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방안의 인형 - (1) (2)
(1)
기분 나쁜 하루였다.
땀이 방울져 떨어질 정도로 무더운 날이라는 것이 그 이유인 것은 아니다.
그런 날에 혈향이 충만한 방 안에 발을 들이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듯 조금 거무스름해진 핏웅덩이가 크게 바닥에 퍼져있었다.
그것을 피해서 걸음을 옮길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밟아버렸는지 구두에는 피가 흠뻑 묻
어있었다.
......새로 장만한지 얼마 안됀 구두인데.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커텐으로 나는 구두를 닦는다.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이 방의 주인은 여행중이니까.
행선지가 천국인지 지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의 자루에 팔꿈치를 괸채 한숨을 쉰다.
일단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거리의 치안을 맡고 있는 경비대의 기사다.
직업상 이런 자살 현장은 몇번이고 접해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익숙해질 광경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죽은 대상은 내가 쫓고 있는 범죄자다.
잠복하고 있는 곳을 간신히 알아차린 직후의 일이었다.
기운차게 돌입한 나를 마중해준 것이 바로 이 시체, 그런 이야기다.
이 곳의 거주자는 자신의 몸을 단검으로 찌른채 죽어 있었다.
생명을 끊는다고 해도 어째서 이런 장렬한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항이다.
죽을꺼면 얌전하게 죽을 것이지, 꽤나 거창한 꼴로 죽어있다.
...그런 얼굴로 날 보지말라구 --- 울고 싶은건 이쪽이란 말이다.
「유품은 모두 수거한다. 방 안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말도록.」
내심을 감추고, 부하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나도 모르게 조금 어조가 난폭해지고 만다.
「그레이! 그레이!」
가뜩이나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째지는 듯한 고성이 들려왔다.
방 밖에서부터다.
「아휴...」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흘리고 만다.
슬슬 출몰할 무렵이라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막상 이 순간이 닥치자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네! 지금 갑니다.」
빨리 가지 않으면 후환이 커질 뿐.
자신을 추스리며 그렇게 대답한 후,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정말 오늘은 기분 나쁜 날이다.
그 원흉이 되는 인물은 복도에서 팔짱을 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복도에는 대원들이 바쁘게 왕래하고 있고 그 모습을 멀리서 둘러싸고 있는 구경꾼들이
바라보고 있다.
「이건 어떻게 된거죠? 그레이.」
말에 가시가 박혀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물어 온다. 심문이다, 이건.
「자살인 것 같습니다. 대장님.」
직립 부동의 자세로 냉정하게 보이려 노력하며 나는 보고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한 발 늦은 듯 합니다.」
「우리?」
내 말의 말꼬리를 잡았다는 듯이 잘 다듬어진 가는 눈썹이 치켜올라간다.
「당신은 자신의 정보수집이 굼떴던 것을 제쳐놓고, 마치 이 내가 나빴다는 듯한 말투를
쓰는군요.」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나는 말을 얼머무리면서도 내심 석연치 않았다.
땀을 흘리며 충실히 수사를 해온 것은 부대장인 이 나였다.
녀석은 경비대의 대기소에서 한 발자국도 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녀석이 한 일은 오직 나를 쥐잡듯 몰아세운 것 뿐.
지금 이 순간과 마찬가지로.
「모두 당신이 꾸물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니까 이런 실패를 범하는게 아닌가요. 그런데도
기사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말해보시죠. 실패? 내가?」
계속되는 폭언에도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며,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인내다.
참을 수 밖에 없다.
「뭔가 말하고 싶은가보군요. 기사 그레이 머프리」
평정을 가장하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무심코 얼굴에 내심이 드러나버린 것 같다.
이 곳을 관장하는 경비대의 대장 마리아·데·라·트리니다트는 녹색의 눈동자에 분노
의 빛을 띄운 채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보다 10살 정도 젊은데다 그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이는 동안이다.
가늘다 못해 접힐 듯 야리야리한 몸매를 바라보면 마치 지금 나 자신이 계집아이에게
매도당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궁정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공주들의 무리에 있다고 해도,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미인으로서 통용될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건 입다물고 조용히 있는다고 가정한 경우의 이야기이지만.
마리아는 기사는이나 기사도는 같은 말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 녀석이 기사로서 갖춰야할 무언가를 타인에게 가르쳐 줄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닙니다. 대장. 죄송합니다.」
나는 더욱 고개를 조아린다.
경비대 내에서의 계급은 절대적이다.
상사가 검정색을 흰색이라고 말한다면, 그 휘하는 입다물고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고개를 숙이고 한참 깨지고 있는 모습을 작업 중인 젊은 대원들이 호기심어
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동정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다.
이 난폭한 망아지를 상대하는 것은 부대장으로서의 내 책임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흥, 알았다면 다행이군요. 변명이나 거짓말은 기사도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언제라도
기사로서의 긍지를 잊지 않도록 하세요.」
「...그건 그렇고, 저... 대장.」
조심스래 나는 이야기를 잘랐다.
「뭐지요?」
마리아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푸른 빛을 띄고 있는 장발이 흩날렸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아직 가시가 남아있었다.
「이 곳을 알려준 정보상에게 제 사비를 지불했습니다만... 경비대의 경비로 해주실 순
없을까요?」
녹색의 눈초리가 가늘게 변한다.
그 예리한 눈초리에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건 당신이 마음대로 저지른 것이겠죠. 나는 몰라요.」
「아니, 그렇지만.」
「범인을 죽게 내버려두고 돈을 요구하다니 뻔뻔스럽군요. 이러니까 비천한 태생은...」
마리아는 투덜거리며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가뜩이나 박봉에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수당도 없는 이 일이다.
휴우...
이걸로 이번달도 적자다.
술집 외상도 갚을 여유가 없을 정도다.
「난 이제 돌아갈테니까 내일 아침까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세요.」
그런 한마디를 남기고 마리아는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버렸다.
결국, 그녀는 자살 현장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더럽고 귀찮은 일들은 모두 부하의 역할이라는 것일까.
그렇다 치더다도 내일 아침까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빠듯할 정도로 여유가 없다.
오늘밤은 퇴근도 못하는 것이다.
역시 오늘은 기분 나쁜 날이야.
나는 다시 한번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2)
노랗게 더러워진 초가 작은 빛을 밝히고 있었다.
싸구려인 초다.
그 불빛은 작고 수명도 짧은 편이다.
심야의 대기소에서 나는 서류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존경스러운 상관, 마리아에게 명령받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경비대의 대기소에는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원들은 집에 돌아갔던가 술집으로 몰려갔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런데, 나는....
이렇게 된 것도 녀석이 순순히 붙잡히지 않고 자살같은 것을 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그 내용을 떠올린다.
죽은 남자는 마술사였다.
고대 마술을 연구하는 고전파라는 일파에 속해 있었다.
나름대로 꽤나 우수한 마술사였던 것 같지만 금지된 흑마술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것은 마술사로서의 금기 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법률에도 반하는 행위.
그것이 발각되어서 파문, 그리고 범죄자로 전락.
바보같은 이야기다.
그냥 조용히 지냈다면 나름대로의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야말로 기사와도 마찬가지다.
정의감이나 지적 호기심.
그런것에 신경쓸 여를은 없는 것이다.
결국은 직업일 뿐이니까.
무엇보다 마술사같은 것이 되고 싶어하는 녀석은 어딘가 머리의 나사가 느슨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해하기 어려운 엽기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보면 정신이 붕괴한 마술사였더라, 그런
이야기는 쓸어버릴 정도로 널려있다.
나는 초라한 의자에서 일어서 유품의 정리에 착수했다.
남자의 피가 흠뻑 묻어있기에 그다지 손대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일이니까.
하나하나 손에 든다.
그건 그렇고 과연 마술사라고 말해야할까.
용도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것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은 팔아 처리해도 돈이 될 것 같지 않군.」
어라.
무심코 본심이 입으로 나오고 만다.
나는 이런 유품을 이따금씩 장물상에게 팔아치워 돈으로 바꾸고 있었다.
조그만 부업같은 거라고나 할까.
어차피 유품의 보관 및 장부기재, 그 외 재반 사항을 모두 내가 관리하고 있기에 발각
될 리도 없다.
창고에서 썩히는 것보다 필요한 사람이 그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더 유익한 것일거
야.
이런 부수입도 아니라면 개같은 경비대 일 따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문득 작은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피가 묻어있는 목제의 작은 상자.
심플한 모양으로 문양같은 것도 그려져있지 않다.
문득 생긴 호기심에 손에 들어본다.
가볍다.
열쇠는 걸려있지 않았다.
나는 뚜껑을 잡아 열어보았다.
「...뭐야?」
상자 안에는 목각 인형이 들어가 있었다.
허술한 구조로 얼굴도 없고 손가락도 없다.
단지 등 부분이 꺾일 수 있는 구조라서 그곳을 자세히 보니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서는 하나 더, 작은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펼쳐보니 이 인형에 대한 사항들이 쓰여있었다.
「이번 부수입은 마법 아이템인가.」
아무래도 이 인형은 마력이 담겨져 있는 물건인 듯하다.
등 부분의 구멍에 특정 사람의 머리카락을 넣으면 그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게다가 인형은 머리카락을 넣은 사람을 주인으로서 복종하게 된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
그 쪽지의 마지막에는 인형이 부수어졌을 때 일어나는 일이 적혀있었지만 그것은 남자
의 피로 인해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재미있는 대용품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팔아치우는 것보다 내가 사용하는 쪽이 나을 것 같군.
머리카락이라... 누구로 할까?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거라면...」
뇌리에 깊히 박혀 잊혀지지 않는 대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에게 이런 괴로움을 주고 있는 장본인.
인형이 그 녀석의 모습으로 변한다면 여러가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신의 생각이 스스로도 마음에 들어 무심코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