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21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21 부 ** [수정일. 2006 년 3 월.]
제 7 장. 옥패(玉佩)에 담겨진 연심(戀心) 3.
온전히 기력을 되찾은 자혜공주(慈惠公主)가 상관명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깊이 숙
였다.
그 곁에는 이미 기운을 회복한 광진(光振)이 초조한 표정으로 공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공자님께서 저에게 전음을 보내신 분입니까..?」
자혜공주(慈惠公主)에게는 자신의 운기를 도와 해독을 해준 상관명보다 전음을 보낸 인물을
찾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인 듯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전음을 보낸 사람이 기산(箕山)에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아니던가..!
공주의 물음에 상관명은 그저 빙긋 웃고만 있었다.
(이 공자가 아니었는가..?)
궁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해 안절부절 하며 한마디 말을 더 물어보는 공주의 표정은 그러나 알
스 없는 기대에 들떠있었다.
「공자님 덕에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떻게 찻잔속에 독(毒)이 들었다는 사
실을 알 수 있었습니까..? 혹여.. 화령낭자가 차를 끓일 때 독을 탓다면 서문대인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인데..!」
상관명은 자혜공주(慈惠公主)의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구(龜)를 향해 말했다.
「구야.. 객잔의 주인에게 부탁한 정향차(丁香茶)를 가져 오너라. 자.. 모두들 자리에 앉으
십시오. 정향차는 기력을 도우고 머리를 맑게 만드니, 두분의 회복을 도울 것입니다.」
구(龜)가 가져온 차 주전자를 받아든 상관명이 정향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차를 한잔씩 따르
기 위해 공주의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 이 차에는 독이 없으니 마음 놓고 드십시오. 이렇게 차를 따르는 순간 서문인걸의 손
가락에 끼어있던 반지속에서 은은히 애기(靄기;아지랑이 같은기운)가 찾잔 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본 것이지요.」
그 말에 자혜공주와 광진이 깜짝 놀랐다.
내공의 힘으로 반지속의 독(毒)을 흘러들게 만든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절정내공(內功)에도
놀랐지만 그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추호도 느끼지 못한 그 독(毒)의 흐름을 발견
한 이 청년의 내력이 더욱 궁금해 진 것이었다.
(이 공자는 서문인걸(西門仁杰)보다 더욱 높은 공력을 몸에 숨기고 있단 말인가..? 겉으로는
도저히 그런 모습으로 보이지가 않는데..!)
이 청년의 어디에 내공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이 보인는가..? 아무리 살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주의 그런 모습을 미소로 바라보며 차를 다르던 상관명의 옷깃 사이로 목에 걸고
있던 옥패(玉佩)가 살짝 드러나 보였다.
그 순간 찻잔을 받아들던 자혜공주(慈惠公主)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잠깐.. 잠깐만.. 공자님..! 목에 걸려 있는 그 옥패(玉佩)를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자혜공주(慈惠公主)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하.. 공주님, 이것 말씀입니까..?」
손에 건네주는 옥패(玉佩)를 받아 뚫어지게 보고 있던 공주의 얼굴에는 점점 홍조가 피어 오
르며 눈동자는 격정(激情)을 억누를 수 없어 커다랗게 변했다.
「고.. 공자님이 그 때의 그 거렁뱅이 아이..?」
공주는 앗차.. 거렁뱅이란 말을 잘못 내 뱉었나 싶어 입을 닫으며 살며시 상관명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하하.. 맞습니다. 공주님의 배려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또한 이유 없는 동정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생각하여 공주님의 마차에 무작정 달려 들기도 했었지요..!」
조용조용 말을 이어가던 상관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주의 앞으로 다가가 정중히 예(禮)를
올렸다.
「공주마마.. 상관명이라 합니다..!」
그 순간 공주의 눈에는 지금까지 평범하게 보이던 이 청년의 자태가 돌연 헌헌미장부(軒軒美
丈夫)의 모습으로 다가오며 그의 등 뒤로는 후광이 번득이는 것 처럼 느껴졌다.
「하하하.. 광진(光振)호위, 우리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이는 아니라고 한 말, 기억 하시
오..!」
광진(光振)의 표정은 놀라움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여.. 역시 기산(箕山)에 복면을 하고 나타난 그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상관공자 였구려..!
그때는 구명의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자혜공주(慈惠公主)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상관명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랬군요.. 공자님..!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저의 목숨은 벌써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
다. 이제야 겨우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어리둥절.. 곁에서 바라보고 있던 구(龜)가 앞으로 나섰다.
「저의 주군(主君)과 두분의 인연은 오래 전 부터인가 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 진심으
로 축하드립니다.」
구(龜)의 축하인사에 자혜공주(慈惠公主)가 얼굴가득 부끄러운 표정을 띠며 말했다.
「구(龜)공자님의 주군이라 하여 평범한 분은 아닐 것이라 생각은 했으나 어찌 그동안 알아
보지를 못했는지..!」
항상 구(龜)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으나 그 멍청해 보이는 모습에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사실
이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자혜공주(慈惠公主)였다.
「하하하.. 그때는 제가 그렇게 변모(變模;모습을 변화시킴)를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이 당연 하지요. 제가 저의 정체를 숨겨온 것 또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공주가 궁금한 듯 앞으로 몸을 내밀며 물었다.
「상관공자님..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예, 공주님.. 오늘의 일도 그와 연관이 있습니다. 자 자.. 차가 식기전에 우선 한잔씩 드
시고 천천히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모두들에게 차를 한잔씩 권하며 상관명이 빙그레 웃음 띤 얼굴로 광진(光振)을 돌아보았다.
「하하하.. 광진(光振)호위, 그날 어린 저를 어찌 그리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팰수가 있었소
이까..?」
갑자기 분위기가 회기애애해져 서로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십년기기가 만난듯 부드러움 속에
마음의 여유들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푸하하하.. 상관공자님, 그때는 그 어린 아이가 무작정 달려들었지요..! 그 당시 저에게는
공주마마를 지켜야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임무가 있었습니다.」
광진(光振)은 옛일을 돌아보며 그저 즐거움이 넘쳐난다는 듯 호방하게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자혜공주(慈惠公主)의 입술이 살며시 열리며 부끄러움 가득
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상관공자님의 어릴 때 그 당당함을 오늘까지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의 앞에만 서면 공주라는 신분에 주눅이 들어 굽신거리고만 있을 때 공자께서는 조금도 굴
(屈)하지 않고 그 맑은 눈동자로 저를 쳐다보며 당당히 호통을 쳤었지요.」
「하하하.. 그 덕분에 저기있는 광진(光振)호위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두사람의 오가는 말에 광진(光振)은 미안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는 듯 얼굴에
미소만 띠우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공주님의 은혜(恩惠)가 없었다면 저 역시 황궁(皇宮)의 시위들에게 끌려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겠지요..! 어린아이의 철없는 호기(豪氣)였습니다.」
상관명과 자혜공주(慈惠公主)... 두사람 모두 조용히 눈을 감으며 그 날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 * * * * * * * * *
모두가 숨죽이고 부복을 해 있는 황제(皇帝)의 어가(御駕) 앞에서 남루한 행색을 한 어린아
이 입에서 터져나온 날카로운 목소리..!
「이 행렬이 비록 황제(皇帝)의 행렬이라고 하나, 나는 저 여자 아이에게 볼일이 있어 달려
갔을 뿐이다. 나도 이나라의 백성이거늘 어찌 연유도 알아보지 않고 이렇게 폭행을 행사 하
는가..?」
비록 어린아이의 목소리 였으나 주루 화영루(華榮樓)의 앞 광장을 쩡쩡 울리고 있었다.
「이 조그만 놈이.. 감히 어가(御駕)의 움직임을 방해 하고도 살아 남기를 바라느냐..?」
수많은 눈길이 주시하고 있는 것에 당황한 호위무사 광진(光振)이 어린아이를 당장 쳐 죽일
듯 손을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그 순간.. 마차안에서 낭낭한 음성이 울려 나온 것이다.
「광진(光振)호위 그만 두시오, 나를 해하려고 달려든 것이 아니고 단지 물건을 돌려주려한
것일 뿐이데..! 비록 남루한 차림을 하고 절차없이 달려들었다고는 하나 그 아이도 분명 이
나라의 백성이거늘..! 호위무사는 당장 뒤로 물러나라..!」
공주(公主)라고 불리는 소녀가 호위무사를 엄하게 질책하는 목소리 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황제(皇帝)는 공주가 하는 말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머
리를 돌리자 아무일 없었다는 듯 어가(御駕)의 긴 행렬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 * * * * * * * * *
짧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그날의 광경(光景)들..!
그 속에서 자혜공주(慈惠公主)는 상관명의 굽힐 줄 모르는 당당함을, 상관명은 자혜공주(慈
惠公主)의 현명함과 자애(慈愛;아랫사람에게 대한 도타운 사랑)로움을 되새기고 있었던 것이
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자혜공주(慈惠公主)가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호호호.. 상관공자님, 그 때 어린 저에게도 호기심이 있었답니다.」
「어떤 호기심이..?」
궁금한 듯 묻고있는 상관명을 공주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그 당시 화영루(華榮樓)의 앞 마당에는 하루종일 천자문 책자만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
는 어린 거지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아하, 그 일..!」
「그래서 그날 광진(光振)호위에게 부탁을 해 함께 화영루(華榮樓)앞에 가본 것이지요. 정말
책자만 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우습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커다란 황구(黃狗;누른 개)와 뼈다귀를 가운데 두고 서로 차지하려 싸움을 하기 시작
을 한 것입니다.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서 그 옥패(玉佩)를 던져준 것입니다.
그 옥(玉)을 처분하면 당분간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에..!」
말끝을 흐리며 가만히 상관명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 어린 아이가 이렇듯 천하의 기재(寄才)가 되어 자신의 앞에 앉아 있다. 자혜공주(慈惠公
主)는 상관명의 그 모습에서 황홀한 느낌까지 들어 마음속 깊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하.. 그랬었군요..! 저도 그때 저의 앞에 선녀가 나타난 줄 알았습니다. 공주님의 모습
이 저에게 천상(天上)의 선녀(仙女)로 보였지요. 그러나 공주님.. 저는 그때, 물론 배는 고
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겪었지만 구걸을 하기위해 화영루(華榮樓)의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공주의 눈동자에는 궁금증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화영루(華榮樓)의 앞을 지나다니는 뭇
군상(群像)들을 자세히 살펴 그들의 행위(行爲)들을 하나하나 공부로 여겨 나중에 자라면
경험으로 삼아라 하셨습니다. 저에게 살아있는 공부를 가르치려 한 것이었지요.」
「공자님의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공자님을 아끼셨던가 봅니다.」
상관명의 얼굴에는 할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예, 정말 아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가혹하리 만치 엄하시기도 하셨지요. 덕분에
그 화영루(華榮樓)의 앞에서 두 사람의 인연(因緣)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누구이신지..?」
「한 사람은 공주님 이십니다. 공주님은 저에게 자존심을 일깨워 주셨지요. 때문에 옥패(玉
佩)를 돌려주려 어가(御駕)의 행렬에 달려든 것이지요. 그날부터 옥패(玉佩)를 목에 걸고는
오늘까지 옥패를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혜공주(慈惠公主)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발갛게 물들었다.
「또.. 또 다른 한분은 누구십니까..?」.
두사람의 인연이라고 했다. 혹시 그 한사람 역시 여자는 아닌가 조심스러워 공주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또 한사람은 서문인걸(西門仁杰)입니다. 엎드려 책자만 들려다 보고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
낙양의 서문가(西門家)로 데려가, 딸인 서문화령(西門華怜)과 함께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 주
었지요. 그 서문가(西門家)에서 이년간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들이 저의 속 깊이 내재
(內在)되어 있던 웅심(雄心)을 이끌어 내어 준 사람들 입니다.」
상관명의 말을 듣고있던 구(龜)의 눈이 둥그렇게 변했다.
「주.. 주군(主君), 그래서 저에게 서문(西門)부녀를 잘 안다고 말씀하셨군요..? 그 두사람
의 깊은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고 하신 것 역시 서문가에서 지내며 느낀 말씀이었군요..!」
정말 뜻밖의 말이었다.
자신의 주군(主君)이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집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아하.. 그 때문
에 정체를 숨겼던 것이었구나..!
「주군(主君)의 진면목을 나타낼 수 없었던 이유가 그 때문 이었습니까..?」
구(龜)의 물음에 상관명은 좌중을 한바퀴 빙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