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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협야화(情俠冶話) 7 회


▣ ▣  정협야화(情俠冶話)  ▣ ▣


 
▣ 제 7 회  혼란의 단초(端初)


몽아의 손에 의해 와해되었던 언사분원을 중원 제일의 상관으로 재건되어 그 문을 여는 날이다.  


“ 대사형이 흑살귀 여천을 무난히 다루어야 할 텐데! 욕심이 과하여 두 사람이 다투기라도 하면 큰 손실이 된다. ”


몽아가 지난 날 언사분원을 정리할 때, 그 재주가 아까워 살려둔 분원의 책임자 여천이 제법 강직한 인물이라 두 사람사이에 다툼이라도 일어날까 하는 염려였다.


“ 그래, 할아버지의 유지를 지키려면 대사형이 일익을 담당해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중원 상권의 흐름을 남김없이 터득하는 일이 급선무, 헌데 대사형은 무인이지 상인이 아니다. 무엇이든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성격을 고쳐놓지 않으면 안 된다. ”


급하고 다혈질인 무정랑의 성격,
비록 언사분원이 도원궁을 대신하나 겉으로 드러나는 분원은 상관(商館)이며 그 주인은 여천이다. 또한 이 언사의 도원궁은 몽아가 은밀히 모든 계획을 추진해야할 총 본부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곳을 책임지고, 여천을 비롯한 모든 수하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다스려야할 무정랑이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게 분명하다. 그 고심 때문에 머리가 아픈 몽아의 곁으로 만여궁주가 다가왔다.


“ 어... 사부! ”


“ 그래, 얘야. 네놈이 대사형을 이토록 위하다니... 사부의 마음이 흐뭇하구나! ”


“ 히히, 사부를 대신한 거잖아. 다 사부의 가르침이지 뭐... ”


게슴츠레 눈을 뜨고 궁주를 바라보는 몽아의 표정이 아둔하다.
어릴 때 부터 한 번도 남아래 서 본적이 없는 만여궁주, 제법 뛰어난 재질을 타고나 한순간 무림에 우뚝 서고, 타고난 상재商才)로 중원의 상권까지 거머쥐었다.
그 자부심이 중원까지 넘보게 된 지금, 이 어리석은 제자가 무력화된 언사분원까지 멋지게 다시 이루어 도원궁의 대사제에게 분원의 책임을 맡기자 요청해왔다. 또한 자신의 육체에 놀아나 조만간 그 가공할 무공까지 자신의 수중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만여궁주는 마음속으로 그저 흐뭇하기가 한량없어 얼굴에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 그러냐? 이 사부의 가르침이라 말해주니 고맙구나. 자... 이제 너의 대사형을 축하해주러 안으로 들어가자. ”


“ 그래, 사부. 들어가자. ”


실내에는 곱게 차려 입은 예원과 한껏 멋을 부린 무정랑이 함박웃음을 띠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원에게 찡긋 눈인사를 한 후 무정랑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 히히히... 대사형. 축하한다. ”


뚱하게 한마디를 던지는 몽아의 표정에 웃음보가 터지려는 것을 겨우 참은 무정랑이 만여궁주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 어서오십시오, 사부님. ”


“ 오냐. 이곳은 특히 중요한 요충지다. 너의 책임이 무겁겠구나. ”


제자 잘나 보이지 않는 사부가 고금(古今)에 있었던가? 그조차 도원궁을 대표하는 대제자다.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만여궁주의 곁에서 몽아가 지겹다는 듯 말했다.


“ 사부, 나 재미없다. 마당에 가서 놀래. ”


지금 만여궁주에게는 멍청한 제자 몽아의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대제자의 신위를 바라보며 든든한 마음을 금할 길 없어 손을 휘휘 내젓기만 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어느 한곳도 소홀하지 않게 꾸며진 내궁(內宮)의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몽아를 발견하고는 예원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다가왔다.


“ 형수, 기다리고 있었소. 내, 형수께 긴히 당부할 말이 있어요. ”


“ 이년, 그리 짐작하고 달려 나왔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


“ 어허, 아직도 이년이라 칭하오? 그만 두시오. ”


“ 아닙니다, 사제. 이년은 스스로 사제의 예녀(隸女)라 자처했습니다. 그 마음 변치 않을 거예요. 그보다 이년에게 하실 당부는 뭐에요? ” 


손에는 찻잔을 든 채 마소까지 띠며 소곤거렸다. 어쩌면 할 말을 짐작한다는 표정이었다.


“ 후훗, 이미 알고 있구려. 그래요. 대사형께서 조금 결기를 줄이고 언사분원의 가족을 모두 품에 품도록 형수께서 많은 힘을 기울여 주시오. ”


“ 대사형은 벌써부터 사제의 마음을 짐작하고 계십니다. 아무 염려마세요. ”


“ 과연 화제갈이오. 내 마음속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구려! 고맙소. 진정 고맙소이다. ”


“ 아이, 놀리지 마세요. 그 정도의 일도 짐작 못하고서 이년이 어찌 사제의 예녀라 하리까? 그보다 사제, 아마 오늘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예요. ”


“ 그 또 무슨? ”


“ 후후후 기대하세요. 이제 모두들 모였을 거예요. 어서 안으로 드세요. ”


 * * * * * * * * * * * * * * * * * *


마치 낙양의 도원궁을 옮겨놓은 듯 휘황한 내궁이다.
그곳에는 만여궁주가 몰려든 하객들의 예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궁주의 곁에는 무정랑이 함께해 내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예원이 그 복잡한 실내의 한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 사제, 저기! ”


“ 엇, 효림사저가 아니오. 사저가 어쩐 일로? ”


“ 호호호, 이년이 기대해도 좋을 일이 있다 하지 않았어요? ”


“ 또... 또 그런다. ”


“ 아가씨도 이년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제를 따르기로 했어요. 사제의 복심을 알아들은 게지요. ”


“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다니 다행입니다. ”


“ 해서 오늘을 때맞추어 자연스럽게 찾아 온 거예요. 가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요. ”


“ 하하하... 알았소. 허나 형수, 더는 이상한 생각은 마오. ”


몽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효림의 곁으로 다가갔다. 바로그때, 만여궁주의 호통소리가 귀를 울렸다.


“ 이년, 도망칠 때는 언제고, 다시 돌아왔으면 이 사부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어디서 꾸물거리고 있느냐? ”


몽아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효림을 보며, 어쩌면 둘을 다시 맺어줘 몽아의 머리에 든 무공을 수월히 빼낼 수 있지는 않겠는가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지난날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 사... 사부님! ”


“ 됐다. 또다시 과오를 저지르지 말도록 하라! ” 


많은 하객들이 몰려들었지만 언사분원은 도원궁 가족끼리의 축하연이 되어있었다. 궁의 원로부터 저 아래 하급무인들까지 먹고 마시고 요란하다. 그중 만여궁주의 일탈이 두드러지게 눈에 뜨였다. 이젠 강호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손에 들어올 것처럼 지존의 행세를 하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자리였다.
하기야, 근래에 들어 정체모를 인물에 의해 강호분원이 하나씩 사라져 갈 즈음 이렇게 지부하나가 우뚝 서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의문의 인물이 다시 공격해 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헌데 아직까지 아무런 낌새도 없다. 만여궁주는 자신의 위세에 눌려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해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 순간,


“ 하하하... 하하하하! ”


허공을 울리는 큰 웃음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번쩍 언사분원의 지붕위로 내려앉았다.


“ 어엇! 저놈은? ”


언젠가 도원궁에 날아들어 혼을 빼 놓았던, 얼굴을 흰 복면으로 가린 그 녹의서생이었다.


“ 저놈이, 저놈이 또 나타났다! ”


장중의 모두가 놀라 외마디 소리를 내뱉는 순간, 예원의 눈길이 몽아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몽아는 그 와중에서도 효림과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나누고 있었다.


“ 사제는 저 자리에 있다. 이상하구나. 그럼 저 인물이 누구란 말인가? ”


저 녹의서생은 몽아여야 했다. 그런데 몽아는 눈앞에 있다. 예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의 잠겨들 그때 대제자 무정랑이 녹의서생 곁으로 날아올랐다. 순간 녹의서생의 신형이 잠시 멈칫거렸다.


“ 가까이 다가들면 목숨은 없다. 돌아가라! ”


도원궁에서의 광경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훌쩍 날아오른 무정랑은 녹의서생이 뿌려낸 잠력을 견디지 못해 더 이상 녹의서생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힘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 내 오늘은 언사분원이 다시 문을 연 날이라 축하를 겸해 한마디 경고만 하고 돌아가리다. 만여궁주, 이사람 언제나 궁주를 지켜보고 있으니 더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근신하시오. ” 


그리고는 만여궁주가 무어라 대꾸를 할 겨를도 없이 신형을 날려 군중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녹의서생이 사리지는 순간 예원의 눈초리가 묘하게 빛났다.


‘ 저 서생, 지난날 도원궁에 나타났을 때와는 무언가 다르다. ’


다시 한 번 몽아를 돌아보며 의문에 잠기는 예원을 뒤로하고 내궁의 실내에 모인 하객들이 웅성거렸다.
답답한 일들을 다 털어 버리고 싶은 자리였다. 이제 원대한 계획에 불을 지필 때만기다리던 만여궁주의 면전에서 장중의 군중들이 소란스러워 졌다.
느닷없이 나타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툭 던지고 사라진 녹의서생, 그 말의 뜻이 무언가, 만여궁주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이 날카롭다.
바로그때, 도원궁의 막내제자 효정(曉晶)이 실내로 들어서며 만여궁주의 앞으로 다가섰다.


“ 사부님, 상관을 방문한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헌데 이 소란은 무엇 때문인지? ”


“ 별일 아니니 염려마라. 그보다 효림이 와있으니 가서 만나보아라. ”


“ 예? 언니가요? ”


어릴 때부터 거두어 제자로 삼은 효림과 효정, 큰 아이 효림은 세상 살기에 약삭빨랐고 효정은 그 성품이 조신하고 순진한 아이였다. 그런 효정에게는, 사부가 강제로 혼인을 시키려 하자 스스로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며 사부의 품을 떠나 도망쳤던 언니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실내 한 귀퉁이에 서있는 효림을 향해 달려가려다, 함께 자리한 몽아를 발견하고는 효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시 멈칫하던 효정이 마음을 다잡고 다가갔다.


“ 언니, 어인 일로 다시 돌아왔수? ”


아직도 효정의 어투는 서운함이 가득 담겼다.


“ 응, 몽아사제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 ”


“ 사부의 명이 아니고 사제 때문에 왔단 말이우? ”


어이가 없다는 효정의 말투다. 곁에서 바라보던 예림이 두 사람의 말을 가로챘다.


“ 두 분 아가씨, 이 좋은 날 그만들 하세요. 그보다 효정아가씨는 어찌 이토록 늦게 당도했어요? ”


예림의 물음에 효정의 표정이 흠칫 긴장했다.


“ 사부님을 대신해 언사분원 상관의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조금 늦었어요. 그보다 언니, 대사형은 어디 계십니까? ”


“ 호호호, 바깥어른은 얼떨결에 괴한의 장(掌)을 맞아 잠시 운공 중이에요. 휴우... 그 놈의 정체가 무언지! ”


“ 예? 감히 어느 놈이! 대사형의 상태를 살피고 올게요. ”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하며 자리를 뜨는 효정을 예원이 유심히 바라보더니 몽아의 옷소매를 살며시 잡아끌었다.


 * * * * * * * * * * * * * * * * * *


해는 저물어 어둑해진 뜰로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은 마당의 구석진 곳에 세워진 석상 앞에 멈추었다.


“ 형수, 왜 그러시오? ”


서운한 듯 바라보는 예원을 눈길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 사제, 그 녹의서생이 누굴까요? ”


“ 어허, 그냥 사라졌는데 난들 어찌아우. 나중 알게 되겠지! ”


“ 어찌 이년에게까지 숨기려 합니까? 정말 서운해요. ”


“ 미안, 미안하오, 형수. 숨기려는 게 아니고 까닭이 있어요. 조금만 시간을 주고 기다리면 내 모두 설명하리다. ”


살며시 손을 잡아주며 피치 못할 사정이라 정성껏 말했다. 예원은 그런 몽아의 품에 가만히 안겨들며 투정부리듯 말을 내뱉었다.


“ 아무리 그렇지만 이년에게까지 비밀로 하다니! ”


허나 말과는 달리 팔은 몽이의 허리를 감아 당기며 입속으로 혀가 밀고 들어와 구석구석을 누볐다.


“ 어허 형수, 누가 보면 어쩌려구? ”


“ 피이... 대사형은 운공중이고, 내궁에는 모두 어울려 잡담나누기에 정신들이 없어요. 싫으면 돌아가지 뭐! ”


“ 누가 싫댓나? 헌데 형수, 형수가 몸으로 나를 유혹을 한다 해도 사실은 나중에 알려 줄거니 너무 애쓰지 마오. ”


“ 후훗, 그가 누군지는 이년도 짐작해요. 다만 그리해야만 할 이유가 궁금할 뿐이에요. ”


한쪽 눈을 찡긋하며 생긋 웃는 예원의 얼굴은 이미 발갛게 물들어 있다.


“ 자... 잠깐, 형수. 누가 오고 있소. ”


발자국 소리가 또렷하다.
얼른 몸을 움직여 석상의 뒤로 몸을 숨긴 두 사람의 앞으로 효정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지나갔다.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던 예원이 몽아를 슬쩍 밀었다.


“ 호호호, 사제. 효림아가씨는 사제를 찾는 거예요, 어서 뒤쫓아 가세요. 아니면 이년이 함께 가줄까요? ”


“ .........? ”


“ 기대할 일이 있다고 했잖아요. 어서요! ”


 * * * * * * * * * * * * * * * * * *


그 순간 효림의 가슴은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조금 전 눈앞에서 목격한 그 광경, 몽아와 대사형의 부인이 뒤엉켜있던 그 광경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키지를 못해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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