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왕 아르셀라 15
15. 모크나의 방문
"으음.."
교단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대공동에는 퀴러스의 셋째 제자이자 현재는 아카시아에게 사로잡혀 정신지배를 받고 있는 불쌍한 다크엘프가 있었다. 그녀는 요즘 성녀가 시킨 의식을 진행하면서도 정신은 몽롱한 상태에서 꿈을 꾸는 일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것은 성녀의 정신지배가 오래 계속됨에 따라 생긴 부작용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에서는 주로 자신의 사랑을 받아준 아르셀라가 나타났다.
"르나누님. 오늘따라 무척 아름다우시군요."
"후훗 자식이 꽤 입발린 말도 할 줄 아네~ 헤헤 이건 상이야."
르나는 듣기좋은말만 하는 아르셀라가 너무 귀여웠다. 그녀는 아르셀라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꼭 껴안고 부벼주었다.
"저 누 누님?"
순진한 아르셀라는 당황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있다. 르나는 활짝 웃으며 아르셀라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으 으으.."
아르셀라의 양 볼이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싫은 기색은 아니다. 그런 그에게 르나는 대담한 요구를 했다.
"이번엔 네 차례야."
"하지만.."
"내 말 안들으면 혼난다~"
르나는 눈을 감고 입을 뾰쪽 내밀었다. 아르셀라는 머뭇거리면서도 천천히 르나에게 자신의 입술을 겹쳐왔다.
쪽 쪼옥. 쩝
아르셀라의 입술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이런 맛있는 입술이 자신만의 것이라니 정말 감동이다.
"....."
"..."
길고 진한 키스를 마친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마주 보낸다. 아르셀라의 가는 손가락이 천천히 르나의 아래로 내려간다. 봉긋한 그녀의 가슴을 지나, 좀 더 은밀하고 소중한 곳으로.. 어느새 르나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새어나온다..
[잘 하고 있구나.]
[아..]
그녀의 망상은 어디선가 들려온 부드러운 음성에 의해 산산히 조각났다. 저 음성이 들려오면 르나의 모든 신경은 그쪽에 집중되게 된다. 이것이 정신지배의 특성인 것이다.
[앞으로 석달, 그 안에 아마겟돈을 시전할 수 있겠구나. 정말 잘했다.]
[감사합니다. 나의 주인님.]
주인의 목소리는 무척 달콤하고 매력적이었다. 르나는 저 목소리에 결코 거부할 수가 없다. 주인님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
[후후 나는 얼마간 모르테스를 멸하기 위해 이 신전을 떠나 있어야 한다. 내가 없어도 의식을 잘 진행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성녀는 르나의 회색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으며 화사하게 웃어보였다.
"그래. 열심히 하거라. 네가 있으니 나는 안심하고 여기를 비울 수 있구나. 큭큭 불쌍한 것 같으니.."
그녀는 자신이 무슨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그녀도 8서클의 마법사이니 어느정도는 짐작하고 있겠지. 인간들을 파멸로 몰아갈 최악의 흑마법 아마겟돈.. 알면서도 그녀는 거부하지 못한다. 그것이 성녀의 무시무시한 정신지배의 위력인 것이다.
"...."
성녀가 대공동을 나서자 르나는 다시 망상으로 돌아왔다. 꿈속에서의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제국의 군대가 빠른속도로 아르셀을 침범해오자 신왕 아르셀라는 그들을 막기위해 전선으로 가야만 했다.
[크으 귀찮아.]
왕궁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잠시 접어둬야 한다는 사실이 그토록 싫을 수가 없다. 전선에는 예쁜 여자도 없지 않은가? 거기다 루스네나 세이키는 전선에 같이 갈 수 없다고 하고..
"왕이 없으면 왕비라도 수도를 지키고 있어야죠."
"세이키는 데려갈 수 없어요! 그 순진한 애를 거친 전장에 데려다 놓고 뭐에 쓰려고요?"
[미친 당연한거 아냐? 내 밤시중은 누가 들라는 거냐?]
결국 아르셀라를 수행하는 여자는 리노 뿐이었다. 다른 시녀라도 은근슬쩍 데려가려고 했는데 루스네가 결사반대 하는 통
에 이것마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지금 리노와 소수의 정예기사를 데리고 국경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에 이것마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지금 리노와 소수의 정예기사를 데리고 국경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하렘왕이 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루스네일지도 몰랐다.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호호 주인님도 참~ 무슨 생각 하시는 거에요?"
"아 그게 루스네말이지. 어떻게 내 말에 확실히 따르도록 조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리노의 물음에 아르셀라는 바로 본심을 털어놨다. 하지만 리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요. 루스네 공주는 정신력이 무척 강한 모양이던데요? 꿈속에 몇번 침입하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어요."
"정신력이 강하면 조교가 안되냐?"
"겉으로는 조교가 되는데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건 힘들죠. 그냥 포기 하세요~"
"하지만 그러면 하렘왕이 될 수 없잖아!"
리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린다.
"후후 100살짜리 어린애가 무슨 하렘왕 타령이에요? 나중에 한 2000살 쯤 먹은 후에나 하렘왕 놀이를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유희도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이죠."
리노는 아르셀라가 드래곤의 유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계약을 맺은것도, 모르테스의 왕이 된 것도 단순한 여흥의 한가지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보통 첫 유희는 500살이 넘어서야 하는건데, 이 애는 조금 빠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야! 100살이 어리냐? 내 어릴적 소꿉 친구들은 벌써 다 노친네들이야. 그리고 뭐 2000살? 그때까지 지겨워서 어떻게 살아? 유희는 또 무슨 헛소리야?"
하지만 아르셀라는 철저하게 인간으로 자랐으므로 그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애당초 그는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특성도 모르고 있었다.
"유희 모르세요? 수천년의 시간을 사는 용들이 따분함을 잊기 위해 인간세상에 내려오는거죠. 각자 직업과 역할을 정해 한순간의 꿈과같이 즐기다 가는 거에요."
"허 참. 할일없는 놈들이군. 나는 그렇게 놀 시간따위 없다. 내 삶은 어디까지나 진지하고 치열한, 불꽃과 같은 것이다. 유희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지."
[주인님은 용이 맞나?]
아르셀라의 사고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의 그것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인간과 가까운.. 참 알수없는 사내다.
"전하! 잠깐 멈춰보십시오! 좀 와보셔야 할 듯 합니다."
아르셀라와 리노가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며 전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다급한 전령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르셀라는 일단 말을 멈추고 전령을 기다렸다.
"무슨 일이냐?"
"헉 헉. 전하! 큰일났습니다. 왕성에 무서운 괴물이 침입해서.."
괴물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좀 차분하게 설명해봐라."
"죄 죄송합니다. 헉.헉"
전령은 잠시 숨을 고르고 상세한 보고를 시작했다.
"전하께서 출병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왕성에 오우거와 비슷한 몬스터가 단신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저희는 전력을 다해 그 괴물을 막았지만.. 너무 강합니다!"
"오우거?"
"완전 괴물입니다! 기사단장님과 궁정마법사님이 직속 부하를 이끌고 괴물을 상대했지만 단 5분만에 모두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루스네 왕비님의 직속 시녀가 단신으로 괴물을 막고 있습니다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어서 오셔야 합니다."
"....."
아르셀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강한 오우거가 있던가? 왕궁에는 무슨 목적으로 침범해 왔지?
"주인님. 어서 가보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아 응."
아르셀라는 말에서 내려 공간전이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성에는 공간전이를 돕기 위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말을 타고 성까지 돌아가느니, 마법진을 그려 한번에 가는게 편하다.
한 5분이나 지났을까? 마법진을 완성한 아르셀라가 혼자 그 위에 올라섰다.
"나 혼자 갔다 오마.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네 주인님. 다녀오세요~"
"부디 무사하십시오 전하."
마법진의 찬란한 빛이 아르셀라의 몸을 감싸왔다. 그리고 잠시 후..
짠
"크윽.."
공간전이는 아주 편하기는 한데 멀미가 좀 나는게 문제다. 전송이 완료되자 아르셀라는 잠시 머리를 짚고 휘청거렸다.
챙겅 챙겅
"쿠어어엉!!"
어디선가 다급한 싸움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확실히 누군가 침범하긴 한것 같다. 아르셀라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급히 몸을 움직였다.
"하아 하아 하아.."
"크르르르"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는 넓은 대전이었다. 그 곳에선 은발의 한 소녀가 양산을 든 채 소녀의 6배는 되보이는 거대한 오우거와 단신으로 상대 하고 있었다.
"세 세이키.."
뒤쪽에서 불안에 떨며 전투를 관망하고 있는 여자는 루스네 왕비였다. 그녀는 몸을 피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간곡한 청을 마다하고 끝까지 세이키와 괴물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르를 어서 아르셀라를 내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죽게 될 것이다."
"흐 흥! 말도안되는 소리. 주인님은 이미 이 장소에 없어!"
세이키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강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저 괴물같은 오우거와 싸우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으으 왜 저리 끔찍하게 생긴 모습인지.. 저 몸에 내 양산을 찔러 넣으면 피가 튀기고 끔찍한 체액이 흘러나오겠지.]
물론 세이키는 흉측한 오우거의 외모 때문에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녀는 무섭게 생긴 생물과는 잘 싸우지를 못했다.
[언니 빨리 도망가! 그래야 나도 도망가지ㅠㅠ]
세이키가 지금 내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루스네 때문이었다. 그녀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내뺐을 것을..
"이봐! 동작그만! 지금 뭣들 하고 있는거야?"
오우거와 소녀의 정체를 확인한 아르셀라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그들을 제지했다. 갑자기 등장한 흑발의 미청년에 오우거와 세이키가 동시에 동작을 멈췄다.
"아르셀라!"
"주 주인님? 어떻게 여기에.."
아르셀라는 급히 둘 사이로 끼어들어 싸움을 뜯어 말렸다.
"어휴 형님도 참. 미리 연락이라도 주고 오시지 이게 무슨 꼴입니까? 세이키 너 형님께 이 무슨 무례냐. 어서 그 양산 집어넣지 못해?"
"에에에? 하 하지만.."
세이키는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저 괴물이 어떻게 주인님의 형님인 건가? 혹시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크하하 아르야. 이거 참 반갑구나!"
오우거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아르셀라의 몸을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아르셀라는 오우거의 괴력에 온 몸이 비명을 질러 왔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오우거를 마주 안았다.
"으.. 혀 형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일단 조 좀 놓고 얘기하시죠."
"흠 흠"
그제서야 오우거는 아르셀라를 품에서 놔 주었다. 아르셀라는 휘청거리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있는 루스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마누라. 어서 술과 안주를 준비하도록. 이분은 내 형님이시다."
"아 그.."
[마누라라니?]
"어허 어서 내오지 못할까?"
"알겠어요 서방님."
루스네는 아르셀라의 성화에 못이겨 대전 뒤쪽으로 후다닥 나갔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세이키 인사해라. 내 형님 모크나시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거야?"
"아.. 안녕하세여.."
세이키는 쭈뼛거리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모크나라고 한 그 오우거는 씨익 웃으며 세이키의 인사를 받았다.
"저 애는 누구지? 실력이 무척 대단하더군."
"뭐 그렇기는 하죠. 제 셋째, 아니 넷째부인입니다."
"에에~ 내가 왜 넷째야?"
아르셀라의 말에 세이키는 울컥했다. 리노, 루스네, 그리고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건가?
"허허허 정말 능력도 좋구나. 하지만 이건 좀 범죄가 아니니.. 뭐 취향이니 내가 뭐라 할 말은 아니지만."
"하하 취향이니 존중해 주시죠.. 가 아니라 저 애가 겉으로는 어려보여도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습니다! 저를 범죄자로 모시다니 이거 참 섭섭합니다."
"그러냐 하하하!"
모크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아르셀라의 어깨를 탁 쳤다. 잠시 후 루스네가 술상을 내오자 자연스럽게 두 남자의 술판이 벌어졌다.
"형님 고향으로 내려가셨다던데 농사는 잘 되십니까?"
"껄껄껄 홍수가 나서 논이 다 쓸려가 버렸다. 하긴 내 주제에 무슨 농사냐.. 요즘은 산짐승을 사냥해서 그럭저럭 먹고 산다. 그나저나 너는 어때? 허허 정말로 왕이 되었구나. 이거 참 대단한데?"
"하하하! 이정도야 뭐 기본이죠. 거기다 아름다운 미녀들도 제 하렘이 넣었습니다. 저쪽에 다소곳이 서있는 절세미인은 바로 제 아내 루스네 공주입니다. 이봐 머해? 이리 와서 형님께 인사드려!"
루스네는 저 오우거가 아르셀라의 형님이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애써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모크나에게 예를 표했다.
"아르셀 왕국의 왕비, 루스네 모르.. 아니 루스네 아르세나입니다."
"오오. 그 대륙 최고의 미녀라는! 이거 참 듣던대로 아름다우시군."
"..."
오우거한테 칭찬받아봐야 전혀 기쁘지 않다. 그보다 루스네는 모크나와 아르셀라의 관계를 알고 싶었다.
"저 그런데.. 서방님과는 무슨 관계시죠?"
"나와 아르는 동문이요. 같은 스승 밑에서 마법을 배웠지."
"같은 스승?"
동문이라, 어쨌든 친 형제는 아니라는 말이군. 루스네는 자신이 했던 끔찍한 상상이 사실이 아니란게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혹시 아르셀라의 정체가 오우거인데 마법을 써서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는..
"뭐 그다지 자랑스런 스승은 아니라서 말이지, 퀴러스 라고 하는 분인데."
"퀴러스요?"
100년전 전 대륙에 침략전쟁을 일으켰다는 무시무시한 흑마법사. 마왕소환에 실패한 후 마력이 다해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하하 그분 이야기는 좀 하지 말죠. 그시절만 생각하면 온 몸에 오한이 돋아서.."
"끄응.."
모크나와 아르셀라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거두고 괜시리 술만 퍼마셨다. 한동안 넓은 대전에 정적이 감돈다.
"그 그런데. 형님은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아르셀라가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애써 화제를 올렸다. 그러자 모크나의 안색이 더욱 흐려졌다.
"그게 말이다. 실은.. 큰형님의 부탁을 받아서."
"트라듀스 형님요? 무슨 부탁인데요?"
"후우 듣고 놀라지나 말거라. 얼마전 형님이 큰 부상을 입고 내 거처에 찾아오셨다. 몇달은 꼼짝도 못하고 요양해야 하는 중상이었다."
트라듀스가 부상이라니.. 순간 아르셀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 대화나누시는 중 죄송하지만, 혹시 트라듀스님이라 함은 상아탑의 수석 마법사이신 그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크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10서클을 바라보는 현 대륙 최강의 마법사지."
루스네는 깜짝 놀랐다. 대체 퀴러스의 제자들은 전부 괴물이란 말인가?
"그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것 같은 분이 어떻게 부상을 당할수가 있죠?"
모크나는 한숨과 함께 얼마전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갔다. 디엘 교단에 귀의한 르나가 행방불명 된 일. 트라듀스가 르나를 구하러 교단에 잠입한 일.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그녀"의 존재..
"말도안돼.. 거짓말이죠?"
아르셀라는 자신의 귀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크나는 고개를 끄덕여 자신의 말에 한점의 거짓도 없음을 증명했다. 모크나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럴리가. 아카시아 성녀가 그런.. 그녀는 제 셋째부인이란 말입니다! 무언가 잘못되었겠지요."
"앗 주인님! 아카시아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내 앞에 끼어든 파렴치한 새치기범이었구나! 대체 왜 그년이 셋째부인이야?!"
한쪽에서 안주나 집어먹으며 혼자 놀고있던 세이키가 아르셀라의 이 발언에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상대해 주는 이가 없자 세이키는 다시 시무룩한 얼굴로 말린 과일에 손을 뻗었다.
"후우 사실이다. 그녀는 트라듀스 형님을 한손으로만 격퇴했으며 8서클의 마법사인 르나에게 정신지배라는 고차원의 마법을 시전한 무서운 마녀다. 형님 말씀으로는.. 그녀가 드래곤일 것이라 하더군."
"드 드래곤이요?! 드래곤이 실존하는 존재였습니까?"
아르셀라는 깜짝 놀랐다. 그는 지난 100년동안 드래곤이란 존재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수천년의 시간을 살며 방대한 지식과 신에 가까운 힘을 축적하는 위대한 마법생물.. 전설속에나 나오는 그것이 바로 드래곤인 것이다. 만약 아카시아가 트라듀르를 격퇴한게 확실하다면 그녀의 정체가 용이라도 되지 않는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응? 무슨 소리 하는거야? 너도 드래곤이면서. 뭐 개체수는 적다고 하지만 대륙을 샅샅이 뒤지면 용들이 다섯마리 이상은 나올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
"...."
아르셀라로부터 약간 거리를 두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던 그의 부인, 루스네왕비는 그녀가 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정리하기 위해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용이라고? 아르셀라가? 자신의 남편이자 모르테스의 왕인 저 남자가 인간이 아니라고?
"꺄아아악!!"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루스네는 비명을 지르며 그자리에 혼절하고 말았다. 자신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순결을 잃고.. 매일 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능욕당했으며, 심지어 그의.. 까지
"어 언니? 왜그래!"
세이키가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지만 이미 루스네는 의식을 잃은 후였다. 아르셀라는 루스네가 갑자기 기절하자 무척 당황했지만 세이키에게 그녀를 방으로 옮기라고 지시한 후 다시 모크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그녀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다.
"후우.. 드래곤이라니. 그럼 저보다 강하겠군요. 아니 트라듀스 형님을 이겼다니 당연한 건가?"
"그렇겠지."
"잠깐.. 그렇다면 형님이 제 성에 온이유는, 르나 누님을 구하러 가기 위해 저의 조력을 얻기 위함입니까?"
아르셀라는 모크나가 자신과 함께 르나를 구하러 갈것을 부탁하기 위해 왕궁에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반쯤 들어맞았다.
"아니. 네가 교단에 갈 필요는 없다. 내가 너와 전선에 같이 가면 되니까."
"네? 형님이 왜.."
모크나는 침착한 어조로 아르셀라가 들으면 기절할만할 사실을 털어놓았다.
"제국의 군대에 교단에서 파견한 신관이 성녀 아카시아라더군. 즉 모르테스를 침략해 오는 적이 바로 아카시아라는거다. 그러니 내가 너와 함께 전장에 가서 아카시아를.."
"마 마말도안돼! 아카시아가 쳐들어 온다구요? 트라듀스 형님을 한손으로 이긴 그 미친 괴물 드래곤을 내가 상대해야 한다고?!"
"응? 당연한거 아니냐. 너 혼자서는 힘들테니 내가 도와주겠다. 우리가 아카시아를 격퇴하면 자연히 르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르셀라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비명을 질러댄다. 모크나의 말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것이냐면, 쉽게말해 자신과 모크나가 힘을 합쳐도 트라듀스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트라듀스는 아카시아가 한손으로 싸워 간단히 이겼다. 그러면
아카시아>>>트라듀스>>>아르셀라+모크나
이런 간단한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가? 여기서 트라듀스를 빼면
아카시아>>>>>>아르셀라+모크나
"형님. 제정신입니까? 우리가 힘을 합쳐도 트라듀스 형님을 못이길 텐데 그 트라듀스 형님을 이긴 아카시아를 상대하자고요?"
"임마! 그럼 르나를 저리 놔두란 말이냐?"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자신의 사저를 그냥 아카시아의 손에 놔 둘수는 없었다. 자칫 그녀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아르셀라는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교단에 귀의한건 자신의 책임이 무척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저는 사실 혼자서 제국의 군대를 막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르셀에는 변변한 군사들도 없거든요."
"어차피 전쟁의 양상은 아카시아와 우리 둘의 대결로 좁혀질 것이다. 이미 군사의 숫자는 의미가 없어."
"크윽.."
아르셀라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허접한 제국의 군대만 막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이건 너무하다.
"형님.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둘만으로는 절대 그런 무시무시한 마녀를 이길 수 없습니다. 트라듀스형님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셋이서 협공해야 합니다."
"이봐. 큰형님이 회복하려면 거의 6개월은 넘게 기다려야한다. 그동안 르나가 무슨일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더군다나 정신지배마법은 부작용이 무척 큰 걸로 알고있다. 한시라도 바삐 르나를 구해야해."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 우리마저 아카시아에게 패하면 모든건 끝장이 아닙니까?"
"어차피 제국의 군대를 막으러 갈 거잖아. 여기서 도망치면 애써 손에 넣은 너의 나라가 제국의 군화발에 짓밟히게 된다."
"그건 그렇지만.. 큭. 이길 수가 없다구요!"
자꾸 아르셀라가 약한 소리를 하자 모크나의 눈썹이 크게 일그러졋다.
"네가 도망치려고 하면, 이 자리에서 내가 너를 박살내겠다!"
"윽.."
모크나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아르셀라는 그 지독한 살기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잠깐! 주인님을 해치려는 사람은 제가 용서 못해요!"
마침 타이밍 좋게 돌아온 세이키가 주인의 위기를 보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세이키는 모크나의 살기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듯 그 못지않은 투기를 내뿜으며 똑바로 모크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크나는 그녀에게 잠시 시선을 준 후 자신의 살기를 거두었다.
"마침 잘 됬구나. 너의 넷째부인까지 같이 가면 승산은 충분하다. 저 아이는 나 못지않게 강하더구나. 거기다 놀랍게도 절대마법면역체 인 듯 하고. 여러 실험을 거쳐 피부를 강화한 나조차 100% 마법면역이 아닌데 말이지."
"윽 세이키가 뭐가 강해요."
"최소한 겁에 질려 싸우지도 않고 빌빌되는 너보다는 낫지. 너 남자 맞냐? 저 조그만 꼬마애 치마폭에 싸여 징징대기나 하니.."
"..."
모크나의 말은 아르셀라의 자존심을 아프게 건들어 놓았다. 결국 아르셀라는 아카시아와 맞서 싸우자는 모크나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제길 형님은 몰라. 세이키가 합류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다고!]
사실 아르셀라가 아카시아를 두려워 하는 이유는 그녀가 10서클의 마법사라느니, 트라듀스를 한손으로 물리쳤다느니 하는 모크나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중요한건, 아카시아가 드래곤이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용의 본능이 발한 다급한 경고였다. 그녀는 위험하다. 특히 아르셀라는 아무리 해도 절대 그녀를 이길 수 없다. 그런 확신같은 예감이 가슴속에 떠오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 후였다. 이제 전력을 다해 아카시아를 물리치는 수 밖에 없었다.
[흐흐 그래. 이기면 혹시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흐흐 그러면 그녀를 조교해서 내 하렘에 넣는거야. 흐흐 참 기쁘다. 대륙 최고의 미녀 둘이 내 하렘에 있네.. 흐흐ㅠ]
아르셀라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어 보았지만, 자포자기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망했다.
*완결이 가까워 오니 h신이 줄어드네요.. 그래도 앞으로 몇번 더 나올 예정입니다.
등장인물 소개 2
트라듀스 다슈타인
하프엘프 204살. 퀴러스의 모든 진전을 이은 수제자. 마법은 9서클의 마스터. 네 제자중 제일 강한 큰형입니다. 그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괴팍하고 음흉한 성격이지만 자신의 사제들을 알게 모르게 꽤나 아낍니다. 현 대륙 최강의 마법사. 물론 드래곤들은 빼고요.
모크나
오우거 키메라 187살. 퀴러스의 실험체였으나 오우거 치고 높은 지성과 마법에 대한 재능이 있어 그의 제자가 됩니다. 여러 생체 실험을 거쳐 산을 부수는 엄청난 괴력과 마법에 대한 높은 저항력, 높은 재생능력을 갖췄습니다. 마법은 5서클 정도. 소드 마스터를 뛰어넘는 강력한 체술을 지녔기에 근접전에서 모크나와 대적이 가능한 이는 전 대륙을 통틀어도 둘이나 셋 정도 입니다. 그중 한명이 세이키구요.
르나 세네일
다크엘프 112살. 암갈색 머리카락에 회색 피부. 균형잡힌 아름다운 몸매를 갖춘 미녀. 퀴러스의 네 제자중 셋째이자 그의 손녀. 하지만 르나 자신은 그녀가 퀴러스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모르죠. 마법은 8서클 정도, 네 제자중 제일 약합니다. 자신의 사제 아르셀라를 속으로 아주 좋아하지만 결국 그에게 차인 아픈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퀴러스 레밀턴
인간. 향년 311세. 10서클의 마법을 마스터한 전무후무한 천재 마법사. 전성기의 퀴러스는 아카시아와 싸워도 대등할 정도의 힘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이미 죽었으니 앞으로 등장할 일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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