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22
** 白雲俠 著/ 패설 나향여협 (悖說 裸香女俠) 22 **
제 22 장. 비급, 건곤비원록(乾坤秘元錄) 2.
- 휙.. 휘익..!
바람소리를 뒤로하고 달려오는 그는 먼발치에서 보이도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분명 산천을 유람하듯 여유롭게 걸어오는 모습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그 무인의 발은 땅에 닿지
도 않고, 마치 풀잎을 스치듯 땅위 한자를 떠올라 날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중년무인(中年武人)의 걸음은 풀잎을 밟고도 풀이 휘어지지 않는다는 경공, 초상비(草上飛)를
펼쳐 순식간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절정의 고수가 아니면 시전할 수 없는 상승의 경신술이 아닌가..!
동정호(洞庭湖) 호반 난간위에서 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수린의 표정이 순간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으음..! 저 사람이 달려오는 경공만 보아도 상승의 무공을 터득한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과연
비급의 무공일까..?)
동정호를 향해 앞만 바라보고 경신술을 펼쳐, 곁을 지나치려는 그 중년무인의 앞을 슬며시 막아
서는 여인..! 수린(秀璘)이었다.
「대협.. 잠깐 멈추시오..!」
「어어어.. 누.. 누구냐..?」
갑작스러운 여인의 출현에 놀라 멈칫 그 자리에 멈추어 서는 중년무인의 신형은 추호의 흔들림
도 없었다.
「혹시 황산의 남궁장주가 아니시오..?」
「이.. 이놈.. 아니 여인이로고..! 나, 강남일기(江南一奇)를 아는 여인이 건방지게 어찌 나의
앞길을 막느냐..?」
그 말에 피식.. 수린은 웃음을 흘렸다.
「호호호.. 강남일기라..! 나는 남궁가의 장주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강남일기라..! 이보시오 장
주..? 언제부터 장주가 강남일기라는 허명(虛名)을 얻게 되셨소..?」
「어허.. 감히 내 앞을 막아 패언(悖言)을 하며 본좌의 갈 길을 방해하다니.. 분명 시비를 자초
하는 행위로구나..! 그래 할 말이 있으면 해 보거라..!」
그 순간.. 이 낭자가 자신이 움직이는 길을 정확히 알고 기다려 자신을 맞이하려 했다는 것을
느낀 낭궁휘는 마음속 가득 의문을 품고 서서히 손을 가슴위로 들어 올리며 경계를 하기 시작
했다.
「호호.. 그대가 진정 강남일기(江南一奇) 남궁휘(南宮輝)가 맞으신가..? 강호의 소문에 강남일
기의 무공이 신비막측(神秘莫測) 도무지 가늠을 할 수 없다 하길래 본녀가 시험을 해보고자 하
는 것일세..!」
이런 빌어먹을 년이 있나..! 감히 강남일기라는 별호를 듣고도 주눅이 들기는커녕 점점 더 기
고만장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부러 자신을 화나게 만들어 일전을 벌여 보려는
꿍꿍이가 아니고서는 이렇듯 막무가내로 자신을 대하지는 못할 것이라, 더욱 정체가 궁금해지는
여인이었다.
「호호호.. 아니지.. 아니지..! 호랑이가 사라지고 없는 들판에 토끼가 왕노릇을 하려 괜한 허
세를 부리는 것이겠지..! 에이 이보시오 남궁장주.. 그 강남일기라는 거추장스러운 별호는 저
동정호의 물속에 버리시고, 어서 가던 길이나 재촉하시구려..!」
혼자 실컷 떠들고 난 여인이 이제는 상대할만한 인물도 아니라는 듯 등을 돌려 휘적휘적 발검
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이.. 이.. 이년이..!」
드디어 남궁휘(南宮輝)의 참고 있던 노기가 터지고 말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근육이 꿈틀꿈틀 부아를 참지 못하고 휘익.. 몸을 날려 수린의 앞을 막
아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앞가슴에 모으고 있던 두 손을 홱.. 뿌려내며 호통을 질렀다.
순식간에 내지른 장풍이었지만 그 장력은 강맹하기 그지 없었다. 수린(秀璘)의 몸이 주르르
뒤로 밀려나 비틀거리는 신형을 억지로 바로잡아 휙..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돈 후 겨우 몸을 가눈 듯 남궁휘(南宮輝)의 면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방금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얼굴을 방글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호호호.. 과연 강남일기(江南一奇)란 별호가 어울립니다. 소녀 수린(秀璘)이라 합니다. 대협
에게 여쭐 말이 있어 실례를 했습니다.」
이.. 이년이.. 이리저리 사람을 놀리는 것인가..? 남궁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수린(秀璘)을 향해 호통을 쳤다.
「이 건방진..! 이렇듯 황량한 길거리에서 감히 나의 앞을 막아서다니..!」
그러나 남궁휘(南宮輝)도 마음속으로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 어린 계집년이 내 일장(一掌)을 스스럼 없이 피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보통 경공(輕功)은
아니구나..!)
엉겹결에 뿌린 장력이긴 하지만 자신의 장풍을 이렇듯 쉬 피할 수 있는 강호인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그러한 수린(秀璘)의 무공에 조금은 의아함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시험을 해볼 요량을
하는 남궁휘의 마음이었다.
「그래.. 낭자가 나의 삼장(三掌)을 피할 수 있다면 낭자가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이던 내 대답을
해주마..! 받을 자신이 있느냐..?」
갑자기 앞에 나타난 수린(秀璘)이라는 이 여인..! 비록 간편하게 차린 경장의 차림이었지만 그
얼굴은 가히 절색(絶色)..! 초승달 같은 아미가 신비한 느낌까지 주는 아름다움에 남궁휘(南宮
輝)의 마음에는 음심(淫心)이 동할 정도로 호기심이 가득했다.
(흐흐흐.. 하룻강아지 같은 년이.. 과히 화용월태(花容月態)의 맵시를 지니고 있구나..!)
그러나 낭자의 행동은 아직 강호의 경험이 일천(日淺)한 천방지축..! 낭자가 조급하게 묻고자
하는 말을 꼬투리 삼아 노회한 언변으로 유인을 한 것이었다.
「남궁대협.. 만약 제가 대협의 삼장을 받아낸다면 저의 물음에 한마디 숨김없이 대답을 할 자
신이 있습니까..?」
「허허.. 강남일기(江南一奇)라는 나의 이름을 걸지..! 대신 낭자가 나의 장을 받아내지 못한다
면 나에게 무엇을 걸 것인가..?」
「호호호.. 대협..! 제가 무엇을 걸기보다 대협이 삼장을 모두 펼칠 때까지 저는 손을 쓰지 않
겠습니다. 그리 한다면 저의 대답에 만족하시겠지요..?」
(어흑..! 손을 쓰지 않겠다..? 이 낭자는 자신의 오기(傲氣)로 감히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 아닌
가..? 그래.. 이 어리석은 년을 한번 더 추켜세워야 겠다.)
「허허허.. 용기가 대단한 낭자구먼..! 그래.. 낭자의 그 호기를 받아 들이지..! 그러나 내가
삼장(三掌)을 시전할 때 까지 낭자가 손을 쓰거나 신형(身形)을 조금만 움직여도 낭자가 진 것
이라네..!」
수린(秀璘)이 말없이 빙긋 웃었다.
그 수린의 웃음 속에는 여러 생각이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스스로 강호에 나선이래 아직 자신
의 진정한 무공은 한번도 펼친 적이 없지 않은가..! 스스로도 자신의 무공을 알 수 없어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능구렁이 같은 작자가 나의 손발을 묶어 두겠다..? 그래 네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번 두
고 보자. 진실를 알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지. 이놈의 말을 들어 줄 수밖에..!)
「좋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는 곳이니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요..!」
「알겠다. 따라 오너라.」
남궁휘(南宮輝)가 땅을 박차 동정호반을 벗어나며 두 마장(馬丈) 반 거리(약 1 km)의 한적한
공터로 절정의 경공을 펼쳐 날아갔다.
물론 능구렁이 같은 남궁휘는 수린(秀璘)이 진력을 다해 뒤따르도록 만들어 진력을 모두 소진시
키려 하는 수작이었다.
* * * * * * * * * *
한참을 달려 언덕위 제법 넓은 들판을 찾아, 뒤 따르는 수린을 기다리는 남궁휘의 얼굴은 말은
없었으나 팽팽한 긴장의 빛이 역력히 흐르고 있었다.
(허허.. 나는 진력을 다해 달려 왔는데 뒤 따른 이 낭자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 지지 않고 있다.
도대체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재빨리 머리를 굴린 남궁휘(南宮輝)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그의 앞에 다가서는 수린을
향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삼장(三掌)을 수린(秀璘)의 삼대 요혈을 향해 동시에 날렸다. 정체 모
를 두려움이 가슴속으로 밀려온 때문이었다.
- 펑.. 펑.. 퍼엉..!
정수리에 위치한 백회혈(百匯穴), 신경의 중추(中樞) 명문혈(命門穴), 여인 하부(下部)의 요해
회음혈(會陰穴)..!
삼장(三掌)을 뿌려 세곳을 동시에 공격한 강남일기(江南一奇) 남궁휘(南宮輝)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세 곳의 혈은 모두 치명적인 사혈(死穴)이며 또한 한 곳 회음혈(會陰穴)은 여성의 치부를
희롱하는 곳이 아닌가..!
남궁휘 스스로 생각하기에 경험이 일천해 보이는 수린이 하체로 날아드는 일장(一掌)을, 부끄러
움 때문에 몸을 움츠려 당황케 하여 다른 두 곳으로 날아드는 이장(二掌)은 도저히 벗어나지를
못하게 만들려는 남궁휘(南宮輝)의 간계였다.
「호호..! 이렇게 갑자기 암공(暗攻)을 하다니..! 그것도 여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곳만 선택을
해서 장(掌)을 뿌린다..! 후후후.. 강남일기(江南一奇)라 불리는 네놈의 명성이 겨우 이정도
였드냐..?」
그러나 아직은 부끄러움이 많은 여인이었다.
아랫도리를 향해 날아드는 손바닥(手掌)에 당황한 수린(秀璘)은 안색이 붉게 변하며 엉겁결에
두 손으로 고간을 가리고 몸을 비틀어 다른 두 곳의 혈도로 날아드는 나머지 이장(二掌)을 대비
해 선천강기(先天剛氣)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 순간..!
- 크아앙.. 쾅.. !
남궁휘(南宮輝)의 장력이 수린(秀璘)의 신형(身形)을 후려쳐 굉음을 울리며 수린의 신형은 그
장력(掌力)을 감당하지 못하고 수십보 뒤로 흐늘흐늘 밀려나 비틀거렸다.
- 쿵.. 털석..!
장풍에 맞아 뒤로 날아간 수린(秀璘)의 신형은 결국 아름드리나무의 밑둥에 부딪혀 뒹굴며 혼
절을 한 듯 뒹굴고 만 것이다.
「크흐흐흐흐.. 낭자, 나의 장(掌)을 받아내지 못했으니 내가 이긴 것이 분명하렸다..!」
남궁휘(南宮輝)는 음흉한 웃음을 띠우며 사지를 쭉 뻗고 정신없이 넘어져 있는 수린(秀璘)의 곁
으로 서서히 다가 왔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여인의 무공수위는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눈에 살펴보았으나 아무래도 경험이 일천해 보이는 수린(秀璘)의 태도
를 파악한 남궁휘(南宮輝)가 상대의 마음에 공포를 느끼게 하여 수린(秀璘)이 제대로의 기량을
펼칠 수 없도록 이 낭자가 준비도 미처 하지 못한 그 순간을 틈타 사혈을 기습한 것이었다.
그런 남궁휘(南宮輝)의 의도대로, 불현듯 날아드는 남궁휘의 장풍에 당황한 수린(秀璘)은 선천
강기(先天剛氣)를 펼쳐 미처 신형을 보호하기도 전에 통타를 당한 것이었다.
허나 수린(秀璘)의 몸은 이미 도검불침, 수화불침, 만독불침의 금강불괴치체(金剛不壞之體)를
이루어 굳이 선천강기(先天剛氣)를 끌어 올릴 필요조차도 없는 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회음을 파고드는 남궁휘(南宮輝)의 손바닥에 수치심이 왈칵 치밀어 그러한 사실 조차도
잊고 다급히 방비를 하기위해 선천강기를 운용하려 할 만큼 수린(秀璘) 스스로도 당황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