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2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62 부 **
제 22 장 대회전(大會戰) 2.
공주가 황궁(皇宮)으로 돌아 간지도 벌써 달포가 흘렀다.
그 한 달여 동안 상관명은 모든 촉각을 기울여 강호의 정세를 수집하며 학련과 구, 그리고 홍
련채주와 여경낭자까지 제궁(帝宮)의 서원(書院)에 모여 방도를 의논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붉은 연기를 길게 꼬리에 단 푹죽이 피웅.. 소리를 내며 비연선원이 위치한 우왕대(禹王臺)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광경이 서원의 창문으로 보였다.
「 앗.. 궁주님..! 문도들의 연락입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
그 신호를 본 홍련채주가 상관명에게 말을 한 후 푹죽이 날아오르는 장소로 급히 달려 나갔다.
* * * * * * * * * *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온 홍련채주가 상관명의 앞으로 달려와 채 앉지도 않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 궁주님..! 서문인걸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 소림의 제자들은 제남(齊南)을 향해
출발을 했고 멀리 산동 태안(泰安)의 제갈세가(諸葛世家)도 서문인걸을 도우려 움직이고 있다
고 합니다. 」
「 그래요..? 숭정방과 진양문의 움직임은 어떠하답니까..? 」
「 예.. 숭정방은 방의 장로들과 소수의 제자들이 태안으로 향하고 있으며 진양문은 단지 몇명
수뇌부의 인물들만 문주가 인솔을 해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
쉴 새 없이 말을 뱉어낸 홍련은 그제 서야 한숨을 내 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 홍채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
상관명이 좌중을 휘 둘러 보며 대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우선 여경낭자께서 먼저 출발을 하셔야겠습니다. 지금 즉시 황보대인께 가서 서문인걸의
움직임을 전하세요. 그리고 필히 낭자의 오라버니에게도 알리라 하십시오..! 완아 여경낭자를
우왕대 앞까지 배웅해 드려라..! 」
그동안 먼저 황궁으로 돌아간 자혜공주가 황제와 황보승 사이에 오가는 상황들을 취합을 해
광진 호위를 통해 전해와 그곳의 상황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말없이 앉아있던 여경낭자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상관명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 여경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순간
여러가지 상념이 맴돌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말을 나누는 자리라 축객(逐客;손님을 쫓아냄)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공자께서
이미 나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는 것인가..? 아버님께 욕심은 버리라 진언을 했으나 오히려 가
문을 버리려 한다고 큰 꾸중만 들었다. 또한 서문인걸을 배격하고 아버님 스스로 모든 권력을
장악할 준비가 완벽하니 상관공자의 곁을 지키며 그의 움직임만 면밀히 주시하여 알리라 하셨
다. 그러나 나는 자꾸만 공자에게로만 향하고 있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 )
부정(父情)과 연심(戀心)의 사이에 놓인 여경은 자신의 답답한 심정(心情)을 상관명에게 하소
연 할 기회(機會)조차 만들지 못하고 쓸쓸히 제궁(帝宮)의 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런 여경의
뒷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기다린 상관명은 학련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 학련누님..! 누님은 지금 즉시 황궁의 자혜궁으로 가서 황보승의 움직임을 살핀 후 공주와
함께 제남으로 가세요. 그리고 홍련채주께서는 백련문도들과 같이 행동하며 더 강호의 정보를
자세히 알아 제남에 당도하도록 부탁드립니다. 자.. 빨리 출발들 하십시오..! 」
두 사람이 나서는 것을 본 상관명이 완아를 돌아보았다.
「 완아..! 너는 이 비연선원을 잘 지켜야 한다. 그리고 운향원(雲香院)으로 가서 밀실에 계신
조평환 부자를 이리로 모셔 오너라..! 」
「 예.. 주군..! 이곳 선원은 아무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
생글거리며 조르르 달려간 완아가 조평환 부자를 데리고 들어오자 상관명은 환한 얼굴로 그들
을 맞이했다.
「 어서 오십시오 조대인..! 몸은 좀 어떠신지..? 」
「 예.. 공자의 보살핌으로 전보다 더 건강해진 듯 합니다. 」
「 하하하.. 다행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이제 소생이 두 분에게 도움을 청할까 합니다만..? 」
소리 내어 웃고는 있으나 그 표정의 심각함을 감지한 조평환이 얼른 한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 공자께서 걱정하던 일이 마침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예.. 하명을 해 주시시오. 무슨 일이
든 최선을 다해 도우겠습니다. 」
역시 일국의 재상을 지낸 인물이었다. 상관명의 표정을 보고 이미 사건의 발단을 짐작하고 있
는 조평환이었다.
「 이제 이 비연선원의 밖으로 나가 주셔야겠습니다. 나서서 조대인의 옛 수하들을 만나 주십
시오. 익균 공자도 마찬가지올시다. 만나서 황보승의 부자에게 동조하지 말도록 두 분께서 설
득을 해 주십시오. 」
「 공자의 말씀 명심해서 이행하겠습니다. 허허허..! 이제 겨우 저희 부자가 공자의 은혜를 갚
을 기회가 왔습니다 그려.. ! 」
「 그럼 부탁드립니다. 구(龜)야 우리도 출발한다. 나를 따르라..! 」
「 옛..! 주군(主君)..! 」
* * * * * * * * * *
비연선원을 나선 상관명과 구(龜)는 바쁜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두사람의 모습은 관도를 오
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경치좋은 명승지를 찾아 유람을 하는 한가로운 서생처럼 보였지만, 그
와중에서도 둘의 눈초리는 지나는 고을마다 어슬렁거리는 과객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피며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산길을 접어들어 주변의 인적이 드물어지자 상관명이 구에게 말했다.
「 구(龜)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랜 만에 너의 경공을 한번 시험해 보아야겠구나..! 」
`오호.. 주군이 나의 무공(武功)을 시험함과 동시에 한시라도 빨리 제남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구나..! 구(龜)도 상관명이 말한 의도를 금방 알아차리고 신형(身形)을 날릴 준비를 하며 대
답을 했다.
「 하하하.. 주군.. 그럼 먼저 갑니다..! 」
웃음소리와 동시에 땅을 박차며 구(龜)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 구(龜)의 뒷모습을 미소
로 바라보던 상관명의 신형(身形)이 가볍게 흔들렸다. 발로 땅을 구르는 시늉도, 몸을 허공으
로 솟구치는 도약의 몸짓도 없었다. 그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자 하는 생각만으로 이미 그 신
형은 허공을 날아 앞서 날고 있는 구(龜)의 곁에 다다라 나란히 비행을 하고 있었다.
「 어헉.. 주군..! 」
그동안의 수련을 주군의 면전에서 자랑이라도 하고픈 마음에 최상의 공력을 운용해 경공(輕功)
을 시전한 자신이 아닌가..! 옆을 돌아보는 구(龜)의 눈동자 속에는 `과연 자신의 주군 이로구
나 존경의 눈빛이 가득했다.
「 하하하.. 구(龜)야..! 너의 비영등공(飛影登空) 경공은 내가 뒤를 따르기조차 힘들 정도로
초절하구나..! 허허허 너의 내공은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정을 이루었다. 장하구나..! 」
「 에이.. 주군..! 아직 멀었습니다. 주군의 무공이 보름달이라면 저는 겨우 반딧불정도..! 」
구(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관명의 입에서 칭찬의 말이 흘러나왔다.
「 아니다..! 과연 천궁(天宮)의 시자(侍者)로서 너무나 당당한 무공이었다. 하하하.. 이 강호
에 너를 능가할 무림인이 누가 있겠느냐..? 」
두 사람은 정겹게 덕담을 나누며 역하정(歷下亭)을 향해 번개처럼 허공을 날고 있었다.
* * * * * * * * * *
어느 듯 눈 아래에는 드넓은 대명호(大明湖) 호수의 출렁이는 물결과 함께 그 호반의 남쪽아래
에 있는 아담한 정자 역하정(歷下亭)이 보였다.
「 다 왔구나..! 구(龜)야 저 정자에 내리자..! 」
훌쩍 내려앉던 상관명의 눈빛이 순간 반짝 빛나며 무엇인가를 감지한 듯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
다. 그런 주군의 표정을 구(龜) 긴장한 표정으로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 구(龜)야.. 잠시 학련의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거라. 내 한 바퀴 돌아오마..! 」
「 왜.. 왜 그러십니까.. 주군..! 」
「 음.. 호수의 주변에 살기가 감돌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기척이
느껴진다. 」
역하정(歷下亭) 정자에 내려앉은 상관명은 쉴 틈도 없이 그대로 몸을 날려 대명호의 정면 나지
막한 구릉(丘陵)이 줄지어 늘어선 앞쪽으로 날았다. 번개보다도 빠르게 호수의 상공을 날고 있
는 상관명의 신형(身形)은 형체도 그림자도 없는 투명한 아지랑이일 뿐이었다.
마치 한줄기 빛이 휘익 휘몰아치듯 호수 위를 돌아 다시 정자에 내려앉은 상관명의 얼굴은 심
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런 상관명에게 구(龜)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 주군.. 무엇이었습니까..? 」
「 구(龜)야.. 뜻밖이구나. 계곡의 입구를 궁수(弓手)들이 진을 치고 포위를 하고 있다. 그 궁
수들은 분명 황보정 휘하의 부하들이었다. 허허 이것 참..! 」
호수의 뒤쪽 계곡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어느 듯 평평한 평지를 이루고 그 평지의 끝에는 높은
산이 병풍처럼 줄이어 천혜(天惠)의 요새(要塞)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계곡을 빠져 나
오는 길목은 오직 한길 뿐..! 그 출구를 포위해 막아서면 천혜의 요새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 길목을 궁수들이 지키는 형국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병주까지 달려가 황보정을 만나 설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황보정의 군사들
이 이곳에 나타나 있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관명의 마음이었다.
「 주군.. 황보정이 직접 지휘를 하고 있던가요..? 」
「 아니다. 그들의 중앙에는 조정의 황보대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욱 알 수 없는 점은 황궁
의 어림군과 혈잠령의 무인들까지 합세를 해 청룡(靑龍), 백호(白虎), 현무(玄武), 주작(朱雀)
네 명의 어전시위(御前侍衛)가 그들을 지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
「 으음.. 누가 이곳의 상황을 황궁에 알렸을까요..? 」
「 그것이야 여경낭자의 연락을 받은 황보대인이겠지..! 」
대답을 하고 있는 상관명의 표정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잠시 당황했을 뿐
이내 평정을 되찾고 구(龜)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 황보정의 술수일 것이다. 저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 아무 염려
말아라..! 」
저 정도의 병력쯤이야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는 호쾌한 주군의 말에 빙긋 웃음으로 동감을 나타
내는 구(龜)도 역시 그만한 배짱을 가진 영걸(英傑)이었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며 웃음을 나누고 있는 그 순간..! 갑자기 길 아래에서 인기척이 울리
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주군.. 늦었습니다. 공주님과 함께 왔습니다. 」
정자의 계단을 오르며 상관명에게 인사를 하는 학련(鶴蓮)의 상큼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뒤로 또 한사람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 궁주(宮主)님.. 백련채의 문도들도 모두 당도 했습니다. 」
때맞추어 홍련채주도 도착을 한 것이었다.
「 모두들 어서 오세요..!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오.. 공주, 황궁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
까..? 」
무엇 때문에 이곳에 당도하자마자 상관명이 황궁의 소식을 묻는 것일까..? 어리둥절 생각에 잠
겼던 자혜공주가 입을 열었다.
「 아참.. 오라버니. 이상한 일이 한 가지 있긴 했습니다. 비연선원을 나선 여경낭자가 황보대
인의 사저에 있지를 않고 폐하의 곁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부친인 황보대인이
부산하게 궁(宮)을 벗어나 어디론가 달려 갔습니다. 」
황보승은 이미 이곳에 와있으니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황보여경이 황제의 곁에 있
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상관명은 점점 황보승의 속내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으음.. 이것은 노회한 황보승의 계략(計略)이 분명하다. 이곳의 일이 끝난 후의 상황도 그리
매끄럽지 만은 않겠구나..!)
그러나 그런 내색은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 모두들 들으시오. 지금부터 저 계곡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갈 것입니다. 스스로 주변을 감시
하며 내 뒤를 따르시오..! 」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공주의 곁에 시립(侍立)해 서있는 광진을 보며 당부를 했다.
「 광진호위.. 우리가 저 계곡 안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이 정자를 떠나지 말고 주변을 살펴
주시오..! 특히 저 구릉(丘陵)쪽을 예의 주시하기 바랍니다. 그곳에 많은 궁수들이 숨어 있
으며 황보대인이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듯 합니다. 」
그 말을 들은 자혜공주와 광진의 얼굴에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된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허나
상관명은 너무 염려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 모두 짐작하고 있던 일이외다. 자.. 갑시다..! 」
한발 내딛는 상관명의 앞으로 구(龜)와 학련(鶴蓮)이 재빨리 달려 나와 역 품(品)지의 형태로
상관명의 세 걸음 앞 좌우에 자리하며 각자의 품속에서 삼각형의 황금색 깃발을 꺼내 들었다.
그 깃발..! 구(龜)의 손에 들려진 깃발에는 ㅡ 천(天) ㅡ 자가, 또 한쪽 학련(鶴蓮)의 손에 들
린 깃발에는 ㅡ 궁(宮) ㅡ 자가 선명하게 수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구와 학련의 입에서 동시에
천지를 울리는 환성(歡聲)이 울려 나왔다.
「 천궁의 시자, 좌선동(左仙童) 구(龜)와 우선녀(右仙女) 학련(鶴蓮)이 천궁(天宮) 궁주님의
존체(尊體)를 호위한다. 누구든 앞길을 막지 말지어다..! 」
하늘 높이 천궁의 깃발을 들어 올리며, 천궁(天宮)이 무림(武林)의 첫 출두(出頭)를 알리는
당당하고 우렁찬 고함소리가 강호 허공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