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30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30 부 ** [수정일. 2006 년 3 월.]
제 10 장. 취산이합(聚散離合)의 암투(暗鬪) 3.
「아버님, 황보(皇甫)공자는 그 속에 깊은 내공(內功)을 숨기고 있습니다.」
서숙(書塾)의 내실에서의 밀담을 끝낸 황보정(皇甫程)이 거소로 돌아간 후 뒤에 남은 화령
(華怜)은 필히 알려야 할 사실이 있다는 듯 서문인걸(西門仁杰)에게 은근히 말했다.
「허허.. 어찌 알았느냐..?」
서문인걸(西門仁杰)이 빙긋 웃는다.
「어머 아버님.. 알고 계셨습니까..?」
새삼스러운 사실을 알려준다고 한 말이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에
무안함이 가득한 화령(華怜)에게 서문인걸(西門仁杰)이 찬찬히 설명을 했다.
「황보(皇甫)공자는 나와 이야기를 나눈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 내실에서 이 아비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어떤 순간은 초조함도 보이고 또 어느 한
순간은 마음이 들떠 들썽거리는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그 행태들은 다만 겉으로 보이려는
행동이었을 뿐, 단 한차례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의
주위에는 선천진기(先天眞氣)가 흐르고 있었다.」
오랜시간을 함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서문화령(西門華伶)..! 자신의 무공
(武功)또한 스스로 만족해 하며 강호를 눈아래로 보고있던 화령(華怜)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황보정(皇甫程)의 선천진기(先天眞氣)..!
갑자기 심화(心火)가 치솟아 오르며 불같은 호승심이 피어 올랐다. 그런 화령(華伶)을 보며
서문인걸(西門仁杰)이 달래듯 말했다.
「네가 형용(形容)한 것과 같이 그는 분명 기재중의 기재.. 영걸(英傑)임에는 틀림이 없다.
허나 그 깊은 속은 이 아비도 알아내지 못했구나. 그런데 너는 어찌 그의 무공(武功)을 알
아 보았느냐..?」
「예, 아버님..! 그를 데리러 갔을 때 보았습니다. 오 장(丈)정도의 먼 거리에서 그가 갑자
기 날린, 손가락 한마디 만한 나뭇가지가 큰 바위에 두자 깊이로 꽂혀 들었습니다.」
「그것은 황보(皇甫)공자가 가진 극히 일부의 능력을 보인 것일 뿐이다. 황보(皇甫)공자가
너를 한번 놀려본 것이겠지.」
「아이.. 아버님.. 정 그러하다면 공자와 한번 겨루어 보겠습니다..!」
「허허.. 아서라, 아비도 그를 이기려면 수십합(數十合)을 겨루어야만 할 것이다. 그보다
두사람이 가까이 하며 서로 장점을 배우면 어떻겠느냐..?」
「예..?」
그렇다면 생각보다도 더욱 높은 공력을 가진 고인(高人)이란 말이 아닌가..?
어리둥절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짓는 화령(華怜)을 슬며시 바라보던 서문인걸
(西門仁杰)이 혼자소리을 중얼거렸다.
「다음 달 초순이라 하였던가..? 으음, 이제 겨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았군, 이 한 달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되겠구나..!」
갑자기 화령(華怜)을 향해 말했다.
「나는 숭산에 좀 다녀올까 한다. 그동안 마음속에 남아있는 호승심을 미련없이 버리고
황보(皇甫)공자와 서숙(書塾)을 잘 이끌고 있거라.」
* * * * * * * * * *
주선진(朱仙鎭)을 넘어가는 저녁햇살이 연환서숙(捐幻書塾)의 뒷동산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뒷동산 커다란 바위위에 앉아, 곁에 다가오는 서문화령(西門華怜)도 아랑곳 하지않고
깊은 생각에 젖어있는 황보정(皇甫程)의 모습은 분명 서문인걸(西門仁杰)과 나눈 이야기들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리라..!
「무슨 생각을 그리도 깊이 하시느라 사람이 다가와도 모르십니까..!」
곁에 가까이 다가와 말하는 화령(華怜)을 올려다 보며 황보정(皇甫程)이 싱긋 웃었다.
「왜.. 또 모른 척 저를 놀리시려는 겁니까..?」
「하하하.. 놀리다니요. 저녁노을을 뒤로한 화령(華怜)낭자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냥 제입이 벌어진 것이지요.」
「호호호.. 공자님도 허언(虛言)을 할 줄 아시네..! 분명 놀리시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여인이 예쁘다는 말을 싫어할까..!
화령(華怜)은 부끄러움으로 목덜미가 발갛게 달아 오르며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 제가 화령(華怜)낭자를 놀렸다가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요. 진정 낭자는 석양
보다도 더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계십니다.」
「또 그런 말씀을..! 그보다 아버님께서 출타 하시면서 한 달 후에나 돌아오신다며, 저와
공자님께 서숙(書塾)을 잘 부탁한다 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공자께서도 바쁘게 움직이셔야
할 것입니다.」
「아하.. 조금 전에 문을 나서더니만, 어디를 다녀 오시길래 한달이나 걸린답니까..?」
「예, 숭산을 방문한 후 몇 곳을 돌아 오신답니다.」
조금은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조금전 어른께서, 항상 어른의 주변을 지켜 살피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찌 나에게 아무런
말씀 없이 떠나셨을까..?」
황보정(皇甫程)은 함께 움직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서문인걸(西門仁杰)이 떠난 먼
산길을 목을 길게 내밀어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급히 마무리를 해야만 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녀오신 후에는
항상 공자님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화령(華怜)이 달래듯 말하며 황보정(皇甫程)이 앉아있는 바위위에 걸터 앉았다.
그 순간 화령(華怜)의 눈속에 들어오는 깊이 패인 자국.. 황보정(皇甫程)에 의해 날아든
나뭇가지가 바위속을 파고든 흔적이 눈에 뜨인 것이었다.
(흠.. 그렇지..!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 이 기회에..!)
슬며시 자리에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어어.. 어디를 가시오..? 내가 한 말이 귀에 거슬렸습니까..?」
황보정(皇甫程)이 당황해 하며 부르는 소리에 대꾸도 없이 화령(華怜)은 마음속으로 하나..!
둘..! 발자욱을 세며 앞으로 걸어갔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이만하면 오 장(丈;약 15m)거리는 되겠지..!)
곁에 서있는 나무의 가지를 꺽어 새끼손가락 크기로 자른 화령(華怜)이 몸을 돌렸다.
「화령(華怜)낭자.. 내가 서문어른의 생각을 짐작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말한 것 같구려..!
용서하시고 이리로 오시오. 아니면 내가 그리로 가리까..?」
갑작스러운 화령(華怜)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급급히 변명을 하며 벌떡 일어서는 황보정
(皇甫程)을 향해 화령(華怜)의 소매자락은 바람에 펄럭이며 손에서는 번쩍 빛을 발했다.
- 휘익.. 슈웅..!
- 퍽..!
「어엇.. 낭자..! 이게 무슨 짓이오..!」
자신을 향해 일장(一掌)을 날린 것이라 생각한 황보정(皇甫程)의 입에서 포효가 터지며
신형(身形)이 허공을 날아 한바퀴 빙글 돌아 바위위로 내려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화령(華怜)이 생글생글 웃으며 천천히 바위곁으로 다가와 내려다 보았다.
한자 다섯치..!
오 장(丈)의 거리에서 모든 공력을 모아 쏘아낸 나뭇가지가 겨우 한자 다섯치의 깊이로
바위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었다.
(내공을 모두 운기해 발경(發勁)을 한 기공(奇功)이었다. 그러나 저 공자가 장난삼아 던져
낸 내력(內力)에도 미치지 못하다니..!)
화령(華怜)의 마음에 은근히 울화(鬱火)가 치밀어 오르며 호승지벽(好勝之癖;타인과 겨루어
이기기를 좋아하는 성벽)에 불을 당겼다.
「낭자..! 왜..?」
대답도 하지 않고 바위에 뚫린 구멍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화령(華怜)을 보며 아하..
그 때문이구나..!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드는 황보정(皇甫程)을 향해 화령(華怜)은 두
손을 단전에 모으며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황보(皇甫)공자님, 항마복호장(抗魔伏虎掌)입니다. 받아 보시겠습니까..?」
어조는 부드럽고 정중하였으나 표정은 단호했다.
「어어어.. 화령(華怜)낭자 이러지 마시오. 제가 괜히 객기를 부려본 것입니다.」
힐끗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화령(華怜)은 두손을 앞으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웅.. 웅.. 소리가 울리며 화령의 두손의 주위에는 하얀 아지랑이가 맴돌기 시작했다.
(허허.. 이 낭자가..! 저토록 진기(眞氣)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체내의 내공(內功)을 모두
모으고 있구나..!)
어쩔 수 없이 대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먼저 손을 쓸 수는 없는 일..!
화령(華怜)의 출수(出手)를 대비해 암암리 공력을 운용하고 있는 황보정(皇甫程)이었다.
「하핫.. 얏..!」
화령(華怜)이 기합을 내 지르며 두손을 빠르게 앞으로 펼쳐 내었다.
- 크르릉.. 크아앙.. 쾅..!
과연 항마복호장(抗魔伏虎掌)의 위력은 대단했다. 천둥 번개가 치듯 굉음(轟音)을 울리고
손바람(掌風)은 뒷동산 바닥의 흙과 돌맹이를 회오리처럼 말아 올리며 황보정(皇甫程)을
향해 날아갔다.
「허헉.. 흡.!」
순간 황보정(皇甫程)의 입에서 짧은 숨결이 터졌다. 그리고 그의 몸은 하나의 가벼운
깃털처럼 허공으로 둥실 떠올라 신형(身形)을 수평으로 누이며 화령(華怜)의 머리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졌소이다. 도저히 복호장(伏虎掌)을 감당 할 수 없으니 그만 손을 멈추시구려..!」
눈 깜빡할 순간에 공격을 발아래로 흘려 버리고 허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욱더 오기가
치밀어 오른 화령(華怜)은 능공천상제(陵空天上梯)의 경공을 펼쳐 휘 익..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올리며 한손은 항마복호장(抗魔伏虎掌)을 펼쳐내고 다른 한손은 손가락하나를 곧게
뻗어 일지선공(一指仙功)을 동시에 뿌려내었다.
「어림 없는 일.. 이 장(掌)도 한번 받아 보시오..!」
- 슈우우욱.. 슈욱..!
매서운 음향을 울리며 회오리처럼 말아 오르는 거대한 장풍속의 한가운데에 일지선공
(一指仙功)이 한줄기 얼음 빛처럼 날카롭게 황보정(皇甫程)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다.
「어쩔 도리가 없구나..!」
결심과 동시에 황보정(皇甫程)의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화령(華怜)의 머리위를 선회
하던 신형(身形)은 허공의 한점에 멈추었다. 그 순간..!
- 슈욱.. 펑..!
일지선공(一指仙功)의 한광(寒光)이 황보정(皇甫程)의 가슴팍을 정확히 격타했다.
「으아악..!」
오히려 화령(華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슴을 파고든 일지선공(一指仙功)의 한광(寒光)이 황보정(皇甫程)의 반탄강기(反彈剛氣)에
의해 튕겨져 나와 되돌아온 장력(掌力)..!
그 반탄장력(反彈掌力)은 몇배로 강맹해져 화령(華怜)의 신형(身形)을 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화령(華怜)의 앞에 황보정(皇甫程)이 훌쩍 내려 앉았다.
「이이이이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화령(華怜)의 판단을 마비시키고 화령(華怜)은 분별도 없이
온몸을 던져 황보정(皇甫程)의 앞으로 내닫았다.
「어허허..!」
다급해진 황보정(皇甫程)은 달려드는 화령(華怜)을 향해 두손을 맹렬히 흔들었다.
기기묘묘(奇奇妙妙).. 신비막측(神秘莫測)한 장법(掌法)..!
황보정(皇甫程)의 손에서 뻗어난 손바람은 수십개의 동그란 원을 그리며, 온몸으로 달려
드는 화령(華怜)의 몸둥이를 에워싸고 있었다.
수십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만든 장력(掌力)이 큰 원을 이루고, 달려들던 화령(華怜)은 그
원속에 갇혀 장중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앗차.. 내가 너무 흥분을 했구나..! 저대로 놓아두면 화령(華怜)낭자는 전신의 혈맥이
터져 죽는다.」
황보정(皇甫程)의 장력속에 갇혀 어쩔줄 몰라 쩔쩔매고 있던 화령(華怜)은 갑자기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던 장력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황보정(皇甫程)은 펼쳐내었던 장력을 화령(華怜)을 염려해 스스로 거두어 들인 것이었다.
「황보정(皇甫程).. 각오해랏.. 에잇..!」
그 순간을 틈탄 화령(華怜)이 온몸으로 돌진을 해 갔다.
- 우당탕..! 쿵.. 쾅..!
「어어어.. 화령(華怜)낭자..!」
달려든 화령(華怜)의 몸둥이가 황보정(皇甫程)을 덮쳐 벌렁 땅바닥에 넘어져 버린 두사람..!
그러나 그 와중에도 황보정(皇甫程)은 화령(華怜)이 부상을 당할까 염려하여 품속에 받아
안은 채 등 뒤로 넘어진 것이었다.
황보정(皇甫程)의 기묘한 선풍(旋風)에 가슴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갈갈이 찢겨져 나간
화령의 옷..!
흙먼지 가득 뒤덮어 쓴 황보정(皇甫程)의 몰골..!
하지만 두사람은 한몸처럼 꼭 부등켜 안고 있었다.
넘어져 정신없이 땅바닥에 뒹굴던 그 순간..!
- 철썩.. 철썩.. 짝.. 짝..!
황보정(皇甫程)의 양볼에 불꽂이 튀었다.
「엇.. 왜그러시오..?」
「이이이.. 치한(癡漢)..!」
드러난 가슴을 숨기며 눈을 꼭 감고 있는 화령(華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