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11.1
담장이 길게 이어진 어느 고급주택가의 길목에 고급스럽고 거대한 주택들과 어울리지 않는 자동차 한 대가 주차해 있었다.
『아우우웅~ 지겹다... 선배님 우리 이건 좀 오버아니에요? 』
멍하니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차창밖을 응시하고 있던 운전석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지겹다는듯이 옆자리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조수석의 시트를 뒤쪽으로 길게 눕힌채 눈을 감고있던 여자.. 현지와 한 집에 살고있는 여자형사였다. 여자는 감은 눈을 뜨지도 않은채 남자의 말에 대꾸했다.
『뭐가?? 』
투덜거리는 후배의 모습에 여형사의 얼굴에 피식하는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후배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어쩌면 후배말대로 이건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짓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할만큼 이번 사건은 단서가 없었다. 그래서 후배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이선영.. 그녀의 이름이었다. 경찰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노라고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신입시절부터 강력반 형사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그녀였고 직접 자신이 해결한 사건이 아니라도 별의 별 사건을 다 겪어봤지만 이런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은 강간사건이었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혼자 걸어가던 한 여성이 다음날 아침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조사결과 강간을 당한 흔적이 보이긴 했으나 사인이 명확치가 않았다. 이 결과는 처음 이 사건을 담당한 이선영도 선배형사인 최형사에게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누군가 여자를 강간했다면.. 그리고 신분이 드러날 것이라든지 어떤 이유에서라도 여자를 죽였다면 그것이 교살이 되었던 독살이 되었던 질식사가 되었던 그 원인이 있어야함에도 부검의들은 그 사인을 결국 밝혀내지 못하고 돌연사로 결론지었다. 쉽게 말하자면 강간을 당한 여자가 갑자기 그냥 아무런 이유도없이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또다시 강간사건이 발생했고 강간당한 여성은 사체로 발견이 되었으며 이번에도 사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돌연사라는 것이 말그대로 갑자기 아무런 이유없이 죽어버리는 것이니만큼 첫번째는 어쩌다 우연히.. 라고 말할 수 있어도 그런 일이 우연히 두 번이나 일어났다는 것은 그것도 젊은 여성에게서 일어났다는 것은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떤 단서도 찿아낼 수 없었다.
세번째 사건이 발생한 후에 비로소 그들은 하나의 작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을 동일범이라고 가정한다면 무슨 이유때문인지 이 범인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범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하게 찿아낸 단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건의 주기를 감안해서 네번째 사건이 발생할 시점인 시각 이선영과 최형사는 다른 형사들과 함께 사건이 일어났던 그 골목부근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고 그 때 기숙사에서 은경이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별수없이 이선영과 최형사가 기숙사쪽으로 이동을하고 나머지 형사들은 그대로 잠복을 하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사건현장을 조사하면서 현지의 위치를 파악한 이선영과 최형사는 현지의 위치가 조금 전 자신들이 잠복하고 있었던 곳임을 파악하고 곧바로 잠복해있던 형사들을 틍해 일대를 수색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현지의 수첩뿐이었고 그날 네번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실종된 줄 알았던 현지가 나타났고 현지는 그들에게 도저히 믿기 어려운 어이없는 이야기를 했다. 전체적으로 현지의 이야기를 믿기는 어려웠으나 현지의 증언에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현지가 강간을 당할뻔 했다는 것.. 얼굴은 보지못했지만 여자처럼 고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들은 그것에 주목했다. 어차피 기숙사사건의 그 범행동기가 애매하긴 했어도 범인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만큼 확실했고 만약 현지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어쩌면 그들이 찿고 있는 강간범이자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현지는 그 날 만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의문은 남았다. 어째서 현지는 보았던 그 인물을 잠복하고 있던 형사들은 한 명도 보지 못한 것일까? 여러번 동일한 증언을 반복시켜 현지의 증언의 일관성을 살펴보았을때 현지의 증언의 신빙성이나 현지의 수첩이 현장에 떨어져있었던 것을 보면 현지의 말이 거짓이라고 믿기도 어려웠지만 범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현지까지도 아무도 보지 못한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최형사와 이선영은 고민끝에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범인이 해온 행태로 봤을 때 우발적인 범죄라면 아주 작은 단서하나 흘리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었고 일정한 주기로 범행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철저하게 계산되고 계획되어진 범죄라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현지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어쩌면 그 날 일어나지 않은 네번째 범죄는 현지를 통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이유로 이선영은 현지와 같이 생활을 하기로했고 현지는 알지못했지만 현지의 뒤에 형사를 붙여 24시간 현지의 행동을 감시하고 관찰했다. 일이 잘 된다면 현지를 통해 기숙사사건의 범행동기도 그리고 지금까지 골머리를 썩이던 그 범인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달이 지났건만 현지도 그 사건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는 점만 빼면 평범한 여대생과 전혀 다를바 없는 생활을 했고 현지가 만나는 인물이나 현지의 주변인물들 중에서도 특이할만한 인물은 없었다.
처음에 이선영도 이상한 증언을 하는 현지가 강간사건이나 기숙사사건이나 어떤것이 되더라도 그 사건들과 관해서 무엇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고 어떻게든 관련이 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으나 하루이틀 지나면서 현지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비록 자신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라고는 하지만 집안청소며 밥이며 빨래며 거의 모든 집안일은 선영이 신경쓰지 않아도 될만큼 별다른 말이없이도 알아서 해놓는가하면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영이 들어올때마다 꼬박꼬박 나와서 인사를 하고 식사를 걸렀으면 밥을 챙겨주기도 하는등 이제는 오히려 현지가 없으면 허전할만큼 현지란 아이는 착하고 사려깊은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언제나 선영이 들어올때면 방문을 열고 나와서 웃으며 맞아주던 현지가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자는가보다 하고 샤워를 한 후에 잠자리에 든 선영의 핸드폰이 선영의 잠을 깨웠다.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고.. 선영이 전화를 받았을 때 전화기 건너편에서 최형사가 그 골목에서 또다시 강간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선영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지의 방문을 벌컥 열어보았다. 다행히 현지는 꿈이라도 꾸는지 누굴 끌어안고 있는듯이 잠이 들어 있었고 선영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날 일어난 강간사건은 이전의 사건들과 주기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의 경우도 보통 다음날 시체로 발견되었던과는 다르게 그 날 밤에 거의 기다시피해서 그 골목길을 빠져나온 피해자를 지나가던 택시운전사가 발견하고 경찰에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피해자는 그 충격과 공포에 거의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신과병동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관계로 범인에 대한 진술은 들을 수 없었다.
과연.. 이번 사건도 이전의 사건과 동일인의 짓일까? 아니면 우연하게도 벌어진 범행이었을까? 쉽게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영과 최형사는 어젯밤 현지의 뒤를 따르던 형사의 보고를 받았다. 현지를 미행한 이후 현지가 처음 만났던 두 명의 남자.. 그들 중 한명을 미행하다가 놓쳐버렸다는 것이었다. 미행을 눈치챈건지 아니면 형사의 실수였는지 모르겠지만 형사의 말로는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를 놓쳐버린 장소가 바로 그 골목길 부근이었다.
고생을 모르는듯 여자같이 고운듯했다던 범인의 손... 그리고 사건현장근처에서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린 부잣집 도련님... 그 부잣집 도련님의 이름은 정지후였다. 중견기업의 외손자로서 주위의 평이나 환경이나 뭐하나 빠지는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남자였고 선영이 생각해도 딱히 의심이 갈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현재로서 선영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상황이었고 그 지푸라기를 잡기위해 이선영이 후배형사와 함게 이곳에 있는 이유였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듯 하던 선영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차문을 열었다.
『어? 선배님 어디 가세요? 』
후배의 말에 선영은 주먹을 들어 보이는 시늉을 하면서 차 밖으로 나와 차 문을 닫았다. 선영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화장실이 있을만한 곳을 찿아보았다.
『에이.. 싸고 싶을땐 안나오면서 꼭 이럴때 이런단 말야.. 』
전망때문인지 조금은 높은지대에 위치한 고급주택가라서 그런지 주위에 마땅히 일을 볼만한 곳이 없자 선영이 투덜거렸다. 강력계형사치고 변비때문에 고생안해본 형사들은 없을정도로 불규칙한 생활패턴때문인지 선영은 항상 화장실에 갈때마다 끙끙거리며 씨름을 해야했다. 그렇게도 시원하게 일을 보고 싶을때는 도와주지 않던 것이.. 꼭 이럴때는 한번씩 말썽을 부리곤 했다.
『부자들은 슈퍼에도 안가나?? 조그만 구멍가게도 하나 없네... 』
고급주택가가 밀집해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몇집건너 하나씩 있을법한 조그만 구멍가게조차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긴 편의점이 아닌 이상에야 이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을리는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 멀지만 큰 길쪽까지 걸어나가봐야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것 같았다.
『아아.. 미치겠다.. 어쩌지?? 어쩌지?? 』
선영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보폭이 좁아져갔다. 둑이 터져버린 강물처럼 그것들이 무식하게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듯이 선영의 하복부를 압박해대고 있었다. 종종 거리며 걸음을 걷고 있던 선영의 걸음이 멈추고 얼굴이 급격히 찌푸려졌다.
『아흑.. 이거 큰일났네.. 큰 길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
하체에 잔뜩 힘을 준 채로 잠시 멈춰있던 선영이 식은땀까지 흘리며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지만 거의 제자리 걸음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속도는 종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다. 다급해진 선영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도..도저히 안되겠다.. 일단.. 아무대서라도... 』
새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을 하고 몸을 비비꼬던 선영이 한 손으로 어느 집의 담장을 잡고 몸을 기대듯이 담장에 의지한채 다소 주위에 비해 어두운 구석쪽으로 다가가서는 혹시라도 인적이 있는지 살펴보는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는듯 보였고 급하게 허리띠를 푸르려던 선영의 입에서 짜증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씨... 이건 또 뭐야.. 미치겠네 정말...!! 』
선영이 또다시 끙끙 거리며 최대한 다리사이를 오므리고 비틀거리며 다른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급한김에 일단 눈에 덜띄고 구석진 곳에 일을 보려고 하던 선영의 눈에 cctv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주위가 어둡다고 해도.. cctv앞에서 옷을 벗고 일을 볼 수는 없었기에 선영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새하얗게 창백하던 선영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인내심의 한게에 다다른 그녀에게 이제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선택의 시간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옷이냐....
아니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길바닥이냐...
애초에 고민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다. 선영은 최후의 모든 힘을 항문에 집중하고 그나마 으슥해보이는 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이제는 cctv고 지나가는 행인이고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최소한 지금 이순간 만큼은... 그만큼 선영은 급박했고 이제는 시간싸움이었다. 그나마 있었던 두가지의 선택도 이제 선영의 손을 떠나버렸다.
옷이냐..
길이냐...
이젠 그것마저도 시간이 결정해줄 문제였다.
『아.... 』
다행히 시간은 선영의 편을 들어주었다. 조금 민망한 소리가 투박하게 선영의 귀에 들려왔지만 선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시원한 해방감을 맛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대담한데 그래?? 』
문득 선영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마치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듯이 선영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선영은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돌아보지는 못했다. 경찰로서 또는 여자로서 노상에서 일을 보다가 누군가에게 들켰다는 챙피함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날카로움... 그녀에게 목소리를 전달한 누군가 금방이라도 그어버릴듯이 선영의 목에 칼을 바짝 가져다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지금 실수하고 있는거야.. 』
선영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목소리의 주인에게 말했다.
『오호.. 생각보다 대담하기도 한데? 어째서지?? 』
『경찰이라고?? 』
뒤쪽에서부터 들려오는 남자의 말에 선영은 또다시 놀라야만 했다. 분명 선영의 실수였다. 생리현상에 너무나 신경을 집중한 탓에 누군가 있었거나 따라온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분명 선영의 실수이긴 한데.. 선영에게 칼을 대고 있는 이 남자.. 어떻게 선영이 경찰이란 것을 알고있는걸까?
『놀랐나보지? 』
선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영의 몸이 조금 떨려오고 있었다. 선영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지나가다 혹은 근처에 있다가 길에서 일을 보는 여자를 보고 호기심이나 성적욕구가 동해서 다가온 녀석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아마도 애초부터 선영을 노리고 있었던 사람이었을 확율이 높았다. 그리고.. 그렇다는건 지금 선영의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정지후.. 그 녀석이.. 맞았구나.. 』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지만 선영도 나름대로 험한 생활로 이꼴 저꼴 수없이 겪어본 형사였다. 최면을 걸듯이 진정하라고 스스로 수도없이 되뇌이면서 선영이 확신하는듯한 어투로 말을 했다.
누군지 궁금하긴 했지만 어차피 이 상황에서 누구냐고 물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려줄리는 없었고 설사 누군지 알려준다고 한다면 그건 곧 선영이 죽는다는걸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선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의 반응을 통해 짐작해보는게 오히려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만약.. 이 녀석이 당황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든 정지후란 녀석은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을것이고 정지후를 모르는듯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마도 이번일이 아닌 다른 사건으로인한 보복성 행동이라 예상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정지후는 아니야... 』
남자의 목소리에 선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자의 말을 머리속에서 몇번이나 되뇌이며 생각했다.
"정지후는 아니다.. 정지후는 아니다.."
"는.." 는이라는 조사가 마음에 걸렸다. 정지후나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면 정지후라는 이름은 알지 못할것이었다. 그렇다면 "...는"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수상하다. 정지후라는 이름을 모른다면 "..는" 보다는 "...가"라는 조사를 사용하는게 일반적인게 아닌가? 남자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지금 판단 할 수 없지만.. 최소한 "..는"이라는 조사는 선영에게 이 남자가 최소한 정지후라는 인물을 알고있다는 뉘앙스를 풍겨오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선영의 귀에 조금은 허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재환이지... 정지후의 할아버지.. 크크크 』
선영은 자신도 모르게 낮게 신음했다. 아마도 정지후가 수사선상에 오른 것을 알고 외손자인 지후를 보호하기위해 그 할아버지인 정재환이란 인물이 무슨 수를 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직접 경찰에게 손을 대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선영의 머리속에는 그런 생각보다 절망감이 가득 차 가고 있었다.
정지후의 할아버지인 정재환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것을 보면 분명 이번 사건은 정지후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였고 그걸 감추려하지않고 아무런 스스럼없이 밝힌다는 이야기는 선영은 여기서 죽는다는 이야기와 같은 의미였다. 그런 생각때문인지 선영의 눈에 눈물이 맺혀가기 시작했다.
『떨고있는거야? 궁금한걸 알려줬는데 속이 시원하지 않아? 』
또다른 남자의 손이 선영의 허리안쪽으로 파고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영은 조금 놀라며 움찔거렸으나 목에 들이대고있는 칼때문에 더 이상 어쩌지는 못하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선영의 허리를 지나 일을 보느라 아무것도 입고있지않은 선영의 다리사이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선영은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남자와의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이런 사건들을 수도없이 봐온 선영이었지만 역시 막상 당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선영의 음모를 헤치고 속살쪽으로 다가간 남자의 손이 소변으로인해 축축히 젖어있는 음부안쪽으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하..하지마.. 』
낮으막하면서도 스산한 그리고 치욕스러운 남자의 말이었다.
선영의 꽃잎과 질안쪽을 간지럽히던 남자의 손이 스르르 빠져나오면서 선영의 눈앞으로 들어올려졌다.
『이것 봐.. 노상방뇨하는 형사나리의 오줌이라구... 』
선영은 눈을 뜨지 않았다. 비록 눈으로 직접 보고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소변을 그것도 노상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자신의 소변을 눈앞으로 들어올리고 있다는 그 생각자체만으로도 수치심에 선영의 얼굴을 붉게 달아올랐고 조금전 절망감에 고였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듯 선영의 눈을 적셔가고 있었다.
『입벌려.. 』
남자의 손이.. 선영의 소변이 묻어있는 축축한 남자의 손이 선영의 입술에 와 닿았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죄여오듯 목을 압박하고 있는 칼때문에 선영은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있었고 남자의 손은 어느새 입술사이를 뚫고 들어와 앙다문 선영의 이빨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훗.. 니 가랑이 사이에서 오줌이 아닌 핏물이 흘러내려야 입을 벌리려나? 』
남자의 말에 선영의 앙다문 선영의 치아가 조금 틈을 보이며 벌어지자 그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남자의 손이 불쑥 선영의 입안으로 파고들어왔다.
『깨물고 싶으면 깨물어도 좋아.. 난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
깨물고 싶었다. 깨물어서 손가락이라도 잘라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 상황에서 유리한 쪽은 상대방이라는걸 선영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선영이 남자의 손을 깨물어버린다면 아마도... 남자의 손가락이 선영의 치아에 채 잘려나가기도전에 남자의 칼은 선영의 목을 길게 그어버리거나 아니면 손을 깨물린 고통에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을 선영이 깨물고있는 손가락을 놓을때까지 몇 번이고 선영의 등에 찔러넣을것은 어렵지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스스로 내보낸 미지근하고도 짠 맛의 느낌이 입안에 감돌아가고 있었다. 그 짭짜름한 맛이 감돌아가는만큼 수치심과 굴욕감도 선영의 온 몸을 휘감아돌고 있었다.
『우리 형사님의 예쁜 보지만큼 똥구멍도 꽤나 예쁘겠지? 』
선영의 입에서 나온 남자의 손이 어느새 선영의 엉덩이 부분을 비벼대고 있었다.
『예쁜 똥구멍에서 나온 것치고는 냄새가 좀 심한데 그래? 』
일부러 선영의 수치심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려는듯 상대는 몇 마디의 말만 가지고도 선영을 곤혹스럽고 수치스럽게 몰아가고 있었다.
『이 냄새만큼... 맛도 지독할까? 』
남자의 말에 꼬옥 감겨있던 선영의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
선영은 남자의 말에 몸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멈출수가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의 소변을 묻혀 선영의 입안에 밀어넣었던 남자의 태도를 미루어볼때 그리고 이어진 남자의 말을 미루어볼때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가 선영의 머리속에 떠올랐고 그것은 정말로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선영이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스스로의 목소리가 잔뜩 떨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오히려 더 즐길거리를 준다는 걸 선영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떨림을 멈출수는 없었다.
『흐음.. 그건 부탁하는 사람의 말투가 아닌데? 』
선영은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선영의 목에 들이대어진 칼이 침이 넘어가는 것도 방해하는듯이 따가운 느낌이 들어오고 있었다. 선영이 선듯 대답하지않자 선영의 엉덩이에 있던 남자의 손이 움푹파여진 계곡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하지마세요.. 부..부탁드릴게요... 』
선영이 다급하게 애원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와함께 선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만큼...
그대로 소리내어 울어버리고 싶을만큼 선영은 수치감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