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과 여형사 - part3(0 - 도입)
불조차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안 침대와 벽사이의 작은 공간에 은수가 벽에 등을 기댄채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은수는 자신의 무릎을 팔로 감싸고 그위에 턱을 대고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는 앞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얼마전 정형사와 술을 마시고 난 이후부터 은수는 알수없는 피로함에 시달렸다.
워낙에 경찰이라는 생활자체가 일정한 생활리듬을 가지게 만들수 없는 일이다보니 언제나 피곤하긴 했어도 이상하리만치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피곤함을 느끼곤 했다. 더구나 주혁과 함께 있을때는 딱히 일이 힘들다거나 피곤하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는데 주혁이 파견나간 이후 그 정도가 심각할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동훈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난 후 병원에서 은수는 현진에게 아버지가 죽는 꿈을 수백번도 넘게 꾼것 같았다. 꿈속에서 현진이가 칼을 들고 자신의 아버지를 찌를때마다 통점이라는..그 극점이라는 곳을 찔릴때 느꼈던 고통이 그대로 은수에게 전해지는듯 엄청난 고통이 은수의 몸을 갈갈이 찢어놓는듯했으며 그럴때마다 은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꿈속에서 현실까지 이어지는듯한 고통에 꿈에서 깨어난후에도 몸을 심하게 떨며 몸부림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날이 몇일이나 계속되었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은수의 머리속에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동훈이 자신을 잡고 있었을때 귀에 속삭였던 그 말이었다. 생각하기 싫었다. 당연히 동훈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 자신을 절망감에 빠트려놓으려고 그리고 현진이를 미워하게 만들려고 한거라 생각이 들었다.
현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볼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현진이 정말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면 은수 자신으로서는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없을것만 같았다.
은수가 깨어나고 현진은 계속 은수 옆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면서 어쩔줄 몰라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순간에도 은수의 머리속에는 아버지와 현진의 일만이 떠올랐다. 그리고 현진을 볼 수록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참을수 없을만큼 몰려들어왔다.
그래서 은수는 혼자 있고 싶다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현진이 조차 자신의 병실에 들어오는것을 거부해버렸다.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고민과 갈등이 은수를 덮쳐와서 그런지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피로감이 점점 더해져만 갔다. 그리고 피로감이 쌓여가는 느낌이 들때마다 생각하는게 너무 힘이들어지고 그러자 모든게 귀찮아졌다. 생각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그렇게 잠이들고 나면 또다시 아버지와 현진의 문제가 은수를 괴롭혀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중 은수는 주혁을 생각해냈다. 물론, 주혁이 이 문제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혁이 옆에 있어준다면 어느정도 결정을 내리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것 같았다. 부산에 있는 주혁을 불러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것이 걱정이 되어 한동안 망설였지만 그나마 주혁이라도 없으면 스스로 이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할것 같아 현진에게 주혁을 불러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주혁을 불러달라던 이야기를 들은 현진은 왠지 주저하며 은수의 부탁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현진은 주혁이 칼에맞아 입원해 있다는 이야기를 은수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은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또다시 한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꿈속에서 주혁과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멀리 가버리는 모습만이 계속해서 은수에게 비쳐지고 있었고 꿈이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도 그럴것 같은 느낌에 은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다시 깨어난 은수가 의사와 현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혁을 봐야겠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진은 마지못해 그런 은수를 주혁에게 데려다 주었다. 차를 타고 주혁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도착했을때 주혁은 산소마스크를 쓴채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은수가 너무 힘이들어 의지하고싶었던 그 사람이 지금 이렇게 죽은듯 누워있었다.
이곳에 오기전에 현진에게 좋지않은 상황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자신이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기면 그는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뜨고 그런 은수를 안아줄것만 같았다.
그런데...막상 이렇게 직접와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주혁을 보니 자신이 무슨짓을 해도 주혁은 일어나지 못할것만 같았다. 꿈에서처럼 그렇게 주혁이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것만 같았다. 이제 더이상 주혁을 보지 못할것만 같은 생각을 도저히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은수는 지금 주혁이 깨어날수 있을지 없을지..또는 살수 있을지 없을지...그런 생각보다 이제 주혁은 더이상 자신의 앞에서 웃어주지 못할거란 생각에 주혁에게 버려진것만 같은 생각만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 두명...
아버지를 잃고 외로움에 떨며 세상을 무서워하던 은수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던 두 사람.....
지금 그 두 사람 모두 그것도 한꺼번에 자신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 은수는 다리가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슬프고 기가막히고 답답한데도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았다.
은수는 아주 오래전 현진이 아니 은진을 만나기전에 느꼈던 외로움이라는 그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외로움이 느껴지자 두려운 마음에 그걸 이겨내려고 주혁과의 좋았던 시간들 그리고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좋았던 시간들을 생각해봤지만 그러면서 현진과의 좋았던 일들도 같이 떠오르고 결국에는 죽은듯 누워있는 주혁의 모습과 아버지를 죽이는 현진의 모습이 연결되어 떠올라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들 모두가 자신에게서 멀어져 버렸다는 생각에 또다시 더 큰 외로움을 느껴야만 했다.
은수는 아직도 현진이 좋았다. 그리고 모든걸 용서하고 현진의 손을 잡아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현진을 보면 또다시 아버지 생각이 날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러면 현진을 또다시 미워할 것만 같았다. 현진이 아버지를 죽인것도 생각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자신이 현진을 증오하는 눈으로 바라보는것도 싫었다. 은수는 아직 현진이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현진이가 미워지는 것도 사실이었고 증오의 눈으로 현진이를 바라보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마음아파할 현진의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싫었다. 사랑과 증오라는 상반된 두 감정이 동시에 은수의 마음속으로 파고들면서 은수는 그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한없이 현진이를 미워하다가도 어느순간부터는 다시 한없이 현진이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주혁이..그리고 현진이 미칠듯이 보고싶고 그리웠다. 주혁에게 그리고 현진에게도 달려가서 그들을 끌어안고 펑펑 울고만 싶지만 주혁이 깨어나지 못할것만 같은 생각에 자신이 현진을 증오하는 눈으로 쳐다볼것만 같은 생각에 두렵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반대로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는것도 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은수는 현진이를 이해했다. 실수라고..그랬다. 분명 현진이가 무슨 원한관계가 있어서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진도 어쩔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을 다잡아봐도 현진이가 미워지는 감정은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도 않고 그저 외롭고 무섭고 두려렵기만 했다. 차라리 주혁이나 현진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떨고 있지는 않을텐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몇일동안 어두운 방안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있던 은수가 한가지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자신이 아버지를 살릴수도 주혁을 살릴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현진을 다시 볼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결론은 하나였다. 그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기전에 자신이 멀어지는것..
자신이 이 세상을 등지는것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한가지 해야할일이 있었다.
최주혁..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해야할것이 생각이 났다.
최주혁이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다면 그건 백상제약과 관계된 인물이거나 그에게 사주받은 인물임이 확실했다. 백상제약과 유정회가 어떤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확신이 있는만큼 어쩌면 유정회쪽의 인물일 수도 있었다.
유정회쪽이야 원래 범죄조직이니 유정회쪽은 몰라도 백상제약쪽은 조사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어차피 처음 조사를 시작했던 "약"이란 존재는 백상제약쪽에서 나온 것일 확율이 높았고 그런 백상제약에 접근하다보니 유정회가 관련이 되어서 튀어나온것이었다. 백상제약이 그 약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잡아야했다.
그리고 그 증거를 가지고 백상제약을 조사하다보면 주혁의 일과 관계된 무언가도 나올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백상제약을 수사할 방법이 없었다. 조사하던것도 주혁이 떠나면서 중지한 상태고 같이 조사를 하던 주혁마저 저렇게 병원에서 누워있었다. 경찰력에 기대서 해결할수 있는 상황은 안되었다.
결국, 개인적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제 은수에게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다 한들 더이상 은수에게 나빠질 것도 없었으며 차리리 무엇인가 잘못되서 자신의 흔적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햇다. 그렇게 생각한 은수는 백남근의 집에 잠입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에 주혁이 그랬듯이 그곳에가서 증거가 될만한 자료를 찿아보면 될것이었다.
만약 증거를 찿지못하거나 그때의 주혁처럼 잡힌다하더라도 거기서 죽으면 그만이었다.
만약 은수가 백남근의 자택에서 죽는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가치는 있었다.
경찰이 자택에서 죽으면 일은 커져버린다. 백남근의 집에 가기전에 몇일정도 후에 메일이 갈 수 있도록 담당검사에게 예약메일을 보낸다면 그리고 은수가 사라졌다면 그걸 본 검사는 은수의 실종을 수사하면서 백남근 자택 전체에 대해서 수색하고 필요하다면 압수할수도 있을것이고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무언가 나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생각이 정리가 되기 시작하고 할것이 결정이 된 은수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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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렇게 무작정 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 』
현진이 그렇게 은수를 보낸날...
그녀는 혜정이 운영하는 주점으로 가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훈과 혜정은 현진을 보스로 모시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현진이 취해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술을 그리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닌 현진이었는데다가 제일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좌하는 그들앞에서도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한번도 보인적이 없었던 현진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한참동안 아무말 없이 술만을 들이키던 현진이 빈 술잔을 벽을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벽에 부딪친 유리잔이 힘없이 부셔져 내렸다. 지훈은 보스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아무말도 해줄수 없었다. 그날 은수가 현진에게 총을 겨눈날 지훈도 먼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있었던 지훈이었기에 평상시 같으면 아무리 보스의 언니라고해도 뛰어들어 보스를 보호했을 그 역시도 그런 보스에게 총을 겨누는 은수를 보고도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훈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혜정도 아무말 없이 현진의 옆자리에서 현진의 새로운 잔에 묵묵히 술만 따라주고 있을 뿐이었다.
『언니가....언니가....차라리...날 죽였으면 좋겠어..... 』
『신은 왜 하필 나같은 걸 언니옆에 있게 한거야...왜!!! 』
예전에 은진일때의 기억이 모두 있는건 아니지만 현진은 분명히 은진이라는 이름으로 은수에게서 구원을 받았다. 기억을 잃고 그 모진곳에서 짐승처럼 남자들의 정액받이에 불과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구해준 것도 은수였고 잃어버렸던 현진이라는 존재를 찿아준것도 결과적으로는 은수의 덕이었다. 그렇게 현진에게 자신의 모든걸 쏟아부어주듯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줬던 은수였는데 지금 현진은 그런 은수에게서 모든것을 빼앗아 버린 사람이 되어버린것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자결이라도해야되는일 아니겠습니까.. 』
현진이 혜정의 집쪽으로 가려고 할때 뒤에서 지훈이 현진을 불렀다.
지훈은 무릎을 꿇은 채로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현진은 지훈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분명 자신이 죽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말리려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도 무릎을 꿇고 지훈의 얼굴과 높이를 맞추고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귀에 떨리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말을 마친 현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혜정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훈은 그자리에서 그렇게 현진이 들어간 혜정의 집을 바라보며 한참동안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