... 』
웅크리고 앉은채 고개를 들고 현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은경이였다. 너무도 보고싶었던.. 치우의 말처럼 어떤 형태로든 이미 이 세상에는 없을 줄 알았던 은경이었다.
『현... 지...??? 』
현지가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은경이쪽으로 다가가려하자 현지의 몸속에 있던 치우가 그런 현지를 말리며 말했다.
『다가가지마.. 』
치우의 말에 현지는 마음속으로 치우의 말에 강하게 반박하면서 치우의 말을 무시하고 은경이쪽으로 다가갔다.
『너.. 어..어떻게 날 볼 수 있는거야? 』
다행히 치우의 말대로 은경이 생전의 은경의 성격과 달라보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현지보다 은경이쪽이 훨씬 더 놀라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게 좋겠어.. 무서워하거나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것 같아 』
은경의 질문에 치우에 대한 말을 하려던 현지는 치우의 말에 생각을 바꿨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어... 』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듯이 은경은 현지에게 몇번이고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고 현지는 그런 은경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웅크리고 있던 은경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으로 오면서 보았던 영혼들처럼 은경의 주위를 둘러싼 하얀 오오라와 훨씬 창백해보이는 얼굴을 제외하면 생전의 은경의 모습과 전혀 다를바 없는 모습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은경의 모습을 보던 현지가 깜짝 놀랐다. 은경의 복부부분이 흥건하게 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경아.. 피가...!! 』
이번엔 자리에서 일어선 은경이 현지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현지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장님이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쓰다듬듯이 은경의 하얀손이 현지의 얼굴의 윤곽을 어루만져갔다. 영혼의 상태여서그런지 특별한 촉각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은경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 약한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너는.. 무사해서... 』
『그 날 저녁에 지후선배랑 저녁먹고 선배집에 잠시 들려서 선배가 직접 해준 칵테일을 한잔 마셨는데.. 그 다음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다음에 정신이 들었을때는 내가.. 영희언니를... 카... 칼로... 』
은경이의 표정이 울먹이는듯한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너..너무 무서웠어.. 어..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지연언니를 바라보았는데... 어..언니가.. 차..창문으로... 흐윽... 』
현지의 말에 은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그럼? 』
현지가 훌쩍이며 울고있는 은경이를 안아주었다. 비록.. 살아있을때처럼 서로의 피부를 맞대며 은경이를 느낄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은경이에게서 전해져오는 그 두려움이 뛰게 만드는 심장의 박동을 진정시킬 수가 없을것만 같았다.
"이렇게.. 무서움을 많이 타는 애가.."
은경이를 품에 안을듯한 자세로 있던 현지가 은경이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끝난게... 아니야.... 』
『은경아... 』
원래부터 무서움이 많은 아이가 이런 곳에서 그런 일을 겪었으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생각에 현지는 마음이 무거웠다. 은경이 너무 불쌍하고 가련한 생각이 들면서 현지는 조금 전의 은경이처럼 한 손으로 얼굴처럼 창백한 눈물방울을 흘려내고 있는 은경이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눈물이라도 닦아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은경이의 눈물을 닦아주려 들어올린 현지의 손은 마치 앞에 아무것도 없는듯이 은경이의 눈물을 그리고 얼굴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흐윽...!! 』
은경의 눈물을 닦아주려 들어올린 손이 은경의 얼굴에 닿는 순간 은경이 소스라치듯 놀라며 몸을 떨면서 현지에게서 뒷걸음을 쳤다.
『으...은경아..?? 』
『너... 현지 너.. 무...무슨짓을 한거야...??!! 』
지금껏 슬프고 두려운 얼굴을하고 현지에게 안겨있듯이 이야기를 하던 은경의 반응이 두렵고 떨리는듯한 모습과함께 현지를 경계하는듯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현지는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은경의 태도에 당황하며 은경의 얼굴에 가져다 댄 손을 바라보았다.
하얀 손수건으로 둘러싸아놓은 자신의 왼 손...
치우가 봉인되어 있는 손이었다. 치우가 현지에게 알려준대로 치우에게 생각을 집중하고 봉인의 주문을 외우자 치우의 모습이 붉은 안개처럼 변해가며 현지의 손으로 빨려들어가는듯 싶더니 그 붉은 안개가 모두 사라진후에 현지의 손에는 마치 문신처럼 희안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 보기에도 그렇고 영혼이나 귀들의 눈에 보이는 것도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 현지가 하얀 천으로 손을 둘둘 감아매고 나왔던 것이었다.
『현지 너.. 그... 손.... 』
현지는 그제서야 은경의 반응이 이해가 될것도 같았다. 귀들은 도깨비를 무서워한다고 했으니 치우의 기운을 느끼고 어쩌면 자신을 소멸시키기위해 왔다고 생각하고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경아... 오해하지마 그런게 아니야.. 』
『아니야.. 은경아.. 오해하지말고 날 믿어줘... 그러려고 여기 온게 아니라... 』
현지는 혹여나 은경이가 오해하거나 할까봐 필사적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치우의 말대로 최악의 경우 소멸까지 생각하고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너무도 슬프고 마음 아프게 보내야했기에 최대한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고 게다가 지금 은경이는 현지를 알아보고 있었고 조금전까지만해도 호의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은경이 오해를 하면 일은 복잡하게 꼬여갈 수도 있었고 현지가 생각한 최악이상의 최악의 상황으로 소멸하지 않아도 될 은경을 소멸해야하는 경우도 발생할지 몰랐다. 어떻게든 은경이 오해하는 것을 막으려 필사적인 현지에게 은경이 말했다.
『소멸이라고...?? 차라리... 그래줬으면 좋겠어.. 』
『아.. 은경아... 이해해줘서 고마워.. 』
다행히도 은경이는 현지를 믿어주는 것 같았기에 현지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은경의 말이 다 끝난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네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믿을 수가 없어..!! 』
은경의 말에 현지가 또다시 은경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깨비라는 것에대해 현지가 궁금한것을 치우가 대답해준 것 이외에 딱히 아는 것이 없었기에 한번에 쉽게 은경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나쁜게 아니라고..?? 』
『응?? 아니.. 그게... 』
은경이의 말에 현지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은경이의 말을듣고보니 도깨비 방망이같은것도 가지고 있지 않고 동화속같은곳에서 표현되는 그런 뿔이나있거나 한 모습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현지가 알고 있는 도깨비에 관한 모든 것 그리고 령이라든지 혼이라든지 귀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은 치우의 말뿐이었기에 만약 치우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하지만 치우는 특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넌 너무 사람을 쉽게 믿어... 』
『내가... 언니를 죽였을때 들었던 그 기분... 내가 죽은 걸 알고난 이후에 계속해서 날 찿아오는 그 기분나쁜 기분... 누굴 죽이고 싶고.. 무언가를 부셔버리고 싶은.. 그렇게해야 기분이 좋아질것만같은 그런 기분 나쁜... 그 기분.. 왜 그 기분과 똑같은 기분이 전해져 오는 거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