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49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49 부 **
제 16 장. 황궁(皇宮)에 삭풍(朔風)이 불다 2.
이제 화살이 잔악(殘惡)하게 학련(鶴蓮)의 신형을 향해 날아들 절체절명의 순간..!
넘어져 있던 자리에서 몸을 추스리며 천천히 일어난 학련의 입에서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오며 화살을 겨누고 있는 무인들의 속으로 춤을 추는 듯 스스로 걸어 들어가
고있었다. 아니.. 노랫소리에 맞추어 학련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용정장원(龍亭莊園)의 넓은 뜰은 온통 너울거리는 분홍 아지랑이가 가득하고 장중에는 춤을
추고 있는 학련의 그림자뿐이었다.
자신의 궁주(宮主) 상관명에게 전수받은 천궁(天宮)의 무학(武學) 무극천공(無極天功)의 절정
내공심법(內功心法)인 무극무흔결(無極無痕訣)중의 무극연환무(無極捐幻舞)를 시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극(無極)의 공력을 모두 춤사위에 실어 분홍빛 옷자락을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바닥
을 맴돌다 허공으로 치솟고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이 허공을 모두 뒤덮는 듯 할 때 또다시 학
련의 신형은 공중을 선회하며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천상(天上)의 율동이었다. 스스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조그만 노랫소리에 맞추어 흥겨운 듯
팔다리를 이리저리 놀리고 전신을 우쭐거리면서 하늘과 땅으로 오르내리는 그 유연한 동작..!
천궁(天宮)의 무공(武功) 무극연환무(無極捐幻舞)가 강호(江湖)에 처음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학련의 주변에는 연분홍 아지랑이가 맴돌아 무극의 강기를 이루어 학련의 신형을 보호하며 그
아지랑이는 장원(莊園)의 공기까지도 감응(感應)을 시켜 창애(蒼靄;아지랑이)가 장중을 휩쓸
고 눈에 보이지 초차 않는 너울이 진기(眞氣)를 휘몰아 활(弓)을 들고 마당 가득한 무사들에
게다가가 한 사람 한 사람씩 넋이 빠진 듯 고이 잠들게 하고 있었다.
(홍련채주님.. 지금입니다. 빨리 조평환을 구하십시오..!)
* * * * * * * * * *
밤낮을 도와 달려온 상관명은 조익균을 옆구리에 끼고 비연선원을 들어서고 있었다.
좌우를 살피며 들어서는 상관명을 발견한 완(婉)아가 조르르 달려 나오며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 주군.. 어찌된 일입니까..?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
「 오.. 완(婉)아, 조익균이다. 부상이 심하니 어서 부축을 하거라. 다행히 화살의 독(毒)은
모두 해독을 시켰으나 상처가 워낙 깊어 회복이 되려면 시일이 오래갈 것 같구나. 유심히 살
펴 돌보아야 한다. 」
선원의 밀실(密室) 운향원(雲香院)으로 들어와 조익균을 침상위에 눕히고 완(婉)에게 당부를
한 후 자신의 집무실인 제궁(帝宮)의 서원(書院)으로 들어간 상관명은 깊은 생각에 젖어 들었
다.
(그들이 나누던 이야기 속의 흑의 복면인이 누구인가..? 그 흑의인이 조정의 거사를 앞에서
지휘하고 있다고 했다. 서문인걸이 국경의 일을 담당해 지휘를 하고, 또 한사람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흑의인을 앞세워 조정의 거사를 이룬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서문인걸이 국
경에서 돌아온 다음의 행보은 어떻게 이루어 질까..?)
병주(幷州)의 월진객잔 일층에 모여 있던 무림인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는 상관명
이었다.
(내가 병주에 있던 그 시각에 흑의복면인은 봉화의 신호를 보고 벌써 거사를 이루었을 것이
다.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까지 나흘이 걸렸다. 조정의 거사가 이미 마무리가 되었다면 학련
누님의 연락을 받은 완(婉)이 그 전말을 들어 알고 있을 것..! 그런데 완(婉)아는 나를 보고
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직 조정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상관명의 얼굴에는 조조함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학련(鶴蓮)을.. 아
니 국경에서의 구(龜)와 마찬가지로 천궁(天宮)의 제자들의 능력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똑 똑 똑..!
서원(書院)의 문을 두드리며 완(婉)이 찻잔을 들고 실내로 들어섰다.
「 주군.. 뜨거운 차(茶)를 가져왔습니다. 드시고 먼 길을 다녀오신 피로를 조금 풀도록
하십시오..! 」
「 그래.. 마침 목이 말랐다. 어서 이리 다오. 참 학련(鶴蓮)언니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
었느냐..? 」
「 예.. 주군. 그날 홍련채주의 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나간 후에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습
니다. 」
「 연락이 없었다..? 선원을 찾는 손님들의 모습들은 어떠하더냐..? 」
「 요 며칠 조정의 관리들은 뜸한 편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
「 으음.. 알았다. 나가 보거라..! 」
(조정 관리들의 움직임이 조용하고 학련누님의 연락도 없다 ..? 혹시 아직 아무도 황궁을 벗
어나지 못하고 그곳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의 복면인의 존재가 갑자기 상관명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 완(婉)아..! 황궁(皇宮)으로 간다. 」
비연선원의 일층으로 내려온 상관명이 행선지를 밝히며 비연선원의 문을 나서자 등 뒤에서
완(婉)의 목소리가 울렸다.
「 예.. 다녀오십시오..! 」
상관명의 잔뜩 긴장된 표정을 보고도 가벼이 이웃 나들이를 가는 주인을 대하듯 완(婉)의 인
사는 한가로웠다.
「 그래.. 다녀오마..! 」
대답조차도 천연스러웠다. 그러나 상관명의 마음은 어서 황궁(皇宮)으로 달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마음만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황궁의 주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곳곳을 지키는 위병들의 표정도 그저
평시의 황궁을 경비하는 그들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러나 전날 황궁의 담을 넘어 황제의 침궁을 찾던 그날의 위병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들 이었
다.
휘익.. 날아들어 지난번 살펴두었던 침궁의 나무위로 올라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침궁을 지키는 어전시위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빈청(賓廳)이구나..! 모두 그곳에 모여 있겠구나..!)
언제나 황제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현무(玄武), 주작(朱雀)
네 명의 어전시위(御前侍衛)가 그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황제가 그곳에 없다
는 의미였다.
그렇게 생각이 든 상관명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빈청(賓廳)이 있는 본궁(本宮)의 지붕위로
몸을 날려 빈청(賓廳)의 천정 속으로 스며들었다.
천정의 조그만 틈사이로 보이는 아래의 광경...! ㅡ 전령(傳令) ㅡ 이라 적혀진 붉은색
삼각형의 깃발을 등에 묶은 군졸이 황제의 앞에 고개를 숙여 엎드려 있고 단(壇)위의 황금색
황좌(皇座)에 앉아있는 황제는 그 전령이 올린 상소(上疏)의 서찰을 손에 들고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 황제의 좌우로 청, 백, 현, 무 네 명의 어전시위가 무섭게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다.
그들 시위의 한발 앞에는 자혜공주와 학련이 나란히 서서 빈청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서문인걸도 이곳에 와 있었구나. 헌데.. 이곳을 지휘한 또 한사람의 인물은 과연 누구
일까..!)
빈청을 아무리 살펴도 흑의 복면인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지 못한 한사람..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변한 노인이 서문인걸의 곁에 서 있었다.
그 앞에 황보승이 머리를 똑바로 들고 황제의 용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열려있는 빈청
의 문밖에는 어림군(御林軍)들이 빙 둘러 실내를 경호를 하고 있는 모습이 상관명의 눈 속에
들어왔다.
(으음.. 분명 저들은 황제를 위압(威壓)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황제가 저들의 위세를 잘 견
뎌 내어야만 할 텐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 순간 황제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 서문부자가 이번의 거사에 많은 힘이 되었다고 들었다. 짐의 가까이에 오라..! 」
「 황공하옵니다 폐하..! 」
계단(階段)을 걸어 올라가 황제가 앉아있는 용상(龍床)으로 다가서는 서문부자를 보며 자리에
서 일어난 황제가 그들의 손을 덥석 잡으며 치하를 했다.
「 아비는 전 왕조의 충신이며 그 아들은 당금 왕조가 한참 기틀을 잡으려 할 때 출사를 해
보국(報國)을 하였다. 이제 또 두 부자가 어지러운 조정을 혁신하기 위해 진력(盡力)을 다했
으니 두 사람 모두 조정에 출사를 하여 짐을 도와 주시오..! 」
상관명과 자혜공주에게 들어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황보승의 배후가 그들이라는 사실을 너
무나 잘 알고 있는 황제가 두 사람의 속내를 읽어보려 묻는 말이었다.
그 순간 황보승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서문인걸을 눈치를 살폈다.
「 폐하.. 우리는 다만 조정의 부폐와 백성의 고난을 위해 조그만 조력을 한 것뿐입니다. 지
금의 조정에는 인망이 두터운 황보대인이 있습니다. 그러한 황보대인께서 조정의 수장을 맡아
탐관(貪官)과 오리(汚吏)를 숙청하고 청렴한 인재를 등용 한다면 나라의 혁신을 이룰 것입니
다. 소인의 부친과 저는 초야로 돌아가 그곳에서 백성을 보살필 것입니다. 」
서문인걸의 말에 굳어있던 황보승의 굳었던 표정에 슬며시 풀렸다.
「 초야에서 백성을 보살필 것이라..? 허 허.. 그대들이 짐의 일을 대신 하고자 하는 구려..!
고마운 생각들이오..! 앞으로 황보대인이 조정을 이끌어 가려면 노고(勞苦)기 크겠소이다. 」
「 예.. 폐하, 소인 진력을 다하겠습니다. 」
「 그래.. 진력을 다해야지. 그런데 황보대인..! 변방의 일은 다행히 대인의 아들인 황보부사
가 잘 마무리 하여 전쟁의 위기를 벗어났다는 전령의 상소가 여기에 당도했소..! 그러나 안무
총사(按撫總司) 익균은 독시(毒矢)에 맞아 생사(生死)가 불명하며 그 행방조차도 묘연하다고
하오. 」
황제의 말에 황보정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한마디를 올렸다.
「 소인의 아들놈이 화친을 잘 이루었다고 합니다. 안무총사(按撫總司)는 거란 군이 침공한
혼란의 와중(渦中)에 이미 전사(戰死)를 한 것 같으니 황보 부사(副司)를 총사로 임명하여 신
속히 국경의 혼란을 안정시키도록 윤허하시기를 청(請)하옵니다. 」
기회를 틈타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려는 황보승의 말이었다.
그 순간.. 그들을 내려다 보고있던 학련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며 공주의 귀에 무슨 말인가
를 소근 거렸고, 잠깐 생각을 가다듬는 듯 주춤거리고 있는 황제의 곁으로 슬며시 자혜공주가
다가가고 있었다.
(아바마마.. 승락을 하십시오. 상관공자가 이 근처에 와 있습니다. 공자의 전언입니다.)
고개를 끄득여 수락(受諾)의 표하는 황제를 바라보며 서문인걸이 황보정에게 재촉을 하고 있
었다.
「 황상폐하..! 한시가 급한 국경입니다. 지금 곧 교지를 내려 여기 이 전령을 통해 국경으로
보내기를 바랍니다. 특히 조익균이 가지고 있던 군권(軍權)을 전과 같이 새로 임명된 안무총
사(按撫總司)에게 이양한다는 것도 필히 교지에 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황보승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황제는 또 다른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공주가 은밀히 속삭
였던 말이었다.
「 군권은 이번 일이 매듭지어진 후 짐이 다시 전교(傳敎)를 내리도록 하겠소. 우선 총사의
책무를 이어받는 임명교지를 전령을 통해 보내도록 하라..! 그런데 어찌 조정을 문란케 하고
백성을 억압한 조평환을 잡아 이 자리에 꿇어 앉히지를 앉는가..? 」
당연한 물음이었다. 조평환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거사가
성공적이었다고 아뢰고 있는 이 자리에 포박을 당하여 뒹굴고 있는 사람들은 조평환의 수하
몇명 뿐 원흉인 조평환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황보정이 서문인걸의 눈치를 살피
며 다시 아뢰고 있었다.
「 폐하.. 반항을 하는 죄인 조평환과 그를 보호하려는 혈잠령(血潛領)의 영두(領頭) 유극관
(劉克官)은 그 자리에서 참살을 하였습니다. 그 외에 반항하는 잔당들은 모두 결박하여 여기
에 잡아다 놓았습니다. 」
「 그렇다면 그들의 시신(屍身)이라도 짐의 앞에 데려오라..! 」
「 폐하..! 폐하의 배려로 어림군들 에게는 황궁을 철저히 지키도록 명하고 혈잠령(血潛領)의
무인들 모두 소인의 지시에 따라 조평환의 사저를 급습(急襲)하였습니다. 그 순간 혈잠령의
영두인 유극관이 폐하의 명을 어기고 조평환을 구해 달아나려 하자 그곳에 있던 서문인걸의
부친이 급히 그들을 도주를 막아 산체로 포박(捕縛)을 하려 했으나 죽기로 달려들어 어쩔 수
없이 주살(誅殺;죄인을 죽임)을 하였습니다. 」
황보정의 설명을 듣고 있던 황제의 입에서 노호(怒號)가 터져 나왔다.
「 이.. 무엄한..! 유극관이 짐의 명을 어기고 조평환을 도왔단 말이냐..? 그래 유극관이 이
끌던 혈잠령의 다른 무인들은 어떠하더냐..? 」
「 예.. 폐하, 다행히 유극관 외에는 모두 폐하의 명을 잘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싸움의 소
용돌이 속에 조평환의 저택은 화염(火焰)에 휩사였으며 그 불길 속에서 조평환과 유극관은 불
타버려 시신조차도 거두지 못하고 여기 잔당들만 체포해 온 것입니다. 」
「 허허.. 이 나라에서 짐(朕)의 명을 듣지 않는 조정의 신하가 있었던가..? 또다시 그러한
불경(不敬)을 방지하기 위해 공주에게 맡겼던 어림군의 지휘를 짐이 손수 행사할 것이며, 또
한 정국(政局)의 올바른 계도를 위해 추밀원(樞密院)에 위임을 한 혈잠령도 그 수장의 사욕을
위한 밀부로 전락을 한 폐해를 가져 왔으므로 이 기회에 그 혈잠령의 지휘권도 황궁의 직속으
로 환수(還收)를 할 것이다..! 」
그 순간 서문인걸이 다급히 황제를 향해 한발 나섰다.
「 황상폐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조정의 뒷수습이 끝나지 않은 지금 어림군과 혈
잠령의 무력(武力)이 아직은 필요할 때입니다. 조정이 완벽한 안정을 찾을 때까지 어림군과
혈잠령의 지휘를 황보대인에게 맡겨 두시기를 바랍니다. 」
부드러웠으나 강요에 가까운 서문인걸의 어조였다.
「 짐의 영(令)을 거역하겠다..? 서문인걸..! 그대도 짐의 백성이거늘 짐의 영에 토를 달았도
다. 오늘의 공신이라 더 이상 추궁을 하지 않으리..! 그러나 어림군과 혈잠령의 무력이 황보
승에게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합당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면 그대에게 황제의 명을 거역한 책
임을 물으리다. 어서 말해보시오..? 」
드디어 황제와 서문인걸의 기(氣)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빈청의 입구가 시끄러워지며 빈청의 입구를 경호하는 어림군들의 고함소리가 빈청
실내에 있는 모두들에게 들려오며 그 어림군들의 사이로 한사람의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 폐하..! 입궁을 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잠시 지체가 되어 늦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