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조절 시약 - 프롤로그
인맥 조절 시약
프롤로그
"그러니까, 너나 나나 불행한 처지인 건 마찬가지다 말이지."
분명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래도 병에 걸려 죽기 직전인 사람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진 않았다. 비록 그 사람이 한 명뿐인 외삼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난 생각한 대로 말했다.
"흥, 다 죽어 가면서도 농담이야?"
"훗."
난 나름대로 차갑게 말한 건데, 삼촌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는 나를 보고 귀엽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넌 매우 착한 아이란 걸 아니 걱정말거라. 단지 주위의 사람들이 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뿐이니까."
"... 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가 죽기 전에 너를 나에게 맡겼지. 그리고 비록 10살 차이밖에 나진 않지만, 너는 나의 하나뿐인 누나가 남긴 보물이야. 내가 그리고 네가 여기 있는 이유도 알고 있지?"
"몰라, 알게 뭐야."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돌리곤 팔짱을 낀 채, 침대에 앉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했다.
"난 이미 틀렸어. 의사말로는 한 달 정도 남았다곤 하지만, 난 아마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니까. 그래서 너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지."
"그딴 선물 준비할 시간에 자기 몸이나 추스르지 그래!!"
난 진심으로 화가 나서 외쳤다. 아니, 왜 나를 위해 그가 이렇게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는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이만한 업적을 남긴 이는 아마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왜.... 어째서!!
"역시 화를 내는구나. 화난 모습이 누나랑 똑같네."
"그런 헛소리할 때가 아니잖아!!"
농담을 할 정도의 체력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의 상태는 지금 최악이다. 그건 초점이 안 맞는 눈과 힘없이 떨어져 있는 팔, 다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왜 이런 형편없는 자를 위해 그가 희생해야 하는가.
".... 어째서 나를 계속 돌보아준거야?"
"후후. 이미 말했잖아. 넌 나의 하나뿐인 보물이라고. 비록 누나를 닮아 계집애처럼 생긴 주제에 성질은 급하고 막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착한 아이란 걸 난 알아."
"계집애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일단 넘어갈게. 나도 이런 날 칼부림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런데... 정말 괜찮아?"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이제껏 말한 건강에 관한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나의 질문에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허탈한 웃음이었다.
"비록 그 사람들에게 말하거나 해코지할 수는 없지만, 착한 조카가 어떻게 해주리라고 믿고 난 이만 가련다."
"지금 자신의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고 가겠다는 거야!!"
하지만 나 역시 외삼촌을 이렇게 만든 이들을 용서할 마음이 없다. 특히 그 년들은....
그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래, 이런 착한 조카가 있으니 난 편히 떠날 수 있는 거야. 이제 너무 지쳤거든..."
"......."
남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는 조카에게 착하다고 말하는 외삼촌은 다시 기침을 크게 하고는 이불을 당겼다. 지금은 6월 초. 추운 겨울은 이미 훨씬 전에 지나갔고, 장마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는 추운 모양이다. 이것도 다 그 년들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불리며 많은 업적을 쌓아온 그이지만, 역시 사람과의 관계는 서툴렀던 것일까. 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대부분 주위의 사람들이었다. 음... 여기에 나도 포함될까나...
"물론 너는 포함되지 않아.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은 너와 누나뿐이니까. 암. 후회하지 않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 꼭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것처럼 말하지 마. 그리고 남의 맘을 읽은 것처럼 말하지 마."
그는 단지 웃고 있었다.
너무 슬프다.
그가 곧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 아프다.
그런 그를 그냥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괴롭다.
그를 먼저 보내야 한다는 것이.
금세기 최고의 천재라는 말을 들은 그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가다니.
신이 있다면 한번 따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가 이렇게 가야 하는가.
왜 그의 마지막이 이렇게 쓸쓸해야 하는가.
이런 내 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갔다.
외삼촌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 지 일주일 뒤, 그는 죽었다.
그의 많던 재산들은 모두 그의 아내와 친척, 동료들이 전부 가졌다. 장례식에만 나오고 유산 상속할 때만 나타난 그들. 병실에는 나타나지도 않은 그들이 말이다.
외삼촌의 동료들은 외삼촌의 연구 결과를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세상에 발표했고, 논문이나 발표 자료에 외삼촌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그리고 외삼촌이 연구한 것을 가지고 세상의 칭송을 받고 있다.
외삼촌의 아내라는 작자는 다시 다른 남자들을 건드리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외삼촌과 결혼하기 전에 낳은 딸들과 함께. 외삼촌의 유산을 가지고 다른 남자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다른 친척들도 모두 자신의 일과 돌아올 몫에만 신경 쓰고 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외삼촌을 화장하고 인골이 든 상자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매장할 때 참여한 사람은 나와 장례식장 직원 한 명이 다였다.
외삼촌은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이는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나에게 유산이 약간이라도 돌아온다면 다른 이들은 나를 의심하거나 시샘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도 외삼촌처럼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 역시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았다. 나의 생활이 비록 바닥일지라도 그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외삼촌은 이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였다. 그런 위대한 자와 같은 피를 나는 가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