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16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수정편 제 16 부 ** [수정일. 2006 년 3 월.]
제 6 장. 해후(邂逅), 오랜 세월의 만남 1.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지상(地上)으로 내려앉은 백면서생(白面書生)은 우뚝 선 자세로
주변을 한바퀴 휘둘러 보았다.
(서문인걸..!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구나. 그러나 우선은 자혜공주와 광진호위를 구하는게
급선무.. 그의 뒤를 쫒을 수가 없으니 맹우량을 잡아 확인을 할 수 밖에..!)
기산 독천(犢泉)의 안개속을 날아 급히 뒤를 쫒아와 공주와 광진호위의 위급함을 도우려는
순간..!
상관명은 서문인걸이 멀리 높은 나무뒤에 숨어 숭정방주 맹우량(孟宇亮)에게 전음(傳音)을
보내고 있는 것을 이미 감지(感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공에서 산허리를 맴돌아 메아리처럼 울려온 웃음소리에 혈도가 막혀 온몸이 마비되어 꼼짝
하지도 못하고 허연 눈자위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던 숭정방(崇正邦)의 제자들과 그들의 선두
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방주(邦主) 맹우량(孟宇亮)이 백면서생(白面書生)을 향해 소리를 지르
고 있었다.
그러나 아혈(啞穴)까지도 제압을 당한 그들의 목에서는 한마디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은 오른쪽 소매자락을 앞을 향해 휘익.. 내저었다.
- 휘이잉.. 스르르릉..!
부드러운 잠력(潛力)이 기산(箕山)의 중턱 독천(犢泉)의 샘이 흐르는 주변으로 서서히 뻗어
나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숭정방(崇正邦)의 무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 질질질.. 질질질질...!
주변에 흩어져 꼼작 못하고 서 있던 숭정방의 무사들이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독천(犢泉)의
한쪽 끝자락으로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손에서 뻗어져 나간 무흔흡공결(無痕吸功訣)의 공력에 의해 모두가 한
곳으로 끌려든 것이었다.
맹우량(孟宇亮)은 비록 아혈(啞穴)이 막혀 입밖으로 말은 뱉을 낼 수는 없었으나 그의 눈은
지극히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격공섭물(隔空攝物: 내공을 이용해 멀리 떨어진 물건을 취함)의 공력은 수도 없이 많게 보아
왔고 자신 또한 수궁노(袖弓弩)의 철환(鐵丸)을 내공을 이용해 먼 곳의 상대에게 발사하는
정도의 격공공력(隔空功力)은 펼쳐 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토록 넓은 장소에 흩어져 있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격공섭물의 내공을 이용해 한곳으로
끌어 당겨 모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가공할 공력(功力)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하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 서생이 자신들을 어떻게 할까..! 목숨을 간수해야만 할
두려움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며 사시나무 떨 듯 오금이 져려오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덜덜 떨려오는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하며 안절부절 하고 있는 맹우량(孟宇亮)의 앞으로 백
면서생이 다가왔다.
「맹방주(孟邦主)라 했소..? 강호의 한축을 이루는 숭정방(崇正邦)의 방주라는 인물이 이런
비급한 인물일 줄이야..! 그대의 목숨을 취하려 해도 오히려 내 손이 더러워 질까, 내 그대를
가까이 하기조차 부끄러워지는, 강호의 졸장부 였구려..! 목숨이 가련해 더 이상 손은 쓰지를
않으리다. 그대들의 몸은 한식경 후에 자유로와 질것이오. 방주는 부하들을 인솔해 얌전히
방(邦)으로 돌아가 칩거를 하기 바라오.」
말은 부드러웠으나 일파의 방주(邦主)를 비급한 졸장부로 매도를 했으니 맹우량(孟宇亮)의 위
신은 땅바닥에 곤두박질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위신보다 목숨을 보존 하는 것이 더욱 중(重)한 일..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
을하면서도 스스로 어찌 할 방법조차도 없는 순간 이었다.
「한마디만 더 묻겠소..! 그대의 귀에 들린 전음은 어른의 명(命)이라 하며 남장여인의 목숨
은 취하지 말아라는 것이었소. 그대는 전음을 보낸 사람과 친분이 있는 것이오..?」
(헛.. 이 서생은 전음까지도 가로채 들을 수 있는 공력을 가지고 있다..!)
맹우량(孟宇亮)은 그 가공할 공력에 치를 떨며 말문이 막혀 고개만 끄득이고 있었다
「그 사람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 알았소, 내.. 더는 묻지않겠소. 대신 오늘 보존해둔 그대
의 목숨을 다음기회에 논하리다. 」
* * * * * * * * * *
상관명은 자혜공주(慈惠公主)와 광진(光振)의 곁으로 다가가 말없이 공주의 안색을 살펴 보다
가 공주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 휙.. 휙..! 퍽.. 퍽.. 퍽..!
공주의 중요한 혈맥 모두를 찍어 더이상 혈행(血行:피가 온몸을 돌아 움직임)을 타고 기경팔
맥(奇經八脈)으로 독(毒)이 퍼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자혜공주의 혈도를 막아 놓은 후 몸을 돌려 광진(光振)의 상태를 살폈다.
「으음..! 광(光)호위.. 아직은 크게 염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중독(中毒)의 증상은 혈맥 깊이 파고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독(毒)은 광진(光振)의 혈맥을 타고 흐르며 기(氣)를 분산시켜 공력(功力)을 모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것을 삼키고 나를 따르시오.」
품에서 꺼낸 해독단(解毒丹) 한알을 광진(光振)의 입속에 넣어 주고는 한팔로 자혜공주(慈惠
公主)를 옆구리에 끌어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광진의 손을 이끌어 광진의 몸속에 진기를 주
입 시키며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어허.. 이 공자의 무공은..!」
격체전공(隔體傳功; 몸을 통하여 내공을 남에게 전달하는 수법)의 내공을 시전해 타인을 허공
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강호의 절정고수라면 어느정도 펼쳐 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공자는 자신의 손을 붙들고 허공을 날아 올라 함께 비행을 하고 있다.
아니.. 비행을 하는 것 조차도 불가사의 한 공력이건만 그뿐만이 아니라 허공을 날면서 자신
의 몸속에 진기(眞氣)를 불어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독을 당했으나 정신은 아직 또렷한 광진(光振)이 그 초절한 무공에 혼비백산 놀라고 있었다.
* * * * * * * * * *
순식간에 백여장 허공을 날아 기산(箕山)의 연운봉(然雲峰)아래에 위치한 동령석굴(同靈石窟)
을 찾아 들어 자혜공주(慈惠公主)를 석굴(石窟)의 벽에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앉히고는 광진
(光振)을 돌아 보았다.
「앗차.. 광진(光振)이 나를 따른다고 진력(津力)을 너무 소모 했구나..!」
상관명의 공력에 의존해 겨우 허공을 날아온 광진(光振)은 이제 탈진(脫盡)을 해 석굴의 벽에
손을 짚고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학정홍(鶴頂紅)의 독이 점점 광진(光振)의 혈맥을 파고 들어 혈장(血漿)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학의 벼슬속에서 번식한 균(菌)이 변화를 이루어 균주(菌柱)가 스스로 독을 만들어 내는 가공
할 균독(菌毒)..! 그 학정홍(鶴頂紅)의 독이 광진(光振)과 자혜공주의 혈액속의 혈장(血漿)을
감염시켜 독혈(毒血)로 변하게 만들어 야금야금 생명을 걷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으음.. 운기요상(運氣療傷)을 해, 광진(光振)호위부터 먼저 회복 시킬 수 밖에..!」
광진(光振)을 부축해 편히 앉히며 앞가슴에 손을 밀착 시키고 천천히 진기를 불어 넣었다.
주입된 공력이 광진의 혈맥을 따라 체내를 일주천(一周天) 하며 진기가 막힌 임맥과 독맥을
타통시켜 양맥을 교차해 한바퀴 빙글 돌았다.
「으윽..!」
광진(光振)의 입에서 숨이 막히듯 비명이 터지며 허리 아래서 철환(鐵丸)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져 내렸다.
맹우량(孟宇亮)과 대적을 하다 수궁노(袖弓弩)의 암기에 당해 소요혈(笑腰穴)깊이 파고 든 독
(毒) 철환(鐵丸)이었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검은 독무(毒霧)가 아지랑이가 되어 광진의 머리위로 피어 오르며 서서
히 해독이 되어갔다.
다행히 광진의 내공(內功)은 충실하였기에 상관명의 진기를 쉬 받아들여 더 이상 생혈(生血)
이 독혈(毒血)로 변화되던 독변(毒變)의 진행이 멈추며 서서히 진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관명의 머리 위에도 애화(靄花:꽃모양의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 둥그런 화환(花換)
을 이루었다.
* * * * * * * * * *
감겨져 있던 눈을 번쩍 뜬 광진(光振)이 상관명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목숨보다 공주마마의 안위가 더
욱 걱정입니다. 해독(解毒)을 부탁드립니다.」
광진(光振)은 모든 공력을 주입해 자신을 치료해준 상관명의 상태는 아랑곳 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자혜공주(慈惠公主)의 안위가 자신의 목숨보다 더욱 소중했기에 앞뒤 가릴 여유도 없
이 무작정 상관명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훗.. 상관명의 얼굴에 실소(失笑: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웃음)가 흘렀다.
「허허.. 광진호위.. 나도 내몸 좀 추스립시다 그려..!」
앗차.. 마음이 급해 이 서생에게 무례(無禮)를 저질렀구나..! 광진(光振)의 표정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결례를..! 공자님.. 죄송합니다. 공주마마의 신색(神色:안색의 높임말)이 고비를 넘기
지 못할 것 같아 조급한 마음에 공자께서 저를 치료하느라 공력을 쏟은 것을 잠시 잊고 실경
(失敬)을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상관명에게는 공력(功力)이란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 굳이 몸을 추스릴 필
요 조차도 없는 일, 허나.. 광진(光振)이 조급하게 공주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을 보며 슬며시
장난기가 묻어난 것이었다.
이렇게 다급히 서두르는 상황에서도 상관명의 얼굴에는 편안한 웃음이 흐르며 광진(光振)의
충성심을 마음깊이 고마워 하고 있었고 이 정도의 독(毒)쯤은 별 것 아니니 염려 말라는 듯
광진(光振)을 향해 여유로운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광진(光振)에게는 한시가 다급한 순간이었다.
「공자님, 어서..!」
또다시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하하.. 우선 광(光)호위의 몸이 어떠신지 운공조식(運功調息)을 해보시오..!」
광진(光振)의 마음은 초조하기가 그지 없었지만 상관명의 권유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광진(光振)이 두손을 하단전에 모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리며
운기(運氣)를 시작했다.
겨우 차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광진(光振)의 머리 위에는 백연(白煙;흰연기)이 피어
오르며 신형은 전보다 더욱 가벼워져 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어어.. 이런 이런.. 이게 무슨 조화인가..!」
막혀있던 임독 양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뚫어져 진기가 스스럼 없이 일주천(一周天)을 하며
공력이 저절로 샘솟듯 솟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운기(運氣)를 하고 있던 광진(光振)도 자신의 몸속 변화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하하.. 어떠시오, 독(毒)이 제거되고 체내의 내공은 한층 승화(昇華)하여 몸속의 공력이 훨
씬 더 높아진 것을 느낄 것입니다.」
광진(光振)은 상관명의 앞에 두손을 짚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공자님..! 목숨을 구해주신 것 만으로도 어찌할 바를 모를 이사람에게 이렇게 큰 행운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복면을 해 정체를 숨기고 대명(大名)도 알려 주시지
않으니 은혜를 보답 하기가 난감합니다.」
보은(報恩)을 하겠다는 구실로 이름을 들어 정체를 알아 보려는 광진(光振)의 속마음이었다.
「하하하.. 그대와 나, 그리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이는 아닐 것이외다. 시간이 지나면 저
절로 알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라는 언질이 아닌가..! 그러나 사정이 있어 정체를
숨기는 것이리라 생각하여 더이상 묻지를 않고 공주의 해독을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허나 위급한 우리 공주마마의 존체(尊體)가 회복되도록 거듭 부탁 드
립니다.」
절박한 목소리로 바라보는 광진(光振)의 눈동자 였다.
「하하.. 광진호위는 자신의 몸보다 공주의 안위가 더욱 중요한가 보구려..! 알았소이다.
그럼 내가 공주에게 운공(運功)을 시전할 동안 내 곁에서 호법을 해 주십시오..!」
* * * * * * * * * *
점점 더 얼굴이 푸른빛을 띠며 창백해지는 공주를 일으켜 앉히고 그녀 앞에 마주앉아 두팔을
쭉뻗어 양 손바닥을 공주의 앞가슴에 밀착 시켰다.
공주의 가슴에서 상관명의 손바닥으로 차가운 냉기(冷氣)가 전해져 왔다.
「으음.. 이미 독기(毒氣)가 혈맥을 파고 들었구나..!」
비록 겉옷의 위 였지만 갑자기 다가온 남자의 손길을 가슴에 느낀 공주가 눈을 번쩍 뜨고는
자신의 앞에 마주 앉아 가슴에 손을 밀착 시키고 있는 복면의 서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서생의 진지한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문 체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상관명의 양쪽 소매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며 앉아있는 신형의 주위를 하얀 아지랑이가 둘러
둥그런 원을 이루기 시작했다.
상관명의 주위를 빙빙 돌던 아지랑이는 서서히 두갈래로 나뉘어 지며 자혜공주(慈惠公主)의
오른쪽과 왼쪽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상관명의 몸에서 우러 나오는 무극천공(無極天功)의 진기(眞氣)가 아지랑이로 화하여 천천히
자혜공주의 혈맥을 따라 흘러들고 있는 것이었다.
상관명의 오른손을 타고 흐르는 무극무흔결(無極無痕訣)의 기공(氣功)은 공주의 왼쪽 기경
(氣經)을 돌아 임맥을 향해 움직이고, 왼손에서 뻗어난 혈공(血功)은 공주의 오른쪽 혈맥을
따라 독맥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양쪽으로 나뉘어 흐르고 있던 기공(氣功)과 혈공(血功)이 단전에 모여 기혈수(氣血水)로 변해
원천진액(源泉津液)을 이루어 공주의 원기를 서서히 회복시켜 갔다.
공주의 온몸에서는 검은 땀을 비오듯 흘려 입은 옷을 끈끈히 적시고, 땀에 젖은 옷은 비릿한
냄새를 풍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몸속에서 끈끈한 땀이 흐르면 흐를수록 신형은 가벼워 지며 안색은 점점 홍조(紅潮)를
띠어 갔다.
땀이 연기로 기화(氣化)되어 사라져 갈수록 몸속의 독기(毒氣)가 제거되며 공주의 진기(眞氣)
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점점 가벼워져 가는 몸의 변화를 느끼며 자혜공주는 꼭 감고 있던 눈을 떠, 앞에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운기(運氣)를 도우고 있는 복면의 서생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굴까..? 이렇게 위급한 순간 시각을 맞춰 달려온 것을 보면 사정을 짐작
해 뒤 따른 것 같기도 한데, 혹시 구(龜)공자가 주군(主君)이라 부르던 그 청년은 아닐까..?)
흰 면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서생의 정체가 궁금해 이리저리 생각을 맞추어 보고 있었다.
(아니지.. 그렇게 멍청해 보이던 그 청년 일리는 없지..! 어딘가 낮이 익어 있다는 점과
구(龜)공자의 주군이라는 신분(身分)때문에 혹시나 이름을 숨긴 초야(草野)의 뛰어난 인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 청년은 무림인(武林人)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행색이었다.
그렇다면 이 공자는 대체 누굴까..?)
자혜공주의 궁금증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복면을 한 백면서생은 공주의 마지막 운기를 도우려는 듯 힘주어 내공진기(內功眞氣)를 단전
에 모아 펼쳐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서생(書生)의 앞가슴 옷깃이 스르르 벌어지며 목에 걸린 하얀 옥패(玉佩)가 공주의
눈앞에 드러났다.
「앗..! 이 옥패(玉佩)는..?」
공주의 머릿속에 지난 날들이 주마등(走馬燈) 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아니지.. 그 아이 일리가 없다. 이 공자의 무공은 이미 그 경지를 넘어 공력(功力)을 가름
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초절하다. 십년의 세월이기는 하나 그동안 어느 고인의 문하에 들어,
오랜 세월을 하루같이 수련을 했다고 해도 그 아이에게 이같은 무공(武功)의 성취를 이루도록
가르칠 스승이 당금 무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에 젖어 정신을 놓고 있는 공주의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진호위.. 호법을 하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 공주님의 몸속의 독(毒)은 모두 해독이
되었으니 안심을 하셔도 됩니다. 조금은 어지러울 것이나 금방 회복될 것이니 나는 이만 돌아
가겠소이다.」
그 말에 자혜공주(慈惠公主)가 급히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
「자.. 잠깐만 공자님..! 구명의 은혜에 제대로 감사의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아간다는 소리에 황급히 예(禮)를 취하며 다가섰다.
「하하.. 은혜는 무슨..! 이런 곤경을 보았다면 누구든지 도왔을 것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아.. 아니, 잠깐.. 잠깐만..!」
자혜공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하하.. 공주님..! 저는 급히 돌아가 처리를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더 이상
지체 할 시간이 없어 물러 갑니다. 조만간 제가 공주님을 찾아 뵙지요. 광진호위도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인사를 건냄과 동시에 신형을 날려 동령석굴(同靈石窟)의 밖으로 휙.. 사라져 버렸다.
「이.. 이런.. 광진호위, 저 공자의 정체도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보내고 말았습니다..! 고맙
다는 말한마디도 제대로 드리지를 못했는데..!」
못내 아쉬움이 남은 목소리로 광진(光振)을 돌아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는 공주의 모습이었다.
「누굴까..? 도대체 누굴까..?」
자혜공주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광진(光振)이 공주에게 말했다.
「공주마마.. 그 공자님은 분명 우리와 인연이 있는 청년 같았습니다.」
「뭐 뭣..! 광진호위.. 무엇이라 했소..?」
광진(光振)의 말에 공주는 놀라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예, 공주마마.. 그 공자가 저에게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이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우리와는 옛 부터 알고 있는 처지라는 말이겠지요.」
「분명 그렇게 말을 했단 말이지.. 그렇다면 정녕 그 옥패(玉佩)가..! 오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혜공주(慈惠公主)의 초초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