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41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41 부 **
제 13 장. 후손(後孫)과 후예(後裔) 1.
「 예.. 주군(主君), 아직 머물고 계십니다. 지금 곧 모시고 오겠습니다. 」
홍련(紅蓮)채주를 불러오기 위해 방을 나서는 완(婉)을 바라보고 있던 황보정이 놀란 얼굴로
상관명을 향해 물었다.
「 홍련채주라 하면 그 백련채(白蓮菜)의 채주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지..? 」
「 예, 맞습니다. 백련채의 채주 홍련낭자가 여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
백련채의 채주까지 이곳에 머물고 있다니.. 도대체 이 공자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가..?
연환서숙에서 지나던 어느 날 서문인걸(西門仁杰)이 백련채의 붕괴소식을 입에 올리며 한탄의
소리를 뱉어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서문인걸이 충분히 자신의 전력이 될 백련채를
생각 없이 괴멸을 시켰다고 어느 누구인가를 향해 혼자 질책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재기가 불가능 할 정도로 와해(瓦解)되었다는 백련채의 수장인 홍련채주가 멀쩡히 이
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갈수록 이 공자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이 커져만 가는 황보정이었다.
또박또박.. 운향원(雲香院)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 상관궁주(宮主)님.. 홍련입니다. 가셨던 일은 잘 마무리 되셨습니까..? 」
자색(紫色)옷자락을 펄럭이며 상관명에게 예의(禮儀)를 표하고 들어서는 홍련을 반갑게 맞이
하는 상관명이었다.
「 홍련채주.. 어서 오십시오. 아.. 두 분 인사를 나누시지요. 이분은 평장사 어른이신 황보
대인의 자제분인 황보정(皇甫程) 공자입니다. 」
상관명의 인도(引導)를 받은 홍련이 황보정을 향해 예를 올렸다.
「 황보공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백련채의 채주 홍련이라 합니다. 」
「 황보정이라 하외다. 오래 전부터 위명은 들어왔으나 오늘에야 뵙게 됩니다. 」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하는 황보정의 얼굴에는 기이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 공자는 언제나 한발 앞서 가고 있다. 나를 만나 정세를 논의할 때도 그랬고 서문인걸이
쓸모없게 된 백련채를 아까워하고 있을 그 시간에 이미 이 공자는 그들을 모두 자신의 품속에
넣어 감싸고 있다. 그것은 홍련채주의 표정을 보면 금방 느낄수 있는 것이다. 채주의 얼굴에
나타나 있는 저 편안함은 분명 백련채는 궤멸 되지 않았으며 모든 문도들이 전처럼 자신의 자
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모든 것이 이 상관공자의 배려로 이루어 진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 홍련채주가 이방을 들어설 때 상관공자를 향해 궁주(宮主)라고 칭(稱)했다.
어느 궁의 궁주를 말하는 것인가..? 이 사람의 정체는 도무지 알 길이 없구나..!)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홍련이 자리를 잡자 상관명은 모두에게 당부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자.. 자.. 홍련채주도 자리를 했으니 모두에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이제 우리도 행동
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마 모든 사항이 긴박하게 움직여 갈 것으로
여겨 집니다. 홍련채주님, 부탁드린 그 일을 내일부터라도 시작해 주십시오. 전에 말씀드렸
듯이 장문인들은 찾지 마시고 각 방파의 원로들을 먼저 설득을 해 주십시오. 」
「 잘 알겠습니다 궁주님, 그리고 백련채의 문도들에게는 이미 연락을 해 두었습니다. 강호의
미미한 움직임도 포작이 되면 이곳 비연선원으로 알리도록 조치를 취해 두었습니다. 」
「 아하.. 벌써 그렇게 해 두었군요. 고맙습니다. 홍련채주께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이 아
닌지 모르겠습니다. 」
「 별말씀을.. 짐이라니요..! 백련채가 궁주님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임무를
맡기시더라도 감당을 해야 할 것을..! 」
(그렇구나. 짐작대로 백련채는 건재하구나..! 은혜라 했다. 서문대인이 아까와 하고 있는 그
백련채가 이 공자에 의해 고스라니 살아남은 것이로구나. 그런데 이 비연선원의 식구들은 저
공자를 주군(主君)이라 부르고 홍련채주는 말끝마다 궁주(宮主)라 부르고 있다. 도대체 이 공
자의 신분은 과연 무엇인가..?)
홍련이 상관명과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의아심에 젖어있는 황보정의 귀에 상관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참.. 황보공자..! 공자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지금 강호의 방파는 양분되어 있습니다. 백
련채도 그 한쪽에 휩쓸릴 뻔 하였지요. 채주께서 불의와 타협을 하지 않고 우리를 도우기 위
해 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
「 아.. 그렇군요. 그럼 백련채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은 무슨 일입니까..? 」
「 예, 그것을 황보공자께서도 당연히 알고계서야 옳은 일이다 싶어 설명 드리려 하는 것입니
다. 지금 강호의 방파 중 소림(小林)과 진양문(眞陽門)은 서문인걸의 힘에 굴복하였고 다른
한쪽인 숭정방(崇正邦)은 조평환(趙平換)이 거느리고 있는 혈잠령(血潛領)의 영두인 유극관
(劉克官)이 던진 큰 미끼에 회유를 당해, 조정의 벼슬이라도 얻을까하여 그쪽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파들은 단지 시류에 따르는 것일 뿐이기에 그들과 가까운 홍련채주를 통해 그 방
파의 원로들을 미몽에서 깨어나도록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
황보정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 그리고 채주에게 부탁을 드려 강호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백련문도들을 통해 그 방파들의
움직임을 수집하고 있는 것이지요. 」
(역시 그 일이었구나. 서문인걸이 백련채를 노렸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구나. 백련채를 이용해
그 모든 힘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고 한 것이 어긋나자 그렇게도 아쉬워했구나..! 앞을 내다
보는 혜안(慧眼)..! 과연 이 사람의 지략이 훨씬 앞서고 있다.)
상관명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 이 모든 점을 황보공자께서도 알고 계셔야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겠기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일이 벌어진다면 공자의 할일이 어느 사안보다 중요합니다. 혹시 마음에 불
편함이 있더라도 꼭 그 자리를 받아들여 지켜주십시오. 공자의 신변은 구(龜)를 시켜 지켜 드
리겠습니다. 」
「 구(龜)공자를 시켜 저를 경호하시겠다고요..? 」
찰나에 황보정의 얼굴에는 불쾌(不快)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경호(警護)라..? 자신의 신변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감시하겠다는 뜻은 아닌가..? 혹시
나 아직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아닌가..? 그 짧은 순간 황보정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관명이 황보정의 그 표정의 놓칠 리 없었다.
「 황보공자의 목숨은 그 누구보다도 중요합니다. 만약에 공자의 신변에 위해가 가해진다면
그 여파는 공자님의 부친에게도 미칩니다. 서문인걸이 노리는 것은 공자의 부친인 황보승대인
과 손잡고 조정을 장악하는 것이며 그 가장 핵심의 자리에 공자를 내세워 조익균의 발을 묶으
려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경에서 공자가 제몫을 하지 못할 형편이 되면 서문인걸은 움직이
지를 않을 것입니다. 」
「 후후.. 그렇게 된다면 서문대인의 야망은 움츠러들 것이고 오히려 그의 준동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저의 목숨보다 그것이 대의를 위해서 더 나은 일이지요..! 아니면 서문대인의
야심을 소상히 알고 계시는 상관공자께서 서문대인이 날뛰기 전에 암암리 그를 제거해 버리면
될 것을..! 」
황보정이 뒤틀린 심산에서 내뱉어 보는 말이었다.
「 하하.. 그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그의 명분이 옳습니다. 서문대인의 다음 행보는 모두가
짐작일 뿐 이지요. 저지르지도 않은 행위를 예단(豫斷;미리 판단함)을 해 행동을 취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조정의 혁신은 필요합니다. 그 혁신을 공자의 부친을 앞세운 그의 손
으로 이루게 한 후에는 우리 모두가 서문인걸의 손에서 공자의 부친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공자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
진심이었다. 모두가 황보정을 대하는 자세가 진정한 마음인 것이었다.
「 으음.. 잠깐 저의 생각이 지나쳤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서문대인의
그 다음 행보라 말씀하셨는데..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라 짐작 하시는지..? 」
황보정이 느끼고 있던 마음속의 불안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 아직은 확인이 된 것은 없는 짐작일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 그의 속에는 큰 야욕이 꿈틀거
리고 있기에 그 것을 알아내기 위해 여기에 모인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노력을 하고 있는 것
이지요. 」
「 가족이라..! 그 말에 가향(家鄕;고향)의 느낌을 갖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저의 가
친은 제힘으로 지키지요. 저도 그 만한 힘은 가졌다고 자부를 합니다. 구(龜)공자의 능력은
다른 곳에 쓰일 수 있을 거외다. 」
점잖게 경호를 거절하는 말이었다.
「 황보공자.. 공자는 무척 중요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생
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문대인 또한 상상을 넘는 무공을 소유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
강요(强要)하듯 말하는 상관명의 말에 슬며시 오기가 치미는 황보정의 표정이었다. 그런 황보
정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상관명이 갑자가 구(龜)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 구(龜)야..! 」
「 예.. 주군(主君)..! 」
자신을 부르는 단 한마디의 말..! 그러나 상관명이 자신을 이름을 부르자 구(龜)가 말없이 손
을 황보정의 앞으로 내밀어 천천히 좌우로 교차해 흔들었다.
그 순간,
빙글 빙글.. 한바퀴.. 두바퀴.. 이제는 속도를 더해 황보정의 신형은 제자리에서 두자정도 위
로 떠올라 빠른 속도로 빙빙 회전을 하고 있었다.
「 황보공자.. 스스로 몸을 멈추고 의자에 내려앉을 수 있나 시험해 보십시오..! 」
(후훗.. 이들이 나의 무공을 시험하고 있구나. 이정도 쯤이야..!)
가볍게 생각을 한 황보정은 몸속의 내공을 끌어올려 회전의 속도를 줄이며 빙빙 돌아가고 있
는 자신의 신형(身形)을 멈추려 하고 있었다.
(허헉.. 몸속의 진기(眞氣)를 모을 수가 없다.)
내공을 운용하려 공력을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그 진기는 구(龜)가 펼친 내력 속에 흡인(吸引)
이 되어 회전을 하는 황보정의 신형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정신을 치릴 수 없을 정도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 그만.. 그만.. 됐습니다. 이제 알겠으니 진기를 거두어 주시오..! 」
황보정의 입에서 다급한 절규(絶叫)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자신의 내공으로는 견딜 수가 없
었던 것이었다.
구(龜)가 손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황보정의 신형은 스르르 의자에 내려앉았다.
「 황보공자.. 상대의 숨겨진 힘은 지금 구(龜)가 펼친 공력보다 훨씬 더 고강할지도 모릅니
다. 서문인걸의 숨겨진 무공은 아직 저도 잠작을 못합니다. 때문에 구(龜)를 보내 공자를 지
키려 하는 것입니다. 」
상관명의 내심은 구(龜)를 황보정의 곁에 두어 혹시나 모를 국경에서의 혼란에 대비해 황보정
과 조익균의 목숨을 지키려 하는 것이었다.
「 예. 이제 알겠습니다. 고맙게 받아들이지요. 」
「 공자.. 고맙습니다. 공자께서도 자신을 위해 권세를 움켜쥐느냐, 나라와 백성을 위한 봉공
(奉公)이냐 그 갈림길에서 올바른 명분을 선택한 것을 저는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럼 학련(鶴蓮)누님은 홍련채주를 도와 각 방파의 설득에 힘을 서 주십시오. 그리고 구(龜)는
황보공자를 따라 움직이며 항상 곁에서 보좌를 하도록 해라. 황보공자.. 이제 서둘러 연환서
숙으로 가셔야 할 것 입니다. 곧 부친의 연락이 그곳에 도착리라 생각됩니다. 」
모든 말을 마친 상관명이 황보정에게 사안의 다급함을 알려 서두를 것을 부탁했다.
「 자.. 잠깐만..! 상관공자..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조금 전 홍련채주께서 말끝마다 공
자를 향해 궁주(宮主)라 불렀습니다.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겠습니까..? 」
빙긋 웃고만 있는 상관명을 대신해 학련(鶴蓮)이 입을 열었다.
「 주군(主君)께서는 천궁(天宮)의 궁주이십니다. 」
「 예..? 낭자.. 방금 무어라 하셨소..? 」
「 예, 황보공자께서 지금 머리속에 생각하시는 그 천궁(天宮)입니다. 저와 구(龜), 완(婉)아
는 천궁의 제자 입니다. 그리고 홍련채주를 위시해 우리 모두가 천궁의 가족이지요. 」
「 허헛.. 그 천궁(天宮)이라.. 그랬었구나..! 그 오랜 옛날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폭정을
응징하고 사라진 그 천궁(天宮)이 다시 나타났구나..! 그 천궁(天宮)의 궁주(宮主)가 이 어지
러운 시국을 바로 하고자 나타난 것이구나..! 상관공자 이제야 알겠습니다. 」
「 하하.. 모두 정의를 이루려는 한 가족이지요. 」
「 그것도 모르고 공자 앞에서 철없이 무공을 자랑했습니다. 이왕 부끄럽게 된 일, 한 가지
청(請)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
황보정이 공손한 어조로 상관명에게 부탁의 말을 했다.
「 예.. 말씀하시지요..! 」
「 다름이 아니고.. 저에게 천궁(天宮)의 무공을 일면만이라도 견학을 시켜 주십사 하는 것입
니다. 」
그 말을 들은 상관명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슬쩍 팔소매를 허공에 흔들었다.
「 어어어...! 」
그 순간..! 소매에서 뻗어난 잠력에 의해 운향원(雲香院)의 실내에 앉아있던 네 사람의 신형
(身形)이 공중으로 치솟아 석자 높이의 공중에 머물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빙글 빙글 돌
았다. 그리고는 한사람씩 창문 밖으로 벗어나 비연선원의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운향원의
실내로 날아 들어온 것이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아무리 멈추려 해도 멈추어지지 않는 비행..! 순전히 상관
명의 잠력에 의해 조종되는 자신들의 신형의 움직임이었다.
공중에 떠오른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와 학련도 자신들의 주군인 상관명의 무공을 직
접 겪어보는 순간이 아닌가..? 그러나 그 와중에서 황보정은 두번이나 놀라고 있는 것이다.
구(龜)가 자신에게 펼쳤던 그 공력과 동일한 시전이 아닌가..? 그러나 그 위력은 구(龜)의 공
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없는 상상을 초월한 내력을 시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극의 공력을 가져야 이룰 수 있다는 어검술(馭劍術) 최고의 경지인 어검비행(馭劍飛行)도
오직 두자길이의 무게정도인 검 한자루를 마음으로 겨우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그 조차도
현 무림에서 터득한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이 네 사람의 신형을 동시에 오직 내력만으로 자유자제로 허공을 비행하게 만든다. 그
깊은 상관명의 내공에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상관명이 무극(無極)의 내공을 능공섭물(綾空攝物)의 공력에 실어, 실내의 모든 인물들을 공
중으로 날려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