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렘 캐슬 -4-
제 2 장 성모의 마성
"갑작스러워서, 놀랐지요."
막 즉위한 직후인데도, 마치 태어날 때부터 여왕이었던 듯한 분위기가 풍기는 글로리아나는 일단 높은 곳에 위치한 빨간 빌로드로 꾸며진 호화로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서, 우아하게 말을 건네왔다.
놀랐다는 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필릭스는 경천동지라는 사자성어를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신여왕의 대관식에서 한 폭탄선언. 그 터무니 없는 내용에 소란스러워진 참석자들 속에서 행사가 끝나고, 신 왕태자로 옹립된 소년은 로얄가드에 소속된 기사들에게 둘러 싸여 왕성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높은 천장, 발목까지 파묻힐 듯한 푹신푹신한 붉은 융단. 넓은 실내 오른 편 에서는 초여름의 부드러운 햇볕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곳은 알현실이었다.
좌우에는 이슈타르 왕국의 신체제를 지탱할 고위 고관들. 재상 캔버라, 왕제 히르메데스, 장군 데크셀 일동이, 예복차림 그대로 서 있다.
역시 그들은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바깥의 귀족들이나 민중들 처럼 얼굴색을 바꾸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어른들의 심경을 읽어내기엔, 소년의 인생경험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필릭스의 존재는 누가 보더라도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귀족들에게 희귀한 짐승이라도 구경하는 것처럼 관찰당하고 있던 소년은, 이유도 없이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 어어어어어어떻게 된 일입니까?"
죄송했습니다, 라고 한마디를 남기고 당장 자리를 떠나고 싶은 기분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움직여 열심히 말을 뽑아냈다.
"이건 어떤 의도의 장난이신지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소년의 주장에, 글로리아나는 아주 뜻밖이라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장난같은 게 아니에요. 제가 그런 농담을 말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죄,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왕족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사로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온 소년은 바닥에 이마를 찧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후훗, 뭐, 기분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사정을 이야기해 드리죠. 제 잎으로 말하는 것보다도, 우선은 백작이 가르쳐 주세요."
"넷"
위엄있는 여왕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나온 것은 보기에도 완고해 보이는 융통성 없이 딱딱한 고전적인 기사의 대표와 같은 느낌이 드는 초로의 남자였다.
"아버지, 이것은"
"음…… 왕태자전하. 오늘 지금까지, 신을 부친이라고 부르셔 왔습니다. 때로는 함부로 대한 적도 있습니다만, 지금까지의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한 소년과는 대조적으로, 노기사의 얼굴은 공인으로서의 가면에 덮여 있었다.
"그, 그렇게 서먹서먹한 말씀을. …… 게다가, 배, 백작이라뇨?"
"그래요, 당신의 양부 질베르트경에게는 백작위를 하사했습니다."
말해주는 것을 잊었다고, 여왕이 가볍게 설명했다.
"저의 아들을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키워주신데 대한 당연한 포상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왕태자를 키운 부모가 작위도 없어서는 체면이 서지 않으니까요."
"예에……"
작위가 없었던 왕국기사가, 갑자기 백작이다.
필릭스의 장래의 꿈이랄까, 야망이라고 할만한 건 공적을 세워서 남작위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높았던 신분의 벽이 유리장처럼 돌파당해버린 것이다.
"조금 전 여왕폐하가 말씀하신 대로, 전하는 제 아들이 아니라, 젊은 날 선왕 로겐하이드 전하가, 황송하게도 왕궁시녀였던 저의 딸 마린카를 총애해 주셔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엣"
아버지가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되어버린 노인의 얼굴을, 필릭스는 아연하게 바라보았다.
평범한 왕국기사의 아들이, 갑자기 왕자라고 불리며, 거기에 왕태자로 옹립되었다.
세간의 사람들은 꿈도 못 꿔본 행운이라고 말할테지만, 그 본인으로서는,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자신의 위치. 장래의 전망같은 것이 근본부터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어떤 제대로된 사고가 불가능하다. 나쁜 꿈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은 현실에 내몰려 섰다.
국왕이나 귀족 집안에 서자가 태어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명문의 왕비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먼저 태어난 남자 아이는 공표되지 않고, 약간의 재산과 함께 가신에게 넘겨지는 일도 역시 드문 일은 아니다.
쫓겨난 여자가, 비탄 끝에 산후 조리를 잘못해 죽게 되는 것도 세상에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렇군. 우리 엄마가 요절한 것은, 그런 이유가 있어서였구나)
라고, 묘하게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왕비와의 사이에 자식이 생기기 전에, 국왕이 병으로 쓰러져버렸다. 이것은 조금 드물다.
그래서, 가신에게 하사한 아들을 다시 부르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상당히 희귀한 예이기는 하지만, 드물게 있을 법한 이야기다.
필릭스는 아무래도 현실감이 없었지만, 질베르트경 입장에서 보면, 왕가에 봉공으로 보낸 딸에 흠을 만들어서 되돌려 보내고, 지금 또 아들로 키우고 있던 손자를 왕가에 빼앗기게 되었다.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다.
"숙부님. 괜찮으십니까?"
격정과 정신적 피로가 지나쳐, 비틀거린 질베르트 경을 당황해서 부축한 것은, 기사정장을 입은 우르슬라였다.
시야가 좁아진 상태의 소년은 당황한 나머지, 짝사랑하고 있는 여성이 양부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 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젊은 여기사로서 이름을 떨친 우르슬라와는, 옛날부터 가족 전체에 걸쳐 친분이 있었다.
"우르 누나……"
어젯밤, 소년에게 첫 사정을 경험시킨 여성은, 얼음 같은 미모 그대로 눈인사를 할 뿐 말을 걸어주지는 않았다.
질베르트 경은 손녀며느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창백한 얼굴을 한 소년을 향해 예를 취했다.
"신은, 신명을 걸고 왕가를 모시고 있습니다. 전하에게는 결코 배반하지 않는 창이 하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길."
그 말이, 필릭스의 왕궁생활이 결코 안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헤아린 조부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인 것을, 필릭스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질베르트 경.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됐어요."
"넷, 실례하겠습니다."
방을 나가는 아버지라고 믿고 있던 남자의 등과, 그 뒤에서 걱정스럽게 수행하고 있는 우르슬라의 등을 필릭스는 화살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왕태자가 된 소년에게는 과거에 대한 석별보다도, 미래를 향한 희망쪽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의모는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소개할께요. 이쪽이 저의 시동생 히르메데스. 당신의 숙부가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감히 비교할 자가 없는 용자로서, 무패의 명장. 이슈타르 왕국의 수호신이에요."
눈에 띄는 장신에, 강철 같은 체구, 흑발에 검은 눈, 안광은 강열했고, 용맹 그자체와 같은 장년의 남자이다. 전장의 먼지에 시달리며 완성된 무인의 조각상과도 같다.
그의 형이자, 글로리아나의 남편이었던 국왕 로겐하이드는 예슐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했다. 악랄한 성격은 아니지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난세에 재위 15년동안 별 탈 없이 나라를 유지해 온 것은 최전선에서 피투성이가 되며 싸워 온 동생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열병식 같은 것을 할 때면, 병사들의 존경과 경외심은 국왕이 아니라, 그 옆에 서있는 왕제를 향하고는 했다.
재능, 실적, 인망 모든 면에서, 단지 아름다움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군주 글로리아나보다 못한 점은 전혀 없다.
국민의 다수는 다음 국왕은 히르메데스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왕비 글로리아나에게 왕위가 넘겨졌다는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않았다. 그와 동시에, 히르메데스가 욕심이 없음을 칭송하며 그가 보좌하고 있으니, 글로리아나의 치세는 평안무사할 거라고 안심했다. 아니, 글로리아나의 왕위는, 히르메데스가 왕위를 계승할 때까지의 잠정적인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까지 아는척 하면서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억측은, 필릭스의 등장에 의해 날아가 버렸다.
그것은 노련한 정치가인 재상 캔버라와 유력 귀족가문인 크림힐트가 사이의 음모가 있었던 깃이 확실했다.
즉, 영웅다운 기질을 갖춘 히르메데스가 왕위를 잇게 되면, 분명히 대규모 정치 개혁을 실행해, 이 난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이 보수파의 대표라고 할 캔퍼라는 싫었다. 유력귀족 크림힐트가로서도 자기 가문의 영향력의 저하는 피하고 싶었다.
양자의 의사가 일치해, 재상 캔버라와 유력 귀족 크림힐트 가의 야합을 낳았고, 여왕 글로리아나가 탄생했다. 이 정치적 마술을 가능하게 한 씨앗이, 선왕 로겐하이드의 숨겨진 아들의 왕태자 옹립인 것이다.
물론, 필릭스가 순식간에 그러한 사정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알게 된다.
이슈타르 왕국의 기사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이상적인 무인을 앞에 두자, 순진한 소년의 뺨도 붉어졌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장군의 수족이 되어 일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
히르메데스는 말없이 소년에게 인사했다.
지독한 한기가 느껴지는, 칼날에 베일 듯한 시선을 마주한 느낌에, 필릭스는 말을 잃고 물러섰다.
"핫핫핫, 그러면 곤란합니다. 전하가 장군을 수족으로 사용해 주셔야죠. 그렇죠, 용기장군."
분위기를 풀어주 듯이 이야기 한 것은, 토실토실한 뺨에 당당한 체구의 중년남자였다.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가 녹은 것에 안도한 글로리아나는 시동생을 향해 선 장군을 소개했다.
"이 쪽은 호기장군 데크셀, 당신의 호위를 맡고 있습니다."
"젊은 주군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겠습니다."
성격적으로도 밝고, 나쁜사람은 아니겠지만, 실적이 아니라 뒷 배경인 크림힐트가의 정치력으로 장군직에 올랐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청렴결백하고 사람이 좋지만 이렇다할 장점이 없는 아저씨라고 험담을 듣고 있다. 아니, 그의 경우, 라이벌로 주목받는 왕제 히르메데스의 존재가 너무 화려하기에, 필연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무훈은 없지만, 사무처리능력 등에 뛰어나서, 멋진 대승도 없는 대신에, 대패도 없다. 견실한 지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타입의 무인은, 국민의 신뢰는 있어도,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쪽이 데크셀 장군의 딸 루이즈. 지금까지 저의 시녀장이었지만,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양보할게요."
여왕의 왼쪽 뒤에 서 있던 연지색 시녀복을 입은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루이즈입니다. 저번에는 실례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왕 대관식의 일환으로서, 견습기사의 기사서임을 한다고 말해주러 온 현명해 보이는 여자다. 그녀는 미소도 짓지 않고, 치마를 들고 우아하게 인사했다.
아무래도 그때부터 벌써, 오늘의 시나리오는 완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차 안에 있던 주인이 바로, 글로리아나 였던 것이 틀림 없다.
"왕태자의 시중은 공적인 일은 데크셀이, 사적인 일은 루이즈가 보살펴 줄겁니다. 왕가의 자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거지를 몸에 익혀주세요."
여왕이 상냥하게 말하지 않아도, 놀라움도 포화 상태가 되어 있던 필릭스는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그냥 멍하게 써 있을 뿐이었다.
"폐하, 슬슬. 각국의 대사와 알현하시지 않으면"
"…… 그랬지요. 정말 국왕따위 되는 게 아니었어요. 매일, 눈이 핑핑 돌도록 바쁘니."
비서관에게 귀엣말을 들은 여왕은 투덜거리며, 양아들에게 상냥한 눈을 보냈다.
"저는 지금부터 용무가 있습니다. 적어도 저녁 만찬은 둘이서 먹으며, 친목을 깊게 하도록 해요."
필릭스는 데크셀 장군과 그의 영양 루이즈에게 이끌려 알현실을 뒤로 했다.
※
"여왕폐하의 행차입니다."
예고에 이어, 양어머니가 된 여성이 들어왔다.
글로리아나의 복장은 의전용의 옷에서 사적인 복장으로 갈아입어, 검게 염색된 비단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둥그런 어깨를 대담하게 드러내고, 금색 테두리가 들어간 의복이다. 풍성한 황금색 머리카락이나 가슴팍에는 커다란 보석이 찬란하게 빛나는 머리장식과 브로치를 달고 있다. 마치 이제부터 야간 파티에라도 나가는 듯한 치장이다.
그런 화려한 의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이 귀하게 자랐다는 증거일 것이다.
"기다리게 했나요?"
"아뇨……"
정식 갑주를 벗고, 간편한 기사복장을 하고 있는 필릭스는 예의 바르게 일어나서 맞이했지만, 압도적인 미모의 화려한 치장에,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여기는 왕족이 사적인 환담에 사용하는 방일 것이다. 가구들은 고급이었지만,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다.
막 즉위한 여왕은 바빴고, 역시 막 왕태자에 오른 필릭스도 호위와 시녀에게 왕족으로서의 기본적인 것을 배우느라, 눈 깜짝할 사이에 날이 저물어 버렸다.
레이디를 대하는 예의로서, 그녀의 의자를 빼주려고 생각했지만, 메이드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 역을 맡아 버렸다.
단 둘이 하는 식사라고 해도, 왕족에게는 하인은 인원수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앉으세요."
여왕의 허가를 받은 필릭스는 송구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단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여왕과 마주 보는 자리에, 순순히 착석했다.
소년의 심박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것은 단순히 상황의 변화나, 고귀한 여성을 앞에 둔 당황스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보는 여왕은 반해버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아름다움과 요염함의 밸런스가 잡힌 완벽한 미모였다.
국민의 경애와 충성의 대상인 국모는, 태양 빛 아래에서는 청초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밤의 장막 안에서 보니, 미묘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상냥하고 아름다운 얼굴 생김새는 마찬가지인데, 뭔가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색향이 늘어난 것이다.
검은 옷만으로는 숨길 수 없다. 성숙한 여자로서의 페로몬이 농밀하게 넘쳐 흐르고 있다.
기사대장 우르슬라는 늠름하게 아름다웠다. 왕궁시녀인 루이즈는 지성적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들과 글로리아나는 차원이 다른 미모이다.
전 국왕 로겐하이드가, 그녀를 왕비로 원했을 때, 왕제 히르메데스는 "지나치게 아름답다. 경국의 미모다." 라면서 반대했다는 일화가 있다. 진위는 모르지만, 히르메데스의 기우도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시선을 내렸다. 매우 자연스럽게 가슴팍이 눈에 들어온 순간, 눈알이 튀어날 것 같은 느낌에 숨을 삼켰다.
드레스의 가슴팍이 대담하게 벌어져 있다. 아름다운 능선을 그린 가슴 계곡. 크고 부드러울 듯한 두개의 하얀 살덩이가 당장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다.
"응?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요? 사양하지 말아요. 뭐든지 말해주세요."
긴장으로 몸을 경직하고 있는 소년을 릴랙스시키려고 하는 건지, 가슴팍을 드러낸 여왕은 미소를 띠우며 물어왔다.
용안을 보는 것은 송구스럽가, 그렇다고 해서, 가슴 계곡을 보는 것도 불경스럽다고 느낀 소년은,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면서도, 미리 준비했던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제가 왕태자로서 이 왕궁에 살게 된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저기, 일단 집에 돌아가면 안될까요? 그러니까, 신변정리랄까 여러가지 할 일이 있어서……"
물론, 속에는 어떻게든 우르슬라와 만나고 싶다는 소원이 담겨있다. 이 전의 섹스 운운한 것은 이차적인 문제고 어쨌든 만나서 상담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오늘, 바로 지금부터 당신의 집은 이 왕궁입니다. 괜히 옛집 생각을 해도 곤란하니까, 질베르트 저택에 가는 것은 금지입니다. 필요한 건 루이즈에게 말하세요. 모두 준비해 줄겁니다."
이런 요청을 해오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답에는 타협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연모하던 여성에게 동정을 뗄 수 있다는, 손에 잡힐 듯했던 꿈도 다시,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어 버렸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것보다, 이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낙담한 표정을 한 아들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건지, 여왕은 시중을 들고 있던 세명의 시녀를 가리켰다.
그녀들의 복장은 왕궁 메이드복과는 조금 달랐다.
머리에는 하얀 메이드캡, 하얀 에이프런, 검은 원피스라는 점은 평범했지만, 가슴팍이 크게 파인 반소매의 검은 원피스에, 플레어 미니스커트. 그 위에 하얀 에이프런을 하고 있다.
대담하게 노출된 발에는 하얀 니삭스 타이즈. 프릴과 리본이 잔뜩 달려, 근로복이라고하기에는 너무나도 섹시하고 귀여웠다.
"왕태자를 모실 메이드로서, 제가 직접 고른 아이들입니다. 루이즈 소개해줘요."
"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메이드장은, 불초인 루이즈 크림힐트가 맡게 되었습니다."
오직 혼자서 붉은 옷에 롱스커트의 노출이 적은 루이즈는 앞으로 나와서, 세명의 검은 옷에 미니스커트의 노출이 많은 메이드들을 소개했다.
"보실 때 왼쪽이 캐롤. 재상 캔버라 각하의 손녀딸입니다."
"자, 잘부탁 드립니다……"
혀 짧은 말투로 공손하게 인사를 한 소녀는, 필릭스보다도 머리 하나 정도 작았다. 아직 어린 아이라고 해도 좋은 외모를 하고 있다.
금발에 벽안. 무심코 찔러보고 싶어지는 마시멜로우 같은 뺨을 가지고 있다.
포근하게 말아 올린 뒷 머리는, 세갈래로 땋아져 있어, 모친이나 시녀가 애정을 담아 땋아준 것이 틀림 없다. 분명 태어났을 때부터 주위의 애정을 아낌없이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오늘 즉위식에서는 여왕 글로리아나를 시중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국민의 눈을 즐겁게 한 것이다.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당황한 듯이 큰 푸른색 눈동자를 글썽글썽 거리고 있어, 긴장감이 손에 잡힐 듯 전해져 온다.
"나야말로 잘 부탁해."
"아, 네…… 노력하겠습니다."
뺨을 붉히며, 활짝 만면에 미소를 띠웠다.
천사와 같은 웃는 얼굴이다. 보호욕을 자극당안 주위사람이 일제히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이어서 가운데가 사샤, 삼림귀족의 딸입니다."
세 사람 중에는 가장 연상. 십대 후반 정도. 신체도 그만큼 잘 발달해 있따. 키가 크고 마른 몸. 그러면서도 가슴은 나이에 어울리게 크다.
옅은 밤색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닿고 있다.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희고, 눈동자도 옅은 갈색에, 전체적으로 색소가 옅은 인상이다.
나무랄데 없는 미인이지만,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느슨한 얼굴은 본 기억이 있었다.
이전에 필릭스의 얼굴을 가슴에 파묻은 여성이다.
"에헤헤, 잘부탁해요♪"
무의미하게 행복한 얼굴로 인사를 한 그녀에게, 정말 골치를 앓은 적이 있는 소년은 뺨이 굳어졌다.
"마지막은 마가리. 왕가가 후원하고 있는 상인 무슬란의 딸입니다."
무슬란의 이름은 필릭스도 알고 있다. 이슈타르 왕국을 대표하는 대상이다.
"마가리입니닷! 열심히 왕태자님의 시중을 들겠습니닷!"
큰 소리로 활기차게 인사를 한 소녀는 나이는 필릭스와 비슷한 정도. 빨간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있다.
키는 작고 얼굴은 다소 동안이면서, 크고 부드러울 듯한, 따끈따끈한 고기만두를 연상시키는 유방이 인상적이다. 피부는 다소 햇볕에 그을려 있어, 육감적인 분위기가 있다. 확연하게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타고난 몸을 가져, 셋 중에서 가장 글래머러스한 체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때요, 제가 고르고 고른 아이들이에요. 맘에 들었나요?"
"에, 예……"
곤혹스러운 필릭스와는 상관없이, 글로리아나는 분위기를 바꿨다.
"여러들 노력하세요"
"네"
캐롤은 혀 짧게, 사샤는 부드럽게, 마가리는 활기차게, 세명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대답을 했다.
"그럼 식사를 합시다."
아름다운 여왕이 종을 울리자, 세명의 메이드들이 별실에서 요리를 날라왔다.
"젊은 아이는 역시 고기가 좋을거라고 생각해서 고기 요리를 준비시켰어요."
호화롭게 세공된 금접시에 새끼 야의 로스가 담겨있다.
섬세한 문양이 새겨진 은제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쥔 여왕은, 우아한 손놀림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식사를 했지만, 필릭스쪽은 그러지 못했다.
요리의 맛도 알수 없었지만, 식기류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인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사치는 당연, 사치를 사치로 생각하지 않는 글로리아나로서는, 이것은 일상이겠지만, 필릭스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사치품이었다.
이슈타르 왕국에서는 주군이 가신을 만찬에 초대했을 때, 사용한 식기도 역시 하사하는 풍습이 있다. 필릭스로서는 가지고 돌아가 가보로 하고 싶은 식기들이었다. 그래서, 요리가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도 않았다.
"왜 그래요? 고기요리는 싫어했어요?"
"아뇨, 거칠게 살아와서, 이런 식기를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후, 어쩔수 없군요. 이리 주세요."
양어머니는 양아들의 접시를 받아서, 자신의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
"오늘만 특별히에요. 내일부터는 테이블 매너를 숙지하세요."
황송해 하는 필릭스의 앞에서 글로리아나는 루즈로 반짝이는 입술로 우아하게 웃었다.
여왕이 사용한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준 고기라는 것은 이것을 먹으면 간접키스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먹지 않을 수는 없다. 마음을 결정하고 소년은 고기를 한조각 입에 넣었다.
입 안에서 녹는, 육즙이 흘러 넘치는 고기라는 것을 첫경험한 소년은 전혀 먹은 것 같지 않았다. 입에 넣자 마자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다.
긴장으로 도저히 식욕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거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그 모습에 웃음을 지으면서, 여왕은 말했다.
"저는 당신 같은 아들을 가지고 싶었어요. 저는 자식을 낳지 못했지만, 당신을 남겨준 것을 신과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
필릭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는 그대에 대해서 최근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 사름은, 죽기 직전이 될 때까지 그대에 대해서 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 뿐만 아니라 성안에서 극비중의 극비로, 결코 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었어요."
서자가, 본처나 적자에게 미움을 받아 살해당하는 예도 드물지 않기에, 국왕과 가신들의 걱정은 당연했다.
"실례에요. 제가 당신을 잡아먹기라도 할, 냉혹비정한 여자로 생각한 걸까요?"
노기를 드러내 듯, 은제 포크로 푹, 고기를 찔렀다.
질투에 미쳐 서자를 죽이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기 보다도, 가신의 반열에 넣어 일가를 일으켜 줄 정도의 도량은 있었다는 생각일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여왕은, 여러가지 질문을 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소년은 필사적으로 대답하는, 신여왕에게는 검소한, 신왕태자에게는 사치스러운 만찬이 끝났다.
"왕태자는 만족해준 것 같군요. 저도 맛있었어요. 주방장을 칭찬을 해줘요."
치하의 말을 신뢰하는 시녀에게 전한 여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담소의 장소는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둔 커다란 소파로 옮겨졌다.
허리가 잠겨들어 버리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여왕은, 술이 들어가, 완전히 풀어져 있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자, 드레스 옷자락이 흐트러졌다.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육감적인 다리가, 허벅지 중간까지 노출되었다. 아무래도, 스타킹은 허벅지 중간까지인 듯, 하얀 피부가 흘끗 보였다.
루이즈는 테이블 위에 여왕에게는 적포도주를, 왕태자용으로는 과일 향이 나는 차가운 물을 놓았다.
세명의 시녀들은, 식기류를 정리하고 있다.
"당신들은 이제 됐어요. 저는 왕태자와 은밀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요. 잠깐 자리를 비켜주세요."
"……잘 알겠습니다."
루이즈는 순간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 시녀를 거느리고, 방을 나갔다.
사람들이 물러간 밀실에, 여왕과 단둘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압박감이 느껴지는 미녀인데, 더욱 존재감이 늘었다.
"그러면……. 보는 눈도 없어졌고, 조금 편안한 자세를 할께요."
여왕은 스타킹에 감싸인 양다리를 소파 위로 올리고 마치 자신의 스타일이 멋지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이, 몸을 눕혔다.
가까이에서 보니, 검은 드레스 너머로, 여왕의 신체의 곡선을 상상할 수가 있다. 이십대와 삼십대의 차이인걸까, 아니면 기사와 공주님의 차이인걸까. 우스슬라의 몸매와는 꽤 다르다.
우스슬라의 몸은 샤프하고 아름다웠다. 가슴도 허리도 팽팽했고, 극한까지 단련된 여체미였다.
하지만 글로리아나는 그런 딱딱함은 없다. 풍만한 가슴, 육감적으로 좌우로 퍼진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 누구나 완숙하다고 인정할 여성특유의 부드러움이 있다.
"이쪽으로 오세요."
너무 무방비한 자세에 곤혹스러워하는 소년에게, 적당한 취기가 감돌고 있는 여왕이 지시한 것은 자신의 소파였다.
"아뇨, 그런…… 송구스럽습니다."
"괜찮으니까, 오세요. 은밀히 할 이야기가 있어요."
의아하게 생각한 왕태자였지만, 여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긴장으로 몸을 굳히며 일어서서, 호화로운 미녀가 앉은 소파의 가장 가장자리, 미끄러 떨어질 것 같은 위치에 살짝 허리를 걸쳤다.
"후후후, 그런 가장자리에선 소파에서 떨어져버릴 거에요. 상관없으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아뇨, 그런…… 송구스럽습니다."
"괜찮으니까, 사양할 것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