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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여승무원, 연인, 여자 21



 

 


인생은 B로 시작해서 D로 끝난다.
Birth.
Death.

그리고 그 중간에는 C가 있다.
Choice.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아선 안돼.
 

 

 

 

 

 

 

두렵다...
긴장이 된다...
애가 탄다...
초조하다...

몸 속의 피가...
내 피가…빠른 속도로 돌고 있어...

맥박이 빨라진다...
심장이 고동친다...

저...문 너머로...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마치...마치...
아아...어떡해야 해...

오빠...
오빠...


혜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입 속이 바짝바짝 말라오는 듯 하다...

혜미는 살며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흠칫...!
...하며 자신도 모르게 멈추어 섰다...

그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몸이...살짝 떨려온다...
잠시 더 지나자...
몸이...몸이 점점 더 떨리기 시작한다...

순간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머리 속이 웅웅거리는 것만 같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 속에서 뭔가 생각을 해보려 한다...
궁리를 짜내어 보려고 한다...
지금 상황을 판단해 보려 애쓴다...

그런데...
그런데...

아아...아무 것도...아무 것도...생각할 수가 없어...
내가 왜 이러지...
내가...도대체...왜 이런담...

호흡이 가빠온다...

진정해야 해...
진정해야 해...

어차피...
어...어차피...

각오했던 일이야...

이러면 안돼...
이렇게 주저앉아선 안돼...

부딪혀야 해...
부딪혀야만 한다...

진정해야 해...
뭐가 두려워...
두려울 것은 없어...

겁내지 마...
겁내면 안돼...

물러서면 안돼...

일어서자...
일어서야 해...



..........
..........
..........
..........!!!




머리 속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다.

재성...

재성의 모습...
재성의 모습...!!

..............!!

 



그래!!!

혜미가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일어서야 한다!!!

혜미는 일어섰다.
그리고 호흡을 두세번 후우~!!!후우~!!! 하고 가다듬었다.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다...

혜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 이어지면서
혜미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떤 별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도 태연하게...
평소보다 더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섰다.

 




...........................................................





조금 전.......


"같이 들어갈까...??”

재성이 걱정스럽다는듯이 그렇게 물어왔었다.

“..............!!”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들어오라고 해야 해? 말아야 해?

잠시동안 혜미는 주저했다.
그러다가 결심했다.

안돼!!!

무슨 모습을 보여주려고??

오빠한테 안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어??


내가 결정해야 해...
내가 결정지어야 해...


“결정은 네가 해라.”

순간 뇌리에 그 날의 재성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가 결정할 수 있어.”

재성이 내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래!

혜미가 그 때의 결심을 떠올렸다.

재성은 혜미 앞에서 혜미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혜미를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혜미가 부르던 일본노래의 가사까지 해석하면서까지 혜미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안좋은 눈물이라면 자신이 혜미 대신 흘리겠다고 말해 주었다.

혜미의 곁에 있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혜미를 계속 껴안고 싶다고 말했다.

혜미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 다섯가지의 순위를 매기면서 혜미를 감동시켜 주었다.

혜미에게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혜미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재성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재성의 눈빛을 보면서...
재성의 떨리는 표정을 보면서...

혜미는 감동받았었다.

그 순간 혜미는 결심했었다.


그래!!

내게 달라붙어 있는 이 악의 사슬을 끊어버려야 해!!!
이젠 그만...

...이라고 혜미는 결심했다.




그리고 성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진 결심을 했다.
재성과 함께 성욱을 찾아갔다.
재성에게 기다리라고 하고선 혼자서 달려가 돌멩이를 찾아 손가방에 넣었었다.

왜 그랬는지...
그 때의 생각을 확실히 기억할 순 없다.

하지만...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그리고...
성욱의 능글능글하고 야비한 얼굴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증오가 피어올랐다...

자기자신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자신의 잠재의식 속 깊숙한…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던 그 무엇인가가...
알 수 없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형체를 이루며...
혜미의 온 뇌리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혜미는 성욱에게로 다가가서...

자신도 알 수 없는 그 어떤 힘으로...
돌멩이를 힘껏 움켜쥐고선 성욱의 뒷통수를 내리쳤다.

성욱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추렸다.

혜미는 한번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마구마구...몇 번이나 그래야 할지 모르겠지만....언제까지 그래야만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구마구 휘둘러야만 한다는 본능적인 의식을 느꼈다.

그리고 힘껏 힘을 주어 다시 휘둘렀다.



한번~!
두번~~!!



연이어 성욱의 머리에 돌멩이를 쥔 채로 내리 찧었다.

성욱이 피를 흘리면서 머리를 감싸쥐고 쓰러져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놀랍게도...혜미는 땅바닥에 나뒹구는 성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동정도 그 비슷한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성욱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땅바닥에서 피를 흘리면서...

신음을 하면서...
비명을 지르면서...
대굴대굴 나뒹구는구나...
종태 오빠가 성욱을 부축하는구나...

단순히 이런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모습을 그냥 그대로 지켜보다가 몸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혜미의 눈에...

순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의 차 문을 열고 내려선 차 곁에서 뛰어올까 말까하는 자세로
우두커니 놀라서 서있는 재성의 모습을 보았다.

아주 언뜻...
아주 언뜻...

순간적으로 재성의 모습이 눈에 비쳤을 뿐인데도...
혜미는 자신의 온 몸에서 순식간에 모든 기운이 쫘악~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혜미는 자신의 몸이 휘청인다고 느꼈다.
그대로 있다간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혜미는 재성이 서 있는 곳으로...
재성의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이 비틀비틀 거린다고 혜미는 느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차문을 열고 좌석에 앉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단순히...재성에게 가자고 속삭였던 것만 기억난다.

차에 올라타 앉고, 재성이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 몸의 긴장이 쫘악~풀리면서 자신의 몸이 땀으로 축축하다는 느낌이 생생히 전해져 왔다.
뭔가...뭔가...뭔진 모르겠지만 뭔가가 필요했다...



“담배...담배 좀...주실래요..?”



혜미는 재성에게 담배를 달라고 했다.
재성은 혜미에게 담배 한 개피를 주었다.

혜미는 앞에 놓여있던 라이타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두어모금 급하게 빨아댔다...

안좋다...

무슨 맛인지 맛도 알 수 없었지만…별로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서서히...
서서히…현실의 감각 속으로 돌아오는 느낌은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담배를 쥔 손이 자신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한번의 떨림이 시작되자...걷잡을 수 없이 온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몸뿐만이 아니라...몸 속도...머리 속도...내 심장 속도...
자신의 영혼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뭔가가 부들부들 떨려옴을 혜미는 느꼈다...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손바닥을 뚫어져라...주시했다...

손바닥...손바닥...

손바닥의 형체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손바닥이...손바닥이…점점 깊고 깊은 늪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에...

그 깊고 깊은 늪 속에 진흙창이 아닌...새빨간 선혈이 가득 쌓이고 쌓여....
거대한 힘으로 자신을 그 속으로 자꾸만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아아악!!!

혜미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혜미는 자기자신의 속에서 맴돌고 있는, 피어오르고 있는,
깊이깊이 숨어있는 그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무서워...무서워...!!
아아...싫어...
너무 무서워...너무 무서워...!!


혜미의 눈에서 마음에서 눈물이 튀어나와 흘렀다.
두 줄기 눈물이 두 눈에서 볼을 타고 빠르게 흘러내렸다.

그리고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운전대를 잡고있는 재성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재성이...
재성이 자신의 입술을 꼭 깨물고 있고...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아아...오빠는...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모습을 보고...내가 사람을...내가 어떻게 한거지...
내가 사람을...어떻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모든 것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 세상에...
왜 이 세상에 살고있는거지...
내가 지금...여기에서...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거지...

허무감과 고독함이 처절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마냥 거기에 빠지기만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래 안돼!
이래선 안돼!!
이러면 끝장이야...
이렇게 모든 걸 끝낼 순 없어...!!!

다시 재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재성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며 표정에 온갖 변화가 일었다...




오빠가...오빠가 나를 걱정해주고 있구나...
오빠가 나를...



혜미는 순간 깨달았다.


재성은 결코 자기를 탓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순간 혜미는 행복했다...



그래...지금...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오빠가...
오빠가 지금 내 곁에서...나랑 같이 있잖아...



재성이 자기를 바라보았다...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었다...

혜미를 바라보는 재성의 눈빛이 묘했다...

재성의 눈빛이...눈물이 맺힌 재성의 눈빛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오빠...오빠...왜 또 울어요...
오빠 눈빛은...또 왜 그래요...
왜...그렇게 슬퍼하고 있어요...
그러지 마요...오빠...
오빠...그러지 마요...
제발 그러지 말아요...



혜미는 입술을 움직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어갔다...
자신의 양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의 온도가 뜨거웠다...

재성이 혜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눈...
깊고 깊은...재성의 눈...

그 뜨거운 눈빛...
더할 나위없는 한없는 관심의 빛.....!!!


혜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이러면...되는거죠?”


그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이러면 되는거지??
이러면...이러면...
이렇게 웃으면...

혜미는 자기자신에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다음 날...

종태가 자신을 찾아왔다...
종태가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말했다...
힘없이 풀이 죽어있는 종태의 모습이 애처로왔다...


언제나...
언제나...난폭한 성욱의 곁에서...
어떻게든 혜미를 지켜주려고 애쓰던 사람...

나이트의 룸에서 성욱이 탄 약에 취한 혜미는
자신의 뒤에서 자신의 육체를 탐내고 겁탈하고 있는 사람이 종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었다...

도대체 종태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혜미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있었다....

괴로움에 치를 떨었다...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아아…내가 왜 이러는거지…
도대체…내가 여기서
왜…어째서 여기에서...이러고 있어야만 하는거야...


어느 순간...갑자기...종태가...
자신을 겁탈하고 있던 종태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종태의 팔에서 힘이 스르르 빠지면서 혜미는 털썩!하고 차가운 룸의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서러움이 밀려왔다...
서러움이 파도처럼 혜미의 온 몸과 정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혜미의 입에서 자기자신도 모르게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세상의 저 끝에서...한없는 바닥까지...내팽겨쳐지는 느낌...

조금전까지 자신을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던 고통이 사라지고...
육체에 자유가 놓였을 때...
혜미의 서러움이 한껏 폭발하고야 말았다...


성욱이 자신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자신의 얼굴에 맥주를 끼얹었다.

혜미에게 “창녀!”라고 소리치는 성욱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녀...
창녀라고...

내...내가...창녀라고...
내가 내가...창녀인거야...??

내가...내가...?



더러운 피는 속일 수 없다던 아빠의 미친듯한 절규...

그 무서운 눈빛...

아아...그 무서운 눈빛...
눈빛이 떠올랐다...

더욱 더 밀려오는 서러움에 혜미는 흐느끼고 또 흐느꼈다...

아아...난...난 창녀야...더러운...나는...
나는...나는...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
이대로...그냥...이대로...이 바닥 위에서...

하지만...차갑다...너무나 차갑기만 하다...




순간 어떤 손길이 느껴졌다...
자신의 몸에 황급히 옷가지들을 덮어주는 어떤 손길이...

그리고...
차가운 룸의 바닥에 쓰러진 자기를 끌어당겨서는...
따뜻한 품 속으로 끌어안아주는
어떤 손길이....

따뜻해....너무나도 따뜻해...
엄마처럼....

엄마가 날 안아줬던 것처럼...
너무 따뜻하다...

또....새로운 눈물이 흘러나온다...

혜미는 그렇게 종태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자신의 볼에 와닿는...어떤 뜨거운 것을...
종태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후회하고 있구나...
후회하고 있어...
오빠가...종태 오빠가...

 




하지만...자신을 찾아온 종태의 모습 앞에서 어색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 어색한 감정 앞에서 마음이 초조해졌다...

일하러 가야 하는데...
지금 공항으로 가야만 하는데...

종태가 자신을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부탁해요."

....라고 속삭이듯 말하는 종태의 힘없는 목소리와...
평소와는 너무 다른 종태의 애처로운 눈빛을 보고...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란...
도대체...뭘까...
사람이란...


힘없이 종태에게 칵트와 짐을 맡기고 종태의 차에 몸을 실었다.

어쩔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에 몸이 떨렸지만...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종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종태의 목소리가 서서히 곁에서 들려왔다...

마음 속 두려움으로 남아있던 성욱의 이야기가 나오자...
온 몸의 근육과 신경이 긴장하면서...
종태의 이야기에 귀를 곤두세웠다....

종태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종태 자기자신에게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성욱에게서...
성욱의 손길에서...
혜미를 지키겠노라고....


혜미를 좋아했었노라고...

혜미를 껴안고 싶었노라고...

혜미를...나를 자기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노라고...

혜미를 지켜주는 것만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종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혜미는 종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온갖 묘한 감정의 파도가 뒤섞여 옴을 느꼈다.

이 사람은...
이 사람은...

나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었구나...
나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었구나...

도대체 나 따위가 뭐라고...
그럴 필요가 없을텐데...

내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된다면....

오빠는 오히려....
더러운 물건을 대하듯이....
그렇게 오히려 날 증오하게 될텐데.....

아아...!
도대체 사람이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벌어지는...그 모든 일이란...

아아...!
인간은 어찌 이리도 죄많은 존재일까...
증오하고...비난하고...
서로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럼에도...불구하고....

아아...난...난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

날...날...
지켜주었었고....

또한 나에게...
상처를 줄뻔한 이 사람을...
나 때문에...너무나도 괴로워 했던 이 사람을...
증오해야...할까...


아아...안돼...
증오할 수가 없다...

종태오빠를 증오할 수가 없어...
증오해지지가 않아...

오빠...
종태오빠...

미안...
미안해요...

나 때문에...
혜미 때문에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정말이야...
너무너무 미안해요...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거야...?

용서하지 않고서는...
용서하지 않고서는...살아갈 수가 없어...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지만...하지만...

용서하지 않고서는...
용서하지 않고서는...

 



차에서 내려 종태가 혜미에게 자신은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다시는 혜미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먼 훗날 언젠가 다시 만나면 서로 마주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종태가 담담하게 내뱉는 말을 들으며...
혜미는 뭔가 정신이 아득해져감을 느꼈다...
정신은 아득해져가지만....멍하지만...가슴이 아파왔다...



먼 훗날....

언제인지를 기약할 수 없는 먼 훗날....


그것은 도대체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종태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혜미에게 자신의 더러운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감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깊이깊이...그렇게 억누르고만 있었다...


힘들어질거야...
저러다간...
저 사람은 저러다간 결국 힘들어질거야...


몇 발자욱 밟아 가고 있던...
걷고있던...
혜미가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웬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돌아섰다...
종태가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어디론가 튀어나가 버린 사람 같았다.
그 영혼을 다시 주울 의지도...힘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 같았다....




아니야...저건 아니야!!
저래서는 안돼!!!



혜미는 자기자신도 모르게 종태를 향해 다가섰다...

종태의 모습이...
혜미의 눈 앞에 그렇게 비틀비틀거리고 있었다...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종태의 앞에 다가섰다.


저절로...손을 들어 종태의 넋이 나간 얼굴을 만졌다.




이 사람의 얼굴은...이리도 따뜻하기만 한데...
아직도 이렇게 따뜻하기만 한데....
영혼은 왜 이렇게 얼어붙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태의 얼어붙어버린 영혼의 차가운 냉기가 혜미의 온 몸에 전해지는 듯 했다.

이 사람의 영혼을 되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짧은 순간 혜미의 뇌리에 가득했다.


자신도 모르게 정을 듬뿍 실은 따뜻한 손길로 종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종태의 넋이 나간 얼굴에 조금씩 조금씩 생기가 도는 듯 했다.


혜미는...종태의 키가 무척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의 볼은 따뜻하구나...

종태의 얼굴에...
입맞춰 주고만 싶었다.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영혼을 되찾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온가득 맴돌았다.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종태 오빠 키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
발돋움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되겠군.”


혜미는 발돋움을 했다.
그리고 종태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종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이 닿았다.
따뜻했다.
종태의 얼굴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이렇게...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차가워져서는 안돼...

오빠...힘내요...
오빠는 차가워져서는 안돼요...

힘내세요...힘내셔야만 해요!!




혜미는 자신의 입술에서 종태의 영혼의 숨결이 다시 살아 남을...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자신의 입술이...
종태의 모든 죄악과 괴로움을 빨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혜미는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랬다.

입술을 떼고 혜미는 돌아섰다...

문득 혜미 자신의 정신도 되돌아오는 듯 했다.


다시 고개를 되돌려보니...
종태가 여전히 넋 나간듯한 얼굴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느낌은 전혀 달랐다...


조금 전의 영혼이 없던 육체가 아닌...
종태의 지금 넋 나간 모습에선...

어떤 생기가 넘쳐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혜미는 마음이 놓였다.
기분이 즐거워졌다.




먼 훗날.....

종태오빠가 나에게 말한 먼 훗날....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먼 훗날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오빠....
우리 굳이 그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오빠...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앞당길 수 있어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요...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겠다는 의지로요...

지금....

그래요....

바로 지금이라도요...!!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종태를 향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킥!”하는 웃음을 터뜨려 주었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어떤 즐거운 에너지가 토해지는 듯 함을 느낀다...

이것이...이것이...바로 용서하는 마음이 가져다주는 홀가분함일까....?


혜미는 종태를 향해 명랑하게 소리쳤다.

“다녀오겠습니다! 다음에 뵈요, 종태오빠~~!!!”


돌아서면서 혜미에게는 확신이 섰다.

종태 오빠는 잘할거야.
오빠는 틀림없이 잘 이겨낼 수 있을거야.

반드시...반드시.


다시 공항 쪽으로 옮기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기분이 즐거워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비록 시간에 쫓겨 서둘러 걸어야만 했지만...


다시 기분이 즐거워진다...
어떤 희망이 샘솟는다...

몸은 피곤하지만...
즐거워진다...

뭘까 도대체...이 느낌은...


그렇구나...

이것은...이것은...
사람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그래,
사람들은 좋다...
사람들은 선하며 악하지 않다...


이 맑고 깨끗한 날씨...
상쾌하다..정말 상쾌하다...

그리고...또 무엇인가가...나를 이렇게 즐겁게 만들어주는데...
그건 뭘까...

아, 알겠다!

재성오빠!!!

재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능청스러움...
그 즐거움...
그 짖궂음...

후훗...!!

혜미가 미소지었다.

재성오빠가 너무 좋아...
오빠가 너무 좋아...!!!
몰라몰라...후훗...!!

너무나도 즐거워...
오빠가...오빠가...내 영혼을 구했어.


오빠가...
오빠가 날 껴안아주었어.
날 좋아한다고 말해주었어.
날 지켜주겠다고 말했어.
날...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어~!!!

그래...그렇구나...


사랑이란 것이 이토록 즐거운 것이구나...
사랑이란 것이 이토록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로구나.

사랑이라는 것은...
또한...용서라는 것은...

사랑과 용서라는 것은...

사람을 용기있게 만든다...

사람을 홀가분하게 만든다...

사람을 현명하게 만든다...

사랑해...
사랑해요, 오빠!!!!

희망을 버리면 안돼...
희망을 놓으면 안돼...

희망을
꼭~!!! 꼭~~!!! 잡아야만 해...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잖아...

희망이 있으니...!!!





그리고 혜미는 재성에게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다...
재성을 떠나보냈다...

재성이 가지 않을까봐...
재성의 차가 움직이는 것을...그리고...멀어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재성의 차가 떠나자 불현듯 다시 어둠 속에서 두려움이 다가왔다...
두려움이 혜미의 몸을 떨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두려워 해선 안된다...

희망이 있잖아...

희망이 있으니까...


후훗, 그래!

희망이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늘 함께 있으니까~!!!


혜미는 집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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