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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70 부 (마지막회)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70 부  **



제 26 장  대단원(大團圓)의 막(幕).


벌써 여러 날 비연선원 제궁 안 집무실인 서원(書院)에 틀어박혀 꿈쩍을 않고 있는 상관명의
앞에 구(龜)와 학련(鶴蓮)이 찾아와 마주앉아 있었다.
상관명의 명을 받아 서문가를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이 서문인걸의 향방(向方)을 보고하려 들어
온 것이었다.
그 구(龜)와 학련(鶴蓮)의 곁에는 홍련채주도 함께하고 있었다. 홍련도 혹시나 구와 학련이 지
키고 있던 서문가에 변고가 생길까 염려해 백련채의 문도들을 서문가의 외각에 배치하여 감시
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신변 안배(按配)가 온전히 처리 되어, 백련의 문도들을 소주(蘇州)의 서쪽
태호(太湖)에 있는 백련채의 본부로 돌려 보낸 후, 보고를 하기 위해 비연선원으로 돌아온 구
와 학련을 뒤 쫓아와 상관명의 앞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구(龜)가 상관명을 향해 보고를 하고 있었다.


「주군.. 서문의 부자는 서문가를 찾아온 혜승대사를 따라 소림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부자
가 머리를 깍고 불문에 귀의를 하여 달마동에서 수도(修道)증진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성찰(省
察)하며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화령이 혜승대사의 제안에 잠시 불평(不平)을 나타내다가 다행히 그녀도 아버지의 수발을 들
겠다며 동행을 했습니다.」
 
구(龜)가 보고를 하는 말에 덧붙여 학련(鶴蓮)이 나머지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그 말을
듣고 있던 상관명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가, 혼잣말
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진정 냉혹한 부정(父情)이로고..! 황제(皇帝)는 감언(甘言)에 마음이 오락가락 탐심(貪心)에
흔들리고..! 도저히 그냥 넘길 일이 아니구나..!」


「예.. 예..? 주군..?」


뜻 모를 소리에 깜짝 놀라 되묻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든 듯, 비로소 앞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는 상관명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흘러 지나갔다.


「아.. 아니오 아무 일도 아니오..! 홍련채주도 계셨구려..! 지난밤의 일을 잠시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소이다. 채주께서는 당분간 이곳 비연선원에 잠시 머물고 계십시오. 구야.. 학련
누님.. 내 잠시 다녀오리다..!」


앞뒤 없는 말을 내뱉은 상관명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휙.. 서원의 창문으로 몸을 날려 벌써 허
공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 * * * * * * * * *


병주 월진객잔에서 돌아와 며칠을 여경과의 일로 고심을 하던 상관명에게 지난밤 자혜공주의
호위 광진이 은밀히 찾아와 전하고 간 말..!
황제가 황보승에게 명해 상관명의 황궁출입과 공주와의 조우를 금하며, 짧은 기간이나마 연환
서숙(捐幻書塾)의 학동을 돌보며 발전시키려던 공주를 황궁으로 소환을 했다는 소식을 급히 알
리라는 공주의 전언이라 하며 사방의 눈을 피해 은밀히 소식을 전하고는 돌아갔던 것이다.


그 모든 사항을 곰곰히 숙고(熟考)하고 있던 상관명이 모종의 결심을 한 듯 황보승의 거쳐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보승의 저택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허공가까이 날던
상관명이 깜짝 놀라고 있었다.
눈 아래 보이는 넓은 장원의 높은 나무 밑에 하얀 소복(素服)을 입은 여경이 두 손을 모아 경
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눈 속에 들어온 것이었다.


「낭자.. 어찌 소복을..?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혹시나 집안에 상이라도 당했는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마당으로 내려앉은 상관명을 보고
도 여경은 그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추호도 당황함이 없이 상관명의 소매를 잡아끌어 아
무도 없는 후원의 객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상관명을 좌정시키고는 살포시 고개를
숙여 공손히 절을 올렸다.


「공자님..! 그날 집에 돌아온 소녀는 공자님께서 분명히 이곳을 찾으리라 짐작을 하여 소녀가
당도한 그 날 부터 오늘 이 시각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천지신명께 빌고 있었습니다.」


「왜..? 무엇을 빌고 있었단 말이오..? 누구 때문에 소복을 입고 계시오..?」


상관명의 말에 여경은 슬픔이 가득한 눈망울을 보이며 대답을 했다.


「공자께서 필시 아버님을 응징하려 오실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소녀.. 소녀의 아비 목
숨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 여겨 소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의 마음속을 향해
빌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그 어리석은 생각은 소녀와 소녀의 오라비가 어떻게 하더라도 돌려
놓을 것이니 제발 목숨만은 거두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 * * * * * * * * *


병주 황보정의 군막..!


화령과 음행을 나누고 있던 그 자리에 오늘은 오라비 황보정을 찾아온 여경이 금방이라도 눈물
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마주앉아 있었다.


「오라버니..!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말없이 차종치종을 듣고 있던 황보정의 안면에는 굳은 결심을 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일어나거라 여경아..! 나와 함께 가자..!」


군막을 나선 황보정은 여경을 앞세우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을 달리고 있었다.


 * * * * * * * * * *


칠흑같이 어두운 밤..!


개봉 황보승의 사저(私邸)에는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그 저택의 깊은 곳 내실에 세 사람의 그
림자가 등불에 비치어 어른거렸다.


「이.. 이놈이..! 은퇴라니 그게 자식이 아비에게 할 말이냐..!」


새들조차 잠들어 고요한 저택의 내실에서 갑자기 호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버님..! 아버님을 위한 충언입니다. 여기 여경도 누누이 아버님께 말씀 올렸을 것입니다.
이제 그 욕심을 모두 버리고 은퇴하시어 노후를 편히 즐기십시오..!」


병주에서 달려온 황보정과 여경이 황보승을 마주하고 앉아 설득을 하고 있는 자리였다.


「이제 겨우 우리가문이 성제(盛際;왕성한 시기)를 이루려 하는 순간인데 은퇴를 하다니..! 그
런 말을 하려거든 다시는 아비의 눈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아버님..! 아버님의 그 욕심 때문에 이 여린 마음의 여경이 자진을 하려 결심을 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황보정이 자신의 부친에게 대들듯 따지는 말을 뱉어내고 있을 때, 여경은 홍조를 띤 얼굴을 자
꾸만 숨기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자진을 하려 했다니..?」


「아버님께서는 황제에게 쫓겨난 여경을 힐책(詰責)하고, 여경이 상관공자와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을 이용해 그에게 보내어 상관공자를 암살하라 시키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음.. 그래 내가 시켰다. 그러나 그 일은 상관 그놈만 없어지면 이 아이도 황제
를 따를 것이고 나의 야망도 순조로우리라 생각해서 그리한 것이다.」


「그래서요..? 그래서 여경이 아버님의 지시대로 상관공자를 해쳤던가요..? 아닙니다 아버님..
오히려 여경은 아버님보다 상관공자의 뜻이 옳다고 생각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입니다.
왜..? 왠줄 아십니까..? 저 착한 여경이 아버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휴우..!」


황보승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 부친을 보며 황보정은 피가 끓어오르는 간언을
계속하고 있었다.


「서문인걸과 결전을 펼치고 있던 그 자리에 제가 보낸 많은 궁수를 거느리고 아버님께서도 계
셨다 들었습니다. 그는 천궁의 궁주이지요. 그 상관공자가 아버님을 해하려 했다면 손바닥 뒤
집는 것보다 더 쉬웠을 것입니다. 아버님의 야망을 익히 알고 있는 천궁의 궁주인 공자가 아버
님의 행위를 그냥 두고 본 것은 아버님께서 백성을 위해 진력을 해달라는 무언의 질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상관명.. 그 공자가 이 아비의 목숨을 담보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습니다 아버님..! 소자 또한 서문인걸의 딸인 화령의 독수에 당해 죽음을 당할 고비를
상관공자가 구해주었습니다. 공자는 저와 여경에게는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지요..! 그런 사실
을 외면하고 아버님께 병력을 내어준 저 또한 상관공자께 큰 잘못를 저지른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겨우 일어서려는 우리 가문은 어찌하고..?」


「가문을 위한 욕심이었습니까..? 욕심이라..! 흐흐흐.. 상관공자의 마음에도 욕심이 가득하지
요..! 그가 갖고 있는 욕심은 아버님의 욕심보다 엄청나게 크고 높은 것입니다. 다만 아버님과
다른 점이라면.. 상관공자의 그 엄청난 욕심은 모두 백성을 편히 하고픈 오직 한가지의 욕심뿐
이라는 것이지요..!」


더 이상은 할 말이 없다는 듯 황보정은 이제 입을 닫고 부친의 안색만 살피고 있었다.
한동안 멍한 얼굴로 창문밖 하늘에 걸려있는 초승달만 바라보고 있던 황보승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정아..! 나는 이 길로 어전에 나가 황제에게 은퇴를 주청(奏請)할 것이다. 그리고 날이 밝으
면 나와 함께 상관공자를 만나러 가자..!」


 * * * * * * * * * *


밤이 깊었건만 어전의 등불을 환히 밝혀져 있었다.
황제의 앞에 엎드려 청을 하고 있는 황보승의 곁에 자혜공주도 황제를 향해 역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황보대인..! 늦은 밤에 짐을 찾아와 뜻밖의 말을 하는 연유가 무엇이오..? 짐은 난을 평정한
그대를 더욱 귀한 자리에 모시려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황제를 향해 황보승은 천천히 입을 열
었다.


「폐하..! 소신이 해야 할 일은 이제 모두 끝난 듯 하옵니다. 이제 폐하의 곁에 젊은 인재를
두시어 선정을 베푸시옵소서..!」


「젊은 인재라..! 누구냐..? 그대가 말하는 젊은 인재가 누구냐..? 상관명의 사주냐..? 어서
짐에게 고(告) 하라..!」


황제의 용안은 갑작스러운 황보승의 사직의 청을 접해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혹시나 이 일이
상관명 때문은 아닌가 큰소리로 추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황제의 앞에 자혜공주가 조
용히 나서서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상관오라버니를 경계하시고 소녀를 자혜궁에 연금한 일 모두 여기 황보대인과
야합(野合)하여 이룬 일이 아니었습니까..? 아바마마는 황보대인을 이용하여 정권을 유지하려
했으며 황보대인은 아바마마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세를 지키려 하셨습니다. 소녀 그렇게 짐작
하고도 연금을 견디며 아바마마의 영명한 판단을 기다려 왔습니다.」


「시끄럽다.. 공주..! 입 닥치지 못할까..?」


황제는 자혜공주가 자신을 질책하듯 말을 이어가자 불같은 노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공
주는 황제의 진노(震怒)를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녀의 진언을 계속 들어주세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지금 이 나라의 모든 관헌과 백성
그리고 무림인들도 상관오리버니를 존경해 따르고 있습니다. 오라버니 스스로 아바마마를 모해
할 생각을 가졌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이 황궁를 쑥밭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바마마도 짐작하고 계시는 천궁의 힘입니다. 즉 그의 위세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설사 아바마마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곁에 부복을 하여 공주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황보승도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
었다.


「그 산 증인이 여기 계신 황보대인입니다. 아바마마께 위임을 받은 병권으로 서문인걸의 발호
를 제지하려 출동했던 대인의 위세는 지금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나 지금 황보대인께서도 상관
오라버니의 진의(眞意)를 깨닫고 이렇게 사직을 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약 아바마마께서
황제의 자리를 상관오라버니에게 양위한다고 해도 오라버니께서는 코웃음을 치며 산천을 벗하
러 훨훨 떠날 것입니다.」


그 말을 받아 황보승이 고개를 들고 황제를 바라보며 귀에 거슬리는 충언(忠言)의 마지막 한마
디를 올리고 있었다.


「폐하.. 공주마마의 말이 옳습니다. 폐하께서는 소신의 감언(甘言)때문에 상관공자를 두려워
하게 되었고 혹시나 황위(皇威;황제의 위엄)에 손상을 입을까 그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소신
역시 상관공자 때문에 조정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그를 음해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공자께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그 진심을 깨닫게 되어 사직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부디 소신의 마음을 통촉(洞燭)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예.. 아바마마..! 황보대인의 뜻을 깊이 새기시고 성찰(省察)하소서..! 소녀도 궁(宮)을 떠
날 것입니다. 강호로 나가 상관오라버니와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세월을 보낼 것입니다.」


「뭐..? 공주도 짐의 곁을 떠나겠다고..?」


「예.. 아바마마..! 소녀 상관오라버니의 곁에 있어 그분과 주유(周遊)를 한다면 오히려 아바
마마의 심기가 훨신 편해지실 것입니다.」 


 * * * * * * * * * *


겉으로는 조용한 듯 평온하게 보였던 강호는 그 속에 일촉즉발의 내홍(內訌;내부에서 일으키는
분쟁)을 치르고 이제는 다행히 올바른 질서를 유지하여 있고, 백성들은 풍요로운 삶과 안락함
에 젖어있던 어느 날..! 비연선원은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홍련채주.. 이 선원도 채주께서 돌보아 주셔야겠습니다. 다시 혼란이 다가온다면 언제라도
천궁(天宮)은 강호에 현신을 할 것이외다..!」


상관명이 홍련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동안 자혜공주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황보여경을
바라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여경언니..! 언니가 가지 않으면 저도 안갈 거예요. 어서 오라버니의 뒤를 따르세요..!」


여경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부끄러운 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 * * * * * * * *


서산을 향해 넘어가고 있는 햇살은 유비산(幽秘山) 계곡을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넓은 장야궁
(長夜宮)터의 두 그루 소나무는 석양(夕陽)을 뒤로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워 ㅡ 천(天) ㅡ 자를
만들고 있었다.


저녁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요대(瑤臺)앞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던 상관명이 만감이 교
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주..! 여경낭자..! 이곳이 우리가 지낼 장소이외다. 구(龜)야.. 학련(鶴蓮)누님.. 어서 우
리들의 보금자리를 만듭시다..! 완아는 무얼 하느냐.. 함께 집 지을 나무를 베러 가야지..!!」



                                ***  서검연풍록(書劍戀風錄) 완결(完結)  ***


***********  그동안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낭만백작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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