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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티렉스 24

<바람>
 


두근 두근



잠들어 있는 언니의 발바닥에 손을 뻗쳐 검지손가락을 놀려보려고 하는 미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그녀의 손동작이며, 누워 있는 누나의 아름다운 맨발 등에 온 신경과 시선을 모으고  있는 애들은, 모두 그렇게, 콩닥콩닥 거리는 심정으로 이제부터 일어날 사태에 온갖 상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애들은 미정의 손동작을 끝까지 볼수는 없었다.


 


스륵


 


"?"


 


미정은 순간, 자신의 시야에서 언니의 발바닥이 사라져버렸다고 느꼈다. 아니,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발바닥은 물론이고, 종아리도, 허벅지도, 누워 있던 언니의 신체 중 그 어떤 부분도,  어느새 자신의 시야에서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신기루처럼, 좀전까지 시야에 잡혀 있던 그 모든 광경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종적을 감추었다.


 


"뭐지?"
 


미정은 어리둥절해서, 뒤쪽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화라락~



"? 꺅!!"


 


미정은 처음엔 뭐가 뭔지 몰라 멀뚱대다 낮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도 그럴것이, 갑자기 이불이 화라락 펼쳐지며, 마치 그물처럼, 자신에게 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미정은, 이불에 생명력이 있다고 느껴질정도의 착각을 받았다.


 


"미정아!!"



성주와 정찬, 그리고 친구들은 놀라서 역시 비명을 내질렀다. 자기들도 당혹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분명 같이 보고 있었는데, 침대에 누워 가지런하게 다리를 뻗고 잠들어 있던 여인의 모양새가, 순식간에 바뀌더니 이불과 동화되어 숨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불이 퍼드득 하고 통째로 날아오르더니 미정을 덮치려 하질 않는가.
 


그래서 다들 비명을 질렀지만...사실 상황은 자신들이 더 급박하다는 것을 그들은 아직까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야~!!"


 


미정은 놀래서 몸을 웅크리기만 하고 꼼짝도 못하겠는듯 그대로 굳어버린채 고개를 자라목처럼 쏙 하고 숨겨버렸다.
 


이불은, 미정 정도는 순식간에 먹어치울수 있는 먹잇감이라는 듯이 낼름 그녀를 삼켜버렸다.


 
"!! 미..미정아!!..."



애들은 놀라서 이젠 보고만 있을 순 없는 듯, 이불 덩어리에 잠식되어 버린 미정이에게 달려가면서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허락도 없이 불쑥 들어 오다니....배짱 한번 좋은 녀석들이구나?... 각오들은 되어 있겠지?"


 


"...아....."


 


이불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방안에 감돌자, 애들은 달려가려던 움직임을 덜컥 멈추곤, 마치 얼음덩어리라도 되어버린 듯 그 자리에서 다들 발이라도 굳은 것처럼 감히 한 발짝도 떼어놓을 생각을 못했다.


 


왜냐하면, 이불 속에서 들려오는 저 목소리는.. 너무나 으시시했고,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싹한 느낌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피부에 전기가 찌릿 하고 전신을 휘돌만큼.



딴 애들은 그렇다 치고, 정찬이 조차, 누나의 이런 목소리나 분위기는 처음 대해보는지라 무섭기 그지없는건 마찬가지였다.


 


"저...누...."


 


누나 하고 불러보려던 정찬.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불이 다시 화라락 하고 퍼득였기 때문이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새가 홰를 치면 주변에 바람이 일 정도라고 한다.


 


정찬은, 성주는, 그리고 애들은, 일순간,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바람이...방안에서 솟구쳐 사방으로 이는 것을..


 


부아아아~~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시야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아이들의 동체시력으로는, 그리고 설령 어른이라 할지라도, 일반인이 그런 움직임을 시야에 온전히 담아낸다는건 불가능한게 당연하다고 여겨질법한 동선을 그 누나는 그려내고 있었다.


 


다만 시야에 어렴풋이나마 담기는건, 매끄럽기 그지없어 보이는, 적빛이 아스라히 서려 있는 살색 피부, 그리고 생명력을 머금은 듯, 뱀처럼 기민하게 지그재그의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검은 색의 이불.



방 안에 있는 남자애들 넷의 시야에는, 오로지 그 두가지 색깔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 보여졌고.....그 이불은 순식간에, 바람처럼 내달려 그들을 휘몰았고.... 바람이 들렸다 간 곳에 서 있던 남자애는 어김없이 의식을 잃은 표정을 얼굴에 띄었다.


 


휘리릭~


 


결코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이 방안을 휘돌던 그 바람은, 남자애들 넷한테 그렇게 한번 다녀간 후에 침대에 돌아왔다. 그리곤...다시 침대 위에 그 존재를 안착시켰다. 그때서야...


 


털썩


털썩


 


거리면서...남자애들이 기절한채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흐음.....큭...."


 


이불을 몸에 휘감은채, 자신이 방안에서 펼쳐놓은 정경을 재미있는듯이 바라보던 그녀, 강희는 입가에 슬쩍 웃음을 머금었다가, 침대에서 엎드린 채 고개숙이고 있는 여자애한테 슬쩍 다가갔다.


 


톡톡


 


여자애의 둥근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그렇게 살짝 매만지면서, 강희는 여자애가 자신을 보길 기다렸다.



남자애들관 달리 이 여자애는 기절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여자애는 상대가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대자, 두려우면서도 놀란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시선에 잔뜩 들어오는,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


 


"....저...저..."


 


미정은 오들오들 떨면서, 언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왜냐하면, 언니의 표정은 확실히 약간 화가 나 있는 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애가 벌벌 떨면서 말을 더듬거리는데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듯, 짐짓 화난 표정으로, 그녀는 물었다.
 


"너흰 누구야? 무슨 일로 왔지? 상부에서 날 없애라고 지시했나?"



"....에?"


 
갑자기 이건 무슨 소리인가. 자신을 없애러 온거냐니. 미정은 순간 이해못하고선, 고개를 갸우뚱 하고 언니를 바라보았다.



"아..아뇨 언니...그게 아니고...요"



강희는 여자애가 채 다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몰아붙였다.



"그게 아니면? 뭐지? 그렇군!! 우리집 물건을 가져가려고 왔구나!! 그런거지?!"


 
여자애는 눈가에 점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몰아붙이면서 매서운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언니. 춘리 언니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기에.



"아..아뇨...아니에요.."



여자애가 점점 겁먹은 기색을 많이 띄어가자....엄한 표정으로 여자애를 내려다보던 강희는, 갑자기 입꼬리를 말아올리면서 외쳤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녀석들!! 얼마나 가져가려고 이렇게 많이 온거지? 하나 둘... 하아~? 세상에...다섯이나? 내집에 가져갈게 뭐 있다고~~!! 요 깜찍한 것들 같으니!! 안되겠어! 이건 그냥 못 넘겨!! 오늘!!  혼날줄 알아~! 알았어?!"



"...으.. 으..."



여자애는 완전 쫄아가지곤 이젠 덜덜 떨면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다시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강희가 말했다.
 


"사내녀석들은 괘씸해서 꿀밤 한대씩 먹였더니 다 기절해버렸는데....넌 너무 귀엽게 생겼단 말씀이야? 도저히 꿀밤을 먹일수 있는 이마는 아니야. 대신! 너에겐 다른 벌이 있어. 니 친구들도 모두 기절해버린 마당이니, 니가 대표해서 벌을 받아야 해. 그러니 포기하고 얌전히 굴어. 알겠어?!"



미정은 , 처음엔 자기는 손 못대겠다고  여자가 말하자 속으론 휴우..하고 안심했는데, 듣고 보니 자기에게도 엄벌이 있을 모양이다. 더군다나, 친구들은 모두 기절해버렸다는 이유로, 자신이 대표로 그 벌을 받아야 한다니...


 


미정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려 했다. 여자는 미정의 눈가에 눈물이 잔뜩 고이려 하자, 더는 지체 못하겠다는 듯, 짐짓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리 와!!"



"꺄악!! 으으..."


 


상대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언니. 자기가 아무리 반항해도 도망 못칠 것은 뻔한 이치. 미정은 비명을 올리면서, 모든걸 포기하고 반항할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휘리릭~



파바박



여자는, 자신이 몸에 두르고 있던 이불을 순식간에 풀어 여자애를 돌돌 말아 마치 미이라같은 모양이 되어버리게 한 후에, 침대에 눕혀놨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찌나 손동작이 재빠른지, 미정은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엄마!!"



미정은 놀라고 무서워서, 엄마를 찾으며 오들오들 떨었다. 미정이 그러고 있는 사이, 여자는 장농을 열어 속옷이며 의복을 몸에 걸치고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흥얼거리더니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젠 벌을 받아야겠지?"



벌받을 시간이란 말에 미정은 눈까지 꽉 감고 속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계속 오들오들거리고 있는데...







"? 에?"



갑자기 자신의 발이 시원해졌다고 미정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생각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는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왜냐면, 자신의 고사리같이 작은 맨발바닥에, 부드러운 손가락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질간질
 


"으헤헷?!! 꺄아악!! 으히히히히히~~~!!! 아하하하하핫!!"



너무나 순식간의 간지럼 세례였기에, 미처 마음의 준비도, 그 어떤 대비도 안 되어 있었던 미정이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웃음보였다.  그녀는 언니에게, 언니, 갑자기 왜 이러세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언니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기회조차 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간질간질 간질
 


"아흐흑!! 으헤헤헤헤!! 꺄으으흐흐흐~~!! 으히히힉!!~~"



미정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혔었던 눈물은 어느새 다 날아가고, 언니에 의해 유발되어지는 웃음으로 인해, 그리고 간지럼 당하면서 느껴지는 신체의 반응으로 인해, 뇌에서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으히히힛~~!! 가, 간지러워요오하하하하하~!!! 이히히히히히~!!!"



미정은 발가락을 오므리면서 상대의 손놀림에서 도망쳐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불에 의해 돌돌 말려 누에고치처럼 되어버린 자신의 몸.


 


발목만 드러나지게끔 되어 있었고, 자신의 몸은, 언니가 한 손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는데, 그 한 손의 힘만으로도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감당할수 없을만한 힘인듯하다. 전혀 꼼짝을 못할 판이니.



미정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여자는 입가에 미소를 걸며 여상스런 어조로 말했다.


 
"친구들 대표해서 혼난다고 생각하고, 그냥 웃기나 해. 요 깜찍한 것아. 후훗~!!"



간질간질



"꺄하학!! 으히힛~ 아후후흐흐~!!!"



그렇게 몇분동안, 귀여운 목소리의 여자애가, 카랑카랑한 웃음소리로 연신 웃어제꼈고, 방안에 웃음소리가 그렇게 가득 매워지는데도,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어줄 이는, 그녀를 간지럽히는 여자, 그녀 한명뿐이었다. 나머지 애들은 듣고 싶어도 기절을 해버렸으니....


 


 


 



<후유증>
 


20분 뒤


 


"...그래서...화 안난거죠?"


 


애들을 대표해서, 누나의 눈치를 슬며시 봐가며 정찬이 그렇게 물었고, 그녀는 생글거리는 웃음을 얼굴에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엄~ 전혀!! 화 안났어. 누나가 그냥...너희가 하도 귀여워서, 장난 좀 쳐본거야. 쿡쿡..."


 


강희는 미정이를 딱 5분정도 간지럽힌 후에, 더 이상 하면 간지럽혀도 미정이가 울 듯하자, 손동작을 멈추었고, 그녀를 잘 달랜 다음 애들을 모두 침대에 눕혀놓은 후에, 그들이 깨길 기다렸고, 몇분 뒤에 남자애들이 모두 깨어나자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참이었다.



애들은 아직도 강희가 화나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강희는 조금도 화나지 않았다.


 


강희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좋아했다. 그 고사리같은 손 하며 발 하며, 작은 입 하며 눈 코 귀 하며...어떠한 것도 작고, 어떠한 걸 해도 귀엽게만 보일 나이를 가진 이들. 젊음이라는 단어 자체도 이들 앞에선 나이들어 보인다. 젊음은 20대들에게 쓰기 적합하기에..


 


정찬이와 아이들이, 강희의 집에 들어섰을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정말로, 그들이 온것을 몰랐다.



강희는 잠이 들면 꽤나 깊이 드는 타입이었고, 특히나 오늘은 더욱 더 그랬다. 왜냐하면, 요새 들어, 근심이 자꾸 깃들고 몸속에 도사리고 있어서이다.


 
여왕의 저택에 있을 때, 그녀는 2차 경계식에 든 적이 있다.


 
아마 절대로, 다시는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조차 자포자기하고 발동했었던건데, 친구의 도움으로 그 늪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다. 정말 천행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그때, 자신이 경계식에서 빠져 나온건 다행이지만, 예상대로 후유증이 남았다.


 
그녀의 친구도 그것을 염려하여, 그녀 자신이 헤쳐나오게끔 할 정도로 신경을 써주었지만, 역시나 후유증을 피할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경계식에 두번이나 들고도 이정도의 상태로 현실에 귀환할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적적인 일이지만,  경계식이라는게 심층 내에 존재한다는것 자체가, 그녀의 정신이 언제든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불안정한 요소를 띄고 있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경계식은, 6살 때 그 날 이후부터 자신의 감정 속에 자라나기 시작한 어둠의 식이다. 지금 자신의 나이 열여덟.  10년 하고도 2년 가량, 그 어둠의 문은 아직도 자신의 감정 속에 내재되어 있다.



현재까지 살아온 인생의 3분의 2 가량동안 존재해 왔던 그 침식적인 마음이, 그렇게 쉽사리 깨질리가 없다.



경계식은 그녀의 트라우마인 것이다. 완벽한 구속자를 만나지 못하는 이상, 이놈의 불안요소를 떼어낼, 제거할 자신이 없다.



2차 경계식 이후로, 감정의 기복이 더욱더 심해졌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요새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기가 두렵다. 티비에서 자신의 시야에 비치는 사람들 중, 약자를 괴롭히면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  힘없는 이의 육신을 걷어차고 욕보이는 이들, 돈 좀 있다고 생명을 우습게 아는 이들 등이 눈가에 들어오면...


 


주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팔이, 다리가...부들 부들 떨리기 때문이다.


 


느끼고 있다. 자각되어지고 있다.


 



<죽이고싶다>



<살 필요가 없는 놈들>


 
<죽여야만 한다>


 



살의....순수한 살심. 상대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런 인성조차 인정해주고 싶지 않을만큼, 요새의 자신은... 생각한다.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모조리...



<없애버리고 싶다>


 
라고..


 


하지만 그녀는 고민한다. 위의 경우도, 진정 자신이 주체할수 없는 심리상태일때이다. 평소때는 차분한 맛을 오히려 즐기고자 하는 자신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고민한다.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니면 경계식에 드는 것인데, 그 어떤 경우라 해도 주변 인물들의 슬픔을 피할 수 없다.



강희는, 자긴 아무래도 좋지만, 자기가 죽어버리면 눈물을 흘릴 부모님, 그리고 아는 지인들이 신경이 쓰여 도무지 그것은 결행을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자신의 친구도 말했었다. 자기 자신도 이겨내지 못하면서, 그러면서 무슨 <완벽한 구속>을 찾고 있냐고.



그리고...아무리 이러니 저러니 해도, 죄를 짓는 그들. 그들은 분명 인간인 것이다. 사람인 것이다. 법이 그들을 심판해야지 자신이 싫다고 해서 그들을 죽여도 된다는 권리는 말이 안된다는걸 그녀도 알고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격동이 치솟으면 그것이 안되니...


 


심리 상태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이런 자신에게, 이런 모습의 그녀에게, 온기를, 따스함을, 즐거움을 주는 이들이 있다.
 


어린아이들.



그들은 순수하고, 때묻지 않았으며,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리고 귀엽다.
 


세상의 온갖 것이 그들에겐 신기해 보일 나이이고, 어린 나이인만큼, 무엇이든 할수 있을 나이이다. 그 애가 커서 무엇이 될지, 어떤 존재가 될지 그 누구도 점칠 수 없다. 어린 아이이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트여 있기에.


 


그래서 그녀는 사랑한다. 좋아 한다. 아낀다.



아이들을.



그들은 분명...지켜 주고 싶은 존재이니까.....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그들의 과장된 대사, 행동 등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미소가 입가에 감돈다.
 


좀전의 행동만 해도.... 그녀는 정말이지, 웃음을 참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여자애가 침대 위에 올라 와, 이불보를 들출 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정말 잠들어 있었다. 경계식이며, 완벽한 구속자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던 차라, 머리가 복잡해지는것을 견디지 못한 자신은 잠을 청했고,  그 잠은 독약과도 같이 깊은 잠을 자신에게 선사했다.



하지만....청각이나 후각, 시각, 미각같은 감각들은 깊은 잠에 떨어져 못 느낀다 해도, 직접적으로 와닿는, 자신의 맨살결이 어루만져지는, 촉각이 자극받는 그 시점에서, 그녀는 눈을 안 뜰래야 안 뜰수가 없었다.



자신의 살결을 만지는 체온이며 손동작이, 너무나 따스했고, 보드라웠으며, 만지작 거리는 품새가 어린아이의 동작일 것이라 지레 짐작이 되었었고...



그녀는 눈꺼풀을 슬쩍 들어보았었다. 침대에 있는 아이까지 해서, 그리고 아는 아이, 정찬이까지 해서 총 다섯명의 아이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다리에 시선을 쏟아 붓고 있는것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고 말았던 것이다.



뭘 하고 싶은건진 모르겠지만, 궁금증이 가득 담긴 표정들, 자신이 잠든 틈을 타 몰래 하는건 확실한듯 하고, 그렇기에 그 눈동자들은 하염없이 떨리고 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수 없다는 듯, 호기심이 넘치는 눈동자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걸까..하고 들어보니.... 나누는 대화 내용들도 유쾌하고 재미있기 그지없다.



자신이 정말 춘리인줄로 아는 아이들. 그리고 여자애를 시켜 자기 다리를 만져봐달라고 하는 애의 부탁. 종내에는, 간지럼을 태워봐달라고, 타는지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 시점에, 그녀는 더 이상 이러고 있다간, 발바닥에 간지럼을 당하던 안 당하던 폭소가 터지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그 시점에서, 이 개구장이들을 상대로 장난을 좀 쳐볼까 하는 결론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애초에 조금도 화난 감정 없이, 기분 상한 일 없이 시작한 장난이다. 벌벌 떠는 아이들의 모습에 그녀는 진정 유쾌했고, 미소가 지어졌으며, 여자아이의 웃음소리는 그녀를 참으로 즐겁게 해주었다. 덕분에...잠들기 전에 있었던 더러운 기분들은 일단 해소된듯 하다. 적어도 당장의 것들은....
 


어쨌건, 강희는 사태 수습에 나섰고, 아이들을, 특히 여자아이를 부드럽게 달래면서 이름을 물었고, 미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자, 상냥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여자애의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어주었다.



"자자~, 이젠 알았지? 언니는 조금도 화 안났어. 장난 친 거래두? 오히려 찬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줘서 참 기쁜걸? 고맙다 찬아. 후훗~"


 
누나가 생글거리며 웃음짓는 미소를 던져주자, 정찬은 정말로 누나가 장난식으로 그랬다는걸 알고선 안심했다. 아이들 역시 안심한 후에, 그들 다섯은 입을 모아 일제히 외쳤다.



"무서웠어요~!!"



강희는 어깨를 으쓱 하면서 피식 웃을 뿐이었다.


 
 


 



쭈르륵~~



냉장고를 열어 오렌지 쥬스를 꺼내든 후에, 자신에게 찾아든 다섯 명의 꼬마 손님들에게 한잔씩의 컵을 건네, 손수 쥬스를 따라주면서 강희는 찬을 보며 물었다.



"미안해. 누나가 기다린다는게...아까 기분이 좀 그래서 그냥 자버렸단다. 찬이가 많이 당황했겠어"



정찬은 누나가 따라준 쥬스를 한모금 들이킨 후에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근데 누나. 궁금한게 있어요"



"응?"



강희가 정찬을 빤히 바라보자, 그는 곧바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문이요. 왜 안잠가놓고 잤어요? 위험하잖아요?"


 


강희는, 멀뚱멀뚱 정찬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거? 일부러 그런건데?"


 


"네에?"


 


찬이는 인상을 썼고 다른 애들도 이해할수 없단 반응이었다.


 


이번엔 미정이가 질문을 했다.



 


"일부러 그랬다구요? 그러다가..도둑이라도 들면 어떻게 하려구요. 언니가 세다지만...자고 있을때 덮치면..."



 


강희가 정말로 걱정스러운지, 그녀는 그렇게 물었고, 강희는 피식 웃은 후에 미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글쎄다..그건 그때지. 그리고...일부러 그랬다기보단...신경을 안 쓴거야. 난 문단속에 별로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성격이 아니거든. 찬이 너는 알지 않니? 니가 벨 누른 후에 내가 열어주면서, 문 따는 소리 들은 적 있어?"


 


정찬은 잠시 음..하고 생각해보다  놀랍다는 듯이, 과거를 되새기는 듯한 표정이다가 강희를 보며 외쳤다.


 


"생각해보니...항상 곧바로 열어줬죠!!"


 


강희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말했다.


 



"그래. 맞아. 안 잠겨 있었지. 물론 항상 그런다는건 아니지만...생각나면 잠그고..안잠겨 있으면 말고...그런 수준..정도라고 해둘까나?"


 



강희의 그런 생활방식이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이번엔 모든 애들이 입을 모아 그녀에게 물었다.


 


"왜..그러는거에요?"


 


강희는 씨익 하고 웃더니, 정찬을 보면서 말했다.


 



"도둑이 들수도 있으니깐!!"


 


 
"아..하...."



 


정찬이며 애들은 모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 누나 말대로라면(미정에겐 언니) 마치 도둑이 들어도 상관 없다는 듯한 말투잖은가.



 


정말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이번엔 성주가 물었다.


 



"그..그러다 큰일나요~!! 앞으론 꼭 잠궈야돼요 누나!! "



 


강희는 성주를 보며 배시시 웃다가, 그에게 말했다.



 


"상관 없어 뭐! ..음...도둑이 들면....나를 묶은 후에...이것저것을 물을거 아니겠니? 통장은 어디에 있는지...금품을 어디다 박아놨는지..등등을 말야. 그렇겠지?"


 



"그..그거야..."



 


그거야 당연한 말이니까, 성주와 애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희는, 생글거리더니 말했다.



 


"그러자면...보통 도둑은 흉기류로 집주인을 위협하면서 결박을 하지. 만약 집주인이 잠들어 있다면 바로 제압에 들어갈수도 있을테고. 아무튼....알아낼것도 있고 하니, 보통은 결박을 할거란 말야. 묶을거란 말이지. 주인을 먼저 제압해놓아야만 일하기도 쉬워질테고. 훗"



 


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미정이 물었다.



 


"그런데요?"



 


강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상황이란 말이지. 도둑 중에, 결박에 뛰어난 사람이 어쩌면 있을지도 몰라. 나를 묶을 수 있는 실력자가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지!! 난 그런!! Bondage의 프로페셔널이 있을까 하고 기대를 걸어보는거란 말이지~!!"



 


".............."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정신없이 영어에 알아듣지 못할 용어까지 막 써가면서 열을 불태우는 언니의 반응을, 미정은 당연 이해할수 없었기에, 침묵할수밖에 없었다. 다른 애들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정찬만은 유독, 결박에 많이 집착하는 이 누나의 성향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그럼 누나는...도둑 중에서도...누나를 묶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거에요?"


 



강희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어~!! 그렇지 바로. 역시 정찬이는 이 누나의 말을 바로 알아들어주는구나. 흐흥~ 그게 바로 내 말의 핵심이지!!"



 


애들은 일제히 정찬에게 눈길을 돌렸다. 성주가 정찬에게 묻는다.



 


"야..그러니깐....도둑이 들어와서...누나를 묶어주는 상황이 오길...바란다는거야? 누나 스스로?..."



 


정찬은 뒷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어어...이 누나는....그....자길 묶을 수 있는 사람을...찾는 중이거든?"



 


애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묶어..줄수 있는 사람?"



 


정찬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이어 말했다.



 


"응...암튼....내가 누나랑 알게 된 것도..그리고 누나 집에 들리는 것도...다....묶는것하고 관련 있어...누나 집에선...항상 누나를 묶어줘"



 


"헤에..."



 


애들은 정찬의 말을 넋놓은 듯한 표정으로 듣다가, 다시 일제히 강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성주가 물었다.



 


"묶이고..싶으세요?"



 


강희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성주를 위시한, 아이들을 쭈욱 둘러보다가, 자신의 의지를, 결의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진중하게 말했다.



 


"물론. 난...그래야만 해. 나를...이 나를 묶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이 누나에겐 있단다. 꼬마야"



 


이번엔 미정이 물었다.



 


"왜요?"


 



강희는 대답했다. 서글프게 웃으면서.


 



"그래야....좋거든.....나에게..그리고...모두에게...."



 


".............."



 


그녀의 표정이 하도 서글프고, 어두워 보여, 아이들은 감히, 이 이상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일순간 시리어스해진 일면을 보인 자신때문에, 아이들까지 분위기에 휩쓸리는 듯하자, 핫!! 하고 정신을 차린 강희는, 침대쪽으로 갔다.



 




 


찰그럭



 


침대의 베개 밑에 그녀가 손을 넣고 꺼내든 것은, 은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수갑.



 


그녀는 그걸 검은색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장농을 뒤져 상의에 걸칠 의류를 뒤지기 시작하면서, 정찬에게 물었다.



 


"찬아. 열쇠 너한테 있지?"



 


어딜 갈 채비를 하는듯한 동작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정찬은 대답했다.



 


"네..근데..어디 가게요 누나?"



 


농에서, 블랙 일색의 가죽 재킷을 두른채 여자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면서 애들에게 다가와, 그들 모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씨익 웃더니 말했다.
 


 


"생각해보니 누나가 장난이 좀 심했던 것 같아서말야. 손님 대접이 엉망이었지? 나가자. 찬이가 친구들 데리고 누나 집에 방문해준 기념비적인 날인데. 밥을 먹던지 뭘 하던지, 저녁은 누나가 책임질께~"
 


 


남자애들은, 예쁜 누나가 저녁 시간 내내 같이 놀아준다고 하니, 좋아서 왁왁거렸다.



 


미정이는 눈을 또록또록 굴리면서 언니의 눈치만 보았다.



 


강희는 재빨리 미정의 가방을 챙겨 등에 둘러준 후에 그녀를 안아올리고 등에 업으면서 말했다.



 


"자~ 나가자~!!"



 


강희에게 업힌 미정을 부러운 시선으로 남자애들이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성주가 외쳤다.



 


"미정이 말고 저 업어주면 안되요?~"



 


강희는 피식 웃더니 왼손으로 성주의 이마에 알밤을 한대 먹이면서 말했다.


 



"너에겐 튼튼한 다리가 있잖아~!!  그리고  미정이가 제일 귀엽고!!"



 


"헤헤~"



 


강희의 말을 들은 미정은 좋아가지고 생글거리며 강희의 등에 꼭 붙어 왔다.
 


 


남자애들은 잠시 시무룩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런 판타스틱한 누나하고의 데이트라니.


 



애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서면서, 강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텐데.....너희들을 통해서 힘을 얻어보고 싶구나....."



 


그녀의 무거운 마음을 알리 없는 애들은, 그저, 마냥 좋다면서 미정을 업은 강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강희는, 슬슬 해가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키득였다.


 



"그 녀석도 나하고 데이트는 한번도 못해봤는데...."



 


꼬마애들에게 선수 뺏긴 것을 혹여라도 그가 알게 된다면.......


 


 


"볼만하겠어 정말...킥킥~....."


 


 


아끼는 후배를 머릿속에 그려넣으면서, 그렇게 강희는 입가에 미소를 맺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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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때 댓글 주신 분들께 감사를...그나저나 춘리 여사의 인기가 그렇게 좋을줄은 미처 몰랐네요. 하긴..다들 성인이시니 왕년에 오락실에서 전설의  대전격투액션게임의 대선배격이랄수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안해보신 분들은 상당히 드물긴 하겠죠. 춘리는 초기멤버인데다가 당시에만 해도 홍일점 격인 여캐였으니..

 

저도 춘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그렇게 연신 언급해댔던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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