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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17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17 부  **    [수정일. 2006 년 3 월.]



제 6 장.  해후(邂逅), 오랜 세월의 만남 2. 


칠흑(漆黑)같은 깜깜한 밤.


으리으리한 대 저택의 적막이 감도는 넓은 마당을 지나 우뚝 선 건물의 깊은 안쪽의 방..!
추밀원(樞密院)의 수장인 추밀사(樞密使) 조평환(趙平換)의 내실에 두사람이 서로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내실의 주변은 잡인를 금해 엄격히 통제되어 개미새끼 한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주해 앉아 있는 두사람,
그러나 이상하게도 상좌(上座; 윗자리)에 앉아있는 인물은 조평환(趙平換)이 아닌, 몸 전체를
보이지 않게 가리고 얼굴까지도 복면을 한 사람이었고 조평환은 그의 맞은편 자리에 조신(操
身)한 몸가짐을 하고 말없이 복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대인.. 어찌 아직도 천하의 민심을 깨닫지 못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오..!」


추궁을 하듯 내뱉는 복면인의 말이었다.
그러나 복면인의 음성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변성(變聲)을 한 목소리였다.


「대.. 대인어른.. 무슨 말씀 이신지..?」


조정 뿐만이 아니라 천하의 권력을 한손에 쥐고 거드름을 부리던 조평환(趙平換)이 복면인(覆
面人)앞에서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조대인.. 강호의 민심(民心)을 가장 어지럽히고 있는 곳이 부패한 한림학사원(翰林學士院)
이란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허기야.. 그곳에서 조대인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재물이 흘러 들어온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소만, 그렇다고 그 이익을 탐내 그곳을 방치
한다면 조만간 민심의 불만이 팽배해져 뒷감당을 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것이외다.」


강호의 신흥 부호들과 고관대작이 어울려 공공연히 벼슬을 사고 파는 사교장이 되어버린
한림학사원이었으나 조평환(趙平換)은 아직 그 곳의 달콤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인어른.. 학사원의 원장과 관리하는 사람들을 바꾸고 그들을 엄격히 다스리면 될 것이라
생각 합니다만..!」


슬며시 의중(意中)을 떠보는 조평환(趙平換)을 향해 복면인의 입에서 노호(怒號;화난 소리를
지름)가 터졌다.


「이 어리석은 놈.. 그만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단 말이냐..!
그대가 미적거리는 사이 강호의 지사(志士)가 그곳을 파훼(破毁;깨뜨려 헐어 버림)하고 민심
을 얻어 그를 따르는 군웅들이 궐기를 한다면 그대의 지위도 한순간에 곤두박질 쳐 진다는 것
을 어찌 모르고 있는가..!」


「어.. 어른..! 당장 혈잠령(血潛領)을 파견해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대노(大怒)한 복면인의 앞에 부복을 한 조평환(趙平換)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조대인.. 또다시 내가 직접 여기를 찾아 그대를 질책하게 만들지 마시오. 일의 처리가
미흡하다면 그대 또한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오..!」


호통소리가 끝나자 어느새 복면인은 방안에 조평환(趙平換)만 남겨두고는 연기가 새어 나가
듯 형체도 남기지 않고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 복면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평환(趙平換)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한순간 판단의 착오로 내가 저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도 운신에 제약을 당하는 구나..!) 


 * * * * *


화창하게 맑은 강남의 하늘에는 흰구름만 한가로이 지나고 있었다.
유서깊은 강남은 여러 지역과 수로(水路)로 연결되어 있어 ㅡ 천하(天下)의 요회(要會) ㅡ 라
불리고 있으며 그 강남의 도시 개봉(開封)은 화려함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관도 어가(御街)에
는 오늘도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분주히 오가는 우왕대(禹王臺)아래,
비연선원(秘緣仙院)의 누각 예원(藝院)의 창가에 앉아 장원의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학련(鶴蓮)이 곁에 서있는 완(婉)을 돌아 보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달포가 훨씬 지났는데 어찌 주군(主君)은 소식이 없는 것일까..?」


비연선원(秘緣仙院)에서의 그날,
자혜공주(慈惠公主)의 뒤를 쫒아 달려나간 그 후로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초조함을
은근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었다.


「언니.. 공주의 뒤를 따르다 혹시 주군의 신상에 잘못된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완(婉)아 역시 궁금함을 견디지 못해 한마디를 던졌다.


「무슨 말을..! 당금 무림에 주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림인이 있을 듯 싶으냐..?」


「그렇겠지요.. 언니..!」


「하지만 빨리 뵈었으면 좋겠다.」


주군(主君)의 능력을 무한히 신뢰하고 있었지만 초조한 여심(女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두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시각.. 
우왕대(禹王臺)의 앞 큰길에 두필의 말이 먼지를 휘날리며 질풍같이 달려 지나가고 있었다.


「어서 가자.. 사제..!」


「예, 사형..!」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은 소림방장 지원대사(智元大師)의 명으로 숭산(嵩山) 소림사
(小林寺)를 떠나 산동성(山東省) 태안(泰安)의 제갈세가(諸葛世家)의 가주 제갈청운(諸葛靑
雲)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계율원의 원장인 지공대사(智供大師)와 계지원의 지덕대사
(智悳大師)였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중 지원(智元)방장이 급히 날린 전서구(傳書鳩;연락용 비둘기)로
받아본 서신(書信)에 적힌 글..


ㅡ 급히 서문가(西門家)로 달려가 서문사제의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하라..! ㅡ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체 한걸음도 쉬지 않고 달려온 두사람의 고승은 개봉의 관도를 지나
낙양(洛陽)의 서문가(西門家)를 향해 급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 * * * * * * * * *


낙양성(洛陽省) 동쪽의 백마사(白馬寺)는 후한의 명제때 건립된 것이다. 또한 성의 남쪽에는
이궐(伊闕)은 그 산벽에는 불상의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어 천불암(千佛巖)이라 불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의 북쪽 망산(邙山)에는 거총이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고대의 황제와 황후의 무덤들
이 총총히 들어서 있고 천진교(天津橋), 관제총(關帝塚), 용문(龍門)등 명소(名所)가 자리잡
고 있어 많은 강호인들이 유람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고적의 명승지가 되어 있는 그곳에 백마사(白馬寺)아래 자리한 서문가(西門家)..!


후주(後周)의 명군(明君)이라 일컬었던 세종(世宗)조의 명재상 이었던 서문상현(西門相賢)은
왕조(王朝)가 바뀌는 정변(政變)의 와중에 유명을 달리했고 그 아들인 서문인걸(西門仁杰)이
굳건히 서문가(西門家)를 지키고 있었다.


- 다그닥.. 다그닥..!


- 워.. 워.. 훌쩍..!


말에서 뛰어내린 지공(智供)과 지덕대사(智悳大師)가 서문가(西門家)의 대문을 밀고 달려
들어갔다.


「엇.. 어엇..!」


두 소림고승(小林高僧)의 눈에 들어온 서문가(西門家)의 모습은 마치 폐허를 방불케 했다.
그 마당의 한가운데에 서문인걸(西門仁杰)이 보검(寶劍) 무상검(無想劍)을 지팡이처럼 짚고
부동명왕(不動明王)의 자세로 눈에는 광채를 번득이며 서 있었다.


서문가의 장원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으며 서문인걸의 주위에는 수십명의 협사(俠士)
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른 모습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서문사제..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지덕대사(智悳大師)가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지덕(智悳), 지공(智供)사형.. 마침 잘 오셨습니다..! 여기 이사람 들은 오직 이 서문가
(西門家)와 가까이 지내며 친분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게 응징을
당했습니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서문인걸(西門仁杰)의 인품에 감복해 서문가(西門家)를 들락거리는 많은 강호지사(江湖志士)
들이 집단을 이루어 세력화(勢力化)가 되기 전에 미리 그 근본(根本)을 잘라 버리려는 듯 서
문가에 모여든 협인들을 무력으로 모두 초토화 시켜버린 것이었다.


「사제.. 누구의 짓인가 짐작은 하는가..?」


「예,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지요. 분명 조정의 명을 받은 혈잠령(血潛領)의 행위 입니다.
그 것 또한 제가 개봉에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사이를 틈 타 이렇듯 무력으로 시위(示威)를
한 것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다행히 저의 지인들 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는 듯 합니다. 저놈들도 일단은 저에게 일
차적인 경고를 한 것이라 생각 됩니다.」


「오호..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없다니 다행이구나.」   


「그런데 두분 사형은 어찌 알고 이렇게 달려 오셨습니까..?」 


「우리는 산동의 태안(泰安)에서 영문도 모르고 장문방장의 전서구를 받은 것이네. 급히 사제
를 만나 진정 시키라는 전갈을 받고 달려온 것이라네..!」


「허헛..! 장문사형이 어찌 이 사태를 알고 나를 진정시키라고 이곳에 보냈는가..? 앗차..!
그놈들이 소림에 간 것이구나..!」


「소림에 가다니.. 사제 그것이 무슨 말인가..?」


「저의 짐작이 맞다면 두분 사형이 출타한 틈을 타서 혈잠령(血潛領)의 무사들이 소림을
점거해 장문사형을 겁박(劫迫;으르고 협박함)을 해서 내린 명(命)이던지, 아니면 장문방장과
유극관(劉克官)이 서로 야합(野合;좋지못한 목적으로 서로 어울림)을 한 결과일 것입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단언을 하는 서문인걸을 향해 지덕(智悳)과 지공(智供)이 얼굴을 붉히며
노여움을 나타내었다.


「서문사제.. 말을 가려서 하라. 어찌 눈으로 확인을 한 것도 아니면서 장문방장에게 야합
이란 말을 함부로 하느냐.?」


서문인걸이 지덕(智悳)과 지공대사(智供大師)에게 비웃음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후후후.. 두분사형 똑똑히 들으시오. 방장의 전서구로 받은 전갈이 이 서문가를 찾아 저를
도우라는 것이 아니고 진정시켜라는 명을 받은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서문사제를 진정 시키라는 명을 받은 것이 맞네..!」


「그렇지요. 장문사형은 이곳의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제가
핍박을 당한 서문가의 지인들을 선동해 망동(妄動)을 부릴까 염려되어 두분 사형을 저에게
보내 저를 달래려 한 것이지요.」


「그것이 어째서 야합을 했다는 근거가 되는가..?」


「아니라면 서문가가 이렇게 당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겠지요. 두분 사형을 제게 보냈
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분 사형에게 빨리가서 저
를 도우라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분 사형은 오직 저를 진정 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달려온 것입니다. 협박을 당했거나 야합이 아니라면 장문방장께서 두분 사형에게 그런 명을
내릴 하등의 이유가 없겠지요.」


「그렇더라도 소림에 가서 확인을 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 두분사형..  어서 소림으로 가십시다. 가서 분명히 확인을 해 봅시다. 그러나 은밀히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알았네.. 가서 조심스럽게 확인 해보도록 하세..!」


서문인걸은 지덕(智悳)과 지공대사(智供大師)에게 고개를 끄득인 후 서문가의 마당에 웅성
거리는 지인들을 향해 자신의 결심을 큰소리로 토해 내고 있었다.


「모두들 저로 인해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제가 나설 수 밖에 없는 지경
에 이른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서문인걸을 믿고 따라 주시리라 믿습니다.」


- 짝.. 짝.. 짝..!
- 우 우 우 우 우..!


서문가의 군웅들은 모두 서문인걸(西門仁杰)을 향해 고함소리와 박수로 화답을 하고 있었다.


 * * * * * * * * * *


낮을 도와 쉬지 않고 달려 숭산(嵩山)의 소실봉(小室峰)에 도착한 서문인걸과 지덕(智悳),
지공대사(智供大師)는 경비승(警備僧)들까지 침입자들의 수중에 들지는 않았는가 염려하여
몸을숨겨 소림사(小林寺)의 본전(本殿) 앞으로 소리없이 다가갔다.
그러나 소림사의 입구 어느곳에도 경비하고 있는 경비승(警備僧)은 보이지를 않았다.


「두분사형..! 아무래도 모두 제압을 당한 듯 합니다.」


본전앞에 소림제자들은 보이지 않고 흑의무사들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으며 팔대호원을 빙둘
러 방장실까지 흑의무사들이 줄지어 방비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팔대호원도 모두 봉쇄를 당한듯 하구나..! 일단 방장실 지붕위로 숨어 들어가 보자..!」


- 휙.. 휙.. 휘익..!


지붕위로 날아오른 세사람은 살며시 기와를 들어내고 조그만 틈을 만들어 실내를 내려다 보았
다. 과연 방장실에는 소림방장 지원대사(智元大師)가 유극관(劉克官)과 마주하고 있었다.
지원대사(智元大師)는 이미 기력을 잃은 듯 꼼짝을 않고 눈만 부릅뜨고 유극관(劉克官)을 노
려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지붕위에 있는 세사람의 귀에 실내의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흐흐흐.. 대사, 벌써 삼일을 버텼으면 대사의 자존심은 세워진 것이오. 지금쯤 서문인걸의
주변에 모여 들던 군협들도 모두 와해 되었을 것이외다. 이제 고집을 버리고 순순히 우리를
따르시오.」


지친 모습의 지원대사(智元大師)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만하면 대사가 소림을 우리에게 내어 준다고 해도 우리에게 인질이 되어 있는 소림의
제자들 모두의 목숨을 살리는 것으로 이미 대사의 명분은 선 것이니 누구도 대사를 욕하지
는 않을 것이오.」  
 
어쩔수 없다는 듯 지원대사(智元大師)가 고개를 끄득였다.


그 순간..!


「어어어..! 서문사제..!」


지덕과 지공대사가 당황해 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와지끈 지붕이 무너지며 서문인걸이 방잘실
로 뛰어내렸다.


「유극관(劉克官).. 역시 네놈 이었구나..! 좋다, 무고한 내 주변의 지인들을 핍박한 책임은
다음에 묻겠다. 그러나 대 소림(小林)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은 용서할수 없다. 지금 곧 이
곳을 철수 한다면 고이 보내주마..!」


유극관(劉克官)이 비웃듯 지원대사(智元大師)를 흘낏 돌아보며 서문인걸을 향해 말했다.


「허허허.. 지금 소림방장이 우리와 협조하기로 결정을 했거늘.. 겨우 소림의 속가제자인 네
놈 따위가 방장의 명(命)을 거역(拒逆) 하겠다는 말이냐..!」


그말에 서문인걸이 방장을 노려보며 따지듯 말했다.


「장문사형..! 정말로 이놈들과 협조하기로 하셨소..?」


뒤따라 실내로 내려온 지덕, 지공대사가 확인을 하듯 방장을 바라보자 지원대사(智元大師)는
어쩔수 없었다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끄득였다.


그러자 갑자기 서문인걸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 이것이 대소림(大小林)을 지키는 방장의 태도란 말인가..? 지원대사(智元大師),
뒤로 물러나라..! 이제부터 이 서문인걸이 크고 작은 소림의 모든 일을 결정한다.」


지덕과 지공이 놀란 얼굴로 서문인걸을 질책했다.


「서문사제.. 방장에게 무슨 망발(妄發;잘못된 말이나 행동)인가..?」
     
「크흐흐.. 두분사형도 나서지 마시오..! 자신의 문파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인물이 어찌 한
문파의 수장이란 말인가..! 유극관(劉克官).. 어서 철수하라.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것이다.」


손에 무상검(無想劍)을 빼어 든 서문인걸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무럭무럭 피어 올라 우뚝선
신형(身形) 주변을 둥글게 둘러 막을 이루고 있었다.
대승무상신공(大乘無想神功)의 절대공력이 뻗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지랑이가 날카로운 강기(剛氣)를 이루어 섬광(閃光)처럼 유극관(劉克官)의 요혈을 향해
파고 들었다.


「허헉..! 이놈이..!  크흐흐.. 서문인걸, 오늘은 내 그냥 가마.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
다. 혈잠령(血潛領)은 모두 따르라..!」


유극관(劉克官)이 서문인걸의 무공(武功)을 짐작 한 것이었다.
지금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 공력(功力)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가늠
하고 어서 이 자리를 떠나라는 서문인걸의 과시(誇示)가 아닌가..!
또한 지덕과 지공대사까지 서문인걸과 합세를 한다면..? 얼른 사태를 짐작 하고는 소림을 벗
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지원대사(智元大師)와 지덕, 지공대사는 서문인걸의 호통으로 유극관(劉克官)이 소림
을 물러난 것에 놀란것이 아니라 그가 펼쳐낸 지금의 무공 때문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헉.. 서문사제..! 방장인 나도 익히지 못한, 실전된지 오래된 무상신공(無想神功)을 사제가
어떻게 익혔는가..?」


지원(智元)방장의 물음에 서문인걸의 입가에는 냉소(冷笑)가 흘렀다.


「허허.. 소림을 통채로 들어 바치려 했던 그대가 아직도 방장이라고 나서는가..? 어찌 부끄
러움도 없이 무공에만 관심을 보이는 건가..? 내가 대승무상신공(大乘無想神功)을 도둑질이라
도 해서 익혔다고 생각하는가..?」


돌변한 모습에 모두들 당황해 하는 속에 서문인걸의 호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지덕, 지공 두분사형도 마찬가지외다. 본문의 위기를 보았으면 죽기로 지키려 하지는 않고
방장의 하는 꼴을 바라 보고만 있다니..! 내 비록 속가제자로 머물고 있었지만 전대 장문방장
께서 장경각으로 나를 불러 은밀히 대승무상신공(大乘無想神功)을 나에게 물려준 것을 몰랐단
말인가..!」


「그.. 그런일이..! 네놈이 전대방장을 협박해서 신공비급을 훔쳐 내었구나..!」


「입 닥쳐라.. 지원(智元)방장..! 전 방주께서는 혹시 조정의 핍박에 소림이 몸을 사려 움츠
려들 경우를 생각해 은밀히 나에게 소림의 뒤를 부탁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때 지원(智元)사형의 손을 잡고 미심쩍어 하던 사부님이 생각이 나는구나..!)


지덕대사와 지공대사는 전대 방장인 혜광대사(惠光大師)가 입적할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갑자기 유학이 성행하고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한 송왕조의 억압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재목이
될까 걱정스러워 하던 스승의 눈빛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모두가 생각에 잠겨있던 그 순간..!
갑자기 지원대사(智元大師)의 입에서 호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놈.. 네놈이 지엄한 방장의 권위를 이토록 몰각(沒却;무시)하려 들다니..! 계율원의 원장
인 지공(智供)사제는 어서 이놈을 포박해 계율원에 가두도록 하라..!」    


고함소리와 동시에 녹옥불장을 휘..익.. 서문인걸의 가슴을 향해 날렸다.


「흐흐흐.. 나를 포박 하겠다..?」


서문인걸은 가슴 앞으로 날아오는 녹옥불장(綠玉佛杖)의 끝을 손바닥으로 받았다.


- 우우웅.. 크앙..!


서문인걸의 손바닥에서 뻗어나간 반탄진기가 불장을 타고 흘러 지원대사(智元大師)를 십여장
뒤로 날려버렸다.


「으윽.. 이놈이 가공할 공력을 익혔구나..!」


지원대사(智元大師)뿐만이 아니라 곁에서 보고있던 지공과 지덕대사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
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하.. 이제 부터 소림은 내가 다스릴 것이오. 누구든 더 이상 나선다면 이 서문인걸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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