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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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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5話 전생의 인연2



  63.
  지금의 나, 전생의 나.
  이곳으로 돌아올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나는 전생의 나를 쉽게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얼추 돌아올 수도 있고 잠깐씩이라도 어떻게든 이곳에서 거주할 수도 있게 된 상황이니 전생의 나를 쉽게 버릴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이곳에 돌아온다는 말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 쉬워 차원이동이지 A라는 세계에서 B라는 세계로 이동한다는 것은 커다란 리스크를 동반한 도박이나 다름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서 ‘통로’를 뚫는 방법을 듣고 이곳으로 건너온 지금도 위험하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계곡과 계곡 사이에 줄 세 개로 다리를 만들어둔 것처럼 조심해서 건너지 않으면 무한한 차원의 틈 사이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 ‘통로’의 이동. 그리고 이 통로를 이용하려면 집중할 수 있는 강한 힘과 정신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고깽 연합에서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을 5일로 제한하고 있는 것 또한 이곳에 오고 싶어하는 여러 사람을 배려한다는 의미도 있었기는 하지만 이런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뭐, 폭주해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지구에 오래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이겠지만.”


  지금의 나처럼.


  “참아.”
  “그래, 그래야지.”


  동생을 닮은 청년이 빚에 휘둘려 노예처럼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울컥하는 마음에 뛰어나가려던 것을 억지로 참아낸다. 일단 이 녀석은 내가 만든 재단에서 일하는 식으로 유도를 하고……. 사람이라면 피가 거꾸로 솟구칠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도 어딘가 냉정한 모습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내가 무서울 정도다.


  “다른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고, 저 아이 정도는 아니니 다행입니다. 일단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재단 측에서 잘 보호해주면서 치료를 병행한다면 괜찮을지도…….”


  청년의 모습에 나와 마찬가지로 핏대가 설 정도로 화가 난 협회원 하나가 누나와 함께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 역시 사람이 먹을 것이 아닌 것을 주면서도 일은 혹독하게 시켜먹는 녀석을 당장이라도 때려잡고 싶다는 눈빛으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경찰을 부릅시다.”
  “네.”


  은근슬쩍 힘을 흘려 청년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녀석을 뇌졸중을 일으키게 해버리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일단 당장은 녀석이 청년을 때리다가 쓰러졌으니 그 녀석의 가족들이 청년에게 화풀이를 하겠지만 앞으로는 괜찮을 것이다.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심각할 경우에는 직접 나서서 막아보겠다고 말하는 협회원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서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솔직히 이 청년 외에도 만나볼 사람들은 많았으니 이런 상황을 보더라도 참는 것이 최선이다. 하루하고도 반이라는 시간이 남은 나는 이런 정도로만 인연이 닿은 사람들에게 배려를 해줄 수 있었다.


  “다음은 친구들이나 후손들을 찾는 거네?”
  “그렇네.”


  워낙 바빴던지라 경공을 사용하며 마구 돌아다니는 상황. 다행히도 친구들은 약간 부족하기는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다. 다음은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였다.


  “이건 질투가 나는데?”
  “이건 좀 봐줘.”


  아내가 된 누이를 데리고 만나러 가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신경이 쓰였다. 갑자기 죽어버린 나 때문에 새 삶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바보 녀석이라고 생각했더니 제법 영악하게 굴었네.”
  “다행이구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의 시선 끝에는 제법 건실한 집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그녀의 나이든 모습이 있었다. 하긴 20년이다. 벌써 사십대 중반이라는 나이이니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나이대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금슬도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로구만.”


  이 동네에서는 잉꼬부부로 소문난 사람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챙겨주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배어있는 것을 그녀와는 다른 미소로 마음속으로 그녀의 행복을 축복한다. 털어낼 수 있었다.


  “다음은…….”


  내가 직접 만나보아야 할 동생 녀석이었다.
.
.
  다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90년대 초반까지 노조가 없는 공장이 많았다. 일단 노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공장구조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랄 수 있는 상처를 안겨주었지만 공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산재처리를 해주는 대신 퇴직금을 주면서 떠나게 만드는 방법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하였다. 물론 퇴직금도 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고 들었으니 이 공장은 꽤나 양반이었던 셈이다.


  “민주주의라며?”
  “그러게. 돈 앞에서는 평등이고 뭐고 없나봐.”


  그렇게 공장을 떠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다친 것은 내가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다행히도 옆집 아저씨가 이런 사건에 대해서 잘 아는 변호사분을 친척으로 두고 있었던 탓에 아버지는 이 공장에서 산재보험 적용자 제 1호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소소한 충돌들이 있기는 했지만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한 탓인지 옆집 아저씨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왜?”
  “공장에서 해고되기는 싫었던 모양이야. 당연한 일이지.”


  증언을 해주면 해고하겠다는 으름장과 공장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는 허수아비 노조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우리 가족은 우리를 도와준 옆집 아저씨와 함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버지 다음으로 제 2, 제 3의 산재보험 적용자들이 계속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은 우리들만큼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물론 조금씩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마음이 상했던 것은 있었겠지만 세상이 모두 적으로 보일 정도로 조직적인 공격에 직면했던 우리보다는 나았다. 그런 것을 알았던 그 ‘장애인’아저씨들은 아버지를 찾아와 사과를 했고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 옆에서 아버지를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실제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해고를 당한 옆집 아저씨도 함께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위로했다.


  “좋은 분이었네.”
  “바보같을 정도로 우직한 분이었거든.”


  우리가 이사를 간 곳은 시골이었다. 산재보험 기간이 끝나 아버지에게 주어진 퇴직금으로 아버지는 땅을 사서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노력을 들이는 만큼 소출을 내어주었다. 하늘이 짓궂게 굴지만 않으면 그만큼의 풍요로움을 보장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배우면서 나는 사람 대신 땅을 믿는 법을 배웠다. 평화로웠다. 그 때에는.


  “문제는 말야. 갑자기 국가 경제가 휘청일 때가 있었다는 거지. 말 그대로 국가가 파산하는 상황이랄까.”


  IMF가 닥친 것은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원예 농업에 손을 댔던 아버지는 비료값도 건지지 못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도시로 가서 하숙을 시작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잡일을 하면서까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던 옆집 아저씨도 그런 아버지를 도와주었다. 적어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 것은 이 분 덕분이었으니 정말로 고마운 분이었다.


  “고마우면 우리 OO에게 장가와라.”
  “XX만 좋다면 그러죠.”
  “아빠! 오빠!”


  그런 농담을 할 때면 OO, 그러니까 옆집 아저씨의 딸은 얼굴을 잔뜩 붉혔었지. 그런 추억을 이야기하는 내 옆구리는 누나의 손가락에 마구 유린되었다. 어허, 전생의 일이건만 이리 질투하다니. 옆구리는 괴롭지만 행복하구나. 어쨌든 잔뜩 질투하는 귀여운 얼굴이 된 넷째 누나가 물어왔다. 물론 내 팔뚝을 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물다라는 의미 두가지가 모두 적용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었던 것 같은데?”
  “뭐, 하지만 그 정도로 괜찮은 삶은 끝.”


  뭐, 하지만 무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니까 웃으면서 그런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얼굴을 붉히는 누나였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 분들은 찾지 않아?”
  “응, 그게…….”


  동생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었다. 힘겹게가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에 악센트를 두어야 할 정도로 삶에 애로가 많기는 했지만 그건 둘째치고 하늘 아래 가족도 없이 살아가게 된 동생 녀석이 그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옆집 아저씨 덕분이다.


  “말하자면, 지금 녀석을 돌봐주면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옆집 아저씨라는 이야기야.”
  “그렇구나.”


  처음 동생이 누구와 결혼하고 누가 함께 살고 있는지를 들었을 때에는 정말로 이런 바보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고 눈을 질끈 감았었다. 그것도 당연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웃 간에 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몰락해버린다면 어쩔 수 없이 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그 가족은 동생을 돌봐주고 있었다.


  “게다가 나에게 시집오겠다고 한……끄아악!”
  "뭐라구?“
  “아, 아닙니다. 그 OO가 지금 내 제수씨라는 거지.”
  “으응.”


  어떤 사람은 그럴 것이다. OO가 내 제수가 되는 것이 뭐가 이상한 일이냐고. 하긴, 내 동생이 보통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 내 동생은……정신분열증을 앓았으니까. 지금도 그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세상을 떴으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가신 이유도 다 이런 것 때문이랄까.


  ‘어쩐지 양판소 이고깽들에게서 흔히 보는 것 같은 가정형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동생을 정신질환으로 고생하게 한 것이 세상의 소문이라는 것과 그 소문이라는 녀석이 어딘지 모르게 누군가가 뒤에서 조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건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고로 기업에서는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노조에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거나 전례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끈질기게 따라붙으면서 못살게 구는 것이 특징이었으니까. 시위 중에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해버린 사람들 중에서 제법 많은 숫자가 이런 경우였다고 알고 있지만 증거는 없다. TV에서도, 신문에서도 나올 수 없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그쪽에서는?”
  “소문만 간략하게 흘려내면 대강 사람들이 그 소문을 알아서 유포하겠지. 조금씩 살을 덧붙여서 말야. 그럼 알아서 그들이 노리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유리되고 미치거나 자살하거나, 아니면 패배자로서 살거나 하겠지.”


  쓰게 웃으며 차를 몰고 굽이굽이 들어가는 길을 따라 들어간다. 남과 북으로 이어진 강과 그 옆의 산들, 그리고 그 사이의 통로가 묘한 느낌을 준다. 세상이 싫어서 숨어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일까.


  ‘두근거리네.’


  드디어 나보다 더 나이를 먹은 동생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묘하게 기대되면서도 슬펐다.


  “녀석이라면 지금은 사십대 중후반이겠구나.”


  뭐, 원래부터 노안이었으니까. 얼굴은 크게 바뀌진 않았겠지.


  64.
  “…….”
  “…….”


  다시 만난 동생과 옆집 아저씨, 그리고 못생겼지만 눈은 맑았던 OO의 얼굴은 정말로 많이들 늙어있었다. 이들은 내 입에서 나온 전생의 내 이름에 꽤나 놀랐던지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형의 양자란 말이지?”
  “네.”
  “증거를 대봐.”


  내가 본인이라고는 죽어도 말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아주 관계가 없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이상하니 대충 얼버무릴 겸 양자라고 소개해버렸다. 그러자 진정제 비슷한 약을 먹고 있는 탓에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습 그대로 동생이 더듬거리면서 내 말을 재확인한다. 묘하게 슬펐다. 20여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대로라는 것은.


  “할아버님은 첫째 증조모에게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둘째 증조모께서 돌아가신 날 군대에서 꿈을 꾸면서 할아버지를 닮은 분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여자분을 보고 증조할아버지가 저승에서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맞는 모양이네.”
  "그리고 첫째 할머니께서는 6.25때 돌아가셨구요. 증조부님과 당시에는 핏덩이었던 할아버님은 조상님 무덤 아래 토굴을 파고 숨어서 살아났습니다.“
  “정확하네.”
  “아버님 위에는 형님이 계셨다고 했지만 아버님께서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더군요.”
  “확실해.”
  “마지막으로 할머님께는 사이비에 걸려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으셨던 언니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빼도박도 못하겠네.”


  가족의 비밀을 모두 이야기하고 나서야, 전생의 나와 어느정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는 대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형님은?”
  “7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연합측에서 조사해준 결과로는 시체도 건지지 못한 죽음이었다고 들었으니 몇 년 더 살았다고 해도 의혹이 있을지언정 누가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류상으로는 완벽하니까. 영국노부부의 양자로 들어가서 마찬가지로 양자를 들인 필립 서 맥그리프의 양자. 현재 한국으로 귀화하여 서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말이지.


  “그래…….”


  여행처럼, 만나기 전에는 두근거렸는데 정작 만나고보니 그렇게 가슴이 뛰는 그런 그리움은 씻은 듯 없어진 것 같았다. 전생의 내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동생도 잠시 침울했을 뿐, 딱히 크게 신경쓰는 모습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니 당연할지도.


  “편히……가셨나?”
  “저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물론 실제로 죽었었지만.


  “사진은?”
  “찍기를 거부하셨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그 놈의 성질머리는 여전했구만, 찾아와준 것만 해도 다행이다. 편히 쉬었다 가렴. 옆의 아가씨는…….”
  “제 아내입니다.”
  “그래, 조카며느리인가…….”


  손이라도 잡고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꽤나 지쳐버린 표정으로 말하는 동생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만큼 지쳐버린 것일까. 동생의 옆에서는 옆집 아저씨가 주름진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쑥덕대는 동생.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의식적으로 그 말을 차단한다. 너무 많이 아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서 서방이 저렇게 나오는 이유가 있다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네.”


  그러다 결국 한숨을 쉬면서 옆집 아저씨,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그 분이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는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남은 것은 하루. 내일은 떠나야 한다. 그동안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가 저녁밥상을 받고 밥상을 물리고 나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있다가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동생을 보고는 무언가 이야기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도울 수 있다는 언급 정도는 해주는 것이 좋으려나.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깔렸다.


  “……난 말이지. 평생, 형을 질투했었어.”
  “네?”
  “언제나 그랬지만 형은 마지막까지 나를 돌봐주려고 했지.”


  하지만 알 수 없는 말을 툭, 내뱉고는 눈을 감은 녀석의 말에 눈만 동그랗게 떴을 뿐, 대화는 나눌 수 없었다. 오히려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OO이와 옆집 아저씨였다.


  “혀만 잘 안 돌아갔지 이제는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아지긴 했는데 말야.”


  이른 저녁부터 잠지리에 들어버린 동생을 대신해서 마루에 앉아있던 나에게 다가온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로 노인이 이야기를 하고 OO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야기는 주로 녀석이 미쳤더 이유를 제공한 녀석을 끝까지 추적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과 OO이가 낳은 첫째 아이가 이미 죽어버렸던 ‘나의’ 아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으로 나눌 수 있었다. 녀석이 어처구니없이 나를 질투했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해서 우리 OO이도 꽤나 마음고생 심하게 했었지.”
  “그렇네요. 아버지께서는 대학교에 갔다가 머리를 길게 기른 히피마냥 하고는 여름방학이 되어 집으로 내려왔더니 교도소에 갔다 왔다는 헛소문이 퍼져있더랬지요. 그 다음은 여자를 건드려서 쫓기는 몸이라고 했는데 군대 휴가를 나온 상황이었구요. 그 치들이 내는 소문을 그렇게 깨버리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누가 소문을 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문이 가라앉는 효과는 볼 수 있었더랬다. 그 다음이 아마도 백수라고 소문이 난 상황에서 바로 고향의 모교에 선생으로 부임해버린 것이었지? 그걸로 완전히 결정타를 날렸었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사고사를 위장해서 그 녀석을 죽이려고 했지만……결국 그 녀석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게 생명의 위협 때문이었던가?”
  “조금은요. 대체 왜 그렇게 목숨까지 위협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느긋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아는 사람 없는 서울보다는 고향으로 내려와서 살아가려고 했더니 하는 짓이 모함과 살해시도다. 몇 번이고 사고를 회피한 행운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저녁노을이 지는 바닷가 도로를 달리다가 차에 치여 숨졌다. 시체도 찾지 못할 정도로 큰 사고였으니까. 확실히 해치웠다고 자축했겠지. 게다가 살인 공소시효가 끝난지도 5년. 딱히 녀석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냥, 불안했던 거라네.”
  “죄를 짓고는 못산다는 이야기로군요.”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 있는 상황. 공소시효가 끝나고 나서야 물증 대신 당시 대형트럭을 운전했던 사람의 증언을 받아내어 그래도 사고사가 아닌 살해였다고 알아낸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심리를 역으로 짚어보고 따지고보면 꽤나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그들이 쉽게 생각했던 녀석이 의외로 잘 자라버려 자신들이 한 행동을 역으로 파헤쳐서 고발할 정도의 인맥과 실력을 갖추고 나니 겁이 났던 것이다.


  “그 녀석, 지나치게 유능했어.”
  “유능이라……. 그 말씀을 들었다면 부끄러워했겠군요.”


  유능이라기보다는 필사적으로 파헤치고서는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는 식으로 증거를 모았던 것 뿐이니까 말이지. 말하자면 몰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내 말을 어떻게 곡해해서 들었는지 그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던 뿌연 탁주를 한사발 붓는다.


  “그게 녀석의 매력이었지. 하여간에 그 녀석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아가씨가 대여섯은 되었으니까 말이지.”


  잠깐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아들 놈 말로는 하렘마스터라던가 뭐라던가. 좀 평범하게 생긴 애들이라 문제이긴 했지만 정말로 좋아했던 모양이더라. 두 사람 정도는 꽤 봐줄만도 하더라만.”


  아……뭐랄까. 그 두 사람은 대충 알 것도 같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짐작이 안가는데.


  “그 녀석, 꽤나 둔감했었으니까 말야. 아마도 자네가 들은 사람은 두 사람이겠지만 그 외에도 몇 명 더 있었던 모양이야. 차마 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히죽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노인에게 어색하게 웃어주고서는 하늘을 바라본다. 옆구리는 이미 넷째 누나에게 공격을 받다못해 남몰래 힐을 걸어야 할 정도로 심하게 다치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 나도 그럴 줄은 몰랐다고.


  “솔직히 그 때 찾아온 아가씨들 중에서는 녀석에게 배우던 학생도 있었으니까. 3년만 기다렸다면 그 아가씨가 그 놈을 덮칠 생각이었다던데?”


  아, 그거 누구인지 알 것 같다.


  “지금은 유치원 원장으로 잘 살고 있는 모양이야.”


  굳이 확인해주실 것까지야.
  심술궂게 히죽 웃는 그를 보면서 한쪽이 이즈러진 달을 바라본다. 고향의 달은 여전히 밝았다.
.
.
  다음날 아침. 약기운에 취해 일찍 일어나지 못해 골골대는 동생 녀석을 억지로 깨워서는 밥을 먹인 옆집 아저씨와 함께 밭을 한바퀴 돌았다. 내 조카 녀석들은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사촌이 생겼다는 말에 한참을 구경하다가 학교로 갔다. 생각해보면 녀석들,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구나. 적당한 과외교사 둘 정도 이곳으로 파견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목에 이슬이 묻어나는 길을 걷는다.


  “흥, 두엄냄새도 잘 버티는구나.”
  “잠깐만 맡으면 되는데요. 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왠 심술인지 노인은 나에게 틱틱 화를 내기 일쑤였다. 왜 이러나 생각하면서도 잡초를 뽑고는 들린 흙을 살짝 토닥인다. 그리고 뽑은 잡초는 밭 근처의 숲으로 던져버리고…….


  “생각해보면 그 놈도 풀 뽑을 때면 그랬지. 귀찮다고 말야.”


  그렇게 김을 매는데 노인이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순간 등골이 싸해지면서 흐르는 식은땀. 설마 알아차렸나? 에이, 설마.


  “그, 그랬나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지만 노인은 녹록치 않은 눈치를 자랑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항상 닭을 먹을 때에도 젓가락을 사용하더라고, 포크가 옆에 있더라도 말이지.”
  “…….”


  어쩐지 아침에 닭이 나오더라.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녀석은 자기 자식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지. 자기 가족의 비밀 이야기 같은 것은 말야. 원한은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랬지? 그리고 사진을 찍기를 거부했다고? 내가 아는 녀석이라면 유언장이나 서류를 완벽하게 만들고 그토록 찍기 싫어하는 사진을 찍어서라도 확인해주려고 할 녀석이지.”


  쓰게 웃으면서 명탐정마냥 자신의 추리를 이야기하는 노인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내가 살아있었다면 그랬겠지. 몇 가지 심증만을 가지고 여기까지 생각해낸 그에게 알아봐준데에 대해 감사를 표하려고 했다. 손을 들어서 나를 가리키며 한 말만 없었더라면.


  “그런데 말이지. 네 놈은 어쩌다가 그런 꼬라지가 된 거냐?”


  아니, 지금 외모가 어때서!


  “어디 호스트인가 뭔가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


  아니. 암만 그런 식으로 생겼다고는 하지만 미리 의심부터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말씀해드려도 이해하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계에서 황태자 짓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윤리로는 잡놈이라고 불릴 짓이나 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은 구석진 방에서 분신들을 세워두고 폐인짓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강 환생했다고 알리고는 멀거니 반응이나 살핀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한모금 피워물더니 나에게도 한 대를 권했다. 떠나기 전에 몸에 찌든 담배라거나 기타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씻어내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을 피웠다.


  “어디서 맞담배질이냐!”
  “다, 담배 주셨잖습니까!”
  “돌아서서 붙여!”
  “네에. 쳇.”


  오랫동안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나도 개념없음을 마음껏 뽐내버린 것 같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하나 둘, 개념을 살리려는 노인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어떻게든 담배 한 대를 다 태운다. 그러면서 슬쩍 밭을 둘러싸는 마법진과 절진을 구성, 땅 속 깊이 묻어버린다. 이것으로 풍작은 기본, 일년내내 밭에는 작물들이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산짐승들은 알아서 돌아나갈 것이고.


  “대체 어쩌다가 그런 꼬라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환생이라……”


  곰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노인은 그런 말을 했다. 생각해보면 이미 얼굴에 검버섯이 피기 시작한 노인의 앞날에는 몇 날 되지 않는 때만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십여년 전에 죽은 놈이 와서는 환생했다느니 어쩌니. 얼추 죽음에 대한 걱정이 수그러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짐승나 미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시겠죠.”
  “기독교 믿던 놈이 불교쪽 이야기를 하냐?”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지 않습니까?”
  “……어떻게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거냐?”
  “……그건 잘 모르겠는데 말이죠.”
  “네놈의 성격이라면 필시 어느 종교의 신을 만나더라도 멱살잡고 기억지우지마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런쪽으로 생각해볼까나.”
  “……그럴 리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 슬프네요.”


  그런 대화를 하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야 밭으로 나온 동생과 만날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상쾌한 기분인지 표정이 좋았다. 어제 밤동안 몇 개의 마법진과 절진들을 설치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네 놈이 돌아왔다는 건 저 녀석이 먼저 알아차렸으니까, 제대로 인사해라.”
  “…….


  알아차렸냐? 내가 어설프게 연기를 하지는 않았을 건데, 대체 어디에서 들킨 것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 녀석이 가볍게 말했다.


  “나, 정상은 아니잖아.”


  보통 사람과는 보는 눈이 다르다는 이야기로구나. 그럼 또 모르겠구만.


  “그건 그랬지.”
  “너무 쉽게 말하네.”
  “솔직히 그렇게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서는 애처럼 삐지면 도망가고 싶어진다고!”
  “그, 그런가?”


  짧은 대화, 그리고 긴 침묵. 밭에서 돌아와 다시 차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가기까지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묘하게 머리가 엉망이라 하고자 했던 일을 모두 제대로 마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별장까지 도착하고 시간에 맞추어 황궁까지 돌아올 때까지 어딘지 모를 괴리에 고생해야 했다. 내가 A인가 B인가 하는 그런 생각. 그런 탓인지 주변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어딘지 모르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은 감각이라고 할까. 처음 보는 현상이다.


  “어이, 정신차려.”
  “…….”
  “거 참, 전생의 가족을 만나러갔다가 이 모양이 되었구만. 이걸 이기고 나면 나 정도로 강해질지도 모르겠는데?”


  내 머리를 툭툭 치거나 쓰다듬던 아버지라는 인간, 세인 아슈레이의 말에 잠시 정신을 차린다. 내 정신에 간섭한 것일까. 녀석의 말은 꽤나 뚜렷이 들려왔다.


  “분신술을 쓸 때에는 그 경험의 차이를 잘 받아들여서 여기까지가 한계인가를 생각했는데, 나와는 달리 전생과의 괴리에 위기상황으로 몰렸다는 이야기구만. 잘 이겨내 보라고. 못이기면 내 손으로 널 처단해야 하니까.”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일어나서 녀석을 때려주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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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긴급구조 SOS에 자주 나오는 소재.
2. 이야기 급진전. 어째 글이 엉망이 되어가는 이 슬픈 상황이란…….
3. 배경 다 깔았으니 이제부터는 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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