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은막의 마왕 (1-1)
2008년 LA의 여름은 무더웠다.
이글대는 열기 속에서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플라스틱 주제에 썩은 듯이 보이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간판. 열린 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미적지근한 에어콘 바람에 섞인 기름 냄새가 이곳이 음식점이라고 알려준다.
안으로 들어서자 뚱뚱한 주인이 건성으로 인사를 하며 맞이했다. 나 이외의 손님은 없었다. 당연하지. 나라도 다른 목적이 없었으면 이딴 음식점에 식사를 하러 들어오진 않는다.
역시 그녀는 아직 출근하지 않은 듯했다. 주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걸 보니 지각이다.
소스가 줄줄 흘러 내리는 샌드위치를 반쯤 먹어 치웠을 때 그녀가 도착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은 욕을 했고, 시급에서 까는 건 물론이고 내일 부터는 나올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듣는다. 뭐라고 말하려 하는 듯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알겠다고만 말했다. 늦은 이유를 말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어제 밤 강간당해서 늦었다고는 역시 말할 수 없겠지.
마지막 근무를 전혀 의욕없이 시작하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 가게에서 가장 비싼 메뉴인 스테이크를 주문하자 주인의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게 보인다.
잠시 후, 두툼한 고기가 얹힌 접시가 나오고 그녀가 접시를 내게 가져 오려 할 때-.
나는 슬쩍 꺼내 놓은 원통을 그녀 쪽으로 겨누었다. 이 시대의 사람이 보기엔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는 금속 막대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엄연한 무기였다. 바늘을 극초속으로 쏘아내 무서운 위력을 낳는 니들건- 이지만 물론 이걸로 그녀를 피떡으로 만들 계획 따윈 없었다. 속력을 극도로 억제하고, 바늘 안에 즉효성의 마취제를 조금 채워 놓은 물건을 타이밍을 맞춰서 그녀의 발에 쏘았다.
“꺅--?!”
그녀 입장에서는 갑자기 한쪽 다리에서 힘이 맥없이 풀렸다고 느꼈겠지. 당연히 요란스럽게 넘어졌다. 내가 주문한 스테이크와 접시는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을 뒹굴었고.
나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고는, 시간이 없어서 다시 굽는 건 못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주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 분노는 내가 아닌 그녀에게 향했다.
“됐어, 됐다고! 접시 값은 됐으니까 그것만 정리하고 그냥 나가버려!”
그렇다고 잘라 버리다니. 이건 또 예상 이상의 수확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의기소침해서 그녀의 마지막 일인, 내게 요금을 받는 일은 시작했다. 여기서 인상을 조금 심어 놓을 필요가 있겠지. 이대로는 난 재수없게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짤린 원인을 제공한 놈팽이로 남을 테니까.
“이건 팁입니다.”
라며 내가 내민 100달러 지폐를 무심코 받아든 그녀의 손이 멈췄다. 아주 짧은 갈등 끝에 양심이 이겼는지 내게 지폐를 되밀었다.
“저, 미스터. 지폐를 착각하신 듯 합니다만.”
“아뇨,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저 때문에 일을 잃으신 것 같아서요. 그럼 이만.”
생긋 웃어주고 음식점을 나섰다.
샌드위치는 영 아니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했다.
이제껏 스크린 속에서 일방적으로 떠들기만 했던 그녀의 모습을 코 앞에서 지켜보고, 결코 전해지지 않던 그녀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고, 내 말에 반응해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 단순한 사실들이 견딜 수 없이 유쾌했다.
이걸로 첫 만남은 그럭저럭 과장되지 않게 연출되었다. 나머지는 우연을 가장해, 다시 만나서--.
“실례합니다, 미스터!”
음식점에서부터 달려온 듯 숨에 찬 목소리가 날 붙잡았다.
아직도 팁을 돌려 주려는 걸까. 이렇게나 강직한 성격일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여기서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라면서 나는 거칠게 숨을 쉬는 그녀를 돌아 보았다.
“왜 그러시죠?”
“이 돈은 역시 너무 많아요.”
“그렇다면 납득이 가는 만큼만 남기고 거슬러 주세요.”
“저-. 그, 그러기도 곤란해요. 저, 사실 매우 곤란한 상황이어서. 이 돈은 정말 큰 도움이 되요. 하지만 그냥 받기엔 너무 큰 돈이라, 저-.”
그녀는 얼굴을 푹 수그리고, 있는 힘껏 말을 짜 냈다.
“저를 사겠어요?”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아니면 통역기가 잘못 동작했나. 이 시대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된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굴을 수치로 일그러트리고 초조하게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착각 같은게 아니라고 알려준다.
매춘을 제안하는 건가.
----------하.
나는 급격하게 입을 가리고 몸을 뒤틀었다. 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깜짝 놀라 그녀는 주춤했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스크린 속의 인형이었던 그녀가, 현실로 뛰어 들어와. 내 눈앞에서 말하고 숨쉬며 움직이고. 내게. 백만 천만의 관객이 아닌 바로 이 나 혼자에게. 매춘을 제안한다.
최고였다.
“---싸군요.”
“예?”
“고작 100달러로 몸을 팔려 하다니, 너무 하다는 소립니다.”
“차, 착각하지 마세요. 저 그런- 직업적으로 하는 여자가 아니에요. 그냥, 그, 당신이 친절하니까, 같이 보답을 해 주면서 같이 즐기기도 하는 겸--.”
“아, 예.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100달러라뇨. 그런 가격으로는 당신을 안을 수 없습니다.”
“예?”
“1만 불. 그 이하로는 한 푼도 깎지 않겠습니다.”
100달러 지폐를 받았을 때보다 100배는 큰 거대한 충격을 받은 그녀는 얼어 붙었다.
너무 터무니 없는 액수이기에 농담이냐고 웃으려 하지만 내 진지한 눈을 보고 실패한다. 나는 농담 따위가 아니라고 증명하듯 품에서 수표책을 꺼내서는 가볍게 10000달러를 휘갈긴다. 그리고 뒷면에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주소를 적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시면서 손을 내밀다 멈칫했다. 눈앞의 먹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일까. 불과 어제 거칠게 강간당하는 험한 꼴을 보았던 그녀는 나를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 보았다.
난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수표를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뒷걸음질 쳤다.
“가져가서 환전하세요. 그리고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면 저녁 식사 때 쯤해서 그 주소에서 뵙지요.”
“아--. 그, 예.”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몸을 돌렸다.
그녀는 돈을 받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현재 그녀는 재정적으로 극히 곤란한 상황이었으니까. 어제 강도에게 몇 푼 안 되는 돈과 몸까지 빼앗겼고, 오늘은 직장까지 잃었다. 이미 동료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까지 빌린 상태였는데다 1, 2회 정도지만 마약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본래 역사대로라면- 약 일주일 후, 그녀는 절망에 빠져 자살한다.
하지만 지금 손에 그 경제적 곤란함을 단숨에 해결해 줄 마법의 수표가 있는 이상 그럴리는 없다.
사실 지나치게 충분한 액수니 만큼, 저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릴 수도 있다. 난 그녀의 주소는커녕 이름도 묻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 저기요!”
“또 뭐지요?”
“제 이름은 아델이에요.”
“예.”
알고 있어.
아델. 불쌍한 아델 L. 무어.
당신의 흑발을 물려준 것이 틀림없는 할머니는 한국계, 그러니까 아시아의 피가 쿼터란 것도. 당신이 배우 지망생이란 것도. 지금 같이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몸부림 치는 동료들이 누구란 것도. 신이 아니고서는 알 도리가 없을 당신의 일주일 남은 미래도 나는 모조리 알고 있어.
내가 아는 한 그녀는 오늘 밤 틀림없이 내게 온다. 그녀는 배우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집세를 내는 것보다 더 큰 돈이 필요하니까. 돈을 물 쓰듯 버려대는 내 재력에 호소하려고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내 꿈의 첫 발자국이 이루어 질 것이다. 나는 부풀어 오는 가슴과 성기를 애써 진정시키며 서둘러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