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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장막을 넘어온 스파이(11)

밤은 젊고 나도 젊다, 도시는 늙었고 그는 어리다. 늙은 도시의 늙은 보도 위에 발소리가 울린다, 도시가 비명을 지르나 보다. 곤돌라 하나 없는 밤거리에 나와 그의 발소리만이 울리고 그 소리는 살아 움직여 건물의 벽을 타고 오른다. 오늘 밤 만큼은 소리를 내며 걷고 싶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병아리는 내 앞에서 길을 걸으며 자꾸 뒤를 돌아본다. 내가 그를 버리고 도망갈지를 걱정하는지, 아니면 내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 뒷통수를 날려버릴지를 걱정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이 타자에 대한 완전한 인식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그와 최대한의 경험을 같이 해야 하는 법, 그와 나는 아직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인식에 다다르지 못한 것 같다.

 




현명한 어머니는 아이를 뒤에 세우고 따라오라 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를 앞세우고 아이가 어긋난 길로 가지 않게 할 뿐이다. 나는 현명한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밥도 삼식이에게 삼시 세끼 다 챙겨줄 수 있고 아침에 깨워주고 씻겨주고 밤에는 재워줄 수 있다. 다만 어머니에게 필요한 아이가 없을 뿐이다. 좀 나이 차이가 적긴 하지만 저 병아리가 내 아이가 되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에게 몹쓸 짓을 했던 엄마를 무서워하진 않을까? 운하에 비친 나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어머니가 될 얼굴은 아니다.

 




지구가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그만 좀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내 발걸음 한 걸음 한걸음을 뗄 때마다 지구는 나를 붙잡는다. 약국의 문이 나를 부르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다, 혀를 놀려 콘돔 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병아리의 눈이 살짝 기대하는 듯 치켜졌다가 아쉽다는 듯 내려앉는다.

 




성당 앞의 카페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라 노테 카페 밤이라는 이름을 갖고 밤의 어둠을 불살라 빛을 밝힌다. 그곳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저녁을 먹는 부부, 관광객, 연인들의 열기로 몸을 녹이러 나온 불나비들이 전등에 비친다. 아니면 전등에 몸을 비춰 반딧불이가 되어 짝을 유혹하고 싶었나 보다.

 

 몇 년 전만 해도 짝을 유혹하기 위해 일이 끝나면 나는 이곳에 죽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곁에 앉으려던 남자들은 무엇 때문인지 실례한다고 하며 총총히 떠나버렸다. 어둠 속으로 난 통로를 본 것인지, 암흑이 두려웠는지, 죽음의 냄새가 났던 것인지, 나는 몇 년간 어떤 남자와도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 내가 그곳의 출근부에 도장을 찍은 지 1년쯤 되자 그곳에는 어느새 남자들은 오지 않는 여성 전용 카페가 되었고 주인은 나를 재수없다는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오지 않은 지 몇 년이나 되었는지 어느세 카페의 절반은 남자로 가득하다. 나와는 섞일 수 없는 공기가 내 코를 간지른다. 주인의 눈에서도 증오는 사라져 있고 만족과 기쁨만이 가득하다. 밤색 머리의 여인의 눈동자에는 초로의 신사가 있고 초로의 신사의 눈동자에는 밤색 머리의 여인이 새겨져 있다. 한숨을 쉬고 병아리를 쳐다보니 병아리도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다. 그 시선의 끝에는 파스타 3인분을 시켜 다섯이 나눠 먹는 가족이 있다.





 

 

그의 어께를 툭 치고 이번엔 내가 그를 이끈다, 그가 내 손에 붙들리면서도 시선을 그곳에서 떼지 못한다. “배고파? 아까 밥 안먹었었지? 집에 가서 대충 줄게” 그의 눈에 서러움이 어린다. “전 누군가와 같이 밖에 나와서 무언가를 먹은 기억이 잘 없어요, 휴일에 저를 데려가시던 아저씨는 저를 사랑해 주셨지만 무언가 먹을 때는 아저씨가 계시던 부대의 식당에서 먹이셨죠, 스쿨 안에서도 항상 저는 밥을 혼자 먹어야 했어요, 항상 휴일에 강변에 도시락을 싸서 다녀온 친구들이 부러웠고 저는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어요” 기억해 둘 가치가 있는 정보인지 모르겠지만 한 귀로 빠져나가지는 않는다. 서러움이 이슬로 맺어져 땅바닥에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공허한 눈동자는 죽음으로 통하는 통로처럼 보인다, 그의 눈에도 내 눈동자는 암흑이 봉인된 버려진 땅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의 눈에 빛을, 나의 눈에 삶을 되찾아 주고 싶다. 그의 손을 붙잡아 카페로 이끈다, 주인의 눈에 경악이 서리고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나에겐 연인이 필요하고, 그에겐 어머니가 필요하다 교환할 수 있다, 잠깐의 남자의 애정을 스파게티 정도와 엄마 같은 포근함으로 구매하는건 나쁘지 않을것 같고. 어머니의 포근함을 남자의 사랑으로 교환하면서 스파게티를 얻어 먹는것도 나쁘진 않겠지. 어머니의 사랑과 스파게티 남자의 애정과 아이의 귀여움은 이 자리에서 잠깐 교환된다. 뭐 그에게 연인이 필요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주인이 불안한 눈으로 접시를 들고 나에게 접근한다, 구두가 보도에 질질 끌리며 신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이 다가오기도 전에 나는 그에게 까르보나라 2 인분을 주문한다, 밖에 나와서까지 나폴리의 음식을 찾을 필요는 없다. 주인이 나에게 엉덩이를 보이자 마자 휴 하는 한숨 소리가 들린다, 나에게만은 기사도가 아니라 마피아의 도를 지키려나 보다. 바로 옆자리에는 가난한 연인(?)으로 보이는 두 부부가 봉골레 1인분 한 접시를 시켜 나눠 먹고 있다, 파스타 접시를 사이에 두고 둘의 이마가 부딪는다. 부딫힐 때 마다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의 귓바퀴를 간질인다. 주인을 목청껏 소리 높여 부르자 주인이 움찔 하면서 부들부들 떨더니 꼬리 잘린 강아지의 모습으로 빼족대며 걸어온다. 카페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린 듯 하지만 상관 없다, 오늘은 이 카페에 들어선 중 제일 행복한 날이다. 그에게 2인분 모두를 큰 접시 하나에 담아달라 부탁한다. 긴장했던 그의 몸이 풀어지며 미소가 어린다.

 

 



테이블 가운데 놓인 재떨이가 한 눈을 빛내며 나를 비웃는다, 테이블 옆의 로마시대 병사 모양의 후추통은 웃음을 끊일 수 없는지 아얘 얼굴을 지워버렸다. 손가락으로 탁 퉁겨도 그는 울지 않는다 여전히 너무 웃겨서 차마 울 수도 없나보다. 병아리의 시선이 나의 손가락을 향하고 있기에 슬쩍 발을 그의 허벅지로 가져가 보려다 말았다, 남자아이라 해서 추행을 당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이미 나는 그를 여러번 추행했다. 여자가 강간을 당하며 비명을 지르고 질액을 내뿜는다 해서 그것이 강간이 즐겁기 때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사정을 한다 해서 추행이 즐거운 것은 아닐 수 있다. 내가 강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무서워서 나에게 복종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 말고 아무도 믿을 수 없기에 그것도 아니면 나에게 아양을 떨어서 위기를 벗어나려는 병아리의 가련한 날갯짓일수도 있다.

 

 


목덜미 사이로 땀이 흐른다, 갑갑하다, 나는 1:1 만남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 이런 분위기에 익숙치 않다. 유리잔에 담긴 물을 삼키고 반 모금 정도를 입술 밖으로 밀어내 땀을 흘려보내자 땀과 찬 물이 섞여 가슴 사이로 흘러내린다. 창밖에는 우울한 비가 내리고 빗물이 흘러내리듯, 내 가슴에는 우울하게 빗물이 흘러내린다. 열기가 좀 가시는 것 같더니 몸이 다시 화악 달아오른다. 물 잔을 통과해서 본 그의 눈길은 물방울을 따라 턱에서 내 가슴으로 향한다. 그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달아오른다, 추운 나라에서 온 아이라 늦은 밤의 기운에 빨리 취하는가 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이 테이블 가운데 놓여지고 내가 먼져 포크를 집어들어 국수를 말아 그의 입에 건낸다, 털이 뽑혀버렸는지 움직이지 않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난 수줍어하는 남자는 싫어” 이마를 살짝 부딫혀 작은 소리로 속삭여주자 그가 포크를 뺏어 덥썩 입에 집어넣더니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쑤셔넣기 시작한다. 크림과 면이 따로 노는것 같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는것 같다.

 


파스타 1인분을 혼자 먹을때와 2인분을 둘이 먹을때 언제가 더 빨리 먹게 될까? 경쟁심리가 붙은 후자가 1.5 배 정도 빠르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먹을게 없겠다 싶어 파스타를 둘둘 말아 나도 입에 집어넣었다, 포크에 면이 감기며 하얀 국물이 반경 30cm 범위 안에 튄다, 마치 병아리의 물건이 폭발했을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웃음이 나온다.

 


“좋아해요” 그가 마지막 남은 파스타를 내 포크에서 뺏어내서 넬름 삼키며 말한다. “알고 있어” 그래 당연히 알고 있다,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어른은 어른만의 일이 있고 어른이 아이의 일에 몰입한다면 그 어른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마련이다.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기에 당연히 목이 메어 물을 한컵 들이켰다. 켁 하면서 물과 함께 파스타 한 가닥이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의 등에 달라붙는다. 마치 썩어버린 위장에 말라붙은 기생충 같다.

 


“하지만 난 안돼, 나를 욕할거야, 타국의 군인 그것도 소년병을 성적으로 고문했다고 해외 토픽에 뜰지도 몰라, 소비에트와 우리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수도 있어, 너 한명 때문에 3차 세계대전 일어나면 니가 책임질거야? 그리고 나 너 싫다” 그를 압박했음에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죽지 않는다. “그럼 어젯 밤에 나 끌어안고 한 말은 잠꼬대에요?” 그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위장 안에 들어간 파스타가 메두사의 머리처럼 꼬이면서 장벽을 강타하고는 심장을 뚫고 나온다, 장기 몇 개는 벌써 돌로 변했나보다.

 


“알아요, 어른이니까 아이한테 함부로 했다가는 다들 욕할거라는거, 어제도 그랬잖아요 로빈님이 먼져 건드리면 강제추행이니까 내가 알아서 해보라구요, 그럼 내가 먼져 시작할게요,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이 후추통을 로빈에게 선물로 드릴게요” 그가 벌떡 일어나며 로마병정 모양의 후추통을 집어 들자 재떨이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유리로 된 몸을 반짝인다. 얼굴없는 병정은 더 이상 웃지 않고 경악할 뿐이다. 오 제발 그런 말은 작은 소리로 해 줘, 옆 테이블의 가족이 이상하게 본다고.

 


“이봐 진정해, 여기 들어와서 엄마 아들 놀이 잘 하고 있었잖아, 왜그러는거야? 소꿉놀이 해달라고?“ 내가 그의 머리를 콱 잡아 아래로 짓누르자 그가 으르렁댄다. “자꾸 그러지 마요, 아까는 내 첫키스도...” 됐다 이제 그만 여기선 너무 부끄럽다, 달마져 별마져, 근처의 모든 건물도 비웃는다. 그 비웃음소리가 내 폐부를 찌른다. 그의 입에 포크 뒷부분을 살짝 물렸다


 


“더이상 안 받아주면 더 큰소리로 할거에요” 그가 포크를 네벹으며 주절댄다 .아이들은 잔인하다, 쥐의 꼬리를 잘라 벽에 걸어두고, 개미의 더듬이를 뜯은 뒤 개미를 물풀에 집어넣고, 더 이상 방치했다간 내 마음을 토막내어 7개의 구역에 던져넣을지 모르겠다. 이정도면 내가 주도한 사랑 싸움은 아니다.

 


“그래 알았어, 됐어 받아 들일게 대신 조건이 있어” 나는 그의 귀에 속삭인다, 다행히 이쪽을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가 내 눈을 바라본다, 가까이서 보니 병아리라기 보다는 강아지를 닮았다. 윤기 나고 긴 장발에 까맣고 검은 눈 동글동글한 이목구비. 검은 눈에 나의 얼굴이 다시 비친다, 나를 바라볼 용기가 생겼나 보다. 이제 용기를 갖고 나에게 대쉬를 한 보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저 후추병, 훔쳐서라도 선물로 줘야지” 그의 머리를 잡지 않은 한 손을 로마 병사에 뻗어 나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입꼬리가 사악 올라간다, 하늘엔 반달 그의 얼굴엔 그믐달이 떴다. 음식 값보다 두배 더 많은 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우리는 꼭 끌어안은 채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로마 병정을 들리고, 나는 마지막 순간에 로마 병정의 연인 유리 재떨이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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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야한 부분을 전혀 넣지 않아봤습니다. 과연 문체만으로 야설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야한 부분이 없으면 로맨스 소설이 될지는 평론가 여러분이 정해주셔야겠죠.

 


사실 저는 자지 보지 씹 좆 이런 어휘를 쓰지 않고도 야설을 쓸 수 있을지 시도중입니다. 표현과 단어 선택 묘사 등등을 잘 구사한다면 그런 구체적이지만 직설적인 어휘 없이도 충분히 예술적이면서도 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우영 화백의 그럼처럼 말입니다.

 


이번 소설에는 코넬 울리치의 환상의 여인, 그리고 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 이라는 자서전에서 발췌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에 올라갈 부분은... 수위가 높을겁니다.



ps. 전 매조키스트 기질이 있으니 까는 리플도 좋아합니다

 

사실 이제 야구로 치면 5회 초는 스리 아웃까지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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