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회 6부
6부 폭풍전의 고요. 작가님 이미 폭풍이라니까요.
문제는 하연의 이혼 수속이었다. 하연은 집안사람들의 반대로 이혼 수속을 계속시키지 못하고 있었고, 남편은 하연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집안의 반대야 몇마디면 끝날테지만, 남편의 경우는 하연이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오히려 당당하게 ‘뭐가 문제냐?’ ‘이대로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라며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었다.
즉 하연의 남편으로선 방패막으로서 하연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혼수속을 받으면 되겠지만 남편뿐만이 아니라, 하연도 방패막으로서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게이라서 이혼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뉴스거리가 되고, 그것이 사실에 알려진다면 하연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로선 그런 하연을 충분히 이해하였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하연은 자유스러운 몸으로 나와 만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내 집에 들어와서 아침, 저녁으로 반찬을 해주고 빨래라던지 집안일을 하였지만, 몸을 여는 것은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예 안 보인다면 참을 수라도 있었지만, 이 경우는 정말 열이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까지 하게 되었다.
“가능하겠습니까?”
“김정현씨 뭐가 문제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사까지 찍어야 됩니다. 아무래도 게이이니 적어도 스킨쉽까지는 해야지 됩니다.”
“문제없습니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사람에게 일을 맡길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연의 남편이 애인으로 짐작되는 사람과 만나는 곳은 호텔이었고, 또 애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거래 상대 회사 직원 중 하나이었기에 단지 호텔에 있다는 것으론 남편을 압박하긴 힘들었다. 또 주로 만나는 곳이 특급호텔이라 일반 심부름센터는 쉽게 정보를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국정원 박 국장이었다.
정부 쪽 보안 일을 하다보면 국정원 직원과는 아무래도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인터넷 대란때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박 국장은 내게 두 손을 잡으며 이 은혜 잊지 않겠다고 하였다. 국정원 여러 실무 부처 중 박 국장만이 행정고시 동기였던 내 형들 중 한명의 강압 아닌 부탁에 의해 나에게 보안 컨설팅을 받았고, 인터넷 대란 중에 박 국장의 부서만이 멀쩡해서 지금은 부장에서 국장까지 올라 언젠가 나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고마워했던 사람이다.
그 이후에도 국정원 전체 보안 컨설팅에 도움을 주었고 덕분에 국정원 측에선 제 2급 요인으로 나를 분류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부탁을 하였더니, 불법적인 일이지만 그쪽에선 최고라고 불려지는 전 요원들이 경영하는 심부름센터를 소개시켜주었다.
역시 세계유수의 정보단체 중에서도 요원의 능력만큼은 톱클래스라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내가 소개 받은 사람들은 정사 장면이 담긴 dvd를 주었고, 정사뿐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도청이 담긴 mp3파일까지 포함돼서 나를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하연에게 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어요?”
하연은 그래도 한때 남편이었던 사람의 정사 장면이 담긴 dvd를 보곤 화가 난 듯 했고, 그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물건은 탐탁치 않아했다.
“정말 미칠 것 같아서 그래. 내 여자가 내 눈앞에서 왔다갔다 그러는데 안지 못하다니, 돌아버릴 것 같다구.”
“그래서 이 걸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요? 어차피 법정에서 공개하는건 전 반대에요.”
“시댁이나 회사에 공개하겠다고 해.”
시댁과 회사에 공개한다고 협박하라는 나의 말에 하연은 눈살이 찌푸려지며, 망설이는 기색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직 그 남자에 대한 정이 남아있는거야? 섭섭한걸.”
“자긴 아직 내 맘 몰라서 그래요. 내 맘이나 내 육체는 모두 자기한테 열려있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반대로 생각하면 그 남자 조금 협박해서 더 빨리 완전히 나의 여자로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겠다는 거야?”
하연은 결국 나의 확정통보와도 같은 말에 변호사가 아닌 직접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처음에는 할 수 있다면 하라는 식으로 나왔지만, 곧 그 파일을 보고 포기를 하고 말았다.
오히려 하연의 변호사였던 친구가 그 dvd를 우연히 보고 열 받아서 남편에게 제대로 협박을 해서 재산 분배에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 변호사에게 우연히 그 파일을 보게 만든 건 나지만 말이다.
덕분에 하연은 지금의 맨션뿐만이 아니라, 남편 명의로 있던 강남의 상가건물과 주식과 채권들을 포함해서 대략 시가로 30억 상당의 재산과 함께 1억의 현금을 받게 되었다.
하연은 도장만 찍는 게 남았을 무렵에도 몸을 나에게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성은을 찾아가게 되었다.
하연은 표시는 않하지만, 내가 외박을 할 때마다 짐작하고 있는지 조금씩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래도 몸은 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하연과 성은의 동의하에 두 여자는 드디어 만나게 된다.
“성은씨는 언제 온데요?”
“저녁에 맞추어 6시에 온다고 했으니까? 곧 오겠네.”
시간은 5시 반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은이 이 맨션에 오게 된 것은 이게 처음인 듯 싶다. 잘 찾아올까? 여기 은근히 찾기 힘든데. 뭐 못 찾으면 전화하겠지.
“성은씨가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뭐 가리는 것은 없는 걸로 아니까. 맞을거야.”
하연은 주부로서의 강점을 찾겠다는 듯이 정말 초호화 요리를 준비했다. 어디서 듣도 못한 프랑스 요리와 중화요리, 한식까지 누가 다 먹을까 싶을 정도였다.
“근데 이거 너무 많이 한거 아니야.”
“흥. 나보다 젊고 예쁘고 처녀인 성은씨에게 대항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성은씨와 같이 자기를 모신다고 생각은 했지만, 성은씨에게 밀리고 싶진 않다고요.”
“그래도. 이건 낭비......”
“이 정도 낭비로 성은씨를 누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자기 도와줄거죠.”
허허 은근히 나에게 도움까지 청하고 성은이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닌데. 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나중에 다른 집에도 나눠주고 그러면 버리지는 않겠지.
“꼭 그래야 하겠어.”
“자기는 성은씨 편만 안들으면 되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내 핸드폰 벨이 울렸다. 발신자 정보를 보니 성은이었다. 전화를 받자, 성은이의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기야. 여기 일산인데 무턱대고 와보니까. 집이 어딘지 모르겠네.”
“어 초행길이지 일산 어딘데?”
“***사거린데..(죄송 제가 일산 지리를 모릅니다.)”
*** 사거리라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린데 흠 어떻게 가르쳐줘야 될까?
“하연아, *** 사거리에서 우리집 어떻게 오지?”
“*** 사거리요. 거기서 ##방향으로 오다가 두 블록 쯤 오다가 좌회전 신호 받아서.....”
한참동안 하연은 오는 길을 설명했지만, 듣는 나로서도 헷갈리는 길이다. 그 동안은 우리집 일산에서 찾기 쉽다고만 생각했는데 은근히 찾기 어렵네.
“하연아 됐어. 내가 나가지 뭐.”
내가 이런 말을 하자 수화기 속으로 성은은 반갑다는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나와 줄래? 나 차 안갔고 왔거든. 자기가 나와준다면 고맙지.”
“응?”
얼레 왜 차를 안가지고 다녀, 운전은 왠만한 프로 드라이버 못지 않게 잘하는 녀석이....
“얼마나 걸려?”
“한 2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거야.”
“알었어. 기다릴게 자기.”
전화를 끊고 내가 나간다고 하자 하연은 무언가 불만인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왜?”
“차 있는 사람이 차 안 갖고 당긴다는 것이 수상해서요.”
“수상하긴 차에 문제가 있나보지.”
내 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차키와 핸드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주말의 도로는 저녁 시간임에 불과해도 한가했다. 20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시간이 10분 정도로 줄었을 정도였다.
“여기야. 여기.”
성은은 내 차를 알아보았는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성은의 복장은 이미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봄 처녀를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화사하고 원색의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디자인의 원피스와 상의를 걸치고 있었다.
“오늘 신경 썼네.”
“왜 예뻐?”
성은은 차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나에게 물었다. 물론 예쁘다. 하지만 벗겨 놓은게 더 예쁜건 남자이기 때문일까?
“들고 있는 꽃보다 훨씬 예뻐!”
“걀걀... 아부는. 하연씨가 맘에 들어 할지 모르겠네. 화원에서 봄꽃들 골라달라고 했는데.... 자기는 어때?”
성은은 특유의 걀걀거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꽃에 대해서 뭘 아나. 내가 아는 꽃이라곤 성은이랑 하연이 밖에 없네.”
“그렇지 않아도 되네요. 뭐 내 입장도 있고, 하연씨랑 그렇게 다툴 생각은 없어. 그렇게 띄우지마. 나 정말로 믿는단 말이야.”
“정말입니다. 마님. 제가 무슨 복이 있어서 마님과 같은 아리따우신 분을 제 여자로 맞이하게 되었는지...”
“킥킥 하긴 내가 좀 잘나간 했지.”
성은과 나는 돌아가는 길에 그렇게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평소에도 밝은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하연을 만나는 것이 긴장이 되는지 더욱더 너스레를 떨고 긴장을 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차가 맨션에 도착하고 시동을 끄자. 나가려는 나를 성은은 두 손으로 잡았다.
“잠깐만, 나 떨린단 말이야. 아 자기 부모님 만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떨리는 거야. 원래대로 따지자면 하연씨가 나한테 찾아와야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그 전에 집에 오라고 할 때 왔어야지. 오늘 너 집들이 겸 상견례 이것도 말이 이상하네, 하여튼 집들이 겸 온 거 아냐.”
“자기 때문이야. 아잉 왜 딴 여자를 만들어가지구.”
성은은 잔소리를 나에게 퍼부었지만, 내가 밉거나 그런 기색은 아닌듯 했다. 내 두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의 떨림은 하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떠는 그녀의 손을 내 가슴에 대고 성은의 입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하연이 무서운 사람 아니야. 아마 하연도 너랑 마찬가지로 떨고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떨지마. 내가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떨긴 누가 떨었다고 그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두 손을 내 목에 껴안고 진하게 키스를 하였다. 성은의 입술은 내 입술로 들어와 괜찮다라는 말이 듣고 싶은 듯이 내 혀를 강하게 빨았고, 나 역시도 부드럽게 성은의 혀를 감싸주었다.
“하연씨 기다리겠다. 남자가 밝히긴.”
“아니.. 내가 언제.”
“근데 자기 내 편 해줄거지.”
흑 성은이도 내 편 해달라고 하고 하연이도 그렇고 나 보고 어쩌라고.
성은은 언제 망설였다는 듯이 차 문을 열고 나갔고, 나에게 재촉까지 하였다.
“안나오고 뭐해.”
이젠 내가 망설여진다고, 둘 다 사랑스런 내 여자들인데 둘이서 싸우면 난 누구 편 해야지?
항상 편하고 즐거운 곳이었던 나의 집이 지금은 전쟁터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 같이 계단을 오르던 성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성은과 하연의 기 싸움이 여파가 얼마나 클지 예상할 수도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다.
“띵동. 띵동.”
성은은 내 집 앞에 도착하자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초인종을 눌렀고, 곧 인터폰으로 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에요?”
“응.”
‘자기에요?’와 ‘응’을 주고받자 성은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졌다.
“흠. 예상하긴 했지만, 이거 화가 좀 나는데.”
“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지금이라도 두 사람의 만남을 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마치 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성은이에게 손을 잡힌채 항상 즐거울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집에 끌려갔다.
“안녕하세요? 하연씨세요.”
“네, 성은씨죠. 자기한테 들은 그대로 미인이시네요.”
“하연씨도 마찬가진데요.”
성은은 언제 얼굴이 찡그려졌냐는 듯이 밝게 웃고 있었고, 하연도 그런 성은을 밝은 모습으로 맞이하였다. 하지만 둘이 웃는 모습은 나에겐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는 선전포고처럼 느껴졌다.
“저기 화원에서 봄꽃이라고 해서 사왔는데, 우리는 맘에 드는데, 하연씨 맘에도 들을지는 모르겠네요.”
성은의 우리란 말에 하연의 밝은 미소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평정을 찾은 듯이 하이톤의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요? 저야... 뭐 우리 자기가 맘에 들어하신다면야, 항상 OK죠. 자기 맘에 들어요?”
“응.”
이번엔 하연의 반격이다. 만약 남의 이야기라면 재미있게 볼 연속극이겠지만, 나에겐 절대 아니다. 성은은 하연의 반격 정도는 가볍다는 듯이 내 손을 잡고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손님 접대가 좀 부족하네요. 앉으란 소리도 없고, 차라도 좀 주세요. 자기 앉자.”
“헤헤.. 죄송하네요. 자기는 내가 이러면 챙기지 곧 준비해 올게요. 헤헤.”
이런 와중에도 하연의 헤헤 거리는 웃음에 넋을 빼놓고 보는 나는 무어고, 그런 나의 옆구리를 강하게 꼬집는 성은의 심정은 어쩔 것인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넋이 나간 채 봐. 내 편 해준다고 했잖아!”
성은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윽. 이건 놔 놓고 말하자구.”
“저기요, 자기 차 어디있어요. 아무래도 여기에서 생활한지 얼마 안돼서. 차가 어디있는지 잘모르겠어요. 자기 도와줘요.”
성은은 손을 놓아주고 싶은지 계속 잡고 있었으나, 하연의 계속된 부름에 어쩔수 없다는 듯이 내손을 놓아주고 나를 쏘아보았다.
“응, 알았어. 금방 갈게.”
역시 착한 하연이 내가 당하는지 알고 불러주는구나. 하연이 너 밖에 믿을 사람 없다.
“차는 저기 선반 위에.....”
“차가 중요해요? 내 편 해준다고 했죠? 근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은씨를 옆에 앉혀요? 나 미치는 것 보고 싶으세요.”
하연은 성난 고양이처럼 나를 쏘아보면서, 몰아붙였다.
“아니 내가 어쨌다.....”
“그걸 몰라서 그래요. 적어도 내 편이 되기는 바라지 않았지만, 성은씨 편을 들면 어떻게요?”
거실이 부럽다. 차라리 아프고 말지.
“성은이 기다리겠다. 차 준비 해......”
“그렇게 성은씨가 걱정이 되나요?”
“자기야~ 차 찾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거실에서 성은의 말이 들리자, 하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준비해둔 차를 들고 거실로 갔다. 나야 하연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연은 탁자위에 성은의 앞에 차를 한잔 놓고 반대편에 두잔을 놓은 채 성은의 반대편에 소파에 앉았고, 그 모습에 성은은 한 방 먹은 듯 했지만, 곧 나를 보면서 내 옆에 앉으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아... 성은의 그런 눈빛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하연의 눈빛이 느껴진다. 나는 조용히 찾잔을 두 긴 소파 사이의 일인용 중앙 소파 앞에 놓으며 앉았다.
“차 맛있네.”
“자기는 내 차 끓이는 거 한 두 번 마셔봐요? 맛있긴요.”
“자기 너무 뜨겁지 않아. 우리 집에서 마실 땐 항상 미지근하게 마셨으면서.”
그거야 섹스 후에 마셨으니 미지근하다 못해 차가울 정도였지만, 기본적으로 허브 차는 따뜻하게 마시는 게 맛있다고. 얼레. 성은은 내 일인용 소파 옆 손잡이에 걸터 앉더니 자신의 차를 호 불어 식혀서 나에게 권했다.
“자기야. 내가 식혔어. 자 마셔.”
“응.”
미치겠다. 내가 성은이 권해준 차를 마시자, 하연은 내 얼굴을 뚫을 듯한 기세로 눈을 매섭게 쳐다보고 있다.
“성은씨 식사 준비 다 되어 있으니까. 일단 식사부터 하죠.”
“아직 이른 시간 아닌가요. 차 다 마시고 식탁으로 가죠.”
“차야 디저트죠. 원래는 식사부터 하는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죠.”
“하긴 그렇네. 왜 근데 우리 차부터 마시고 있는 거지?”
“그거야 성은씨가 달라고 했으니까, 그렇죠.”
얼레 이상하다. 왜 하연이 이겼다는 듯한 미소를 띠우고 있고 반면에 성은은 나를 죽일듯이 쳐다보고 있지.
“전 준비하고 있을테니까, 성은씨는 조금 있다 오세요. 자기, 도와줄거죠.”
“잠시만요. 하연씨, 우리 좀 이야기 할 거리가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먼저 가실래요.”
하연은 여전히 승리했다는 미소를 띄운 채 부엌으로 가기 시작했다.
“자~기.”
“저기 할 이야기란게.”
“그럼 나는 식사 전에 차부터 마시는 비상식적인 사람이란거야.”
그 소리가 저렇게까지 비약될 수 있는 건가? 보통은 안 그렇지 않나.
“아니 나는 그런 의미로 이야기 한 게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나는 오늘 제대로 준비도 해놓고 왔단 말이야. 자기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알지.”
준비, 무슨 준비. 나는 영문이 모르는 채 서있었지만, 성은은 하연을 도와주려는 듯이 부엌으로 향했다.
“하연씨 저도 도울게요.”
그리고 그러면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두 글자의 단어를 말했다.
“관장.”
아 피가 끓는다. 성은이 오늘은 제대로 준비하고 왔네. 정현이 기분 좋아졌어.
식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정도로 살벌하면서 달콤했다. 성은과 하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음식을 나에게 권했고, 덕분에 내 배는 볼록해졌지만, 식사 전의 성은의 입모양 때문에 나는 흥분되어 성은이에게 헤벌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연은 기분이 상해 있는 상태였고, 반면에 뛰어난 음식의 맛에 성은은 열등감을 느끼었는지 음식을 맛보면서 기분이 상하고 있었다.
살벌한 식탁은 끝을 맺혔지만, 두 사람은 거의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에 내 배는 소화불량이 걸릴 정도였지만, 그거야 소화제 먹으면 되는 것이고. 오늘은 성은과의 화려한 밤을.. 토요일은 밤이 좋아.
“너무 맛있어요. 하연씨 다음에 저 요리 가르쳐 주세요.”
“물론이죠.”
“그런데 안 가세요? 아니면 같이 모시자는 거예요?”
“가라니요? 그리고 같이 모시자니요?”
“당연히 우리 자기 배채워줬으니까. 침대에서 소화하게 해줘야지. 이대로 놓아두면 소화불량 걸린다고요. 하연씨 구경하시게요? 뭐 구경하신다고 해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같이 모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하연의 얼굴은 더 이상 빨개질 수 없다는 듯이 홍조를 띠어갔고, 곧 말을 잊고 말았다. 반면에 성은은 내 손을 잡은 채 침실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때까지 하연은 말문을 잃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성은이 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나도 같이 들어가요.”
하연의 너무나 의외의 말에 성은과 나는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연은 입술을 깨물고 결심했다는 듯이 성은과 나에게 걸어왔다. 성은의 표정은 떨떠름했고, 하연의 표정은 단호했지만, 내 얼굴은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