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25
** 白雲俠(낭만백작)著/ 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25 **
제 25 장. 남궁가(南宮家)의 암계(暗計).
안휘성(安徽省)북부는 화북(華北)평원이 드넓게 펼쳐져 회화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남부는 서에
서 동으로 험준한 산맥들이 길게 뻗어 있다.
그 안휘성의 남부의 도시 석태(石台)를 지나는 관도에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인파가 넘쳐나고
있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평온하게 지난 여섯 달..!
그동안의 무림은 침체되고 활기가 없어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흘러가고 있었으나 오늘은 유
달리 석태(石台)의 관도를 메우다 시피 많은 무림인들의 움직이고 있었으며 관도의 옆 고웅여
숙(古雄旅宿)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강호명숙(江湖名宿)과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자리해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어떤 이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파안대소를 하고 있으나 다른 한쪽의 군
웅들은 침통한 얼굴로 탁자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그들의 손에는 붉은 청첩의 봉투가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바삐 움직이고 있는 그 사람들은 남궁휘(南宮輝)의 초청을 받고 남궁세가(南宮世家)를 찾아가고
있는 무림협사(武林俠士)들이었다.
[ 본인의 세가(世家)가 그동안 은인자중 하며 수련에만 증진을 하고 있었으나
이제 강호(江湖)에 나서 헌신을 할 때가 된 듯 합니다. 그러므로 본 세가는
문을 활짝 열고 무림(武林)의 귀인들을 모셔 연회를 베풀까 하니 모두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궁세가주(南宮世家主) 강남일기(江南一奇) 남궁휘(南宮輝). ]
남궁세가(南宮世家)가 강호(江湖)에 우뚝 서 행세를 하겠다는 공개장인 것이었다.
그 청첩을 받아든 무림인(武林人)들은 무림이 활기를 띤다는 생각에 한편 기쁘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하여 웃음과 침통함이 교차된 표정들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 * * * * * * * * *
그 곳 석태(石台)에서 동쪽으로 달려가면 황산(黃山)이 높이 서 있고 그 아래 넓은 평지에
아름다운 호수 화호(華湖)가 물결을 일렁이며 가을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 화호(華湖)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화려한 건물 남궁세가(南宮世家)가 웅장한 위
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햇빛에 반짝이는 화호(華湖)를 고요히 바라보고 서 있는 중년의 무인(武人)..!
무림인들에게 강남일기(江南一奇)라 불리고 있는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가주(家主) 남궁휘
(南宮輝)였다.
얼굴은 온화한 모습이나 안광(眼光)은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으며 태양혈이 우뚝 솟아 비범한
용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요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남궁휘(南宮輝)가 두 손을 천천히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려 호수를
향해 휙.. 내밀었다.
- 슉.. 슈우욱..! 펑..!
잔잔하던 호수의 물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물기둥이 서른 자 높이로 솟아오르며 수면에는 장
력(掌力)에 충격을 받아 죽음을 당한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둥둥 떠올랐다.
「으음.. 건곤파경장(乾坤破經掌)의 마지막 구결까지 드디어 완벽하게 익혔다. 이 건곤파경장
(乾坤破經掌) 한초가 나를 지켜 줄 것이다.」
나를 지켜줄 것이다..?
남궁휘(南宮輝)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오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미소
의 뒤에 숨어 있는 남궁휘의 이해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표정..! 광세의 비급을 모두 익혔으면
강호를 모두 얻은 듯 의기양양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마지막 한마
디는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말이었다.
무공을 완성해 웅비(雄飛;기세 좋게 활동함.)를 하려 강호무림인들을 세가에 초청까지 한 남궁
세가(南宮世家)의 가주(家主)가 아닌가..!
지극의 연공으로 개세의 무공 건곤파경장(乾坤破經掌)의 완성을 보았으면 이제 천하를 호령하겠
다는 무림인의 기개를 보여야 옳은 태도이나 그 묘령의 여인이 한말..! 자신의 몸속에 남겨 두
었다는 화독(火毒)은 비급의 내공공력에도 도저히 해독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사안이 그러하니 장풍에 물기둥이 치솟는 화호(華湖)를 바라보며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강
남일기(江南一奇) 남궁휘(南宮輝)가 `건곤파경장(乾坤破經掌)이 나를 지켜 줄 것이다. 라고 한
혼잣말..! 그 중얼거림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남궁휘(南宮輝)의 모습에는 연공수련의 완성으로 기뻐하는 표정 뒤에 자신을 지켜야 하
는 또 다른 초조함이 묻어나 있는 것이었다.
「아아.. 내일이면 손님들이 찾아 들겠구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 준비를 해야겠다..!」
화호(華湖)변을 떠나 세가로 돌아가는 남궁휘의 등이 을씨년스럽게 보이기만 했다.
* * * * * * * * * *
하루 전의 날이지만 미리 얼굴을 보이기 위해 찾아드는 무림협사(武林俠士)들이 외당(外堂)으로
이미 한두 사람씩 모여들고 있는 남궁세가의 장주 집무실에 혼자 자리해 앉은 남궁휘는 깊은 생
각에 골똘히 젖어 있었다.
(아우들은 이미 그들이 보관하고 있는 여러 방파의 비경들을 충분히 연마하였을 것이다. 나 또
한 비급의 진정한 무공을 모두 완벽히 터득했다. 이만하면 무서운 것은 없으나 그 여자아이의
입만은 막아야 한다. 세가에 손님들이 몰려들기까지 겨우 하루가 남았다. 많은 무림명숙들이 모
여들 이곳에 까지 그 계집년이 찾아와 장진도에 관한 사실을 떠들며 훼방을 놓는다면 무림에 행
세를 하려는 나의 체면이 크게 손상이 될 것이다. 으음, 치밀한 준비가 없으면 안되겠구나..!)
이리저리 방법을 궁리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 때 문밖에서 장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계십니까..? 오늘 오신 손님 중 어느 분이 장주를 꼭 뵙고자 합니다.」
「어허.. 조용히 혼자 있고 싶구나..! 총관에게 접대를 하라고 일러라..!」
아직은 손님을 맞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루 일찍 세가에 도착한 무림 협사중 한사람이 장주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싶은 것이리라 여겨
총관에게 모든 안내를 미루고 있는 남궁휘였다.
「장주님.. 만약 거절을 하시면 이것을 보여드리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가지고 들어와 보아라..!」
집무실로 들어온 하인은 남궁휘에게 공손히 조그만 옥패를 건네주었다. 그 옥패를 받아들고 앞
뒤 살펴보던 남궁휘의 얼굴은 당혹(當惑)감이 번졌다.
「헉..! 어서 가서 그 분을 빈당(賓堂)로 모시고 내가 금방 찾아 뵐 것이라고 말씀드려라..!」
남궁휘가 손에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푸른빛이 은은히 도는 그 옥패에는 하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한마리의 용(龍)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기이한 일의 연속이로구나..! 몇 개월 전에는 미친 여인이 나타나 나를 핍박 하더니만, 이제는
또 강호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던 백룡검이 나를 찾아오다니..! 세가의 개전대회를 축하하
려는 것인가 방해를 하려는 것인가..?)
* * * * * * * * * *
중한 손님들을 모시는 빈당(賓堂)으로 들어서는 남궁휘의 눈에 이미 안내를 받아 들어와 있는
백룡검이 두손을 뒤로하여 뒷짐을 지고 빈당(賓堂)의 벽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으흠.. 으흠..!」
기척을 내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빈당(賓堂)으로 들어선 남궁휘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백
룡검을 맞이했다.
「남궁가의 가주 남궁휘가 백룡검 대협께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세가의 대전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역시 노련한 남궁휘의 언변이었다.
백룡검의 출현을 세가의 복(福)이라 못 박으며 그에 대한 감사의 말을 먼저 전하고 다른 어떠한
시비도 사전에 차단하려는 아부의 말을 먼저 던진 것이다.
그런 남궁휘의 말에 등을 돌리고 벽화을 바라보고 있던 백룡검이 천천히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남궁장주.. 소생은 장주의 청첩을 받지도 못한 불청객이외다. 그런 나를 축객하지도
않고 이렇게 맞아주시니 감사드리오..!」
「어엇.. 대.. 대협이 분명 검후(劍侯)라 존경받는 백룡검 대협이 맞으시오..?」
돌아서서 얼굴을 마주본 남궁휘가 순간 당황해 말을 더듬거린 것이었다.
일해낭중 천강까지 은퇴시킨 당금 강호무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제일의 기인 백룡검이 아닌
가..! 그 백룡검의 모습이 이렇듯 약관의 청년이라는 것에 놀라, 자신의 입에서 엉겁결에 나온
말이 실례의 말이란 것도 모른 채 더듬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하하.. 내가 나를 어떻게 증명하리까..! 그러나 남들이 소생을 그리 불러 주더이다.」
앗차.. 큰 실례를 저질렀구나..!
용(龍)이 새겨진 강호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옥패..! 백룡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푸른빛이 도는
이 옥패가 먼저나타 난다는 강호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는 남궁휘는 백룡검의 빈정거리는 말투
에 혼비백산하며 앞으로 나섰다.
「아.. 아닙니다. 대협.. 제가 어찌 대협의 신분을 의심하겠습니까..? 아무 연통도 없이 본 세
가를 찾아주신 대협을 대하니 너무 기쁜 나머지 실언을 했습니다. 용서 하십시오..!」
그러나 남궁휘의 진정한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미 자신은 건곤비원록의 무공을 남김없이 터득 하지 않았는가..! 비록 백룡검이 개세의 무공
을 가졌다고는 하나 이젠 자신의 적수가 되지 않을 것..! 그러나 검후 백룡검이란 명성이 강호
무인들에게는 지대한 영향력이 있는 이름이었다. 때문에 남궁세가가 웅지를 펴려하는 이 대회를
아무 탈 없이 넘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참고 있을 뿐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
고 있는 남궁휘였다.
「대협..! 어서 이리로 앉으십시오. 그래..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고 연통을 하셨습니까..?」
남궁휘는 이제 얼른 백룡검의 진의(眞意)를 확인하고 싶었다.
「오.. 낭궁장주.. 별일은 아니외다. 제가 하루 먼저와 장주를 뵈자고 한 일은 모든 무림인들이
이 세가에 당도해 혼잡해 지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을 청하고 싶어서 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기 전에 요청을 하겠다..? 여러 사람이 알게 되면 곤란한 입장이 될 것이니 은밀
히 응해 달라는 백룡검의 은근한 요구가 아닌가..! 남궁휘도 잠시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
다.
「허허허.. 저에게 요청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남궁장주.. 별일은 아닙니다. 소생이 무학에 너무 심취하다 보니 남궁장주께서 새로이 터득
했다는 그 무공이 어떤 무공인지 궁금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소생에게 그 무공
의 끝자락이라도 한 자락 보여주실 수 있을지 청하기 위해 뵙고자 했소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백룡검이라면 그 성정(性情)이 겸손하기로 소문난 인물..! 또한 자신의
재주를 자랑해 남에게 보이기도 꺼려하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자신과 비무를 원한다는
말을 아주 우회적으로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 무슨 그런 말씀을..? 천하의 백룡검앞에 자랑할 무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씀 거두시
지요..」
더 이상의 시비를 피하기 위해 정중히 그 순간을 피하려 하는 남궁휘를 바라보며 백룡검이 비웃
듯 웃음을 흘렸다.
「아니오.. 아니오 장주..! 장주께서 기상천외한 무공을 얻어 강남일기란 별호를 얻었다 들었습
니다. 이 백룡검 호기심이 많아, 그 강호를 호령하는 무공을 일견(一見)시켜 주십사 부탁을 하
는 것이올시다.」
이 사람이 무엇인가 알고 하는 말인가..? 가슴이 뜨끔한 백룡검의 말이었다. 남궁휘는 서둘러
백룡검을 향해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허.. 제가 폐관수련에 들었다가 연무동 동굴 속에서, 다행히 본 세가의 실전된 무공비경을
우연히 찾아낸 것뿐입니다. 그 비경을 열심히 익혀 조그만 성취를 본 것이지요..!」
백룡검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장주가 장진도의 비급을 얻어 무공의 극을 이루었다 하길래 , 장주께 사정이라도
하여 견문(見聞)을 넓히려 했건만..! 에이.. 그 사람.. 잘 알지도 못하고 내게 이야기를 한 것
이구먼..!」
「어어.. 대협..! 감히 어떤 놈이 대협께 그런 헛소문을 말씀 드렸단 말입니까..?」
그러나 백룡검은 그 말에는 대꾸도 없이 혼자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것 참.. 도(道)를 수양하는 도인들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에이.. 내일 비무장에서
장주와 한번 겨루어 보면 그 진위를 알 수 있을 터..!」
「무.. 무엇이라..? 대협.. 도인이라 하셨소..?」
역시 그말에는 대답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백룡검은 휙.. 몸을 돌려 빈당(賓堂)의 문을 나서
휘적휘적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도대체 저 백룡검이란 놈이 한 말은..!)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백룡검을 붙들어 놓을 여유도 없이 혼란스러워진 남궁휘는 그러나 내일의
큰일을 위해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