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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향기(香氣) - 2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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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날림 작가 캡틴 카셀 인사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요.. 제가 드디어 취직을 했습니다!!


아직 졸업과 시험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긴 하지만 알바가 아닌 여엿한 직장에


취업이 되버렸네요~~홍홍홍..


이제 제 힘으로 돈벌 생각에 가슴이 뛰면서도 이제 사회인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


슴이 무거워 지며 잘 할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아무튼 열심히 해야겠죠!!


험한 세상 더러운 꼴도 많이 있겠지만 꾹 참고 한번 해보렵니다..후후후..


이런 좋은 소식과 더불어...조금 안 좋은 소식이 있으니...이런 이유로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질 듯 싶네요.. 제가 하는 일이 워낙에 시간에 쫓기고 정해진 기약없이 늦게 끝나는


일이라 글 쓸 시간이 많이 없어 앞으로 올라오는 글의 연재 속도가 더욱 느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연중 없이 최소한 일주일에 한편은 꼭 써 보일테니 너무 걱정은 말아 주세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아직 많은 여자들이 강혁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고 지금 여자들과의


즐거운 에피소드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장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최대한 노력해서 재밌는 글로 다시 찾아 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길..


그럼 전 이만 뽀로롱 사라집니다~~


PS.보시고 난뒤의 짧은 리플과 살포시 찍어주시는 추천은 저의 글을 기름지게하고 길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부디 잊지마시고 리플이나마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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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짜 분위기 더럽게 삭막하다. 누나와 오랜만에 마주 앉은 식탁위에는 마치 비무장 지대의 긴장감 같은 정체모를 기운 만이 감돌며 그저 달그락 달그락 식기 오가는 소리만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이거 무슨 생판 모르는 남이랑 먹는 것도 아니고..왜 이렇게 분위기가 난감하냐..


솔직히 요 몇 일새 누나와 나의 관계가 상당히 어색해 져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피부로 느낀 적은 없었기에 그리 실감은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같이 마주 보고 밥을 먹고 있으니 생각하고만 있던 어색함이 온몸 가득 여실하게 전해져 온다.


아..어색해...이 아줌마가 저렇게 조용히 수도승처럼 밥만 먹고 있으니까 어색해..거기에 착하게 시비도 안거니까 더 어색해...우리 누나 아닌 것 같아..


국을 떠가며 살며시 누나의 눈치를 보지만 누나는 그다지 할말이 없는 듯 그저 묵묵히 손과 입만 움직이며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몇 가지 더 이상한 점이 있다면 밥숟가락으로 삽질하듯 퍼먹던 평소의 누나답지 않게 얌전하게 깨작깨작 밥알 세가며 먹는다는 거와 날새고 술 퍼먹다 들어온 날에도 멀쩡하던 얼굴이 조금 헬쓱해 보인다는 것 뿐..


출장이 힘들었나?? 행여나 누나가 아플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체력하면 우리 아줌마 우리 아줌마 하면 모든 바이러스에 면역성을 가지고 있을 법한 강철 체력이었으니까... 저 아줌마가 병원 가는 날은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새로운 신종 바이러스가 태어나는 날일 거다.


암튼 그보다 이 어색함을 어떡해든 탈피해야 돼.. 


<아..저기..누나 출장은 어땠어?? 재미 있었어??>
<그냥 그랬어...>
<그래??>


아...뭐야..이 단답형 대답은..원래대로 라면 넌 공부하는 게 재밌냐?? 니가 돈벌어 볼래?? 재밌나.. 로 시작해서 막 뭐라고 해야 되는데...


<이거..해물탕 맛있지?? 내가 누나를 위해 특별히 만든 거야..요즘 누나 너무 기운 없어 보여서...어때...고맙지??>
<어..>


그러니까 반응이 왜 이래!! 이렇게 말하면 너 미쳤냐?? 라든가 생활비 떨어졌냐?? 라든가 그런 응답이 있어야지.. 아.. 아무래도 뭔가 나한테 화나도 단단히 화났어...뭐지?? 진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그일 밖에 없는데..대 놓고 누나 그 일로 삐졌어?? 라고 물어 볼 수도 없고..일단 다른 얘기로 이야기를 하다 넘어가자..


<아...맞다...아까 그 남자는 누구야??>


점점 떨어지는 얘기 거리에 결국 나는 마지막 까지 보류해뒀던 이야기를 살며시 꺼내갔다. 솔직히 이거까지는 얘기 안 할라고 했는데...어쩔 수 없다..


<누구??>
<아니...아까 그...누나 집까지 태워다준 남자...>
<그냥..직장 동료..>


그냥 직장 동료는...그냥 직장 동료랑 당신은 키스도 하냐?? 근데 모르나?? 내가 본거..하긴 조금 멀었으니까..나오는 타이밍도 좀 그랬고..그럼 키스..얘기는 넘어가자..어차피 누나나 나나 얘기 해봐야 좋을 거 없으니까...


<차는 어쩌고 얻어 타고 왔어??>
<차가 고장이 나서..그건 왜??>


어..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인다. 좀만 더 파고들어 가볼까..


<아니..그냥.. 아까 그 사람 보니까 잘 생겼던데....돈도 많아 보이고 능력도 좋아 보이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뭐..딱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 아니고..그냥 둘이 잘 어울린다 싶어서 사귀고 있나 했는데..아냐??>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물어가는 나의 물음에 누나가 움직임을 멈춰갔다. 정곡을 찔렀나??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이 잘 안 보이는 게 상태를 모르겠네..


<무슨..의미냐..그거??>
<응??>
<지금...니가 한말 무슨 의미냐고...>


뭔가 목소리가 약간 틀려진 느낌이었지만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런 것 까지 신경 쓸 만큼 말하고 있는 내 기분이 좋진 않았으니까..


<아니..그냥..둘이 잘 어울린다고...음..남자가 좀 아깝긴 하지만 뭐 우리 누나도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구석이 많으니까 혹시나..사귀면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누나는 생각 없어??>
<너는??>
<뭐??>
<너는...내가 그 사람이랑..잘 되면 좋겠냐??>
<뭐..나야 누나가 좋다면 상관없지...아무리 생각해도 남자가 불쌍하긴 하지만 뭐..우리 아줌마가 행복 하다면야..나는 두 팔 벌려 환영이지...>
<그 사람이랑...연인처럼 지내면서 손 잡고..키스하고...같이..자도..넌 아무 상관...없어??>


솔직히...아무렇지 않을 리 없다. 그냥 누나 동생 관계로만 있었다고 해도 기분은 더러웠을 것이다. 나만 알고 있던 누나가 내 옆에만 있던 누나가 다른 사람 곁에서 다른 사람 품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사람처럼 있다고 한다면 누나를 뺏겼다는 질투심과 상실감에 솔직히 상당히 맘이 아프고 쓰렸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런 기분인데 지금의 내 입장으로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더럽고 속이 뒤집혀 오는 게 당장이라도 누나한테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그 이전에 나는 누나의 동생이었다. 남자이기 이전에 피가 섞인 동생.. 그럴수 없는게 당연하다. 지금이야 이렇게 두 사람뿐인 가족으로 또 연인처럼 같이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언젠가는 각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어쩌면 지금이 그때 인지도 몰랐다.


그리고..지금 내가 남자로서 누나를 잡을 자격이 되는 것도 아니고..


<벌써..그런 것 까지 할 단계야?? 무슨 KTX도 아니고 그렇게 빨..>
<넌 상관 없냐고...묻잖아!!>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해오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장난스런 웃음을 지우고 애써 태연한 척 조용히 준비했던 말을 뱉어갔다.


<뭐..솔직히 아쉽긴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누나만 좋으면 나는 상관없어..누나가 그 사람이랑 뭘 하든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면..그리고 누나도 이제 누나 갈길 가야지..언제까지 나 때문에 발목 잡힐 수도 없는 거고..내가 걱정 이라면 나는 상관없어...그러니까 혹시나 내 걱정이나 눈치 같은 거 보지 말고...>


탕!!


엄마야!! 갑자기 식탁을 울리는 타격음 소리에 한차례 식기들이 들썩거리며 나 역시 놀라 말을 멈추며 몸을 움츠렸다.


<뭐..뭐야...갑자기...놀랬잖아..>


방금전에 내리 친 탁자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나의 몸이 가볍게 떨리더니 이내 누나는 허탈한 듯 한 웃음과 함께 이마에 손을 올려 머리를 쓸어 넘겨 갔다.


근데...정말..어디 아픈가?? 안색이 창백한데.. 입술도 파리한게..


<누나..괜찮아??혹시..어디 아...>
<나..먼저 일어난다..>
<어?? 더 안먹어?? 아직 밥도 다 남았는데..>
<밥 맛이 없다...>


밥맛이 없어?? 저 여자가?? 술 먹은 다음 날에도 배고프다고 꼬박꼬박 아침 먹고 가는 여자가??


<누나..그래도...출장 갔다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그냥 좀 더 먹지..>
<됐어....너랑 더 마주앉아 먹다가는 내가 열 받아서 죽거나 내가 열 받어서 널 때려죽이거나 할 것 같아서...더는 못 앉아 있겠다..그러니까 너나 많이 먹어..>


힘 없는 목소리로 살벌한 말을 내뱉은 누나는 이내 머리가 어지러운 듯 이마를 짚고는 비틀 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뭐야...열 받아?? 뭐가..열 받아..기껏 큰 맘 먹고 내가 지 좋은 남자한테 보낸 다는데 지가 뭐가 열 받아!! 나 좋다고 안긴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다른 남자한테 안겨서 키스까지 하면서 자기가 뭐가 열 받는 다고 그러는 거야!! 진짜..내가 더 열 받는다...저 망할 아줌마.. 


괜시리 끓어오르는 누나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에 분을 풀 듯 꾸역꾸역 입안으로 맨밥을 쳐 넣어 가던 나는 이내 끓어오르는 구토감에 급하게 물을 들이켜 갔다.


콜록,,콜록!! 하아... 밥 먹다 질식하는 줄 알았네... 근데..생각 할수록 열 받네.. 내가 뭘 잘 못했어?? 솔직히 잘 못한 건 많지만... 그건 아직 안 들켰으니까 상관 없고..다른 건 잘못 한거 없잖아..


저번에 그 결박?? 그거 누나가 먼저 죽일 것처럼 패서 그런거 잖아..그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고..조금 심하고 변태스럽긴 하지만...암튼...정당방위야.. 그날 새벽 일도 그래..뭔 일이지 설명도 안 해주고 들어가서 생전 안하던 삐짐질 까지 하고...(아..진짜 내가 만든 주인공이지만 한심하다..아직도 지가 뭘잘못했는지 몰라요..이러니까 평생 여자친구도 없이 혼자 지냈지..여자 맘도 모르는 찐따..)


거기다 오늘일은 자기가 화낼 일이 아니잖아!!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해하고 그래야지..왜 지가 화를 내냐고 화를!! 그래..따지자..이거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런 걸로 서먹하게 굴 순 없어. 


<누나...누나...>


결심이 서자 바로 누나의 방으로 달려가 문 앞에서 누나를 불러갔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뭐야..이거..이젠 말도 하기 싫다 이거야?? 이것도 또 열받네..


쾅쾅!!


<누나!!누나!! 문 좀 열어봐..얘기 좀 하자..누나!!>


계속되는 누나의 무시에 나 역시 화가 치밀어 올라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누나를 불러 세워갔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그래..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오기에 손잡이를 부숴버릴 듯 돌려 가자 원래부터 잠겨있지 않았던 듯 찰칵 하는 소리와 문이 열려갔다. 안잠..궜네?? 괜히 헛짓거리 했잖아..


<누나!! 나랑 얘기 좀 하자 누나!!..누...나??>


벌컥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누나를 부르던 나의 눈에 이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들어 왔다. 뭐야..왜 저기 저러고 있냐?? 자나??


의아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서 누나의 얼굴을 바라보니 핏기가 하나도 없는 게 고운 피부가 얼음처럼 창백해보였고 얼굴 곳곳 에는 비라도 맞은 듯 물기가 흥건하다. 놀란 마음에 누나를 안아가자 마치 축 늘어진 빨래 마냥 힘이 없는 게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누나...누나!! 정신 차려봐 누나!!>


뺨을 두들기며 깨워보지만 누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 감은 눈을 뜨지 않은채 가쁜 호흡만을 내뱉을 뿐이 었다.


뭐야..갑자기 왜 이래...따지려던 마음은 어느새 저 멀리로 사라져 그 자리에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왔다. 일단..일단..병원.. 병원부터 가자...생각을 정한 나는 이대 누나를 들쳐 없고 빠르게 집 밖을 나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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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나는 철인이었다. 언제나 내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누구 한테도 약한 모습 따위는 보인 적이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누구에게 놀림을 받거나 맞거나 한 적도 없었고 놀림 받은 적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괴롭혀서 울리면 울렸지.. 그리고 그것은 커서도 마찬가지 였다. 약간 건방져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해 보이던 누나는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어떠한 상황에서 약한 모습이나 아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처했고 그런 모습은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과 동경을 받으면서 어느새 누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누나의 이미지로 굳어져 갔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때 별명이 동광의 잔 다르크 였을까..


그래서 나는 정말 누나가 철인인줄 알았다. 만화에서 나오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처럼 언제나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인간인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누나가 좋았다. 맨날 나를 괴롭히며 놀리고 노예부리 듯 해오는 여자였지만 언제나 정작 내가 힘들 때면 은근슬쩍 나타나 버팀목이 되주는 그런 누나가 좋았다. 존심 상해서 표현은 안했지만..


부모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한창 장례를 치루던 날.. 여러 지인들의 문상이 오가고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갔다. 그때도 그런 사람들을 맞이 하면서도 누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큰 아버지 댁에서 많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아직 어린 누나로서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테지만 누나는 역시 철인 이라는 소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이 장례를 마쳤다. 의젓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독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누나의 모습은 내 눈엔 당연하게 비춰졌다. 누나는 철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날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누나와 단둘이 텅 빈 집에 둘만 있게 되던 날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나 따뜻한 공기가 맴돌았던 공기가 마치 남의 집에 온 것 마냥 낯설게만 느껴졌고  뭔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 공허함만이 맴도는 큰 집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무서워..무서워..이제 뭔가 알법한 중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갓 들어간 나였고 또 워낙에 옛날부터 심약한 성격이었기에 갑자기 부모님이 사라져버린 지금의 상황은 두려움이었고 또 공포였다. 그  막연한 공포에 울상을 지으며 마치 부모님을 찾으려는 듯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 안에는 누나가 있었다. 부모님의 침대 위에서 상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쓰러져 있는 누나의 모습에 처음에는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놀랐지만 나는 이내 누나인 것을 알고 천천히 다가갔다.


물인가 싶을 정도로 흥건히 젖어있는 눈가와 백설처럼 핏기 없는 볼 이마를 만져보니 열은 불덩이 같았다. 간간히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까지... 누나는 숨쉬는 게 힘든 듯 얼굴을 일그러 뜨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아파..하고 있었다..누나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린 여자의 몸으로 몇 일을 밤을 새고 쉬지도 않은 채 부모님을 잃은 끓어 오르는 듯한 슬픔을 속으로 삭히며 억지로 눌러 갔으니.. 병이 안나는 게 더 이상한 걸지도 몰랐다. 


무서웠다. 아까와는 다른 무서움... 언제나 변함 없는 모습으로 철인처럼 보였던 누나가 이런 약한 모습으로 아파하는 모습이 무서웠고 또 이러다가 누나마저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해서 또 무서웠다. 


나는 누나를 들쳐 업고 무조건 집밖을 나왔다. 어디다 전화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달렸다. 병원이 있을 만한 곳으로 누나를 낫게 할 수 있는 곳으로..그냥 내달렸다.. 땀이 비오듯 흘리고 뛰느라 다리에 힘이 조금씩 풀려 왔지만 상관없었다. 누나만 무사하다면..누나만 그저 내 옆에 계속 있게 할 수 있다면..


<엄마....아빠....>


그때 처음 봤다. 힘들게 도착한 병원 응급실에서 길 잃은 고양이처럼 슬픈 목소리로 엄마와 아빠를 찾으며 잠결에 눈물을 흘리는 누나의 여린 모습을..누나의 슬픈 눈물을...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 누나의 눈물을 봤다.


누나는 절대 철인이나 초인 따위가 아니었다..그저 남들보다 참을성이 많고 자존심이 쎄고 강단이 있을 뿐 똑같이 아파하고 똑같이 상처받는 사람이고 여자였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약하고 여린 여자.. 웃겼다. 십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그걸 이제 알았다니...


악몽이라도 꾸는 어린 아이처럼 연신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먹이는 누나의 애처로운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그때 결심했다. 행복하게..해주고 싶다고..우리..누나를...이 여자를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이 여리고 약한 누나를 내가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고..그날 그렇게 결심했다.


젠장...근데...이게 뭐냐...여기저기 분주한 느낌이 병원 응급실의 누나가 누워 있는 침대 앞에서 갑자기 떠오른 옛날의 기억에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려갔다.


<스트레스성 위염 입니다.>


누나의 몸 상태를 진단해본 의사의 짤막한 한마디에 나는 놀란 듯 의사를 바라보았다. 방금 세탁한 듯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 가운을 단정히 걸친 차가운 인상의 미녀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샤프한 목선을 드러내며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 지적이면서 서늘한 느낌의 날카로운 뿔테 안경, 어디선가 본 듯 한 익숙한 얼굴에 익숙한 느낌이 들어오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에는 내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트레스성 위염 이요??>


누가...이 여자가?? 이 돌도 씹어 먹는 여자가 위궤양?? 그것도 스트레스성??


<뭐...잘못 된거 아닌가요??>
<의사인 제 진단으로는 그렇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위에 자극이 쌓여 병이 난 것 같군요..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니니 간단하게 영양제 하나 맞고 처방전 받아서 퇴원 하시면 될 것 같네요..>


전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사무적인 말투로 내뱉은 그녀는 이내 할말이 끝났다는 듯 나를 지나쳐 간다.


<저..잠깐만요!!>
<뭐죠??>
<그게..정말 괜찮은건가요??>
<의사로서 제 의견을 믿지 못하시다면 다른 의사 분을 소개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 드릴까요??>
<네?? 아뇨..그런게 아니라..>
<그런게 아니면 제가 말한데로 링거 맞고 집에 가세요..>


뭔가 나에게 감정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가운 말투로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이내 뭔가 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어 갔다. 의사가 그렇다는 데..뭐..근데..너무 냉정하게 말하네...싸가지 없이..


<그리고..그쪽..보호자분..>
<네??>
<저 여자분이랑은 어떻게 되는 사이시죠??>
<아..저..동생 되는 사람인데요...>
<동생이요?? 동생이라면 친동생...인가요??>
<네...무슨 문제라도??>
<친동생이라...같은 유전자 치고는 상당히 틀리군...누나 쪽으로 우수한 유전자가 쏠린 건가...>
<네??>


뭐야..지금 뭔가 대단히 기분 나쁜 얘길 한 것 같은데..유전자가 뭐??


<아뇨..그냥 사적인 얘기였습니다. 그럼 이만.>


순식간에 말을 마친 그녀는 이제는 정말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냉정하게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나갔다. 뭐야..저 여자...나한테 감정 있나?? 근데...진짜 어서 많이 봤다...진짜 요즘엔 여자만 만나면 본 것 같냐..아..모르겠다. 가득이나 머리 복잡한데..그냥 신경쓰지 말자..


생각하기 싫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려가자 누나가 아까보다는 편안한 얼굴로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색색 아기처럼 곤히 잠들어 있다. 창백하던 얼굴도 조금씩 핏기가 돌아 혈색이 좋아지고 있었고 가쁜 숨소리도 이제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게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듯 했다. 망할 아줌마..갑자기 이게 뭔 꼴이야..안 어울리게.. 괜히 미안해지잖아..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누나가 잠에서 깨듯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떠갔다.


<누나..깻어??>
<으..음....여기가...어디야??>
<여기?? 병원...>
<병원??>
<어...누나 방에서 쓰러 있는 거 보고 내가 데려 왔어...이 아줌마야..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지 그렇게 쓰러지면 어떻게...놀랬잖아...>


타이르듯 말하는 나의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힘들게 몸을 일으켜 가는 누나는 이내 머리가 띵해 오는지 이마를 짚으며 보기 좋은 눈썹을 찌푸려 간다.


<좀 더 누워있어..아직 링거 많이 남았으니까..>
<으흠....됐어..괜찮으니까 집에 갈래..>
<누나 좀더 있으라니까...의사 선생님이 이거 다 맞고 가라고 했어..>
<됐다니까..정말 괜찮으니까 그냥 갈래..>


일어서는 누나를 말리며 다시 눕히려 해보지만 누나는 정말로 싫은 듯 팔에 꼽힌 링거라도 뽑을 기세로 완강하게 거절해 와 결국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병원을 나와야 했다. 아파도 저 성질 머리는 여전한가 보네...링거 비싼건데..


<누나..어디가 택시 타야지...>
<집도 얼마 안 먼데 무슨 택시야..그냥 걸어가..>
<그래도..누나 몸 안 좋은데..그냥 타고 가자..>
<됐어..그냥 가..>


필요 없다는 듯 내말을 무시하며 이내 발길을 옮기는 누나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뒤를 따랐다. 하여튼 걱정을 해줘도 소용이 없어요..근데 오늘은 유난히 삐딱하네..


<그럼..업히기라도 해..>
<뭐??>
<누나...아직은 걷기 힘들잖아..그러니까 업히기라도 해..>
<됐어..필요 없으니까 그냥가...>
<누나 아직 상태 안 좋다니까 그러니까...>


앞에서 업히라는 듯 등을 내밀며 앉아있는 나를 누나는 냉담하게 무시한 채 지나쳐갔다. 이런..무안하게 시리..진짜 말 안 듣는다... 아픈 주제에 말이나 잘 듣지..


어어...저거 비틀거리는 거 봐라.. 확실히 아직 혼자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지 누나가 마치 취한 사람 마냥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가던 걸음을 멈추거나 비틀거리기를 반복하며 걸어가고 있다. 아..진짜 신경 쓰이게... 걸을 라면 똑바로 나 걷든가...


<누나...누나 아직 몸 안 좋다니까..그러지 말고 택시라도 타자..응??>


부탁하듯 말하는 나의 말에 대답하기도 싫다는 듯 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걸음을 걸어갔고 이따금씩 아픔이 느껴지는지 티 하나 없는 맑은 미간에 주름이 져 간다.


거기다 점점 몸 상태가 악화 되어 가는지 어느새 조금씩 대리석 마냥 흠집 하나 없는 이마에는 땀이 송글 송글 맺혀있고 어느새 고운 살색의 두 볼은 다시 핏기가 빠지는지 다시 조금씩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얼굴 봐라...무슨 도화지도 아니고 하얗게 떳네.. 떳어..


<누나 얼굴 하얘...몸 더 안 좋아 지기 전에 그냥 빨리 택시타고 가자...>
<됐어...그러니까 그냥 가..>
<누나 그래도..>
<됐다는데 왜 자꾸 그래!! 됐다고 하잖아!! 됐다고 하는데 왜 자꾸..아...>
 
나에게 짜증난다는 듯이 애원하듯 잡아가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소리질러오는 누나는 이내 위가 다시 아파오는지 신음을 흘리며 배를 잡고 허리를 숙여 간다.


<누나...괜찮아?? 그러게 그냥 택시 타고 가자니까..왜 말을 안들어!! 안되겠다..지금 이라도..>
<됐어..필요 없으니까...하아...부르지마...>


허리를 숙인 채 간신히 고통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아직 까지도 고집을 피우고 있는 누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말...뭐야...뭔데 이래...이렇게 아픈 게 뻔히 보이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거냐고..


<왜 그래...진짜 왜 그러는 거야??!!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내가 뭐 잘못 했어?? 아님 뭐 나한테 화나는 거 있어?? 진짜 왜 이래..화나는 거 있으면 풀면 되잖아..막 때리고 욕하고 전처럼 그러면 되잖아..누나답지 않게 정말 왜 그러냐고!!>
<너..잘못 한거 없어..그러니까 그냥 가..>
<그럼 왜 그러는 거야..도대체 왜..>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러는지..나도 모른다고!! 안 그럴려고 해봐도..전처럼 해 볼려고 해봐도..안되는 걸 어떻게..안되는 걸 어떻하냐고!!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알아?? 지금 내 꼴이 한심한거 뻔히 아는데도 내 맘대로 안되는 걸 어떻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맘이 내 맘대로 안 되는 어떻하냐고!!>


오히려 자기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난 듯 분한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따질 마음도 잊은 채 그저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누나...>
<누나 누나 누나 누나!! 그 누나라는 소리 좀 집어 쳐!! 그렇게 말 안해도 내가 니 누나란거 아니까 니가 내 동생이라는 거 뼈저리게 아니까 그 누나라는 말로 친한 척 부르는 거 집어 치라고!! 그래..니 말대로 나 니 누나야...너랑 같은 배에서 나온 같은 피가 흐르는 누나..근데 그거 알아?? 니가 누나라고 부를때 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아..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동생처럼 날 바라 볼 때마다 가슴이 막혀서 숨을 못 쉬겠다고.. 니가 그렇게...정말 누나로만 대할 때 마다  하늘에 계신 엄마아빠가 원망스럽고 미워질 만큼 치가 떨려 온다고...!!>


가슴에 쌓아 논 모든 것을 토해 내듯 나를 향해 소리치는 누나의 모습에 화가 난다기 보다는 가슴이 아파온다. 그 슬픈 듯 토해내는 목소리가 서운한 듯 토해내는 목소리가 밉다는 듯 바라보는 그 얼굴이 나의 가슴에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연인 같은 사이?? 니가 주는 애정?? 그딴 거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어..나만 좋으면 되니까..너만 옆에 있으면 아무 상관없으니까... 니가 다른 여자랑 비교해서 열 받긴 해도 결국엔 상관없었어..난 나대로 좋아하면 되니까.. 밤 늦게 여자냄새 풍기고 들어와도..솔직히 많이 서운하고 패죽일 만큼 미워도..그냥 넘어 갔어..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니까.. 그런 거 다 각오 하고 좋아한 거니까... 근데.. 이건 아니잖아...뻔히 내 맘 알면서 뻔히 내가 너한테 어떤 맘인줄 알면서..그런 소리를 하냐?? 뭐?? 보내준다고?? 동생으로서 누나만 좋으면 상관없이 보내준다고..하아...내가...너한테 그 정도 밖에 안됐어?? 나라는 여자가....너한테 그 정도 밖에 아니었냐고!! 그렇게 갑자기 나타난 남자에 맥없이 딸려 보낼 만큼 귀찮고 의미 없는 존재였냐고!!>


어느새 얼음처럼 차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파리해진 얼굴로 울분이 가득한 목소리로 곱곱히 씹어뱉듯 외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면 안 된 다는걸 아니까..내가 지금 여기서 내 맘을 말해 버리면 안되는 걸아니까..


나는 그냥 누나가 행복했으면 하는데..그냥 그거면 되는데...입을 열어 뭔가 말을 하려던 나는 간신히 입술을 깨물며 나오던 말을 삼켜갔다.


<그래...니 딴에는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근데 그거 아냐?? 니 어줍잖은 배려가 지금 내 기분을 얼마나 더럽게 만들었는지?? 내 마음을...내 감정을...내 사랑을 얼마나..초라하게 만들었는지 알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든지 아냐..큭...>


감정이 격해 졌는지 화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울부짖던 누나가 위에 격한 통증이 이는지 배를 잡고는 몸을 웅크리며 주저앉아갔다.


<누..누나!!>
<건들지 마!! 건들지...큭...마...>


극심한 고통에 몸을 거북이처럼 움츠리며 주저 앉아있는 누나에게 걱정스런 얼굴로 손을 뻗던 나는 누나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춰야만 했다.


<니...어줍잖은 동정이나..위로 같은거...큭..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건들지 마...동생으로서의 걱정 같은 거..필요 없으니까.. 그딴거..이제는 지긋지긋하고 짜증나니까...건들지 마...>


통증이 쉽게 가시지 않는 듯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누나를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거지?? 그냥 나는..그냥 나는 누나를 지켜주고 싶었을 뿐인데...옛날에 다짐했던 것처럼...정말 아프게 하지 않고 울리지 않고 지켜주고 싶었을 뿐인데...


한참을 그렇게 웅크리고 있던 누나가 이내 간신히 무릎을 짚고 몸을 일으켜 힘없이 발길을 돌려 간다.


<하아...난 나대로 갈 테니까 너는 니가 알아서 들어가..혹시나 따라 올 꺼면 말 시키지 말고 조용히 와..지금은 니 목소리..니 얼굴 듣기도 쳐다보기도 싫으니까..>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듯 배를 움켜잡고 힘들게 걸음을 떼어가는 누나의 뒷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그런 철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힘없이 처진 어깨, 그 어떤 여자보다 가녀리고 슬퍼 보이는 등.. 힘없이 내딛는 발걸음 등이 마치 상처 입은 여린 사슴처럼 연약하고 나약해 보여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 왔다. 옛날 어릴 적에 잠깐 보았던 그 나약한 등이 다신 그렇게 하게하고 싶지 않았던 그 등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나로 인해 나왔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해온다. 한심하다...지켜주겠다고 맹세할땐 언제고..오히려 아프게만 해버리네...젠장...한심하다...한심해...정말...그런거 아닌데..그런거 아닌데..


<나보고...나보고 어쩌라는 거야!!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거 밖에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왠지 화가 난다. 누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못난 나를 향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나를 향해서 화가 난다. 왠지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분에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 었지만 멈출수가 없다.


<누군...누군 좋아서 그런 줄 알아?? 누군 벨도 없어서 그딴 소리 한줄 아냐고!! 나도 싫어..나도 누나 옆에 나 말고 딴 놈이 있는 거 싫어..누나가 딴 놈이랑 손 잡고 웃고 떠들고 키스하는거 안기는 거 상상만 해도 속이 뒤집어 질 정도로 싫다고..근데...어쩔수가 없잖아..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어느새 걸음을 멈춘 누나가 갑작스런 나의 모습을 놀란 듯 바라봐온다. 멈춰야 되는데..말하면 안되는데..지금까지 잘 참았는데..


<내가..나만 좋자고..누나 잡아놓을 순 없는 거잖아...내가 나만 행복하자고 누나 상관없이 잡아 놓을 순 없는 거 잖아...내가 고작 누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밥하는 거랑 빨래하는 거랑 살림하는 거 잔소리 하는 거 뿐 인데..그런 내가 누나 잡으면 안되는 거잖아..내가 아까 그 남자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앞날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그저 가진거라고는 별 볼일 없는 몸 뚱아리 뿐인데..그걸 로는 누나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잖아.. 근데..내가 어떻게 내 옆에 있으라고 하냐고..어떻게 그러냐고!!>


같이 있어봐야 나는 짐이다..어차피 안 될 사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보내는 게 낫다. 누나가 더 행복 할 수 있는 곳으로.. 누나라면 충분히 가능하고 또 충분히 내가 없이 행복 할 수 있다. 그게 누나를 위한 길이고 내가 누나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보낼 라고 했는데...나쁜놈 되고 말라고 했는데..


<내 옆에 있으면 불행해 질께 뻔한데..지금도 이렇게 맨날 울리기만 하는데...어떻게 내 옆에 있으라고 하냐고!!>


다..말해 버렸다...젠장...끝까지 참았어야 하는데..그냥 나만 나쁜 놈 되고 말았어야 하는데..진짜 나약한 놈이다..한심하고..


<한심한 놈..>


제대로 찔러 주시네.. 역시 잔인해...


<멍청한 놈...등신 같은 놈..머저리 같은 놈..병신 같은 놈..>


욕이 아주 버라이어티 하구나...나는 다중인격이냐?? 근데 은근히 열받네..


<그래..나 한심하다!! 그러니까 누나는 좋은 남자 만나서 좋은데 가라..악!!>


순간 나의 우뇌를 흔들어오는 통증에 나는 머리를 감싸갔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에 의아해 할 틈도 없이 다시 한번 나의 좌 뇌를 뒤흔드는 충격에 나는 몸을 움츠려 갈 수밖에 없었다. 언제 왔는지 나의 앞에서 연속 훅을 날린 누나는 이내 재차 펀치를 날려 온다.


<뭐..뭐야!! 누나!!>
<미친 놈.. 또라이.. 이 등신!!>


웅크린 내 몸을 연신 내리 쳐가며 욕을 퍼부으며 쏟아내는 오랜만에 보는 누나의 폭력에 반가워할 틈도 없이 나는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살기 위해 잔뜩 몸을 웅크려 간다. 뭐야..진짜 갑자기..이게 방금까지 아프다고 업혀온 여자 주먹이 맞아??


<누..누나!! 잠깐만!! 잠깐만..악!!>
<내가...안 때릴라고 해도 안 때릴 수가 없어..죽어라 이 한심한 놈아..죽어!!>


진짜 죽겠다..안되겠다...진짜 이거 어떻게든 막아야지..


<그만..그만 그만!! 그만 좀 하라고!!>


순간 내 머리를 향해 주먹을 꽂아 내리는 누나의 손목을 간신히 낚아챈 나는 이내 힘을 주어 움직임을 봉쇄해 갔다.


<진짜..누구 죽일 일 있어!!>


계속된 폭력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누나에게 소리쳐 가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누나의 얼굴에 이내 뒷말을 삼켜야만 했다. 왜 저래..또..


뭔가 참고 있는 듯 입술을 앙다문 채 화가 난건지 슬픈 건지 뭔가 알 수 없는 눈길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누나. 언제나 당당함이 넘치는 눈가에 보석 같은 물방울이 가득 고여 있는 것이 건들기만 해도 넘쳐 흐를 듯 보인다. 저거...저 여자 또..이러네..전에도 실컷 때리고 저런 표정 지었는데..


<누..누나..왜 그래?? 어디...아..>
<야!! 한강혁!!>
<응??>
<내가..너한테 돈 벌어오라고 한적 있어??>
<아니..>
<내가 너한테..돈버는거 힘들다고 투정 부린적 있어??>
<아니..>


생색 낸 적은 있지..뭐...귀엽게 봐줄 정도지만..


<그럼 내가 너한테 너랑 있어서...불행 하다고 한적 있어??>
<아...니..>


한번도 없다. 언제나 반찬 투정이나 밥 달라고 땡깡 부리거나 그런 적은 있어도 힘들다거나 죽겠다거나 그런 말은커녕 내색도 안하는 여자였다. 여자 혼자의 힘으로 몇 년을 남동생 먹여 살리면서 때려치고 싶다거나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거나 하는 불평 한마디 안 하던게 우리 아줌마 우리 누나 한지연이 었다.


<뭐야...그럼...왜 그딴 말을 해.. 왜...그딴 생각을 하냐고!!>
<누나... 행복 하라고.. 누난 나 없으면 더 행복해 질수 있으니까.. 누나는 나 아니면 더 멋지게 살 수 있으니까..나 없으면 더..>
<그래!! 너 없으면 더 멋있게 살수 있어... 너 없으면 나 쫓아다니는 부잣집 남자랑 결혼해서 떵떵거리면서 살수 있고.. 너 없으면 좋은 차 끌고 좋은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다고...>


그래..그렇겠지...누나라면 저 여자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그만큼 멋지고 매력있는 여자니까..근데 막상 입으로 직접 들으니까 기분이 더럽다.. 


<근데...그거 알아?? 그러면 내가 죽어...그래 버리면 내가 죽는다고!! 아무리 좋은 차가 있어도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니가 없으면...아무 소용없다고...이 자식아!!>


분한 듯 슬픈 목소리로 울부 짓는 누나의 얼굴에는 어느새 두 볼을 타고 빗줄기처럼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이제... 니가 없으면 숨도 안 쉬어져.. 니가 안보이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 버린다고..그렇게 만들어 놓고..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보내긴 어딜 보내...!!>   


애처롭게 외치는 누나의 모습에 모든 생각이 사라져 버린다. 보내야겠다는 의지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험 신호도 나로는 안된 다는 자괴감도 나를 향해 울면서 사랑을 외치는 한 여자의 모습에 어느덧 눈독 듯 사라져 그저 이 여자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게 하지 않는다. 의지박약아...그냥 무시해야되는데..그게 정상인데...못하겠다..젠장..


어느새 나의 손은 누나의 얼굴로 올라가 눈물로 흥건히 젖어있는 누나의 눈가를 애정이 담긴 손길로 가볍게 훔쳐간다.


<또... 나 때문에 울잖아.....>
<우는거 아냐..그냥 눈에서 땀나는 거야..>


눈에서 땀이 나냐?? 그건 새로운 학설입니까??


<나..누나한테 좋은 옷도 못 사주고 맛있는 것도 못 사주는데...>
<난 아무거나 입어도 다 잘 어울려...그리고 맛있는건 니가 만들잖아..>


잘난 척은...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중에 바람 필지도 몰라...>
<능력 있으면 펴도 돼..신경 안 써...대신 걸리면 죽여버릴꺼야..>


제대로 진심이다....안 들키게 잘해야지...


<앞으로 평생 놀고 먹을 지도 모르는데..>
<내가 돈 벌잖아..그러니까 너는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내조 하면 되..평생 돈 안벌어도 된다고..>


전업주부라...괜찮네..


<불행..할지도 몰라...누나로..밖에 못 대할지도 모르고...결혼도 못하고...평생...그냥 그렇게 지낼지도..몰라...그래도...상관..없어??>
<상관없어..니가 날 여자로 보든 안보든...누나로만 대하든 안 대하든 그딴 거..이제 신경 안 쓸꺼야..애초에 결혼 같은 거..처음부터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았으니까..내가 널 남자로 보니까...내가 널 좋아하니까...그거면 되니까... 그러니까 그냥 너는 가만히 옆에 붙어 있기만 해..아무데도 가지 말고 그냥 붙어 있기만 해..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전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확연한 의지로 대답하는 누나의 얼굴에는 누구도 꺽지 못할 강한 의지와 함께 어떤 것도 상관 없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


<할 말 더 있어??>
<그..하아...아니...>


이렇게 말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냐...그 정도로 미련 하진 않다..


<그럼...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
<뭐??>
<그..뭐냐..그런 거...있잖아...>
<뭐..말하는 거야??>
<아..진짜 몰라서 묻는거야... 아님 진짜로 모르는 거야..>


모르니까 묻지...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있잖아...뭐...안아...주든가...키...스라든가...뭐..그런...거>


창피한 듯 시선을 내리 깔며 조용히 혼잣말 하듯 내뱉는 누나의 모습은 아까 그 남자 앞에서 냉막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여 그 남자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 같은 누나의 창피해 하는 귀여운 모습에 왠지 모를 우월감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은근히 우리 누나가 이런 걸로 부끄러움이 많단 말야...귀엽게 시리..


<뭐라는 거야...안들려....>
<키..키스..>
<키..키 뭐?? 진짜 안 들린 다니까..확실히 말해야지 알아듣지..>
<아..진짜... 키스! 키스 해달라...흡.>


나를 향해 짜증난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는 누나의 입을 막 듯 입술을 덮어간다. 아직 혈색이 다 돌아오진 않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다부진 모양의 입술위에 나의 입술을 겹쳐가며 따땃한 온기를 공유해간다. 터져나오는 소리가 막히자 놀란 고양이 마냥 눈을 떠가는 누나의 입술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볍게 노다녀 간다. 간을 보듯 가벼운 키스였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누나의 입술은 가슴이 두근거려 올 정도로 달콤하고 부드럽다. 거기에 어느새 반응하듯 누나가 입술을 움직여 오자 달콤함은 배가 되어 입술을 타고 느껴진다.


<하아...이제...됐어??크크>
<모...몰라...그딴 거 묻지 마...매너 없이...>


투정 부리는 말투로 말을 하지만 희미하게 달아오른 두볼 과 평소의 이미지와는 전혀 매치 안되게 당당하고 야무진 눈가를 창피한 듯 내릴 까는 모습은 지금이 상태가 어떤지 묻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감에 젖어 있는 표정이다.


<크크...근데 놀랐네...우리 왈패 아줌마가 먼저 조를 줄은...그렇게 하고 싶었어??>
<어..하고... 싶었어..>


놀리듯 말하는 나의 대답에 너무나 순순히 감정을 털어 놓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잠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원래는 막 아니라고 기겁을 해야 되는데..


<정말로...하고 싶었어...요 몇일 새 참느라고 아주 죽는 줄 알았단 말야..>


나의 가슴 팍에 이마를 기대오며 살며시 고백하듯 말하는 누나.


<원래는 안 이랬는데..키스 같은거..섹스 같은 거..그런 거 관심도 없었는데...이제..너랑 키스 안하면...너한테 안 안겨 있으면 몸이 답답해져..뭐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져 버려.. 그렇게 내 몸이 이상해져 버렸다고..>


뭐..뭐야 갑자기..야하게...


<니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니가 이렇게 야하게 만들었으니까 책임져...안아 주든지...키스를 하든지 뭘 하든지 해서 책임지라고..평생...내 옆에서...알았어??>


어느새 내 품에 안겨 턱을 살짝 올리며 평생을 약속하는 신부 마냥 누나는 각오하라는 듯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봐 온다. 그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에 다시 한번 감격하며 나는 누나의 말에 대답하듯 입술을 겹쳐간다. 오랜만의 키스이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더 두근 거리고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누나 역시 마찬 가지인 듯 나의 입술을 가득 맛보기 위해 내 얼굴을 끌어당기며 더욱 깊고 진하게 입술을 붙여온다. 


<하아..누나 잠깐만...>
<왜?? 아직 5분도 안했잖아..좀 만 더해...>


오 분이나 할라고 했습니까??


<아니..그게 아니라..여기 사람 많아졌어...>


언제 어디서든 길거리 키스라는 건 사람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도 우리 누나 정도의 빼어난 미인의 농염한 키스라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그 가설을 증명하듯 어느새 길가의 우리들 주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진한 키스 장면을 눈에 불을 켜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시선..몇 번 겪어 봤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특히 부러워 하면서도 나를 욕하고 시기해오는 듯한 이 날카로운 남정네들의 시선은 아주 죽을 맛이다..


<뭐..어때...그냥 무시하고 좀 만 더하자..>


이 여자가 정말 쌓인게 많긴 많았나 보구나..아주 막나가네..원래 안 이랬는데..


<그냥...집에 가서 하자..여긴 좀 그렇잖아..>
<별로..상관 없는데...뭐..니가 싫으면 어쩔 수 없지...대신...조건이 있어..>
<조건?? 무슨 조건??>
<그게...택시..타고 가면 안될까??>
<뭐??>


자기가 말해 놓고도 민망한 듯 볼을 긁적이는 누나를 나는 잠깐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머야..아까 싫다고 할때는 언제고..


<아깐 괜찮다메..>
<아깐 아까고...지금은 택시 타고 가고 싶다...다리도 아프고...아직 배도 아픈거 같고..타고 가자~~응??>


와...이 여자 이제 애교도 부리네..징그럽게...그래도 귀엽긴 귀엽네..크


<알았어...대신 택시비는 누나가 내...>
<나 돈 안 갖고 왔는데??>
<뭐??>
<나 너 한테 업혀 왔잖아...너 내 지갑 가지고 나왔어??>
<아니...>


지갑 챙길 새가 어디 있었겠냐..젠장...내 돈 깨야 되는 거야??


<타고 갈꺼지?? 갈꺼지?? 응응응??>


아..사람이 한 순간에 이렇게 바뀌나??


<누나...아직도 아파??><응?? 어..조금..아주 조금...아파...왜??>
<아니..좀 이상해서...안하던 짓을 하는 것 같아서..좀 걱정 되서..>


정말 걱정 된다는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자 누나의 표정이 조금씩 구겨져 간다.


<뭐?? 그럼 원래대로 해줄까?? 그게 좋으면 그래 줄수 있어..그게 좋아??>
<아냐..아냐...가자...얼릉 가자..택시!!>


원래의 페이스를 찾아가려는 듯 주먹을 말아 쥐며 급격하게 얼굴을 바꿔가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말을 바꾸며 택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기껏 저 아줌마 사람 같아 졌는데 애써 건드릴 필요 없지...자살할 생각 아니면...크크..그리고 많이 귀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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