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과 여형사 - part 3(4)
방금전까지 현진이를 인질로 자신의 노예가 되라고 말하던 백성기가 은수가 그걸 수락하자 바로 말을 바꾸는 것이었다.
백성기는 옆방으로 연결된 창에 보이는 현진을 가르키며 말했다. 은수도 백성기가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현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인...사람...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동생이자 자신이 너무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
은수가 현진을 바라보자 머리속에 현진이 아버지를 죽이는 형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제나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곤 했던 아버지의 얼굴도 같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함께 또다시 은수의 가슴깊은곳에서 아버지에대한 그리움과 함께 화가 치밀어오르는것이 느껴졌다. 은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고 그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는 현진이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뭐든 한다고 했지만 막상 이렇게 보고 있으니 또다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현진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은수의 눈은 조금씩 현진을 노려보는듯한 느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죽은듯 눈을 감고 누워있는 현진의 얼굴을 보자 그런 현진이 이번엔 안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백성기가 자신때문에 잡아왔음이 분명한.. 자신때문에 모진일을 당한채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많이 안되보였다. 자신때문에.. 현진이 저렇게 잡혀서 고생을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저려오는 은수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 어떻게든 현진을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서로 다른감정의 생각들이 동시에 은수의 머리속에서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었다.
은수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용서하기로 해놓고.. 아직도 현진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해놓고 현진의 얼굴을 보고 또다시 화가 치솟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현진인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뺏어간 존재이기도 했지만 또한 자신에게 그 못지않게 많은 것을 준 사람인데다 아버지도 현진일 구하려다 죽었다고 했다.
왜그런지 그 얘기를 들었을때 저 아이만 없었으면 아버지가 살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보다는 아버지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리려 했던 아이를 자신이 저렇게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꽉 쥐었던 은수의 주먹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뭐든..할게..그러니까 현진이는 살려줘.. 』
그리고 은수를 쳐다보며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할거야 말거야? 』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위해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의 노예가 아니..그런 사람의 개가 되어 살아가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현진이 아버지를 죽인것과 그래서 자신이 화가나는 것과 지금 현진이를 구하기위해서 자신이 개가 되어야한다는건 조금의 다른 성질의 문제같이 느껴졌다.
아주 많이 화가나서 사랑하는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대었다해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대한 기본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장 자신이 울컥하기때문에 화를 낸다는 방식으로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토해내는 것뿐이지 화를내는것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것 처럼....
"아빠는...이런 날 보고 뭐라고 하실까...? 미안해요..아빠딸..너무 못났죠..?"
은수가 아는 아버지라면 지금 상황에서 분명 자신과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것도 자신이 아직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수없는 그런 자신의 동생을 살리는 일이다.
『할..게... 』
은수가 아주 조그맣게 대답을 하자 백성기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은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좋아.. 내 강아지가 되려면 일단 해야할 일이 있어..네가 지금 아무리 개처럼 짖고 강아지 흉내를 낸다고 해봐야 넌 인간이지 강아지가 아니니까.. 』
『 .... 』
은수는 백성기의 말을 들으면서 오래전 백성기와의 사건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 백성기의 집으로 찿아갔을때 때리면 맞아주고 강간한다면..강간당해주리라 생각했다. 주혁을 구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백성기는 전혀 의외의 주문을 했고 그 주문에 따라가면서 스스로 무너져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은수였다. 그리고..그런 생각과 함께 백성기가 무언가를 준비한듯한 말을 듣고 그걸 들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신세를 보자 잠시 잊고있었던 백성기에대한 두려움이 떠오르는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넌 경찰이야..그리고 여자이고 인간이지... 이걸 버리지 않는한 넌 내 강아지가 될 수 없겠지.. 』
『원하는게 뭐야.. 시키는대로 할테니까 말해.. 대신 현진인 확실하게 풀어줘.. 』
은수의 눈빛이 담담해졌다. 처음 백성기의 집에 갔을때처럼 분하고 화가나서 악을 쓰고 금방이라도 죽일듯이 백성기를 노려보았던 은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는 담담하게 백성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은수의 음성은 과거의 기억과함께 조금은 떨려오기 시작했다.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분명 은수를 난감하게 할 것이고..어쩌면 은수를 무너지게 만들기 충분한 계획이 숨어있을테니까..
은수는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죽기까지 결심하고 온 은수였다. 현진이 아버지를 죽인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런 현진이지만 아직도 은수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전 현진에게 더이상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그게 거짓말이라는건.. 스스로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걸 은수는 부정할수 없었다. 현진이가 고통받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심장이 그리고 현진과 함께했던 자신의 기억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아..그럼 우선 경찰신분부터 벗어버려야겠지? 』
경찰신분을 벗어버려야한다는건 사표를 내라는 이야기인가?
은수는 백성기의 말을 듣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경찰이 아니게 되는것.. 그것은 사표이외에 따로 뾰족하게 생각이 나는게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원하는거라면 그리 어려울건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죽음을 생각하고 온 은수였기에...
『사표를...내라는거야? 』
『아니.. 사표따윈 안내도돼.. 내가 경찰신분부터 벗으라는건 네가 경찰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그 경찰마인드를 버리라는이야기야.. 』
은수는 백성기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경찰생활을 하다보니 경찰다운 생각을 하게되는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자기가 버리고 싶다고 마음대로 버려질수 있는것도 아니잖은가? 백성기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 은수에게 백성기가 말했다.
『넌 경찰이지..그러니까 범죄자를 보면 범죄자를 잡아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테고.. 성폭행범을 보면 나도 성폭행당할까봐 무섭다는 일반적인 생각보다 성폭행범을 잡아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 』
『아..그건 안돼지...그럼 내 강아지가 못되는거잖아? 죽은건 관심없어.. 어떻게 사죄하든 니 마음대로 해 다만, 내가 느끼기에 진심이어야만해.. 그리고 그놈들도 니 사죄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들의 입에서 사죄를 받아들였다는 말이 나와야해.. 아니면 넌 내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겠어.. 그리고 그때엔 아마도 내가 너의 아버지복수를 대신해주게 되겠지? 흐흐흐 』
은수는 눈을 감았다. 백성기의 의도는 대충 짐작 할것 같았다. 범죄자들..자신이 자기 손으로 잡아넣었던 범인들.. 그들에게 사죄를 하면 당연히 그들은 말같지 않은 헛소리라 여길것이고..그런 그들에게 사죄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들이 요구하는 걸 들어줘야할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죽이는것 말고 교도소 면회장소에서 요구 할 수 있는건 하나였다.. 자신의 몸...
『알았어... 니말대로 할게.. 』
몸따위가 그렇게 중요한가? 선배에게 또 미안할짓을 하는 꼴이지만..현진을 살리기 위해서였다면 이해해 줄거라 믿었다. 그렇게 은수는 백성기의 첫번째 경찰의 신분을 벗으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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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각에 위치한 한 교도소..
일반적으로 죄질이 심히 불량하거나 전과가 많은 이들을 주로 수감하고 있는 교도소였다. 은수가 근무하는 곳이 특수과이다보니 보통 일반서에서 담당하는 강력범죄 이상의 강력범죄라든지 아주 지능적이거나 악랄한 녀석들을 자주 잡아들여야 했고 그런 이유로 일반적으로 일반 교도소보다 이쪽으로 오게되는 범죄자가 많았다.
이와같이 교도소에 수감되는 죄인들의 질이 보통 교도소보다 수준이 높은만큼 이곳에서는 어느정도의 구타나 가혹행위가 인정되는 편이었고 조사를 위해 따로 마련된 별관도 있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었지만 은수 역시 특수과에 근무하면서 이 별관을 몇번씩 사용해 본 적도 있었다.
은수는 지금 한명의 남자와 함께 이 교도소의 별관에 앉아 있었다. 별관 내부는 상당히 넓은 편이었고 중앙에 길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그 테이블 주위에 몇개의 의자가 있었으며 한쪽 구석에 범인에 대한 조사등을 할때 조사내용을 증거자료등으로 하기위해 녹화나 녹음을 할 수 있는 장치를 컨트럴 할 수 있는 컨트럴박스가 있었고 한쪽에는 진압용으로 보이는 경찰봉을 걸어놓은 것도 있었다.
다른편에는 세면대가 마련되어있었고 그 옆쪽에 조그만 방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는데 은수의 기억으로는 화장실이었다. 별관이 다른 건물들에 비해 따로 떨어져 있는지라 특별히 내부에다 설치를 해놓은것 같았다. 그리고 한쪽벽을 바라보고 서류등을 작성할 수 있는 작은 책상이 하나 있었고 은수의 기억에 그 책상 서랍에는 몇몇종류의 서식이 있는 서류와 필기도구 자와 같은 잡다한 것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별관으로 들어오는 문 바로 옆에는 벨이 하나 달려있어서 조사등이 끝나고 벨을 누르면 밖에서 교도관이 직접 와서 문을 열어주는 형태로 되어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교도관이 의자에 앉은 은수를 보며 말을 하고는 문 밖으로 나가자 은수는 테이블에 팔을 괴고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보였다. 백성기는 은수에게 은수가 잡아들인 범죄자들에게 사죄를 하라고 은수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은수가 체포한 범인중에 한명을 지목해주었다.
양재만..
지금 은수가 만날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는 폭행,사기,강간등 여러가지 전과를 골고루 가진 말 그대로 범죄의 백화점같은 인물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잡다하게 아는 것도 많았다. 이곳으로 수감되기전 마지막으로 그를 체포한건 은수였다. 양재만이 비록 범죄의 백화점같이 여러가지 전과가 몇개씩 있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의 범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여자...바로 여자였다.
양재만은 제비처럼 나이트나 캬바레같은 곳을 전전하며 범행대상을 물색하고 타겟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제비들처럼 여자를 살살 녹이면서 여자들을 꼬셨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두었던 사기의 그물을 여자들에게 던지고 그 그물에 걸린 여자들은 양재만에게 돈을 가져다 바쳤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제비라는 족속과 별 다를바 없어 보이긴 하지만 양재만은 약간 달랐다.
하지만 일반 제비들은 이렇게 용돈을 타거나 사기를 쳐서 돈을 긁어낸후에 잠수를 타거나 연락을 끊는게 보통인데 반해 양재만은 당당하게 그들앞에 나타났고 항의하거나 하는 여자들에게는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여자들을 꼬드기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역시 무차별적인 폭력과 강간을 일삼았다. 뿐만아니라 어떤 계획이나 목적 없이도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꼬셔내서 폭행하는 일도 많았다.
은수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만난 피해여성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성형을 고려해봐야할만큼 폭력으로 얼굴이 엉망이 된 여자도 있었고 양재만의 사기에 그리고 폭력에 굴복해 재산을 날리고 이혼을 당한 여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피해자를 이용해 그들의 친구들에게까지 거미줄같이 손을 뻗히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피해자나 마찬가지인 여자가 오히려 가해자처럼 자신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마저 손가락질당하고 구타를 당하는 경우마저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들을 만날때마다 은수는 같은 여자여서 그런지 도저히 양재만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은수가 양재만의 꼬리를 잡고 양재만이 있는 곳을 찿아냈고 양재만은 도망갔다. 은수는 끝까지 쫓아갔고 결국 어느 공사장안으로 들어간 양재만은 더이상 도망갈곳이 없자 은수에게 공격자세를 취했다.
양재만은 여자를 공략하는 능력이나 사기를 치는 재주는 비상할지 몰라도 싸움을 잘하는 그런 스타일의 남자는 아니었다. 은수는 그런 양재만을 노려보다 각목을 하나 집어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런 은수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양재만이 말했다.
『이건 무슨뜻이야? 』
『뭐?? 』
양재만은 은수가 자신쪽으로 던진 각목을 들었다. 아무리 형사라고 하지만 어차피 계집애인데 각목까지 들고 여자하나 쓰러트리지 못하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양재만이었다. 하지만 양재만은 일대일 상황에서 자신에게 각목까지 던져줄정도라면 그만큼 자신을 제압할 자신이 있기때문일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을 자신을 잡으러 온 형사라기보다는 자신의 도주로를 막고 서 있는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양재만이 각목을 휘두르는 순간 은수는 몸을 숙여 각목을 피하며 양재만에게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양재만이 내리친 각목과 은수의 종아리가 공중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만났고 각목이 부러져 날아갔다. 은수는 자신의 종아리에 강한 고통을 느꼈지만 곧바로 발을 들어 양재만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리고 쓰러진 양재만을 깔고 앉아 미친듯이 양재만을 향해 주먹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특수과로 잡혀온 양재만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만약을 위해 되도록 얼굴은 많이 때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얼굴은 부어올라 있었고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옷도 사람도 걸레처럼 되서 역시 여기저기 작은 상처들을 입은 은수에게 끌려들어왔다.
조사를 받던 양재만이 갑자기 소리를 높여 경찰의 과잉폭력을 주장했다. 자신을 체포할 당시 충분히 체포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하며 나섰고 그는 결국 이를 언론에까지 흘려버렸다.
그리고 기자들은 특수과로 몰려들었고 특수과장은 이들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것을 제지하였다. 기자들은 사건을 은페,축소하려한다며 항의 했고 결국 특수과장은 지금 이렇게 몰려오는건 업무에 지장을 주니 다음날 오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겠다고 이야기 하며 기자들을 돌려보냈고 그 다음날 기자들은 특수과에 또다시 찿아왔다.
특수과장이 그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경찰이란 직업이.. 원래 폭력적인 일을 할수 밖에 없는 직업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범인이 다치기도 하고 우리 경찰들이 다치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과에서는 특별히 강력한 범죄나 특수범죄를 다루는 만큼 그런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
『하지만 그 정도로 사람을 폭행하지 않아도 충분히 체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특수과장의 말에 한명의 기자가 말했다. 그리고 기자의 말에 특수과장은 하얀 비닐봉투 안에 들어있는 부러진 각목을 들어 기자에게 보이며 말했다.
특수과장의 말에 특별히 대답을 하는 기자들은 없었다.
『물론 체포과정에서 예상외로 체포에 필요한 이상으로 과잉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경찰도 사람입니다. 이런 각목이 반토막될정도로 맞으면 아픈건 당연하고 큰 부상도 입을수 있지요. 하지만 그렇게 부상을 당해도 다음날 그 몸을 이끌고 범인을 잡으러 나가야하는게 우리들입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취재하러 오셨으니 범인을 잡은 형사가 여러분에게 해명하고 여러분들이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다만 기사를 쓰시기 전에 방금전 제가 한 말을 한번씩만 더 잘 생각해보시고 써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그말을 끝으로 특수과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왔고 잠시후 한명의 경찰예복을 입은 여자가 기자들 앞에서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특수과 신은수경위 입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생각하지만 문제를 일으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
기자들은 그런 은수의 모습을 보고 모두들 놀랐다. 덩치가 크고 건장한 남자형사일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어려보이고 말라보이기까지 하는 여자가 나올줄은 몰랐다. 차라리 모델이나 연예인이라면 믿을수 있을까 경찰예복만 빼면 도저히 경찰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여리고 갸냘퍼 보이기까지 하는 여자였다. 기자들의 눈에 보이는 은수라는 이름의 형사는 꽤나 이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귀여움이 많이 묻어나는 얼굴때문인지 상당히 어려보였다. 그렇게 마르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형사의 예복 치마아래쪽 종아리에는 마치 종아리 전체를 덮고있는듯 보이는 커다란 멍이 들어있는것이 보였다. 다리뿐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도 체포당시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들과 반창고가 붙어있는데다가 이마엔 붕대까지 칭칭 감겨있었다. 물론, 이마에 있는 붕대는 기자들 앞에 나가기전에 특수과장이 지시한 사항이었다.
『체포당시..범인이 공사장으로 도망쳤고 그런곳에서 체포를 해야하다보니 서로 상처가 생각보다 많아진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
은수는 이렇게 자신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모여있는 기자들앞에 서있는게 떨리는지 아니면 범인을 잡을때 다친 몸때문인지 조금은 몸을 떨리는듯한 모습으로 다시한번 고개를 숙여 사과하듯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기자들은 자신들이 준비해온 질문들을 은수에게 쏟아낼 수 없었다. 남자라 생각했던 형사가 아주 여려보이는 여자였고 해명하느라 온갖 변명을 늘어놓을줄 알았던 형사가 미안하게 되었다며 고개숙여 사과를 하고 있었다.
몇가지 간단한 질문이 은수에게 던져졌지만 왜 그렇게 심하게 폭행을 했냐는 질문보다 여자의 몸으로 이런곳에서 일하는게 힘들지 않느냐거나 여자로서 범인을 검거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등의 질문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은수의 취미나 이상형등을 묻는 질문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은수는 쓸데없이 여겨지는 질문들까지도 친절하게 하나하나 답변해주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해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기자들의 머리속에서는 이번 사건이 형사가 개인적인 감정등으로 범인을 과하게 폭행한 사건에서 범인이 한 여자를 공사장에 끌고가서 무자비하게 폭행을 한 것처럼 그림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신문에는
『범인 체포시 경찰의 과잉폭력과 진압 이대로 좋은가??!! 』라는 제목의 기사 대신에 『흉악한 범죄자들 이제는 경찰마저도 무차별하게 폭행!! 』『여경찰이 몸을 던져 각목을 휘두르며 자신을 공격하는 범죄자를 체포해.. 』등의 기사가 나갔고 기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여자 한명에게 무기까지 들고 설쳐댄 범인을 욕해대기 시작했고 그런 범죄자에 맞서 자신의 몸을 던져서 그들을 잡은 여형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딱히 특수과의 과잉폭력을 문제시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고 특히나 은수의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도 과잉폭력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덕분에 특수과 형사들도 이것저것 눈치보지 않고 예전보다는 조금은 마음 편하게 범인들을 잡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그덕에 안그래도 특수과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은수는 아예 특수과의 마스코트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고 다른 경찰서는 물론 그 기사를 접한 일반일들중에도 그녀를 동경하고 좋아하는 그녀의 팬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찰칵..
은수는 망설였다. 사실 은수가 범인에게 심하게 폭행을 가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잡혀온 범인에게도 되도록 인격적으로 대하려고 항상 노력해왔던 은수였지만 이 놈에게만은 그렇지 못했었다. 피해자들의 그것도 여자들의 고통이 같은 여자인 은수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오는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인지 굳게 마음을 먹고 왔음에도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백성기가 따로 자신이 체포했던 인물들중에 한명을 지정해 준것이지만 하필 이놈이 걸릴줄은 몰랐다. 어쩌면..그걸 알고 일부러 이놈을 지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할말 없으면 일어나리다.. 』
은수가 아무런 말도 하지않자 양재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실 양재만이 보기에도 은수는 이쁜 얼굴이었다. 얼굴과 몸매로만 본다면야 당장이라도 홀딱 벗겨놓고 엉덩이를 후려치며 따먹어주고 싶은 생각이지만 은수는 양재만과는 악연이었다.
자신의 형량감소등을 목적으로 반 협박적으로 시작했던 경찰의 과잉폭력에 대한 일이 자신에게 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법원에서 자신의 진술은 먹혀들지 않았다. 자신이 폭행당한것 보다는 여자가 폭행당한게 더 크게 그들에게 비춰졌으며 또한 여자가 그렇게 자신을 폭행했다는 것도 잘 믿지 않는 분위기인데다가 은수가 특수과내에서 가장 얌전한 편인 형사이고 지금까지의 근무성적이나 잡혀온 범죄자들에게 대했던 행동들을 미루어 보았을때 은수가 딱히 양재만에게만 그럴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주장은 묵살되어 버렸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위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나 형님들마저도 여자에게 맞은걸 자랑하듯 떠벌리고 다니는 멍청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댔고 그런 이유들로 이 여자는 자신과 충분한 악연이었으며 오래 보고 싶지 않은 여자였다. 일어나 돌아서는 양재만의 뒤에서 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
은수가 고개를 떨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했고 은수의 그 떨림이 양재만의 귀에도 들어왔다. 어리둥절해 하던 양재만은 깜짝 놀랐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구타한 것에대한 사과인줄 알았는데 지금 이 여자는 아니 이 형사는 자신을 체포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체포시 폭행문제가 자신에게 나쁜영향을 주는 바람에 형량이 조금 더 늘어나버린 것은 사실이었으나 자신의 범죄사실을 경찰에서 잘못알고 체포한건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체포한 사실을 사과하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이렇게 형까지 확정되어서 수감되어있는 사람에게 와서 사과하는 형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양재만이 다시 은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은수는 한손으로는 자신의 죄수복의 끝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떨며 말하고 있었다. 마치 헤어지는 애인에게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 여자처럼...
양재만은 그런 은수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한쪽 구석에서 캠코더로 이런 상황을 찍고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처음에 그 남자를 보았을때는 그냥 이 여형사와 같이온 형사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남자는 자신이 본 기억이 없었다. 형사라면 그래도 조금은 낯이 익을텐데 그렇지가 못했고 더구나 같이 온 형사는 마치 이 일은 자신과 관계가 없다는 듯이 자신을 수사하려고도 질문을 던지려고 하지도 않고 구석에서 내내 촬영만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여형사..
처음에는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런것은 아닌것 같았다. 울고있는듯 몸이 떨리고 있었고 더구나 무슨 꿍꿍이를 계획했다고 해도 마치 헤어지자고 말하고 통보하고 떠나가는 남자친구에게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여자처럼 행동하면서까지 일을 계획했다고 보기는 어려울듯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은수를 보자 감옥에 갖혀있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오래전 자신에게 매달리던 여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도 없는 은수를 보며 양재만은 등을 돌렸다.
은수를 등지고 돌아선 양재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났다. 사실 양재만은 조금 전 무슨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여자가 자신에게 어떤 꿍꿍이가 있지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우는듯 자신에게 매달리는 여자를 보며 오래전 자신이 울리고 사기치던 여자들을 떠올렸다. 거세게 그에게 반항한 여자들도 있지만 그에게 폭행당하면서도 그에게 끝까지 매달리는 여자들도 꽤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에게 매달렸던 여자들에게 느꼈던 느낌...
그 느낌이 이 여자형사에게서도 전해져오는것 같았다.
결국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매달렸던 그 여자들처럼..
그런 여자들을 요리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이곳에서 나가는 것은 힘들고 자신이 요구할 수 있는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는 한때 자신을 코너에 몰아넣었던 그리고 무자비하게 자신을 두드려 팼던 이여자를 자신의 발앞에 무릎꿇리고 비참하게 강간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느꼈다.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왠지..이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봐서.. 그리고 지금껏 여자를 다루어온 경험으로 봐서 거의 모든게 가능할 듯도 보였다.
『마약도..가져다 줄 수 있으려나? 』
다만, 이 여자가 어디까지 들어줄 수 있는지 잠시 시험을 해본 것이었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를 들어준다는 은수의 말에 양재만은 이 별관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