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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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은 공포의 시간이다. 불을 발견한 인류는 그 공포의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시간으로 바꾸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 공포도 씻어내는 데에 어느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밤은 공포의 시간이다. 특히 자신감이 없는 남자라거나 나 같은 사람은 말이다.
“다, 다가오지 마세요.”
“누가 잡아먹는다고 그래? 일단 이론상으로는 확실하게 깨우쳤다고 자부하니까. 거부하지 말라구. 후훗.”
“우, 우리는 이러면 안되는 사이잖아요.”
“흐응. 다른 언니들에게도 이렇고 저런(……)일을 해버렸으면서, 빼기는.”
밤이 무섭다. 이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반항도 해보지만. 결국은 잡혀서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당하는 입장에 있으니 당연하다.
“누나 못 믿어? 괜찮아. 안 잡아 먹어.”
“그, 그게 아니라. 사람 말 좀 들어!”
“일단 손만 잡자고. 후후훗.”
“꺄아아아악!”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4.
아침이 되었다. 결국 오늘도 밤을 새워서 몸부림(딱히 다른 말로 쓰고 싶지 않다. 흑.)을 친 덕분에 밤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상황. 피곤함에 옆에 놓인 자리끼……가 아니라 정력제를 넣은 스테미나 포션을 들이키면서 퀭한 눈으로 침대 위의 상황을 살핀다. 결국, 나는 누이들 전원과 레슬링(딱히 다른 말로 쓰고 싶지 않아!)을 해버린 천하의 잡놈이 되어버렸다. 침대의 시트는 이미 지저분하게 어질러진 상황. 어젯밤 나와 하룻밤을 함께 한 100번째부터 109번째 누나. 즉 막내 누나(그리고 남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막내다.)들의 알몸들이 가로놓여있지만 신경쓰지 말자.
“…….”
신경쓰이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냐!
내 주니어(……) 녀석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존재감을 하늘 높이 세웠다. 하늘을 향해 존재감을 세우는 김에 그냥 하늘 저 너머로 사라져주지 않겠니.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랬다가는 내가 큰일이다. 참자.
“이미 잡놈이 된 거. 확 삐뚤어질까.”
‘우유를 가져와! 우유를! 삐뚤어질테다!’라고 터져나오려고 하는 의미불명의 절규를 꿀꺽 삼키고는 넓디 넓은 침대 위를 가만히 바라본다. 다른 남자들이라면 ‘이런 부러운 자식!’이라고 외치면서 나를 타살하려고 들 법한 상황이지만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황. 환생 전과 환생 후를 합쳐 40여년간 지켜온 윤리의식이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 같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금 흥분되는 풍경이기는 하지만.
“하아, 이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었는데 말야.”
혹시나 해서 하는 것이지만 자기 소개를 하겠다. 내 이름은 진 맥세인 아슈레이. 이고깽인 아버지와 하이엘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 제국의 황태자이자 황실의 자손들 중에서는 유일한 남자. 그리고 배다른 누이들과 결혼해버린 천하의 잡놈이다. 그리고 약 10일 정도 계속된 결혼식에서 확인한 것이지만……이런 부분도 아버지를 닮아버린 슬픈 영혼.
“하아.”
너무 무리하면 죽는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것 정도가 아니라 며칠 밤을 새우고도 멀쩡할 정도. 솔직히 이 나라의 황태자이니 이런저런 보양식이라거나 보약같은 것을 먹고 있는 상황이니까 온전히 내 능력(……)이라고 말하기는 껄끄럽지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이고깽이 활약하는 곳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아들아, 이 아버지는 이미 인간을 초월한 거란다.’
저리 꺼져요.
‘차려진 밥상을 외면하는 건 남자가 아니란다.’
아무리 이고깽이라지만 개념을 어디에 버린 거야?
하얀 이를 빛내면서 엄지를 치켜올리는 아버지의 환상을 보고 울컥해서는 자리에 누워버린다. 그리고 바로 내 실수를 깨달았다. 눕는 건 좋은데 누이들도 함께 누워있는 상태이니 볼 거 안 볼 거 다 보인다는 이야기.
‘차려진 밥상을 외면하는 건 남자가 아닙니다.’
내 분신(……)이 흉악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거는 환상을 보면서 결정한다. 한 번 잡놈이 된 것. 그냥 제대로 잡놈이 되어보자고.
“에라이 모르겠다.”
내 바로 옆에 누워서 선잠을 자고 있던 108번째 누이에게로 돌아서서 나는 바로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슨 작업이냐고? 다들 알 나이인 것 같은데 왜 이러냐?
.
.
“오늘은 어째 더 지쳐보이는구나?”
“자신에게 환멸하는 중입니다.”
식사시간. 나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기품있는 태도로 식사를 마쳤다. 즉 말하자면 냉막한 얼굴로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서 ‘나 삐졌음!’이라는 태도를 팍팍 드러냈다는 이야기다. 이미 소는 도망가고 외양간이나 고치는 격이지만.
“뭐, 나도 솔직히 너에게 그런 걸 시킨 것에 나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쓰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어깨가 조금 축 늘어진 것 같다는 것은 착각일까. 하지만 내 화가 아직 덜 풀렸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냉막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가 아버지의 식사가 끝나자 바로 일어나버렸다. 물론 예의바른 황태자로서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죄송합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내 마음을 아는지 아버지는 순순히 허락했다. 평소같으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안달하겠지만(아버지는 내가 환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동향으로서의 동질감이랄까.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순순히 보내주었다.
“15시 정도에 네 방에 들르도록 하마. 전해줄 것이 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솔직히 평소에도 일찍일찍 보내주어야 할 것이 지금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에게 차근차근 실무진을 넘기면서 일을 맡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가하게 책을 읽는다거나 수련을 한다거나 하는 ‘내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15세에 나에게 황제자리를 물려주려고 마음먹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고 할까.
그나저나 무지 졸리다. 하긴 며칠 정도 잠을 제대로 못잤으니. 후아아.
“태자 전하. 오늘 하실 일은…….”
“정리해놓은 서류가 있으면 주세요. 눈으로 읽는게 더 빠르니까.”
여관女官이 다가와서 나에게 오늘 할 일을 구두로 전달하려는 것을 손을 들어 제지하고서는 서류를 건네받는다. 어디보자. 동쪽 지방의 치수에 관한 예산 확정을 위한 회의, 중앙 기사단 사열, 원로원에서의 연설, 기타 잡무. 그리고 점심. 어째 좀 많다?
“폐하께서 하실 일은?”
“오늘은 오전에 휴식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이 인간이!
“……알겠네.”
“회의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전하.”
나에게 일을 몽땅 안기고 도망갔어!
분노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는 쓰게 웃는 여관의 뒤를 따라간다. 황궁 밖에 있는 회의장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으니 그 전까지는 마음껏 화내두어야지. 한숨을 크게 토한다.
5.
“예산안 말입니다만 키라이 지방의 제방을 축조하는데 드는 예산을 너무 남게 잡은 것 아닙니까?”
“인건비가 있으니 그 정도는 감안하시는 것이…….”
“군대를 동원하면 되지 않습니까.”
“현재 동부지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부대는 5사단 밖에 없는데 그 넓은 지역 모두에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국경을 방어하고 있는 부대를 돌려서 투입한다는 건 말 그대로 바보짓입니다.”
“지금 나더러 바보라고 했나? 내가 그걸 모를 것 같나?”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 바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바보짓이라고 말한 것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하층민들에게 이런 일이라도 주어서 생계를 도모하게 하는 것이 나중을 생각하면 더 남는 장사라고 이야기하시지 않습니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나더러 바보라고 한 거냐고!”
실무진과 귀족들이 또 부딪혔다. 벌써 여섯 번째 충돌. 회의장에서 입을 오므려 하품을 깨물고 있으려니 또 난장판이 벌어졌다. 저 놈은 대체 누구야? 아주 태클을 놓는 솜씨가 일품인데? 저걸 쫓아낼까 어쩔까 생각하면서 녀석을 평가해본다.
“바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방 축조에 관한 예산안에 더 이상 이의가 없으면…….”
“나는 자네가 나더러 바보냐고 말했느냐고 묻고 있네!”
이것봐라. 여기에 앉아있는 황태자는 뻘이냐?
지금 내가 화를 내는 건 졸린데 회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아마도. 마음을 정리하고 가만히 말을 꺼낸다.
“조용히 하지?”
턱을 괴고 앉아있다가 그 꼴을 보고 ‘전 기분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라는 식으로 으르렁 대자 꼴에 귀족이라고 자존심을 내세우던 30대 귀족 하나가 찔끔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재미없는 놈일세. 어쨌거나 회의 진행을 방해한 녀석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법.
“자네 이름이 뭔가?”
“소, 소인은 들로렌 지방에서 온 뮤젤이라고 합니다.”
내 눈에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녀석의 안색이 확 폈다. 이거 완전 바보 아냐? 이 놈이 어떻게 회의장까지 온 거지? 들로렌 지방이라면 백작가문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 출신인가? 일단 이 녀석을 내쳤을 경우……뭐, 상관없겠구나.
“나가.”
“네?”
들로렌 지방의 백작이라면 확실히 그 꼬장꼬장한 영감님일 것이다. 그 사람에게서 어떻게 저런 멍청한 녀석이 나왔는지는 의문이지만 그 영감님이라면 편지를 써서 저 녀석의 행동을 알려주면 알아서 해주겠지.
“나가라고.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너 때문에 진행 못하고 있잖아. 나가.”
“저, 전하!”
“위병. 저 분을 모시게.”
“저언하아!”
시끄러.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폭군에게 직언하다가 끌려나가는 충신처럼 보일라. 사색이 되어 끌려나가는 뮤젤이라는 녀석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순간 모두의 허리가 쫙 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착각인가?
“회의 진행합시다. 길버트 서기관. 보고 계속하세요.”
“네? 네.”
한 사람이 끌려나가고 났더니 필요한 말만 오고 갔다. 덕분에 회의는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권력 만세.
기사단에 가는 마차 안에서 사열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 좀 자야지.
.
.
빠라빠라빰~ 빠라빠라빰~ 빠라빠라빰빠밤빰빠밤 빰빰바밤~ 빰빰빠빰빰빠라 빰빰빠빰!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고(이 녀석 이고깽인 주제에 이런 건 어떻게 알았지? 밀덕이었나? 새삼 아버지의 성향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사열이 시작되었다.
“황태자 전하를 향하여 예!”
“충!”
오오, 저것은.
“황태자 전하를 향하여 예!”
“충!”
분열식이 아닌가.
수고했구만. 쩝. 생각해보면 내가 군대에 있었을 적에는 분열식 두 번(한 번은 대대장 교체, 한 번은 부대 개편)하는 바람에 귀찮았던 적이 있었지. 먼 산을 바라보면서 한 달은 각 잡고 장비에 광내고 연습에 연습을 반복해야 했을 중앙 기사단의 노고에 눈물이 되지 않는 애도를 표한다.
“고생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훌륭한 사열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의 충성심은 이 정도로 증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흐음, 높은 사람이 된 입장에서 이렇게 분열식을 하는 것을 보니 참 장관이었다. 10월 1일에 국군의 날 때 TV를 통해 사열식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묘미랄까. 그런 것이 느껴졌다. 뭐,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겠지만.
“군기가 엄정한 것 같고. 눈빛들도 살아있습니다. 제 첫 사열인데 꽤나 흡족하군요.”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이건 솔직히 예정된 건 아닙니다만. 수고한 저 기사들에게 술이나 좀 나누어주시라고 개인적으로 드리는 겁니다.”
내가 굉장히 만족을 표하자 중앙 기사단장은 입이 함박만하게 커지면서 좋아라했다. 하긴 다음 권력자가 될 사람이 자신을 좋게 보아주었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
“황태자 전하를 향하여 예!”
“충!”
뭐, 그 뒤로 무술 시범이라거나 오러 유저들이 대련을 하는 모습을 여흥처럼 즐기다가 ‘수고하셨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 여러분들 자신을 위해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훈시를 해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 다음은 원로원이었지만 연설문이야 이미 황궁에서 초안을 짜온 대본이 있으니 대충 외워서는 하면 되었고……. 그 뒤로는 꾸벅꾸벅 졸면서 실무진이 검토해서 가져온 서류들에 도장을 쿵쿵 찍으면 되었다. 뭐, 좀 이상한 건 보류시키거나 반려시키면 되었으니까. 그나저나 재무대신이 굉장히 나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네?
“황태자님 덕분에 예상보다 혼례 비용이 확 줄었으니까요.”
그런 종류의 호감이냐. 이런 돈 귀신.
어쨌거나 아버지 대신 처음으로 정무를 보았지만 별 다른 실수도 없이 지나갔다.
황제하기 참 쉬운 것 같다? 괜히 쫄았나?
6.
내 처소에서 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는 - 109명 전원에게 한입씩 아앙~을 당하고 났더니 과식해버렸다 - 가물가물해오는 눈도 뜰 겸, 정원을 산책하다가 돌아오니 오후 2시 50분이었다.
“3시에 오신다고 하더니 어째 일찍 오셨네요?”
“뭐, 그렇게 되었구나.”
그리고 내 방 안에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찾아오신 용건은?”
“등짝 좀 볼까?”
“거절합니다.”
평소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하다가 아버지가 품에서 책 보따리를 꺼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대화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소녀경? 천자문?”
“참, 네 놈. 한자 읽을 줄 알았지. 쳇.”
아무래도 나를 놀리러 온 모양이다. 칫하고 혀를 차는 모습이 영락없는……유치한 이고깽의 모습. 중2병이 아닌 것만 해도 개념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개념도 어느정도 있는 이고깽이니 이런 유치한 장난 정도는 용서해줄까.
“대체 이건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내 본처에게서.”
본처라면……그 평범한 분?
“어딜봐서 평범하냐. 내 마누라 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때려잡을 수 있는 사람인데.”
따악.
꿀밤이 꽤나 아프다.
“아니, 외모라든지 보면 제일 평범하시잖아요.”
“하긴. 엘프들 사이에서 김태희를 보면 평범하긴 하겠지.”
아, 그런 거였나.
나는 미녀를 보통 사람으로 만들 정도의 미녀들에게 사랑을 얻은 부러운 남자를 보면서 눈빛으로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표한다. 그런 내 눈빛(존경은 아니다)에 어깨가 으쓱한 아버지는 결국 찾아온 이유를 제 입으로 실토한다.
“그런 거다. 그런 내 본처를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 책꾸러미 속에 있다는 것이지. 으흐흐흐흐.”
“아, 그것이 그것 때문입니까?”
그럼 그렇지.
아버지도 때려잡을 수 있다는 - 무협에서 엄청난 고수가 되면 오히려 평범해보일 정도로 바뀐다고 하는 설정이 있으니까, 알고 보면 평범하지 않은 분이라는 것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 분이 왜 다른 여자들을 맞이했는데도 화내지 않고 오히려 반겼는지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 연기했다.
“어째 책 읽는 것 같다?”
“느낌 탓입니다.”
변명하자 그런가?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아버지는 상관없다는 듯 싱긋 웃더니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버린다.
“어쨌거나 이것이라면 네 누이들을 만족시키고도 넌 잠 잘 거 다 잘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인간이.
내가 이 사람을 한 방이라도 때릴 수 있기 전까지는 참는 것이 좋겠지. 나무아미타불. 아멘. 알라흐 아크바르. 무량수불. 얄리얄리 얄라셩 얄리리 얄라. 마하반야 바라밀다……훔치훔치 태을천……
“그리고 이것도 있다. 나중에 먹어라. 식후 30분 후에 먹어야 할 거야.”
“이건 뭡니까?”
“정력에 좋은 거지. 이것이면 네 놈의 작디 작은 그것(?)도 흉악한 위용을 뽐낼 수……크억!”
혹시나 해서 만들어두었지만 쥘부채를 사용할 날이 올 줄이야.
“이, 이 아버지를 때리다니. 아빠에게도 맞은 적이 없는데!”
“하라는 황제짓은 안하고!”
잠시 다투었다.
진심으로 다투었다가는 건물이 붕괴할 건 명약관화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초식만 겨루었다. 그리고 나의 패배. 꿀밤 한 대 맞고 끝났다.
“뭐, 평소처럼 거리에 나가봤다가 충동구매한 거긴 한데……확실하다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변명을 했다. 그나저나 이 사람이 충동구매했다는 것이 확실하면. 누군가가 시범을 보였다는 이야기인데 말야. 그런 쇼를 벌일 곳은?
“이런 거 샀다면 분명히 저 뒷골목이겠지요.”
“아니, 그게 말이지…….”
“남의 것 보니 좋습디까?”
“아니, 토 나올 뻔 했지.”
“그렇군요.”
“……비밀이다.”
뭐, 백단위를 넘어가는 어머니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는 걸 들켰다가는 그 지역이 완전히 초토화될 것은 뻔하니까. 우리 어머니 한 사람만 떠도 말이지. 새삼 느끼는 건데 이 인간. 이 세계에 와서는 굉장히 강력한 전력을 한군데로 밀집시켜버렸어.
“어쨌거나 저에게 일 떠넘기지 않으신다면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미리 익숙해지는 것이 좋지 않겠니?”
“문종처럼 일찍 죽기는 싫습니다.”
“세종대왕의 아들? 뭐, 네가 그럴리는 없잖아. 영원을 산다는 하이엘프랑 수명에 한계가 없어진 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데. 너도 불멸일 걸? 아마 이 지구가 너보다 빨리 사라질 걸?”
서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 걸 왜 꺼내고 그러냐. 진짜로 일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귀찮다는 겁니다. 대체 날 왜 낳으신 겁니까? 신들까지 협박해가면서 말입니다. 덕분에 신들에게 미움까지 받고 있잖습니까.”
“이 나라를 물려주려고 말이지. 귀찮은 건 질색이거든. 그리고 그 녀석들이라면 아마 너에게 해코지는 못할텐데?”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아요. 으휴.
어쨌거나, 한가지 내가 깜빡하고 말 안한 것이 있는데 아마도(예상뿐이지만) 나는 먼 미래에 내 누이들을 모두 내 손으로 묻어주어야 할 운명일 것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누이들과 맺어지고 싶어하지 않은 건 그 이유 때문일지도.
“괜찮아. 하이엘프 아이 하나 꼬시면 될 거 아냐?”
“황궁에서 살육이 일어날 일 있습니까?”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흔든다. 뭐, 지금 있는 누이들만 해도 감당불가능이니까 말이지.
“어쨌거나 잘 쓰겠습니다.”
“뭐, 너처럼 빈약한 몸에 흉악한 물건이라는 언밸런스함이 두근거린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말이지.”
“누가 그럽디까?”
감사인사나 하고 끝내려고 했더니 또 쓸데없는 말을 한다.
“아, 그거라면 널 모델로 한 상업지 망가를 팔고 있는데 말이지 꽤나 용돈벌이가……커억!”
“인간아! 하라는 황제짓은 안하고!”
아무래도 이 녀석, 내 아버지 할 생각이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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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하기 쉬운 줄 아냐. 이고깽X하이엘프의 핏줄을 타고 난 네 놈의 오버스펙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