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왕 아르셀라 3
이미지가 없습니다.
3. 하렘왕 출정식
며칠 후..
어둠계곡 외곽에 위치한 넓은 광장. 아르셀라는 자신이 만들어낸 수천마리의 군세를 앞에두고 연단에 서 있었다. 바야흐로 할렘왕의 첫 출정식이 거행되는 것이다.
"제군들! 나 아르셀라는 남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아르셀라의 군대는 대부분이 지능이 떨어지는 키메라와 골렘, 지하고블린 따위였으므로 사실 그가 연설을 한다고 해서 이해할만한 놈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르셀라는 비장감마저 감도는 어조로 자신의 비전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나는 왕이 되고자 한다. 단순한 왕이 아니다. 세상에 군림하며 모든 여자들을 정복할 세글자, 할렘왕!이 되는 것이다!"
"와아~ 아르셀라님 멋져요!"
연단 뒷쪽에서 부관 리노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보냈다.
[크윽 이것들이..]
아르셀라의 비장한 얼굴이 곧 못마땅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이 타이밍은 박수가 나올 타이밍인데 맞장구 쳐주는 이는 리노 하나가 아닌가? 지능이 떨어지는 군대들은 그렇다 쳐도 일부러 초청해 온 마을 사람들은..
"아니 근데 네놈들은 뭐하는 거야?!"
결국 아르셀라는 참지 못하고 광장 앞쪽에 자리잡은 귀빈석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 곳에는 평균연령 80살의 노인들이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에엥? 무슨 말 했수?"
제일 오른쪽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귀를 긁적이며 되물어 온다. 아르셀라는 화를 억누르고 천천히 그들이 해야 할 행동을 지시했다.
"제가 방금 큰 뜻을 발표했는데 여러분은 그 태도가 멉니까? 박수치고 환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으응?"
할머니는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다른 노인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 빌어먹을..]
바람잡이로 노인들을 데려온게 큰 오산이었다. 이러서는 영 출정식 분위기가 나질 않는다.
"내 말 잘 들으십쇼. 제 뒤에 있는 리노 아가씨가 박수를 치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면 같이 환호성을 지르시오."
"응 응 알것어~ 저 헐벗은 처자 하는데로 따라하면 되는거지?"
"헐헐 근데 밥은 언제 주는겨?"
"난 과자좀 달라구. 손주녀석 갖다줘야혀."
"...."
아르셀라는 속이 쓰렸다. 이 노인들은 70년전 처음 폴리모프를 배워 아이의 모습으로 마을에 놀러갔을때, 아르셀라와 놀아 줬던 애들인 것이다. 물론 스승 퀴러스에게 들켜 다신 마을에 갈 수는 없었지만, 그때의 추억은 남다른 감상으로 아르셀라에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자신의 출정식에 초대(라기보단 납치)했는데 이 실망스런 반응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거지?]
대체 되는 일이 없다. 병사를 만들어 내는것도 던전 시설이 노후화 되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원래 아르셀라의 계획대로라면 지금 모인 인원의 세배는 더 생산했어야 했다.) 부관이 될 서큐버스도 몇명 더 고용해야 했는데 빌어먹을 리노년이 너무 음란해서 그 생각도 포기해야 했다.(서큐버스를 더 늘리면 아르셀라의 정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이런 형편에 출정식마저 이따구로 돌아가니 정말 끕끕해 지는 것이다.
[후우.. 대충 연설이나 끝마치자.]
들어주는 이는 리노 말고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한 이상 끝을 맺어야 했다. 아르셀라는 침울한 얼굴로 연설문을 계속 읽어내려갔다. 그의 목소리에서 좀전과 같은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모르테스 왕국의 루스네 공주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디엘 교단의 아카시아 성녀도 마찬가지로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대륙에서 가장 미녀로 이름높은 두명을 가져야만 비로소 할렘왕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군들도 내 높은 야망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 이상."
"와아 아르셀라님 최고! 멋져요 할렘왕!"
노인들은 다시금 꾸벅 꾸벅 골아 떨어졌고.. 결국 박수를 쳐 주는 이는 리노 하나였다. 원래 할 말은 더 있었지만 아르셀라는 대충 이정도로 연설을 끝맺었다. 그리고 터덜 터덜 연단을 내려오려는데..
"아하하하 가소롭구나. 감히 루스네 공주님께 어따대고 그런 망발을 하느냣!!"
"엣?"
아르셀라의 병사들 사이에서 웬 어린 소녀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셀라는 당황하여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위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어딜 보고 있는거야? 여기다 여기! 머리만 또라인 줄 알았는데 눈도 형편없이 나쁘군"
소녀는 아르셀라가 좀처럼 자신을 찾지 못하자 마구 손을 흔들어 자신을 어필했다. 그제서야 아르셀라는 소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마법병사들 사이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은발의 소녀가 접혀진 양산을 휘휘 돌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열 네살이나 되었을까? 멀리서 보기에도 꽤나 예쁘게 생겼지만.. 그보다 저 애는 누구지?
"어이 꼬마야.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내가 할 말이다. 너야말로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꽤나 당돌한 아이였다. 아르셀라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끝에 일단 그녀의 물음에 답해줬다.
"나는 하렘왕이 되기 위한 위대한 정복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출정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너같은 애가 올 장소가 아니야."
"칫 웃기는군. 하렘왕이 뭐가 어쩌고 어째? 야! 너 돌았냐?"
"아니 근데 이년이 어따대고 반말이야?"
"흥 미친놈에게 차려줄 예의따윈 없다."
"...."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아르셀라는 저 애가 틀림없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마법 병사들이 둘러싼 가운데에서 그 주인을 도발하다니, 미친건가 아니면 어려서 철이 없는 건가?
"네가 아직 세상을 모르는 모양인데, 괜히 까불다가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후우.. 오늘은 역사적인 기념일이니 한번은 봐준다. 괜히 오빠 화나게 하지말고 어서 집에 돌아가렴~"
"오빠 좋아하네. 네 놈은 정신이 이상한 변태 아저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이런 오합지졸이나 잔뜩 뽑아놓고 전쟁을 일으킬 궁리나 하다니 기도 안찬다."
"오 오합지졸?"
아르셀라는 자신이 만들어낸 군대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식의 모욕은 그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전쟁은 뭐 그렇다 쳐도, 감히 루스네 언니를 그런식으로 말한 건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 내 웬만해서 그냥 구경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도저히 참을수가 없는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소녀의 당돌한 헛소리에 아르셀라의 그리 깊지 않은 인내심이 결국 바닥을 보이고야 말았다.
"하.. 이 미친년좀 보게? 오냐. 죽고싶다고 용을 쓰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지. 오늘이 네 제삿... 어어엇?!!"
콰아아앙
순간 소녀의 주위에서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굉음과 함께 소녀 주변의 지반이 뭉게져 나간다. 아르셀라는 대체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뭐야? 무슨일이지?]
잠시 후 빛과 연기가 사라지고 그 가운데서 검은 소녀의 모습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당당한 자세로 아르셀라를 향해 양산을 겨누고 있었다.
"역시 오합지졸이 맞잖아. 잠시 기합을 넣은 것 정도로.. 헤헤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네? 이정도라면 다 정리하는데 세시간도 안걸리겠어."
[커컥..]
그제서야 아르셀라는 사태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소녀를 중심으로 주위 30m 안에 빽빽히 들어서 있던 마법골렘들이 완전히 맛이 간 몰골로 처참히 널부러져 버린 것이다. 애써 만들어낸 병사들이 허무하게 부서진 것도 가슴이 쓰라렸지만 그보단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강함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아르셀라님.."
리노도 아르셀라와 마찬가지 심정인지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의 옆에 찰싹 붙어오는 것이었다. 반면 노인 방청객들은 무언가 또 재미있는 공연이 시작됬구나 하고 흥미롭게 소녀와 아르셀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너 너는 누구냐?"
"알아서 뭐하게?"
콰아앙
또 날아갔다. 소녀가 양산을 휘두른 전방 10m안에 멀쩡한 마법 병사는 단 한기도 없었다.
"제 젠장!"
긴급 상황 발생이다. 아르셀라의 중요한 출정식은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미소녀에 의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아르셀라는 어떻게 상황을 수습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콰아아앙
하지만 아르셀라가 고민하는 사이 다수의 병사들이 소녀의 손에 또 희생되고 말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아르셀라는 급히 마법을 캐스팅 해서 소녀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플레임 버스터!"
화르르륵
아르셀라의 손에서 엄청난 크기의 불덩이가 생성되어 소녀를 향해 쏟아져 내려간다. 금방이라도 저 무지막지한 불길이 소녀를 태워버릴 것만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어라?"
하지만 소녀는 이런 위기상황에도 느긋한 기색으로 천천히 아르셀라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소녀는 심지어 최소한의 방어동작조차 취하지 않았다.
"야 위험해!"
보다 못한 아르셀라가 큰 소리로 그녀에게 위험을 일깨웠다. 당연히 막거나 피할 줄 알았는데 이 반응은 뭐란 말인가? 첫 출정식 부터 사람을 죽이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를 죽이면 재수가 없다.
하지만 아르셀라의 외침에도 소녀는 태연자악했다. 그리고 잠시후..
화르르르
[아 안타깝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저 소녀의 운명인 것을.. 가슴아파 해서는 안된다. 하렘왕이 되는데에 다소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컥 뭐야?!"
그렇지만 아르셀라의 애도는 곧 경악으로 뒤바꼈다. 분명 재만 남았어야 할 마법의 직격지점에 멀쩡히 서있는 소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 놀라운 건 소녀의 주변은 화염마법에 의해 완전히 타버렸다는 것이다. 쉽게말해 마법이 소녀의 몸만 비껴갔다?
"좀 더 센거 해봐. 이건 간지럽지도 않은걸? 쿡쿡."
"이 요망한 것! 어디죽어봐라!"
아르셀라는 스멀 스멀 밀려드는 불안감을 지워버리기 위해 소녀를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6서클의 라이트닝, 7서클의 아이스 팽, 심저어 8서클의 무시무시한 화염계 마법 헬 파이어도 소녀의 옷깃 하나 다치게 하지 못했다.
[마법 면역..]
아르셀라의 머리에 과거 스승에게 들은 한 단어가 스쳐갔다. 퀴러스가 마법사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중 하나로 꼽은게 바로 마법면역체였다.
[극히 낮은 확률로 자연계에는 마법이라는 이치에 절대적으로 면역된 생명체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길가의 잡초가 될수도 있고 토끼나 사슴같은 초식동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짐승, 즉 사자 이상의 존재에게 마법면역체가 발현되고 그것이 우리의 적이 된다면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절대로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자면, 물론 그럴일은 없겠지만 마스터급 이상의 검사가 마법 면역체를 달고나오면 그건 모든 마법사에게 악몽과도 같은 최악의 적이 된다고 볼 수 있지.]
"말도안되! 설마 마법 면역체라구?! 왜 하필 저런 녀석이 나타난 거야?"
소녀의 작은 몸이 점점 연단에 선 자신에게 가까워 오자 아르셀라는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스승이 말한 그 최악의 적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난 것인가? 자신의 헛된 꿈을 벌주기 위해 신이 내려보낸 사자인가?
"주 주인님 진정하세요."
"너라면 이 상황에 진정 하겠냐?"
최악이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저 어린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르셀라는 저 소녀를 막을 방도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댔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해야 한다.
아르셀라의 헛된 야망을 쳐부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 은발의 소녀, 세이키 아스모데는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녀는 단순히 루스네의 부탁으로 어둠계곡에 금포도를 따러 왔을 뿐이었다. 중간에 마법병사들이 많이 모여있는 걸 발견하고 잠깐 구경하던 중인데 왜 쓸데없이 소란을 일으켜야 하는가?
[저 변태아저씨의 더러운 입에서 루스네 이야기만 안나왔다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흥]
루스네. 자신과 계약을 맺은 인간 소녀의 이름이다. 그리고 둘도없이 소중한 언니이자 친구.. 그녀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각오하시지 이 정신병자야! 이제 넌 죽었어!"
세이키의 양산이 아르셀라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르셀라는 어쩔 줄 모르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 잠깐만요. 이러지마세요. 대화로 해결할 수도 있잖아요! 왜 폭력을 휘두르고 그러세요?"
아르셀라가 반쯤 넋이 나가 떨고만 있자 리노가 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흥! 정신병자와 나눌 대화 따위는 없다구. 어서 비켜. 너도 혼나고 싶은거야?"
"네 맞아요. 주인님은 정신병자에요. 하지만 저는 정신병자가 아니니 저랑은 대화를 할 수 있잖아요."
"그 그런가?"
리노의 말에 세이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리노의 몸에서 친근한 마족의 냄새가 난다.
"일단 통성명이나 하죠. 저는 아르셀라님과 계약을 맺은 서큐버스 리노라고 해요."
"너도 마족이었구나? 난 세이키 아스모데. 모르테스 왕국의 루스네 공주와 계약을 맺었지. 그러니까 저 변태아저씨의 망언은 참을수가 없는거야!"
[아스모데?]
서큐버스들은 마족의 갈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마계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그녀들은 인간들의 정신계에 주로 기거하는 몽마인 것이다. 따라서 진성 마족들에 관한 지식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큐버스 리노라도 아스모데라는 이름은 모를 수가 없었다. 아스모데라면 틀림없이 마계의 일곱 군주중 하나가 아닌가? 그 성을 이었다면 이 아이는 아스모데의 혈육인 것인가?
"호호 설마 아스모데님의 자녀이신가요? 인간세에는 어쩐일로 오셨는지.."
리노의 말을 듣고 세이키의 예쁜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아무 죄 없이 마계에서 추방당한 3년전 자신의 아픈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흐 흥. 알아서 뭐하게. 그것보다 빨리 비키란 말야."
"저는 주인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럴수는 없습니다. 세이키님도 루스네님을 위해서라면 저와 같이 행동할 것이잖아요."
"그건 네 사정이지."
세이키는 냉랭한 어조로 말을 잘랐다. 그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투기가 피어오른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에게 어떻게 죄를 물을 수 있겠나요?"
"그런거 몰라! 어서 비켜!"
"제발 봐주세여~ 우린 다 같은 마족이잖아요."
"죽이지는 않을테니까 비키란 말야. 네 얼굴을 봐서 저 방정맞은 입을 찢어놓는 정도로 봐주겠어."
그녀들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 얼이 빠져 있던 아르셀라가 서서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의 시야에 자신을 위해 저 무서운 은색 소녀를 막아선 리노의 가녀린 등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꼴인가]
용서할 수 없다. 저 세이키인가 하는 소녀를 용서할 수 없는게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러고도 하렘왕이 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하렘왕은 고작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여자를 포용할 대범함과 강인함을 지닌, 모든 남자의 이상이 바로 하렘왕인 것이다. 이렇게 떨고만 있다면, 결코 하렘왕은 될 수 없다!!
"크아아아아!!!!"
아르셀라의 입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용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좌중을 압도하는 엄청난 박력과 투기가 아르셀라의 몸을 중심으로 폭풍처럼 휘몰아 친다.
"꺄악?!"
"에구머니.."
용의 분노. 땅을 딛고 살아가는 지상의 생명체라면 그 누구도 드래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버릴 수가 없다. 드래곤이야 말로 신에 가까운 지성과 마력을 가진 최강의 몬스터가 아니던가? 아르셀라가 발출한 "드래곤 피어"는 바로 이 본능적인 두려움을 극대화 시켜 모두의 넋을 빼놓았다.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은건 아르셀라의 가까이에 있던 서큐버스 리노였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광장에 모여있던 다른 생명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노인방청객들도 다 정신을 잃었고 마법 병사들 중 어느정도 지성을 가진 지하고블린들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켁켁대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는 오직 한사람 뿐이었다.
3. 하렘왕 출정식
며칠 후..
어둠계곡 외곽에 위치한 넓은 광장. 아르셀라는 자신이 만들어낸 수천마리의 군세를 앞에두고 연단에 서 있었다. 바야흐로 할렘왕의 첫 출정식이 거행되는 것이다.
"제군들! 나 아르셀라는 남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아르셀라의 군대는 대부분이 지능이 떨어지는 키메라와 골렘, 지하고블린 따위였으므로 사실 그가 연설을 한다고 해서 이해할만한 놈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르셀라는 비장감마저 감도는 어조로 자신의 비전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나는 왕이 되고자 한다. 단순한 왕이 아니다. 세상에 군림하며 모든 여자들을 정복할 세글자, 할렘왕!이 되는 것이다!"
"와아~ 아르셀라님 멋져요!"
연단 뒷쪽에서 부관 리노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리노만 호응을 했다. 멍청한 마법 생명체들은 머리를 글쩍이며 딴청만 피울 따름이었다.
[크윽 이것들이..]
아르셀라의 비장한 얼굴이 곧 못마땅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이 타이밍은 박수가 나올 타이밍인데 맞장구 쳐주는 이는 리노 하나가 아닌가? 지능이 떨어지는 군대들은 그렇다 쳐도 일부러 초청해 온 마을 사람들은..
"아니 근데 네놈들은 뭐하는 거야?!"
결국 아르셀라는 참지 못하고 광장 앞쪽에 자리잡은 귀빈석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 곳에는 평균연령 80살의 노인들이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에엥? 무슨 말 했수?"
제일 오른쪽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귀를 긁적이며 되물어 온다. 아르셀라는 화를 억누르고 천천히 그들이 해야 할 행동을 지시했다.
"제가 방금 큰 뜻을 발표했는데 여러분은 그 태도가 멉니까? 박수치고 환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으응?"
할머니는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다른 노인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 빌어먹을..]
바람잡이로 노인들을 데려온게 큰 오산이었다. 이러서는 영 출정식 분위기가 나질 않는다.
"내 말 잘 들으십쇼. 제 뒤에 있는 리노 아가씨가 박수를 치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면 같이 환호성을 지르시오."
"응 응 알것어~ 저 헐벗은 처자 하는데로 따라하면 되는거지?"
"헐헐 근데 밥은 언제 주는겨?"
"난 과자좀 달라구. 손주녀석 갖다줘야혀."
"...."
아르셀라는 속이 쓰렸다. 이 노인들은 70년전 처음 폴리모프를 배워 아이의 모습으로 마을에 놀러갔을때, 아르셀라와 놀아 줬던 애들인 것이다. 물론 스승 퀴러스에게 들켜 다신 마을에 갈 수는 없었지만, 그때의 추억은 남다른 감상으로 아르셀라에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자신의 출정식에 초대(라기보단 납치)했는데 이 실망스런 반응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거지?]
대체 되는 일이 없다. 병사를 만들어 내는것도 던전 시설이 노후화 되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원래 아르셀라의 계획대로라면 지금 모인 인원의 세배는 더 생산했어야 했다.) 부관이 될 서큐버스도 몇명 더 고용해야 했는데 빌어먹을 리노년이 너무 음란해서 그 생각도 포기해야 했다.(서큐버스를 더 늘리면 아르셀라의 정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이런 형편에 출정식마저 이따구로 돌아가니 정말 끕끕해 지는 것이다.
[후우.. 대충 연설이나 끝마치자.]
들어주는 이는 리노 말고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한 이상 끝을 맺어야 했다. 아르셀라는 침울한 얼굴로 연설문을 계속 읽어내려갔다. 그의 목소리에서 좀전과 같은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모르테스 왕국의 루스네 공주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디엘 교단의 아카시아 성녀도 마찬가지로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대륙에서 가장 미녀로 이름높은 두명을 가져야만 비로소 할렘왕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군들도 내 높은 야망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 이상."
"와아 아르셀라님 최고! 멋져요 할렘왕!"
노인들은 다시금 꾸벅 꾸벅 골아 떨어졌고.. 결국 박수를 쳐 주는 이는 리노 하나였다. 원래 할 말은 더 있었지만 아르셀라는 대충 이정도로 연설을 끝맺었다. 그리고 터덜 터덜 연단을 내려오려는데..
"아하하하 가소롭구나. 감히 루스네 공주님께 어따대고 그런 망발을 하느냣!!"
"엣?"
아르셀라의 병사들 사이에서 웬 어린 소녀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셀라는 당황하여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위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어딜 보고 있는거야? 여기다 여기! 머리만 또라인 줄 알았는데 눈도 형편없이 나쁘군"
소녀는 아르셀라가 좀처럼 자신을 찾지 못하자 마구 손을 흔들어 자신을 어필했다. 그제서야 아르셀라는 소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마법병사들 사이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은발의 소녀가 접혀진 양산을 휘휘 돌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열 네살이나 되었을까? 멀리서 보기에도 꽤나 예쁘게 생겼지만.. 그보다 저 애는 누구지?
"어이 꼬마야.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내가 할 말이다. 너야말로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꽤나 당돌한 아이였다. 아르셀라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끝에 일단 그녀의 물음에 답해줬다.
"나는 하렘왕이 되기 위한 위대한 정복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출정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너같은 애가 올 장소가 아니야."
"칫 웃기는군. 하렘왕이 뭐가 어쩌고 어째? 야! 너 돌았냐?"
"아니 근데 이년이 어따대고 반말이야?"
"흥 미친놈에게 차려줄 예의따윈 없다."
"...."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아르셀라는 저 애가 틀림없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마법 병사들이 둘러싼 가운데에서 그 주인을 도발하다니, 미친건가 아니면 어려서 철이 없는 건가?
"네가 아직 세상을 모르는 모양인데, 괜히 까불다가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후우.. 오늘은 역사적인 기념일이니 한번은 봐준다. 괜히 오빠 화나게 하지말고 어서 집에 돌아가렴~"
"오빠 좋아하네. 네 놈은 정신이 이상한 변태 아저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이런 오합지졸이나 잔뜩 뽑아놓고 전쟁을 일으킬 궁리나 하다니 기도 안찬다."
"오 오합지졸?"
아르셀라는 자신이 만들어낸 군대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식의 모욕은 그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전쟁은 뭐 그렇다 쳐도, 감히 루스네 언니를 그런식으로 말한 건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 내 웬만해서 그냥 구경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도저히 참을수가 없는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소녀의 당돌한 헛소리에 아르셀라의 그리 깊지 않은 인내심이 결국 바닥을 보이고야 말았다.
"하.. 이 미친년좀 보게? 오냐. 죽고싶다고 용을 쓰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지. 오늘이 네 제삿... 어어엇?!!"
콰아아앙
순간 소녀의 주위에서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굉음과 함께 소녀 주변의 지반이 뭉게져 나간다. 아르셀라는 대체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뭐야? 무슨일이지?]
잠시 후 빛과 연기가 사라지고 그 가운데서 검은 소녀의 모습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당당한 자세로 아르셀라를 향해 양산을 겨누고 있었다.
"역시 오합지졸이 맞잖아. 잠시 기합을 넣은 것 정도로.. 헤헤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네? 이정도라면 다 정리하는데 세시간도 안걸리겠어."
[커컥..]
그제서야 아르셀라는 사태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소녀를 중심으로 주위 30m 안에 빽빽히 들어서 있던 마법골렘들이 완전히 맛이 간 몰골로 처참히 널부러져 버린 것이다. 애써 만들어낸 병사들이 허무하게 부서진 것도 가슴이 쓰라렸지만 그보단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강함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아르셀라님.."
리노도 아르셀라와 마찬가지 심정인지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의 옆에 찰싹 붙어오는 것이었다. 반면 노인 방청객들은 무언가 또 재미있는 공연이 시작됬구나 하고 흥미롭게 소녀와 아르셀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너 너는 누구냐?"
"알아서 뭐하게?"
콰아앙
또 날아갔다. 소녀가 양산을 휘두른 전방 10m안에 멀쩡한 마법 병사는 단 한기도 없었다.
"제 젠장!"
긴급 상황 발생이다. 아르셀라의 중요한 출정식은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미소녀에 의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아르셀라는 어떻게 상황을 수습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콰아아앙
하지만 아르셀라가 고민하는 사이 다수의 병사들이 소녀의 손에 또 희생되고 말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아르셀라는 급히 마법을 캐스팅 해서 소녀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플레임 버스터!"
화르르륵
아르셀라의 손에서 엄청난 크기의 불덩이가 생성되어 소녀를 향해 쏟아져 내려간다. 금방이라도 저 무지막지한 불길이 소녀를 태워버릴 것만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어라?"
하지만 소녀는 이런 위기상황에도 느긋한 기색으로 천천히 아르셀라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소녀는 심지어 최소한의 방어동작조차 취하지 않았다.
"야 위험해!"
보다 못한 아르셀라가 큰 소리로 그녀에게 위험을 일깨웠다. 당연히 막거나 피할 줄 알았는데 이 반응은 뭐란 말인가? 첫 출정식 부터 사람을 죽이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를 죽이면 재수가 없다.
하지만 아르셀라의 외침에도 소녀는 태연자악했다. 그리고 잠시후..
화르르르
[아 안타깝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저 소녀의 운명인 것을.. 가슴아파 해서는 안된다. 하렘왕이 되는데에 다소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컥 뭐야?!"
그렇지만 아르셀라의 애도는 곧 경악으로 뒤바꼈다. 분명 재만 남았어야 할 마법의 직격지점에 멀쩡히 서있는 소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 놀라운 건 소녀의 주변은 화염마법에 의해 완전히 타버렸다는 것이다. 쉽게말해 마법이 소녀의 몸만 비껴갔다?
"좀 더 센거 해봐. 이건 간지럽지도 않은걸? 쿡쿡."
"이 요망한 것! 어디죽어봐라!"
아르셀라는 스멀 스멀 밀려드는 불안감을 지워버리기 위해 소녀를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6서클의 라이트닝, 7서클의 아이스 팽, 심저어 8서클의 무시무시한 화염계 마법 헬 파이어도 소녀의 옷깃 하나 다치게 하지 못했다.
[마법 면역..]
아르셀라의 머리에 과거 스승에게 들은 한 단어가 스쳐갔다. 퀴러스가 마법사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중 하나로 꼽은게 바로 마법면역체였다.
[극히 낮은 확률로 자연계에는 마법이라는 이치에 절대적으로 면역된 생명체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길가의 잡초가 될수도 있고 토끼나 사슴같은 초식동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짐승, 즉 사자 이상의 존재에게 마법면역체가 발현되고 그것이 우리의 적이 된다면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절대로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자면, 물론 그럴일은 없겠지만 마스터급 이상의 검사가 마법 면역체를 달고나오면 그건 모든 마법사에게 악몽과도 같은 최악의 적이 된다고 볼 수 있지.]
"말도안되! 설마 마법 면역체라구?! 왜 하필 저런 녀석이 나타난 거야?"
소녀의 작은 몸이 점점 연단에 선 자신에게 가까워 오자 아르셀라는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스승이 말한 그 최악의 적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난 것인가? 자신의 헛된 꿈을 벌주기 위해 신이 내려보낸 사자인가?
"주 주인님 진정하세요."
"너라면 이 상황에 진정 하겠냐?"
최악이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저 어린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르셀라는 저 소녀를 막을 방도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댔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해야 한다.
[정말이지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린 걸까?]
아르셀라의 헛된 야망을 쳐부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 은발의 소녀, 세이키 아스모데는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녀는 단순히 루스네의 부탁으로 어둠계곡에 금포도를 따러 왔을 뿐이었다. 중간에 마법병사들이 많이 모여있는 걸 발견하고 잠깐 구경하던 중인데 왜 쓸데없이 소란을 일으켜야 하는가?
[저 변태아저씨의 더러운 입에서 루스네 이야기만 안나왔다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흥]
루스네. 자신과 계약을 맺은 인간 소녀의 이름이다. 그리고 둘도없이 소중한 언니이자 친구.. 그녀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각오하시지 이 정신병자야! 이제 넌 죽었어!"
세이키의 양산이 아르셀라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르셀라는 어쩔 줄 모르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 잠깐만요. 이러지마세요. 대화로 해결할 수도 있잖아요! 왜 폭력을 휘두르고 그러세요?"
아르셀라가 반쯤 넋이 나가 떨고만 있자 리노가 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흥! 정신병자와 나눌 대화 따위는 없다구. 어서 비켜. 너도 혼나고 싶은거야?"
"네 맞아요. 주인님은 정신병자에요. 하지만 저는 정신병자가 아니니 저랑은 대화를 할 수 있잖아요."
"그 그런가?"
리노의 말에 세이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리노의 몸에서 친근한 마족의 냄새가 난다.
"일단 통성명이나 하죠. 저는 아르셀라님과 계약을 맺은 서큐버스 리노라고 해요."
"너도 마족이었구나? 난 세이키 아스모데. 모르테스 왕국의 루스네 공주와 계약을 맺었지. 그러니까 저 변태아저씨의 망언은 참을수가 없는거야!"
[아스모데?]
서큐버스들은 마족의 갈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마계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그녀들은 인간들의 정신계에 주로 기거하는 몽마인 것이다. 따라서 진성 마족들에 관한 지식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큐버스 리노라도 아스모데라는 이름은 모를 수가 없었다. 아스모데라면 틀림없이 마계의 일곱 군주중 하나가 아닌가? 그 성을 이었다면 이 아이는 아스모데의 혈육인 것인가?
"호호 설마 아스모데님의 자녀이신가요? 인간세에는 어쩐일로 오셨는지.."
리노의 말을 듣고 세이키의 예쁜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아무 죄 없이 마계에서 추방당한 3년전 자신의 아픈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흐 흥. 알아서 뭐하게. 그것보다 빨리 비키란 말야."
"저는 주인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럴수는 없습니다. 세이키님도 루스네님을 위해서라면 저와 같이 행동할 것이잖아요."
"그건 네 사정이지."
세이키는 냉랭한 어조로 말을 잘랐다. 그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투기가 피어오른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에게 어떻게 죄를 물을 수 있겠나요?"
"그런거 몰라! 어서 비켜!"
"제발 봐주세여~ 우린 다 같은 마족이잖아요."
"죽이지는 않을테니까 비키란 말야. 네 얼굴을 봐서 저 방정맞은 입을 찢어놓는 정도로 봐주겠어."
그녀들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 얼이 빠져 있던 아르셀라가 서서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의 시야에 자신을 위해 저 무서운 은색 소녀를 막아선 리노의 가녀린 등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꼴인가]
용서할 수 없다. 저 세이키인가 하는 소녀를 용서할 수 없는게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러고도 하렘왕이 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하렘왕은 고작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여자를 포용할 대범함과 강인함을 지닌, 모든 남자의 이상이 바로 하렘왕인 것이다. 이렇게 떨고만 있다면, 결코 하렘왕은 될 수 없다!!
"크아아아아!!!!"
아르셀라의 입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용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좌중을 압도하는 엄청난 박력과 투기가 아르셀라의 몸을 중심으로 폭풍처럼 휘몰아 친다.
"꺄악?!"
"에구머니.."
용의 분노. 땅을 딛고 살아가는 지상의 생명체라면 그 누구도 드래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버릴 수가 없다. 드래곤이야 말로 신에 가까운 지성과 마력을 가진 최강의 몬스터가 아니던가? 아르셀라가 발출한 "드래곤 피어"는 바로 이 본능적인 두려움을 극대화 시켜 모두의 넋을 빼놓았다.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은건 아르셀라의 가까이에 있던 서큐버스 리노였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광장에 모여있던 다른 생명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노인방청객들도 다 정신을 잃었고 마법 병사들 중 어느정도 지성을 가진 지하고블린들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켁켁대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는 오직 한사람 뿐이었다.
*아르셀라는 드래곤의 나이로 치면 영아나 다름없는 수준이지만, 어렸을때부터 인간에게 양육되어 인간의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환경은 그로 하여금 충분히 성인남성의 사고방식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즉 어리지 않습니다.
추천67 비추천 76
관련글실시간 핫 잇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